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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인 인간은 만성적으로 불안정한 존재이다.'라고 했던 에릭 호퍼의 전제는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도시에서 그것을 사실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어떤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까닭에 세상은 마치 신이 만든 각본에 따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각자의 역할을 구성원 모두가 충실히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도시의 구성원으로부터 받는 우리의 느낌은 불안이나 불만족이 아니라 자신감과 열정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자신감이 넘치는 구성원 각자의 표정으로부터 인생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게도 되고, 삶이 지극히 평범하게 흐를 것 같다는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뉴욕과 같은 거대 도시에서 구성원들은 계급, 인종, 젠더, 국적, 언어 등과 같은 다양한 카테고리를 통해 바라볼 때 인간은 한없이 불안정하며 한 개인에 깃들어 있던 불균형한 기질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뉴욕의 미덕 중 하나는 열정적으로, 온 힘을 다해 사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해 교육받고, 일자리를 찾고, 쇼핑하고, 술을 마신다. 뭘 하든 간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은 생산적으로 산다며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호퍼의 '영혼의 연금술'에 의하면 극단적인 열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는 지름길이다. 오늘의 자기를 부정함으로써 내일은 더 나은 자신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 괴로워도 참아볼 만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종교가 힘을 잃은 상황에서 열정은 구원의 느낌을 대체한다. 뉴욕 사람들의 열정적인 라이프스타일은, 이 도시에 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진실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p.331)
젊은 작가 김해완이 쓴 <뉴욕과 지성>은 '길'을 잃은 대한민국의 모든 젊은이들을 위한 길 안내서로서의 자격을 갖추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부족한 면이 많고 채워져야 할 것들이 곳곳에 존재하겠지만 젊다는 건 여전히 그 가능성을 전제로 부족함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열일곱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서 5년간 읽고, 쓰고,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는 작가의 이력도 특이하지만,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인 감이당이 함께하는 MVQ(Moving Vision Quest)의 일환으로 2014년 뉴욕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42개월 동안 살면서 그간의 경험과 배운 바를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뉴욕의 돈 없는 외국인 학생이라는 변두리 위치에 서서,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나와 타인(이 타인은 지금 옆집에 사는 이웃일 수도 있고, 몇 십 년 전에 머리를 싸매며 뉴욕과 세계를 고민했던 지성인일 수도 있다)의 삶 사이에 접점을 찾아서 그 사이 공간을 스케치해 보려고 했다." (p.5 머리말' 중에서)
머리말과 부록의 뉴욕 열전을 제외하면 책은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 '가장 보통의 존재의 환상 : 스콧 피츠제럴드와 5번가', 2. '휴머니티의 집 : 하워드 진과 990 아파트', 3.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문화 : 에드워드 사이드와 MTA 지하철', 4. '가장 낮은 곳부터 마비시키는 은총 : 이반 일리치와 워싱턴하이츠', 5. '뉴요커, 우주의 그로테스크한 농담 : 스티븐 제이 굴드와 자연사 박물관', 6. '콘크리트 정글의 신화 : 허먼 멜빌과 월가', 7. '구멍난 몸, '웃픈 도시' : 올리버 색스와 23번가 공원', 8. '연애, 만인의 무정부주의 : 엠마 골드만과 로어이스트사이드', 9. '가족을 위한 블루스 : 제임스 볼드윈과 할렘', 10. '마음-지옥의 방랑기 : 뉴욕과 에릭 호퍼'가 그것이다.
이채로운 것은 한없이 감성적일 것 같은 작가가 스티븐 제이 굴드나 올리버 색스를 책의 중간에 끼워넣었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그들은 문학과는 다소 동떨어진 과학자이거나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지엽적인 문제에 앞서 나의 시선에 깊게 각인되었던 것은 책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스콧 피츠제럴드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릭 호퍼였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있어 뉴욕은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환상일 뿐이고 '길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에릭 호퍼에게 있어 뉴욕은 스콧 피츠제럴드와는 대척점의 위치에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어떤 환상을 품은 채 뉴욕에 도착하여 누구보다도 현실적인 사람으로 뉴욕을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목차에서 암묵적으로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여행객은 누구나 여행지에 대한 얼마간의 환상을 품게 마련이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모든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몸과 영혼을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고려할 때, 비교적 젊은 나이의 작가는 몸도 마음도 가능한 한 멀리까지 행동반경을 넓힐 시기이지 안으로 안으로 축소할 시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젊은 시절의 인간은 인간관계를 넓히고, 더 먼 곳까지 여행하기를 원하고, 영혼이 머무는 자신의 내적 공간을 벗어난 그의 영혼이 환상에 부풀대로 부풀어 아주 멀리까지 뻗어가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년의 시기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반경을 줄이고, 단출한 인간관계를 지향하며, 밖으로만 나돌던 자신의 영혼을 시간이 날 때마다 내적 공간으로 끌어들이게 된다. 결국 우리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종착점에 이르기 전에 자신의 영혼을 각자의 몸 안에 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인생 서사를 써내려가기에 앞서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현재 위치를 시공간에서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나는 누구이며, 어떠한 관계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어떠한 공간, 어떠한 시간을 스쳐가고 있는지 냉정하게 되짚어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좌표를 시공간의 어느 한 점에 위치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의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소속과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지향점과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젊은 시절의 그것은 일종의 환상처럼 허무맹랑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 또 어떠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자신의 인생행로를 다시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도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의 좌표를 찍을 수 있겠구나, 하고 안심하게 되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당신의 좌표는 어디냐고 묻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처한 위치도 모른 채 막막한 인생길을 떠난다는 건 너무나 무모한 도전이 아니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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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드림’이라는 환상
우리에게 <위대한 캐츠비>의 작가로 기억되는 스콧 피츠제럴드(Scott Fitzgerald, 1896~1940). 그는 “재즈 시대에 ‘선택 당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직 미국의 1920년대를 위해서 태어난 사람 같았다. 하늘이 내린 재능, 금전적 성공, 아름다운 아내, 사교적인 성격, 대인배다운 씀씀이, 알코올 중독, 파티 중독,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무계획적인 태도. 그의 작품도 똑 같은 맥락에서 사랑 받았다. 새로운 시대가 바랐던 새로운 이상이 그의 책 속에 있었다.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작품과 삶 모두 “아메리카 드림을 살아보였”다고 평했다.” [p. 28] 분명히 그가 그린 1920년대 뉴욕, 맨하탄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빼어난 연극을 보듯이 우리의 눈에는 아메리카 드림이 맨하탄 5번가를 매개로 여전히 살아있다.
어쩌면 서글픈 일이다. <위대한 캐츠비>의 등장인물처럼, “이 도시의 거주자들이 속물이어서도 아니고, 이상을 잃어버려서도 아니다. 환상은 사람들을 가장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전락” [p. 48]시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마약중독자들이 마약 없이 삶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환상을 구매하지 않는 이상 삶을 느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우리 집’과 ‘우리 모두의 집’ 사이, 홈-리스
뉴욕의 초현실적인 집세는 ‘우리 집’을 구하기 어렵게 한다. 때문에 “직장이 있는 사람이 공식적으로 집을 빌린다. 그러나 웬만한 월급으로는 월세를 낼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공간을 쪼개서 비공식적으로 세를 준다. 신용 없는 유학생이나 불법이민자는 이런 이차 분양(?)을 노린다. 이들마저도 장기로 집을 비워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관광객에게 또다시 초단기로 세를 준다.” [p. 55] 뿐만 아니다. “뉴욕 부동산에는 두 가지 위계가 있다. 하나는 동네다. 뉴욕은 동네들이 인종별과 문화별로 칼같이 나뉜다. 가령 퀸스의 플러싱은 차이나타운이고, 잭슨하이츠에는 방글라데시인들과 콜롬비아인들이 살며, 센트럴파크 북쪽으로는 흑인들이 사는 할렘이 있다. 이를 좋게 말하면 뉴욕의 다양성의 산 증거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또 하나의) 게토일 뿐이다. 또 하나의 위계는 신분이다. 미국에서 집을 계약하는 일은 경찰서에서 나의 무죄를 증명하는 것만큼 어렵다.” [pp. 54~55]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뉴욕에서 오늘의 피해자는 내일의 가해자(라는 것이다). 갖은 고생 끝에 미국 사회에서 ‘땅’을 얻어 낸 이민자들은 그 다음에 도착한 이민자 그룹을 차별하고 멀리” [p. 64] 했고, 이것은 끝없이 반복되었다.
사실 미국으로의 이민이 시작되면서부터 “‘우리 집’에 왔으면 이곳 규칙에 따라 살라고 말하는 자와 이 땅은 ‘우리 모두의 집’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자 사이의 싸움은 멈춘 적이 없다.” [p. 56] 따지고 보면 이민자 모두가 집을 잃어버린 홈-리스인 것을, 스스로 집을 가진 자와 집을 잃어버린 자로 구분해서 싸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미국 민중사>를 쓴 하워드 진(Howard Zinn, 1922~2010)이 미국인의 정체성을 ‘홈-리스(home-less)’에서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문화의 도시, 홈-리스의 도시
“뉴욕은 다문화의 도시다. (하지만, 그것은 주류와 비주류로 나눠있다.) 주류 문화에는 이미지가 없다. 그것은 스스로를 증명할 필요도, 논쟁할 필요도 없이 뉴욕에 공기처럼 퍼져 있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내 문화’를 인정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으로 문화상대주의 말고는 설 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이 사회 속에서 특수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문화가 특수할수록 개인에게 덧씌워지는 고정된 상(像)도 강력해진다. ” [p. 87] 여기에는 소외 현상도 작용한다. 타 문화를 멋대로 정의하는 주류 문화에 의해 “비유럽 문화권에서는 항상 이 소외상태를 경험한다. 내가 속한 문화가 내가 결정하지 않은 이미지로 대변된다. 이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 비주류 문화 내부에서는 민족주의가 발동한다. 우리 문화는 우리가 정의한다! (역설적으로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이 방어심리는 내부에서 또 다른 소외를 만들어 낸다. 무엇이 ‘진짜 우리 문화’인지 정의하는 문제에 있어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견이 일치할 리 없기 때문이다.” [p. 94]
문제는 진짜 우리 문화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이라는 것이다. “내부 문화의 성질은 외부 문화와의 상호작용이 없으면 형성될 수가 없다.” [pp. 94~95] 결국 우리 문화라는 것은 흐르는 물의 어느 순간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다문화는 여러 고향의 집합소가 아니라. 거꾸로 고향의 소멸이다.” [p. 95] 이런 점에서 하워드 진이 ‘문화의 용광로’라는 미국이 그 정체성을 ‘홈-리스(home-less)’에 두고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
뉴욕에 대한 이미지와 일상 사이
20세기의 대표적 아나키스트 가운데 하나인 엠마 골드만(Emma Goldman, 1869~1940)은 차별 없는 자유로운 국가인 미국은 숨 막힐 듯한 러시아와 달리 바라는 삶을 살 수 있는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가난한 여성은 미국에서나 러시아에서나 인생의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신세계 미국에서의 생활이 도망쳐 온 세계에서의 생활과 그리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을 때, 자유의 땅에서 자유연애로 선택한 남편이 성적 불구자인 데다가 여느 다른 러시아 남자들처럼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골드만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의 출구 없는 인생은 국가-사회가 시스템을 통해 억압한 결과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 또한 “자기 가족처럼 무기력한 삶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적 일탈의 수준을 뛰어넘어 사회적 투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pp. 253~254]
다양한 매스미디어를 통해 주입된 뉴욕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는 엠마 골드만이 상상했던 미국의 이미지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현실의 “뉴욕은 이상하고도 위험한 곳이다. 시카고처럼 갱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리아처럼 폭격의 위험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일상 유지’가 상습적인 위험이 된다. 언제 가스 폭발이 일어날지 모르는 낡은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아침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백 년 된 지하철을 타야 한다. 외부인이 초 단위로 유입되는 터라 사람을 쉽게 믿기도 힘들고, 다문화는 다편견이 되어 소통에 벽을 세운다. 설상가상으로 자본의 속도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 이런 마당에 매스미디어에서는 뉴욕에 대한 온갖 환상적인 이미지를 뿌려 대니, 이 얼마나 이상한가. 표상(表象; 이미지)과 일상의 간극이 가장 큰 장소가 바로 뉴욕이다. 이곳에서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정신줄’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p. 218]
그렇기에 차별 없는 자유로운 도시 뉴욕이라는 이미지는 허상일 뿐이다. 다만, 뉴욕이라는 공간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정한 ‘자유’만 있다. 그 자유는 “같은 윤리를 공유하지 않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또 통제하기 위해서, 개인과 개인 사이에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그은 것이다. 이 선을 따라서,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의미의 ‘개인’(in-dividual)이라는 단위가 생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누가 무엇을 입든,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신경 쓰지 말자는 사회적 합의도 생긴다. 그러나 이 단위는 사회적 불상사를 최소화시키는 방어막일 뿐, 편견 자체를 없애지는 않는다.” [p. 282] 결국 뉴욕의 자유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지 않는, 미봉책인 셈이다.
차라리 저자의 말처럼 “정착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동이라는 자유와 폭력에 익숙해지고 있다. 어디에 살게 되든지, 편견을 버리고 차별의 경계를 넘어서 이웃과 친구를 만드는 방법 말이다. 이것이 땅을 황폐화하는 전쟁에서 이기는 길” [p. 81]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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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라는 거대 도시가 10명의 역사속 인물과 함께 93년생 작가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 장거리 연애중인 나의 연인이 살고 있는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한 것에 눈길이 가고 작가의 독특한 이력보다 더 매력있는 그의 필력에 빠져들었던, 뉴욕에서 그린 나와 타인과 세상 사이의 지도 뉴욕과 지성/ 김해완
![]() 나는 이 책을 '지도'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42개월 동안 뉴욕에 살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제작한 뉴욕-시간의 지도다. 공간은 시간과 분리될 수 없다. 과거의 사건들은 한 번 벌어지면 끝나는 게 아니라, 공간에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현재까지 영향을 끼친다. 서로 다른 과거의 시간에서 달려온 별빛이 중첩되는 밤하늘처럼, 하나의 공간에는 과거에서 출발한 여러 종류의 시간이 경주를 한다. 이들의 시간이 부딪히고, 겹쳐지고, 갈라지고, 지워지면서 도시는 삐걱삐걱 굴러간다. 이 보이지 않는 운동이 바로 뉴욕의 거대한 일상이다. _4p 뉴욕에서 헤매고 난 후에 내 GPS가 찾은 좌표는 바로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처럼 흥미로운 것은 없고, 사람의 몸처럼 본질적인 공동체는 없다. 나는 스스로를 '김해완'이라고 부르는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일 뿐이다. 이렇게 단순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는 것이 조금 어이없기는 하다. 책의 첫 장이 마지막 순간에 쓰이는 것처럼, 마지막 순간에 발견하게 되는 길은 결국 내가 옛날에 한 번쯤 생각해 보았던 것이다. 정답도 세상도, 모두 내 안에 존재한다. _11p 알록달록한 표지에 기분 좋게 넘긴 머리말부터 사로잡혔다. 글이 너무 좋아서. 하지만 고백컨대, 근래에 읽었던 책 중에서 마지막 장을 덮는 데까지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됐다. 상큼한 표지를 보며 술술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나의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정답도 세상도 모두 내 안에 존재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학교 대신 인문학 지식 공동체를 선택했던 특별한 작가의 이력에 대해 시작했던 호기심이 이 책을 통해 풀어낼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국가 교육 시스템을 따르는 안전망을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고, 그 길 위에서 기꺼이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하고 있는 작가의 용기 있는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 ![]() 책을 읽다 보면 느껴진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세상과 인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공부하고 있는지. 한 챕터를 넘어갈 때마다 마치 인물과 관련된 분석 논문을 읽는 기분이었다. 특정 장소를 역사속 인물과 연결지어 나의 이야기로 녹여내는 것이, 머리속에서 추상적으로 떠도는 생각을 하나의 문장과 글로 매끄럽게 엮어내는 것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작업을 열 번이나 반복한 작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작가가 다룬 10명의 인물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스콧 피츠제럴드와 에릭 호퍼 단 두 명 뿐이었다는 게 안타까웠지만, 뉴욕이라는 도시를 알아가면서 훌륭한 인물들까지 함께 알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완벽한 사람은 내 문화와 타 문화 사이의 구분을 아예 거부해 버린다. 문화가 정신의 정박소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거짓 희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전 세계는 모두 타향이 되었다. 이것이 다문화의 진정한 의미다. _98p 자식은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온 부모가 가르쳐 준 방식대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으며, 그들이 자기에게 거는 바람을 충족시켜 줄 수도 없다. _127p 우리 모두 시대의 그림자로 살아가지는 않기를.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그래서 훗날 아이가 생겼을 때, 다음 세대에게 "이 세상에는 언제나 살 길이 있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_146p 꿈은 '앞으로 나아가 움켜쥐는' 목표가 아니라, 어느 자리에 서 있든 간에 존재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멕시코 미혼부는 동아리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러시아 아가씨는 주말마다 축구를 했으며, 나는 모든 일과가 끝난 한밤중에 뉴욕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다. 나와 세상 사이의 대칭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세상은 시(詩)가 된다. _212,213p 이와 같이 작가는 많은 것들을 스스로의 언어로 재정의 하고 있는데, 특히 다문화/ 자식의 삶/ 어른의 역할/ 꿈에 대한 것은 나도 깊이 공감하고, 동의한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뉴욕에 살면서 이 책을 써낸 작가는 다시 쿠바로 떠난다. 하지만 그녀는 뉴욕을 떠나기 전의 그녀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한 번쯤 꿈꾸는 도시, 뉴욕에 풍덩 빠졌던 그녀는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마냥 설레고 혹은 마냥 두려운 소녀가 아니다. 어느 곳에서나 마음-지옥이 존재하는 한 환상은 일찍이 버리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닳은 그녀는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들이 아닌 사회의 부적응자에게 마음을 쏟겠다고 다짐한다. 인간 병증을 있는 그대로 파헤치면서 사람을,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쿠바가 그녀에게 보여줄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그래서 그녀가 어떤 글을, 어떤 책을 세상에 내어 놓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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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대로 이 책은 열 명의 ‘지성인’이 했던 사유를 엮어 ‘뉴욕’에서 살면서 깨달은 인간사 문제를 다루는 ‘에세이’입니다. 뉴욕 여행을 앞두고 관련 책을 찾다가 이 책 서문에서 ‘요즘 하고 있는 내 생각’이 그대로 정리되어 있는 문장 한줄을 만났습니다. “(...)GPS가 어디쯤에 있는지 찾고 싶다는 마음이다. 『뉴욕과 지성』을 쓰면서 결국 나는 내 안의 불안과 만났던 것이다. 나는 언제나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도대체 어떤 근거, 어떤 경험을 가졌기에 저렇게 뚝심 있게 하나의 믿음을 밀고 갈 수 있을까? 뼛속까지 사회의 상식을 믿고 사는 사람들도 부러웠다. 나는 잡생각이 너무 많아서 제도권에 편하게 속할 수도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원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누구와 함께 살고자 하는가··” 저자는 뉴욕이라는 공간에서 고질적으로 발견되는 ‘문제’를 작가 본인의 뉴욕-일상, 그리고 이미 그 문제를 위해 치열한 삶을 살고간 ‘인물’의 사유와 이어냅니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이야기 방식을 ‘시간-지도’ 그리기라고 말합니다. “‘시간 지도’라는 낯선 말을 사용할 때 제가 목표로 삼았던 것은 두 가지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에 도전할 것, 그리고 이런 개념의 분리가 제한하는 삶의 시야를 넓힐 것. (...) 공간과 시간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공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남긴 흔적들의 총체고, 시간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통해서만 흐르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맨해튼 5번가 명품거리의 쇼윈도에서 느꼈던 초라함은 스콧 피츠제럴드와 연결되고, MTA 지하철에서 격렬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뉴욕의 다문화에 대한 생각은 에드워드 사이드와 연결되었으며, 플랫 아이언 빌딩 앞 작은 공원에서 기이한 행동을 하는 남자와의 마주침은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와 연결되는 식입니다. 이외에도 연애, 부적응, 집-없음(home-less), 학교, 인종 등에 대한 저자의 체험과 고민은 과거 뉴욕에서 비슷한 고민을 먼저 했던 지성인의 사고와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뉴욕의 명성이 워낙 드높은지라 이곳을 거쳐갔던 지성인들이 참 많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제가 뉴욕의 일상 속에서 겪은 혼돈을 가장 잘 대변해줄 사람들로 골랐습니다. 행복한 고민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로 탈락한(?) 분들에게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영국 웨일즈 출신 시인이자 뉴욕에서 숨을 거둔 토머스 딜런, 쿠바의 망명객으로서 뉴욕에서 15년 동안 살다가 고국으로 되돌아가 독립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호세 마르티, 뉴욕 강 건너 동네인 뉴저지의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된 인물들이 많아서 좋았고, 그 사람들이 했던 생각들은 모두 흥미로웠고, (8장만 제외하고) 공감 가는 문장이 많아서 굉장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확실히 저는 사람을, 사람들이 하는 생각을 듣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네요 🤔 #연말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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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지성은 김해완작가의 작품으로 MVQ(Moving Vision Quest)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게 되어 한국을 떠나 길 위에서 배우자는 MVQ의 모토로 난생처음으로 미국생활을 토대로 글을 썼다. 자본주의의 중심이고 만국의 인종들이 모이는 뉴욕에서 '세계'를 엿보았고 뉴욕에 대한 지성인10명을 이야기하며 뉴욕의 현실을 보여준다. 아직 뉴욕을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흥미로웠고 아름답기만한 도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초반에 있는 뉴욕 지도가 이 책에서 만나는 지성인들의 뉴욕의 장소를 표기해 책이 들어가기 전부터 흥미로웠다. 아래는 책에 나온 뉴욕 지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뉴욕의 돈 없는 외국인 학생이라는 위치에서 뉴욕이란 공간에서 느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낀 특정한 삶의 순간들을 이야기하며 이와 관련된 문제의식을 품은 뉴욕의 지성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자신을 "한국의 청년이 아니라 그냥 별볼 일 없는 인간으로서" 글을 썼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 관계를 맺고 타인과 세상 사이의 지도를 그리며 살고 있다는 내용이 더 현실감있게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10명의 지식인들은 우리가 고전에서 보았던 인물들이며 어디선가 한번씩은 들어본 인물들이다. [위대한 게츠비]의 작가,스콧 피츠제럴드나 [미국 민중사]의 하워드 진,[오리엔탈리즘]의 에드워드 사이드등 고전 속 인물들은 이 책에서 뉴욕이라는 도시와 함께 살아 숨쉰다. 그래서 이전에 봤던 고전들을 다시금 보는 재미와 뉴욕과 연결지어서 생각해보는 것이 매력적인 책이다. 스콧재럴드의 이야기는 [위대한 게츠비]를 읽었던 독자로서 흥미로웠다. 그는 미중서부 몰락가문출신이었지만 부모의 도움없이 자수성가했다. 심지어 성공 앞에 겸손할 줄 모르는 대담함까지 갖췄다. 인세로 벌어들인 상당한 돈을 아내와 함꼐 펑펑쓰고 다녔고, 이 철없는 부부가 파티에서 일으킨 사건 사고가 신문에 가심거리로 매번 오르락 내렸다. (p.25) 그리고 그의 책을 쓰는 이유를 물을때 그가 대답했던 "지금은 캐쉬를 택하고 크레딧은 떠나도록 놔두겠습니다."라는 말은 그를 잘 설명해주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가 평생 숭배했던 아메리칸 드림의 수해자이면서 피해자였다.그리고 이 책은 명품이 가득한 뉴욕의 5번가거리와 스콧피츠제럴드를 연계시키면서 [위대한 게츠비]의 소설과 아메리칸드림의 허망함을 분석하여 비판한다.
이는 뉴욕의 화려함뒤에 숨겨진 어두운면과 그에 대해 지적한 지성인들의 작품들을 통해 뉴욕의 각 장소들과 함꼐 뉴욕을 껍질 속 알멩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경하는 뉴욕의 환상을 와장창깬 소설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알게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 책이었다.
뉴욕의 장소들과 지성인들을 연계해 이야기한 책이라는 게 독특했고 작가들의 말을 빌려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을 이야기한다. 2번째로 소개된 하워드 진과 990아파트의 내용은 휴머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 미국은 민주주의국가라고 자칭하지만 사실은 휴머니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방인을 배척하는 나라일 뿐이라는 사실을 꼬집어 이야기한다.
위 내용은 뉴욕과 지성 (p.74)의 내용이며 휴머니티를 이야기하는 뉴욕이 사실은 '집주인'과 '이방인'과 '무명인'의 불편한 동거일뿐인 것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 비유가 너무 깊게 와닿아서 책을 다읽어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10개의 지성인들과 이를 보여주는 뉴욕의 장소들은 너무도 잘 어울려 뉴욕의 가본 독자들이 있다면 이 책이 더 깊게 와닿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뉴욕의 10명의 지식인뿐만아니라 '뉴욕 열전'이라는 부록이 존재한다.
특히 이탈리아 p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데 혼자 실실거리며 웃었다. p는 수많은 고전을 독파해 촌철살인의 문장을 쓰기도 하지만 이탈리아산 커피와 와인대신에 일본산 녹차와 사케를 좋아하며 한국의 정관장과 홍삼과 녹용을 꾸준히 복용한다. (p.343) 그리고 글도 잘쓴다고한다. 그런데 p는 이런 자신의 재능에대해 별 노력을 하지 않는다. 이런 그는 특이한데 부러운 자(者)라고 생각한다. 외국인이 한국의 정관장홍삼과 녹용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부터 웃겼고 뒤로갈수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p의 대한 이야기를 할때 p의 병인 '당뇨병'에 대한 이야기는 좀 불퇘한 부분이 있었다. 작가의 글에서 "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열심히 작업 걸다가 갑자기 팔뚝에 인슐린을 주사놓는 풍경은 산통을 깬다"라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읽는 독자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당뇨병이라는게 나이들어서 걸리는 당뇨병도 있지만 1형 당뇨병이라고 해서 어렸을 때부터 걸리는 당뇨병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좀 불쾌하기도 했다.그리고 k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으면서 씁쓸했는데 돈 때문에 끝이 그렇게 끝나는게 씁쓸했다.
전체적으로 본문은 주로 분석적이고 체계적으로 뉴욕을 이야기한 지식인의 말들을 되돌아보는 내용이었다면 부록은 가볍게 뉴욕에서만난 다양한 인물들을 이야기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고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뉴욕에서의 작가의 삶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어서 마지막까지 흥미로웠다.
뉴욕에 대해 진정으로 알고 싶고 옛 인물들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뉴욕을 이야기한 지식인 10명의 이야기들에 공감하면서 또 배워가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또한 뉴욕의 지도로 표현해서 그런지 기억에도 더 선명하게 남는 것 같아, 나중에 뉴욕에 가면 직접찾아가고픈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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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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