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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때 억울한가? 최근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참담한 일을 많이 겪는다. 하지만 이런 일들로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억울함은 변화에 대한 의지와 희망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기는 감정이다. 불가항력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극복 아니면 좌절만이 있을 뿐이다. 한국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참 많다. 착취와 양극화가 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때로는 너무 많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선동되기도한다. 나는 이것이 그리 절망적이지는 않다. 내가 살고있는 가나는 대부분 처참한 삶을 하루하루 근근히 이어가면서도 누가 내 위에서 이득을 보는지, 또 일부 부당한 특권을 누리는 집단은 누구의 권리를 밟고 있는지조차 전혀 알 수 없는 구조다. 억울함의 대상이 없다. 수 세기간 지배했던 영국에 대해서는 분노보다는 동경이 앞서고, 자신의 등에 빨대를 꽂고 있는 이들에겐 복종하면서 애꿎게 비슷한 형편의 주변사람들을 등쳐먹으려고 한다. 여기 일반인들에게는 억울함을 판단할 정보가 없다. 다만 신과 운명에 모든 것을 의지한다. 나도 정의감을 불태우며 억울함을 참 많이 호소하며 살아왔다. 탄원서에 진정서에 법개정요청에 별거 아닌 일에도 열올리며 살아왔다. 이 책은 젊은 세대, 여성,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특별히 억울한 계층으로 설정했다. 각 소외받는 계층의 억울함을 들여다보며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제안한다. 우리는 나름 모두 억울하다. 노력 빼면 시체인 젊은 세대들에게 굶어보길 했고 전쟁을 겪길 했냐며 나태한 정신력을 지적한다. 반 친구들과 형제 간에 괴롭힘을 너무 많이 받아서 참다못해 선생님과 부모님께 도움을 청해도 맞아서 피가 난것도 아닌데, 좋아서 그런걸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오히려 핀잔을 듣는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도 무임 승차자와 같은 월급을 받는다. 생활 속의 억울함을 표현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일은 귀찮고 지리하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된다. 억울함의 논리적인 표현과 개선책의 제시로 덜 억울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건 아직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는거다. << 인상 깊은 구절 >> 불행을 맞아들인 이웃을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혹여 나에게도 날아들지 모르는 불행에 맞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 최저시급도 못 받는 알바부터, 국가와 대기업의 전횡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은 참으로 꼼꼼하게 사람들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것으로 나라의 꼴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언제든지 폐허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겸손해지고 서로를 돌보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삶은 언젠가 뿌리 뽑혀 버릴지도 모른다. 인권의 본래 뜻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것이지만, 현실의 인권은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장벽을 세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하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억울함은 공정함이나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두고 이 정의를 생각해보면 이곳이 ‘억울한 사람들의 나라’가 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p.5) 혼자 일해서 혼자 살아가는 데 드는 비용과 에너지가 결혼을 했을 때의 그것에 비해서 훨씬 합리적이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할 불타오르는 사랑과 닥쳐올 시련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면 여성이 결혼을 택할 이유는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p.62) 유령과 좀비는 오늘날 잉여의 존재 방식에 대한 은유입니다. 유령은 실체 없는 영혼입니다. 좌절된 꿈, 이상, 욕망, 이념들이 존재를 얻지 못한 채 떠돕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이 유령들에게 가장 적합한 공간입니다. 좀비는 영혼 없는 육체입니다. 이들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주장을 해서도 안됩니다. 노동력, 육체, 몸빵이 이들의 존재 이유이며, 여기서 벗어나면 제거될 것입니다. (p.107) 당장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종교 공동체에 헌납하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가지 않을 것이라면 당신도 안 지키는 그 규율들을 애먼 사람들에게 들이대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동성애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냥 그들이 알아서 사랑하도록 놔두기만 하면 된다. (p.197) 특권은 가해와는 다르다. 가해는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유리함을 누리며 부당함에는 무지하거나 침묵하는 것이다. 그 침묵이 어쩌면 간헐적이고 일시적인 가해보다 더 두껍게 사회의 불평등을 보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권을 해체하기가 가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p.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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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모두가 억울한 사회다. 말단 직원부터 사장까지, 청소부 노동자부터 고위공직자까지 모두가 ‘나는 억울하다’를 외친다. 심지어 나라를 ‘헬’로 이끈 박근혜와 최순실조차 ‘억울하다’ 외치는 사회에서 그 누가 ‘나는 억울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니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지칭하는 요즘 단어는 새삼 적합하다고 말할 만하다. 사회학자 최태섭은 우리나라의 주요 키워드를 ‘억울함’으로 보고 억울함이 만든 이 사회의 사사로운 불행과 그것을 향한 투쟁들을 한 권으로 담는다.
2015년부터 2017년 칼럼을 엮은 <억울한 사람들의 나라>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억울함과, 그 억울함을 넘어서는 사회적 합의를 제안한다. 칼럼의 특성은 시간이 지나면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는 점이겠으나, 여기서 이야기하는 여러 가지 측면의 대한민국의 특징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낡은 것이 될 수가 없었다. 이는 우리의 불행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 이 책이 더는 읽을 필요 없는 낡은 책이 된다면 우리는 그만큼 진보한 사회에 도달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 단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이 책이 좀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