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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배를 보고 하염없이 우는 사람,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치는 사람, 애틋한 눈으로 손을 흔드는 사람, 간신히 배에 올라탄 누군가는 차마 저 편의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울음을 끅끅 삼키며 이내 죄인처럼 고갤 푹 숙였을 그때 그 사람. 1945년 일본이 패전한 후 일본으로 송환되는 사람들이 탄 배가 떠나가는 사할린의 어느 바닷가에선 이런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패전한 나라, 일본인은 자기들의 나라로 돌아가는데 마침내 해방된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는 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언젠가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에서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고도 응어리진 채 가슴속에 담긴 한(恨)을 풀어놓는 사람의 인터뷰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고도 모자라 사람을 물건처럼 쓰임에 따라 이리저리 이동시키기까지... 헌데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작 강제로 보내놓고 전쟁에서 지자 국적을 떠나 자기들 나라의 사람만, 순수 일본인만 챙겼다. 일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니 그런 천하에 몹쓸 짓들도 자행한 걸테니까. 하지만, 강제로 떠나온 나의 조국, 한국은... 어째서 배를 보내지 않는 걸까, 어째서 자신들의 국민을 데려가지 않는 걸까, 자신들의 존재를 모르는 걸까...? 사할린한인은 설움과 비탄에 잠긴 채, 한동안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한다. 보는 내내, 답답하고 안쓰럽고 울컥 화가 치밀다가 이내 슬퍼졌다.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어째서 그땐 그랬을까...? 그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한 책을 만났다. <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 ~ 사할린한인 문제를 둘러싼 한·러·일 3국의 외교협상 ~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 있을까? 이 책은 한국, 소련(러시아),일본의 공문서와 관련 자료들을 참고하여 어째서 1945년 8월 독립을 하고도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온 한인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그 땅에 버려질 수밖에 없었는지 '사할린한인 문제'에 대해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 { 일본은 강제로 데려갔고, 소련은 고향 길을 막았고, 비정한 모국은 그들을 버렸다? } 표지에 있는 위와 같은 강렬한 문구대로였을까? 과연 진실은?! 사할린한인 문제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배경과 귀환에 관한 논의, 한국, 일본, 소련 정부의 입장과 외교협상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가슴이 묵직해짐과 동시에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들에 대한 씁쓸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원래 사할린은 아이누, 기랴크, 오로크인 등 섬주민이 있었는데 이를 일본과 유라시아인들이 차츰 살기 시작했고 러.일 전쟁 후로는 일본이 가로채어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어 살다시피 하던 곳인데 일본이 패전하게 되면서 소련이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은 패전 후 처음엔 외교권을 상실한 문제와 해외 일본인을 받아들이기 버거운 상태였고 이후엔 자신들의 국민외엔 자신들에게 책임을 지라고 할까봐 두려워 모르쇠로 일관하고 소련은 전쟁에서 죽어나간 자국민들로 인해, 그리고 빠져나간 일본인을 대신해 한인들로 노동력을 메우고자 하였고 나라 안의 국민도 제대로 건사를 못해 쩔쩔매던 한국 정부에게 사할린한인은 관심조차 둘 수 없었던 대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 이후 그렇게된 모든 책임과 원인이 일본에 있는데다 소련과의 국교가 없어 일본을 통해 사할린한인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1970년대경 소련과 일본의 관계가 소련 미그기 망명사건으로 경색되어 10년 가까이 제자리 걸음을 하다가 일본에서 1987년 사할린 잔류 한국.조선인문제 의원간담회가 결성됨으로써 외교적 교섭을 다시 활발히 하게 되면서 사할린한인들이 한국(고향)을 방문하게도 되고 한인1세의 영주귀국사업으로도 발전하게 되었다(p225~227)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 외교, 정치적 노력없이는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돈도 많아야하고 친분관계도 돈독해야하며, 그걸 아우를 수 있을만한 능력있는 인맥들과 뜻을 같이 모아야 뭐가 이루어져도 이루어진다. 헌데 그 당시엔 그럴만한 돈도, 친분도, 모을 힘도 없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남과 북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사할린한인의 남한으로의 송환이 달갑지 않았던 북한의 만만치 않았던 방해도 있었던 듯하다. *** 오랜 세월이 걸려서야 마침내 고국에 돌아온, 사할린에 있는 가족들을 두고라도 영주귀국을 택한 사할린한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할린한인 문제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던 사실들이 이 책을 통해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든다. 물론 아직 자료도 부족하고 연구도 더 많이 필요하므로 책에서도 언급하듯 전담하는 기관이 있어서 관련 자료를 꾸준히 모으고 연구를 계속 해나가면 좋겠다.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하듯 사할린과 관련된 자료정리에 있어 발빠르게 움직인 일본은 이미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제안을 준비하기 위해 연구진이 협의차 일본 외무성을 방문했을 당시, 근거를 내어놓으라는 그들 앞에서 당혹감과 굴욕감(p27)을 느꼈다니 무척이나 씁쓸하다. 그렇기에 다양한 사료 발굴과 체계적인 정리는 물론이고 일회성으로 그치는 게 아닌 꾸준한 연구 성과를 기대해본다. 또한 그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누구의 잘잘못이나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가장 먼저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나라가, 그런 대한민국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시대의 아픔을 그 어느때보다도 무척 많이 느꼈고, 나라마다 바라보는 시각의 다름과 견해 차이를 통해 국력과 외교가 새삼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으며 모두와 함께 하고픈, 반드시 들려주고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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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프지 않았어도 갔고, 오고팠어도 오지 못한 사람들. 사할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는 수많은 자료와 연구, 정리를 통해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다. 우리가 한인이라 부르는 이들은 많다. 미국의, 일본의, 러시아의, 광활한 해외의 수많은 한국계 이민자들을 우리는 한인이라 부른다. 주요 지역에 사는 한인들은 그만큼 많은 관심을 받는다. 미국의 한인이 금자탑을 세우면 한국인이라 칭송받고 일본의 한인들이 거리로, 언론으로 나서면 항일기의 이야기로 언론이 뜨거워진다. 러시아의 고려인들이 영웅으로, 근면한 사람들로 칭송받던 역사는 자랑스레 인터넷 곳곳에서 퍼지고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비중이 적은 지역에 사는 한인들은 소외된다. 사할린 한인들도 그렇다.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상에서도 사할린 한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간간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도 거진 한인들이 사할린에 가서 사할린의 다른 민족들 식습관에도 영향을 주었니, 어쩌니하는 이야기가 고작이며 그들의 고된 삶과 귀향의 열망에 주목하는 자는 꽤나 드물다. 사실상, 일반 대중 중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할린 한인들의 고충과 고뇌에 초점을 맞추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이 책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애초 알지 못했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리고 사실상 알려고 하여도 알 수도 없었던 수많은 이야기가 폭포수 쏟아지듯 쏟아져 나온다. 이 책을 통해 살펴본 사할린 한인들의 이야기는 비극 그 자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억압하던 시절, 몇몇 한인들이 노역자로서 사할린에 끌려간다. 춥디추운 북쪽 땅에 최하층 계급으로 끌려가 힘겨운 노동을 한다. 거기서 그치는 것도 아니고 땅 주인도 바뀌어 버린다, 바뀐 땅 주인도 그들을 인간이 아닌 노동력으로 본다. 주인 바뀐 땅에서 그들은 국적도 없다. 고향이 이남이라도 땅 주인이 이북과 친하니 국적도 제대로 못세운다. 몇몇은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품고 국적 바꾸니 조금 지나니 이젠 이북 쪽이라고 땅 주인이 눈살을 찌뿌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일본, 러시아, 한국, 북한, 네 나라라는 거대하고도 무책임한 권력 사이에서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휘날린다. 그러다가 조국의 조사단이 와선 묻는다, 당신 국적이 어디더냐. 그들의 비참하고도 애석한 고초가, 이제서야 대중들에게 제대로 밝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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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들어서 한국인의 이주는 1900년도 하와이에 사탕수수농장으로 이주간 것을 최초의 이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이 해외로 나간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전 왜구가 조선반도에 출몰해서 민간인을 납치할 당시 에스파냐 노예상인에게 넘겨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시작된 이주역사는 일제에 들어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고려인으로 대표되는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된 동포들과 조선족으로 대표되는 만주에 거주하는 한인들 그리고 재일동포 이렇게 나뉘어지지만 사할린으로 강제노역을 산 이들에게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945년 8월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꾸어버린 일이 USS BB-63번함 미주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일본을 분할하려고 했던 미, 영, 중(중화민국),소는 결국은 한반도를 분할해버렸지만 본디 일본열도를 분할통치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일본이 러일전쟁을 승리하면서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가지고간 사할린을 다시 소련영토로 편입한 것을 시작으로 본토는 미국 큐슈와 시코쿠는 영국과 중화민국 북해도는 소련이 점령하려고 했습니다만 결국은 사할린만 소련땅으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결국 생환하지 못했습니다. 생환의 길이 막힌 조선인은 사할린에서 반강제로 정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1965년 한일밀담이 시작되면서 점점 그 길은 막히기 시작했고 점점 그들은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틀에서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할린 동포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일본은 납북된 자국민을 되찾기위해 공개적으로 비공개적으로 외교라인을 전방위로 가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납북된 인사와 국군포로가 얼마나되는지조차 파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사처리된 (故)조창호 중위는 국군포로 중 최초로 남한으로 탈출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이들이 전사처리 되었지만 실제로는 많은 이들이 북한에 체류중이라는 증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전혀" 그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사할린 동포도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 책은 바로 우리가 잊고 있었던 민족을 되찾아오는 것에 대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전혀 모르고 살았던 한국인에게 또 다른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이 책을 읽을 의의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부디 사할린의 동포들이 조국의 땅을 밟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랄뿐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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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문제가 있습니다. 이족(異族)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도 치욕적이기는 합니다만, 그보다 더
죄스러운 건 어떤 경로로건 식민 통치가 종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악한 체제에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한 동포들을 되돌아오게 하지
못했고, 아예 그런 일이 없는 양 까맣게 잊고 딴청을 피웠던 그 오랜 역사입니다. 미국은 여튼 자기 국적을 가진 "국민"들을
송환하기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않고 나서지 않습니까. 식민지로 떨어진 부끄러운 내력보다 더 심각한 죄의식을 가져야 할 게 바로
"동포에 대한 나몰라라식 방치"입니다. 이는 소위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이슈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분들은 엄연히
피해자인데도 일인도 아닌 동족에 의해 손가락질 당할까봐 그 오랜 세월 동안 숨어 사신 것 아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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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대한민국은 외부로 보이는 면만 번드르르 하지 속 알맹이는 상처 투성이인 이 책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은 수 많은 역사의 아픔과 고통의 편린들 중에서도 "일본은 강제로 데려갔고, 소련은 고향 길을 막았고, 비정한 모국은 그들을 버렸다"는 지금이라도 우리는 우리의 자주적인 삶과 자주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공포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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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배울 때, 가장 씁쓸하며 안타까운 시기, 바로 조선멸망,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입니다. 국가가 존재해야 국민이 존재하며, 번영과 평화,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발전했고, 대내외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며, 활발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조국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게 다가옵니다. 한 세기 전, 우리나라는 일제의 침략을 받았고, 결국 국권을 피탈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위정자들은 친일이 되거나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일반적인 서민들은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등으로 피해를 겪었습니다. 이유도 모른체, 전쟁이 총알받이가 되거나 제국주의 야욕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해방 후,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해당 지역에 정착하여 고난의 인생을 사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지만, 제대로 모르는 사실, 역사적 사건, 이젠 미루지 말고 주목하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강제이주와 귀국문제로 오랜 기간 차별과 피해를 받았던 한인 이주민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중앙아시아 고려인, 중국에 존재하는 조선족과 극동 러시아 지방에 고루 분포하고 있는 한인 정착인 등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이 많습니다. 책의 말대로 일본이 끌고 갔고, 일본을 피해 잠시 한반도를 벗어났지만, 소련에 의해서 귀국길이 가로막혀, 이데올로기적 요소에 피해를 당했던 사람들, 그들의 2세, 3세, 4세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고, 조국을 잊지않게 위해 다양한 형태로 문화적 계승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를 비롯한 관련기관이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조차, 외면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심각한 오류이자, 사회문제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국가의 존재는 의미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관련 정보와 사건, 피해자 보호와 대우를 위해서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암담한 면이 많고, 우리 근현대사의 절망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할 때, 부정의 요소, 아픔의 역사도 함께 알아야 할 것이며, 이를 현재의 관점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주변국과의 협조를 바탕으로 정부나 민간, 기업 차원의 노력이 절실해 보입니다. 또한 평화를 외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전쟁을 무조건 막고,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먼 옛날의 역사도 아닌, 근현대사의 아픔이라 더욱 아프게 다가오고, 역사전쟁이나 영유권 다툼으로 번질 우려도 있는 만큼, 보다 전략적인 접근과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이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과 사건입니다. 접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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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사할린 한인이라 부른다. 재일 한국인에 비해 관심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 광복 이후 고국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였고, 러시아, 일본,미국에 외면당해야 했던 사할린 동포는 그렇게 방치되고 있었다. 이 책은 왜 그들이 타향에서 방치되어 살아와야 했는지, 고국은 왜 그들을 외면했는지, 1945년8월 15일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의 흐름을 짚어나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