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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젊은작가상 수상작가들의 작품을 읽어오면서 구태의연한 이야기보다는 신선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새로운 작가를 알아간다는 느낌도 중요했다.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신예 작가들을 알지 못했을테니. 마치 조바심을 내는 것처럼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수상작품집도 구입하고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벌써 한 해가 지나 2018년 수상작품집이 나왔다. 작년 수상작품집에서 보았던 작가의 이름이 또 보여 반갑기도 했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나온지 9년이 되었다. 작품을 읽어오면서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작가들의 면면을 안다는 게 무척 반가운 일이었는데, 올해의 작품집에서 이름이 익숙한 작가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 무척 새로웠다면 새로웠달까. 그만큼 새로운 작가들의 탄생되었다고 봐야겠다. 일곱 명의 작가의 이름을 되새기고, 그들의 작품의 느낌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책들의 내용은 신선했다. 어디선가 본듯한 작품들이 별로 없었다는 게 새로웠다. 총 일곱 편의 소설 들에서 작품에 몰입해 읽었다. 대상 수상작인 박민정의 「세실, 주희」에서는 친구 J에게 의지해 미국 여행중 한 축제장에서 벌어졌던 일로 인해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있던 자신의 영상을 바라보며, 일본에서 한국인 가수를 좋아해 한국에서 살며 한국어를 배우는 세실과의 이야기를 한다.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알기란 어렵다. 역사를 배우지만 피상적일 뿐이다. 깊이를 알 수 없단 얘기다. 주희가 미국인들보다 더 미국인이처럼 대화하고 행동하는 J를 부러워했던 감정과 세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며 느끼는 감정들, 위안부 집회를 하는 장소에서 아무렇지 않게 전쟁피해자라고 말했던 것에서 주희는 뉴올리언스에서의 자신을 떠올렸다. 이런 상황들은 반복되는 것일까.
두번째 이야기는 임성순의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은 비자금의 한 형태로 보았던 미술계에 몸담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한다. 미술계의 사건으로 그림들을 소개하고 부풀리기에 앞장섰던 그가 그 길로 들어선 자신의 이야기와 한국에서 실패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재기를 꿈꾸었던 것들을 말한다. 세번째는 2017년 대상 수상작가이기도 했던 임현의 「그들의 이해관계」 다. 아내가 안개에 휩싸인 도로를 건너던 버스안에 있어 사고를 당해 죽었다. 원래는 다른 버스였지만 출발한 버스로 인해 다른 버스를 타야 했던 일이 나중에야 밝혀졌다. 사고를 피했던 운전자가 해고를 당한게 옳은가 옳지 않은가는 이해관계에 따라 가해자가 될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나락으로 떨어지더라도 이런 불꽃을 쏘아올릴 수 있다면 삶은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나도 이곳에 내가 발굴한 작가의 그림을 걸고 싶었다. 불꽃은 되지 못하겠지만, 불꽃을 쏘아올리는 발사대 같은 것이라도 되고 싶었다. 나는 그림 앞 벤치에 앉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던 걸까? (70페이지, 임성순,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중에서)
정영수의 「더 인간적인 말」은 죽음은 누가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건넨다. 변호사로부터 걸려온 전화. 아내와의 이혼을 담당하는 변호사인줄 알았지만 이모의 유산 상속에 대해 이야기하는 전화였다. 여기에서 자신에게 많은 유산을 남기는 이모가 현재 살아있다는게 문제라면 문젤까.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겠다며 스위스로 갈 계획을 짜둔 이모를 방문해보지만 이모는 계획을 바꾸려 들지 않는다. 존엄사에 대해 아내와 논쟁을 벌이지만 결정은 이모가 해야 한다. 어느 소설에서도 앞으로 살아갈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아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던 이가 있었잖은가.
전체적으로 보자면 일종의 절대량 같은 게 있어서 그게 늘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 확률상으로는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다만 엄청나게 큰 분모와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분자 값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항상 누군가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사고를 당할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했던 건 아닐까. (109페이지, 임현, 「그들의 이해관계」 중에서)
블로그 후기 광고대행사에 근무하며 채털리부인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광고를 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 김세희의 「가만한 나날」과 어두운 거리의 오로지 한 곳에서만 빛을 발하는 한 식당에 들어선 여자와 그녀의 엄마와 동생을 오리와 돼지라 칭하며 일어나는 이야기인 최정나의 「한 밤의 손님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이 퀴어 영화를 만드는 남자의 이야기인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가 있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혔다. 한 동성애자의 고백처럼 여겨지기도 했는데, 퀴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라크 파병을 나가 만났던 왕샤의 이야기는 꽤 설득력이 있다. 마음이 열린것일까.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까. 퀴어 이야기이지만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걸 보면. 결국 성적 취향의 차이인걸까.
매 수상작품 마다 신예 작가의 평론이 수록되어 있어 소설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 소설을 바라보는 방법, 느끼는 방법들을 알 수 있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도 평론가들의 글로 명쾌하게 드러나는경우도 있다. 새로운 작가들의 소설을 읽는 일이 좋다. 마치 굳었던 생각들을 유연하게 해준달까. 소설을 읽는 일도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젊은작가상 수상작들을 읽는 일도 유연한 사고의 일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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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인생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오늘 하루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아도, 그 인생이 지속되어도, 시간이 흘러 내 삶을 뒤돌아보면 우린 나름 생각한다.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하루하루가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우리 네 고민이 들어 있고, 인생의 어려움이 들어 있다. 때문에 우리는 고민과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하며 살아가게 된다. 멀리서 내 인생을 바라봤을 땐 아무런 특이사항 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그 속에 희로애락이 숨 쉬고 있다. 오늘은 이런 일이 내일은 저런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일이 나를 성장시키고,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간다.
단편 소설을 읽다보면 그게 우리 네 인생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갈지, 이 사회의 단면을 몽환적으로 혹은 절망적으로 묘사할 때가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 소설을 읽게 되는지 모른다.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소설과도 같으니까. 매년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구매하려고 한다. 새로운 작가를 아는 것도 좋지만, 올해는 어떤 이야기들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잡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번에 만난 수상작들의 작가들은 몇 명 빼고는 모르는 작가라 더 반갑다. 훗날 이 작가들의 다른 책을 찾아 읽을 수 있을 테니까. ^^
대상작인 ‘세실, 주희’는 비슷한 또래의 다른 국적의 세실과 주희의 이야기다. 미국에 갔을 때 친구에게 당(?)했던 일을 마음에 품고 불편함을 느끼던 주희가 자신과 같이 일하는 일본인 세실에게 자신의 친구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민족적 차이와 혐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은 미술 작품이 어떻게 자본과 결탁해 부풀려지고 배불려지는지 그 모습을 흥미롭게 그렸고, ‘그들의 이해관계’는 버스사고로 아내를 잃은 남자와 우연히 그 사고를 피해 살 수 있었던 운전자에 대한 이야기다. ‘더 인간적인 말’은 스위스로 가 안락사 하겠다는 이모의 결정에 논쟁하지 못하고 침묵하게 되는 부부의 이야기를 그렸다. ‘가만한 나날’은 첫 직장에서의 일이 사회문제와 겹쳐지면서 승리자의 기쁨 어린 모습이 어리석은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한반의 손님들’은 식당에 모인 엄마와 두 딸의 대화에서 인간의 탐욕과 속물근성을 볼 수 있었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게이, 영화감독, 그리고 실패한 청춘이라는 선상에서 청춘의 심란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이야기 한다.
읽을 때엔 어렵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다시 한 발짝 뒤에서 보면 이야기의 핵심들이 조금씩 눈에 보인다. 이 중 가장에 기억에 남는 건 ‘가만한 나날’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며 새로운 물건이 나왔을 때 좋은 댓글을 써주는 곳에 입사한 주인공은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이라며 좋아한다. 같이 입사한 친구가 이건 아닌 것 같아. 하며 퇴사를 할 때도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이 칭찬한 제품을 쓰고 아픈 아이의 사진을 보고 생각에 잠긴다. 산소통과 거기에 연결된 호스 그리고 호흡기. 그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한다고 해서 아픔이 없어지는 건 아닐 터. 좋은 댓글을 쓰는 게 일이라고 하지만 그런 댓글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댓글을 100% 믿는 편은 아니고 가능하면 나쁘다고 말하는 댓글을 보며 나름 평가해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이게 물건뿐이겠는가? 이렇게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도 엄청난 책임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이 그래서 무섭기도 하다. 책이야 읽다가 그만 두면 되지만 가습기 살균제 같은 건 쓰다가 아이가 아팠으니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상상할 수 없다. 나만 아니면 되고, 돈을 받았으니 유리한 검사 결과를 발표할 수도 있겠지만, 그 뒤에 오는 누군가의 피해는 어떻게 감당하게 되는 건지. 인터넷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든 부분도 있지만 그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단편 소설을 읽으며 지금 현재 우리 사회를 생각한다. 소설들은 결국 이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 경우가 많으니까. 이번에 만난 작가들. 기억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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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강박적으로 작가의 이력을 찾는다. 언제 태어났고 언제 이 글을 썼는지, 그리고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더없이 친절하다. 젊은 작가들의 이력뿐만 아니라 작가노트, 작품 해설, 나아가 심사평까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와 수상 작품을 논하기 전에 ‘젊은작가상’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등단 십 년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일곱 편을 선정하는데, 그중 한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기는 하되 그것은 축제의 흥겨움을 배가하기 위한 것일 뿐, 일곱 작가에게 돌아가는 상금의 액수는 동일하며 이들 모두는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로 공평하게 호명된다.(p. 335) 2019년 10회를 맞아『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특별판』이 나오기도 했다. 에둘러 이야기하는 소설을 만날 때면 곧바로 알아들은 척했지만, 의혹에 시달렸다. 과연 잘 알아들은 것일까. 한편으로는 작가도 정답을 모를 것이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지만 말이다.『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젊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축제의 흥겨움을 제공하는 것 같다. 의혹에 시달리지 않으니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고 할까.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취향일 수도 있겠는데, 이에 대해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의견을 들어 보자.
평론가로서 글을 쓸 때는 ‘취향’보다는 ‘입장’을 말하는 것이 좋고, 또 ‘입장’ 표명보다 더 좋은 것은 ‘인식’의 생산이라고 믿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취향이 없을 수야 없다. 어떤 소설과 독자 사이에는 입장이나 인식 말고 취향만이 또렷이 남을 때가 있는데 그런 독서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p. 348 심사평)
임현의『그들의 이해관계』가 그랬다. 더없이 친절한 느낌에 쭉쭉 나아가다가 우뚝 멈추게 되었는데, 바로 이 대목을 읽을 때였다.
병원을 빠져나오던 그날 나는, 불안해하는 해주의 등을 두드리며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는데 해주는 그런 나를 가만 바라보기만 했다. 그 순간에는 그게 너무 슬퍼 보일 뿐 다른 무얼 뜻하는 줄은 몰랐다. 그랬으므로 빠른 보폭으로 저멀리 나를 앞장서 걸어가는 해주를 가만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왠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게 다 해주를 위하는 거라고, 그걸 지금 내가 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p. 101~ 102 임현|그들의 이해관계)
가만 내버려두었으면서도 왠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기분, 나는 자기 합리화를 잘 알았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할 뿐이었는데, 글에서 마주하니 묘했다.
무얼 하긴 했는데 그건 해주가 아니라 다 나를 위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해주가 분명 보았다고 했을 때, 아무도 보지 못한 걸 왜 혼자만 봤느냐고 따질 일이 아니었다. 왜 너만 계속 다르게 듣냐고, 괜한 일에 제발 걱정 좀 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려고 애쓸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화를 내던 해주를 말릴 게 아니라, 뭐가 그렇게 너를 암담하게 만들었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말해보라고, 그게 뭐든 같이 견디자고. 아니면 그냥 옆에서 가만 듣다가, 듣고 싶어할 말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너무 내 말만 해버렸다는 생각에 외로워졌다. 그걸 해주 혼자 견디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p. 104 임현|그들의 이해관계)
임현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이해관계’를 계속 검색했다. 분명히 알고 있는 단어였는데,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임현 작가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하다.
매번 그렇듯,「그들의 이해관계」를 쓰는 동안에도 누구나 내 글을 읽어주기를 바랐다. 그러고는 평소처럼 혼자 텔레비전을 보거나 양치질을 하거나 현관의 흐트러진 신발들을 정리하다가 가까운 빈 벽에 대고 가만히 “너무 나 같다······” 중얼거려주기를 기대했다. 어쩌면 누구 한 사람 정도에게는 그런 순간이 몹시 필요하지 않을까. 그게 별다른 이유 없이 지금을 조금 견디게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p. 126~ 127 작가노트|일인칭들)
그런 순간이 몹시 필요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덕분에 지금을 조금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뛰어난 소설가들의 능력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세 개의 단계를 알게 된 것도 수확이라면 큰 수확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관계 역시 그러해서 인간관계란 언젠가 내부적 한계에 부딪혀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될 때가 있다. 그런 인물들이 제3자를 만나면 그 앞에서 비로소 그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문득 성숙해지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개별 인간 혹은 인생에는 깊이라는 것이 있고 그 깊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그 깊이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보고 또 그것을 미묘한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뛰어난 소설가들의 능력이다. 그런 소설은 ‘가르친 사람은 없지만 배운 사람은 있는’ 이상한 상황을 만든다. (p. 348 심사평)
언젠가 벤야민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세 개의 단계를 언급한 적이 있다. 첫번째는 발상과 감각에 해당하는 ‘음악적 단계’, 두번째는 조립하는 ‘건축적 단계’, 세번째는 문장 단위로 직조하는 ‘직물적 단계’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단계’이면서 동시에 ‘요소’들이기도 하다. 작가마다 이 세 요소의 비율과 배치를 본능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따라 다양한 개성들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p. 362 심사평)
무턱대고 작가를 꿈꾼 적이 있다. 사실 지금도 꿈꾸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자극도 받았다.「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쓴 박상영 작가의 작가노트에 이런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노트북을 들고 밖으로 나가 불이 켜진 아무 카페에나 들어갔다. 샷이 추가된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신 뒤 정신없이 소설을 썼다. 어깨가 떡처럼 굳어버리면 거짓말처럼 아슬아슬하게 지각하지 않을 시간이었고, 눈곱을 뗄 틈도 없이 통근 버스를 타러 갔다.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에 앉아 음향장치가 고장난 기계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일을 했다. (p. 319~ 320 작가노트|한없이 평범한 날들)
지금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만 닮았지만, 행동력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박상영 작가의 행동력은 여전히 대단한 것 같다. 그는 2019 제10회에도 이름을 올렸다. 대상이다. 노력한다고 모두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어떤 누구도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다시금 새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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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2018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물론 대개의 인물 양상이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것들은 아니지만. 젊은 작가들의 기량을 생각한다면 그만한 정도는 감수해야 할 일이다.
"주희는 세실과 비슷한 주제로 이렇게 썼다. (중략) 주희는 세실의 작문을 보며,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신경쓰지 않고 문장을 대충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국어 사용자로서 자신이 가진 권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뉴올리언스에서 J도 그랬다. 모국어는 아니었지만 J는 영어에 능통했다. 주희는 문법에 맞지 않게 말할까봐 매번 신경을 곤두세웠고 짧은 메모를 쓸 때도 스펠링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봐야 했으나 J는 그러지 않았다. (중략) 주희는 맞춤법에 틀리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적어낸 세실의 작문을 보며,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보통의 한국인들보다 오히려 더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25-26쪽)
세 여성(J, 주희, 세실) 사이에 여성으로서의 동질성 또는 그에 반하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크게 두 부류의 에피소드가 드러난다. 주희는 미국 사람 같은 J를 뉴올리언스에서 무조건적으로 따라하다가 급기야는 봉변을 당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한국 땅에서 일본인 세실은 자꾸만 주희를 따르고 주희에게서 배우려고 한다. 그러나 주희는 그러는 그녀가 불편해진다. 주희는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혐오감을 느끼는 동시에, 일본인 세실에게는 민족적인 혐오감을 느끼게 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여성으로서, 민족적인 차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미국-한국-일본'이라는 세 나라 속에서 우리는(우리 민족) 어디쯤 서 있을까 하는 역사적인 고민을 하게 한다.
▶임성순: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자본이 되는 미술 또는 예술. 그런 미술과 자본의 괴물 같은 시스템에 물려 있는 '나'. 나는 자본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리고 성공가도를 달릴 것이라 믿는다.
"운명은 뜻밖의 형태로 찾아온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황금기가 갑자기 끝나버린 것은 어느 재벌의 비자금 수사 때문이었다. 특검이 출발하고 일가의 상속 문제가 세간의 관심을 끌더니, 끝내 안주인의 미술 창고가 하나 열렸다. (중략)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그림을 소유했다는 그녀의 걸작 컬렉션이 일부나마 빛을 보았다. 그리고 팝아트 거장의 걸작 소유권을 놓고 서로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51쪽)
"이것이 쇼든 현실이든 답은 늘 같았다. 모든 건 결국 돈의 문제였으니까. 어둠이 정수리 위로 떨어지지 직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이걸 라이선스 할 수 있을까요?"" (83쪽)
자본은 안개와 같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언제 어떻게 퍼졌는지도 모르게 뿌옇게 사람의 시야와 세상을 덮어 버린다.
▶임현: 그들의 이해관계 내 아내는 살고 버스 기사가 죽었다면. 나는 더 편할 수 있었을까 [전체적으로 보자면 일종의 절대량 같은 게 있어서 그게 늘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 확률상으로는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다만 엄청나게 큰 분모와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분자 값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항상 누군가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사고를 당할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했던 건 아닐까. 그런데 왜? 왜 하필 그게 해주였나?] (110쪽) 어떻게 당신은 사고를 피하고 살아남았나. 어떻게 내 아내는 죽고. 그렇다면 내 아내가 살고 당신이 죽는 것이 마땅한가 윤리적인 가치판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이다. 살면서 우리가 한 번은 겪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딜레마. 내 불행이 남의 탓 같은 생각. 어쩔 수 없다. 인간은 윤리적, 도덕적인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들의 이해관계는 무의 단면을 보듯 명확하지는 않다.
▶정영수: 더 인간적인 말 이모의 죽음. 의사의 조력을 받아 행하는 자살 같은 죽음. 안락사를 선택한 이모를 아무 말도 못하고 지켜보기만 하는 나. 이는 살인 방조죄일까? “생명은 존엄한 것이다”라는 측면에서 윤리, 종교, 규범적인 측면에서 어떤 비난을 받아야 할까 [멀지 않은 곳에 수탉 모양의 풍향계가 높이 솟아 있는 게 보였는데 그것이 바닥에 길쭉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마치 물음표를 그리고 있는 듯한 그림자가 아주 서서히 움직여 이모가 있는 아파트까지 다다르는 동안 우리는 바닥에 앉아 말없이 무언가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의사가 나오든 이모가 나오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해원과 나는 말하는 법을 잃은 사람들처럼 그곳에서 침묵한 채 기다렸고, 그리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다.] (163쪽) 죽음을 선택한 이모에게 ‘더 인간적인 말’로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죽지 마세요. 용기를 낼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요” 라고 죽음을 말리는 일이 인간적인 말일까? “그동안 고마웠어요. 잘 가세요” 라는 인사말이 더 인간적인 말일까 실제로 나에게 이런 유사한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이모의 결정’을 존중하는 쪽일 것 같다.
▶김세희: 가만한 나날 나 또한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사람으로서 괜한 죄책감에 빠지게 하는 이야기였다. 화자인 나(경진)는 블로그 후기 마케팅이 주력인 광고대행사로 취업을 한다. 신입으로서 보일 수 있는 모든 열정을 쏟아 붇고 일 잘하는 사원이 된다. 국문과 출신으로서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았다는 자부심마저 든다. 그러나. 이십육 개월간의 그녀의 이력은. 처참하게 끝을 맺는다. [기계적인 문구 말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179쪽) 상상력을 강조하는 팀장의 지시를 따르는 나는, ‘나는 프로다’라고 스스로를 채찍하면서 온갖 디테일을 살려서 실감나는 블로그 후기를 쓴다. 마치 실제 사용한 사람처럼. 마치 실제의 상황처럼, 글로써 거짓을 사실처럼 포장한다. 그것이 마치 신입의 열정인 것처럼. 그러나. 그 끝에 닿은 비극의 실상은. 누구의 책임일까. 회사도, 팀장도, 나도, 사회도 모두 다 죄인이며 모두 다 죄인이 아닌 상황. 그런 상황으로 ‘가만한’ 나날이 흐른다. 어떤 대책도 없이. 단죄도 없이. 다만 ‘나’는 더 이상 가상의 ‘채털리 부인’을 거론하지 않는다. 블로그 상의 닉네임으로 활동했던 ‘채털리 부인’을 대면하지 못한다. 이제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라고 말할 뿐이다.
▶최정나: 한밤의 손님들 나는 가족을 경멸하는 것 같다. 아니 무시한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이 익숙하다. 이미 무너지고 망가진 가족 관계. 오죽하면 엄마를 ‘오리’라 명명하고, 동생을 ‘돼지’라고 명명한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오리와 돼지의 소리에 불과하다 여긴다. 식당에 있는 군상들 모두가 일상적이고 상식적이진 않다. 그래서 나는 그림-액자-속에 침잠한다. 남편하고의 관계도 시큰둥하다. [천장에 걸린 조명등 불빛 때문에 액자 안에서 두 개의 공간이 겹쳐졌다. 신사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등을 보인 채 앉아 있던 남자도 사라지고 없었다. 식당 안에는 붉은머리 여자가 홀로 앉아 있었다. 나의 모습이 그 위에 겹쳐졌다. 나는 여자가 있던 곳에 앉아 있었다. 그때 명치끝에서 기다란 팔 하나가 쑥 빠져나왔다. 그리고 오므리고 있던 손가락을 펼쳤다. (중략) 어딘가에서 낄낄낄,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치에서 튀어나온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끝에서 검은 구멍이 이를 드러냈다. 처음에 그것은 웃는 소리 같았는데 비명 같기도 했다.] (236-237쪽) 나는 화자(나)가 비명이라도 내지르기를 바란다. 속말을 겉말로 토해내길 바란다. 그림을 골똘하게 보면서 생각에 침잠하는 처연함을 내려놓고, 한밤의 식당 문(또는 액자에 갇힌 생각)을 박차고 나와서 생동감 있는 삶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이 책에 실린 7편 중에서 분량이 가장 길다. 중단편쯤으로 느껴지는 분량이다. 그만큼 화자는 왕샤에 대한 무한 애정을 쏟고 있다는 반증. 이야기의 마지막 장에서 왕샤와 화자가 외치는 말은, 그 자체로 울분이며 분노이며 항거였다. [우리는 세상의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세상의 아주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 점은커녕 그 어떤 것도 되지 못했다. 인생을 걸고 했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되어버렸다. 칸영화제를 가기는커녕 제대로 된 퀴어 영화를 찍지도 못했고, 현대무용가가 되지도 못했다. 보라듯이 사랑을 하지도 못했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감정을 느기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어영부영 나이만 처먹었다. 동성애자이면서 제대로 동성애를 하지도 못했고 그것도 모자라 이성애자로부터 마이크 하나조차 제대로 훔치지 못했다. 이토록 철저한 실패는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우리는 망했다. 망해먹은 채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우리는 웃고 떠들고 술 먹고 섹스하다 죽을 줄이나 아는 동성애자들일 뿐. 그 이상의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며, 그러므로 영원히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318쪽) 성소수자를 예술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세상, 동성애를 죄악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 그냥 사람과 사람의 사랑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편견의 세상에 그들의 외침은 울분이다. 이는 역으로 성소수자들이 좀더 밝게 건강하게 사랑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라 여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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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로 정말 좋은 신인 작가를 많이 만났죠. 특히 황정은, 김금희, 최은영. 이번에는 대부분 아는 작가라 새로운 만남은 없었지만 단편을 거의 보기 힘든 (실제로 단편집도 한 권 없는) 임성순 작가의 단편을 읽어서 좋았어요. 이번 9회에는 임성순 작가 단편이 최고였던 거 같아요 박민정 작가는 대상작이지만 작년 임현의 고두처럼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아요 어떻게 이게 대상이냐 하는 거. 손보미 작가 대상 때도 그랬죠 실제로 손보미 작가는 문학동네에서 엄청 밀어주지만 그런데도 히트가 안 돼죠. 작년은 생각해 보면 강화길 작가가 대상받는 게 맞았을 거 같아요 아니면 김금희나 최은영 작가가 대상작이었다면 많이들 납득했을 거 같아요. 아무튼 좋은 기획이지만 매년 대상작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작품을 꼭 꼽네요 문학에는 물론 정답이 없고 평론가들 맘이니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대중들과 괴리가 있는듯. 임현 작가 작품만 해도 이번에는 아예 무슨 장르물에 가깝던데 암튼 작년 작품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참 재미가 없어요. 문학성도 모르겠고요. 손보미 작가처럼 평론가들은 극찬하지만 대중들은 호불호 많이 갈리는 작가가 될 듯싶네요. 아무튼 그런 거 보면 임현 작가도 문학동네에서 밀어주려나 봐요. 뭐 어쨌거나 그외에는 모두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가주기를 바랍니다. 문학동네 출판사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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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문학동네’에서 선정 출간하는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펼쳐들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수록된 작품을 모두 읽어 내려갔던 기억은 2~3회에 불과한 듯하다. 이유란 지극히 뻔한 것이었는데, 비슷비슷한 글쓰기의 지향 같은 것이랄까, 마치 근대 미술 작품의 어떤 유파에 갇혀있는 듯한 그 유사한 느낌 탓에 선호하는 작가의 작품만 골라 읽고는 그저 쌓아 두고 마는 지극히 의례적인 구입행위의 하나였다고 해야겠다.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에드워드 호퍼, 1942> 그런데 이번 9회에 수록된 작품들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몇몇 작품 덕에 다시금 7편의 작품 모두를 읽게 되었다. 물론 모든 작품이 그렇게 다가온 것은 아니지만 임성순, 최정나, 박민정, 박상영 네 작가의 단편은 오랜 만에 즐거운 읽기를 가능하게 해 준 우리문학 작품이라 하고 싶다. 특히 최정나의 「한밤의 손님들」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NightHawks, 1942>에서 느껴졌던 ‘불안정성과 몰입의 거부’와 같은 내가 기억하는 감성과 같은 호흡이라는 반가움이었다. 그리고 임성순의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은 어떠한 진부한 소재라도 그만의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문장으로 전환시켜 독자를 압도해버리는 솜씨에 다시금 매혹되었다고 해야겠다. 수상작인 박민정의 「세실, 주희」 는 읽을수록 반하는 글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다시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라 부르고 싶다. 소설 속 주인공인 ‘주희’가 듣기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예쁜’문장이라는 느낌인데, 그것은 어떤 표피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자극성 강한 의미들이 날카롭게 꽂혀있다는 면에서 그렇다. 뾰족함이 감추어진 듯 드러나 있는, 말 없을 것 같으면서 할 말 다하는 그런 것, 이 작가의 새로운 작품들은 내 GPS의 목적지 추가에 입력될 것 같다. 동성애 코드를 그려낸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그야말로 젊은 색채가 톡톡 튀어대는 감각을 갖게 한다. 무얼 하지도, 되지도 못한 퀴어영화 감독 지망생, 현대 무용가의 보란 듯한 실패 선언이 그 어떤 소설들과는 다른 맺음 방식의 신선함이었다고 해야 할까? 괴팍하게도 어떤 파괴적인 모양에 끌리는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작가가 써 내는 산다는 것의 솔직한 면모들의 장면들에 반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발견하기를 기대했던 것을 발견할 때에 공감의 정도가 높은 것처럼, 수록 작품들에 대한 관심의 고저는 순전히 알고 있는 익숙한 것에 대한 선호일지 모른다. 이를테면 영국의 문예비평가인 ‘올리비아 랭’이 쓴 『외로운 도시』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대한 “감금과 노출”이라는 쌍둥이 메커니즘에 대한 해독은 내게 깊숙이 각인되었던 이해였기에 유사한 배경을 지닌 「한밤의 손님들」의 묘사들은 친근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소설 도입부의 한 장면인 몸에 힘을 주고 버텨보지만 누군가에 의해 잡아채어지듯이 식당으로 들어가게 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뭔가 부적절하게 배척하고 싶은 것에 끌려가야하는 끔찍한 불쾌감이 느껴진다. 결국 지극히 속물적인 오리와 돼지로 불리는 엄마와 여동생의 천박한 요구와 위협의 이야기들에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주인공이 식당의 유리벽이라는 견딜 수 없도록 노출된 더러운 기분과 닫힌 구조의 식당이라는 고립성에서 발산되는 감정에 뒤섞여 식당 벽의 그림과 옆 테이블의 사람들, 유리창에 붙어 핸드폰의 불빛을 비추는 아이를 오가는 불안정한 시선의 의미를 절로 수긍하게 된다. 한 편의 기막히게 연출된, 고독의 기묘하고 소외적인 마법의 드라마라고 해야 할까. 끝으로 미술작품 에이전시가 주인공인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의 단상으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이 단편은 자본과 현대미술의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도마뱀 같은 구조를 통해 미학적 쾌감, 돈과 시간의 높은 장벽을 세워 새로운 미학적 감수성을 만들어내는 시시껄렁한 생태계를 들춰낸다. 아마 “우연이야말로 섬세한 계산에 의해 이뤄진 필연적 결과물”이라는 문장처럼 우리네 주변에서 시침 뚝 떼고 펼쳐지는 많은 현상들의 은폐된 본성에 대한 일종의 대중 고지(告知)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 고발적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 명쾌함과 적나라함을 무기로 한 도발성이 정말 흥미진진하게 써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록된 일곱의 작품 모두 나름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발산하고 있다. 모처럼의 재미있는 문학 읽기의 시간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작품집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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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작품집은 오래전에 누가 선물해줘서 읽었던 기억이 있고,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작년에 yes24에서 좋은가격에 구입해서 다시 접하게 되었네요. 책이 왜이렇게 싼가 했더니, 젊은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출간 후 1년 동안은 특별보급가로 판매한다고 하네요. 덕분에 최근엔 종이책 거의 안읽고 있는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작품들도 7편 모두 좋았고, 이어 나오는 작가노트 읽는 재미도 있었고, 해설도 도움이 됐습니다. 해설 읽고 다시 작품 읽어보기도 했네요. 작품 7편에 구성이 알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임성순 작가의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과 김세희 작가의 ‘가만한 나날’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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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을보고 세실=주희와 주희=J 라는 느낌을 받았음..
대략적인 줄거리는.... 화장하는것을 즐겨하다 그것으로 일을하게된 여자가 , 미국에서 겪은 축제 '참회의화요일'의 진실을 알게되고, J를 원망하던중 아이돌을 좋아해 한국에온 일본여자(동료)와 어울려(한국어 과외)다니게 되고.... -문화(상식)의 차이에 인해 (말)실수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였음
말실수를 대충기억나는대로 써보면 ⓐ예뻐요, 역시 성형? 그럼 일본은 다 AV? -일본제 화장품을 (사과)선물로...파동으로 .. 조사후 우익기업 논란을 읽음.
ⓑ증조모는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진 히메유리학도대 출신.그녀를 소재로 만화가 나왔 !! = 국가유공자 지만...한국에서는..? 나치.s
ⓒ히메유리는 모두 순결한처녀 !! - 그럼 너희 할머니는 어떻게 ??
임성순 ·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 미술 브로커로 유명하다 , 재벌이 잡히고 , 그림을 보관한 창고가 공개되면서 망하고 미국으로 가서 .. 8년을 허비하다, 돌아가려는순간 '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에 초대를 받고, 그곳을 둘러보다 무언가 섬뜩한것을 느끼는데,
임현 · 그들의 이해관계 - 사고당해 죽은 여친 이 죽은이유를 찾고, 왜 잘해주지 못했나 후회
정영수 · 더 인간적인 말 이모의 안락사 에 대한 옳은가 옳지 못한가 대화 하는 내용이었다던...,
김세희 · 가만한 나날 아 !가만히. 그럴듣하다고 느꼈음. 랄까, 전에 왜 나는 홍보가 안될까, 하고 저품질 블로그 라는것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해서 ,어느정도 공감가는부분도 있고, 개인적으론 대상 다음으로 좋았달까 , 나중에 단편집 사볼지도, E북으로 볼까? 내용은 문과 대학나온 여자가, 마케팅회사에 들어가 '채털리 부인' 이라는 가상의 사람(중산층 30대 전업주부)을 가정해서 홍보 블로그를 만들고, 경험 안해보고 , 경험한척 글쓰다가, 이웃의 쪽지를 보고 문제가 된 상품을 자기가 홍보한것을알고 자신을 인정해줬던 선배에게 그말을 하자 와~ 대기업이 나빳네 ,하고 잘못한것 없다는 태도를 보고, 정떨어 지고, 그리고
최정나 · 한밤의 손님들 일단 한번보곤 , 이해 못했... 시점이 계속 바뀌고 (그림에 투영) 해서...
박상영 ·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음.... 뭐랄까, 확실히 내면묘사는.... 자이툰이 동남아 ? 중앙아시아? 에 있는 도시인모양인듯 노래방가서 57분 밖에 안줬다고, 마이크 갖고 튀었다가 잡혀서 ,카드 줬다 30만 결제당하고, 자전거에 둔 마이크 다시가져간것 알고 분통을 터트리다 다시 그차를 발견, 따라잡으려다가, 쓰러진부분등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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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매년 살 것같다. 저렴한 가격에, 현대 한국 단편 소설 문학의 흐름을 느낄수 있으니까. 그리고 현대 한국사회의 담론들과 주요 쟁점들에 대해서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주로 장편소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단편 소설만의 장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학동네에서 수상한 작품들만 모아놓았으니 퀄리티도 어느정도 보장 가능하고.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