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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퍼는 복음주의 선교사인 동시에 철학가이다.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루터교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신학수업을 받는다. 1948년 스위스로 건너가 1955년 국제적 연구와 사역을 위한 라브리 공동체를 설립하고, 이 곳을 통해 많은 토의와 연구,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돌아오게 하는 사역을 감당했다. 쉐퍼는 오늘날 사회병리 현상의 주원인이 진리의 상대성을 주장하는 데 있다고 보고, 그의 방대한 저서를 통해 우리의 유일한 해결책은 성경의 절대적 진리로 돌아가는 길뿐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글을 읽으며 쉐퍼의 예리하고도 탁월한 논리의 전개에 감탄이 나온다. 쉐퍼는 진정한 영적생활은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말하며 이방종교의 영적인 체험과 기독교의 영적인 체험(영적생활)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기독교 자체가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인 존재인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찾아오신 신비의 영역에 속한 것이지만 이방 종교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신비주의는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그 중심이라는 것이다. 또한 쉐퍼는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활의 3가지 특성을 말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는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활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초대교회에 주어진 것 같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일이 있어야 함을 이야기한다.(356p) 셋째는 진정한 영적 생활이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하면서도, 그 은혜와 약속의 말씀에 대한 능동적인 반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쉐퍼는 이것을 가리켜 능동적 수동자세라고 말한다. 역시 쉐퍼의 탁월한 논리와 균형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서양의 전통적인 신학이 지나치게 교리를 중시한 나머지, 교리 안에 갇혀 날마다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동행하는 삶의 실재를 상실한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쉐퍼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지적하며 아래와 같이 말 한다. "교리는 중하지만 그 자체가 최종목적은 아니다. 순간순간의 체험적인 실재가 있어야만 한다. 단순한 실존적 체험이나 또는 동양 종교의 체험과는 상반되는 그리스도인의 체험적인 실재의 영광은 우리가 모든 지적인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서 관여할 수 있는 문제이다." 쉐퍼는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실재를 경험하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 영성관을 그의 탁월한 논리와 성경중심의 사상으로 아름답게 전개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가 말하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들에 대한 이해와 표현들이 거의 다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한 성령의 열매와 그리스도인의 내면적인 삶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쉐퍼가 말하는 동양의 신비주의는 힌두교에 관한 것들이 많은데, 잘못하면 이를 받아들이는 독자가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편견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하는 염려가 되기도 한다. 동양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힌두교의 사상들이 동양의 신비주의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인해 마치 동양의 종교적인 성향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오해가 빚어질까 다소 염려가 된다. 물론 저자가 그것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다만 서구적 논리와 영성관이 가진 한계가 초자연적인 기독교 안에 있는 영성의 풍성한 깊이를 다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조금은 아쉽다. 쉐퍼역시 여기에 있어서는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 인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참 기독교의 영성관의 기초를 확고히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이 책이 다 표현하지 못하는 기독교 영성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내용만으로 기독교 영성관을 다 정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기독교 사상과 신앙의 깊은 고민들이 이렇게 놀라운 내용들을 담아냈다는 것만 으로도 참으로 귀하고 놀라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
| 저자 프란시스 쉐퍼 박사님은 다른 책과는 다른 이 책에서는 박사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목사님에 어울리는 면모를 발휘하고 있다. 물론 다른 책에서도 목사님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는 물씬 풍겨 나온다. 이는 목사님의 주된 사역인 설교 때문일 것이다. 책의 절반 정도를 쉐퍼 목사님의 명설교로 편집되어 출판되어졌다. 아니래도 영성과 관련되어질만한 글로서 설교보다 더 나은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설교는 기타 다른 예배의 형식인 묵상, 기도, 찬송 성경 봉독 등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교는 예배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기에 설교를 영성관의 중심으로 이루고 있다. 영성관에서는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을 보여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무리들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거룩과 사랑을 실천하도록 격려하여 성화를 이루도록 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