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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반사란 어떤 뜻일까? 물체의 표면이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한 상태에서 빛이 비추어져서 반사되는 빛들이 각각 다양한 방향으로 반사되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물체를 볼 수 있는 것은 난반사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난반사의 정의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독특한 제목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 차근차근 알아갈 수 있었다. 피해자 부모인 가야마 부부. 소심할 정도로 꼼꼼하고 성실하며 소박하지만 자신의 가정을 예쁘게 꾸며가고 있는 사람들. 남편은 기자. 전업주부인 엄마를 무시하는 듯한 딸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알게 해주고 싶어 시작한 가로수 벌채 반대 운동. 전면으로 나서기엔 책임지는 것 같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자신을 무시하는 딸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싶고.. 남편의 좋은 직장과 자식들의 출세가 모두 자신의 희생에 의해서 안정적인 바탕을 이뤘다 생각하는 유한부인 다마루. 책임지는 일을 싫어하고 중요한 일에 일절 엮이지 않고, 적당하게 돈을 벌어 적당하게 살고 싶은 아르바이트 의사 구메가와. 정년 퇴직 후 딸과 아내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신을 은근히 따돌린다는 생각을 하여 강아지를 키우며 위안 받는 미스미. 병약한 체질이라 병원 드나들기를 제 집처럼 하고, 특히 붐비지 않은 시간(응급 환자를 받는 야간 시간대)에 병원 가는 것을 전략이라 생각하는 대학생 안자이. 귀찮은 일은 피하고, 가능하면 조용하고 무난하게 공무원 생활을 하는 것이 바람인 시청 도로관리과 직원 고바야시. 도로 확장 계획이 있는 도로변에 위치한 집에 혼자 살며, 끝내 퇴거를 거부하다 갑작스럽게 사망한 노인 가와시마.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늘 동생에게 열등감을 갖고 살며, 자신의 의견을 낼 줄도 모르는 주차에 몹시 서툰 20대 여성 에노키다.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갑자기 생긴 결벽증 때문에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게 되는 조경관리사 아다치.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한 사건을 중심으로 곱게(?) 포장되어 있다. 아는 사이도 아니고 각자 자신의 생활 범위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건이 일어난 날을 “0”으로 잡고 그 전에 일어난 일상의 일들을 ‘-’로 시작해서 차분하게, 그리고 조용히 설명해 간다. 그 일상은 어느 집에서나 일어나는 보통의 일들이고 보통의 고민들이고 보통의 질투이고 보통의 행복들이다. 하지만 두 살 된 아이가 쓰러진 가로수에 머리를 맞고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아이를 직접적으로 죽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살인을 한 것도 아니고, 유괴를 한 것도 아니고 아이는 유모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길거리의 가로수가 쓰러지는 일은 흔치 않다. 그 가로수가 쓰러지기까지의 사연과 사건들... 피해자 아이의 아빠는 기자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견딜 수 없었고, 그 가로수가 왜 쓰러졌는지 알아가면서 그는 경악할 수 밖에 없다. 아이가 죽어나가도 그들에게 아이가 죽은 것은 그냥 3자의 일 일뿐이다. 어제와 다름없이 똑같은 행동을 했다. 그 일이 조금은 양심을 찔리게 해도 나 하나쯤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무시한다. 어제도 무시했고 오늘도 무시했고 내일도 무시할 것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직, 간접적으로 아이의 죽음과 연관이 있지만 아무도 사과하려 들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단 한 사람이라도 사과해주고 인정해 주었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절망까지는 하지 않았을 텐데.. 아무도 책임 지지 않는다. 우린 아무렇지 않게 가로수 나무 밑에서 아이가 급하다고 “쉬”를 하게 한다. 공원이나 산책로에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아무렇지 않게 똥을 누게 하면서도 치우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길거리에 침을 뱉고, 껌을 뱉고, 쓰레기를 버리고, 담배꽁초를 버린다. 아무렇지 않게 신호를 무시하고, 아무렇지 않게 무단횡단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음주운전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질서를, 공공의 약속을 무시한다. 하지만 그런 일로 사람이 죽었다면 과연 우리는 나는 아니라고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난반사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사건은 다양한 방향으로 반사되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구성하지만 결국 그 사건들의 뿌리는 하나다. 그리고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도 다 제각각이다. 나는 오늘 무심코 휴지를 버리지는 않았는지, 내가 무심코 한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는 하루였다. 당분간은 책 읽는 속도에 담담해 지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잡는 순간 끝을 맺지 못하면 잘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얼굴을 하고 인자한 얼굴을 한 사람들의 뒷면. 내면 깊숙한 곳에서 결코 올라올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숨은 진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늘 생각하는 게 하나 있다. 이런 일들은 결코 일본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읽고 한동안 멍해진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은 아닐까? 간만에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을 읽었다. 통곡을 시작으로 우행록, (실종, 유괴, 살인)증후군 시리즈까지... 이 사회를 묘하게 꼬집는다. 이 사회를 묘하게 꼬집는 그의 소설.. 다른 소설이 있다면 찾아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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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사소한 원칙들을 무시하곤 한다. 강도나 절도같은 심각한 범죄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사소한 것들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도 않는다.
가정에서 생긴 쓰레기를 모아서 지하철역 쓰레기통에 버린다거나, 술 마시고 거리에서 구토를 하고 그냥 달아나거나 아니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도 아무렇게나 버리는 행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행동들은 조금 양심에 찔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범죄라고 할 수도 없다. 이런 짓을 하다가 남들에게 들키면 부끄럽고 민망하겠지만, 그 목격자도 그냥 못본 척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
물론 이런 행동이 나중에 어떤 큰 파장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면 자제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가정쓰레기를 지하철역에 버린다고 해서 운행 중인 전동차에 사고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도로에 구토 좀 했기로서니 누가 죽는 것도 아니지 않나?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연쇄작용
누쿠이 도쿠로의 2009년 작품 <난반사>에서는 한 아이가 죽는다. 그런데 이 죽음의 원인이 참 애매모호하다. 겉으로는 불운한 사고처럼 보이지만 그 내막을 하나씩 들춰보면 결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사소한 행동들이 모이고 모여서 한 아이를 죽게 만든 것이다.
<난반사>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편의를 위해서 또는 알 수 없는 허영심으로 어떤 행동들을 하게 된다. 대학생 안자이 히로시는 몸이 약해서 평소 감기에 자주 걸린다. 그때마다 병원을 찾아가는데 낮에는 사람들이 붐벼서 여유있게 진료를 받지 못한다.
그래서 히로시는 주로 응급환자들을 상대하는 야간에 병원을 찾는다. 감기로 야간에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정말로 급한 환자가 생겼을때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면서.
직장에서 은퇴하고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는 60대의 노인 미스미 고조는 적적한 일상을 달래기 위해서 작은 애완견을 한 마리 구입한다. 매일 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것이 낙이다. 문제는 애완견이 매일 같은 도로에서 변을 보는데 그 변을 자신이 직접 치우지 못한다는 점이다.
변을 치우려고 허리를 굽히면 신경통이 도져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온다. 쪼그리고 앉아서 개똥이나 치우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고조는 점점 쌓여가는 개똥을 그냥 방치해 둔다. 이 개똥 때문에 나중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상상하지도 못한 채로.
파격적인 형식의 미스터리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사정만 생각하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자기만 편하려고 하는 이기심에서 나온 행동이지만 이기주의가 범죄는 아니니 이들에게 책임을 추궁하기도 힘들다.
<난반사>에는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허영심에서 지역사회운동을 시작한 전업주부, 어려운 환자는 받지 않으려고 하는 젊은 의사, 경쟁을 싫어하고 적당주의에 물든 공무원 등. 이들의 행동이 묘하게 연쇄작용을 일으키면서, 개미구멍 하나로 둑이 무너지듯이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어린아이의 죽음 만큼 안타까운 일도 드물다. 태어나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제대로 세상을 보지도 못한 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실제로 이런 식의 사고가 현실에서 일어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개인이 무심코 저지른 악의 없는 행동이 원인이 되서 발생하는 대형사고도 있지 않을까.
<난반사>를 읽고나면 평소에 이기적으로 한 행동 때문에 누군가가 지금쯤 큰 곤욕을 치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진짜로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운명은 아주 사소한 일 하나로도 갈리는 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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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방치한 탓에 사람이 죽을 수 있다니. 신이라면 모를까 누가 그런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448p)
각기 별개의 이야기들이 쉴새없이 흘러 나온다. 이 많은 등장인물이 꼭 필요한가 하는 의문도 든다.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숫자가 0에 가까와질수록 어떤 예기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바로 그 시점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던 이야기는 드디어 짠!하고 모습을 드러낸 퍼즐처럼 한편의 걸작이 된다. 역시 누쿠이 도쿠로이다.
정년퇴직 후 할일 없는 노인. 공원 갔다가 충동적으로 반려개를 사서 아침마다 산책을 간다. 허리가 아파서 쉬는 어느 시점에서 강아지는 꼭 똥을 싸지만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대로변에 누지 않았다는 핑계로 그냥 그렇게 돌아온다.
운전은 하지만 주차는 미숙한 여자. 작은 차로도 힘든데 가족들의 성화에 큰 차를 사게 된다. 역시나 주차는 엉망. 도로변에 차를 두고 오기도 한다. 뒷처리는 아버지 몫,
결벽증으로 인해서 꼭 장갑을 끼고 다니는 조경관리원. 가족들은 알지만 아직 직장에는 알리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로 야간에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 내과 전문의라 가급적 외과 환자들을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냥 이렇게 한량처럼 생활하는 것에 불만은 없다.
인도확장공사를 위해서 가로수들을 벌채해야 하는 공무원.
오랜시간동안 자리를 지켰던 나무들이 잘리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중년의 여자들.
그리고 여기 한 가족이 있다. 이제 막 두살이 될 정도의 아이를 가진 부부.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서 며느리를 아들을 데리고 병문안을 다닌다. 전철에서 내려서 걷기에는 힘든 거리지만 유모차를 들고 버스를 타기 힘들어 걸어다닌다. 아들은 신문사의 기자. 단란하기만 했던 가족이 사고를 당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한 곳에서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것 같은데 그 효과가 어마무시하게 커져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나비효과도 이 사건에 드러났다고나 할까. 나는 지극히 사소한 행동을 했지만 그 사소한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크게 상처로 돌아온다면 나는 과연 어떤 행위를 한 것일까.
44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점차 고조되어 0에 달하는 순간 크게 폭발한다. 그 이후 정상적으로 올라가는 숫자는 이 주인공만큼이나 울분을 토하게 되며 올라가는 숫자만큼이나 통탄을 금치 못한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을 누구에게 물어야 한단 말인가. 제목 그대로 잘못 반사된 빛이 눈을 찌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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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직접적으로 요약정리 집어주고 정리해주는 오지랖만 조금 줄인다면 (ㅎㅎ) 더 좋을테지만, 지난번 [통곡]에서 내가 느꼈던 미진함 (당신의 아이만 중요한가)을 작가는 이 작품에서 채워주었다.
'법에 저촉되는 일은 하지 않았으니까 책임질 수 없다고 (p.403)'라고 하거나 '가엽다고 생각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 (p.423)'라고, 자신의 아이만 중요하고 남의 아이는 내 알 바 아니라고 말하기엔, 도의적 책임과 양심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보여준다.
장은 마이너스에서 시작되서 사건이 일어난 제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에 [Toward Zero]r가 있는게 거기서의 제로 또한 사건이 일어나는 시점)로 가서 또 다시 장이 얹혀지며 사건의 추이를 따라간다.
1 맨처음 가야마 사토시의 직업을 밝혀지지않았다. 그는 다소 집착적인 어머니와 고부갈등을 겪는 아내 미쓰에 사이에서 다소 버겁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직장인, 눈에 넣어도 안아픈 2살 아들 겐타가 있다. 한번쯤이야 하면서 고속도로 휴게실에 집 쓰레기를 넣어버린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쓰러지고, 어머니는 며느리가 매일 간병오기를 바란다.
미쓰에, 눈이 안좋지만 안경써서 놀림받기는 싫어. 어두워도 도수를 넣은 썬그라스를 쓰면 되고.
2 다마루 하나에, 유능한 직장인인 남편때문에 외롭기는 하지만 여유로운 중년 여인. 심심하지만 게을러 뭘 배우긴 싫고 딸의 인정과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사고가 많이 나는 인도확장공사가 벌어진 거리의 가로수 벌채반대 (겸 확장공사반대) 운동을 시작한다.
사유리, 아빠가 주선해준 직장이지만 아빠체면이고 뭐고 관두고 싶으니까 관두는 거야. 엄마같이 살지않겠다고, 엄마가 상처받건 말건 마구 화풀이해도 되. 엄마가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지만 엄마가 안쓰러운 건 없고 그냥 엄마는 너무 무책임해.
시즈에 등, 시의원을 아니까 그냥 한번 해보는거고. 그김에 시장도 만나보는 거고. 문제가 생기면...그건 내 책임이 아닌거고, 난 모르는 일인거고.
3 미스미 고조, 외로운 은퇴자. 요통치료는 받기싫고 개는 눈에 넣어도 안아프게 귀엽지만 구부리고 개똥은 치우기 싫고 또 젊은 여자애의 한소리를 들으니 죽어도 잘못했다고는 말하기 싫어 개똥을 방치한다.
아내, 남편이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건말건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고.
4 안자이 히로시, 낮에가면 병원에서 기다리니까 응급환자를 위한 야간시간에 감기진료를 받는다. 여자에게 환심을 사기위해 말해준것이 이제는 가벼운 감기환자들이 응급실에 가득차게 만들었다.
5 구메가와 하루아키, 일주일에 몇번 일하는 계약직 의사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의료소송 가능성이 있느니 아예 환자를 받지않는게 낫다고 생각하며, 누군가는 대신 진료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가나, 그냥 노트 복사를 위해서 접근했을 뿐이야. 그가 착각하건 말건 예의갖춰 설명해주긴 귀찮아. 그냥 친구더러 무안하게 말하도록 내비둬도 되.
6 고바야시 린타로, 가늘고 길게 아무일 없이 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고 싶다. 힘들면 그냥 떄려치면 된다. 개똥 민원이 들어오자 그게 왜 자기가 치워야하는지 모르겠다. 더럽고 짜증나고 애들도 놀리니 그냥 대강하자.
동료, 같이 치우고 그러는거 없어. 제일 어린 직원이 하면 되. 비용처리? 그건 네 문제고.
7 에노키다 레이미, 집이 부자니까 뭐 운전도 2년뒤면 할거니까 언니인 가쓰코가 불평하건 말건 일단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아버지를 졸라 신형 SUV를 하나 장만하고 싶다.
가쓰코, '왜 맨날 나만 가지고 그래' 운전하다가 빵빵대고 무안하고 그럼 그냥 도망가버리고싶다. 누군가 대신 해주겠지.
8 아다치 미치히로, 이게 병인줄은 알아. 내 아이를 안지도 아내를 만지지도 못하지만 병원에 가기 싫어. 저 나무를 조사해야 하지만 동료가 대신 해주겠다고 하지만 신세지고 싶지도 내 사정을 말하기도 싫어. 그냥 싫으니까 지금 안하면 되지않을까.
이 작품은 읽기가 매우 껄끄럽고 불쾌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우리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다. 잘못한거 알지만 잘못했다고 말하기엔 '내가 왜 그래야 하는건데', '왜 나만 잡아', '이제까지 다들 해오는 관례인데 나 정도면 양호한거 아냐. 왜이리 예민하게 굴고 그래', '100%가 아닌이상 승복할 수 없어'의 모습은 일상에서 정치가의 모습까지. 그래서인가 '잠깐만'을 외쳤는데 닫힘버튼을 꾹 누르고 올라가는 이를 보는 황당한 일상이나 뉴스를 보면 답답~~하다.
5년전엔 아무일 없던 나무가 5년이 지나 그것만 완전히 썩어버리기도 힘들다. 물론 극단적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치명적으로 무책임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작은 무책임함, 이기심이 쌓여 눈덩이처럼 커져버렸다.
...병들었다고 생각해요. 권리의식이 높아지는 것은 나쁜일이 아니지만, 그건 의무의 이행이 동반될 떄의 이야기죠. 그건 모르고 권리행사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언젠가부터 엄청나게 늘어났어요. 게다가 본인들은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자신들에게 잘못이 있다는 생각은 못해요...p. 159
잘못했다고는 느끼지만, '법에 저촉이 안되니까'란 말로 자신의 책임을 면하고 (법은 최소한의 도덕일 뿐이다. 그게 방패가 될 수 없지않은가! ) 잊어버리는게 정신건강에 좋아 매정하게 뒤돌아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비판만 했다면 또 [통곡]처럼 미진했을지 모른다. 남을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맨마지막 아버지의 통렬한 눈물이 남을 가르키는 하나의 손가락과 함께 자신을 가르치는 손가락을 인정하기에 더 큰 반향으로 다가온다.
...착한 일을 하기가 어려우니 나쁜자를 규탄해 스스로를 '좋은 자'로 여기려 한다. 자기생각없이 '나도, 나도' 외치기만 하면 우린 좋은 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누군가를 규탄할 권리가 있나?- 미나코 가나에의 [고백]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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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사회에 '정의란 무엇인가?' 를 아주 잘 표현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난반사>를 읽는 동안 이런 설정의 스토리를 누군가가 한번쯤은 쓸 것이라 예상했다. 굳이 소설이 아니라 해도 종종 신문 사회면에서 이미 읽었을 수도 있다. 그정도로 사회적으로 만연했으며 이미 우리 또한 그 '사건'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데 내 돈 1만원을 건다. 나 역시 그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떳떳할 수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나도 모두 같은 공범이다. 우린 이미 그런 사람들이다. 우린 이미....
<난반사>의 사건을 가장 잘 설명하는 영화 한편이 있다. 바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발레리나인 여주인공은 우연의 연속으로 인해 교통사고라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교통사고가 나기까지의 몇 번의 무심코 지나친 사소한 일들이 동시에 만나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큰일을 만들어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소설이지만 실제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몇 년 전 클론의 강원래씨가 불법 유턴을 한 자동차에 치여 척수손상마비로 인한 하반신을 쓰지 못한다. 그가 교통사고에서 하반신 마비까지의 과정을 살펴볼까?
우리가 평소 가장 많이 저지르는 사소한 이기심 중 하나가 바로 신호 위반이다. 아무도 없는데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고 시간이 아까우니 좌우 한번 쓰윽 보고 신호를 무시한 채 그냥 내지른다. 그러길 수십 번. 다행히 아무런 사고도 피해도 없었다. 그러던 과정을 몇 번, 수십 번을 하고 또 하고 반복한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마 평생 신호 위반을 밥 먹듯이 할 것이다. 계속해서 스스로 핑계를 만들어서 말이다. 그런 수백만 운전자 중 하나가 무심코 평소대로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불법 유턴을 하고 신호를 지키며 달려오던 오토바이를 그대로 친 것이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예상치 못한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 땅으로 내던져 진다. 여기서 만약 부상당한 상태로 강원래씨를 그대로 둔 채 구급차를 기다렸다면 하반신 마비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전문가 예상) 그런데 차도에 누워있어 위험하단 판단에 강원래씨를 머리-다리를 들어 올린 채 그대로 인도로 옮겨진다. 이때 치명적인 2차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멋대로 벗긴 헬멧으로 3차 손상까지. 이 모든 이유로 미래가 창창한 강원래씨는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난 강원래형님 팬이다!)
다시 <난반사>를 볼까? 유모차를 끌고 가던 한 어머니가 가로수 길을 걸어가다 갑자기 쓰러진 나무가 그대로 유모차를 덮쳐 아이는 뇌를 다친다. 그런데 구급차가 도착하는데 길은 막히고 응급 수술한 병원은 없었다. 모두 뇌수술을 할 수 없다는, 환자가 너무 많다는 핑계로 지나친다. 결국 아이는 죽게 된다. 죽은 아이의 아버지(기자)는 이 황당하고 어이없는 사건을 되짚기 시작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소한 이기심으로 인해 엉뚱하고 나약한 아이가 죽게 되기까지, 이 엄청난 사건의 이유를 알게 되자 또다시 반복될 피해를 막고자 기사로 쓰기 시작한다.
'인간의 운명은 아주 사소한 일 하나로 갈린다는 사실이다.' 소설속에 나오는 문장이다. 내가 지금 쓰는 건 비록 소설이지만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사소한 일을 저지르고 있을 것이며 그것으로 인해 아무 상관없는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난반사>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가는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 파장을 일으키는 첫 단추가 됐으면 좋겠다. 한번쯤은 읽어야 할 책으로 강력 추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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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반사 누쿠이 도쿠로
1964년 3월 13일 미국 뉴욕이 사는 20대 여성키티 제노비스는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정신이상자에게 붙잡혀 칼부림을 당한다. 그녀는 35분 동안이나 잔혹하게 난자당해 숨졌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외면하는 극단의 이기주의가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제노비스 신드롬. 38명의 사람들이 제노비스가 칼부림을 당할 동안 누군가 전화하겠지라는 생각과 귀찮은 일이 휘말리면 나만 고생이라는 생각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이때문인지 요즘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거나 문제가 생길때면 다수의 사람에게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를 외칠게 아니라 콕 집어 거기 모자쓴 아저씨등 개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한다고 조언한다. TV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도 제노비스 신드롬이 실제한다는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그냥 웃어넘길 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는 건 그 피해자가 나와 사랑하는 내 가족일 경우에라는 만일이라는 전제가 깔리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오늘 인터넷 뉴스를 통해 용감한 청년이라는 기사를 봤다. 길 한복판에서 한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는 할머니를 행인들은 그저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말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한 청년이 용감하게 나섰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청년의 행동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에겐 내 일이 아니라는 책임회피의 현상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이 청년처럼 제노비스 신드롬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정신 그 정신이 요즘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난반사'는 이 제노비스 신드롬을 격하게 떠오르게 했다. 잠재된 제노비스 신드롬. 사람들이 이건 내 일이 아니다, 이정도가 무슨 큰죄가 되겠어라는 생각, 도덕적 해이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다. 시종일관 잔잔하지만 그 잔잔한 일상의 작은 행동들이 누군가에겐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한 아이가 죽었다. 그리고 범인은 세상 그 자체였다!"
사건은 아주 우연하게 일어났다. 길을 지나가던 유모차와 엄마 위로 가로수 나무가 쓰러졌다. 다행히도 엄마는 무사했지만 가로수 나무는 유모차를 덮쳤고 아이는 머리를 심하게 다치고 말았고 끝내 사망했다. 지나가는데 나무가 덮쳐 사고를 당하다니! 누가 봐도 불운한 사고로 밖에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사건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고 말한다. 의도하지 않은 누군가의 작은 부도덕한 행동들이 모여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생각없이 무심코 저지른 행동들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생각과 행동은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내가 아무런 의도없이 했던 부도덕한 행위가 언젠가 커다란 가로수 나무로 내 머리위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정말 잘 살아야겠다 느끼게된다.
폄벙해보이기만 하는 일상에서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누쿠이 도쿠로. 이 작가의 이야기를 더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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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 병문안을 마치고 귀가하던 미쓰에와 두 살배기 아들 겐타를 강풍에 뿌리째 뽑힌 가로수가 정면으로 덮칩니다. 미쓰에는 머리를 크게 다친 겐타를 급히 병원으로 옮기려 하지만 구급차는 갑작스런 교통 정체에 휘말리고 인근 병원에선 응급환자가 많은데다 외과의사가 없다며 진료를 거부합니다. 악운이 이어진 끝에 치료시기를 놓친 겐타는 끝내 숨지고 맙니다. 겐타의 아버지 가야마는 가로수 관리를 소홀히 한 조경회사에 책임을 물으려 하지만, 사고의 원인을 파헤칠수록 겐타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이들이 한둘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법으로 재단할 수 없는 사소한 죄의 조각들은 가야마를 심연과도 같은 절망과 분노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출판사가 공개한 선에서 정리한 줄거리입니다.)
‘통곡’, ‘후회와 진실의 빛’, ‘우행록’(개정판 제목은 ‘어리석은 자의 기록’) 등 누쿠이 도쿠로 작품의 매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자의 마음속에 바윗돌 하나를 얹어놓은 듯한 불편함을 느끼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결과보다 과정에, 사건보다 심리나 감정에 소구하는 그의 작품들은 매번 저절로 한숨이 나오게 만들거나 다소 우울한 여운을 길게 늘어뜨리기 때문입니다. ‘난반사’는 누쿠이 도쿠로의 여느 작품보다도 그런 느낌이 더 강렬한 편에 속하지만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을 순삭 시킬 정도로 ‘재미’ 면에서도 압도적입니다. 또 형식적인 면에서도 일반 미스터리와 전혀 다른 독특한 구성을 갖추고 있어서 여러 가지로 눈길을 끈 작품입니다.
“언뜻 불운한 사고로만 보이는 아이의 죽음은 사실 살인이었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합세해서 죄 없는 아이를 죽인, 더할 수 없이 이상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 죽음의 특이성을 알아채는 이 없이 범인들은 오늘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p 6)
시작하자마자 범인(들)과 피해자와 사건의 개요가 공개됩니다. 줄거리와 프롤로그를 조합해보면 두 살배기 아이가 쓰러진 가로수에 맞아 사망한 사건에 여러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됐다는 것, 또 그들은 명백히 ‘아이의 죽음을 야기한 범인’이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미스터리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이야기의 윤곽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니 다소 맥이 빠지는 게 아닐까, 우려할 수도 있지만 누쿠이 도쿠로는 ‘누가 범인?’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악의와 이기심들이 어떤 식으로 난반사 된 끝에 무고한 아이의 죽음을 일으켰는가를, 그리고 그 악의와 이기심이라는 것이 흉악하고 난폭한 자들의 것이 아니라 실은 세상사람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저지르곤 하는 일상적인 행동이란 것을 집요하게 그려내어 독자에게 분노와 절망과 공감과 비탄을 한꺼번에 맛보게 만듭니다.
허영심에서 사회운동을 시작한 전업주부, 적당주의에 물든 태만한 의사, 복잡한 낮시간을 피해 응급환자용 야간진료를 찾는 대학생, 별 탈 없이 무난한 직장생활만 원하는 전형적인 공무원, 동생에 대한 열등감과 타고난 소심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젊은 여성, 반려견의 분변을 길에 방치하는 노인, 그리고 노부모 간병 때문에 갈등을 벌이다가 아들을 잃고 비극의 주인공이 된 부부 등 두 살배기 겐타를 죽음으로 내몬 인물들의 사연이 천천히, 하지만 그래서 더 고조된 긴장감과 비극성을 품은 채 하나씩 독자에게 설명됩니다.
작가 스스로 “‘난반사’의 테마와 무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라고 했듯 실은 겐타의 죽음에 관여한 이들의 행동은 너무나 평범하고 흔한 것들이라 역설적이지만 더 큰 무게감과 충격을 지닙니다. 법보다는 도덕과 양심에 영향을 받는 행동들, 하지만 그래서 누구나 쉽게 어기고 무시하는 행동들, 그리고 그 행동들을 스스로 “어쩔 수 없었다.”, “딱 한 번만.”이란 식으로 합리화하는 작은 악의와 이기심들.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게 될 평범한 상황들이지만 그런 것들이 연쇄적으로 일으킨 불운의 나비효과는 두 살배기 겐타에겐 너무나 잔혹한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뭘 잘못했냐?”만 내뱉을 뿐 그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겐타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들을 법으로 단죄할 수도, 언론을 통해 응징할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겐타를 죽음으로 내몬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아버지 가야마는 매번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히지만, 스스로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음을 깨닫곤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에 자책을 거듭하게 됩니다.
개운하지도, 통쾌하지도 않은 누쿠이 도쿠로 식 엔딩은 독자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만의 특별한 구성과 문장을 통해 깊이 있게 그려내는 누쿠이 도쿠로의 스타일을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한국에 출간된 12편 가운데 ‘난반사’까지 9편을 읽었으니 나름 팬이라 자처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2017년 이후 더는 한국 출간 소식이 없어서 그저 아쉬울 따름인데, 아껴 읽느라 몇 년씩 책장에 방치해놓은 나머지 세 작품도 이제는 한 편씩 꺼내 먼지를 털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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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결과와 마주했는데 그 결과가 자신의 잘못 때문에 발생한 것임을 알게 될 때 선뜻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 될 줄 알았으면 내가 그랬겠나. 비극을 야기한 행동이 사소하고 생각 없는 것일수록 우린 오히려 더 당당할 수 있다. 일단 법적으로 죄를 묻기도 어렵고 나 혼자만의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그 정도 사소한 잘못은 저지르곤 하니까. 그래서 나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점차 스스로한테 설득당하기에 이른다. 난 정말 잘못이 없었잖아? 누쿠이 도쿠로의 <난반사>는 사소한 악행이 불러온 상상을 초월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가로수가 쓰러져 아이가 머릴 다치고 끝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작가는 서두에서 이 사건은 살인이고 범인은 세상 사람 모두라고 한다. 엄청 거창한 서두인데 간단히 말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의 삶과 죽음에 책임이 있음을 명시한 작품으로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하긴 할 테지만 더 깊게 생각하진 않거나 혹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지점을 파헤친다. 허영심을 위해 환경 보호를 자처한 주부, 야간에 상습적으로 진료를 받는 병약한 학생, 허리가 아파서 개똥을 방치하는 남자, 불편하고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 의사와 공무원, 운전에 적잖은 공포를 갖고 있는 여자 등 작품에선 실로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이 일상 속에서 각자만의 납득할 수 있는 이유 때문에 지키지 않은 사회 규범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어겨져서 터진 비극까지가 마이너스 부분, 그 이후 아이의 아버지가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고자 관계자를 찾아다니는 게 플러스 부분의 내용이다. 처음에 비극을 예고하고 -44장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 숫자가 0에 가까워질수록 불길함이 짙어진다. 캐릭터간 행동에 어떤 접점이 있는지 추측하느라, 그리고 읽는 동안 은근히 고갤 끄덕이게 되는 이들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 비난받을지 내가 다 걱정이 돼서. 아니나 다를까,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고 암을 유발하는 전개와 리액션이 나오는데... 전부터 느꼈지만 이 작가는 독자를 짜증나게 만들어서 몰입시키는 재주가 상당하다. 어쩌면 사회파 추리소설의 미덕인 문제 제기에 그보다 잘 어울릴 수 없는 재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직 반려견이 살아있던 시절의 이야긴데, 아침에 산책을 나가면 똥을 치우지 않곤 했다. 비닐을 깜빡하고 안 갖고 나오면 그 똥을 나뭇잎으로 싸 수풀에 던졌다. 당시엔 나무의 거름으로 좋지 않겠느냐고 합리화하며 자릴 떠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민폐를 끼친 셈이다. 그런 나의 행동을 보고 가끔 따끔하게 지적하는 동네 이웃이 몇 명 있었는데 그땐 뒤에서 엄청 욕을 해댔다. '다 나무들 좋아라고 하는 건데' 라면서. 결론부터 말하면 나도 결국 이 작품 속 인물들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귀찮아서 저지른 매너 없는 행동이 다행히 큰 사건으로 번지지 않았을 뿐 - 혹은 터졌는데 내가 모르는 것뿐일 수도... - 합리화를 해대느라 잘못이 잘못인 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몇몇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 그런 것처럼 이 작품도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결이 다른, 어떻게 보면 혁신적이고 어떻게 보면 추리소설의 탈을 쓴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었다. 내용 전개가 불길한 한편으로 충분히 다음 내용이 짐작되고 살해당한 아이의 아버지 가야마가 딜레마에 빠진 것처럼 너무나 사소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한테마저 책임을 묻는 전개가 다소 불편한 전개라서 전체적으로 읽기에 껄끄럽고 고통스러웠다. 작가도 그를 느꼈는지 에필로그로나마 가야마 부부를 위로하는데 사족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책 중 가장 잔혹했기에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마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읽기 불쾌하지만 가독성은 상당했다. 위에 개똥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일부 나랑 비슷한 사고를 가진 인물이 등장해서 정말 '남의 얘기' 같지 않았다. 그만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범죄라고 의식하지 않는 미묘한 악행을 그렸는데 그 악행을 이끌어내는 심리의 묘사가 워낙 출중해서 이 부분만으로도 상당히 재밌었다. 작품의 주제도 너무 좋았다. 아이의 죽음에 연관된 사람들 중 대부분은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그들 일상에 저마다의 상당한 균열이 생긴 점을 주목하면 - 물론 가야마는 알 수 없지만 - 우리들 일상의 죄가 법적인 책임만 물을 수 없는 것이지 도덕적 책임 아래에선 자유로울 수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린 법 아래에서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도덕 아래에서 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므로 절로 경각심이 불러일으켜졌다. 등장인물 중 어느 한 명한테라도 공감한 독자일수록 경각심이 더 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행동이 결코 바라지 않을 비극으로 돌아올 것이란 상상을 한 번이라도 한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인상 깊은 구절 난 세상 사람들의 아픈 곳을 찌른 것이다. 비판 메일의 내용처럼 가야마가 규탄한 '사소한 이기주의'는 누구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 결과가 우연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 연결되었기에 특별하게 보일 뿐, 몇백만 몇천만 사람들은 날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것을 가리켜 '죄악'이라 규탄한 가야마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린 것인지도 몰랐다. 넌 뭐가 그리 잘났어, 하는 반발심이 비판 메일의 등 뒤에 비치는 것 같았다. (중략)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주장만 하면 어느 시점에 파탄이 난다는 것은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도 알 수 있지 않나.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부러 상상력을 죽이고서 아무것도 못 본 척하는 것인가. 손안에 있는 코딱지만한 권리가 그토록 사랑스럽단 말인가. - 458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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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디자인만 보면 선뜻 손을 내밀 책은 아니다. 특히, 종래에 읽던 책들의 볼륨과 비교했을 땐, 약간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작가가 누군가 ! 누쿠이 도쿠로다.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나에게 추리소설의 깊은 세계로 손짓한 그 작가! 미소짓는 사람들에서는 역시 통곡을 넘어서지 못하는 구나라는 실망감을 맛보게 해주었지만, 역시 통곡의 치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 작가가 아닌가. 원래 구매하려던 책들은 기억의 안개속으로 떨궈트리고, 누쿠이 도쿠로의 두권을 골랐다. 그중 한 권이 난반사 이 책이다.
방금 전 먹먹한 느낌으로 마지막장을 넘겼다. 소설속의 사건이나 상황을 본인틀에 잘 끼우는 필자의 습관일지도 모르지만, 사소한 이기주의로 사건이 일어난 이 소설에서 세월호가 문득 떠올랐다.
켄타라는 2살 난 어린 아이가 강풍으로 쓰러진 나무에 깔려 사망한다. 그 죽음엔 수많은 간접적인 살인자들이 존재한다. 자신의 삶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딸에게 본인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서 가로수 벌채반대운동에 가담하는 다마루 하나. 정년퇴직 후 아내와 딸에게 관심받지 못하자 그 서운함을 강아지에게 보상받으려는 미스미 고조. 귀찮은 의료분쟁등을 기피하기 위해 적당히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의사 구메가와. 낮시간 복잡한 병원을 피해 야간진료를 찾아 치료받는 대학생 안자이. 귀찮은 일은 되도록 피하고, 무난하게 살아가고 싶은 공무원 고바야시. 가족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표현못하고 동생의 의견에 끌려다니는 20대여성 에노키다. 결벽증을 방치하여 결국은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해진 조경사 아다치. 이 수많은 간접적인 살인자들로 인해 켄타는 죽음을 맞게 된다. 아들의 죽음에 석연치 않음을 느낀 가야마는 신문기자로 아들의 사건의 배후를 알아가면서 사소한 이기주의로 자신의 아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을 알고 절규한다.
작가는 -44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부터 인물상마저 찬찬히 설명해준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 필법이 제법 지겨울만한데, 사실 그렇지 않다. 위 등장인물들이 그렇게 된 경위와 사회 풍조를 조심스럽지만, 신랄하지 않게 말해준다.
2014년 사소한 이기주의로 인해 일어나는 인재들을 수없이 보았고 들었다. 특히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세월호사건은 이 소설에서 처럼 피해자는 있는 데, 미안하다고 말하는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야마는 켄타의 죽음은 안되었지만, 본인과는 관계없다고 일관된 모습을 보이는 가해자들에게서 어의마저 상실한다. 아마도 우리들 모습도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괜찮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이 범하는 사소한 이기주의가 지금의 세월호사건을 빚어낸 건 아닌지. 그리고 지금 그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내일이 아닌 남일로 바라보는 우리들 또한 소설속에 등장하는 가해자들과 다를 바가 없진 않은 지. 안타깝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 머리가 아파온다. 그리고, 나만이라도 나만 괜찮다는 사소한 이기주의로부터 탈피해야겠다.
책중에 -인간의 운명은 아주 사소한 일 하나로 갈린다는 사실이다- 라는 말이 가슴을 퍽하니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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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소설 좀 읽어보라며 추천한 책이다. 두꺼운 분량이었지만 흥미로운 전개라길래 틈틈이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아무래도 이야기를 꾸려나가는 단계여서 책장을 넘기기 쉽지 않았는데 특히나 이 책은 짧은 챕터가 끝날때마다 계속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나가며 전혀 연관성없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더욱 그러했다. 덕분에 진도를 빼는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는. 그런데 역시나 괜히 나한테 추천한 책이 아니었는지 중간정도 읽어나가니 점점 이 책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오오. 퍼즐의 각 귀퉁이에서 연결되던 조각이 점점 늘어나 하나의 그림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처럼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나름 악의없이, 사심없이 행했던 행동의 결과는 끔찍했던 것이었다. 제목의 난반사.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빛이 불균질한(?) 표면에 부딪혀 예측불가능한 산란을 일으키는, 그러니까 어지럽게 반사를 일으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뒤섞여 반사된 선들이 한곳에 모여 불을 내고 만 것일까. 책 중반 이후에는 이 불때문에 지워지지 않는 화상을 입게된 주인공이 발화점에 모인 하나하나의 선을 추적해나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책 말미에 역자가 이 책의 전체 내용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한 문장을 발췌해놓았는데 정말 절묘한 문장이기에 그대로 옮겨본다. '딱 한번이야, 딱 한 번. 가야마는 속으로 되풀이했다. 상습적으로 휴게소에 쓰레기를 버리는 비상식적인 사람고는 분명 죄의 무게가 다를 거야.' 문득 신독(愼獨)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몸가짐과 언행을 바르게 해야한다는 뜻이다. 하나하나의 사건만 가지고는 누구에게도 전적인 책임을 묻기 힘들었던 그래서 더 비통했던 한남자의 이야기였다. 마지막 엔딩은 엽서 주인공이 누군지 알수없어 살짝 허무하긴 했지만 이야기 전개가 어색함이 없었기에 재미와 더불어 나의 도덕관념을 돌아볼 수 있었던 조금은 이상한 느낌의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