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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구약학자이자 탁월한 설교자인 월터 브루그만이 주장해온 설교학의 정수가 담긴 책인데, 브루그만의 표현을 빌리면, 복음은 폭넓게 적용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축소된 진리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 그 복음의 은혜를 경험하고..여러분이 한 주간을 삽니다. 주일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았지만, 돌아서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 사고주의와 여러분이 세상 속에서 진리라고 받아들인 경험에 대해서는 전혀 양보할 생각도 없고, 바꾸지 않습니다. 니고데모같은 태도입니다. 누구나..복음으로 돌아가야 된다. 복음, 복음..말을 많이 하지만, 밋밋하고, 시시하고, 공허한 진리가 된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 가운데 존중받지 못하고, 문제의 중심에서 다루지도 못한채, 낡은 관례가 되고 말았습니다. 과학기술적으로 단련된 사고방식은 믿음의 신비를 골칫거리로 치부하고, 알게 모르게, 여러분이 한 주간 세상에서 겪은 사회 이데올로기가 우리를 왜곡하는 까닭에, 요즘 같은 시기에는 복음의 진리는 진보와 보수의 다양한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맞게 조정되고 맙니다. 사람이 사회적동물이라고 한 말처럼, 사회적 환경에서 그런..영향으로 어떤 조정된 채로..여러분이..주일 교회에 오게 되고, 오늘 아침..이렇게 예배가운데..설교를 듣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말하는 자나, 듣는 자가..다..이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고, 이와같이 복음인 진리가 심각하게 축소된 상황에서 설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브루그만은 설교가 다른 방식의 전달을 실천함으로써 다른 형태의 삶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설교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대단히 어려운 주문이지만, 설교자도 시인이 되어야하고, 청중인 여러분도..시인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절망의 이 세상에서..“ 이 시대에도 여전히 기독교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요? ”라고 질문할 때..그렇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시인이 올 때 가능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구약의 표현으로 하면, 시인은 예언자인데, 예언자가 올 때입니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설교자가 시인되어 나타날 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청중인 여러분도...일상의 모습과 다른..시인이 될 때..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메마르고 건조하고 답답한 산문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요. 시인의 음성입니다. 세상의 조작과 세뇌와 선동의 언어에서, 성경안에서 상상력과 직관력과 공감력을 지닌 시인의 언어로 바뀌는 것, 억압적 언어가 아니라, 해방적 언어가 시인의 음성입니다. 시는..우리가운데 산문으로 축소된 것들이 잘못되었음을 폭로하도록 강하게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시의 힘은..바로 그때 발휘 됩니다. 시는 변화없는 여러분의 침묵을 거부합니다. 시는 경종을 울리려합니다. 그 힘은 파괴적이고, 도발적인 담화, 곧 고정된 결론들을 깨뜨리며, 우리를 새롭고 위험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가능성으로 끊임없이 밀어 붙이는 담화의 힘입니다. 설교자는 이와같은 모험을 통하여, 여러분이 영향받고 껴안고 있는 세상 권력을 해제하고, 말씀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일으키며,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이 책을 통해 설교자의 가치나 비중이 이렇게 지대한 것을 새롭게 알고..시인으로서, 예언적인 선포를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마음을 졸인 한 주간이었습니다. 세계적 구약학자이자 탁월한 설교자인 저자가 목회자들에게 던지는 외침이다. 저자는 특별한 도전이나 각성 없이 매주 교회에 나오는 무기력한 성도들을 향해 설교자는 ‘시적 담화’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 이유는 시적 담화가 듣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을 갖게 하고 신자들이 살고 있는 산문(散文) 같은 세상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모든 설교자들은 시인이 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설교가 시적 담화인 것은 성경 본문의 언어가 예언자적 언어이기 때문이다.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의 설교에 대한 책이다. 설교와 복음의 공공성의 관계를 가장 잘 다룬 책이고 그것을 전달하는 설교자, 혹은 설교단의 역할을 시인으로 규정함으로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끊임없는 사색과 감수성의 필요를 촉구한다. 설교에 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밑줄과 더불어 설교의 본문들과 상상력을 자극하니 참 좋은 책이라는 표현이 모자라게 느껴진다. 특히나 저항과 포기를 다루는 마지막 부분은 압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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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브루그만의 책은 번뜩이는 상상력과 통찰력으로 자칫 무미번조해질 수 있는 신학을 살아있게 하는 탁월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예언자적 상상력과 글쓰기로 설교자들이 지금 처해 있는 환경을 정확히 진단하고 현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설교자들에게 경계의 메시지를 마구마구 쏟아냅니다. 그러나 무례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호소력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결단하게 만듭니다. 설교자들이 놓치기 쉬운 함정이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가 과연 어떤 주제로 또한 어떤 방법으로 설교해야 되는지 이 책은 조목조목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귀한 책입니다. 특별히 많은 신학교수들이 이 책을 찬사합니다. 부디 읽고 나의 자양분으로 삼아서 신앙과 설교가 자라갈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좋은 책을 많이 내주고 있는 성서유니온 선교회 출판사에게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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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적 설교는 하나님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분으로 만드는 보수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러한 형식적 하나님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설교는 우리가 제멋대로 경영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경영은 결코 생명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설교는 배상으로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죄책의 잔재를 처리할 수 있도록 뿌려진 생명과 관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