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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빛처럼 일거에 세상을 깨우는 빛 : 〈비판으로부터 자유〉
세상을 살면서 이해받지 못하는 것만큼 가슴앓이를 많이 해야 하는 것도 없을 듯싶다. 타인에 대해서,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남을 앞서려거나, 심한 경우 남을 짓밟으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에도 타인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면 설명은 변명으로, 항변은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인 것이 요즘 세상이다. 그런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책, 〈비판으로부터 자유〉를 쓰고 그린 김수경은 자신 또한 그러한 상황에 직면했음을 밝히면서 "하나님이 이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다급히 알고 싶어졌다"고 그때의 심경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지점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당시 저자가 맞닥뜨린 고통의 강도가 어느 정도였을까? 소제목을 통해 잠시 들여다보자. "내 인생에도 일어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히다." "꼬리표를 달고 살고 있었다." 소제목을 보면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앞뒤사면이 꼼짝없이 막힌 상황이다. 이 경우 그저 막막하다는 표현이 가장 적실할 것이다. “그래, 어떡하면 좋으니?”하는 걱정 외에 덧붙일 말이 더 있을까 싶다. 그만큼 당사자가 직면한 고통을 덜어줄 묘안이 없다는 얘기다. 나는 아닌데 남이 그렇게 생각하는 걸 어떻게 돌려 세운단 말인가?
진심은 통한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고, 그렇다고 험담을 늘어놓는 상대방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아니라고 한들 받아들여질 가능성마저 희박한 상황이라는 것쯤 누구나 유사한 상황을 적거나 많이 겪었을 터라 이해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름 처방이라고 제시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홍글씨를 박은 사람들을 향해 공격적 성향을 드러낸다든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무시하고 만다든지, 자책과 불면의 밤을 보낸다든지 하는 정도가 대부분인 것도 이 상황의 특징이다. 그와 같은 처방은 틀어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유효한 처방이라고 할 수 없다.
공격적 성향을 드러내면 상대방의 비판에 더욱 힘을 싣게 할 것이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던 귓전으로 흘리면 상대방은 당신이 떠도는 말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건 자신을 더욱 괴롭게 할 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야 직장을 떠나든지 요즘 세간을 들끓게 한 중학생자살사건처럼 생을 마감하는 선택이 있기야하겠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선택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찬찬히 경우의 수를 살펴보면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답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저자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역시 소제목이 키워드다. “따스한 세상으로 초대받았다.” “그들에게 가 보라고 하셨다.” “내 속마음을 궁금해 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자 또한 자책과 불면의 밤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군거리는 그들과 그들이 손가락질 할 만한 태도나 말을 하지 않은 나 사이에서 날이 갈수록 부풀려지는 갈등의 원인을 풀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지푸라기처럼 잡고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악화될 뿐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 저자가 기억해 낸 분이 예수 그리스도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조금만 살펴봐도 그분이 누구를 해치거나, 험담을 늘어놓거나 빈정 상할 말을 퍼붓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분과 전혀 섞이지 않은, 경우에 따라 일면식도 없었을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그분을 조롱했다. 심지어 죄를 찾을 수 없었음에도 그분을 천형과 같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다. 마침내 그가 못 박히자 그들은 “무슨 왕이 제 목숨하나 구하지 못하느냐”고 침을 뱉었다. 그 자리에 없었지만 필시 저자 또한 군중심리에 이끌려 그와 같은 사람들의 부류에 속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자 상황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역을 하는 동안 사람들의 속마음을 아셨음에도 그들을 선하게 대했다. 아버지 하나님이 그들을 너무도 사랑하심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팔아넘길 유다를 끝까지 사랑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보게 된 순간 저자는 상황을 다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책과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자신이 그들을 향해 저자와 원망의 화살을 수없이 날려 보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 받은 충격을 저자가 카툰으로 옮겨 놓았다. 그들의 성을 두 동강 내고 그들 각자의 삼장에 구멍을 뚫은 것도 모자라 그들 모두를 한손으로 싸잡아 으깰 정도의 사악함을 지닌 둘도 없이 악했던 자신의 모습을 매섭게 그렸다. 더불어 그들이 자신에게 나쁜 꼬리표를 붙여 주었듯이 자신 또한 그들에게 꼬리표를 붙여줌으로써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음을 또한 알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무수한 꼬리표들을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그것들을 전부 없앴음을 “다 이루었다”는 말씀으로 선언하셨음에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그들에게 꼬리표를 달아주는 데 열심이었을 자신의 모습을 본 데서 결정적인 해결의 실마리는 찾아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앞에 또렷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제야 저자는 자신을 손가락질 한 이들을 찾을 용기를 얻었다.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박힌 십자가에 자신을 올려놓을 때 시작된다. 그 후에야 부활이 있다. 누구나 부활 이후의 영광을 취하려 하지만 그 영광은 반드시 십자가라는 과정을 거쳐야 온다. 과정 없이 결과만 취하려는 것은 반쪽자리 신앙이자 불안한 기대일 뿐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이은 부활의 과정을 밟았음에야 우리라고 다를 리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남들의 꼬리표를 전부 지고 십자가에 올랐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꼬리표, 곧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희망이 전혀 없는 우리들을 체휼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고 심각하게 부르짖으셨던 것이리라. “아버지, 왜 저를 버리십니까! 그 고통은 바로 아버지와 분리될 만큼 심각한 고통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후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부합했다. “내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프리드리히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 볼 때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보게 된다.”고 갈파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여기서 더 나간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경우는 조금씩 달라도 비판하는 순간 비판 대상자를 닮아가는 것을 경계하는 말씀이다. 어느 누구도 비판받을 만한 구석이 없잖다. 문제는 당신이 누구를 비판하는 순간 사탄에게 문을 열어주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탄은 그 문을 통해 당신에게 들어온다. 그리곤 당신이 비판에 노출되도록 상황을 조성한다. 당연히 당신은 당신에게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당신을 비판하는 이들이 당신을 잘못 알고 있다고 항변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 당신을 흠잡을 것이다. 당신의 다음 선택은 그들을 멀리하는 것이다. 불면의 밤이 찾아온다. 당신의 고립은 심화된다. 이제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당신만 보일 뿐이다. 어둠 속에 갇힌 당신의 모습만. 그 상황은 사탄이 바라는 바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이다. 고립이야말로 사탄이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전략이다. 당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속이는 것은 사탄의 주특기다.
저자가 책의 많은 분량을 비판을 하거나 비판을 받는 것의 결과로 찾아온 암흑과도 같은 상황을 묘사하는 데 할애한 이유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도록 함에 있다. 거울에 자신을 비추지 않으면 얼굴 어디에 더러운 것이 묻었는지 알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과거 또는 현재에 직면했거나 직면한 고립을 찬찬히 돌아보도록 안내하려는 의도 또한 있을 것이다. 세세하게 묘사된 1장부터 3장까지를 읽는 동안 괴로웠던 지난날이 떠오를지 모른다. 경우에 따라 당신의 현재가 비춰져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책장을 덮지 마시기를.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빨리 오는 법이라지 않은가! 새벽빛처럼 일거에 세상을 깨우는 빛이 당신을 찾아온다. 당신의 찢어진 마음에 곧 당도할 테니 물러서지 마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사랑하신다. 당신이 더 이상 고립감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고대하며 해답을 들고 당신을 찾아오신다. 이 책이 그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해 주었다. 누구든 이 책은 꼭 일을 일이다. 읽기에 부담 없는 카툰 우화집이라는 점도 이 책의 미덕에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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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과 은유를 통해 사람들이 갖는 많은 고민과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저자의 글과 일러스트가 새로운 책 "비판으로부터 자유"를 읽게 되었다. 제목에 대한 끌림도 있었다. 시대적 흐름을 조명하는 제목이었다.
살기좋은 세상에서 살기 어려운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에서 생존경쟁속에서 나만의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세대에서 아픔을 글과 일러스트로 통해 공감을 이루어간 "비판으로부터 자유"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무분별한 공격이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보여지고 있다. 여러 매체들을 통해 공격적인 성향이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댓글의 위험으로 인해 목숨을 버리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건전히 비판으로 건전한 소통을 이룬 이상적인 사회가 아닌 선을 넘어선 위험한 사회로 전환에서 김수경 작가는 놀라운 공감대를 이루어가고 있다.
신앙인들조차 건전한 비판으로 발전을 이루지 못한다. 때로는 공격적인 성향이 고스란히 교회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비판으로 남을 죽이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주님은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비판이 나쁜 것인가? 비판에 대한 깊은 생각과 묵상을 유도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를 함께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비판적인 사고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비판으로 인해 새로운 대안을 함께 모색하는 성숙함이 부족한 것이 우리들이 채워야 할 것이다.
이책을 통해 비판의 세상속에서 또한 자유를 갖는 것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키고자 함을 느낄 것이다. 비판을 저자는 하나의 옥이라고 한다. 비판속에서 머물러 있는 이들은 감옥속에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하고 있다. 그곳에서 수많은 이들의 비판에 눌린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들은 비판이라는 옥에서 나오지 못한다.
비판의 옥에서 나오는 것을 이책에서 자유로 말하고 있다. 자유라는 것은 옥에 갇힌 것이 아니라 나오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탈출 방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비판의 옥에 갇혀 자신을 죽이는 비정상적인 삶이 아닌 그곳에서 나와 자유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삶의 모습에서 우리는 모두가 경험하게 됨이 비판이다. 그러나 그 비판으로 인해 자신을 옥에 가둬버린다면 희망이 없다. 자유 또한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에서 반듯이 나와야만 한다. 이를 돕는 분이 주님이시다.
서로에 대한 공격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부드러움으로 용서하고 품어가는 것이 자유의 삶이다. 이책을 통해 현대적인 환경속에서 어떻게 자유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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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증정받았습니다. 서평은 100% 본인의 주관적인 의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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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저자의 카툰집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읽어 볼 기회가 없다가,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이 나와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저자가 직접 겪었던 일을 기초로 하였을 뿐 아니라,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보았을 법한 일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내용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자신은 상대를 위한다고 생각해서 했던 말이었는데, 그 말에 상처를 받은 상대가 그 일로 인해 자신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바람에 크게 상처를 입은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제가 겪었던 비슷한 경험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저에게는 주인공에게 찾아온 친구와 같은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통과 분노의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했던 것은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위로를 전혀 경험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터져나오는 분노를 억지로 억누르다가, 그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이들에게 억울함을 토로하며 상대를 비난했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그러한 억울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고, 그분의 위로를 체험하고, 나 자신도 때때로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되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상대를 용서하고, 또한 자신의 허물을 찾아내 상대에게 용서를 구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그와 같은 태도를 견지하면서 자신의 분노와 억울함을 해결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억울해 하던 주인공이 예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상대에게 용서를 구하고 서로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타인들에 대해 끝임없이 비난하고 비방하는 어떤 후배의 태도를 견디다 못해 입바른 소리를 한 다음에 벌어진 사건 속에서, 또 어떤 사람이 주인공 앞에서 교회와 기독교를 욕하고 비방하는 상황 속에서, 그리고 어떤 선배가 주인공의 태도를 비판하였던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보여준 순종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충분한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조언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의미한 것인지', 그리고 '예수님이 비난 받을 때 그저 가만히 있는 나의 태도가 얼마나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단호하면서도 온유하게 그러한 비난을 중단시킬 수 있는지', 또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어떻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그러한 비판에는 아주 조금일지는 몰라도 진실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을 통해 자신을 충분히 돌아보면서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에, 그 이야기와 완벽하게 연결되는 그림과 성경구절들이 함께 어우러져 많은 도전과 감동을 전해 주고 있었습니다. 비판에 대한 설교를 지금까지 여러 차례 들어 보았지만 이 카툰집을 통해 얻은 것과 같은 수준의 도전과 감동을 받아 본 적은 아직까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비판에 대한 왠만한 설교집보다 이 한 권의 카툰집을 통해 얻는 감동과 도전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 여섯 개가 아깝지 않습니다. 타인들의 비판과 무고로 인해 깊은 고통을 느끼고 계시는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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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충고를 가장한 비난이 난무하고 염려를 가장한 험담이 일상이 된 곳'인 세상을 사는, 그래서 이로 인해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는 독자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담에서 시작하게 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경험과 지식 습득 등을 통해서 어떤 기준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을 그 사람의 세계관, 또는 가치관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스스로 정한 기준을 자신도 알게모르게,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재는 잣대로 사용하게 된다. 자신만이 아는 정답을 강요하는 '충고나 염려'는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처로 남게 된다. 그러나 충고나 염려를 한 당사자는 자신이 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저자는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이 왜 일어나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같은 잘못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또한 제시해준다.
사람들은 '평가, 충고, 염려, 잘 되기를 바라는 말' 등을 다른 사람들에게 하기를 즐겨한다. 저자는 이것을 '꼬리표'라고 비유한다. 사람들은 꼬리표에, 자신이 들으면 받아들이기 힘든 잔인한 말이나, 스스로 자신이 '너보다는 낫다.'라는 느낌을 얻기 위하여, 비판(판결)을 쓴다. 대부분은 '헐뜯고 밀쳐내야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우주의 생존법칙이 진실인것처럼 여기며, 사랑하고 사랑받게 하려고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저자는 그림과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의 글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는 책을 읽으며, 내가 정말 뼛속까지 악으로 물들었고, 고장난 의지는 작은 혀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주님께서도 하시지 않은 '심판'의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바로 '가해자였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전지전능하신 분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정직하게 나 자신을 평가해보게 되었다. 나에 대한 심판을 수천년 보류하신 주님앞에서, 저자의 말처럼 나는 '순간을 참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 내가 옳다고 말했던 수많은 상황들에서, 과연 나는 정말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었는가? 또 반대로 누군가로부터 비판의 말을 들었을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었는지?
이제 무엇보다도 '나의 욕심'에서 나오는 말들에 입을 닫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 늘 살아계신 주님 앞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날' 점검하고 점검해야겠다고 말이다. 언젠가 저자의 기대처럼,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의 인격과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게 될 날이 오리라 나도 믿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책은 그 '자유함'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바라보게 만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제가 직접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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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이라면 작은것 부터 큰것가지 어느하나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만, 다른사람의 일이라면 관심이 더디해질수 있고 옆집에 사는 이웃이 어려움에 처해 죽은지 한달이 지나서야 그사실을 알게될정도인 일명 "무관심"처럼 무서운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무서운것이 있다. 자신이 일이 아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소한것까지 관대하지 못하고 비판의 날을 세우며 달려드는, 그것도 가장 가깝고 있어줘야할 사람들로 부터의 세간의 인심이다. 김수경님의 카툰우화집으로써 이와같이 누구에게나 일어날수 있고 경험있는 사실들을 체험적으로 느낄수있는 인간관계를 다룬 서적을 접하게 되었다. 읽어가던중 떠올리게 되는 몇인물이 있었는데 첫번째로는 인기절정의 가수 타불로를 들수있었다. 어느 누군가에 의하여 그의 학위가 조작된것이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병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데서 부터 시작되었다. 결국엔 이 학력위조 사건은 모두 헛소문으로 드러나고 말았지만 타불로 개인에게는 깊은상처만 입혀주었을 뿐이었다. 다음 인물로는 주예수 그리스도로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자 이땅에 내려오셨으나 이땅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정치적메시야로써 인기절정에 올라있었으나 주님께서 잡히시고 고초당하시면서 정치적인 인물인 바나바로 대신 인기순위가 바뀌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라고 소리치고, 침뱉고 갖은욕설과 로마병사들의 채찍과 몽둥이 찜질등...여기서 성경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일어난 이야기라며는 나는 과연 그들중 어느 부류에 속하여 있을까 하며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주님을 생각케하는 시간을 갖게 하였으며, 세째로는 누구나 다른사람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용서하기는 쉽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두아들이 기독교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총살시킨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회개시켜 자신의 아들로 삼은 손양원목사님을 떠오르게 하였다. 이처럼 2.000년전이나 이념의 갈등속이나, 오늘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크나 작으나 갈등에서 비롯된 인간사의 비판은 항시 존재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결국 평안을 가져오게 되는것은 용서할줄 아는곳이 었고, 용서할줄 아는곳에 자유함이 있던것을 본저서를 통하여도 다시금 확인할수 있었다. 사실, 사소한 비판과 오해에서 비롯되어진 사고덩어리에서 자유하기란 쉬운것은 아니나, 본저서는 미션 카툰우화로써 예수님을 비유로 들어서 자신과 공동체 에서 일어날수 있는일들을 쉽게 이해시켜주고 있다. 가장 기억을 남게 하는곳이 예수님이 자유하게 할때 모든이들 에게 달려있던 라벨도 가져가는 장면을 읽는 순간 나의 영혼이 시원하여지는 느낌을 받게 하는 시간으로 다시기억되는 서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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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책머리에서 누구나 비판과 정죄의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비판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이유는 ‘비판하다’의 원어에는 ‘심판하다’라는 뜻도 담겨 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과연 이런 비판과 정죄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살 수 있을까요? 이것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일 것입니다. 작가의 카툰이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입니다. 문장들도 성경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기 성찰에서 나왔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이 꽤 많았습니다.
책의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내 나름대로 정리하며,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들을 적어봅니다. 나는 언제나 진실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좋은 충고를 건넸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이 나의 우정 어린 조언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신랄한 인신공격을 했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죠.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요. 나는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그야말로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그곳에서 예수님의 말씀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무조건 안아주시는 것을 경험했죠. 그 뒤 나는 다른 사람을 악담하는 후배를 찾아가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었지만, 그 후배는 동의하지 않고 나를 떠났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죠. “사람이 사람을 바꿀 수 없다. 사랑이 사람을 바꾼단다”(p. 166). 이번에는 어떤 동료가 예수님에 대해 비난했는데, 나는 그저 꾹 참았죠. 하지만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욕을 먹고 있는데 가만히 있는 꼴이니까요. 나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나는 이제 달라졌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믿음의 선배가 나를 비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만족을 위해 산다나요. 나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죠. 그런 나를 주님은 꼭 껴안아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그거 아니? 심판은 권리가 아니라 책임이란다”(p.188). 나는 현미경을 꺼내들고 나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비판에는 단 1%라 할지라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지. 너는 지금부터 화살을 너 자신에게 돌려 그가 지적한 1%의 진실을 추적해 보거라”(p. 192). 이제 나는 판단과 정죄로 고통받는 자들에게로 다가가야 합니다. 분명 이런 비난과 정죄가 계속 난무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도 상처 받고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 우리는 어째서 존중할 가치가 전혀 없는 판단과 정죄의 욕구를 그 어떤 선한 의지보다 더 적극적으로 존중하는 걸까?”(p. 203). 그래도 나는 사람들에게로 가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보내시고, 나와 함께 하시니까요!
타인의 비판과 정죄로 상처입고 타인에 대해 나의 마음 문이 꽉 닫힐 때, 이 책을 다시 들추어 보아야겠습니다. 누군가가 미워죽겠을 때, 그를 마구마구 정죄하고 싶을 때, 이 책을 다시 생각해 내며 판단(심판)의 욕구가 아니라 사랑의 의지를 따라야겠습니다. 이 책, 감성적이면서도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군요. 이 책을 통해 비판과 정죄, 우리의 위선과 자기중심적 사고, 그리고 사랑으로 이웃에게 다가가기, 등과 같은 주제를 많이 묵상했습니다. 인간관계로 고통당하는 크리스천들에게 ‘강추’합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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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비판을 받아본 사람은 부정적인 비판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쉽게 황폐하게 만드는지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비판이 주는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부정적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서 부정적인 비판을 일삼는 과정들을 살펴보게 되면, 부정적인 비판을 일삼는 사람이 과거에 자기가 동일한 과정들을 겪어 왔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삶이 현재 너무나 힘들기 때문에, 자신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어기제로 상대방이 누구든지 간에 가리지 않고, 부정적인 비판을 일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부정적인 비판을 일삼는 사람들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비판을 했다는 것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괜히 그런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비판을 받고, 삶의 날개가 꺾인다는 것, 추진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에너지 소비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참 힘들고 어려운 과정들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일단 그 부정적인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 그 이후에는 훨씬 더 고차원적인 사고와 삶의 방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런 부정적인 비판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임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사실 한번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그 부정적인 이야기나 비판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4번의 긍정적인 이야기들을 들어야 한다는 학자들의 학설이 있는데, 이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의견들, 비판들을 많이 듣다가 보면,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조차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보면, 결국 세상조차도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고, 여전히 부정적인 안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사랑한다고, 내가 너를 목숨보다도 더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판하는 이유도 역시 너무 자주 비판을 경험하다가 보니까,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는 모습들이 정말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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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교회 언니한테 이 책을 선물 받았습니다. 감사하다며 받았지만, 제 속마음은 '이걸 어쩌나...' 난감한 상태였습니다.
책을 선물 받았으니, 읽어야 하고, 두껍기라도 하면 바쁘다는 핑계를 댈텐데 그 핑계조차 댈 수가 없는 그림과 함께 있는 우화집이었으니까요.
책 읽기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제목을 보는 순간 '또 그렇고 그런 책이군' 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서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목록들을 보면, 뭐가 그렇게들 괜찮은지, 뭐가 그렇게들 잘하고 있다는 건지, 참 사람들은 위로받고 싶고, 다독임을 받고 싶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에 안들어하던 저였습니다.
괜찮다는 말을, 잘하고 있다라는 말을 싫어하는 게 아닙니다. 책이라는 건 결국 불특정 다수를 향한 목소리입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괜찮고, 모두 잘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기 때문에 그런 위로와 다독임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받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으로) 그런 류의 내용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비판으로부터 자유' 라니요.
제목을 읽자마자 저는 또 내용을 상상했습니다. '비판에 신경쓰지 마라, 그건 너에게 스트레스만 줄 것이다' 아.. 기독교 서적이니 '비판하는 이들은 불쌍한 영혼이다, 그러니 그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도리어 그들을 안타까워하라' 뭐 이런 정도의 내용이 들어가 있으려니 라고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깡다구였는지 그리도 단정 지으며 ... 항상 책을 선물하면 잘 읽었냐고 물어보는 교회 언니님 때문에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을 읽으며, '내 이럴 줄 알았어.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안 하고 자신이 받은 상처에만 집중하다니.' 라고 삐딱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장, 한 장 이야기는 어느 순간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상처 받고, 자신을 바라보고, 회개하고, 다짐하지만, 또 쉽게 실수해서 쓰러지고, 그 실수가 두려워 제 때 용기내지 못하고 어리석게 주저하기만 하는...
제가 그 속에 있었습니다.
마지막 결말이 어떻게 날까...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에게 어떤 결말을 선사할까...
삐딱했던 제 시선은 어느 새 궁금증으로 빠르게 페이지를 읽어내려가는 눈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책을 덮으며 저는 제 오만방자함을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달콤하기만 한 위로가 너무 팽배한 이 사회에 정말로 따뜻하고 또 자상하게, 한 걸음 나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책입니다.
비판으로부터 자유, 제목이 마음에 안 듭니다. 저같은 애들이 오해할 수 있거든요. ^^; 그래서 편집/구성에서 별 하나 뺐습니다.
더 좋은 제목은 모르겠어요. 전 작가가 아니니까요. ㅎㅎ
그런데, 책 내용을 읽기도 전에 너무 심하게 오해해서 글을 쓰신 작가님께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뒤늦게 책머리를 읽고 나니, 작가님께서 실제로 비판을 극복하시면서 그 삶을 녹아내린 내용이었다고 써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안 쓰던 리뷰를 쓰기로 아주 큰 마음 먹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오해했듯이, 또 누군가가 이 책을 오해할까봐요.
이 책은 그런 책 아닙니다. 정말 나를 돌아보게 하는 삶의 응원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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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이라는 칼
나를 아프게 하는 단어들 가운데 비판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만져 봅니다. 비판이라는 단어는 손잡이가 뭉툭하고 가벼운 하지만 긴칼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어느 칼보다보다 위험한 날을 가지고 있으며 휘두른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대에게 치명적인 아픈 상처를 남겨 놓습니다. 칼에 베인 상처는 치료하기 어렵습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이 도망쳐 집안으로 숨어 상처를 만지며 아파합니다. 닫힌 문 밖에 서 있는 모든 것들을 두려워 하면서 숨어 있는 이들에게 상처의 회복과 다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더해주는 그러한 책을 오늘 만났습니다.
묵상의 깊은 곳에서 만난 비판
복음의 가르침 앞에서 형제에게 주어진 말씀은 '비판하지 말라'입니다. 그것은 헬라어 '크리노'즉 '심판하다, 재판하다, 판결하다'의 뜻을 가지고 심판의 권리를 가진 한분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에게 주어지는 권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인을 비판합니다. 때로는 고의적으로 때로는 우발적으로 무의식 가운데서도 우리는 형제 자매들을 여러가지 이유를 가지고 비판을 합니다. 복음의 가르침 앞에 서있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비판에 얽매여 비판하는 무리 가운데 서 있는 당신은 자신에게 다가올 또 다른 비판의 칼날앞에서 어떻게 할 것입니까? 판단과 비난, 정죄, 악플과 힐난 입으로 마음과 육으로 행동하는 모든 비판으로부터 자유함이 없는 지친 영혼들에게 이 책은 이해와 위로 그리고 격려의 책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비판의 무리에 서 있는 이들에게 경고의 메시지이자 타인의 입장과 자신의 언행에 관한 돌아봄을 경험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남을 비판하는 무리 가운데 서있는 당신의 위치에서 내려옴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곳에서 만나는 비판
많은 사람들은 비판을 사적인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판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과 그 비판의 날선 칼날을 휘두르는 사람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둘 사이의 인과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볼뿐 비판의 잔혹성과 예리함 가운데 벌어지는 상처는 보지를 않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였던 비판의 대상이 자신이 되었을때 사람들은 비판이라고 이름 불리워지는 칼날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소리치게 됩니다. <비판으로부터 자유>(서울: 강같은 평화,2011)는 작가 김수경이 직접 경험했던 비판의 모습과 비판과 관계되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카툰과 함께 에세이로 쓰여진 글로 엮어낸 책입니다. 작가 자신이 경험했던 비판의 상황 앞에서 느껴진 절망과 슬픔 그리고 아픔은 책의 배경이 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간절히 원하였던 상처의 치유를 그려나가면서 저자는 비판의 슬픔 속에서 함께 서 계신 주님과의 만남과 교제는 비판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는 과정. 즉 치유와 회복 그리고 속박에서 부터벗어남을 그리고 있습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비판의 칼날의 끝에 서 있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들. 비판으로 인해 닫혀진 마음 문을 가진 이들에게 비판에 관한 묵상을 함께 나누어 봅니다.
Dear my J
카툰 에세이 <비판으로부터 자유>입니다. 짧지만 깊은 내용의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관계에 서투른 J와 필자가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됨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작은 책이지만 이 책에서 표현하고픈 진리는 큰 메시지랍니다. 상처 입고 아파하는 이들에게 치유와 회복과 격려와 위로를 더해주는 가운데 비판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거듭남 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용기를 얻고 상처입은 영혼이 회복되는 경험이 이루어지는 묵상의 시간이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J와 내게 있어 소중한 우리의 딸아이에게 함께 해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삶의 기준이 되어줄때 많은 이들이 우리를 아파하게 할지라도 우리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아파하는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내려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는지 알지 못한답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