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괴된 사나이>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파괴된 사나이>의 세계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에스퍼가 존재하고, 그들이 살인행위 이전에 그 의도를 사법당국에 통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령 살인을 저지를 때까지 에스퍼들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해도, 범행 후 자신의 죄를 숨기는 것이 불가능1)”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범죄자가 잡히면 그의 자의식을 몽땅 지우고 새로운 자아를 주입시키는 ‘파괴’형을 선고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뜻 보면 ‘파괴’형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가르침에 따르는 듯하다. 하지만 당사자가 ‘파괴’형을 받는 과정에서 결코 의식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마취하지 않고 한 사람을 뼈 조각 하나하나까지 해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렇기에 ‘파괴’형은 오히려 사형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형벌일 뿐이다.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 윈스턴 스미스가 고문과 세뇌의 과정을 통해 당(黨)이 원하는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된 것과 마찬가지인 ‘파괴’형의 존재는 이 세계가 실질적으로 에스퍼 길드라는 ‘빅 브라더’에 의해 다스려지는 ‘디스토피아(Dystopia)’라는 것을 암시한다. 순간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짓는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무수한 선택의 순간을 만나고, 그 순간의 결정들이 모여 현재의 나를 만든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벤 라이히도 마찬가지다. 그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삐뚤어진 무엇이 그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그의 막대한 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파멸시켰다. 모나크 자원 공사의 대표인 벤 라이히는 자신의 전속 분석가인 2급 에스퍼 의사 카슨 브린으로부터 “지난 여섯 달 동안 당신은 아흔일곱 번이나 <얼굴 없는 사내>에 관한 악몽을 꿨습니다. 그는 당신의 숙적이자 방해자였고, 당신 마음 속에 공포를 불어넣었던 장본인이었습니다.2)”라는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그 얼굴 없는 사내가 사업상 경쟁자인 드 코트니 그룹의 크레이 드 코트니임을 짐작한 벤 라이히는 생존을 위해 크레이 드 코트니에게 협상을 제의한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거절당했고, 이에 그는 현실과 꿈 모두에서 악몽을 안겨주는 원인을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 결정은 벤 라이히를 파멸로 이끄는 신호탄이 되었다. 먼저 그가 생각했던 것은 에스퍼를 이용한 완전범죄였다. 하지만 그의 제안을 받은 2급 에스퍼 엘러리 웨스트는 “농아(聾啞)는 바로 당신 같은 일반인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당신들 사이에서 홀로 살아야 한다면, 결국 미쳐 버리고 말 겁니다. 만약 당신이 뭔가 불법적인 일을 꾸미고 있다면, 난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3)”라고 하며, 거절한다. 왜냐하면 2급 에스퍼인 엘러리 웨스트는 굳이 자신들이 태어나고 살아가며 죽는, 에스퍼 길드에서 배제될 위험을 무릅쓰고 그러한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길드’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그들간의 결혼을 통해 능력의 대물림과 강화를 꾀하는 폐쇄적인 이익집단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벤 라이히 같은 평범한 인간은 에스퍼들에 있어서 동등한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마치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국왕의 돈주머니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듯이. 나의 기억이 진짜 기억일까? ‘주인공이 알고 있는 기억이 사실은 진짜 기억이 아니다.’라는 흔한 전개를 따라가지는 않지만, ‘파괴’형의 존재는 벤 라이히의 기억이 진짜 기억이 아니라 이미 한 차례 ‘파괴’형을 거쳐 형성된 가짜 기억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범죄수사국의 총책임자인 에스퍼 링컨 파웰도 ‘거짓말쟁이 에이브’라는 또 하나의 이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에스퍼 경찰이 일그러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에스퍼 길드의 이익을 위해 죄 없는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거나 ‘파괴’형을 선고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이 한때나마 에스퍼들을 농락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벤 라이히를 제거하기 위한 에스퍼 길드의 조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에스퍼 길드에서 그의 마음을 조종해서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극대화시켜 존속살인(尊屬殺人)과 그에 따른 자멸을 유도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파괴된 사나이>는 <1984년> 못지않은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것이 아닐까? |
| 텔레파시 능력자들이 경찰 역할을 함으로써 계획적 범죄가 불가능해진 25세기. 라이벌 기업의 회장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벤 라이히와 1급 초능력자인 링컨 파웰 사이에 쫓고 쫓기는 추적극. 줄거리는 선악대결의 단순구도이지만, 이 소설이 SF의 고전들을 꼽을 때 반드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시대를 몇십년이나 앞서갔기 때문이다. 박력있는 문체, 스피디한 전개, 당시로서는 매우 참신한 타이포그래피의 적극적 활용... 1953년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의 소설이다. 전체적으로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베스터가 전업 SF작가가 아니라 방송대본작가였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베스터의 또다른 작품 "타이거! 타이거! (Tiger! Tiger!)"와 함께 그의 대표작이다. "타이거! 타이거!"는 몇년전 조악한 중역판으로 나왔다가 절판되었는데, 이작품도 제대로 된 번역판으로 다시 출간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 이책에 대해서 알고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에 심히 안타까울 뿐이다. 주위에서 이책을 읽어본 사람들 중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없다. SF의 고전중에서 이처럼 뛰어난 소설은 그리 많지않다. 에스퍼의 존재가 더이상 이상하지 않는 미래에 주인공은 살고있다. 더이상 마음을 숨길수 없는 세계에서 주인공은 살고있다. 마치 현재의 개인정보가 낱낱히 공개될 가능성이 있는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주인공의 살인 계획은 시작되고 쫓고 쫓기는 머리싸움이 시작된다. 파괴로의 진행이 시작된 것이다. 끝부분에서 나의 예상을(아마도 모든이의) 예상을 뒤엎는 이소설을 읽어보시길 꼭 권한다. |
| 제1회 휴고상 수상작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실베스타스탤론 주연의 터무니없는 영화 '데몰리션맨'과는 추호도 연관이 없으니 안심할 일이다. 책은 미래의 인간 범죄자와 에스퍼(Extra Sensory Perception-er)의 대결구도를 보여 주고 있다. 애초부터 염동력과 독심술 및 기타 우수한 능력을 지닌 초지각능력자(ESP)를 상대하기엔, 가슴속의 주체할 수 없는 야심과 타고난 악당기질, 다소 뛰어난 지능을 제외하고는 역부족이었던 주인공 벤라이히는 결국 파괴될 운명을 벗어 날 수 없었을른지도 모른다. 뻔한 결말은 팽팽히 당겨진 끈을 클라이막스 없이 슬며시 놓아 버린것 처럼 약간 공허하다. 정신착란상태에서 자백한 증거는 무효가 아닌가? 웬지 영화 [가타카]를 떠올리게 된다. 열성 유전인자에 의해 하위계급일 수 밖에 없는 빈센트가, 태어날때부터 계획된 우수하고 완벽한 인간의 세포를 이용한 사기극을 통해 결국 우주비행사가 된다는... 여기서 총경인 링컨파웰은 완벽하고 우수한 모든것을 가진 자, 바다쪽으로 수영을 하다가도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는 동생을 대변하고, 반면 벤 라이히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즉 돌아갈 곳이 없는 형 빈센트에 오버랩되면서 결국 자아id가 파괴되고만 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평균적인(혹은 이하) 유전인자와 지능, 상상력을 지닌 나는 지금 슬프다. 알프레드 베스터의 후속작을 읽고 싶은데 하나도 검색되지 않으니. 절판되었거나 출판되지 않았거나.. |
| 실제 사람의 마음을 읽어 낸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리라. 마음을 읽어내는 초능력을 가진 자들이 그 능력으로 직업을 삼아 살아가는 세계. 실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것인가? 자기 자신도 모르는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말도 있듯이 지금 언뜻 생각나는 생각도 있는거고 어딘가에서 떠도는 마음도 있고 위치도 모를정도로 짱박혀서 찾지도 못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무의식이라는 것도 있는데 말이다. 이 책에서도 그 다양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1,2,3급으로 각각 그 능력의 정도에 따라 나누고 그게 가능한자를 에스퍼라고 부른다. 기본구조야 전 태양계적인 기업망을 보유하고있는 기업가 벤 라이히와 1급에스퍼 링컨파웰간의 대결이지만 사람마음에 대한 형상화와 그 구조에 대해 파고드는 박진감넘치는 묘사 등을 SF적형식으로 재미있게 그려낸 소설이다. 1953년에 이 책을 지었다고 되어있는데 우리가 한참 동족간의 징그러운 살상을 마무리지을려는 때에 나온 셈인데 거의 5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읽어도 별 무리가 없이 읽혀지는 점이 인상깊다. |
|
에스퍼. 인간정신은 또하나의 우주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소수에 대한 다수의 억압, 혹은 그 역사적 구도. 모든 것은 정신에서 시작되어 정신에서 끝난다? SF임에도, 최첨단적 구조에도, 결말은 다시 마음으로 돌아온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그리 세련된 SF는 아니다. 마음으로 돌아온다고 세련된 것이 아니란게 아니라, 뭔가 좀 더 커다래질수 있었던 세계를, 인간의 마음 혹은 심리라는 것 속에 끼워넣으려했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 때문에 SF라고만 말하기도 좀 꺼려지는 것이 사실. 그러나 스스로를 파괴해가는 인물의 과정을 박력있고 매력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손에서 놓을수 없는 작품이었다.
나는 이 책에서 주인공이자 모든 선의 친구, 조력자, 빛의 주인인 링컨 파웰보다는, 그에게 쫓기는, 악한, 스스로 파괴해가는, 그럼에도 삶의 의지로 불타고있는 벤 라이히쪽을 훨씬 편애한다. 모든걸 다 가졌고 선의 쪽이라는 잘난척하는 에스퍼 파웰을, 내가 마치 벤 라이히라도 된것처럼 증오하는 것이다. 그는, 가장 뛰어난 능력을 지닌 주제에, 자신들의 이익을 에스퍼들의 이익글, 그리고 그 밑에 정교하게 짜여있는 보통인간들의 지배구조를 유지하려는 인간이다. 그러면서 그는 거짓말쟁이다.
결국, 그도 벤 라이히와 마찬가지로 또하나의 인격, 자신이 제어하지 못하는 무언가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있는 인간이었다는 설정을 붙인 것 같지만, 어쩐지 그 이면이라는 것도 맘에 안든다. 거짓말쟁이라고? 자신은 타인의 마음을 훤히 내다보고, 맘대로 조종하고, 비틀고 바꾸는 주제에, 그 자신이 지닌 약점이라는 것 조차 거짓말쟁이라니. 온갖 잘난척을 하는 주제에 그 철옹성을 누그러뜨릴만한 치명적인 약점은커녕, 더욱더 인간의 마음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잘난척 갖고놀고 있다니, 맘에 안든다.
난 결코 그만큼 선량하지도 않고 잘나신것도 없고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수도 없고 기사도정신으로 무장되어있지도 않으니까. 하지만 그가 모든걸 다 알고 있다는 듯 모든걸 다 해결하고 마침내 사랑까지 쟁취하는걸 보면, 역시 맘에 안든다. 그는 아무리 거짓말쟁이라는 약점을 갖고있다고 해도, 어찌보면 신과 비슷한 종류의 인간이니까. 전지전능까진 않겠지만 보통인간에 비하면 그는 충분히 전능하다. 한 사람을 그토록 파괴시키고 망가뜨리고 이드, 자아, 초자아를 구멍이 숭숭뚫린 너덜너덜한 해면체모양으로 들쑤셔놔서 마침내 완벽히 <파괴>시켜버렸으니까. 아무리 그것이 정의라는 이름을 빌리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의 인간 자체가, 그의 중신 자체가 맘에 안드는 것이다.
반면 벤 라이히. 그는 악인인데도, 뭔가 시종일관 계속 나를 안타깝게 하면서 연민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그는 초능력자는 아니지만, 힘있고 잘생기고 적어도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타파하고 그 '전지전능'이라 할 수 있는 에스퍼들에 맞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길을 스스로직접 개척하고자했다. 그는 악인이었지지만 처절했고, 아름다웠고, 그리고 불쌍하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죽이고싶다는 충동에 시달리면서 한편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고 그러면서도 완벽하 자신을 몰랐던 불쌍한 사내다.
그는 악이지만,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아무것도 상관없는 가차없는 사내이긴 하지만, 적어도 인간이었다. 에스퍼는 아니지만, 저렇게 다 아는척 높은곳에서 팔장끼고 있는 에스퍼들을 골탕먹일 만큼 충분히 지능적이고 영리한 사람. 아마도 '아무런 특수능력 없는;'인간으로서 최상급까지 올라갈 수 있다면 이런 사람이 되겠지. 하지만 나는 그가 안타깝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상처 입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훌륭한 능력을 지닌 인간이었음에도, '심리'라는 작은, 그러나 치명적인 늪에 빠져서 그것에 다리가 걸려서 마침내 고꾸라지고 <파괴>되어가는 점이. 그러니까, 내가 라이히에게 느끼는 연민이란, 불완전한 - 육체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인간 전반에 대한 연민 혹은 안쓰러움 동조감 그 비슷한 것일 것이다.
쓸데없이 감상적인가? 그렇다. 나도 그 치명적인 '심리' 혹은 '감정'이라는 것을 갖고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게다가 나란 인간은 더더욱이나 이론이나 실재라는걸 것보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기울이는 '바보'이기 때문에. 에스퍼들의 눈에 보면 분명 나는 '바보'중에서도 상 바보 축에 들어가겠지. 감상적이고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지나치게 자기 속에 빠져있는, 나에대한 비웃움. 내가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이 나에게 종종 보내는 그 차가운 비웃음.
결국 그를 파괴한 것은 스스로의 그 '감정' 혹은 '심리'라 불리는 덫 때문이었다. 그의 속에 있던 작고도 거대한, 마치 유리구체처럼 투명하고 영롱했던 그 자신은 스스로의 '심리'에 의해 금이 가고 균열이 일어나고 부스럭거리며 흔들리고 깨어져서, 마침내 그 분신들을 암흑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조금씩이다가, 점점 속도를 붙이다가 마침내는 민들레 홀씨만한 자그마한 조각 한 조각마저 허무의 암흑 속에 파묻히는. 그 암흑은 절대적 공간인 우주일수도 있고 시간일수도 있고 공간일수도 있다. 그는 그렇게 <파괴>되어버렸다. 완벽히.
아아, 그러니까 난 벤 라이히를 미워할 수 없다. 이 순간 나는 벤 라이히란 이름을 언제까지고 기억할 것임을 결심한다. 그때 그는 좀 더 다른 인간으로 내 속에서 다시 태어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렇게 교만한 에스퍼들에게 형편없이 당해버리는 불쌍한 인간으로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소설 결말에서 완벽히 '탈색'되었던 그의 빈 마음을, 인생의 긴 공백을 내가 다시 채워줄 것이다. 그러니까 기다려주길, 벤. 나는 당신을 잊지 않겠어.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던 당신을. [인상깊은구절] yes, said the "yeser". 시작이 1/2입니다. 6입니다. 7입니다. 8입니다. 9입니다. 그리고 무한히! 긍정적으로, 예스맨이 말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예스맨이 말했습니다. 이완, 평안, 그리고 이해가 시작되었습니다.파괴>파괴>파괴> |
| 워낙 이 책에 대한 찬사를 많이 들어서일까 다 읽고 난 뒤의 첫느낌은 '낡았다'였다. 그런 느낌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50년 전에 나온 책을 50년 뒤에 읽고 있어서 일것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낡았다'라는 감정은 지나간 50년 동안 이 책이 끼친 영향을 나타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파괴된 사나이'에서 보여주었던 것들은 지금은 아주 익숙할 정도로 이곳 저곳에서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무대는 24세기. 이야기의 큰 줄기는 경쟁사의 회장 드 코트니를 죽인 재벌총수 벤 라이히와 그를 쫓아 살인을 캐내려는 초능력자 경찰 링컨 파웰의 대결이다. 살인을 저지른 악인 재벌과 그를 쫓는 경찰이라는 플롯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봐왔고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진부한 구성이다. 그러나 50년전 소설의 구태의연한 플롯이 지금 봐도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그건 전적으로 작가인 베스터의 힘이다. 베스터는 이 선악대결을 마치 1 VS 1로 묘사하기 보다는 벤 라이히(그는 악인이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라는 인물의 악행과 은폐 행각의 주변인물로 링컨 파웰을 그려내고 있다. 벤 라이히의 진정한 적(?)은 그의 내면에 있는 '얼굴없는 사나이'이고 링컨 파웰은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벤 라이히의 그 진정한 적의 정체를 밝혀주는 인물이다. 베스터는 현란한 문체와 라이히-파웰 대결 구도로 재미를 유지하면서 프로이드 정신분석이론을 끼워넣어 그가 헤집고 싶어했던 인간 내면 구조를 묘사한다. 프로이드 정신분석이론을 이용한 인물 갈등 묘사는 지금은 진부하기 그지 없는 것이지만 50년대 SF에서 이런 걸 도입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고 '얼굴없는 사나이'와 벤 라이히, 바바라, 드 코트니를 뒤섞었다가 깔끔하게 교통정리하는 솜씨는 경탄할 정도였다. 이야기를 정리해주는 링컨 파웰 역시 베스터식 인물 묘사에서 피하지 못하는데 그는 그 내면의 '거짓말쟁이 애이브'로 종종 빗대어 지면서 흥미를 더한다. 그 외에도 이 소설의 미덕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회 휴고상이 이 소설에 주어진 건 잘못 끼워진 첫 단추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그 해에 아서 C 클락의 "유년기의 끝"과 시더도어 스터전의 "인간을 넘어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베스터의 가장 큰 부덕(?)은 자신의 이야기에 인색한 것이다. 그의 현란한 묘사와 긴박한 문체는 클락이나 스터전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경지였지만 그는 결국 프로이드를 끌어다가 쓰고 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 뒤에 베스터가 숨어있다는 건 거의 감지하지 못했다. 50년대의 상황을 당연히 알 수 없지만 '유년기의 끝'과 '인간을 넘어서'가 모두 인간 진화를 다루고 있어 표가 갈라진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덧붙여 본다. 알프레드 베스터의 경력에서 아직도 거론되어지는 작품은 이 소설과 2번째 작품인 "타이거! 타이거!"뿐이다. 너무 화려한 시작을 한 탓인지 그는 이후 주목할만한 작품을 써내지는 못했지만 로저 젤라즈니가 자신의 작품을 포기하면서까지 베스터의 작품에 매달리다가 유명을 달리 한 것으로 보면 그가 후배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나보다. PS) 초능력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현대의 인터넷이 떠오른다. PS2) 번역판에서 에스퍼라고 번역된 것은 peeper라는 단어인데 이것은 엿보는 사람이란 뜻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