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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글을 쓴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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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들 이야기한다.  아마도 중문(重文) 형태로 구성된 이 문장의 앞뒤에  서로 댓구로 사용된 '글'이라는 단어는 겉으로 보이기엔 같은 말이지만, 그 내포한 의미는 서로 다르지 싶다. 전자의 '글'이 형식이나 행위를 뜻하는 구체적 의미의 단어라면, 후자의 '글'은 내용이나 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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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들 이야기한다.  아마도 중문(重文) 형태로 구성된 이 문장의 앞뒤에  서로 댓구로 사용된 '글'이라는 단어는 겉으로 보이기엔 같은 말이지만, 그 내포한 의미는 서로 다르지 싶다. 전자의 '글'이 형식이나 행위를 뜻하는 구체적 의미의 단어라면, 후자의 '글'은 내용이나 메세지를 지칭하는 추상적 단어일 것이다. 그러면 누구나 현상적으론 글을 쓰는 행위를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봐줄 만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되므로 문장 자체가 가진 논리적 모순은 사라진다. 글을 쓰는 것은 쉬워도 잘 쓰는 것은 어렵다는 의미가 되니까 직관적으로도 이해가 어렵지 않다. 서두에 이런 말장난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다루는 주 소재가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쓴다'는 것이고, 작품 속 수시로 튀어나오는 '글'이라는 단어에 전자와 후자의 의미가 계속 혼용되어 사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글을 쓴다는 것에 목숨을 건 두 모녀의 이야기이다.  그 모녀의 삶 속에서 글을 쓰고싶다는 욕망과 써야한다는 맹목적성을 걷어내면, 이 소설은 무료한 철부지의 일기장 만큼이나 내용없이 흐믈흐믈해진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왜 그렇게 글쓰기에 열광하는지에 대한 기본적 '동의'를 전제하지 못하면, 이 작품은 읽는이를 매우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다. 산발적으로 긴 공백없이 던져지는 재치있는 말투와 기발한 에피소드들 사이에서도 누군가 읽으며 어쩐지 지루함을 느낀다면, 글쓰기라는 한갈래 길로 이어진 맹목적이고 지루한 행보가 그런 사소하게 묘사된 일상의 깊숙이에 또아리를 틀고 있음이 은연 중에 불편하기 때문이리라.

 

현대는 글쓰기의 시대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하루 중 말보다 글을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최근 수십년간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였다. 어린 세대들일 수록 말보다 글을 선호하는 경향을 살피면, 앞으로도 한동안 글을 말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이들의 비율을 늘어나갈 것 같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 보면, 통화보다는 문자메세지나 메신저 용도로 핸드폰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웹 서비스의 발달로 블로그를 사용하여 이런 저런 자신의 일상이나 감상들을 기록하고 보관하려는 경향도 늘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의 확산은 이를 더욱 부추겨 사람들은 사무실이나 집뿐 아니라, 컴퓨터가 없는 커피숍이나 대중교통수단 안에서도 자신의 생각들을 글로 남겨 기록한다.

 

이렇게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이 한 번쯤 화두가 되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이상하다. 최근 자신의 글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할 수 있는 수단들이 발달하면서 글을 조리있고, 매력있게 쓰는 능력또한 예전보다 높은 부러움의 위상에 자리잡혔다. 이에 편승해 「글을 잘 쓰는 법..」 비슷한 제목의 책들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줘야 얻어먹을게 생긴다는 원칙은 끊임없이 자신의 외피를 바꾸어가며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진리로서의 위상을 굳게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어쨋든 우리는 이제 너도나도 글을 쓴다. 그러니 세상은 글들로 넘친다. 타인을 감동시키고 사회를 변화시켜온 글들은 예로부터 자신의 정통성을 까탈스럽게 지켜왔지만, 개념없이 엉성해 시간만 뺏는 이롭지 앟은 글들과, 비슷하지만 다른.. 그래서 오히려 타인을 오인시키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유해한 사이비 글들은 전에 없이 늘어나 네트워크를 타고 누구에게든 다가간다. 가치나 시비에 대한 판단은 판단주체의 비타협적인 자의성에 의해 또 다른 시비를 낳는 법. (그래서일까.. '검열'이라는 말은 이제 누가 들어도 치가 떨리는 혐오스런 말로 전락했다) 스스로 눈과 귀에 정수필터를 달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도 '니가 뭔데..'라는 논조의 뒤탈들을 감당해가면서까지 이해(利害)가 다른 글들을 일일이 가려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등장은 그런 시대적 배경에 어느정도 편승한 시도로 보인다. 나쁜 의미는 아니다. 제대로 글을 쓰고 있거나,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름 심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글의 '전국시대'에 대해 무언가 하고 싶은 말들이 당연히 있겠지 싶다. 그리고 그 말은 예찬보다는 언짢은 쪽에 가까울 것 같다. 한 번쯤 너무 무심하게 쓰여지고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책임하게 던져진 허튼- 글들에 대해 가벼운 핀잔 정도는 주고 싶지 않았을까.. '글을 쓴다는거.. 그거 장난이 아니거든..' 이라는 뉘앙스로 말이다.

 

작품 중 유명작가 J는 글을 잘쓰고 싶어하는 주인공에게 설명하려하지 말고 묘사하라고 말한다. 문학은 지식의 주고받음을 전제로 읽히는 것이 아니기에 독자들은 초등학생이 교과서를 읽기 싫어하는 것 만큼이나 무언가를 집요하게 설명하려는 글을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문학의 요점은 몰입에서 오는 감동인데, 설명은 몰입을 위한 다가감을 거부하며 자꾸 저 편으로 떠밀어 버리기 때문이다. 반대편에서 건너보아서는 좀처럼 몰입이 일어나지 않는다. 옆에 붙어 숨소리를 느껴고, 주인공이 가르키는 손 끝 건너편을 함께 응시해야 비로서 소설의 주인공과 독자는 공명(Resonance)을 시작한다. 그리고 묘사를 통해서만이 작가-주인공-독자의 시선은 같은 높이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

 

요번 독서는 읽으며 내 어설픈 글들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나도 글을 배워나가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글을 잘 쓰고싶다는 욕심만 가득할 뿐, 어떤 글이 잘 쓴 글인지, 어떻게 해야 그리되는지.. 막연한 답답함만 느끼고 있었다. 글쓰는 기술을 향상시켜준다는 실용서를 구해 읽어볼까도 생각중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이 책에서 보여준 주인공의 글쓰기에 대한 몸부림이 그리 별스럽거나 유난스럽게 느껴지지 않았고 불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좋은 훈련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몇가지 힌트도 얻어, 나름 부록으로 보람도 느낀 셈이다.

 

 

           
 

 

일상적 풍경의 사진을 찍어 그 사진에 자신의 색채를 담아

보여지는 사물의 모양이나 배치 뿐 아니라 분위기까지 묘사해보는 작업은

 글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좋은 훈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명한 화가의 그림들이 확연히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듯,

잘 쓴 글도 어떤 전형이 아닌 자신만의 시선이 개성있게 잘 드러나는 글인 것 같다.

 

 

어떤 이에게는 글을 쓴다는 것이 편의를 위해 필요한 다소 사소한 일상적 행위 이상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걷는 모습이나, 밥을 먹는 모습에 대해 크게 의식하지 않고, 또 그럴 필요성도 못 느끼듯,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고민이나 평가를 해보거나, 자신의 글이 남에게 보여지고 평가받는다는 의식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은 분명 재미가 없을 것 같다. 그런 이들의 입장에선 이 책의 소재나 이야기의 흐름이 어쩌면 편협하고 너무 매니악-하기 때문이다. 어쩐지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라이팅 클럽' 비슷한 곳에 어떤 방식으로든 선이 닿아있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재미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안에서 간간히 보여지는 계동과 안국동, 북촌길의 예전 모습의 묘사가 정겹다. 또 그안을 열심히 부대끼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한편, 글을 잘 쓰기 위해 어떤 과정과 연습이 필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주인공의 여정도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아기자기한 흥미요소를 힘들이지 않고 찾을 수 있는 숨은그림찾기에서처럼 찾아나가는 재미를 즐기려는 마음과, 글을 쓴다는 것 자체에 대한 약간의 흥미가 전제된다면, 나름대로 의미있고 재미있는 시간을 선사하는 책이다.



 
p***i 2010.11.05. 신고 공감 7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글쓰기의 농밀한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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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2.0 시대를 사는 요즘, 글은 생활이다. 때로는 말보다 글이 편할 때가 있다. 글은 음절과 음절을 이어 단어를 만들고 다시 문장을 형성하는 동안 생각은 다듬어진다.  비록 상황에 따라 글은 퇴색되고 왜곡되는 경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반해 글이 가진 파급력은 무차별적이리만큼 크고 넓다. 그러므로 어디서든 글을 잘 쓰는 재능 혹은 자질을 가진 이를 부러워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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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2.0 시대를 사는 요즘, 글은 생활이다. 때로는 말보다 글이 편할 때가 있다. 글은 음절과 음절을 이어 단어를 만들고 다시 문장을 형성하는 동안 생각은 다듬어진다.  비록 상황에 따라 글은 퇴색되고 왜곡되는 경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이에 반해 글이 가진 파급력은 무차별적이리만큼 크고 넓다. 그러므로 어디서든 글을 잘 쓰는 재능 혹은 자질을 가진 이를 부러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동일한 상황을 해석하는 힘, 능력이 남다르다면 그 또한 축복이겠다. 계절이 피고 짐에 따라 감정의 중추가 미묘하게 반응하는 상태를 문장으로 복기하듯 옮겨 내는 능력은 부럽고 또 부럽다. 정수리로 떨어지는 햇살의 양태를 마치 감촉이 손끝으로 전달되어 짜르르 퍼지게 하는 감각의 전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의 드넓은 세계로 안내하는 훌륭한 길라잡이가 된다는 사실이다.

 

글은 누구나 쓰지만 마음을 요동치게 하기는 어렵다. 그러하기에 창작을 뜯어 먹고 사는 작가의 고통과 독자의 즐거움은 반비례한다고 했다. 읽거나 보거나 듣거나 그 결과는 냉혹하다. 진심으로 짓겠다는 흔해 빠진 광고처럼 간결한 진심은 궁즉통이다. 이 책 <라이팅클럽>의 저자 강영숙 또한 그런 동질의 감정에서 출발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 어마 무시한 시간을 인내하고 마치 소믈리에가 최적의 와인을 선별해 내 듯 문장을 끄집어낸다. 그렇게 선택된 문장은 감정의 틀 속에 숙성을 해야 비로소 글이 된다. 그러므로 잘 된 글은 진심이다. 진심이 결여된 글은 형식에 불과하다. 유행에 휘둘리듯 흘러가는 부유물이다. 누에로부터 실을 추출해 내는 그 사소하고 반복적인 행위들이 모여 윤기 나는 비단이 되는 것처럼 잘 된 글에서는 윤이 난다. 읽는 자는 귀신처럼 알아본다. 무엇이 잘 된 글인지에 대해.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강영숙의 문장은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 조각에 불과한 미묘한 상황 변화에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힘이 탁월하다. 그래서 같은 문장으로 쓰인 글이라도 상황의 가변성에 적확하게 어울린다. 보기에 따라 기교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그것은 강영숙의 색깔임에 분명하다. 이 책의 소주제인 설명하기와 묘사하기의 형식처럼 작가는 이 책의 중심 배경인 계동의 모습과 인물의 상호 연관성에 대해 온기를 불어 넣어 준다. 실제 이 글을 읽는 동안 창작을 한다는 것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구하게 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절묘하게 버무려 내는 작가의 글에 감탄하고 또 공감한다.

 

라이팅클럽과 계동 글짓기 모임, 양극단의 문장이나 같은 내용이지만 질감은 다르다. 작가를 자칭하는 엄마를 둔 사생아 딸과의 이야기다. 둘은 견원지간처럼 사이가 벌어져 있지만 동일한 지점을 지향한다.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쓰기 위한 몸부림을 토해 내기 위해 그들이 고안해 낸 것이 라이팅클럽과 글짓기 모임이다. 그래서 책은, 두 여자의 글쓰기를 추적하며 글을 잉태해 내는 과정을 뒤쫓는다. 구르고 뒹구는 삶의 파란만장한 편린들에 대해 작가는 글쓰기로 묘사하며 집중한다. 간결함 속에 강렬한 색감이 뒤섞여 튀어 나오는 느낌이다. 무덤덤해지기 쉬운 혹자의 인생을 호기심으로 뒤채는 능력이 결부되었기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된다. 또한 강영숙의 이 글 속에는 다양한 시각들이 혼재한다. 무기력하고 나른한 인생을 살아가던 주인공 영인과 관계를 맺는 인물들의 다양성은 광각의 확장처럼 파노라마로 꿈틀댄다.  정체성의 혼란, 질풍노도의 시기와 같이 누구에게나 지나쳐 가는 통과의례처럼 인생의 그렇고 그럼에 대해 작가는 관조적인 언어로 대응해 준다. 음각과 양각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한 어머니는 대척점에 가 선다. 수평의 균형을 맞추듯 이야기는 내용의 독특함에 반해 안정감이 느껴진다.

 

돈키호테의 무모함이 때로는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 나가는 커다란 견인차가 되기도 한다는 과정을 용기라는 의미로 교차시키며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와 잭 플로베르의 <통상 관념 사전>의 문장들을 슬쩍 슬쩍 삽입하며 글쓰기의 고통을 노동의 직접적인 대가, 진정성에 비유한 전개는 인생을 조망하는 관점의 일치감을 형성하는 모티브가 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어제와 오늘의 생활이 달라진다 할지라도 여전히 글은 간결하다. 영인이 엄마의 히스테리를 혐오하며 닮기를 거부하지만 어느새 닮아 있는 두 여자의 모습이 오히려 능청스럽다. 결국 둘은 의도하고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자신만의 언어와 시선으로 세상을 향해 소리쳤던 셈이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맴돌기만 하던 이야기의 끝이 하나의 합일을 이루어 내며 계동을 감싸주던 햇살처럼 공감을 이룬다.

 

공감의 언어는 글쓰기의 존재의미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간절히 바라는지에 대한 밀접한 관계다. 누구에게나 2박3일을 꼬박 지새울 사연 하나쯤은 있듯 개별적인 삶은 다르나 본질은 같다. 그 속에서 스며든 사연의 흔적은 우여곡절이 만든 삶의 침전물이다. 토해내지 못하고 삼킬 수밖에 없었던 각자의 사연을 글은 갈무리하고 단정하게 변화시켜 준다. 강영숙의 글쓰기, 라이팅 클럽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농밀한 언어로 정제된 문장을 선보인다. 글을 단순히 관계를 매개하는 수단이 아닌 자신을 투영하는 하나의 성숙한 감각의 무엇으로 활용하는 길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라이팅클럽>에 모인 그들 모두는 사실 우리 각자의 모습이다. 글은 그렇게 읽히고 퍼져 나가며 공감하게 되며 관계를 묶는다. 만약 글쓰기에 목말랐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 책을 보시라. 울고 웃는 사이 묘사와 설명이 절로 각인된다.



a******e 2010.11.04. 신고 공감 6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하찮아 보이면서도 어려운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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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에게 있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면서도 누구나 잘 쓰기는 어려운 법이기 때문이다. 계동에서 글짓기교실을 하는 엄마의 딸인 ‘나’는 자신의 누추한 현실이 싫은 당돌한 여고생이다. 겨우 잡지에 글 하나를 게재한 후로 그 이력을 우려먹으며 살고 있는 엄마의 위선도 싫고 엄마 주변의 작가입네 하며 몰려다니며 같이 술을 마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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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에게 있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면서도 누구나 잘 쓰기는 어려운 법이기 때문이다. 계동에서 글짓기교실을 하는 엄마의 딸인 ‘나’는 자신의 누추한 현실이 싫은 당돌한 여고생이다. 겨우 잡지에 글 하나를 게재한 후로 그 이력을 우려먹으며 살고 있는 엄마의 위선도 싫고 엄마 주변의 작가입네 하며 몰려다니며 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엄마의 그런 활동 때문에 자신의 일이 되는 가사일은 더 싫다. 엄마를 엄마답지 않은 엄마로 인정하고 김작가라고 부르는 주인공은 엄마가 꾸리는 글짓기교실의 글들을 '이런, 쓰레기들을 보았나!'하고 멸시하지만 자신에게도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폼나게 살고 싶어서 가출도 하고, 엄마같은 작가가 아니라 진짜 작가가 되고 싶어서 J작가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결국은 계동의 글짓기 교실을 그리워한다. 늘 멋지고 싶은 꿈과 현실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알아갈 수록 자신에게 힘을 주는 것이 계동을 글짓기교실에 있는 김작가, 바로 엄마라는 사실을 더 뚜렷하게 인식한다. 처음 가출을 시도한 여고생 때에도, 멀리 미국으로 떠난 뒤에도.
   겉멋에 취해 뜻도 모르면서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를 읽으며 밑줄을 긋고 다른 사람들의 글쓰기를 비웃던 소녀는 삶의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나이가 들고, 그에 따라 글쓰기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성숙해져 간다. 그리고 해피엔딩이다. 30살이 넘어 다시 한국에 돌아온 주인공은 글짓기교실의 옛 멤버들과 김작가가 재회하는 자리를 만든다. 고령의 김작가가 진짜 작가로 문예공모에 당선한 것이다.
 
   치기어린 주인공, 영인의  여고시절이야기는 위태하고 도도하거나 과격한 모험들 때문에 재미있다. 삶의 진실을 조금씩 알아가며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글쓰기의 어려움을 알게 되는 그 다음 대목도 역시 잔잔한 감동이 있다. 무엇보다도 세상의 매서운 바람 앞에서 떨지 않고 늘 당당하게 현실을 비틀거나 통쾌하게 한방 먹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바로 보면서 늘 글쓰기에 대한 꿈을 간직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지극히 문학적이지 않은 현실의 언어들과 지극히 문학적인 내용과 언어들의 절묘한 조합도 흥미롭다.

  글쓰기를 꿈꾸는 작가지망생이라면 이 책을 통해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겠다. 우선 삶에 진실해야만 글이 될 수 있다는 것, 다음은 글쓰기 또한 힘든 노동이라는 것. 그리고 작가가 J작가를 통해 주인공 영인에게 알려주는 글쓰기 훈련의 여러가지들.  마지막으로 이렇게 재미가 있어야 된다는 것^^.

YES마니아 : 로얄 l*****a 2010.11.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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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글쓰기는 노동일기 스타일인가 돈키호테 스타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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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은 삶과 글쓰기간의 역동적인 관계를 그리고 있다. 삶의 열정과 삶의 방식에 있어서 어머니와 딸이 상호순환하는 구조를 지닌다는 점에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스승과 제자를 연상케 하지만 순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모녀간의 화해와 공존을 이루는 결말을 보여준다. 김작가가 딸 영인에게 물려준 것은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독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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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은 삶과 글쓰기간의 역동적인 관계를 그리고 있다. 삶의 열정과 삶의 방식에 있어서 어머니와 딸이 상호순환하는 구조를 지닌다는 점에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스승과 제자를 연상케 하지만 순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모녀간의 화해와 공존을 이루는 결말을 보여준다. 김작가가 딸 영인에게 물려준 것은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독서에 대한 사랑이다. 김작가의 계동 글짓기 교실은 영인의 핵켄색의 라이팅 클럽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모녀가 함께 영위하는 계동의 라이팅 클럽으로 종합되고 완성된다. 영인은 사춘기 시절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글짓기교실을 미국에서 라이팅 클럽을 여는 방식으로 어머니의 삶을 답습한다. 이는 어머니의 영향력에 감염된 숙명적인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냥 늘 그랬듯이 황당한 얘기들만 했다. 비유로, 거짓말로 구질구질한 실존의 고통을 비켜 갔다. 그게 우리 모녀의 오래된 스타일이었으니까."(269쪽)

 

김작가와 영인 두 모녀의 소통 스타일이 바로 글쟁이의 스타일이다. 작가가 뭐 별건가. 기발한 비유와 재미난 거짓말로 구질구질한 실존의 고통을 비켜 가는 것이 바로 글쓰기고, 이를 평소에 실천하는 이들이 작가가 아닌가 말이다. 좀더 거창하게 말한다면 글쓰기는 삶의 고통으로 써내려가는 속죄의 행위이다. 시몬느 베이유가 [중력과 은총]에서 말한 '속죄의 고통'이 바로 글쓰기의 또다른 방식이 아닐까.

 

"제물. '나' 이외에는 아무 것도 바칠 것이 없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물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모두 '나'라는 대용품에 붙여진 상표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피와 살로 바쳐진 제물. 그것이 김작가에게는 바로 글쓰기 교실이었다. 그러나 딸 영인에게 엄마의 글짓기 교실은 갑갑해서 탈출하고 싶은 차가운 자궁이었다. 보통 집이나 가족하면 안전하고 따스한 자궁을 연상하지만 영인에게 계동의 글짓기 교실은 이른바 '어머니의 사랑'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그래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할 그런 차가운 자궁이었다. 영인은 어머니의 글짓기 교실과 그 엉터리 회원들을 '거짓 작가'로 비웃으며 자기는 '진짜 작가'가 되기를 열망한다. 영인에게 글쓰기란 돈도 빽도 학벌도 미모도 없는, 게다가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한 그녀가 세상을 향해 항의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전체 이야기와 주인공의 삶을 지지해주는 일종의 해석코드로 간주한다. 고등학생 시절, 영인은 33세에 요절한 철학자 시몬느 베이유(1909-1943)에 푹 빠져 지냈다. 영인이 즐겨 인용하는 시몬느 베이유의 텍스트는 만 1년간 루노의 공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던 경험을 고스란히 담은 [공장일기]다. 시몬느 베이유는 한마디로 '공장의 성녀'이다. 공장의 비숙련공으로서 산업자본주의에 대항한 어리석은 성녀이고 자신의 체험으로 자본주의를 고발한 깐깐한 성녀이다. 김작가의 글쓰기 교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난과 고독 속에서 온갖 중노동을 경험한 영인은 공장의 성녀 시몬느 베이유의 모습에서 위안을 찾은 것 같다. 영인은 지긋지긋한 쓰레기글들을 양산하는 거짓 작가들의 소굴에서 벗어나고자 이런저런 거친 일들을 마다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커피심부름과 영어교재 외판원, 미국에서는 세탁소, 봉제공장, 네일숍에서 일한다.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라난 시몬느 베이유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라난 영인이 유사성을 보인다면, 모녀간의 애정도에서는 차이성을 보인다. 김작가와 영인의 모녀관계가 갈등과 냉전으로 점철된 것에 반해서, 시몬느 베이유와 그녀의 어머니와의 관계는 친구 이상이었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작가로서의 야심보다는 순수하게 글쓰기의 열정을 간직하는 사람들의 이상적 모델이 된다. 돈키호테는 이야기에서 현실에서나 영인이 세계와 글쓰기의 의미를 바라보는 모델이 된다. 글에 미친 김작가가 노년에 도스토옙스키처럼 측두엽에 종양이 생긴 것과 정신병동에 입원하지만 결국 영인과 글짓기 회원들의 도움으로 병을 회복한다는 설정도 결국 글쓰기가 독이면서 약이되는 경우를 부각시키고 있다. 반면에 영인은 처음에는 글쓰기와 독서를 삶의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물론 그녀는 순정소설이나 만화책에 빠지는 게 아니라 굵직굵직한 고전문학과 인문학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삶의 개입하는 방식으로 글쓰기의 가치를 발견한다. 커피숍의 J작가가 영인에게 가르쳐 준 것은 사실 김작가가 영인에게도 가르쳐 줄 수 있는 내용이었다. 독서목록이 인상적이지만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독서목록과 남에게 추천하는 독서목록을 지니고 있다.   

 

전반적인 이야기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사랑과 글쓰기간의 대립구도다. 김작가나 영인 모두 사랑에서는 실패모드를, 글쓰기에서는 성공모드를 보여준다. 김작가의 싱글맘 처지와 애정 사기, 영인의 동성애와 짝사랑, 그리고 영인의 미국으로의 도피성 결혼이 모두 사랑에서의 실패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런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글쓰기가 강조된다. 아마 의도적이지는 않았겠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좋은 글을 쓰고 있는 작가들도 많다. 물론 주위를 둘러보면 그렇지 못한 작가들이 더 많아 보이지만 말이다.

z***a 2010.10.2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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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주옥같은 충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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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글을 쓰고 싶은 걸까?아님... 글을 쓰고 싶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일까?방송에서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지만서점엘 나가보거나, 도서관에 가보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는 것은...결국 내 이름을 건 책 하나를 출판하고 싶은 소박한 꿈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배운것도 없고 가진것도 없는 사람들이 힘을 낼 수 있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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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아님... 글을 쓰고 싶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일까?

방송에서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서점엘 나가보거나, 도서관에 가보면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는 것은...
결국 내 이름을 건 책 하나를 출판하고 싶은 소박한 꿈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

배운것도 없고 가진것도 없는 사람들이 힘을 낼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영향력을 낼 수 있는 것...
너무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선뜻 실행에 옮기기엔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에는 하고 싶은 일...  작가가 되는 것...

평생 작가 지망생으로 살아온 싱글맘 김작가와 그녀의 딸 영인.
두 사람의 인생은 오직 글쓰기로 점철되어 있고 글쓰기를 뺀 그녀들의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남자에 배신당하고, 친구들 때문에 속상하고, 딸인 영인에게 관심조차 없는 김작가에게
반항하기 위해 가출을 해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일 글쓰기...

이 책은 묘한 매력이 있다.
글쓰기 관련 책을 읽고, 그렇게 해 봐야지 했던 것을 소설이라는 장점을 내세워 적절하게 예시를 한다.
배고프고 가난해도 글을 쓰고 싶은 희망을 가진 모녀.
그렇기 때문에 힘들고 험난한 세상을, 세월을 견디고 이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글을 쓰고 싶은 순간엔 그 특유의 모드가 있는것 같다. 그 모드에 접속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때가 있는가 하면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모드가 바뀌는 순간도 있다.  (중략)
너무 배가 불러도 안되고 너무 배가 고파도 안된다. 배가 부르면 문제의식을 상실하고 배가 고프면
꼬르륵거리는 소리때문에 글 쓰는데 집중을 못한다. (page 55)

아마 사람들이 소설을 재미있어 하는 건 사람들 사는 모습이랑 소설이 제일 비슷하기 때문일거야(page95)

설명을 하려들지 말고 묘사를 하라... (page 96)

직업으로 글을 쓴다고 가정해 봅시다. 어디서 영감을 얻을 것인가? 먹고 살만해졌다면?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 더 생기지 않는다면? 첫사랑이 지나고 이미 다섯번째, 아니 스무번째 사랑을 하고 있다면? 어디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가요? (page 150)

간걸하고 분명한 묘사 뒤에 반드시 작가의 사고 과정이 드러나야해. 그런 건 묘사가 아니라 진술이지
작가의 사고, 작가의 판단에서 오는 힘이 있는 진술이 반드시 들어가야 해 (page 160)

묘사는 배워서 할 수도 있어. 그러나 작가의 사고 과정이 소설에 드러나려면 공부를 해야 해.
많이 읽어야 한다구. 글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모를거야. 작가들이 진실한 문장 하나를 갖으려고
얼마나 많은 댓가를 치르는지 나중에 알게 될 거야(page 161)

뭔가를 자세히 들여다 본다는 것.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탐구하는 것이 글을 쓰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걸 감각적으로 알게 되었다. 공간을 제대로 설정하라. 그러면 글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써지고 훨씬 더 힘 있게 진행된다. (page199)

소설을 읽으면서 연필을 들고 밑줄 쫘-------악 그러가면서 읽어본게 얼마인지...
그만큼 재미있고 흥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더욱 기분 좋은 것은..  가진것 없고 배운것 없는 그녀들이 결국에는 일을 낸 것이다.
사회에 나가 학벌로, 인물로, 배경등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꿈을 이룬 것이다.

꿈을 꾸고, 글을 끄적이고, 다르게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나도 그 꿈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을까?
간만에 좋은 소설을 만났다.

YES마니아 : 로얄 k*****3 2011.07.08. 신고 공감 2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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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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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계동에서 글짓기 교실을 하는 하는 엄마와 단 둘이서 살았다.   동네사람들은 변변한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엄마를 김작가라고 불렀고, 그녀 역시 자신의 엄마를 김작가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그녀는 대학 입학이 여의치 않아지자 여기저기 취업장에 이력서를 내어보지만 숱하게 거절을 당하기 일수였다가 남자를 만나 동거를 하면서 일자리도 구하게 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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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계동에서 글짓기 교실을 하는 하는 엄마와 단 둘이서 살았다.   동네사람들은 변변한 이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엄마를 김작가라고 불렀고, 그녀 역시 자신의 엄마를 김작가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그녀는 대학 입학이 여의치 않아지자 여기저기 취업장에 이력서를 내어보지만 숱하게 거절을 당하기 일수였다가 남자를 만나 동거를 하면서 일자리도 구하게 된다.   그녀에게서 친구라면 k와 r이 있다.   k는 아버지의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하다가 결혼을 하여 살아가고 있고, r은 부자 부모님 밑에서 반항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반복적인 가출을 하다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지만 그다지 행복한 생활은 아니다.  

 

  엄마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 일까, 그녀 역시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한다.   그녀는 생애 첫 소설을 써보기도 하고, 두 번째 소설을 쓰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이 쓴 작품을 김작가인 엄마에게가 아닌 커피숍에서 만나게 된 j 작가에게 보여주고 그녀에게서 이런저런 조언을 듣게 된다.

 

  첫 번째 연애가 실패로 돌아가고 그녀는 세탁업을 하는 한 남자를 만나 미국으로 따라간다.   미국에서의 결혼 생활 역시 길지 않게 마무리 짓게 되는 그녀지만 한국으로 돌아오기보다는 미국에 남아 네일 아티스트로 생활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라이팅 클럽을 만들어 그 첫 모임을 가지는 시간도 마련하게 되지만, 엄마에게 병이 찾아 들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한국으로 걸음으로 내어딛는다.   엄마의 병색은 깊고 짙어보였지만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그녀는 병중에서 일어나게 되고 다시 모녀는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언제나 글을 쓰고 싶었던 그녀, 그렇게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녀이지만 삶을 살아가는 일에 늘 허덕이게 되면서 소원처럼 작가로의 삶을 살아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 있어 글쓰기가 자리를 박차고 떠나 있었던 적은 없었으며 라이팅 클럽을 만들어가면서 그녀의 글쓰기는 멈춤없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변변한 이력이 없던 김작가 역시 병상을 떨쳐내고 난 노년의 시간에 쓴 소설이 당선이 되었고, 딸은 네일 아티스트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엄마 곁에서 라이팅 클럽을 이끌며 모녀는 그렇게 글쓰기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책으로 엮으면 몇 권은 될 것이라고들 할만큼 삶이란 글쓰기의 소재거리가 되어준다.   즉, 글쓰기는 곧 삶인 것이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글쓰기를 할 수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모녀의 이야기, 글쓰기가 곧 삶인 그 모녀의 모습 속에서 우리 동네에는 라이팅 클럽이 없는지 두리번 거리게 된다.

m******i 2010.10.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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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라이팅 클럽』 : 글(소설)을 쓴다는 것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다
"강영숙 『라이팅 클럽』 : 글(소설)을 쓴다는 것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다" 내용보기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는 심사숙고하게 된다. 낯선 작가의 작품도 그렇다. 물론 기다리고 기다렸던 작품은 예약구매라도 하지만 대체로 초판시점에서 6개월 내지 1년이상 지나거나 고전 위주로 책을 구매한다. 건조하고 뚝뚝 떨어지는 수사가 절제된 문장을 좋아하다보니 남성 작가 위주로 책(소설)을 읽어왔다. 이런 식의-남성작가니 여성작가니 하는-이분법은 곤란하지만, 쉽게 설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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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이나 베스트셀러는 심사숙고하게 된다. 낯선 작가의 작품도 그렇다. 물론 기다리고 기다렸던 작품은 예약구매라도 하지만 대체로 초판시점에서 6개월 내지 1년이상 지나거나 고전 위주로 책을 구매한다. 건조하고 뚝뚝 떨어지는 수사가 절제된 문장을 좋아하다보니 남성 작가 위주로 책(소설)을 읽어왔다. 이런 식의-남성작가니 여성작가니 하는-이분법은 곤란하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나는 신경숙 작가의 문체를 여성의 대표적인 문체처럼 여기다보니 여성작가의 글은 건드리면 툭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을 자극하는 문장들이 펼쳐져있을 것만 같았다. 읽다가 만 <리진>은 그런 선입견을 확인시켜준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똑같이 서두에 제물포역이 등장하는 김영하의 <검은꽃>과 어찌 그리 다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소녀들 혹은 소녀적 감성을 지닌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문장을 흠모하는 이들에게는 마음에 쏙 드는 한줄 한줄이었을지도. 그러나 나는 무엇으로 만들어졌기에 <리진>의 종잇장만 봐도 얼굴이 홧홧해지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천운영, 김애란, 김인숙 등 여성 작가의 글을 접하게 되면서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강.영.숙이라는 보물같은 작가의 존재를 알게되면서 문체라는 것이 남성과 여성에서 오는 차이가 아닌 작가의 개인의 감성에 좌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라이팅 클럽>은 소설을 가장한 글쓰기 교재(?)다. 무슨 비법이라도 알려줄 것처럼 요란한 카피로 도배를 한, 거기서 거기인 글쓰기 교재보다 이 소설 한 권이 백배천배 낫다. 장담한다! 

 

'나'는, 등단은 못했지만 '김 작가'라 불리는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요즘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자신의 약력을 과대 포장한  김 작가는 동네의 어린 꼬마들, 주부들을 대상으로 글짓기 교실'을 운영한다. 딸인 주인공이 보기에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불가해한 존재다. 주인공은 그들이 쓴 글을 거침없이 쓰레기라고 말한다. 그런 자신도 글과는 무관해 보이는 생활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쓰레기'를 생산해낸다. 엄마인 김작가에게 반동적 성향을 보이면서도 그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모녀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평범하다 못해 구질한 삶 속에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읽고 쓰고, 읽고 쓰고. 그들에게 오직 읽고, 쓰고만 있을 뿐이다. 삶이 허물어져 내리는 그 순간에도 말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나' 글을 쓸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 쓰고 싶다고 써지는 게 글이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온전히 '인생'을 바쳐야 한다는 것을 두 주인공은 보여주고 있다.

 

<라이팅 클럽>의 주인공 '나'는 나와 닮았다. 그래서 뒤늦게 만난 이 소설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작법에 관한 정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내세울 것 하나 없으면서 혹은 능력도 안되면서 '쓰레기'를 생산하려고 하는 그 욕심 혹은 욕망 혹은 허영에 가득찬 것까지 닮았다. 십대에 짝사랑하던 사람을 '나'가 쟝(Jean)이라 표현했고 나는 '그분'이라고 했던 것도 비슷하다. (아, 이 오글거림) 취직 면담을 빙자해 낯모르는 재수없는 사람들에게 훈계를 듣는 그런 순간들까지 비슷했다. 글과는 먼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끼적거리는 삶을 갈망하는 것도 비슷했다. 감히 말하자면, 책 속엔 내가 있었다.  "그럼 이제 와서 결론을 말해볼까? 생활과 글쓰기는 절대로 병행할 수 없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늘 한 쪽이 부서지고 깨졌다."(p151)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멍해졌다. 내가 언젠가 어렴풋이 깨달은 그것을 작가가 말해주고 있었다. 그랬다. 무엇인가를 시도해보려는 열망으로 가득 찬 그 시간에 나의 일상은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병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리고 포기했을 때 그나마 한 쪽은 정상이 되었다고나 할까. 아, 이 소설이 왜 나를 울릴까. 잠자던 욕망이 깨어나려고 한다. 누른다고 쏙 들어갈까. 인생을 바쳐야 하는 것이라면...... 이 순간의 혼돈 역시 가치가 있는 것일 테다.


<라이팅 클럽>은 강영숙의 두번째 장편소설다. 작년 겨울에 초판이 나왔을 때 별 관심없이 지나쳤던 작품이었다. 종종 드나드는 해당 출판사의 인터넷 카페에서 서평단을 모집할 때도 시큰둥했다. 강.영.숙을 몰랐을 때니까. 그때 강.영.숙을 알았다면 그냥 지나치지도, 시큰둥 스쳐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잡다한 말 다 필요없이 이 한마디, 그냥 딱 내 스타일!, 이것이 그녀를 설명하는 가장 나다운 표현이라 하겠다. <리나>에서 이미 알아봤고 <라이팅 클럽>은 확인시켜줬다. 그녀야말로 나의 글쓰기의 뮤즈가 될 것임을. (이 간지러운 표현을 뭐냐!)

 

h*****a 2011.12.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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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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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 하는 행위이다.   글을 쓴다는 것.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책을 낸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글을 몇 번 써본 사람이라면 그 바람은 조금더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다행히 요즘은 블로그와 같은 개인적인 공간을 통해 여러 종류의 글쓰기가 가능해진 시기이기에 쓰기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방법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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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 하는 행위이다.

 

글을 쓴다는 것.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책을 낸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글을 몇 번 써본 사람이라면 그 바람은 조금더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다행히 요즘은 블로그와 같은 개인적인 공간을 통해 여러 종류의 글쓰기가 가능해진 시기이기에 쓰기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방법들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보여지는 공간을 통해 이루어진 글쓰기 이기에 사실 조금더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다. 기존에 일기라는 형식을 빌려 쓰여진 글들이 지극히 내밀한 형식을 띨수 밖에 없는 것과는 많은 대조를 보인다.  그러기에 쓰기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 잘 쓰는 것에 대한 바람은 점점 커지기만 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 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작가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를 쓰고자 하는 욕구는 많지만 (어찌보면 무엇인가를 써야만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은 무엇하나 제대로 써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소설은 두 여인, 정확히 표현하면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엄마라는 호칭대신 김작가라 불리우는 여인. 호칭만 보면 당연히 작가인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등단을 한 적도 없는 그냥 평범한 글짓기 교실의 선생에 불과하다. 김작가의 딸 영인은 작가라 불리우는 엄마같지 않은 사람과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문학소녀이다. 소설은 엄마와 딸이라는 물보다 진한 관계를 여지없이 깨트려 버린다. 엄마는 딸에게 단 한번도 살갗게 대해주지 않았으며,세상의 모든 엄마들이라면 어느정도 가지고 있을 모성애라는 것조차 전혀 없는 남보다 더한 존재로 그리고 있다. 또한 딸 영인은 결손 가정의 애정 결핍으로 인한 비행소녀 정도로 묘사할 수 있겠지만, 오로지 문학만을 사랑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고등학생이 될때까지 연애는 물론 키스 한번 해보지 못한, 모든 일상에서 부각되지 않는 도드라지지 않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두 여인에게도 공통점은 있었다. 서로의 글을 쓰레기라 무시하지만 어느 누구 보다도 쓰기에 대한 열정이 있다는 것이다.  보잘것 없는 글짓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김작가는 항상 작가로써의 역활에 충실하다. 동네 아줌마들에게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를 끈임없이 불어 넣는다. 그 욕구는 어쩌면 자신의 욕구 였을지도 모른다.  특별한 삶에 실패한 영인또한 자신의 글을 쓰고자  노력을 한다. 우연히 만난 유명작가 J에게 자신의 습작을 보여주고 많은 지적을 받지만 그녀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글을 쓴다는 그런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순간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정말 하찮은 것으로 느껴질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묘사의 부족이 될수도 있고, 정말 보잘것 없는 비문이 될수도 있다.

 

두 모녀의 삶은 작위적일 정도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여준다. 드디어, 모진 삶의 시련끝에 김작가는 화려한 등단을 하게 된다. 글쓰기라는 것이 , 작가가 된다는 것이 결코 순탄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수도 있다.누구나 글을 쓰지만 누구나 글을 잘 쓸수는 없다. 이 이야기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 일수도 있다. 작가로써 누구나 글을 잘 쓸수 있다는 것이 지극히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일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평생을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처럼 안타까운 모습또한 없을 것 같다. 지금 이순간 우리가 무심코 쓰는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가 될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나만의 라이팅 클럽에 가담하는 것도 꽤나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l*****k 2010.11.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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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글쓰기는 삶 전체를 대가로 하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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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려지는 모습이 있다. 돈이 없거나 가정이 화목하지 않거나 혹은 친구가 없어서, 외롭고 쓸쓸하고 곤궁하고 그야말로 삶에 지칠데로 지쳐 찌든 모습. 그러나 입만 열면 세상을 달관한 듯 어려운 말들을 읊조리며 '너희는 세속적이다'라고 삿대질을 할 것만 같은 모습.  내 머릿 속 '작가'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텔레비전이 심어 준 건지, 활자가 그려낸
"[라이팅 클럽] 글쓰기는 삶 전체를 대가로 하는 모험" 내용보기

'작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려지는 모습이 있다. 돈이 없거나 가정이 화목하지 않거나 혹은 친구가 없어서, 외롭고 쓸쓸하고 곤궁하고 그야말로 삶에 지칠데로 지쳐 찌든 모습. 그러나 입만 열면 세상을 달관한 듯 어려운 말들을 읊조리며 '너희는 세속적이다'라고 삿대질을 할 것만 같은 모습.  내 머릿 속 '작가'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텔레비전이 심어 준 건지, 활자가 그려낸 작가들의 모습이 그러했던 건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라이팅 클럽>을 읽고 또, '작가 선언' 후 내공 쌓인 분들께 공통된 조언들을 듣노라면 왜 그런 모습들이 떠오르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계동에는 김 작가가 있다. 등단을 한 것도, 이름을 떨친 만한 작품을 낸 것도 아닌, 그저 에세이 몇 편 기고한 경력만 가진지고 있는 그러나 밥벌이도 글쓰기로 하는 김 작가가 있다. 그리고 그녀를 '김 작가'라 부르며 엄마의 사랑 보다 글 쓸 '방'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딸, 인영이 있다. 김 작가는 글짓기 교실에서 중년의 낭만을 채워나가고 인영은 커피숍에서 만난 J작가에게 자신의 소설을 들이밀며 사춘기 시절을 글로 채워나간다. 글과 'J칙령'을 벗으로 자란 인영은 성인이 되어 김 작가와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가 만들어내는 '쓰레기'들을 뒤로 한채 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모녀는 '정신병자와 핵켄색의 라이팅 클럽'으로 해후한다. 결국, '다른 당선자들에 비해 고령자이고 변변한 학력도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되어 방송국 문화 프로그램의 인터뷰까지 하는' 김 작가는 진짜 김 작가가 되고, 인영은 자신이 '쓰레기'라 칭했던 계동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계동 글짓기 교실'의 주인이 된다.

 

즉, <라이팅 클럽>은 작가이고 싶으나 이야기꾼에 지나지 않던 김 작가의 '진짜 김작가 되기'와 원했든 원하지 않든 삶의 굴곡을 글과 함께 하며 점차 '작가'가 되어가는 인영의 스토리이다.  '글'로 묶인 두 여성이, '글'로 삶을 견디고, 결국 '글'을 이루어 가는 성장 스토리인 것이다.

 

"...소설을 쓸 때는 자기의 생각 따위는 아예 설명하려 들지 않는 게 좋아."

"...작가의 사고 과정이 소설에 드러나려면 공부를 해야 해. 많이 읽어야 한다구.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모를 거야. 작가들이 진실한 문장 하나를 갖으려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는지 나중에 알게 될 거야."

 

J작가의 말처럼 17살 인영은 계동 글짓기 교실의 '쓰레기'에서 출발해 미국의 네일 아트와 세탁소 남자가 주는 튜브를 거쳐 핵켄색의 라이팅 클럽으로 만들어진다. 바로 '말'만 있던 인영의 이야기가 '시간'과 '삶'이 더해지면서 '글'이 된 것이다. '글쓰기는 삶 전체를 대가로 하는 모험'이라는 것을 <라이팅 클럽>의 인영이 증명한 것이다. 그래,,, 이제 정말 조금 알것 같다. 작가가 되겠다는 내게 사람들이 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는 말을 하는지,,,

 

사람들 눈엔 내가 '시간' '삶' '경험'이라는 요소들로 채워져야 진짜 '글'이 나오는 '작가'의 세계에 환상을 갖고 달려든, 인생의 굴곡 따위는 없는, 평범하게 살아온 어린 아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내게 남은건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삶' '연륜'을 어떻게 이룰지에 대한 방향 설정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내게, 지금, 온 것은 작가가 운명이라는 뜻이 아닐까?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로 전 국민이 작가의 대열에 오르고 있다. 그냥 수다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아닌 살아있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라이팅 클럽>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글쓰기는 멀쩡한 정신으로 해치우는 정신적인 음주 행위라고 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글을 쓰고 싶다면, <라이팅 클럽>으로 '진짜 라이팅'이 되기 까지의 과정을 조금이라도 느껴보자.

YES마니아 : 로얄 m*********6 2010.11.0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써도 미치고 안 써도 미치는..
"써도 미치고 안 써도 미치는.." 내용보기
글을 쓴다는 것..생각만 해도 어려운 일이다.나 역시 어릴때부터 잘 쓰진 못했지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었다.하지만 아직까지 카드 한장, 편지 한장 쓸때 마저도 단 한번도 쉽게 써 본적이 없다.그 만큼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거 같다.여기 강영숙작가님의 [라이팅클럽]이란 책도 그런 글쓰기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다.처음 [라이팅클럽]을 알게 되었을때
"써도 미치고 안 써도 미치는.." 내용보기
글을 쓴다는 것..
생각만 해도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어릴때부터 잘 쓰진 못했지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카드 한장, 편지 한장 쓸때 마저도 단 한번도 쉽게 써 본적이 없다.
그 만큼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거 같다.

여기 강영숙작가님의 [라이팅클럽]이란 책도 그런 글쓰기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소
설이다.
처음 [라이팅클럽]을 알게 되었을때 의외로 이 책의 주제가 무척 독특하다는 생각에 흥미로웠다.
나로서는 글을 쓰는 방법이라던지 책을 읽는 방법 등에 관한 책은 많이 봤어도 글쓰기 자체로의 
소설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박민규작가님의 최고!!라는 찬사에 마음(?)이 흔들린 것도 있지만 이 책의 주제 자체만으로
도 아마 책을 좋아하거나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눈길이 갈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등단도 하지 못하고 평생 작가지망생으로만 살아온 김작가와 그녀의 딸 영인의 이야기다.
그리고 더불어 그 모녀와 절대 떼어놓을수 없는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다.
이 책의 화자인 김작가의 딸 영인은 많은 상처를 지닌 인물인데 의외로 그런 상처들이 이 책의 분
위기를 어둡게 만든것이 아니라 그녀의 많은 역경이 더욱 글쓰기에 대한 많은 열정을 끓어오르게
했던거 같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인물들, 특히 모성이란 찾아볼수도 없고 무척 철이 없어 보였던 김작가까지도 
은근히 정이 가고 친근감 있는 인물들이었던거 같아 보는 내내 재미있게 볼수 있었던거 같다.
마지막 미국땅에서의 설레임과 두려움 속에 연 라이팅클럽이 1회의 모임으로 막을 내린것도 아쉽
고 김작가가 병을 얻은 연유도 궁금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한 문체로 서로에게 더욱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그녀들이 평생 행복한 글쓰기를 할수 있게 된거 같아 흐뭇했다.

이 책....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모녀의 일대기를 본 것만 같은 긴 여정이었던거 같다.
하지만 왠지 아쉽고 섭섭한 것이 아마도 그녀들의 이야기가 계속 궁금해 질것만 같다.
정말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 속에서 얼마나 글을 쓴다는게 어려운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
던 [라이팅클럽]이었고 작가가 이 책을 쓰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새삼 그런 생각을 해본다.
YES마니아 : 골드 g******2 2010.11.03.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