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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사랑의 이야기 무엇을 변명하고 싶었을까? 헤어지고 싶지 않은 무의식을 감추려고 무던히도 애쓴 한 여인의 자기합리화처럼 느껴졌다. 읽는 내내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1권에서는 그녀가 너무나 안됐고 도무지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용의주도함과 집요함, 철저한 모습을 보면서 보는 내가 너무 힘들었고 왜 꼭 그런 방법으로 스스로를 괴롭혀야만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권에서는 남편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아내에게 드러내고 바람을 피우면서 두 여자 모두와 헤어지지 않겠다는 그런 남자를 결코 용서할 마음은 없다. 그렇지만 그의 변명을 통해 느낀 건 그도 힘들었으리라는 것. 결혼이란, 혹은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처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건 서로를 지독히도 힘들게 혹은 외롭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 그래서 외로움에 사무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잘못된 사랑의 결과는 둘만이 아니라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지독한 상처를 준다. 1권 내내 이해가 안되었던 여자의 행동 역시 2권에서야 그녀도 그를 사랑했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고 무던히도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마음이 드러났다고나 할까?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다는 건 그만큼 두렵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남편을 사랑했다. 답답하게 소설은 끝이 나 버린다. 물론 독자들의 상상에 따라 다른 결말을 열어 볼 수 있겠지만 어쩐지 그 다음의 행보가 예상이 된다. 우리는 어쩜 모든 사랑에 대해 초보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서툴고 방황하고 상처를 준다. 그러면서도 사랑을 갈구하고...
"이제는 알겠다. 한 우산을 쓰듯 한 지붕을 받치고 살던 남자와의 갈라섬은 일대일의 결별이 아니라는 것. 내 삶의 이분의 일, 삼분의 이, 사분의 삼, 혹은 그 이상 돌밭을 일구듯 가꿔온 삶의 대부분을 투기하는 행위라는 것. 한 세계와의 등 돌림이라는 것." 2권 p.67 중 아내 윤태희의 말
"적반하장에 몰염치가 맞기는 맞아. 그런데 그러다가도 불쑥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허울로 인간의 가장 연하고 소중한 감정, 이를테면 사랑의 권리를 박탈한다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어째. 왜 사라의 감정은 사랑의 대상에 따라 아름다운 환희가 되었다가 무도한 죄악도 되었다가 그래야 하는가 싶데. 그놈의 제도권 잣대야말로 변질된 소유욕을 정당화하려는 음모에 가깝지 않나? 세상에, 합법적인 사랑이라는 말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 또 존재할까 싶더군." 1권 p.270 중 남편 차현강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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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 어디까지 용인해야 할까? 보통 남편이 바람을 피며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참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어있으니 아이들 봐서라도 참으며 살으라고, 하지만 반대로 여자가 바람을 피면 그것은 순식간에 절대 용서 못할 죄가 되고 만다. 드라마를 볼때도 그렇고 책이나 주변 상황을 통해 그런 장면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옛날이라면 여자 혼자 생계를 유지하지 못해서 생겨난 불합리라 하지만 지금의 세대에게 그것이 과연 참고 살만한 덕목일까? 자식을 위해 남편의 폭력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라고 말한들 그것을 참아낼 여자도 없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그것이 자신의 가족들에게 생겨난 일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기며 훈수를 두는 것 아닐까 싶다.
한 남자(현강)를 사이에 둔 두 여자의 서로 다른 입장은 그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가운데 어떤 방향으로 진행하게 될런지. 한 사람을 사이에 두고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할때는 동지일수 있으나 그와 헤어진 다음에는 적이 될수밖에 없는 것이 시댁이란 이름의 가족들이다. 한때는 친구였다 시누가 되었고 지금은 남이 되버린 여자 현수, 난 극단적으로 남편의 아이인 마리를 시댁에 떼어놓고 그녀(태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바랬다. 그런데 시댁에서는 그 아이를 핑계로 그녀나 은묘 둘 중 아무나 병원에 있는 그사람의 수발을 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하다니. 무릇 사람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지만 그들의 그런 이기적인 행위는 용서란 말이 어불성설로 여겨졌다.
아내와 사별하거나 이혼으로 다시 재혼해서 아내를 둘수있으나 동시에 두 여자를 아내로 둔다? 우리나라는 일부일처제니 둘 중 하나는 처로 인정받지 못하니 그늘 속에 숨어 살아야 하는 운명으로 전락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 또한 누군가의 억압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운명이기에 누구를 탓할수도 없다. 하지만 정식으로 결혼하고 아내가 된 처의 입장에서라면? 더군다나 첩과 남편 사이에서 자식이라도 생겨난다면 아내가 난 자식들과는 배다른 이복형제가 되버린다. 바로 주인공 윤태희와 형제들이 아버지의 바람기로 인해 겪어야 했던 비극이 그것이었다. 그런데 자신 또한 남편으로 인해 엄마와 같은 비극을 겪으며 살아야 한다면 그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남편과의 불화를 겪을때면 이혼을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식으로 인해 잠시의 바람으로 사라져 버린다. 현강과 이혼한 후 시댁의 요청으로 병원을 찾은 것은 이해되지만 아이를 핑계삼아 계속 병원을 드나드는 그녀를 이해하기란 힘들었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이혼해주지 말고 붙들고 있었으면 되잖아. 의식불명으로 중환자실에 있는 현강을 사이에 두고 두 여자가 함께 병간호 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해달라고 말하기는 그들 자신도 힘들겠지. 그러니 시누이였던 현수의 말도 이해는 된다. 다만 그것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얇밉기는 했다. "당신답지 않게…… 당신은 딴 여자들이랑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말야." (1편 p.83) 현강은 자신의 새로운 사랑을 아내 태희가 쿨하게 인정해 줄거라 여겼나 보다. 그러니까 그녀의 반응에 이런 말을 했던게지.
재미난 운명은 현강이 새로운 사랑 곁으로 보내놓고는 다시 사고를 통해 기억상실이란 병명을 만들어 가족을 버리고라도 선택해야한 했던 지극한 사랑이란 믿었던 그녀(은묘)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 "좋아요.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죠. 만약에 내가 누군가를 향해 끝없는 열정을 보내고 있었다면, 그 모습 지켜보며 당신이 모멸감을 삼켜야 했다면, 당신은 그 상황을 참을 수 있었을까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아무 일도 아닌 듯이, 그렇게요?" (p.265) 헤어지기 직전 태희는 현강에게 당신도 그 상황이 되면 당신이 나에게 바랬던 것처럼 참아낼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아니 절대 용서하지 못했겠지. 용서 이전에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았을거야. 누군가의 아내이며 또 누군가의 엄마인 여자가 그런 행위를 하려 시도했다는 자체를 용납못하는 세상이니까. 그렇지~ 세상은 그런 곳이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