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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시대의 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는 왕을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왕은 멀리 고조선, 삼국시대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합되기 전까지 이 땅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이는 서양이나 또 중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국왕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유지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한 왕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지만, 사극이나 소설에서 보아온 것이 전부인양 알고 있다. 그러한 왕의 위상은 역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분명하게 정의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정치체제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왕정이었다. 따라서 왕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시대에 대한 평가는 왕의 통치기간에 대한 평가와 직결될 수밖에 없었으며,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이러한 왕을 천명을 받은 초월적 존재, 우주의 자연질서를 보장해주는 하늘의 존재로 정의 하였다. 따라서 왕의 권한은 입법,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유일무이한 자리였다. 이는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에서도 국왕의 권한에 대해 규정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국왕이 법으로 규정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임을 나타내는 또 다른 증거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왕들의 모든 것, 그리고 그들의 하루 생활을 비롯하여 은밀한 사생활에 이르기 까지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그리고 [열성어제]와 같은 각종 편찬자료를 통하여 구현해 내고 있다. 그러한 왕을 부르는 호칭만해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태조니 태종이니 하는 이름들은 묘호이다. 왕이 죽고 삼년상을 마친 후 종묘에 신주를 모실 때 사용되는 이름이었다. 묘호에는 조와 종이 있는데, [예기]에 보면 공이 있는 자는 조가 되고, 덕이 있는 자는 종이 된다고 했다. 즉, 창업주 혹은 그에 버금가면 조를 붙이고, 수성한 군주에게는 종을 붙였지만, 조선후기로 가면서 그러한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왕위를 계승하는 방식도 양위와 사위, 그리고 반정이 있었다. 양위는 왕위를 자발적으로 내놓는 것을 말하지만, 조선시대 대부분의 양위는 실제로는 찬탈에 가까운 것 이었다고 한다. 사위는 왕이 죽은 후, 후계자가 뒤를 잇는 방식이고, 반정은 말 그대로 왕을 내쫓고 새로운 왕을 옹위하는 방식 이었다. 등극하는 왕의 즉위식은 화려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조선시대 왕의 즉위식은 축제 분위기 보다는, 사위의 경우는 국상의 한 과정으로써, 혹은 반정과 양위의 경우는 급박함과 긴장감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러기에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즉위한 왕은 법에도 구속되지 않으나, 선왕의 법과 의례에는 구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왕은 막강한 권한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제사 등 국가의례가 왕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면, 군사권은 왕의 실제적인 힘의 원천이 되었다. 국왕의 하루는 새벽 5시에 기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웃어른께 문안을 드리고, 아랫사람에게서 문안을 받은 후, 자리를 옮겨 경연에 참석한다. 경연이 끝나면 아침식사인 조반을 먹고, 공식행사인 조회를 열어 국정을 의논하였다. 이후 간단한 음식으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경연에 참석하고, 그리고 경연이 끝나면 승정원 승지들의 업무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저녁 5시경이 되면 석식을 먹고, 다시 경연에 참석하거나 혹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보기도 했다. 국왕의 하루를 살펴보면 왕의 자리가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일상의 업무처리가 어떠했는지에 따라 성군과 폭군으로 나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궁궐은 대부분 외전과 내전으로 나뉘어 있다. 외전이 왕의 업무를 위한 공간이라면, 내전은 사생활을 위한 공간 이었다. 그렇지만 내전 건물들의 이름에서도 나타나듯 왕의 사생활에도 유교적 훈계가 들어가 있다. 경복궁의 강녕전이나 교태전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가 왕의 사생활이 건전해야 강녕을 비롯한 오복을 받는다는 훈계이자 경계로써 왕의 사생활을 제한하기도 했다. 연산군이 색에 빠져서, 그리고 광해군이 미신에 빠져서 반정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공부벌레 세종, 그리고 심성수양의 모범을 보여준 정조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가 막연히 동경(?)하는 국왕들의 사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조선의 국왕들의 학문 실력은 어떠했을까?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 차례에 걸쳐서 마련된 경연은 제왕학을 가르치고, 가다듬는 장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꼭 제왕학뿐만이 아니라, 역사서와 철학을 넘나들며 토론하는 경연에만 참석해도, 국왕들의 학문 실력은 조선시대 웬만한 지식인들 보다는 위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건국 직후와 같이 창업에 힘을 쏟은 왕과 단명했던 왕을 제외한 대부분의 왕들은 뛰어난 시문을 남겼음을 알려준다. 특히 숙종 이후에는 왕의 시문이 문집 형식으로 발간되어 그들의 학문 실력을 직접 살펴볼 수 있으며, 조선 초기는 [열성어제]에 실려있는 시문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국왕은 언제나 있어야 하는 존재 이었다. 신권이 아무리 강한 시기라고 해도 국왕은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사회이었다. 그러기에 국왕의 건강은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 일 수밖에 없었다. 설사 국왕이 죽는다 해도 후계자가 있다면 죽음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급작스런 부재는 권력의 향방과도 관련되는 문제이었기에, 국왕은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없었다. 그러기에 지 근거리에는 언제나 어의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상시 보약을 복용했다. 그렇지만 사냥이나 격구등을 제외하면 달리 운동이라고 할 것이 없었고, 그것마저 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요즘의 성인병에 시달렸을 것이 명관약화이다. 운동부족, 신하들의 견제에 따른 스트레스, 거기에 과도한 성생활은 그들의 건강을 항상 취약하게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국왕은 왕과 왕비를 중심으로 하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지만, 국권을 상징하는 국가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국왕이 거주하는 궁궐은 역사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국왕의 일거수일투족은 조선 사회를 움직이는 규범 이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조선시대 국왕의 실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국왕의 모든 것은 반드시 알아야 하고, 이 책은 그런 우리의 이해를 돕는데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그나저나 조선시대 국왕으로 산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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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를 바라보는 한 통로, 왕 인간에게 권력 욕구는 무한한 것일까?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목숨이지만 권력은 때론 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접한다. 그만큼 권력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권력의 최고 정점은 민주제에서는 대통령이며 왕조 국가에서 왕이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 정점을 향해 뛰어들었지만 성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권력은 다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였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여기서 사대부의 나라였다는 점은 왕조 국가에서 왕고 더불어 권력의 한 축을 사대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 권력의 한 축이었던 사대부들에 관한 연구는 많은 책들을 통해 접했지만 다른 한 축이었던 왕에 대한 접근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었기에 그만큼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았을 것이고 ‘왕’이라고 하는 단어가 주는 카리스마에 의해 지래짐작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나마 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대부분 나라의 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공적인 측면에 치우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왕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함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진들이 모여 연구한 결과를 엮은 책이다. 한마디로 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살피고 간추려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의 왕으로부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망라한 연구 결과의 총화라고도 볼 수 있다. 왕은 곧 국가라고 보았던 측면에서 왕의 존재와 존재방식 그리고 그들이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구중궁궐 속 왕의 진면목을 살피기에 아주 적절한 텍스트로 여겨진다. ‘조선의 왕실과 궁중문화는 유교 통치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핵심이며,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중심축이었다.’고 평가는 왕과 궁중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절름발이 식으로 조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말로 들린다. 이 점이 왕을 주목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왕에 대해 살피는 것에는 ‘왕의 권위와 역할’, ‘국왕의 하루 엿보기’, ‘왕의 사생활’, ‘한시漢詩로 보는 국왕의 문학’, ‘국왕의 건강관리’ 등으로 구분하여 접근하고 있다. 이는 조선의 공식적인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를 바탕으로 왕이 남긴 여타의 기록물을 통해 조선 왕의 일상생활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사회에서 왕은 온전히 권력을 향유하는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순간부터 왕은 수많은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존재다. 유교의 가르침에 의해 올바른 군주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했으며 관료의 임명에서도 절차에 따라야 하고 천재지변에도 책임을 져야 함과 동시에 백성을 위해서 끊임없이 민정을 살펴야 했다. 또한, 대부분의 왕들은 은밀한 사생활까지 정해진 법규에 따라 간섭을 받아야 했다. 국가의 상징, 최고의 권력자로써의 왕에 대한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유교국가에서 왕의 존재근거와 방식 그리고 삶에 관한 전반적인 부분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묘호가 정해지는 과정, 관료 임명에 거쳐야 하는 수순, 경연을 통한 공부, 먹고 입는 문제에서 잠자리 등의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설명에서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해 주는 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단순한 부분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사람들은 가끔 왕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하지만 왕은 그리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왕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삶인지를 알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권력에는 책임과 의무가 반드시 수반됨을 왕도 비켜가지 못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 권력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