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86%
  • 리뷰 총점8 14%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10.0
  • 30대 10.0
  • 40대 9.0
  • 50대 1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사할린한인을 말하다,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사할린한인을 말하다,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내용보기
떠나가는 배를 보고 하염없이 우는 사람,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치는 사람, 애틋한 눈으로 손을 흔드는 사람, 간신히 배에 올라탄 누군가는 차마 저 편의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울음을 끅끅 삼키며 이내 죄인처럼 고갤 푹 숙였을 그때 그 사람.1945년 일본이 패전한 후 일본으로 송환되는 사람들이 탄 배가 떠나가는 사할린의 어느 바닷가에선 이런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패전한
"사할린한인을 말하다,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내용보기

떠나가는 배를 보고 하염없이 우는 사람,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치는 사람, 애틋한 눈으로 손을 흔드는 사람, 간신히 배에 올라탄 누군가는 차마 저 편의 사람을 바라보지 못하고 울음을 끅끅 삼키며 이내 죄인처럼 고갤 푹 숙였을 그때 그 사람.


1945년 일본이 패전한 후 일본으로 송환되는 사람들이 탄 배가 떠나가는 사할린의 어느 바닷가에선 이런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패전한 나라, 일본인은 자기들의 나라로 돌아가는데 마침내 해방된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는 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언젠가 우연히 보게 된 다큐멘터리에서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고도 응어리진 채 가슴속에 담긴 한(恨)을 풀어놓는 사람의 인터뷰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고도 모자라 사람을 물건처럼 쓰임에 따라 이리저리 이동시키기까지... 헌데 일본이라는 나라는 정작 강제로 보내놓고 전쟁에서 지자 국적을 떠나 자기들 나라의 사람만, 순수 일본인만 챙겼다. 일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니 그런 천하에 몹쓸 짓들도 자행한 걸테니까. 하지만, 강제로 떠나온 나의 조국, 한국은... 어째서 배를 보내지 않는 걸까, 어째서 자신들의 국민을 데려가지 않는 걸까, 자신들의 존재를 모르는 걸까...?


사할린한인은 설움과 비탄에 잠긴 채, 한동안 하염없이 기다렸다고 한다.


보는 내내, 답답하고 안쓰럽고 울컥 화가 치밀다가 이내 슬퍼졌다.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어째서 그땐 그랬을까...? 그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만한 책을 만났다.


<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 ~ 사할린한인 문제를 둘러싼 한·러·일 3국의 외교협상 ~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 있을까? 이 책은 한국, 소련(러시아),일본의 공문서와 관련 자료들을 참고하여 어째서 1945년 8월 독립을 하고도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온 한인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그 땅에 버려질 수밖에 없었는지 '사할린한인 문제'에 대해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 


{ 일본은 강제로 데려갔고, 소련은 고향 길을 막았고, 비정한 모국은 그들을 버렸다? }


표지에 있는 위와 같은 강렬한 문구대로였을까? 과연 진실은?!


사할린한인 문제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배경과 귀환에 관한 논의, 한국, 일본, 소련 정부의 입장과 외교협상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가슴이 묵직해짐과 동시에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들에 대한 씁쓸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원래 사할린은 아이누, 기랴크, 오로크인 등 섬주민이 있었는데 이를 일본과 유라시아인들이 차츰 살기 시작했고 러.일 전쟁 후로는 일본이 가로채어 자신들의 영토로 만들어 살다시피 하던 곳인데 일본이 패전하게 되면서 소련이 차지하게 되었다. 


일본은 패전 후 처음엔 외교권을 상실한 문제와 해외 일본인을 받아들이기 버거운 상태였고 이후엔 자신들의 국민외엔 자신들에게 책임을 지라고 할까봐 두려워 모르쇠로 일관하고 소련은 전쟁에서 죽어나간 자국민들로 인해, 그리고 빠져나간 일본인을 대신해 한인들로 노동력을 메우고자 하였고 나라 안의 국민도 제대로 건사를 못해 쩔쩔매던 한국 정부에게 사할린한인은 관심조차 둘 수 없었던 대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 이후 그렇게된 모든 책임과 원인이 일본에 있는데다 소련과의 국교가 없어 일본을 통해 사할린한인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1970년대경 소련과 일본의 관계가 소련 미그기 망명사건으로 경색되어 10년 가까이 제자리 걸음을 하다가 일본에서 1987년 사할린 잔류 한국.조선인문제 의원간담회가 결성됨으로써 외교적 교섭을 다시 활발히 하게 되면서 사할린한인들이 한국(고향)을 방문하게도 되고 한인1세의 영주귀국사업으로도 발전하게 되었다(p225~227)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경제, 외교, 정치적 노력없이는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돈도 많아야하고 친분관계도 돈독해야하며, 그걸 아우를 수 있을만한 능력있는 인맥들과 뜻을 같이 모아야 뭐가 이루어져도 이루어진다. 헌데 그 당시엔 그럴만한 돈도, 친분도, 모을 힘도 없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남과 북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사할린한인의 남한으로의 송환이 달갑지 않았던 북한의 만만치 않았던 방해도 있었던 듯하다. 



*** 



오랜 세월이 걸려서야 마침내 고국에 돌아온, 사할린에 있는 가족들을 두고라도 영주귀국을 택한 사할린한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할린한인 문제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던 사실들이 이 책을 통해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 든다. 물론 아직 자료도 부족하고 연구도 더 많이 필요하므로 책에서도 언급하듯 전담하는 기관이 있어서 관련 자료를 꾸준히 모으고 연구를 계속 해나가면 좋겠다. 


책의 프롤로그에서도 언급하듯 사할린과 관련된 자료정리에 있어 발빠르게 움직인 일본은 이미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 제안을 준비하기 위해 연구진이 협의차 일본 외무성을 방문했을 당시, 근거를 내어놓으라는 그들 앞에서 당혹감과 굴욕감(p27)을 느꼈다니 무척이나 씁쓸하다. 그렇기에 다양한 사료 발굴과 체계적인 정리는 물론이고 일회성으로 그치는 게 아닌 꾸준한 연구 성과를 기대해본다. 또한 그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누구의 잘잘못이나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가장 먼저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나라가, 그런 대한민국이 되어주길 바래본다. 


시대의 아픔을 그 어느때보다도 무척 많이 느꼈고, 나라마다 바라보는 시각의 다름과 견해 차이를 통해 국력과 외교가 새삼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으며 모두와 함께 하고픈, 반드시 들려주고픈 이야기였다.    


 



k****e 2018.04.30. 신고 공감 5 댓글 10
리뷰 총점 종이책
소외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내용보기
가고프지 않았어도 갔고, 오고팠어도 오지 못한 사람들.사할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는 수많은 자료와 연구, 정리를 통해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다.우리가 한인이라 부르는 이들은 많다. 미국의, 일본의, 러시아의, 광활한 해외의 수많은 한국계 이민자들을 우리는 한인이라 부른다. 주요 지역에 사는 한인들은 그만큼 많은 관심을 받는다. 미국의 한인이 금자탑을 세우면 한
"소외된 사람들" 내용보기

가고프지 않았어도 갔고, 오고팠어도 오지 못한 사람들.

사할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는 수많은 자료와 연구, 정리를 통해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다.


우리가 한인이라 부르는 이들은 많다. 미국의, 일본의, 러시아의, 광활한 해외의 수많은 한국계 이민자들을 우리는 한인이라 부른다. 주요 지역에 사는 한인들은 그만큼 많은 관심을 받는다. 미국의 한인이 금자탑을 세우면 한국인이라 칭송받고 일본의 한인들이 거리로, 언론으로 나서면 항일기의 이야기로 언론이 뜨거워진다. 러시아의 고려인들이 영웅으로, 근면한 사람들로 칭송받던 역사는 자랑스레 인터넷 곳곳에서 퍼지고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비중이 적은 지역에 사는 한인들은 소외된다. 사할린 한인들도 그렇다.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상에서도 사할린 한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간간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도 거진 한인들이 사할린에 가서 사할린의 다른 민족들 식습관에도 영향을 주었니, 어쩌니하는 이야기가 고작이며 그들의 고된 삶과 귀향의 열망에 주목하는 자는 꽤나 드물다. 사실상, 일반 대중 중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할린 한인들의 고충과 고뇌에 초점을 맞추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이 책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애초 알지 못했던, 알려고 하지 않았던, 그리고 사실상 알려고 하여도 알 수도 없었던 수많은 이야기가 폭포수 쏟아지듯 쏟아져 나온다. 이 책을 통해 살펴본 사할린 한인들의 이야기는 비극 그 자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억압하던 시절, 몇몇 한인들이 노역자로서 사할린에 끌려간다. 춥디추운 북쪽 땅에 최하층 계급으로 끌려가 힘겨운 노동을 한다. 거기서 그치는 것도 아니고 땅 주인도 바뀌어 버린다, 바뀐 땅 주인도 그들을 인간이 아닌 노동력으로 본다. 


주인 바뀐 땅에서 그들은 국적도 없다. 고향이 이남이라도 땅 주인이 이북과 친하니 국적도 제대로 못세운다. 몇몇은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품고 국적 바꾸니 조금 지나니 이젠 이북 쪽이라고 땅 주인이 눈살을 찌뿌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일본, 러시아, 한국, 북한, 네 나라라는 거대하고도 무책임한 권력 사이에서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휘날린다.


그러다가 조국의 조사단이 와선 묻는다, 당신 국적이 어디더냐.


그들의 비참하고도 애석한 고초가, 이제서야 대중들에게 제대로 밝혀진다.

k****8 2018.05.0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내용보기
근대 들어서 한국인의 이주는 1900년도 하와이에 사탕수수농장으로 이주간 것을 최초의 이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이 해외로 나간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전 왜구가 조선반도에 출몰해서 민간인을 납치할 당시 에스파냐 노예상인에게 넘겨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시작된 이주역사는 일제에 들어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내용보기

근대 들어서 한국인의 이주는 1900년도 하와이에 사탕수수농장으로 이주간 것을 최초의 이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인이 해외로 나간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전 왜구가 조선반도에 출몰해서 민간인을 납치할 당시 에스파냐 노예상인에게 넘겨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시작된 이주역사는 일제에 들어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고려인으로 대표되는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된 동포들과 조선족으로 대표되는 만주에 거주하는 한인들 그리고 재일동포 이렇게 나뉘어지지만 사할린으로 강제노역을 산 이들에게는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945년 8월 동아시아의 판도를 바꾸어버린 일이 USS BB-63번함 미주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일본을 분할하려고 했던 미, 영, 중(중화민국),소는 결국은 한반도를 분할해버렸지만 본디 일본열도를 분할통치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일본이 러일전쟁을 승리하면서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가지고간 사할린을 다시 소련영토로 편입한 것을 시작으로 본토는 미국 큐슈와 시코쿠는 영국과 중화민국 북해도는 소련이 점령하려고 했습니다만 결국은 사할린만 소련땅으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결국 생환하지 못했습니다. 생환의 길이 막힌 조선인은 사할린에서 반강제로 정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조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는 언제든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1965년 한일밀담이 시작되면서 점점 그 길은 막히기 시작했고 점점 그들은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틀에서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할린 동포에 대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일본은 납북된 자국민을 되찾기위해 공개적으로 비공개적으로 외교라인을 전방위로 가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정부는 납북된 인사와 국군포로가 얼마나되는지조차 파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사처리된 (故)조창호 중위는 국군포로 중 최초로 남한으로 탈출에 성공한 인물입니다. 이들이 전사처리 되었지만 실제로는 많은 이들이 북한에 체류중이라는 증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전혀" 그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사할린 동포도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 책은 바로 우리가 잊고 있었던 민족을 되찾아오는 것에 대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전혀 모르고 살았던 한국인에게 또 다른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 이 책을 읽을 의의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부디 사할린의 동포들이 조국의 땅을 밟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바랄뿐이었습니다.

r****2 2018.05.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내용보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문제가 있습니다. 이족(異族)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도 치욕적이기는 합니다만, 그보다 더 죄스러운 건 어떤 경로로건 식민 통치가 종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악한 체제에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한 동포들을 되돌아오게 하지 못했고, 아예 그런 일이 없는 양 까맣게 잊고 딴청을 피웠던 그 오랜 역사입니다. 미국은 여튼 자기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내용보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문제가 있습니다. 이족(異族)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도 치욕적이기는 합니다만, 그보다 더 죄스러운 건 어떤 경로로건 식민 통치가 종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악한 체제에 끌려가 온갖 고생을 한 동포들을 되돌아오게 하지 못했고, 아예 그런 일이 없는 양 까맣게 잊고 딴청을 피웠던 그 오랜 역사입니다. 미국은 여튼 자기 국적을 가진 "국민"들을 송환하기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않고 나서지 않습니까. 식민지로 떨어진 부끄러운 내력보다 더 심각한 죄의식을 가져야 할 게 바로 "동포에 대한 나몰라라식 방치"입니다. 이는 소위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이슈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분들은 엄연히 피해자인데도 일인도 아닌 동족에 의해 손가락질 당할까봐 그 오랜 세월 동안 숨어 사신 것 아니겠습니까.

이 책은 어쩌면 우리 현대사의 진짜 아킬레스 건이라 할 사할린 동포 송환 문제에 대해, 국내에서는 거의 최초라 할 만큼 진지한 접근을 시도한 연구서입니다. 본격 연구서라서 현대사, 그 중에서도 2차 대전 후반부에 대한 소양이나 (이른바)북방 영토 문제에 대한 이해, (한국인이라서 당연하기는 하나) 식민 지배 기간의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지식이 있어야 무리 없이 읽어갈 수 있습니다. 허나 좀 묘한 건, 설령 지식이 없어도 사명감이나 역사에 대한 죄의식만 갖춘 독자라면, 오히려 이 책으로 첫걸음을 떼어가며 공부를 할 동기, 수단도 마련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 그런 독자가 하나 보여서 하는 말이고요. 그 까닭이라면, 연구서라는 본분 외에 저자들께서 각별한 사명감으로 필치를 잇고 지면을 채우셨기에, 문외한인 독자에게도 어느덧 그 진의가 전해져, 무지와 자격의 결여라는 먼 도랑을 건너게 해 주는 일종의 다리 구실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소련이 붕괴하고 나서 세계의 역사학자들에게는 대략 20년 전, 하나의 보물 창고, 크리스마스 선물 보따리가 왕창 주어졌는데, 그게 바로 구 소련 기밀 문서의 공개입니다. 한국전 발발 책임 소재에 대해서도 그간 남침설, 남침 유도설, 북침설 등 온갖 입장이 난무했으나, 저 사건(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던 자료)을 계기로 특히 한국의 박명림 교수가 거의 확고부동한 정설로서 "남침설"의 기반을 세운 적 있습니다. 저는 이 책도, 사할린 한인 강제 억류 경위에 대한 가장 믿을 수 있는 입장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분야 연구 성과 역시 마땅히, 늦어도 십수 년 전에 이 정도가 달성되어야 했으나, 워낙 관심들이 적고 관련 여건이 열악하다 보니 이만큼이나 늦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으나 이런 알차고 멋진 연구서가 지금이라도 나왔다는 데에 큰 의의를 두어야 하겠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께 여쭤 보면, 해방 후 38도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의 경우 그렇게나 군기가 문란하고 미개인 같은 모습이었다고 하죠. 이래서 특정 연령층의 경우 소련에 대한 이미지가 (이후 반공 교육 등과는 무관한 별개 팩터 때문에) 매우 좋지 못한데, 이는 예컨대 베를린 함락 이후 대거 자행된 집단 성폭행이라든가(이런 걸 합리화하는 인간 쓰레기들도 있습니다), 어디서든지 비슷하게 노출되기 마련인 한심한 행태들 때문에 세계인들 사이에 대략 사정이 비슷합니다. 그런 삼류 체제와 민족에 의해 반 세기 넘게 지배를 받은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이 불쌍할 뿐이죠. 헌데 냉전 체제라는 게, 각각의 영역을 존중하자는 양(兩) 초강대국 사이에 공통적으로 책임이 지워지는 거라서, 미국 쪽 잘못도 없다고는 못 합니다. 동유럽 공산권은 미국이 조금만 도와 줬어도 언제 붕괴했을지 모르는, 매우 취약한 체제였던 겁니다.

제가 이 말을 왜 하냐면, 이 사할린 동포 송환 문제 역시, 해방 이후 한국 정부에서 약간의 성의만 보였던들 그분들이 그렇게나 오래 낯선 이방에 억류되지는 않았으리라는, 이 책의 충격적인 결론 때문입니다. 마음은 간절하나 흉악한 적국의 마수를 어떻게 해 볼 방도가 없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문제를 가슴 아프게 방치한 게 아니라, 치졸하고 구차한 잔머리를 굴리느라 그 많은 동포들, 즉각 모셔왔어야 했을 우리 겨레들을 내팽기치고 있었으며, 이는 부작위범도 아닌 사실상 작위범의 소행, 사보타지나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제가 그 세대야 아니지만 읽으면서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이건 남의 겨레를 험지에 잡아간 일본인들의 만행보다 더 악질이라고 말이죠.

지금까지 사할린 동포 억류에 대한 통설은, 물론 소련 당국이 강제로, 어떤 필요에 의해 잡아두고 있었다는 게 지배적이었습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 여쭤 보면, 왜 2차 대전 이후 소련이 갑자기 과학 기술 수준이 발전했느냐에 대해(핵무기도 만들고 우주 개발에도 앞장 서고), 종전 후 독일 과학자들을 대거 납치하여 그런 비약, 성장을 이뤘다는 대답이 보통이었습니다. 이는 아주 근거 없는 건 아니고, 실제로 베를린 점령 후 단지 자원과 지원이 부족해서 답보 상태에 머물던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공산주의 체제에서 지도부의 재량으로 마음껏 돌려 쓸 수 있는 국가의 후원을 바탕으로 놀라운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 비슷한 이야기가 (판타지이긴 하나) 영화 <젠틀맨 리그>에서 살짝 배경이 바뀐 채 언급되죠.

이 책은 그런 통설에 대해 여러 근거를 들며 그 바탕을 헤집어(undermine) 놓습니다. 우선 여태의 상식은, 광대한 영토에 비해 노동력이 부족했던 소련이 이를 확보하기 위해, 비적성 국가의 인력을 잡아다 놓고 활용했다는 쪽이었습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소련의  입장이 생각보다 아주 복잡했다고 전합니다. 군부에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북으로 보낼 것을 주장했고, 사할린 지역 정부에서는 잔류를 고집했다는 거죠. 책에서는 또한, "인력 활용을 위한 목적이라면 보다 교육 받고 우수한 직능을 지닌 체류 일인들은 (패전국이니만치 다루기가 더 쉬웠을 텐데도) 왜 그리 일찍 송환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까 언급했던 "독일 과학자 문제"와도 맥이 닿은 이슈이지요.

책은 구 소련 외교 문서뿐 아니라, 근래 들어 시효 기간이 지나 하나 둘 공개되기 시작한 한국 정부 문서를 참조하여, 사할린 동포들이 돌아오지 못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낱낱히 해부합니다. 일단 이들이 한국(남한)에 돌아올 시, 거주 자활 공간의 마련이라든가, 경제적 지원 문제가 아주 난감했다는 겁니다. 사정은 뻔합니다. 당시는 한국 국내 인구조차 부양할 형편이 못 되어, 아이를 하나만 갖자느니 가족계획을 엄격히 시행해야 한다느니 세계 인구 밀도 몇 위라느니 하는 정책 홍보가 상당히 강압적으로 국민들에게 다가왔으니까요.

한국 정부는 묘한 잔머리를 굴렸는데, 일본더러 이들을 일단 "일본 영토 내로 불러들이고, 그들에 대한 피해 배상도 일본 정부가 알아서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고 합니다. 아주 이치에 닿지 않는 주장은 아닙니다. 사할린 일대는 당시 일본이 영유하거나 강제 점거하던 형편이었고, 이들을 징용, 징병 등의 명목으로 끌고 간 직접 주체도 일본이었으니 말입니다. 여튼 일본이 이를 수용할 리도 만무했습니다. 그들은 일본 내 거주하는 "자이니치" 관련 문제도 마지 못해, 위선적으로, 피상적으로, 건성으로 다루던 판이었고, 재일 동포 일부는 북한으로 송환했다가(속으로 얼마나 앓던 이가 빠진 듯 후련해했겠습니까) 문제를 빚기도 했죠. 어쩌면 이는 현안을 회피하려는 양국의 "자고 치는 고스톱"에 불과했던 겁니다.

책의 제목은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입니다. 인질극에는 책임을 져야 할 악한이 있고, 가슴 태우며 경과를 지켜 보는 피해자의 가족이 있습니다. 헌데, 피해자의 가족이 어떤 이유에서건 인질범과 내통하여 인질의 고통을 내내 증가시키거나 방관했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이겠습니까? 불편한 진실은 애써 외면한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야 합니다. 책에 보면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 수상(이후 록히드 스캔들로 사임합니다)의 유감 표시가 잠시 언급되는데, 어째 역사는 이 시절보다도 더 도덕성을 상실하고 후안무치해져가는 듯합니다.

v*****7 2018.05.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내용보기
여전히 대한민국은 외부로 보이는 면만 번드르르 하지 속 알맹이는 상처 투성이인모습을 애써 감추고 사는 나라이다.제 스스로도 제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나라이며 국민이라는 사실은 솔직한 심정으로깨놓고 이야기 한다면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우리의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분명 우리는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삶이 어떻게 구걸되어 왔고 힘있는 자들의 눈치를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내용보기

여전히 대한민국은 외부로 보이는 면만 번드르르 하지 속 알맹이는 상처 투성이인
모습을 애써 감추고 사는 나라이다.
제 스스로도 제 나라를 지키지 못하는 나라이며 국민이라는 사실은 솔직한 심정으로
깨놓고 이야기 한다면 수긍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분명 우리는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삶이 어떻게 구걸되어 왔고 힘있는 자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는지를 깨닫는 계기가
될것이다.


이 책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은 수 많은 역사의 아픔과 고통의 편린들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의 아픔이자 상처로 지속되고 있는 사할린 한인들의 삶이 어떻게 규정
되었고 그렇데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한국, 소련, 일본의 외교적 술수에 담겨진
그들만의 이해관계를 밝힌 공문서들을 연구해 얻을 결과론이기도 하며 이미 우리의
기억과 의식속에서 사라진 사할린 한인동포라는 빛바랜 이슈를 그저 사회적으로
게기, 유통, 소비하는 행위가 아닌 진정으로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 우리 국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앞으오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고저 하는 저자들의
의식을 엿보게 하는 책이다.


"일본은 강제로 데려갔고, 소련은 고향 길을 막았고, 비정한 모국은 그들을 버렸다"는
세나라 외교의 합작품은 고스란히 힘없는 우리 국민들의 한(恨)으로, 사할린 한인들의
한과 분노로 점철된 희망없는 삶을 만들어 냈다는 점을 이 책에서는 날카롭게 지적해
놓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사대주의적인 관점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러한 삶이 마치 자연스러운 삶인 양 아무런 꺼리낌 없이 목놓아 외치는
정치가들의 감언이설에 눈과 귀를 열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안위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옆집의 힘쎈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이렇게 살아야 하는것이 진정 올바른 삶이고 국가를 위한 길인지는 책의 곳곳을
읽으며 만날 수 있는 저항적 정신들에 의해 바로 새움에 대한 의지를 갖게한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우리의 자주적인 삶과 자주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공포해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의 눈치를 보는 사대주의적 사관을 벗어던지고 오직 우리라는 국민적
함의를 일깨울 역사를 바라보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다듬어 본
귀중한 책을 전해 본다.

이달의 사락 n********1 2018.05.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강제이주
"강제이주" 내용보기
우리 역사를 배울 때, 가장 씁쓸하며 안타까운 시기, 바로 조선멸망,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입니다. 국가가 존재해야 국민이 존재하며, 번영과 평화,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발전했고, 대내외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며, 활발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조국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게 다가옵니다. 한 세기 전, 우
"강제이주" 내용보기

우리 역사를 배울 때, 가장 씁쓸하며 안타까운 시기, 바로 조선멸망,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입니다. 국가가 존재해야 국민이 존재하며, 번영과 평화,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리, 지금이야 우리나라도 발전했고, 대내외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며, 활발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조국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게 다가옵니다. 한 세기 전, 우리나라는 일제의 침략을 받았고, 결국 국권을 피탈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위정자들은 친일이 되거나 독립운동가가 되었고, 일반적인 서민들은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등으로 피해를 겪었습니다.


이유도 모른체, 전쟁이 총알받이가 되거나 제국주의 야욕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해방 후,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해당 지역에 정착하여 고난의 인생을 사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지만, 제대로 모르는 사실, 역사적 사건, 이젠 미루지 말고 주목하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강제이주와 귀국문제로 오랜 기간 차별과 피해를 받았던 한인 이주민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잘 알려진 중앙아시아 고려인, 중국에 존재하는 조선족과 극동 러시아 지방에 고루 분포하고 있는 한인 정착인 등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이 많습니다.


책의 말대로 일본이 끌고 갔고, 일본을 피해 잠시 한반도를 벗어났지만, 소련에 의해서 귀국길이 가로막혀, 이데올로기적 요소에 피해를 당했던 사람들, 그들의 2세, 3세, 4세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고, 조국을 잊지않게 위해 다양한 형태로 문화적 계승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부를 비롯한 관련기관이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조차, 외면하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심각한 오류이자, 사회문제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국가의 존재는 의미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관련 정보와 사건, 피해자 보호와 대우를 위해서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암담한 면이 많고, 우리 근현대사의 절망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할 때, 부정의 요소, 아픔의 역사도 함께 알아야 할 것이며, 이를 현재의 관점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주변국과의 협조를 바탕으로 정부나 민간, 기업 차원의 노력이 절실해 보입니다. 또한 평화를 외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전쟁을 무조건 막고,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먼 옛날의 역사도 아닌, 근현대사의 아픔이라 더욱 아프게 다가오고, 역사전쟁이나 영유권 다툼으로 번질 우려도 있는 만큼, 보다 전략적인 접근과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이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과 사건입니다. 접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달의 사락 m**********m 2018.04.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내용보기
그들을 사할린 한인이라 부른다. 재일 한국인에 비해 관심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  광복 이후 고국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였고, 러시아, 일본,미국에 외면당해야 했던 사할린 동포는 그렇게 방치되고 있었다. 이 책은 왜 그들이 타향에서 방치되어 살아와야 했는지, 고국은 왜 그들을 외면했는지, 1945년8월 15일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의 흐름을 짚어나가고 있다. 1945년 8월 17일 사할린
"책임과 변명의 인질극" 내용보기

그들을 사할린 한인이라 부른다. 재일 한국인에 비해 관심조차 받지 못한 사람들,  광복 이후 고국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였고, 러시아, 일본,미국에 외면당해야 했던 사할린 동포는 그렇게 방치되고 있었다. 이 책은 왜 그들이 타향에서 방치되어 살아와야 했는지, 고국은 왜 그들을 외면했는지, 1945년8월 15일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의 흐름을 짚어나가고 있다. 


1945년 8월 17일 사할린 가미시스카 한인 학살사건이 있었다. 일본 경찰은 패망직후 일본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어린이 6명을 포함한 헌인 27명을 학살하게 된다. 그들을 학살하면서 내세웠던 명분은 소련스파이였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 패망했지만, 미소 협정에 따라 사할린에 머물러 있었던 일본인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28만명의 일본인이 고국으로 돌아간 다음 사할린에 남아있는 2만여 한인들은 이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소련 정부는 여전히 그들을 필요로 하였고, 미소 협정을 어기고 말았다. 고급 엔지니어를 인질로 잠았으며, 그들을 무임금 벌목노동자로 활용할 가치가 충분했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고국은 사할린 한인들을 신경 쓸 수 없었고, 고국 송환에 대해서 미온적인 입장을 취하였으며,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들이 차선책으로 택하였던 건 한국이 아닌 일본이었으며, 일본으로 간 뒤 한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책에는 그 들이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는지, 일본 정부가 그들을 바라본 시선에 대해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사할린 한인의 대부분이 남한에서 왔지만, 남한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던 또다른 이유가 북한에 있다. 사할린 동포를 남한과의 협상 카드로 쓸려고 했던 북한의 정치적인 목적, 이념적인 목적은 1970년대에 반복적으로 자행되었고, 남한은 경제 개발에 몰두 하면서 사할린 한인들의 소원은 점점 더 잊혀지고 말았다. 또한 미소 냉전으로 인해 미국의 입장과 소련의 입장이 충동하면서, 우방국 미국을 두고 있었던 남한은 그들의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게 되었다.


사할린 한인이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유는 바로 일본, 미국, 소련, 북한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다. 일본에 도착해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사할린 한인의 입장과 달리 한국 정부는 일본에 머물러 있는 사할린 한인이 그곳에 정착해 살아가길 원했고, 그들이 남한에 돌아오게 되면 파생되는 사회적 갈등, 실업자 발생, 경제적인 손실을 우선 고려하게 되었다. 사할린 한인이 고국에 올 수 있었던 건 미소 냉전이 끝난 1989년 이후 한국과 소련간의 국교가 회복되면서 부터였다.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사할린 한인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사할린 한인들은 안산에 정착해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이 조금씩 풀리게 되었다. 고려인이라 불리었던 그들의 삶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이 송환되기 위해서 필요한 재원을 준비하기엔 한국 정부의 재정은 너무나도 부실했다. 광복 이루 2만의 사할린 한인들이 고국으로 되돌아 올 수 없었던 건 그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겹쳐지고 있다.

이달의 사락 k*******2 2018.04.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