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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까지가 열흘 간의 기록이라면 4권부터는 그 이후의 기록, 폭도로 몰려 죽은 가족들에 대한 유가족들의 눈물겨움, 간첩으로 몰린 시민들의 이야기 등등이 주를 이룬다. 시민군들을 빨갱이와 폭도로 몰기 위한 잔혹한 고문들과 진상 규명을 하려는 유가족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주로 묘사된다.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각계 각층의 평가가 언급되는데, 지식인들이나 대학생들의 평가는 자못 객관적인 것 같으나 매우 허무적이고 패배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사회 변동의 원동력으로 작가가 어느 계급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태훈은 허무감에 빠지고 법대생이었다는 걸 빌미로 경찰 고위간부의 딸인 양미연에게 접근한다. 지식인들의 한계와 더불어 지식인들의 권력에 대한 욕구를 드러내는 인물로 표현된다. 준영은 휴가 때 고향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제대한 동기를 찾아 부평의 기지촌으로 가게 되는데 거기서 미군을 상대로 매매춘을 하는 영애를 만난다. 영애의 존재는 작품 전체로 볼 때 미약하나 미군들이 한국 영토를 점유한 상태에서 국권을 갖지 못하고 유린당하는 한국을 상징하면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매춘산업을 조장했던 당시의 한국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이해하는 부분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미국이 진압군의 편을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실체는 매우 자명해진다. 수사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폭력이 쏟아졌다. 폭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이겨버렸다.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48). 현수가 태훈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마디로 평가해서 그 투쟁은 무모했어요. 처참한 실패로 인해 운동조직의 와해와 패배의식만 가중시켰을 뿐입니다. 신군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빌미로 엄청난 압박과 통제를 가해올 것이 분명하고 말입니다.” 태훈이 현수를 쏘아보았다. “미완성이란 완성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지만, 완전히 끝났다는 종결 의미로 해석해버리면 안 돼요. 미완성이기 때문에 앞으로 완성시킬 과제가 남았다는 연속성이나 진행 의미로 해석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운동이라는 게 뭐예요? 정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거잖아요.”(61) 또 미국의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도와줄 것으로 여겼다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었다. 미국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진압군 편을 들었다. 그건 특전사 외에 20사단까지 축차 투입되었던 것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작전권을 손에 쥐고 있었으며, 그들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20사단은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항공모함이 나타난 것도, 그 도시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100-101). “그런 도식적인 이야기는 삼갔으면 좋겠네요. 광주를 지키려다가 목숨을 잃었던 사람들 대부분은 노동자와 도시빈민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를 외쳤던 운동원들 대부분은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싸움이 실패로 끝날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죠. 당신과 나도 그런 부류가 아니었던가요?” “나는 도망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고 사선을 넘었던 겁니다.” “그건 비겁자들이 자신을 미화시키는 말에 지나지 않아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나는 그 싸움이 무모하다고 판단되었고, 또 목숨이 아까워서 도망쳤던 비겁자였음을 분명히 밝힙니다. 성민 씨는 죽음의 도시에서 도망쳤던 자신을 변명하려 들지 마세요.” “뭐라구요! 내가 비겁자라고요! 남들은 모른 척하고 있을 때 현수와 나는 광주에 잠입하여 실상을 취재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진실을 전국에 알리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사선을 넘어왔던 것입니다.” “그 잘난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군요. 그렇지만 그날의 모든 상황을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며 영웅적인 투쟁으로 보는 시각은 계엄사의 억지 논리와 비슷하다는 거죠. 나는 분명히 말하지만, 그날의 싸움을 국가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자발적인 싸움이었고 반인륜적인 만행에 분노하여 즉흥적인 투쟁을 벌였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148) “지금 어느 것이 우선이냐를 따질 때가 아니에요. 민족 문제와 계급 문제는 일란성 쌍둥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오늘은 그것보다 광주항쟁에서 미국이 가면이 벗겨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략)”(154) “그렇습니다.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이란 테헤란에서 뺨 맞고 대한민국 광주에서 화풀이를 한 셈입니다. 미국에게 한국은 군사적, 지리적,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국을 잃으면 아시아를 잃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거죠.” 그 이야기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현수가 벌떡 일어섰다. “탁상공론만큼 허망한 것은 없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이젠 모든 것이 자명해졌습니다. 우리의 적은 광주학살을 조종한 신군부세력뿐만 아닙니다. 또 하나 적은 은혜롭고 아름다운 것처럼 가면을 쓰고 있었던 미국입니다. 우리 모두 나서서 그 가면을 벗겨내야 해요. 서울 곳곳에 이 유인물을 살포합시다.”(156) “우린 새롭게 일어서야 해요. 최영우 씨,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씨가 이렇게 말했대요. ‘오늘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다’라고 말예요. 내일의 역사는 우리 편이예요. 틀림없이 학살자들은 역사의 심판대에 서게 될 거예요.”(158-159) “거기에 기지촌이 있잖은가라우?” “멋진 공수 양반이 총명하기까지 하시군.” “총명한 것이 아니라 내 전우가 그곳에 살고 있어서 이야기를 약간 들었거든이라우.” “아, 그래요. 그곳에 가면 가난한 조국을 위해 알몸으로 나선 산업전사들이 있거든. 어쩌면 그 아가씨들이 진짜 애국자지. 그런데 그 기지촌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시오? 작년 이맘때에 부하의 총을 맞고 저승으로 갔던 박통이, 섹스산업은 원료가 들지 않는 산업이라고 해서 기지촌 건설을 은밀히 도왔다는 이야기가 있소. 그래, 그래. 양키들이 달러를 마구 뿌려 풍요로워지고 있는 곳이 바로 부평이지.”(2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