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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은 죽어서까지 통일 신라를 걱정했다. 그는 자신이 죽어도 동해 용왕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고 아들에게 약속했다. 신문왕은 감은사를 지어 아버지를 추모하는데 그는 정말 용이 되어 김유신과 나타났다. 대나무를 주고 그것으로 피리를 불면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고 말하였다. 과연 피리를 불었더니 신기한 일이 났다. 적군이 물러가고 재해가 사라졌으며 거칠던 파도가 잠잠해졌다. 만개의 파도를 잠재운다는 의미로 '만파식적'이라고 불렀다. 『만만파파식적과 간 뜯어 먹히는 용』에서 만파식적의 의미는 새롭게 부여된다. 대나무로 만든 피리는 세상의 근심과 고난을 잠재우는 주술적인 의미였다면 책에서는 만파식적이 후에 에밀레종과 오대산 상원사종으로 모습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통일 신라를 지켜내고자 했던 왕과 지배층의 염원은 백성의 삶이 편안하기를 바랐다. 한 번 치면 세상 곳곳으로 소리가 퍼져 나갈 수 있도록 만파식적을 종의 모양으로 만들어 냈다. 천 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에서 만파식적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모두 힘들다고 한다. 뉴스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경제 성장의 부진을 이야기한다. 최저 시급 논란과 그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말한다. 기대어 쉴 수 있는 자리가 없다. 청년들은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 열정을 강요 당한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고 했던 어른들은 이제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살라고 떠든다. 힘들게 일하고 편히 들어가 쉴 집 한 채 없는 사람들이 있고 아파트값을 올리기 위해 담합하는 다수가 있다. 우리는 매일 전쟁에서 지기만 한다. 패배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들여오는 희미한 기척. 다 잘 될 거야, 아프니까 청춘이다, 큰 꿈을 가져야 한다는 입에 발린 말이 아닌 다정한 목소리. 망해가는 고려에서 불교의 힘이 나약해지지 않기를 바라고 홀로 이야기를 모았던 일연이 쓴 역사서 『삼국유사』에서 다정한 목소리를 듣는다. 몽고의 침입으로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고 지배층은 강화를 요구하며 사대를 말하는 어지러운 시국에 일연은 이야기를 수집한다. 승려의 신분으로 세상에 전해지지 않고 떠돌던 이야기를 문자로 쓰기 시작하는 순간 고통은 물러간다.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인간은 이야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이야기 속에 담긴 허구와 환상과 현실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오늘이라는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를 역사에서 찾는다. 실패를 담담하게 적고 승리를 과장하지 않은 순전히 후대인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살았음을 말하는 『삼국유사』에서 살아갈 방도를 얻는다. 사실과 기록을 나누지 말고 우리의 고난을 잠재우는 이야기가 담긴 만파식적을 불러본다. 길을 잃거나 믿음이 사라진 우리에게 『삼국유사』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일로 피로를 잠재운다. 일연은 알았을까. 그의 역사서가 만파식적이 되어 천 년 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채로운 음률로 남게 된 사실을. 9년 넘게 끌어온 일이 최근에 해결점을 찾았다. 두 개의 용이라는 뜻의 쌍용 자동차는 해고자들을 전원 복직하기로 했다. 그동안 해고자, 희망퇴직자, 가족 등 30명이 자살이나 병으로 숨졌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이 정확했다. 경영 악화의 이유로 2009년 회사는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퇴직이라는 말 앞에 희망을 붙였다. 말장난의 시작이었다. 비정규직은 고용 유연화로 해고는 희망퇴직으로 그럴듯한 말로 포장되었다. 노동자들은 파업을 했고 사 측은 경찰을 불러들였다. 이후에 밝혀진 사실은 충격이었다. 진압 과정에서 청와대의 승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통일 신라의 암흑기 진성 여왕 시절의 일이다. 왕의 막내아들인 아찬 양패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백제의 해적을 막고자 활 잘 쏘는 병사 50명을 뽑아 갔다. 바람과 파도가 크게 불어 점을 치게 했다. 섬에 신령한 못이 있어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못에 제물을 차리자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났다. 활 잘 쏘는 사람 한 명을 남기면 파도가 잠잠해진다는 것이었다. 거타지라는 사람이 남게 되었다. 수심에 잠긴 거타지 앞에 노인이 나타나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는 서해의 용이라고 밝혔다. 날마다 사미승이 나타나 자손들의 간과 창자를 빼어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대가 활을 쏘아 사미승을 죽여 달라고 한다. 거타지는 부탁을 들어준다. 사미승을 활로 쏘아 맞히니 즉시 여우로 변해 죽었다. 노인이 나타나 고마움을 표하며 자신의 딸을 아내로 맞아 달라고 한다. 노인은 딸을 꽃으로 바꾸어 거타지의 품 속에 넣어주고 두 용에게 그를 받들라고 명한다. 두 용은 사신의 배를 따라잡아 당나라로 들어간다. 당나라 사람들은 두 용의 호위를 받고 오는 거타지를 환영해 주었다. 그는 신라로 돌아가 품에서 꽃을 꺼냈다. 꽃은 여인으로 바뀌고 거타지는 행복하게 살았다. 날마다 나타나 용의 간과 창자를 먹는 사미승은 신라 말기에 백성을 핍박하고 정치를 혼란스럽게 한 성직자를 비유한다. 불교의 나라 신라는 불교의 나라라는 이유로 망해가고 있었다. 종교가 백성의 삶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그들의 배를 부르게 할 때 이야기는 창작된다. 진성 여왕 시절은 몇몇의 신하들이 정치권력을 흔들어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고 기록된 시절이었다. 사미승의 부름에 나타나 간과 창자를 뜯어 먹히는 용은 백성이다. 용은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이를 기다리느라 바다의 파도와 바람을 이용한다. 거칠게 바람과 파도를 다스리며 현자를 기다린다. 거타지는 그가 가진 재능으로 용의 고난을 해결해준다. 아름다운 꽃으로 변한 여인을 얻어 행복해지는 이야기에서 대한민국의 오늘이 희망으로 물들 것임을 예감한다. 용의 고난은 우리의 어려움이었다. 거타지의 행복을 위해 두 용이 호위를 한다는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9년 동안 곁에서 바라본 두 용의 아픔은 우리의 상처가 되었다. 자살과 병사로 인한 죽음에 우리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해고와 이후에 벌어진 일들로 인해 해고자와 가족들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통일된 신라를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문무왕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타났다. 아들은 아버지가 내린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신라의 안정을 꾀했다. 만파식적은 성덕대왕 신종과 오대산 상원사 종으로 모습을 바꾸어 평화의 기운을 온 세상에 뿌리내린다. 신라 말기에 이르러 안정과 화합의 기세는 사그라진다. 그 자리에 인간이 부릴 수 있는 각종 탐욕과 위악이 맹위를 떨친다. 거타지가 두 용의 호위를 받아 당나라로 들어갔을 때 받은 환대의 이유는 그가 불온한 욕망을 죽이고 온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옳은 것을 행한다. 곤란한 지경에 처한 이를 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능력으로 도와준다. 인간사에 통용되는 단순한 이유로 타인을 구해 냈다. 『만만파파식적과 간 뜯어 먹히는 용』에서 다루는 조목은 여덟 편이다. 조목을 먼저 밝히고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상징을 야옹샘과 아이들이 등장해 함께 밝혀간다. 몰랐던 혹은 알고 있었으나 잘못 알고 있던 『삼국유사』속 이야기를 쉽게 알려준다. 대화체로 이루어져 있어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의미 해석이 가능하다. 알아야 한다. 지식이라는 허울이 아닌 은유와 상징을 단박에 알아낼 수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두 용이 괴롭힘을 당하며 내던 소리를 우리는 들어야 했다. 용용 죽겠지라고 조롱하던 이들이 있었다. 『삼국유사』라는 만파식적이 내는 은은한 지혜의 소리를 들으며 터널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웃음과 희망의 꽃을 건넨다. 이제 용용 살겠지라고 말하며 조롱과 비난을 돌려준다. 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고전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을 지켜왔다. 수로 부인이 꺾어달라던 꽃은 함께 살자는 연대의 악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