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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평전 60가지 진풍경으로 그리는 조선 신병주 글항아리/2011.4.14. sanbaram <조선 평전>은 ‘진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쓴 신문칼럼을 모아 엮은 것이라고 한다.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이 “조선시대 역사의 진면목들을 흥미롭게 펼쳐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재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서술하려 했다.(p.5)”고한다. 역사는 박물관 속에 갇혀 있을 때보다 이를 되살려내 현재화시킬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60회에 걸친 연재를 하면서 대중들이 궁금해하거나 흥미를 느낄만한 주제를 가지고 이어진 이야기들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책의 구성도 조선은 어떤 나라인가부터 역사의 의미까지 10개의 천간을 하나의 주제로 조선시대 실상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배열하였다. 저자 신병주는 서울대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하고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건국대 사회과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고전 소설 속 역사여행>, <조선 최고의 명저들>, <이지함 평전>,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등 다수가 있다. 60가지 주제 중에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왕위 계승 문제다. “적장자로서 왕위에 오른 왕은 7명(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에 불과하고, 적장자로서 세자로 책봉은 되었지만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세자도 7명이나 되었다. 왕세자로 책봉된 후에는 성균관에서 입학례를 거행했다.(p.65)”조선의 왕은 10대 초반에 여러 차례의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왕으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해나갔다. 통과의례는 왕세자가 성인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축하해주는 의식인 동시에 그 위상을 공인해주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통과의례의 주요 장면은 국가 의식의 최고 기록인 의궤로 정리하여 후대에까지 영원한 전범이 되게 했다. 광해군은 외교 분야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광해군과 그를 지원하던 북인 정권을 무너뜨린 서인 세력에게는 동생을 죽이고 어머니를 페위 시킨 패륜적인 국왕, 전통적인 국제적 신의를 저버린 파렴치한 군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광해군은 연산군과 함께 ‘조, 종’으로 칭해진 조선의 여느 왕들과는 달리 ‘군’이라는 왕자 시절의 호칭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로 천민이었던 노비가 신분 해방이 되기까지의 문제다. 조선시대의 천민이었던 노비는 왜란에 참전하는 것으로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전란이나 반란 때의 공헌, 경제력의 상승으로 신분 해방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국가나 주인의 압박이 심한 경우 노비는 도망으로 신분 해방을 꾀했다.(p.141)” 주인이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도망가서 신분을 감추고 살다가 양인을 사칭했다. 조선후기에는 도망 노비가 급증했으며, 노비를 잡는 추노꾼 이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이것은 조선의 노비제도를 붕괴시킨 주요 원인이 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마침내 노비제도가 폐지되었다. 세 번째로 서얼차별 문제다. 서얼 차별의 문제가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다. 그렇다고 조선시대 첫 시작부터 그러한 것은 아니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적자와 서자의 차별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성리학 이념이 조선 사회에 견고하게 정착하면서 이념과 명분이 강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양반과 상민, 남자와 여자, 적자와 서자의 차별은 심해졌다.(p.455)” 영조의 서얼허통 정책은 정조대에 그 결실을 본다. 1777년(정조1년) 마침내 ‘서얼허통절목’이 반포되어 서얼들의 관직 진출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었다. 정조가 개혁정치의 산실로 만든 규장각에는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서이수 등 서얼 출신의 학자들이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어 학문 연구와 정책 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세 번째로 궁궐의 행사를 기록한 의궤다. 그 중에서도 활쏘기 행사인 대사례가 있다. “영조대 대사례 행사는 <대사례의궤>로 남겨졌다. 이 의궤에는 먼저 왕이 활 쏘는 장면을 담은 ‘어사례도’와 신하, 종친들의 활쏘기 장면을 담은 ‘시사례도’가 있어 당시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전달해준다.(p.475)” 먼저 악차에는 세 개의 단을 설치했다. 제1단은 국왕의 자리, 2단은 순자줏빛의 용문석을 깔아놓은 어사위, 3단은 종친 및 문무백관의 자리였다. 단의 동쪽에는 3개의 탁자가 놓였다. 제1탁에는 국왕의 깍지와 팔찌를 담고, 2탁에는 어궁을, 3탁에는 어시를 담았는데, 탁과 함은 모두 붉은색이었다. 동서 계단 아래에는 탁자 두 개를 두었다. 동쪽 탁자에는 상으로 줄 표리와 궁시를 놓았으며, 서쪽 탁자에는 벌로 줄 단술과 잔을 놓았다. 바닥을 높여 사단을 만들고 90보 떨어진 곳에 과녁을 세운 다음 후단을 쌓았다. 임시로 설치한 어좌 앞으로는 문무 관리들이 호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며, 악차는 차일과 휘장으로 사방을 막아 국왕을 엄호했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조선을 움직인 10대 뉴스”를 다음과 같이 선정하였다. 1) 훈민정음 창제 : 백성들 문자에 눈을 뜨다 2) 임진왜란 발발 : 팔도가 전쟁터로 3) 삼전도 굴욕 : 인조, 오랑캐9에 무릎 수모 4) 막 내린 고려시대 : 태조, 한양 천도 5) 영, 정조 시대 : 정치, 문화의 중흥을 맞다 6) 4대 사화 피바람 : 붕당정치의 시작 7) 진경문화 : 병자호란의 아픔 보듬이 8) 인조반정 : 사상계에 회오리가 일다 9) 제도 정치의 전개 : 제동 걸린 개혁 10) 조선왕조실록 등 세계적 기록물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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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평전이란 제목은 굉장히 낯설면서도 무겁게 다가왔지만, 정작 내용은 제목에 비해 무겁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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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던 중 제목이 눈에 들어와 구입하게 됐다. 특별한 의미를 둘 정도로 의도나 관심이 있어서 손에 쥔 게 아니라 읽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읽기 어렵지 않고, 꽤 재미난 구석이 많았다. 어쩌다 이걸 이렇게 미루고 있었을까?
조선시대 정치, 사회, 문화의 사건과 풍경들을 60갑자의 틀 속에 담아낸 '조선평전'. 조선시대 역사의 진면목들을 흥미롭게 펼쳐내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재와 대화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
각 내용별로 서두에 (아마도) 당시 화제를 모으거나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상황을 어떤 식으로 조선 시대에 있었던 내용과 겹쳐볼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그걸 잘 해냈는지 아닌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지도 모르고.
조선을 그리고 역사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흥미를 끌게 하는 부분도 많아 읽는 재미가 많았다. 조선 시대를 대한 체계적으로 다루진 않지만 살짝 발을 담가보도록 해주고 있어서 약간은 가볍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꽤 괜찮을 것 같다.
#조선평전 #60가지진풍경으로그리는조선 #신병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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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보는 순간 그 두께에 부담감을 느낄 만큼 두꺼운 책이지만 신문에 연재되었던 칼람을 모은 책이라 짧은 숨으로 읽을 수 있어 부담감은 그리 크지 않은 책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유물(조선 실록, 승정원 일기, 일반 양반들의 일기등)에서 볼 수 있는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라고 일컬을 때나 조선시대를 묘사한 드라마를 볼 때 500년 동안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의복이나 건축만을 보아서는 조선 초기, 중기와 후기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등장 인물들이나 왕의 호칭을 듣고 시대를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500년이나 지속된 조선의 역사에서 초기와 후기의 그 생활상은 많이 다를 것이다. 세계적으로 그 5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 났을까? 이 책을 읽어 가면서 그 500년 동안의 정치체제나 이념 문제, 사회체제의 변화를 조금씩 실감있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이 아닌 개인들의 일기를 통해서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을 기록한 쇄미록이나 손자양육 일기를 쓴 이문건의 양아록을 읽으면서 그들의 삶의 고통을 절실히 느끼게 되어 그들이 그저 역사책에나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땅에 정말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현대인이 생각하기에는 정체되어 있고 쇄국으로만 치달았다고 생각되어지는 조선시대가 나름대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 기쁘다. 다만 그 노력이 더 많지 않고 좌절되어 비극적인 종말을 맞은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조선시대가 500년을 지탱한 것은 그만한 저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의 성곽의 역사와 실록 보존을 위한 노력, 과거시험, 경국대전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선시대 관료들의 저력을 알게되어 기쁘다. 또한 계유정란대 세조의 편에 서서 항상 역사책에서 성삼문과 비교되어 저평가를 받았던 신숙주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어 기쁘다. 이념적 순교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해서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이룰 것인가는 많은 역사의 변혁기에 지식인들이 선택해야했던 문제이다. 조선시대에도 그랬었고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을 통해 신숙주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세계사에 유래가 드물게 조선시대는 500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종말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해방이후 근대화의 물결에 완전히 잊혀진 시대가 되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살아 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많은 책들을 남겼지만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책이 오랫동안 읽혀질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100년이 지나지 않아서 그 책들을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다행히 요즘 그 그 책들이 조금씩 번역이 되어 그들의 삶을, 그들의 성공과 좌절을 읽을 수 있게 되어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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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평전 같은 역사책을 처음 본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책과 너무 달라서 역사책인 줄 모를 정도였다. 일반의 역사책은 주요 시대의 변화를 연대기적으로 서술거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나누어 서술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방식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다. 기존의 역사책들이 연대기적이고 분석적이라면, 이 책은 옴니버스적이고, 묘사적이다. 조선의 역사가 큰 주제가 되고, 여기에 관한 글들이 모여 있다는 점에서 옴니버스적이다. 그리고 각 이야기마다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배치한 그림이나 이야기 서술들이 이 책을 묘사적으로 만든다. 먼저 서문을 보면 작가는 현재성과 현장성을 위주로 글을 썼다고 한다. 현재성이란 과거의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오늘을 이해하는 것을 뜻 한다. 또 현장성이란 역사를 가능한 한 생생한 맥락 속에서 배우는 것을 뜻 한다. 둘의 관계를 따져보면 현장성이 뒷받침되어야 현재성이 가능하다. 그런데 현장성이란 어떻게 담보 될 수 있는 것일까? 현장성을 위해서는 고정된 책의 역사가 아니라 살아있고 끊임없이 해석되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현장성이란 과거에 존재했던 현장성이 아니라 현재 존재하는 사람이 과거를 보면서 느끼는 현장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역사를 배우는 사람이 현장성을 느끼는가? 그것은 사람이 현실을 느끼고 이해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주변에 있는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들 하나하나의 의미를 만들고, 그리고 모든 의미가 어떤 나름의 방식으로 한 사람 속에서 공존한다. 이것이 논리적일 수도 있고 모순적일 수도 있다. 언제나 총체적인 경험을 이해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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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조선시대도 지금처럼 사람사는 시대였고 그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많은 새로운 것에 노출된 지금과는 조금 다른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재밌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