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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라이터 흥미로운 소재, 그리고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이야기의 흐름, 섬세하게 그려나가는 감정의 선들 등이 예술적으로 펼쳐진다. 한 편의 아름다운 산수화 느낌을 받았다. 블라인드 라이터라는 맹인 작가! 그의 아름다운 연하 부인! 그리고 작가 지망생인 대학원생! 세 사람의 이야기가 저마다 펼쳐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선명하게 보고 싶은 맹인 작가의 이야기에는 마음을 잔잔하게 때로 강렬하게 파고드는 힘이 있다. 행복하냐는 질문? 현대인들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질문이지 않을까? 스스로 되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기까지 머뭇거려야만 하겠다. 아름다운 여인! 그녀를 중심이라고 해야 할까 삼각관계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중심은 맹인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각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어느 쪽에 중점을 둘지는 개인적으로 다를 수도 있겠다.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라?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고, 또 어떤 의미인지 참으로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참으로 충격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맹인 작가에게 느끼는 대학원생의 마음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마음을 가지고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 것일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결코 떼어내지 못 하는 것들이 있고는 하다. 마지막 결말 부분은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니, 전체적인 부분들이 모두 독자들에게 참으로 많은 질문과 사색의 시간 등을 주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면서 눈에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눈 뜨고 보면서 제대로 느끼고는 있을까? 오히려 맹인 작가가 더욱 많은 걸 보고 느끼며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맹인 작가는 오히려 너무 많은 걸 보고 느꼈기에 자신만의 선택을 하는 걸 수도 있다. 아니, 명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겠다. 그렇지만 그가 보여준 선택에는 그 나름대로의 책임과 무게, 자유 등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더욱 깊은 곳으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전율을 안겨다 준다. 재미와 함께 인생에 대해서 많은 걸 사색하게 만들어준다. 차후에 다시 정독하면 또 다른 맛과 멋 등을 느낄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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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는 소설가 아닐 트리베디가 있었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15편의 소설과 회고록, 그 외에 작가의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책들을 써내게 된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작가로서 살아가는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는 자신의 손과 발, 눈이 되어줄 사람이 충분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가로서의 명성은 수많은 작가 지망생을 불러 들일 수 있기에 충분하였다. 그 중에 한명 라케시가 있었다. 인도 상류층 출신으로 미국에 건너온 라케시는 대학원생으로서 아닐의 눈이 되어서 아닐이 읽고 싶은 책들을 대신 읽어 주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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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중국보다도 더 많은 인구를 가졌다고 추정하는 이들도 있고, 동셔양에 고루 끼친 방대한 문화적 영향 때문에라도 엄청 중요한 나라입니다. 이런 인도만의 지방색이, 인류 보편 관심사와 정서, 주제와 맞닿을 때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편이었다고 저 개인적으로 기억됩니다. 소설은 한 남자의 회고로 시작됩니다. 진로를 마땅히 정하지 못해 바황하던 대학원생 시절을 되돌아보는 문장인데, 소재가 된 시간적 배경과 집필 시점(실제 작가의 집필이든, 아니면 가공 인물인 라케시의 기준에서건)이 꽤 차이가 나는 듯합니다. 결말에 가서 보면 "문제의 그분이 맞은 어떤 운명(내용 누설이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겠습니다)"이라든가, 이후 1인칭 화자 라케시 신상에 닥친 상당한 변화(어떤 것은 그가 간절히 원하던 것, 어떤 건 그가 끝내 피하고 싶던 것)가 자세히 나옵니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줌파 라히리의 작품 세계와 비견하던데, 저는 오히려 얀 마텔(인도인은 아니지만)의 <파이 이야기>와 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봐, 그건 젊은이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치고는 너무 암울한 전망 아닌가?" 완성도 높고 공감을 끌어내는 소설은, 주제 자체의 무게도 무게지만 이처럼 캐릭터 간의 소통이 실감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탐독과 감상은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훈계(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청취와는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독자 생각에도 저 말이 나와야 하지 싶은 바로 정확한 타이밍에 딱 맞는 코멘트를 던져 주는 (사실상 주인공인) 아닐 작가의 한 마디를 듣고(읽고), 가뜩이나 흥미진진했던 작중 세계에 한층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생후 몇 개월도 채 안 된 시기에 시력을 완전히 잃고(화자 라케시의 말에 따르면 "뭔가 기억의 편린이라도 부랴부랴 챙기기조차 너무 이른 시점"), 이후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해 들어간 위대한 정신. 이미 사회로부터 확립된 평판을 받은 분이라지만 왠지 자신만의 세계에 꽉 틀어박혔거나, 상처가 깊은 만큼 편견(무엇이든 간에)에도 단단히 사로잡혔을 것만 같은데, 전혀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었다는 뜻입니다. 육안이 멀었으면서 오히려 심안이 널리 뜨인 현자의 원형으로는 그리스 신화의 테이레시아스 같은 캐릭터가 있겠습니다. 작중의 문호 아닐도 그런 유형이겠는데, 불편한 일상을 도와 주려 시급을 받고 일하게 된 알바생 라케시는 오히려 이 늙은 지성인과 함께 지내며 단단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저 유명하다는 정도만 알았을 뿐 구체적으로 아닐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그는, 채용 즈음에 그의 책을 비로소 읽어가며 이 거인의 생에 대해 촘촘히 공부합니다. 본래가 영민한 자질의 젊은이였던 만큼 책도 빨리 읽어 내고 인물 학습의 속도도 신속하지만, 앞으로 그가 이 위대한 정신과 함께 지내면서 배우고 깨우칠 경지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했습니다. "요즘은 뷰익 같은 미국 차를 잘 안 타나 보지?" <양들의 침묵>의 연쇄 살인마 닥터 렉터는 수감 중에도, 면회 온 스탈링의 체취만 맡고서 그녀의 출신 배경까지 다 밝혀 내는 신기를 과시하죠. 특정 감각(특히 시각)에 장애가 생기면 다른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나 그렇지 어디 장애인이라고 모두 타 감각의 보상을 받겠습니까. 그런 기제가 개체의 예외 없이 공통이면 장애인이라고 딱히 불편할 바도 없으니 누구나 장애인 되게요 어디. 이 아닐은, 타고날 때부터 명철한 정신을 갖췄기에, 엔진 소리만 듣고 차종까지 분별해 내는 신통함을 보일 수 있는 겁니다. 상경계를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하고(라케시는 학창 시절 내내 일등을 안 놓치던 수재라고 나옵니다) 금융회사로부터 좋은 자리까지 제의 받았던 청년은 단지 "나의 진짜 꿈은 글쓰기"란 낙관 하나로 좋은 기회를 흘려 보냅니다. 내심으로는 그의 부친이 "녀석아,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거야!"라며 따귀라도 후려쳐 주길 기대했지만, 자신만큼이나 신중하고 사려 깊은 부친이야 그 아들이 "알아서 잘 하기를 바랄뿐" 그런 적극적, 월권적 훈육에 나설 리 없었죠. 영리한 아들이 이 또한 모를 리 없건만 이런 햄릿 형은 언제나 "이뤄지지 않았고 이뤄질 수도 없었던 가능성에 집착"하기 마련입니다. 눈먼 거인에게 "또다른 아버지상"을 기대했던 라케시는 왜 지원했느냐는 질문에 "돈이 궁해서요."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라케시는 여러 번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잘 하는데, 독자들도 알고 작중 인물들도 다 알듯 그 전부가 "화이트 라이"일 뿐입니다. 라케시가 얼마나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지 이 현인, 그리고 현인의 젊은 아내가 모를 리 없습니다. 라케시가 처음 아닐의 저택을 찾았을 때 우선 놀란 건 그 젊은 아내 미라의 놀라운 아름다움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나와 남편이 너무 나이 차가 많이 나죠?"라는 질문에 대뜸 부정부터 하는 것도 그의 "귀여운, 그리고 속 뻔히 보이는 거짓말" 중 하나입니다. 라케시는 아닐에게서 "제2의 아버지"를 기대하는 건 우리 독자들 눈에 뻔히 보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하나 눈에 띈 건, 은근 이 라케시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를 채 극복 못한 상태였다는 겁니다. 라케시는 어머니에 대해 채워지지 않은 애정과 배신감이 그 마음 속에 혼재해 있습니다. 사춘기, 혹은 그 이전 단계 애들이나 겪을 이런 혼란스런 상태로부터, 이 똑똑한 대학원생이 아직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물론 그 어머니의 잘못이 큽니다. "슬립 바바"라는 현자(라고는 하나 이런 류의 사이비 종교 창시자가 인도 국적자 중에 많았죠. 바다를 건너와서까지 포교하며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다 봉변을 겪기도 한 실존 인물 중엔 오쇼 라즈니시 같은 이도 있었는데, 다 이 소설의 시대상을 반영합니다)에게 빠져 기어이 가출을 한 라케시의 모친. 행여 어떤 선을 넘지는 않았으면 하고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지만 가능성이 현저히 낮음은 자신도 잘 압니다. 소설 후반부에 가면 이 바바와 라케시의 만남까지 이뤄집니다. 이 상처가 잘 마무리되어야 헬렌하고도 진도가 빠질 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라케시가 미라를 바라보는 시선에 각별한 열정이 실린 건 이런 굴곡 있는 개인사, 가정사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제 느낌입니다. 물론 미라는 (라케시의 뜨거운 주관적 묘사가 아니라도) 누구 눈에도 아름답게 비칠 만한 미인입니다. 이런 미인을, 나이도 많고 눈도 멀었으면서 장악할 수 있었던 아닐이야말로 작업의 신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습니다. 사실 아닐은 눈만 멀었다뿐, 체격이 탄탄하고 현란한 말빨을 자랑(머리가 좋으니 당연하죠)한 덕에 장애인이면서도 여자들에게 성장기 동안 인기가 좋았나 봅니다(게다가 부잣집 아들 ㅋ).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의 각별한 "크기"라는 사정도... (더 이상은 생략하겠습니다) 아닐은 특이하게도 "사회주의 중국 VS 소위 민주주의 인도" 중 전자를 더 옹호했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시대상이 드러나죠. 얼마 전에도 두 나라가 군사적 대립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빚었는데 만약 아닐이 요즘 사람이었다면 (딱히 조국에 대해 원한을 품은 출신도 아닌데) 정치적으로 저런 스탠스를 품을 이유가 없었을 텝니다. 라케시는 옆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읽어 주는 일을 하려고 고용된 건데, 예컨대 GQ에 실린 모델이 신디 크로포드라고 가르쳐 준다든가요. 이 무렵이면 어떤 잡지에도 ("수퍼모델"이란 말을 처음 대중화한 거나 마찬가지였던) 그녀만 실릴 시절이죠. 재미있게도 작중의 아닐은, 신디 크로포드와 직접 만나 인사까지 했다고 말합니다ㅋㅋ "페드로는 메츠에 가장 어울리는 선수야(p55)." 이 무렵은 우리도 박찬호 때문에 메이저리그를 한창 지켜 볼 때였죠. 메츠와 양키가 나란히 각각의 플레이오프를 치를 무렵이면 1999년입니다. 이때(이 직전) 메츠에 있었던 "페드로"가 누군지 모르겠네요(페드로 마르티네스는 우리가 잘 알듯 이무렵 보스턴에 있었구요). 여튼 "빌 클린턴이 나한테 욌으면 여자 관련 절제하는 법을 가르쳐 줬을 텐데" 같은 말로 보아 배경은 거의 확실합니다. 아닐 트리베디는 이 픽션 속에서 필립 로스(며칠 전인 2018. 5. 22에 타계했죠), 가르시아 마르케스, 레이먼드 카버 등과 함께 놓이는 위상입니다. 눈먼 노인과 함께 지내며 자신의 성장까지 함께 이루는 소년의 이야기는 일찍부터 우리에게 친숙한데 예컨대 영화로 잘 알려진 <여인의 향기> 같은 게 있었죠. 야구 이야기부터 해서 끊임 없이 시사에 대한 수다가 오가는 장면으로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매우 익숙합니다. 따뜻한 서사와 분위기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의외의 파격까지 결말에서 예비하는, 그러면서도 분량마저 부담이 안 되는 적정 수준이라서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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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라케시는 글을 잘 쓰고 싶다. 약간은 세속적이다. 글로써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꾀나 큰 사람인 듯 하다. 그는 우연히 노인 작가 아닐 트레비티의 눈이 되는 보조 알바를 시작한다. 그리고 라케시는 아닐의 아내 미라를 서서히 사랑하게 된다. 맹인작가인 아닐은 자신의 삶을 책으로 써서 유명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작가여서 또 유명하다. 안보이는데 하나하나 이뤄낸 것들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했고 그의 보이지 않는 독특한 인생살이를 글로 잘 풀어냈다고 한다. 라케시는 아닐이 성을 회고한 책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고, 누구라도 그럴듯 하다. 아닐의 책들은 상업성도 다분히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책이 유명해져서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이후 작품활동도 가능해질 수 있었다. 유명해지고 싶고 그것을 이뤘지만 내면 깊이 그 어떤 타인에게도 털어놓고 싶은 나만의 비밀은 글로 공개하지 않는다. 그런 점이 라케시와 비슷하다고 나는 느꼈다. 깊이 없이, 그냥 글을 쓰고 싶다는 로망을 가진 나와도 비슷하다. 내 속에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 치부. 나도 그런게 있어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아닐은 작가인생의 끝무렵에 만난 라케시를 통해 세상을 느꼈고, 지난날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젊은 날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시간을 통해 자신을 통찰하고 있었다. 더이상 창작의 고통과 소재의 고갈을 해결할 방안이 없음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었고, 젊고 아름다운 미라와의 정신적인 사랑이 끝으로 치닫고 있음을 깨달았던 갓 같다. 소재의 고갈을 해결하기 위해 내면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들까지는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미라를 갖기 위해 그녀의 창작활동을 도울 기력조차 없었던 것일까. 미라를 라케시에게 떠밀어놓고 죽음을 선택한다. 마치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너무도 화가 나서 남은 둘에게 괴로움이라도 주려고 작정한 것처럼 그 둘의 시간을 마련해주고 그 시간에 떠나버린다. 라케시의 삶과 인도인의 미국 삶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작품이었지만 나는 유독 아닐 할아버지의 마음 속 깊은 슬픔과 괴로움에 집중되었다.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우리의 삶고,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는 아닐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게 여겨졌다. 맹인으로는 이루기 어려웠던 그토록 화려한 젊은 날을 보냈던, 이제는 뒷방 퇴기가 되어가고 있는 슬프고 힘없는 노인의 내면을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되었고 기억에 많이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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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귀, 입 - 만약 셋 중 하나를 잃게 된다면... 볼 수 없는 것, 들을 수 없는 것,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 도저히 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어떤 불행도 스스로 선택할 수는 없으니까. <블라인드 라이터>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인도 출신의 유명한 맹인 작가 아닐 트리베디와 그의 아내 미라, 아닐에게 신문을 읽어주는 일을 하게 된 대학원생 라케시. 첫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결말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신문을 읽어줄 사람이 남학생이라면 안심이라고 여겼겠지만, 그 남학생이 젊고 잘생긴 청년이라는 걸 간과했습니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세 사람의 미묘한 감정을 읽어가면서 이미 머릿속에는 결말이 그려졌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결핍에 대하여... 62세의 쇠약한 몸, 거기에 시각장애를 가진 남자는 부와 명예, 아름다운 아내를 가졌습니다. 그의 곁을 지키는 아내 미라는 스물여섯 연하의 젊고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그녀는 항상 아닐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합니다. 마치 미라의 인생에 아닐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녀의 사랑이 아닐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라케시는 작가를 꿈꾸는 역사학 전공 대학원생으로 아닐을 통해 작가의 삶을 꿈꾸지만 그를 사로잡은 건 미라였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이들 세 사람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진실을 볼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아닐 트리베디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내적 욕망과 사랑. 마침 라케시가 아닐의 책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눈먼 욕망』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부유한 인도의 가정에서 맹인 아들로 태어났고, 어둠 속에서 혼자 있던 나에게 황홀하고도 유일한 위안거리는 수음이었다."(31p) 아닐은 이 책에서 성경험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함께 잠재된 분노를 드러냅니다. 열여섯 살 생일을 맞은 아닐에게 부모는 여전히 아이 취급만 했기 때문에 걸핏하면 화만 내는 아이가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삼촌의 방문으로 아닐의 인생은 바뀝니다. 무례하게 행동하는 아닐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삼촌은 아닐을 미국에 데려가게 됩니다. 그 뒤로 버클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아닐은 졸업작품으로 제출했던 원고가 훗날 첫 책의 도입부가 됩니다. 화려했던 여성편력, 그러나 아닐은 "나는 평생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겉모습에 감추어진 깊은 내면을 탐색했지만, 아무도 내게 진실로 화답하지는 않았다."라고 고백합니다. 라케시에겐 아닐의 아내 미라의 아름다움이 보이지만, 아닐에겐 미라의 무엇이 보였을지...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우리에게, 볼 수 있는 것들과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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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계 미국 작가의 소설이다. 인도에서 태어난 작가 사미르 판디야는 여덟 살 때 캘리포니아로 이주했고, 지금은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이 소설 속에는 이러한 그의 이력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어 조금쯤은 자전적인 느낌, 작가 본인의 성장소설 느낌으로 읽히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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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맹인 작가와 그의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그의 조수가 된 청년 책을 많이 읽은 편인데 인도작가의 책은 아마도 이 책이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2016년 펜 아메리카(Pen America)에서 주관하는 펜/치비텔라 펠로(PEN/Civitella Fellow)에 선정되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그가 썼던 단편들과 장편은 주로 인도 출신 미국 이민자의 삶을 그렸다고 하네요,, 이책 [ 블라인드 라이터 ]속의 세 명의 주인공도 모두 인도계 미국인으로 이민 경험의 이야기가 녹아 있네요,, 이 책은 책소개글에 이끌려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입니다. 노년의 맹인 작가의 그의 아름다운 아내.. 그 속으로 들어간 24살의 젊은 청년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복잡미묘한 감정선이 있을 것 같아서 쫄깃쫄깃 아슬아슬한 그 심리묘사가 읽고 싶었달까요?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느낀 것은 제가 예상했던 그런 책은 아니였다는 거죠,, 자! 그럼 그들이 함께했던 달콤하면서도 위태로웠던 그 시간속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역사학과 대학원생인 24살의 라케시는 대학원에 설치된 연구소로 어느 저명한 맹인 작가가 책 읽기 조수를 구한다는 메일을 보게 됩니다. 조수가 해야 할 일은 이틀에 한 번씩 신문을 읽어주거나 테이프에 녹음된 내용을 기록하는 것으로 별로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죠. 사실 라케시는 남들 모르는 자신만의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작가가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죠. 대학 졸업반에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금융 회사에 취직할 기회를 얻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하면서 기회를 놓쳐버린 지금은 작가가 되겠다는 꿈도, 윌스트리트의 튼튼한 직장도 어느 하나 가지지 못한채 자신감도 많이 상실한 채입니다. 그런 그가 작가와 아주 가까운 데서 함께 지내다 보면 작가로 성공하고 싶다는 소망이 이루어 질 것 같은 느낌에 그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저명하다는 작가의 집에 벨을 누르는 순간, 라케시는 문을 열어 준 작가의 아름다운 아내에게 첫눈에 반하고 맙니다. 그리고 사랑에 빠져버리죠,,, 그녀로 말 할 것 같으면 인도 남자들이 늘 이상형으로 뽑을 만한 이상적인 힌두 여성이랄까요? 육감적인 몸매에 청조하고 아름다운 외모는 순종적이며 헌신적이고 애정이 넘쳐보입니다.. 그리고 저명한 맹인 작가는 인도에서 너무나 유명한 아닐 트리베디 였습니다.. 주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글로 쓰는 회고록 작가로 독자들에게 알려진 인도의 위대한 맹인 작가를 실제로 곁에서 볼수 있다니 이 또한 큰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라케시는 아닐에게 신문기사를 읽어주고 그 다음엔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농담을 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의 아름다운 아내 미라와는 같이 시간을 보낸 적은 없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라케시의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커져 사랑에 빠져버리죠,, 미라는 처음엔 상상의 연인으로 , 나중에 라케시의 어머니 집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는 겪은 일로 현실의 연인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이 부부사이에 있는 미묘한 균열도 알게 되는데요,, 이야기는 세 사람의 감정의 변화와 관계의 변화를 비교적 담담하게 펼쳐놓습니다.. 예상했던 끈쩍거림이나 긴장감, 서로를 향한 강결한 욕심이나 질투 등 이런 감정은 제가 보기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로 변해가는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아닐은 62세의 맹인 작가이고 그의 아름다운 아내는 한번의 이혼경력이 있는 36세의 아름다운 여인,,, 그 사이에 피끓는 24살의 청년이 끼어들게 된 이 상황,,, 게다가 라케시는 작가가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있는 나름대로 글 재주까지 있는 청년인지라,,, 라케시가 불러온 파장은 ...
" 미라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 없네. 그녀를 찾느라 평생이 걸렸지. 그녀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내 20대 초반 시절 글쓰기의 동력이었을 정도야. 그런데 막상 미라를 만나고 나니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겠어. 어떨 땐 참 좋은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어. 이 원고가 내 마지막 노력의 결실이 될 걸세. 이 책을 완성하면 더 이상 안쓰겠네. " - 159
이야기는 24살의 라케시가 화자가 되어 이끌어 가지만 저는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62세의 온전하게 한 생을 살아온 노년의 작가인 아닐에게 더 초점이 맞추어 지면서 그의 감정이 전혀지더라구요,, 시종일관 쿨하고 담담한 것처럼 보였던 아닐의 선택은 좀 충격적이였고 가슴아팠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겪고 있는 이민자의 삶이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들려다 볼수가 있었네요. 출판사 소개글에는 - 눈먼 자에 의해 비로소 눈을 뜨는 아이러니가 이 소설의 백미라 하겠다. -라고 적혀 있는데 아마도 책을 읽어본 독자들은 이 말에 특히 공감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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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의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며 작가를 꿈꾸는 라케시, 라케시의 아버지는 아들이 월가맨이 되기를 바랐지만 라케시는 오랜 꿈인 작가가 되기를 바란다. 그에게 월가는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이지만 글은 쓰는 때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말은 차마 부모님께 하지 못한 채 대학원에 진학하지만...마음만큼 글쓰기가 쉽지 않다. 그러던중 평소 좋아하던 인도 출신 작가 아닐 트리베디에게 신문을 읽어줄 학생을 찾는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조수를 지원한다. 자신이 작가가 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아닐 트리베디. 회고록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로 맹인이라는 것 때문에 더 유명해진 작가다. 생후 6개월에 시력을 상실한 그에게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소설보다 회고록으로 더 유명한 이유는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케시가 그의 글에 끌린 이유도 바로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처음 아닐을 만난 라케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의 모습에 놀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태도. 더 놀라운 것은 평소 이상형이라고 생각하던 여인이 바로 아닐의 아내라는 사실이다. 미라. 그녀의 아름다움을 라케시는 "여자의 아름다움에 남자의 눈이 멀어버린 듯했다.'고 평했다. 그녀에게 끌림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존경하던 작가와 이상형으로 꿈꾸던 여인을 한자리에서 만난 라케시. 만남부터 이들의 관계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할 수 있다. 인물들의 관계만큼이나 묘한 소설이다. 아닐과 라케시. 라케시와 미라.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관계는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미풍처럼 잔잔하게 다가와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라케시와 미라의 관계는 여타의 남녀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이유는 이들이 아닐을 대하는 자세가 똑같기 때문이다. 아닐에게 작가로서의 영감을 받고 싶은 라케시. 아닐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어줄것이라 믿었던 미라. 미라가 서른 살 가까운 나이차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 때문이었다. 서로에게 끌린 것도 그런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관계가 아닐의 죽음으로 끝을 맺은 것도 그 열망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글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꿈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아날의 죽음 이후,라케시와 미라의 행보를 보면 더 그렇다. 그래서 더 아날의 글처럼 잔잔하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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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볼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잘. 그러나 잘 보는 것으로만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볼 수 없는 사람보다 더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소설은 바로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소설의 시작은 맹인인 명성이 자자한 위대한 인도 작가 아닐이 미국 한 대학원 부설센터에 1년간 머물면서 자신을 도와줄 조수를 구한다는 메일을 받게된 역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라케시가 그 일에 지원을 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작가가 되고 싶은 라케시는 조수가 된다면 작가로 성공하고 싶은 자신의 꿈에 한발작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닐은 소재 빈곤으로 새로운 작품을 더 이상 쓰질 못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한 소재를 찾고 있지만 여전히 쓰질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자신이 소설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을 불안해 하고 있다. 그가 조수를 구하는 이유는 소재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신문을 읽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자신이 녹음한 것을 기록하는 일 때문이다. 그에게는 남편을 존경하는 아내가 있다. 스물여섯 살 차이가 나는 아름다운 아내. 아내 역시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작가와의 만남. 그는 작가의 조수가 되면서 작가의 삶이 바로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아름다운 아내, 그리고 작가의 순회 여행을 보면서. 이 둘의 만남을 통해 서로 소재 빈곤에 빠진 작가는 글을 쓰게되고, 라케시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소설은 그렇게 흘러가질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바로 작가의 아름다운 아내를 보고 그녀에게 빠져버린 라케시 때문이다. 이들의 관계는 초반 충분히 예상가능하게 흘러간다. 아닐은 자신이 새로운 작품을 쓰지 못하면 아내가 자신을 떠나진 않을까 걱정을 하는데 라케시가 작가의 아내에게 사랑에 빠진것이 혹 맹인 작가가 짜놓은 올가미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렇게 흘러가진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아닐의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으로 조수 일은 끝난다. 조수일을 하면서 작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라케시. 그 이야기를 통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그로 인해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된 라케시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블라인드 라이터].
맹인 작가 아닐의 화두였던 행복. 그 답을 찾지 못했던 그는 라케시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을 했다. 그 답을 찾지 못했던 행복에 과한 질문은 라케시에게 뿌릴 내리게 되고 라케시가 내린 그 결론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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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작가의 작품을 아주 가끔 읽는다. 그런데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인 줌파 라히리의 작품은 아직 읽지 않았다. 사 놓은 작품이 있는데도. 지금까지 읽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은 모두 인도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들은 아주 놀라웠고 재미있었다. 어떤 대목에서는 한국의 과거 모습이 보이기도 해서 반가웠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무대가 미국이다. 어릴 때 이민 온 사람들이 성인이 된 이후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민자의 삶보다 그들의 현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대목들은 조금 낯설었다.
현재는 과거의 기록과 기억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소설 속 세 명의 인도인들도 자신들의 과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명의 중요한 인물은 역사학과 대학생 라케시, 소설가 아닐과 그의 아내이자 작가인 미라 등이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은 라케시다. 대학 졸업 후 월스트리트로 갈 수 있었지만 역사학으로 대학원에 들어갔다. 다시 월스트리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 평범한 대학원생이다. 그런 그에게 하나의 아르바이트 요청 메일이 온다. 맹인 작가 아닐에게 신문 등을 읽어주는 일이다.
아닐과 마리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부부다, 마리는 라케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도 여성의 모습을 가졌다. 연상인 그녀에게 끌린다. 작가 아닐은 그가 작가가 되려고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있다. 그의 작품을 읽고, 그의 과거와 문체와 이야기에 빠진다. 이 소설 속에서 인도가 배경이 되는 몇 장면들은 바로 이런 과거 속 몇 가지 이야기들이다. 아닐이 어떻게 맹인이 되었는지, 그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가 되었고, 어떤 여성 편력을 거치게 되었는지 등이 그의 글들에서 나온다. 이 장면들도 이전에 읽었던 인도 소설과 다른 모습이었다. 아마 현대적인 공간을 다룬 인도 소설을 읽지 않았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도인이란 설정을 지우면 대학원생과 작가와 그의 아내가 눈에 들어온다. 실제 읽으면서 이들이 인도인이라서 생기는 선입견이나 편견 등은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어릴 때 이민 온 이들이 자라면서 느꼈을 편견이 이 소설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과거가 나오지 않으면 전혀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지우면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가족과 과거다. 작가는 이 부분을 아주 솔직하게 풀어낸다. 이혼 아닌 이혼 상태인 부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삶이 성인이 된 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 삶들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등. 이런 과정 속에서 라케시는 자신의 삶을 하나씩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세 사람의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 미라를 만난 후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아닐, 아닐에게서 작가의 길을 배우려는 라케시, 아닐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미라 등이 엮이고 꼬인다. 이 관계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은연중에 알려지지만 파국은 예상하지 못한 장면과 상황에서 일어난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며칠이 그 이후에 벌어진 사건 때문에 변질된다. 삶이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 이외에도 작가는 몇 가지 관계를 조용히 암시한다. 라케시의 부모나 미라의 새로운 연인 등이 대표적이다. 노골적인 장면들도 있지만 이 암시와 여운이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 삶에서 명확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