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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묘수, 유배에 얽힌 정치인의 얼굴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가들이 위임받은 권력을 개인의 치부나 더 많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보게 된다. 바로 우리 정치권의 현실이 그것인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힘에 의해 이들을 단죄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앞에 지난 역사에 있었던 유배라는 제도를 떠올려 본다. 권력형 부정부패나 정경유착 등으로 죄를 지은 사람들을 그들이 근거하는 정치권이나 경제적 근거지에서 강제적으로 단절시켜 유배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유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 정약용에게 유배의 기간이 없었다면 그의 학문적 업적은 존재할까? 거의 20여년에 이르는 유배기간 동안 여유당전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많은 서책을 완성하고 그 성과가 오늘날에 이르러서까지 주목받고 있다. 정약용처럼 이렇게 정치적 수단에 의해 현실로부터 단절을 강요받았던 유배라는 형벌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이 책‘유배, 권력의 뒤안길’은 우리 역사에서 유배라는 형벌이 시행된 과정을 따라가고 있는 책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말에 이르는 기간 동안 유배와 관련된 정치적 사건을 추적하고 이를 살펴 유배를 간 사람들의 흔적을 담았다. 그렇다면 유배란 어떤 것을 이르는 말일까? 죄를 지은 죄인을 벌주는 형에는 다섯 가지가 있었다. 이를 오형이라고 하는데 중국 대명률에 근거하여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등을 말한다. 이중에서 유형에 해당하는 벌을 부과하는 것을 유배라고 말하고 있다. 유배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내포된 형벌로 인식되는 것은 유배를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 정치적 사건에 관련되어 유배를 갔다는 것에 의한 것이다.
유배와 관련된 이야기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이 책에서 삼국시대 이후 시대마다 굵직한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로 꾸며지고 있다. 유배가 주로 왕족이나 권력자들의 정치적인 이유로 행해졌던 형벌이나 보니 한 왕조의 흥망성쇠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왕권 중심의 나라에서 왕과 신하의 권력을 중심에 둔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벌어졌다. 왕위 계승과 관련된 왕족의 경우나 때론 신하들 사이에 권력을 나눠가지는 과정에서 붕당의 이해요구에 의해 상대방을 무고하여 정치적 생명을 단절시키는 일환으로 벌어진 사건들에 의해 유배형에 처해진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적 사건에 대한 서술이 중심이 되고 있다.
하여,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역사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들과 직면하게 된다. 멀리는 백제 의자왕에서 고려의 무신들의 란에 의해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을 맞이한 경우 그리고 조선시대의 갖가지 사화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거나 겨우 목숨은 부지하면서 유배길에 올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다양한 이유로 유배를 떠났던 사람들은 또 다양한 모습으로 유배생활을 했다. 그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정치적 단절을 당한 마음을 다잡아 학문에 몰두하거나 시문학에 그 마음을 담았다. 이후 유배문학이라는 말이 나타나게 된 것이 이러한 사정과 관련되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저자 전웅은 역사의 사건들을 통해 유배에 처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기존의 역사적 해석에 의존하여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를 단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조심스러운 시각을 나타내고 있어 보인다. 사료의 새로운 발견이나 발굴에 의해 새로운 역사적 평가가 진행되는 상황을 적극 반영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유배형은 원래 고급 관리용으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중죄인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막힌 아이디어이다. 바둑이나 장기에서 사용되는 ‘묘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제도이다.’
저자가 유배를 규정하며 하는 말이다. 2000년대 우리나라 현실정치에서 보여주는 정치적 배려와도 통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정된 밥그릇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아웅다웅 싸우기는 하지만 그 밥그릇이 통째로 없어지게 될 상황에서는 한목소리로 밥그릇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역사 속에서 정치인이나 지금 현재의 정치인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인 것일까?
그렇더라도 때론 목숨을 걸고 왕이나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방에게 직언을 했던 모습도 함께 나타난다. 그들이 목숨을 담보로 직언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정치인이나 지식이면 한번쯤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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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라는 말을 생각하면 몇 해전 '탐나는도다'라는 코믹하게 풀어낸 역사 드라마에서 제주도로 귀양온 귀양선비를 '귀양다리'라고 주민들이 부르던 것이 생각난다. 뭐니뭐니해도 유배와 함께 가장 크게 생각나는 인물은 정약용이다. 작년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쓴 수필집을 읽었었는데 유배생활 중에 아들에게 이러한 시기가 더욱 더 학문에 정진할 수 있는 좋은 시기가 아니냐며 학문에 정진할 것을 당부하는 편지가 인상깊었다. 정약용은 다방면에 걸쳐 많은 지식적 업적을 쌓은 학자이자 임금의 총애를 받은 관료였다. 놀라운 사실은 그의 학문적 업적이 유배생활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참담한 시간속에서도 스스로 정진하며 학업적 성과를 이뤄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하다.
대부분 유배형이라고 하면 주로 조선 시대에 관리 혹은 전직 관리가 정치적 이유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외지로 떠나 생활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유배형은 정치적 이유로 인한 경우도 많았지만 반드시 양반 관료나 왕족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유배형을 받는 주된 대상들이 정치범이나 국사범의 혐의를 받고 형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여겨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적용되었다. 여성, 일반 평민, 중인, 천민 등도 유배형을 받곤 했다. 그리고 형조의 관리나 지방 관찰사의 직권으로 죄를 지은 형사 잡범들도 유배형을 받기도 했다. 다만 사형은 오직 왕만이 내릴 수 있었다.
유배형은 엄청나게 무거운 형벌이었다. 공동체를 생활의 기반으로 삼는 조선 사회에서 유배형이란 생활 공동체로부터의 배제를 의미하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면부지의 낯선 땅에서 빈곤에 고통받고 지바아 관원들의 시달림을 받는 것은 선비들에게는 못 견디게 치욕스럽고 험한 생활이기도 했다.
유배지에서 풀려나는 것을 해배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경우에는 신료들이 임금에게 해배를 건의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잘못 건의했다가는 자신마저 얽혀 죄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듯 정치적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터라 해배 건의 자체도 결심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조선 시대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대개 그 죄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유배되거나 사사되는 일도 많았다. 즉, 법의 정당성보다는 권력 다툼으로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조선의 선비들은 이런 불이익을 감수하고 불합리한 정책이나 부당한 조정 대사에 대해 목숨을 걸고 상소하고 간언하였다. 그것이 지식인으로 진정한 선비의 도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유배를 갔어도 좌절하지 않고 유배지에서도 학문과 문학의 꽃을 피운 사람들도 많았다.
이 책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유배를 당한 고려의 왕과 신하들, 권좌에서 밀려난 조선의 군주들, 왕족들, 조선의 신하들 등 참으로 다양한 인물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에도 법의 정당성보다는 권력 다툼으로 인해 희생되는 이들이 생기는데 저자가 말하듯이 유배의 과정과 유배인들의 면모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세태와 더불어 각자가 지니고 있는 면모를 좀 더 진솔하게 통찰할 수 있는 것 같다. 범상치 않은 유배라는 주제로 한국의 유배사를 책 한권으로 모두 훑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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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권력의 뒤안길
지은이 전웅
청아출판사
현대사회는 어떤든 간에 '법'이라는 잣대가 있어서 모든이들에게 평등하게 법의 테두리안에서 보호받는다.그러나 그 법도 문제와 헛점도 많은 것도 현실적 사실이다.현재의 우리도 법이 존재해도 그 법이 절대적으로 공평할 만큼 완전한 제도가 아니다.그러나 과거, 그 옛날은 인권보다는 신분사회이고 왕의 권력은 절대적이였던 시대의 유배란 어떤것인가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였다. 단지 드라마 속에서 유배지로 끌려가는 죄에 대한 형벌이라고 보기에는 우리가 잘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정치적인 쟁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권력 다툼으로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던 유배!!!!유배지에서의 극한상황속에서도인간적인 모습들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신년은 지금 정치를 하고 있는위정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철새와 같이 정치적 이념도 없고 목청소리만 큰 선거''''혹자는 선비정신의 곧은 의지와 기개만 있어도 우리나라의 정치가 이렇게 안타까운 모습으로 가지는 않을까 한다.
이책에서는 유배형은 현대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무거운 형벌이라한다.유배의 형벌을 받기에 그들의 죄가 큰것인가를 질문하고 싶었다.유배인의 신분도 다양하고유배인의 신분에서 왕이 된 인물도 있고 선조의 책임어의였던 허준도 한때 유배형에 처해지고 해배되기도 했다.그들의 유배지의 생활도 힘들었다.역사시간에서 잠깐 나온 유배지의 사진이나 책을 보고 있는 유배인의 모습은 한가해 보였는데 그것은 유배의 형벌를 잘 모르고 이해하지 못했던 생각이였던 것이다.
이책을 보면서 문득 요즘의 뉴스에서 많이 들리는 성폭행범에게는 알맞은 형벌이 아닐까 하는 문득 떠올랐다.역사의 숨겨진 사실을 정확히 알게되는 시간이 였다.......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유배형과 도형제도가 있었다. 유배형의 기원은 당나라의 이연수가 쓴 <<북사>>에 "백제의 형벌에 도둑은 유배응 보내고 장물의 2배를 추징한다."라는 기록이 최초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형벌제도는 고려시대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해 5형 제도가 법제화되었다.
*5형이란? 태형,장형,도형,유형(유배형),사형 *태형 - 극히 가벼운죄를 지은 죄인에게 해당되는 형벌 *장형 - 약간 가벼운 죄를 지은 죄인을 장판에 치는 형벌 *도형 - 약간의 중한 죄인을 잡아 가두어 1년에서 3년 정도 강제노역을 시키거나 군대에 동원하는 형벌 *유형(유배형)- 바다로 흘러들어간 강물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듯이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못한다는 의미,이는 대개 중한 죄를 범한 경우에 내려지는 것으로 사형보다 한 등급 낮추어 장으로 볼기를 친 후 먼 지방으로 유배를 보내어 원칙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귀양지에서 살게 하여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었다. *유배형은 원래 고급 관리용으로 보인다.이는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중죄인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진 제도,바둑이나 장기에서 사용되는 묘수라는표현이 맞는 제도 *관리가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대 붕당이라 하여 반대파를 옥에 가두었다가는 무리를 이루어 반역을 도모할 위험이 있다.그렇더고 대규모의 옥을 만드는 일은 당시 형편상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다 관리사의 난점도 있었다.이런 어려움을 단 한번에 날려 버리는 제도가 유배형이었다.
*유배형에 있어서 양이제도 당나라 중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먼 곳에 부처된 유배인의 죄를 감등하여 점차 원래의 거주 지역 가까운 곳으로 유배지를 옮겨주는 것 *유배형보다 가벼운 벌은 대개 문외출송이나 향리로 추방되는 것,문외출송이란? 관작을 빼앗고 한양 밖으로 쫓아내는 형벌이다. *<고려사 형법지>에 따르면 유배형은 유배지의 거리에 따라 유2천리는장17대,유2천5백리는 장18대,유3천리는 장20대의 3등급으로 나누어진다. 거리에 따른 유형제도는 우리나라의 지형에 맞지 않았다.땅이 넓은 중국에는 적요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견우 실제로 유배형 3천리라는 집행이 불가능,그래서 죄인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하여 유배형의 등급에 다라 일정한 지방을 지정하여 귀양 보내는 등 실정에 맞게 변형. *함거:고려 때부터 죄인을 호송하던 마차나 수레 tv드라마에서는 중죄인ㅇ이나 유배인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달구지 위레 앉아 실려 가거나 감옥 같은 수레에 실려 가는 장면을 종종본다.이런장면은 극의 극대화이고 실제의 경우 그런경우가 거의 없다. 당시의 길이 요즘 처럼 넓지도 않거니와 그 수레를 계속 타고 갈 수 있는 길도 없었다. *벼슬을 지낸 유배인은 군읍을 지날갈때 타고 갈 말과 음식을 제한적으로 주는 것이 상례 *유배길을 떠나며 죄인이므로 갓을 쓰지 못하고 망건을 쓰고 도포나 베옷(또는 소복)을 입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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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YES24 리뷰어클럽 정기도서 리뷰어로 당첨되어 받은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제일 처음 <유배, 권력의 뒤안길>의 리뷰어를 신청하자 마음 먹었던 이유는 조선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의 왕족과 정치인들의 유배 일화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들어가는 글에도 나와 있듯이, 나 또한 유배하면 조선시대의 형벌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에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에 있었던 선조들의 유배 생활이 상상되지 않았다. 물론 문학 시간에 배웠던 <정과정곡>을 통해서 고려시대에도 유배형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유배 일화는 접해본 적이 거의 없었고, 반대로 조선시대의 유배 관련 에피소드는 많이 접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런 선입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 <유배, 권력의 뒤안길>은 꽤 친절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구성되어 있다. 1부에 유배란 어떠한 형벌인가에 대해 설명해준 후에, 이후에는 실제로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유배 생활 에피소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마 유배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찬찬히 읽다보면 유배 생활이라는 게 녹록치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반면에 약간 아쉬웠던 점은 어렵거나 생소한 관련 용어(예를 들어 배소, 적소, 해배 등등)를 먼저 사용하고, 한참 이후에 해석을 달아놓았다는 것이다. 미리 괄호나 주석으로 뜻을 알려줬더라면 더 센스있는 편집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 이전의 유배 생활 에피소드가 생각보다 적다는 것. 물론 조선시대에 쓰였던 문헌들이 그 전에 쓰였던 문헌보다 많이 전해진다는 것은 알지만, 3부와 4부에 걸친 조선시대의 유배 생활에 비해 2부로 묶어져 있는 삼국시대~고려시대의 유배 생활은 호기심에 비해 전달되는 양이 부족하달까...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배는 주로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겪는 경우가 많았다. 정국의 주도권을 놓고 상대붕당과 정쟁을 벌였고, 그 싸움에서 이긴 일파는 상대 일파를 오지로 유배 보내 그 세력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물론 유배지에서 돌아와 정국에 다시 복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끝내 왕의 용서를 받지 못해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하거나 삭초제근을 위해 유배지에서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유배를 정치범(또는 권력 싸움에서 패배한 쪽)을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보내 죄를 반성하도록(구심점을 없애 세력이 약화되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저자가 '묘수'라고 표현할 정도로 유배는 상당히 복잡하고 복합적인 상황으로 인해 생긴 형벌이었다. 유배란 고급 관리용으로 만들어진 형벌. 결국 자신들이 부패하거나 정권을 뺏겼을 경우를 대비해서 만들어둔 형벌인 셈이다. 또한 나는 유배형을 받게 된 죄인이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는데, 그로 인해 유배지로 낙점된 곳의 백성들이 어떠한 고통을 받았는지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또 다른 관점에서 유배형을 바라볼 수 있었다.
유배형은 천사, 중도부처, 안치, 충군, 위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다 보니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들었던 '김정희가 위리안치 당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 때 당시엔 위리안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저 '아, 김정희가 위리안치를 당했구나. 그런데 이건 시험에 나올까 안 나올까?'하는 생각들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위리안치가 생각보다 엄청난 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홀로 탱자나무로 된 울타리 안에서 몇 년씩이나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 지냈다고 하니 미치지 않은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행을 시험 범위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않느냐의 단순한 문제로 생각했던 게 민망스러울 뿐이다.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즐겨보시던 책이 역사 관련 책이었기에 나 또한 그 영향을 많이 받아서 위인전을 읽거나 역사 관련 만화를 보는 게 좋았었다. 어느덧 나이가 먹다 보니 당시 아버지의 취향과 내 취향이 닮아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좋은 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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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수명을 계산할 때 이사를 몇번 다녔느냐도 항목에 포함되어 있듯이
태형, 장형, 도형, 유형(유배형), 사형의 다섯가지 형벌 제도는 사극에서나
유배를 당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개는 정치적 역학관계 때문이었는데
죽을 고비는 유배를 떠날 때부터 시작된다. 심한 고문을 받은데다
주로 말을 타고 이동하는데 벼슬을 지낸 유배인은 말과 음식을 제공받기도 했다.
유배인의 생활은 신분과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유배인 관리 책임을 맡은 관리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정치적 유배인에게는 식량 같은 생활필수품을 관에서 공급해 줬지만 푸대접 당하기 일쑤였다.
외로움 때문에 견디기 어려워 방에 놓인 물건에 이름 붙이고 대화하거나(윌슨~) 기약없이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기에 적응 못하기도 했지만 창작하기도 했다.
독서를 금지당하고 핍박 받을 때도 있지만 중죄인이 아니면 중죄인의 경우는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당하고 울타리로 둘러싸 감시하는 산무덤이라고 불렸다. 방에 불을 세게 지펴 태워 죽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중앙권력의 변화에 따라 얼마 안돼 풀리기도 하지만
유배 내역이 너무 많다보니 너무 많은 이름이 쏟아지는 가운데 워낙 많은 사람이 나와서 인물 관계도라도 있었으면 덜 산만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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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하면 떠 오르는 인물은 단연 정약용과 정약전 그리고 김정호이다. 얼마전에 읽은 김훈의 <흑산>에서는 정약전이 흑산도로 떠나게 된 배경과 그와 함께 했던 인물들이 왜 죽어가야 했으며 민초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려내어 실감하며 읽어 내렸었다. 다른 소설들이나 이야기에서는 정약전 그가 흑산도에 가서 산 삶이나 생활을 다루었다면 <흑산>이라는 소설은 그 전 배경이나 인물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왜 유배를 떠나야 했을까? 두물머리를 떠나 멀리 전라도 강진까지 내려가 긴 세월동안 권력의 뒤안길을 걸어야 했던 정약용 그리고 바다로 둘러싸인 섬 흑산도에서 육지로 향하는 그리움으로인해 차츰차츰 인생의 빛을 잃었던 정약전, 그들이 유배를 떠나야 했던 그 밑바탕에는 '천주교' 라는 서학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배인' 하면 정권다툼에서 피해자가 되어 혹은 나라가 망하여서이다. 이 책에서는 크게 네부분으로 나누어 1부 유배를 떠나는 사람들 ,2부 망국의 왕과 신하들 3부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4부 유배인의 뒤안길이라 하여 구분지어 놓았다.
유배는 사람만 가는것이 아니었나보다. 아니 대부분 남자들만, 양반들만 유배를 간줄 알았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다. 양인뿐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여자들도 유배를 갔다. 그리고 코끼리까지 유배를 간 사실이 있다. 코끼리가 왜 유배를 갔을까? 갔으면 어디로 유배를 갔단 말인가 역사를 밑바탕으로 하여 역사 속에 감추어져 있던 사실들을 모두 꺼내어 하나로 엮어 놓은 것처럼 '유배' 에 관한 역사를 모두 읽을 수 있다. 유배인들이 유배지에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아마도 '외로움' 일 것이다. 탱자나무나 가시울타리로 사방을 빙 둘러 놓아 세상과는 담을 쌓아 놓았기에 그 속에서 홀로 겪고 이겨내야 했던 외로움이란 말로 다 할 수 없었으리라. 그리고 대부분 유배지는 사람들이 살기 힘든 섬이나 그외 외지이기 때문에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시대에는 더했으리라 본다.
그렇다면 유배를 갈 때 필요한 여비는 어찌했을까? 사극에서는 대부분 죄인들을 호송하는 나무로 엮은 가마처럼 된 것에 태워서 사람들이 들고 가는데 그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말을 이용하거나 먹거리를 개인이 부담해야 했다는,그런가하면 유배인이라는 이유로 모든이에게 배척을 당하거나 배고픔을 이겨내는 일 또한 힘들었을 듯 하다. 유배인들이 얼마나 외로우면 김정희는 '세한도'를 그려 냈을까.유배인이라 하면 중죄를 저질러 그 죄값을 받는 것으로 알지만 역사 속 유배인들은 중죄라기 보다는 권력다툼에서 피해자가 된 유배인들이 더 많은 듯 하다. 권력다툼에서 자신의 세력이 아닌 반대편의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어 피해를 입는가하면 왕의 죽음으로 인해 정권교체에서 발생하는 피해자들도 있고 중죄라기 보다는 길이 달라 혹은 직언을 했다하여 유배인이 되는 사람들의 다양한 유배생활에 대하여 엿볼 수 있다.
유배지에서 정약용이나 정약전처럼 유배생활 기간동안 학문적 업적을 이룬 이가 있는가하면 유배생활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은 듯 하다. 많은 이들이 유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쉬운 이해로 김정희가 제주로 유배를 떠나지 않았다면 '세한도'가 탄생했을까,하는 아이러니도 가져오게 하는 유배의 양면성을 보게도 하지만 유배의 뒤안길은 해배되어 복직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긴 시간동안 타지에서 인생을 허비하거나 가족이 모두 유배의 피해자가 되거나 연좌제의 칼을 뒤집어 쓴 것은 아닌가.역사란 과거를 들여다 봄으로 하여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거울로 삼을 수 있는 것 같다. 직언이나 바른말을 하여 생명이 짧거나 유배인이 되었던 사람들,자신을 속이지 못하고 드러냄으로 하여 생명을 단축시켰던 인물들이 유배 후에는 유배전과는 판이한 삶을 살았듯이 진실보다 거짓이 생명이 긴 현실이 안타깝다. 한시대가 저물면 그와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이 낙엽이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인재나 능력이 대접받지 못함을 유배 권력의 뒤안길에서 본 듯 하여 씁쓸하다. 머물렀던 자리도 떠나는 모습도 아름다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정치인 듯 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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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사극에서 접하는게 대부분이었던 유배는 단순히 죄를 지은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은 내지는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에 보내는 추방의 한 형태라고만 어렴풋이 짐작하는것이 전부였다. 그 죄라는 것도 왕이라고 하는 절대권력에 대항하여 역모를 꾀하는 등의 왕의 심기를 거스르는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정규교육과정 속에서 점점 역사라는 것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는 유배라는 것은 어릴 적 품어왔던 그 어렴풋한 개념에 부합하는 죄인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임을 알았지만 이에 더해 정치적으로 열세에 몰린 이들에게 가해지는 하나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추방임을 알게되었다 서로 붕당을 나누어 정치적인 목소리가 어느 한 쪽이 커질 때마다 불가피하게 다른 한 쪽은 대거 유배를 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질 때 쯤에는 유배=정치사범에 대한 형벌 이라는 공식이 성립되고야 말았다.
유배, 권력의 뒤안길을 읽다보면 나의 공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에 더해 꼭 양반과 같은 지배계층이 아닌 평민에게도 부과되었던 형벌이 유배였음을 알게 된다. 유배는 국가에서 내려진 형벌이지만 형을 집행하러 가는 관리들을 위한 비용도 암암리에 부담해야 했으며 유배지가 폐허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유배가 유배가 아닌정도로 유배지의 사람들이 극진히 대접한 이도 있는 것을 보면 인간사 천태만상을 유배라고 하는 권력의 뒤안길에서도 엿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권력구조의 균형 내지는 권력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속에서 많은 이들이 유배를 갈 수 밖에 없는 시대의 구조 또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유배를 갔다가 시대가 바뀌면 해배되어 다시 권력을 잡는 경우를 대비하여 유배지에서의 대접이 달라졌다는 대목에서는 쓴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던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유배가 꼭 나쁜것만은 아니었으니 이는 유배지에서 생활하면서 학문과 문화를 꽃피운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솔들과 집을 버리고 유배지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후대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소중한 문화유산을 남겨준 이들은 유배지에서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왕성한 경우도 있었기에 유배라고 하는 형벌의 장단점을 떠올려보기에 적절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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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권력의 뒤안길. 왜 이 책 제목을 보고, 아주 오래전에 봤었던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KBS에서 방영했던 tv문학관의 드라마가 생각이 났을까. 오래 전에 봤던 터라 내용조차 가물가물한데, 중요한 등장인물이었던 "모독"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유배, 권력의 뒤안길]이란 제목을 보고서 예전의 그 드라마를 떠올린 까닭은, 그 드라마에서도 김만중의 유배생활을 다루었었고, 그래서인지 내겐 "유배"라는 형벌의 느낌이 "서러움"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또 하나, 그 드라마(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김탁환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란다.)의 제목이 무엇보다도 인상깊었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주로 사극이나 역사소설을 통해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유배"라는 형벌의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 "중죄인이나 유배인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소달구지 위에 앉아 실려가거나 감옥 같은 수레에 실려가는 장면"(p34)처럼 아주 혹독한 형벌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더러는 그와는 정반대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오랜 유배생활 동안 오히려 학문의 깊이가 더해지고, 유배된 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기도 하며, 더러는 바다를 쳐다보며 시 한수를 읊조릴 수 있는 여유롭고도 꽤나 낭만적인 형벌의 모습으로 말이다.
실제로 유배는 어떤 형벌이었는지, 우리 역사상 유배를 당했던 사람들의 면면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유배지에서의 생활은 어떠했는지 등 유배에 관한 "A to Z"로 일컬어질만한 책이 바로 이 책 [유배, 권력의 뒤안길]인 듯 하다. 글쓴이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공군에서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책앞날개)는 "전웅". 이력이 특이하다 싶다. "이 책은 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의 "2011년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사업' 당선작"(책뒷표지)란다. 이 책은 앞서도 말했지만 유배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주로 조선의 인물을 많이 다루고 있지만 고려 후기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시기의 여러 왕들, 멀리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 고구려의 마지막 왕의 보장왕의 유배생활에 대해서까지 다루고 있다.
앞서 내가 유배의 이미지가 극과극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유배를 당한 사람들의 유배 생활도 아주 다양하다. 유배를 당한 몇몇 인물의 경우, 정치적인 상황의 변동에 따라 다시 정계에 복귀할 가능성이 많아 비교적 "대우"를 받으며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던 반면, 대부분의 유배인들의 생활은 고달프고 "서러웠"으리라... 폐위당했던 고려 의종은 유배되어 있다가 이의민에 의해 척추가 꺾여 죽었고 그 시체는 연못에 버려졌단다. 홀로 유배를 떠나야 했던 충선왕은 중국의 악양현에서 3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고....
유배라는 형벌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 공부하기에 좋은 책이다. [유배, 권력의 뒤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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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의 영향인지 '유배'라고 하면 양반들이 다 풀어헤친 머리로 수레에 실려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책에 의하면 유배를 가는 사람의 대부분이 양반과 왕족이긴 했지만 그들만 유배를 가는 것이 아니라 신분의 귀천없이 유배형을 받았다고한다. 또한, 위의 모습으로 유배를 가는 것은 텔레비젼이 극적 효과를 위한 것일 뿐 대부분은 말을 타고 시종과 함께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이 책은 우리가 텔레비젼 사극을 통해 막연히 알고 있거나 잘 못 알고 있는 '유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전반적인 책의 구성을 보면 총 4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1부는 '유배를 떠나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유배'의 개념, '유배'의 기원 및 역사, '유배'의 종류, 유배지의 선정 등 '유배'와 관련된 기본적인 사항을 우리들에게 설명하고 있어 기존에 우리들이 유배에 대해 잘 못 알고 있었거나 잘 몰랐던 기본적인 부분들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하며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2부와 3부는 유배를 떠난 사람들을 '망국의 왕과 신하들', '권력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라는 제목으로 분류하여 대부분 유배를 떠난 왕족과 양반들 중에서 실제 인물의 삶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유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망국의 왕과 신하들'에서는 백제와 고구려, 고려의 군주들과 신하들의 유배지의 삶을 보여주며 망국의 한과 더불어 망국으로 인해 그들이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유배지에서의 삶과 죽음을 통해 망국의 설움, 왕권과 신권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에서는 권좌에서 밀려난 조선의 군주들(단종, 연산군, 광해군, 인목대비)과 왕이라는 절대 권력자에 대항한 사람들 및 조선하면 떠오르는 '당쟁'의 결과물인 유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4부는 '유배인의 뒤안길'이라는 제목으로 유배된 왕족과 양반들중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사람들, 또는 유배지에서 '유배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문학을 꽃피운 사람들, 유배인의 가족 이야기들을 통해 '유배'가 유배인 당사자와 가족 및 우리 문학에 남긴 발자취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으며 유배인들의 유배배경 및 유배지에서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정치적 묘수라고 설명하는 '유배'의 의미보다는 '도대체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고 권력이란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과거의 '유배'가 지금 현재에서는 그 제도만 사라지고 다른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