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잠에 관한 책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를 통틀어 잠은 대항할 자 없는 무적의 영웅이자 창조의 원천이었다. 자는 동안에는 에고마저 항복해 가장 자기다운 모습이 된다. 자는 동안에는 누군가와 약속을 하나 더 하거나 전화를 몇 통 더 돌리거나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딱 하나만 검색해볼 수 없다. 그래서 잠은 수많은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잠은 빽빽한 일정표를 따르던 사람들이 찾아가는 텅 빈 백지 같은 곳이다. (p. 12)
저자는 그 텅 빈 백지 같은 곳을 훑는다. 제목 그대로 잃어버린 잠을 찾은 느낌이다. 수면 장애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자 마이클 맥거도 어렸을 때부터 잠을 곧잘 설쳤다. 평생 여러 가지 수면 장애와 싸우고 잠 없는 세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수면에 관한 특별한 관심이 생겨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잠 그 이상을 다루는 책이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서 잠의 역할을 탐구했다. 내 경험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잠꾸러기들과 잠이 없었던 이들에 대해서도 폭넓게 살펴볼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 책은 자지 않는 것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잠을 자지 않는 현상과 그로 인한 피로의 사회적 의미를 탐구했다. 현재 전 세계는 피곤에 지친 아기 같은 상태다. 가장 푹 자야 할 때 바락바락 울며 잠투정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불면증은 밤새워 걱정할 일이 아니란 속담이 있다. 이 짧은 문장에 진실이 담겨 있다. 그러니 꼭두새벽에 잠이 달아나도 걱정하지 마라. 이제 이 책이 있다. (p. 13~ 14)
어쩌면 이 책은 잃어버린 잠을 찾아서 공감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 나만 불면증으로 걱정한 게 아니었구나. 저자와 역사 속 인물들도 그랬구나’ 이런 각성은 공감을 넘어 위로까지 준다. 물론 불면증을 반기는 인물도 있었다. 토머스 에디슨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자는 것도 싫어했다. 수면 부족은 아무도 해치치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p. 20) 반대로 나이팅게일은 침대에서 반 세기 이상을 보냈다. 마이클 맥거의 추측처럼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분명한 것은 나이팅게일이 침대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다.(p. 159)
잠의 세계는 자기 전 세계에서 경험하는 것과 아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삶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잠에도 상처가 많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끌어안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밤에는 속수무책으로 트라우마의 공격을 받는다. 트라우마는 밤에 가장 활발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팔거나 바쁘게 만드는 자극이 없으면 마음은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악마의 손길이다. (p. 116)
이 책으로 악마의 손길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모종의 화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 화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저자의 조언은 단순하다. 불면증이나 악몽, 수면 장애로 고생하고 있다면 별생각 없이 수면제에 손을 대기보다 책을 읽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눠보라. 증상이 심각해지기 전까지 섣불리 진단하려 하지 마라. 불면증은 병이지만 수면 부족은 약간 불편한 일일 뿐이다. 물론 비슷해 보이는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긴 하다. 어떤 문제는 가끔 우리가 규정한 바로 그 상태로 커지기도 하니까.(p. 13) 이 책은 차례도 흥미롭다. 1969년 8:00PM에서 시작해서 1984년 13시 정각을 거쳐 2008년 취침 시간, 2016년 취침 시간 그후에서 끝난다. 그 사이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수면제들을 만날 수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복용하는 약이지만, 위험성은 간과되고 있다. 커피 역시 그렇다. 마이클 맥거는 발자크는 커피 때문에 죽었다고 말한다.(p. 261) 많이 알려져 있는데, 발자크는 커피를 하루에 60잔씩 마셨다.(p.260) 커피, 구체적으로 식물 속 카페인은 자연 살충제 역할을 한다.(p. 263) 커피 산업은 노예제도를 통해 발전했는데, 지금도 유사한 형태의 노동이 계속되고 있다. 잠이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오면 오는 대로 살면 수면제도 커피도 필요 없지 않을까. 잃어버린 잠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
|
남들은 나더러 잠에 관해서라면 타고난
복을 받았다고 말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머리가 베개에 닿으면 3분이내
잠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새벽에 일어날 때까지는 옆에서 굿을 해도 모르고 잔다. 그러다 보니 조금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첫아이가 태어나고 처갓집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장모님이 애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해서인지 얼굴이 안 좋다며 위로 하시길래, 우리아이는 밤에 울지 않고 잠을 잘 잔다고
말했다가 아내에게 구박을 엄청 받았다. 아이가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울어도 내가 일어나질 않는다는 것이다. 잠자는 내 귀에는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걸
어떻게 알고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그런 잠자기도 요즘 들어서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때때로 잠이 오지 않아 누워서 공상에 빠질 때도 있고, 자다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기도 한다. 초저녁에 자기 시작하든, 한밤중에
자기 시작하든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일정했는데 요즘은 일찍 자기 시작하면 그만큼 일찍 눈이 떠진다. 수면의
질이 나빠지는 것 같아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잠에 관해서 만큼은 낫다고 여기며 살고 있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잃어버린 잠을 찾는 것일까? 어떻게 잠을 잃어버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위에는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에 조금은 당황했다. 책은 내가 예상했던 잠자기나 잠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 아니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은 잠을 잘 자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서 잠의 역할을 탐구하는 책이었다. 저자는 평생에 걸쳐 수면장애와 싸우고 잠 없는 세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잠에 특별한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역사적 인물들에게 잠은 어떤 의미였는지를 문화,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또한 자신의 잠과 관련한 에피소드와 함께 문학, 역사, 과학을 넘나들며 잠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우리 삶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잠,
그런 잠에 대한 이야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역사적 인물들의 잠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그 인물의 이면을 알려주기도 한다. 백열전구의 발명으로 인간의 밤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에디슨은
아마 낮이 늘 짧았기 때문에 낮을 연장하기 위해 백열전구를 발명한 것 같다. 그만큼 그는 잠을 자지
않고 업무에 몰두했다고 한다. 토막 잠으로 수면을 해결하고 밤 12시에
점심을 먹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가 하면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에서 환자들을 돌본 후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 되었지만, 36세 이후에는 죽을 때까지 침대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모든 활동을 침대 위에서 한 그녀는 아마 가장 많은 시간을 잠으로 보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저자는 문학작품도 잠의 관점에서 읽는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귀국하는 오디세우스의 활약을 그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한마디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면, 트로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네아스가 신의 뜻에 따라 모험을 떠나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는
한마디로 집을 떠나는 이야기라고 한다. 여기서 저자는 집을 떠나고, 돌아오는
것을 잠과 결부시켜 바라본다. [로빈슨 크루소]에서 로빈슨에게
잠은 하루가 지나갔다는 시간의 측정단위이지만 [걸리버 여행기]의
걸리버에게 잠은 꿈의 나라에 이르는 문 이기도 했다. 돈키호테 역시 지독한 불면증 환자였고, 아라비안나이트에서는 천일 동안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문학작품들을
잠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본 저자의 이야기에서 새로운 맛을 느끼기도 했다.
저자는 예수회 신부였던 시절 항상 피로를
느꼈고 심지어는 강론 도중에 졸기까지 했다고 한다. 수면 검사를 받아보니 수면무호흡증으로 잠을 자는
도중에도 본인은 느끼지 못하지만 자고 깨기를 반복했다고 하니, 피곤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그래서 잠을 자기 위해서는 자동양압기를 사용하고 수면마스크를 차고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잠을 자는 것이 전쟁이었지 싶다. 그런 반면에 불면증은
잠의 또다른 얼굴 이기도 하다. 인간은 잠을 자지 못하면 반응속도가 떨어지고 인지 장애를 일으킨다. 또한 불면은 만성피로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인간들은 밤에
잘 자기 위해 역사적으로 수많은 시도를 해왔고 약삭빠른 제약회사들은 불면증을 해결 하지도 못하는 약을 만들고, 부작용이
심한 수면제로 전 세계에서 돈을 긁어 모았다고 저자는 비판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은 잠을 갈구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잠은 양면적이다. 수면무호흡증환자나 기면증환자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고통을 받는다면, 불면증환자는 잠을 자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잠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잠을 자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야근을
하는 사람들, 수험 공부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에게 잠은 물리쳐야 할 적(?)이기도 하다. 이들은 매일같이 각성제를 복용하며 졸음을 쫓는다. 커피가 바로 그것이다. 커피는 전세계인구의 4분의 3이 매일 마시는 물질로, 세계경제에서
석유 다음으로 가장 가치 있는 품목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런 커피가 만들어내는 문화와 경제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저자는 돈키호테에 나오는 산초의 말을 빌어 잠은 우리 인간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말한다. 위대하든 보잘것없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누구나 잠을
자야 하고, 또 누구나 자신 홀로 잠을 잔다. 잠은 다른
누가 대신 자줄 수 없고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저녁이 되면 당연히 자야 하는 것으로 알고, 또 피곤하면 어디서든 잠을 청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잠에 대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잠은 분명 우리 생활에 있어 중요한 일부분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잠에 대해 생각해본다. 잠을 잘 자든, 아니면 잠에 대해 고생을 하든 우리는 어쩌면 잠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다. 책 제목 마냥 그동안 잃었던 잠을 찾는 여행이 흥미롭기만 하다.
|
|
잠을 빌어서 인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 인간이 살아가면서 깨어있는 시간과 잠을 자는 시간은 비슷비슷 할 것이다.
이 말인즉슨, 잠은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잠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는 것이다.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역사는 모두 잠을 배반하거나 혹은 잠에 빠져들어서 만들어낸 역사일 것이다.
청소년 시절 나는 남들 보다 잠이 많은 아이였다. 그리고 잠 자는 것을 좋아했다. 자면서 꿈을 꾸는 것이 좋았고,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다가 잠을 자고 책 속의 이야기들이 내 꿈 속에 펼쳐지는 것이 좋았다.
성공을 위해서 잠을 자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 잠들 수 없는 시간이 너무나 괴로워서 잠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한 사람. 그 과정 중에서 부작용으로 죽음에 이른 사람 등등.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나이팅게일이 침대 위에서 거의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도, 잠을 잘 자기 위해서 침대를 두 개씩이나 놓고 번갈아 가면서 잠을 청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두가 잠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사실을 알고, 편안하게 자고 싶을 때 자고, 깨어 있을 때 깰 수 있는 나는 참 행복하다고 느꼈다.
잠자는 것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던 책.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불을 끄면 침대의 반이 세상의 전부다. 마침내 우리는 항복한다. 내일의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고 잠이 드는 순간, 세계는 다시 무한히 확장된다.” (P 291 中에서)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것 같다. 잠의 가치를 폄훼하는 커다란 사회의 목소리들이 잠이 부족해 피로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잠으로부터 멀어질 것을 은근히 종용하기까지 한다. 마치 잠자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통제력을 지닌 인간만이 삶의 질을 향유할 수 있다는 듯이. 반면에 사람들은 과도한 각종 소음에 불가항력적으로 노출된 현실, 상실이나 슬픔, 깊은 마음의 상처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대낮처럼 빛나는 도시의 밤이 호시탐탐 인간의 잠을 암살하고, 사람들은 이루지 못한, 부족한 잠으로 잃는지도 모르는 체 기억의 능력이 쪼그라든다.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맞서 잠이 인간에게 주는 긍정의 역할을 발견하려는 목적이랄 수 있다. ‘왜 자야하는지’에 대한 필연성으로서의 잠에 대한 근거로서. 또한 언젠가부터 불면증에 시달리는 고통에 대한 위로의 말을 발견하기 위해서. 굉장한 사회학적, 혹은 의학적, 철학적 담론의 발견이 아니라 그저 이와 같은 소박한 의도를 부분적이라도 해갈시켜주는 그런 것이면 족하다는 생각에서.
마침 저자 ‘마이클 맥거’는 오랜 수면무호흡증에 시달린 전직 신부요, 현직 교사로서 자신의 경험과 겸허한 식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언어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피로와 사회적 의미, 그리고 소소한 문학적 기반을 통해 잠의 역할을 정말 소박하게 설명하고 있어 정신의 과도한 소비 없이 이완된 상태에서 읽어 나갈 수 있게 하여준다. 책은 토막잠을 자며 “수면 부족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며 밤을 환하게 밝힌 전구 발명자인 에디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신경쇠약으로 사망했다. 맥베스처럼 잠을 살해하려했지만 사람을 죽였을 뿐이다. 그가 아니어도 전구는 발명되었을 터이다. 잠을 멸시하는 자의 욕심이 인간에게서 빼앗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게 한다. 잠의 존중과 폄하는 그리스와 로마, 문화와 법률의 차이로 구별되는 『오디세이아』와 『아이네이스』 로 들려주는데, 전자가 집, 안식처로 돌아오는 이야기인 반면에 후자는 집을 떠나는 이야기란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사회는 『아이네이스』처럼 사람을 밖으로 떠미는 문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적 동기 찾기를 독려하며, 집이라는 균형과 조화, 마음의 평정을 추구하는 자신의 침대와 크고 넓은 세상에서 삶의 목적을 찾아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침대를 벗어나는 것의 가치 투쟁이랄 수도 있겠다. 과연 무엇이 인간적 진실일까 수천 년 동안 자란 올리브나무 그루터기를 그 자리에서 깎아 만든 오디세우스의 부동의 침대인가, 아니면 화염에 휩싸여 재가 되어버리는 아이네이스가 떠난 침대인가? 인간이 지향하는 것은 안식인가? 영원한 안식이란 없다는 것인가? 21세기 오늘, 우리들의 가치는 어디를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대립은 잠을 늦게까지 자던 ‘르네 데카르트’와 멸시하던 ‘데이비드 흄’의 철학에까지 이어지는데, 비몽사몽의 데카르트가 아직도 자신이 자고 있는 건 아닌가해서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깨어있음의 증명이 연유했다는 우스개에서, 수천 번의 연결고리가 이어진다 해서 곧 인과관계가 함의한다고 추론할 수 없다며, “나는 존재하다, 고로 생각한다.”고 확실성에 대한 의심론을 전개한 흄을 보면서 잠이란 삶에 대한 피해갈 수 없는 철학적 주제임을 생각하며 미소를 짓게도 된다. 그럼에도 저자는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현실의 조건들에 회의적인 시선에 무게를 두는 듯, 수면 부족으로 발생하는 인간의 무수한 변화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발을 신고자는 아이, 한 밤중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로부터 그네들 삶의 이면에는 항시 혼란스러운 잠자리가 있었다는 교사로서의 증언에서 시작되어, 수면 부족이 ‘감정적 결핍’을 동반하는 중독이라는 나쁜 친구와 어울리는 경향에 대해서, 환자가 죽기를 바라는 수면부족의 만성적 피로에 시달리는 외과의사의 고백에 배어있는 도덕성의 약화를, 변덕과 예민함을 증가시키고, 기억력 손상과 반응속도를 현저히 늦추며 인지장애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일화와 사례들을 역사적 사건이나 문학 작품들을 곁들여 보여준다. 어쩌면 가장 주목할 대목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내부 생체시계인 24시간 주기 리듬인 ‘서캐디언 리듬(Circadian rhythm)’이란 것이다. 이것은 교대제 노동자들의 고통을 우선 떠올리게 한다. 낮과 밤을 뜬 눈으로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꿈도 꾸지 못할 사치임에도 장거리 여행의 시차에서 느끼는 몽롱한 효과에 매양 젖어 있게 만든다. 인간을 기계적 도구화한 현대사회의 가장 잔인한 생태계로 빈번하게 지적되는 지점이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 그래서 불면증으로 고통을 겪는 것이 이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상화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수면제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제약 산업들이 휘파람을 불고, 잠 못 자고 거리로 밤거리를 헤매며 소비하는 사람들을 자본은 더욱 즐긴다. 밤이 실종된 사회를 강권하는 자본의 세계. 이제 사람들은 잠을 너무 자지 않아 ‘돈키호테’처럼 “뇌가 바짝 마르고 싱싱함을 잃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고” 자기 내면의 빛을 차단한다. 그래서 언어와 기억을 빼앗긴 세상의 이야기인 ‘조지 오웰’의 『1984』는 다시금 우리 현재에 대한 보고(報告)로 소환된다. 기억능력과 언어 능력은 자는 동안 형성된다고 한다. 제대로 자지 못하게 하는 문화는 어휘를 잃게 하고 빈약한 소통만을 남긴다. 또한 인간의 예술인 ‘기억’은 사라지고 경영기술의 한 형태인 ‘보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사람들은 잡다한 자극에 지치고 정작 자신들에게 필요한 주의를 기울일 힘을 상실해간다. 나는 두 시간 이상을 지속하여 잠들지 못하고 있다. 불면증이다. 서너 차례 깨다 잠들다를 반복하는 매일 당면하는 두려움과 짜증이 고통스럽다. 새벽빛이 부옇게 밝아오면 각성을 위해 카페인을 찾는다. 이런 흥분제가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사회에 포섭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정말 우울한 일이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커피 속 카페인은 뇌에게 속도를 늦추고 잠잘 준비를 하라고 말해주는 억제성 신경전달 물질인 아데노신을 통제하고 피로는 그대로 둔 채 그저 브레이크 장치만 잘라버린다고 한다. 증상을 잠시 숨긴다는 것이다. 이제 태평양과 대서양의 물고기들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카페인이 하수구에 배출되고 있을 만큼 오늘 우리는 정신의 마비 속, 환상의 세계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불빛, 책 속의 까만 잉크를 읽는 것은 뇌에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게 한다고 한다. 전자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생성시키는 반면에 후자는 서캐니언 리듬을 통제하고 중추 신경계의 과부하를 막도록 돕는 멜라토닌을 생성시킨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것과 스마트폰을 보는 것은 신체적으로 완전히 다른 경험이란 것이다. 잠을 쫓아내려는 사회, 아이네이스의 등 떠미는 사회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한 내 발버둥은 이처럼 독서에서도 계속되어지는 모양이다. 제대로 깨어있다는 것, 제대로 잠을 잔다는 것이 올바른 세상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일깨우는 저작이다. |
|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잠을 잘 자는 사람과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뿐... 그래서 잠에 대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더 알기 위해 연구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연구하는 것을 멈추면 안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연구에 매진할 필요는 없다. 다만 평범한 우리도 조금은 잠에 대해 알아둘 필요는 있다.
저자는 잠에 대한 심각한 병증을 앓고 있다. 병에 대한 이야길 알고 난 후 그는 잠에 대한 것들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자신이 알게 된 것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것이 바로 '잃어버린 잠을 찾아서' 를 탄생시켰다. 나도 그의 착각처럼 잠을 잘 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잠을 자도 개운치 않은 순간들이 늘어났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상품들로 인해 수면의 질이 떨어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각하단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만나기 바로 전 수면무호흡증에 대한 이야길 듣고 몇가질 찾아봤는데 모든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아게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잠은 우리에게 어떤 것일까? 왜 잠이 이토록 중요한 것인지 알아야 겠다는 순간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잠은 충분히 자주어야 생활이 안정되고 풍요로워진단다. 사실 알면서도 잘 실천이 안되거나 잠이 잘 들지 않아 괴로운적이 많다. 하지만 역으로도 생각해야 한다. 억지로 누워있다고 잠이 드는게 아니라면 그것을 또다른 원천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를 통틀어 잠은 대항할 자 없는 무적의 영웅이자 창조의 원천이었다."(p12)
책을 읽다 보니 사람마다 잠의 패턴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습관을 어떻게 들이느냐에 따라 잠의 양도 잠의 순간도 달라진다. 물론 밤에 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곤 한다. 하지만 굳이 밤에 잠이 들지 않는다고 이상한(?) 약을 먹을 요는 없다. 그것이 주는 폐해가 더 크니까... 문득 어떤 수면제의 부작용으로 잠든 상태로 이상한 행동들을 해서 자신 또는 타인에게 위해를 가한 이들의 이야길 본 것이 생각난다. 연예인들 중에서도 이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을 선택했던 이들이 있었다. 잠이 중요하다고 약물에 의존할 때 벌어지는 가장 큰 폐해가 아닐까? 그러니 조금은 자연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책 속엔 무수히 많은 이들의 잠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오디세이아를 통해 본 잠 이야기 - p25 ~29, 렘수면에 관한 이야기p41, 성경에 등장하는 잠에 대한 이야기p183~184, 기면증에 관한 이야기p195~203,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수면제들에 관한 이야기p223~238 등) 과거의 유명 인사부터 현재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들의 이야기까지... 잠을 제대로 잘 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잠으로 인한 고통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불어 잠 자체의 과학적인 효과부터 잠을 자게 하기 위해 발명된 많은 것들도 등장한다. 특히 수면무호흡증 환자들을 위한 기계의 발명은 잠을 못자는 이들을 위한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이 아닌가 싶다. 물론 끼고 자는 모습이 좀 안쓰럽다지만... 그리고 잠들지 않은 순간에 위대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것들 앞에선 그들의 대단함에 머리를 숙였다. 특히 잠들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발명은 낮을 연장시킨 불빛의 발견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로 인해 수면질이 나빠진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역시 생산성 면에선 탁월한 발병이 아니었을가?
우린 영원히 잠드는 순간을 향해 가고 있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자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잠을 통해 그리고 잠들지 않은 순간들을 통해 우린 많은 것들을 이루어 냈고 앞으로도 더 나아갈 것이다. 잠드는 순간의 행복을 안다. 그리고 잠들지 못하는 순간의 불행도 안다. 그렇다고 억지로 하고 싶지 않다. 잠도 자연스럽게 얻고 싶다. 저자는 책이 의학서적이 아님을 강조한다. 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잠들기 위한 순간만을 위한 책은 아니란 의미다. 잠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잠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책이다. 그러니 저자의 말처럼 불면증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 순간엔 잠이 가지는 힘에 대한 이야길 만나보면 될 듯 하다.
|
|
어릴 적부터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아이었다. 하루에 꿈을 두세 개는 기본적으로 꾸고 그 꿈들이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스토리가 쫀쫀해서 한때는 내 꿈을 기록하기도 했었다. 어릴 적엔 예지몽도 자주 꿨다. 물론 내 꿈은 올 칼라이다. 그런 내게 잠은 풀리지 않는 숙제이며, 언제나 다다르고 싶은 희망이다. 단순히 불면증이라고 붙이기엔 물리적 시간은 적지 않으니 또한 내게 잠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그런 존재이다. 잠에 관한 에피소드로 치자면 이 책의 한 꼭지는 너끈히 채울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다둥이 아빠라는 사실이 가장 먼저 책을 이해하는 길이 되었다. 난 둘을 낳아 기르지만 둘의 터울이 커 세상에 이제 혼자 잘만하니 다시 시작이다. 한 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우리 집 두 남자는 절대로 해내지 못할 아기와의 잠전쟁을 지금껏 내가 별 무리없이 치러온 것은 어쩌면 내가 잠을 깊게 자지 못하는 때문이기도 하니 무척 아이러니 하다.
책에는 위인전 전집 만큼이나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별 이상할 것도 없이 그들은 잠에 무척 예민했다. 그 사이 사이 자신의 경험을 버무려넣는 저자의 솜씨는 무척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 사이에 내 경험을 떠올리며 책과 함께 버무려지고.
우리는 잠을 잘 때 얼마나 자느냐를 많이 따지지만 내 경우로 보자면 절대적 시간은 꽤 많다. 하루 7시간 이상은 자고 있다. 책에서 역시 '언제'는 덜 중요하고 '어디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나 혼자 편안한 분위기라면 난 훨씬 달콤하게 잘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에 난 늘 왠지 전쟁터나 야간근무에서 간이 침대 위에 놓여 자는 기분이다. 그러니 자연 눈의 피로가 장난 아니다. 게다가 요즘엔 스마트폰을 만지는 시간이 너무 많다. 특히 잠자기 전에. 물론 나도 안좋은 줄은 안다만 아, 버릇이란 참 고약한 놈이다. 빛이 아닌 어둠 속에서 잠들 수 있기를 오늘도 다짐해 본다만 장담은 못하겠다. 최소한 내 아이만이라도 그렇게 하도록 해야겠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 즈음에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그림책 [잠자는 아이]를 읽었던 터였는데 운명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을 읽기 위해서였나 싶은 생각이 든다. 책들끼리 연합하고 나를 책과 버무리려고 작정을 한 게 아니라면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렇게 이 책에서 다 만난단 말인가? 두 책에서 나온 잠자기 전의 사색과 기면증 외에도 다양한 잠의 양상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두 문장은
삶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잠에도 상처가 많다. (116쪽) 제대로 자지 않는 문화는 어휘를 잃어가는 빈약한 소통만 남기고 기억력도 떨어지게 만든다.(280쪽)
잘 먹고 잘 사는 법만 중요한 게 아니다. 어쩌면 잘 자고 잘 사는 법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잘 자려면 또 잘 먹어야 하니까 말이다. 양평에 살 땐 저녁 8시면 동네가 다 어두워지고 인터넷도 안되고 티비도 없어 라디오를 벗삼아 잠이 들고 해뜨면 깨고 그랬는데 젊은 땐 그게 답답해서 24시간 밝은 곳으로 터전을 옮기고 나선 그게 너무 좋았더랬다. 원래도 밝게 자던 나는 그때부턴 대놓고 잠을 제대로 못 즐긴 것 같다. 잘 자는 것의 가치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책이 진지해서는 절대로 아니다. 잠에 관한 에세이라고 보면 너무 가벼운가? 그 정도다.
|
|
이 책은 잠에 관한 책이고, 잠 그 이상을 다루는 책이다. 그와 동시에 이 책은 자지 않는 것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누구도 잠을 자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고 우리는 매일같이 하루의 3분의 1을 잠에 소비하지만, 이 시간을 만족스럽게 보내거나 이에 대해 충분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책은 저자 마이클 맥거가 젊은 시절부터 심각한 수면 무호흡증으로 고생했었고, 결혼을 한 뒤에는 도무지 잠들 줄 모르는 쌍둥이들 때문에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수면에 관해 더욱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쓰여진 잡학도서 같은 책이다. 그는 그의 인생에서 평생 동안 풀어야 할 숙제였던 잠을 신화적, 과학적, 역사적, 문학적, 사회적, 철학적 등 정말 다양한 여러 방면으로 잠의 의미를 탐구했다. 그 결과 잠과 불면, 꿈과 사건수면 등에 관한 온갖 지식이 모두 담겨 있는 이 책이 탄생했다. 분류하자면 나는 잠을 자지 못해 고생하기 보다는 너무 많은 잠때문에 고생했다. 기면증처럼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한 번 자면 죽은 듯 하루의 반을 자버리는 게 대부분이다. 물론 자는 시간만큼 푹 잘때도 있지만, 어쩔때는 너무 다양하고 많은 혹은 한가지 꿈때문에 수면시간에 비해 피곤한 적도 많다. 그러면서도 나는 잠자기 직전의 시간과 축 늘어져(?) 잠자는 시간을 파라다이스라 할 정도로 가장 좋아한다. 이렇게 내 인생 절반의 시간을 보내는 잠은 나의 가장 행복한 일일뿐만 아니라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읽게된 이 잠에 대한 책은 "불면증은 밤새워 걱정할 일이 아니란 속담이 있다. 이 짧은 문장에 진실이 담겨 있다. 그러니 꼭두새벽에 잠이 달아나도 걱정하지 마라. 이제 이 책이 있다."라고 시작하여 "침대에 누우면 더, 이제 몇 제곱미터로 (우리 세계는) 축소된다. 불을 끄면 침대의 반이 세상의 전부다. 마침내 우리는 항복한다. 내일의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고 잠이 드는 순간, 세계는 다시 무한히 확장된다."라고 끝이 나는 동안 생각보다 유익하고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독자들을, 나를 사로잡았다. 수면부족은 결코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며 자신은 물론 남이 자는 것도 싫어했던 에디슨, 우리가 아는 업적과는 안맞게 평생을 침대에서 보낸 나이팅게일 등 유명인들과 저자 자신이 겪었던 일화와 꿈, 불면증, 커피, 더욱 본질적으로 빛과 어둠으로써의 잠에 관한 이 이야기들은 몰랐어도 살아가는데 큰 불편은 없겠지만 알게 된 이상 나의 잠과 수면활동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세상의 모든 달콤하고 괴로운 잠 이야기, 잃어버린 잠을 찾아서를 읽은 시간은 유쾌하면서도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위대하든 보잘 것 없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잠잘때는 모두 평등한, 침대는 공유할 수 있어도 잠은 공유할 수 없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나홀로 남은 그 시간동안, 언제 어디선가 일어났던 그 이야기들과 함께 잠 못드는 밤을 보내볼 만 하다. "수백 년 동안 불면의 밤을 없애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잠을 자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시계를 그만 보는 것. 불면증은 관심을 원한다. 관심을 주지 않으면 삐져있다가 가버릴 것이다" "어쩌면 꿈은,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가끔 눈을 감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도서출판 "현암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불면을 치료해주는 책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잠에 대한 책은 맞다. 수면무호흡증을 지닌 저자의 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에 담겨진 영웅들의 세계,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자는 것을 싫어했던 에디슨, 위대한 사상가들의 잠, 잠 못 이루는 천재작가의 삶, 수면제 부작용으로 영원히 잠자는 사람의 이야기, 피터팬의 네버랜드, 잠을 깨기 위해 마시는 커피의 세계, 눕는 곳이 곧 침대인 노숙자의 자는 공간 등 고대 신화에서 현대 사회까지 잠과 관련된 정보를 망라한 책이다.
작가의 재치가 너무 마음에 든다. 책을 읽고 웃음을 뿜어내는 일은 아주 오랜만이다. 작가의 글이 너무 좋아 작가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저자는 20여 년 간 예수회 신부로 일할 때 수면수호흡증을 진단 받았다. 지금은 가정을 꾸리면서 성직에서 떠났고, 아내와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호주에서 활동하며 몇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하는데, 국내에는 <잃어버린 잠을 찾아서> 이외에 번역서가 없는 듯 하다. 이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나로써 안타까운 일이다. 내가 영어를 배워 원서를 읽는 것보다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져서 번역서가 나오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
![]()
저자는 세 아이를 키우고 있다. 맏아들 베네딕트, 쌍둥이 오빠 제이컵과 여동생 클레어. 하루는 쌍둥이를 태우고 다닐 유모차를 구입하러 갔다. 20년 경력의 직원이 한 모델을 추천해 주었다. 저자는 궁금했다. MP3 플레이어도 설치되어 있고, 컵 홀더도 있는 더 좋은 모델도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직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용카드를 대령했다고 한다. "이 유모차에서 아이들이 가장 잘 자요," 직원은 장사를 아주 잘 하는 사람이었다. 책 속에는 저자의 가족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가족을 사랑하는 그는 글에서는 무척 자상한 아버지라는 확신이 든다. 그의 가족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들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다음은 쌍둥이 클레어와 오빠 베네딕트의 대화이다.
에디슨은 45년간 하루 18시간을 일을 했고, "수면 부족은 결코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며, 보낸시간이 지극히 적은 침대에서 죽음을 맞았다. 다른 사람이 잠을 자는 것도 싫어했는데, 불면증을 앓고있는 사람을 채용한 후 일을 시작한지 60시간 만에 졸기 시작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는 내용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저자는 아무래도 에디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저자에게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은 빛이 낮과 밤을 나누기 시작한 이래로 밤을 없애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암살단의 일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만물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면과 불면에 관하여>라는 글을 썼다고 한다. 그의 수면에 관한 신념은 매우 흥미롭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위로 들어간 음식에서 증발한 뜨거운 기체가 뇌로 들어가 수면제의 효과를 발휘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꾸벅꾸벅 조는 이유다. 뇌로 들어간 기체가 머리를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아기들은 몸에 비해 머리가 크기 때문에 수면 시간이 길다. 듣고보니 정말 그럴듯한 말이 아닌가.
나이팅게일은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4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그저 피곤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병을 앓았을 수도 있다. 정신적인 문제일 가능성도 있다. 그녀가 왜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쩌면 자신이 보살펴준 수많은 환자들이 누워있던 침대라는 공간은 그녀에게 특별한 안식처가 아니였을까.
![]()
잠은 동화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아이들은 배가 고파 잠들지 못하다가 자기들을 숲에 버리려는 계획을 엿듣는다. 헨젤은 어른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바깥으로 나가 조약돌을 주웠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잠들어줘서 두 번씩이나 숲에 버리고 올 수 있었다. 잠을 가장 먼저 '꿈의 나라'라고 부른 사람은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주인공은 무려 100년동안 잔다.
꿈은 여전히 갖고 노는 게 즐거워 버리지 않는 장난감이나 마찬가지다. 가끔은 유령의 집에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말하자면 좋은 꿈을 꾸어서 즐겁거나 나쁜 꿈을 꾸다가 잠에게 깨 즐겁거나 둘 중 하나다.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어쩌면 잠을 자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시계를 그만 보는 것. 불면증은 관심을 원한다. 관심을 주지 않으면 삐져있다가 가버릴 것이다.
책을 여러권 읽다 보면 기대 이상의 가치를 불러 일으키는 책이 있다. 아파트 화단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멍때리고 있는데 네잎크로버를 발견했을 때 그 느낌,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후라이팬 뒤에 계란을 터뜨리는 순간 쌍란에 당첨되었을 때 그 느낌. 그런 느낌의 책을 발견하는 것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다. 일명 책 로또와도 같은 것인데, 이번 기회에 당첨된 것이다. <잃어버린 잠을 찾아서>는 누군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싶어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단, 잠자리에서 읽는 것은 곤란하다.
*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우선 이렇게 훌륭한 책을 접할 기회를 주신 YES24와 도서출판 "현암사"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이자리를 빌어 드립니다.
맨처음 전 이 책을 접했을때
두가지 선입견에 사로잡혔었습니다.
첫째는 칼 힐티의 "잠 못이루는 밤을 위하여" 라든가 "가난한 밤의 산책" 처럼 불면의 밤에 한번 자아를 되돌아 보는 수상집이거나
아니면 보다 나은 생산 활동을 위한 잠을 자기 위한.. 그러니까 숙면 요령책이 아닐까 하는 편견말입니다.
결론 부터 말씀드리면 둘다 아닙니다.
이 책은 잠못 이루는 밤을 위한 불면을 위한 수상집도 아니요 그렇다고 숙면을 하는 법을 이야기 하는 건강서적도 아닙니다.
이 책은 오히려 잠을 이야기 하고 있는 척 아니 잠이 주인공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 상당히 장르가 묘한책입니다.
단편 소설집 같으면서도 아니고
수필집 같으면서도 아니고
잠의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듯하면서도 아니고 (절대로 아니고)
그리고 잠을 잘자야 회사 잘다니고 사람 성격좋아진다는 뻔한 소리 하는 책은 (그런책 정말 많습디다) 더더욱 아닙니다.
1) 저자 마이클 맥거는 서문에서도 말하듯이
심한 수면장애로 상당히 인생에 있어서 고생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잠을 어떻게 해야 푹좀 잘지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잠을 단순한 과학적인 영역이 아닌 역사 사회 문학적인 면까지 떠들어 보고 공부를 합니다.
제 나름대로 보자면 이 책은 잠에 대한 다양한 과학과 역사적 지식과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다룬 잠에 얽힌 잡학사전 정도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2) 책에 대한 챕터도 참 특이합니다.
책의 챕터를 분기해 놓은 기준이 오후 8시 반부터 다음날 아침 6시 45분까지입니다.
마치 잠 잘자라고 이야기 하지만 잠을 못자게 붙들어 놓는 듯한 챕터이더군요.
참 신기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늦은 이시각에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서평을 쓰는 것을 보면 앞서 설명한 책에 대한 제 생각이 맞는듯합니다. 잠 잘자라는 책이 아니라 잠을 더 못자게 하는 느낌이네요.
3) 또한 저자와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려 가족과 스스로에 대한 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장면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에디슨의 일화
천일 야화와 불면에 대한 이야기
나이팅 게일과 잠과 전쟁의 이야기
성경에 등장하는 잠과 꿈에 대한 이야기 등 잠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관점과 그 재미난 에피소드의 소개들과
잠에 대한 여러 지식 / 불면증 , 무호흡증, 기면증, 몽유병등등 잠에 대한 증상과 병.
또한 수면제와 커피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와 잠에 대해 미치는 영향등
잠에 대한 잡학지식서적입니다.
잠을 쫒을 만치 흥미진진하지요.
4) 그러나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잡지식의 나열이 아닙니다.
잠을 위시한 인생의 옳은 길에 대한 나열에 가깝습니다.
형식은 오후 8시 반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잠못이루는 밤에 잠에 대해서 나열하는 그런 이야기지만
결국 잘자고 잘사는 건강한 삶의 동경을 표현한 그런 책입니다.
- 누구나 공평한듯 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 잠... 그리고 그 잠을 통해서 이렇게 방대한 하루밤 사이의 이야기로 수면을 방해하는 이 책을 전 정말 후하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
|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잠이라는 리사이클링 없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하루 24시간 중 얼마의 시간을 잠에 할애하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한 개개인의 견해는 모두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7시간~8시간, 하루의 1/3 정도를 잠에 할애하는 것이 적정 하다고 생각한다. 21세기 들어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또 많은 산업군이 생겨난 웰빙 카테고리에 이제는 먹고 운동하는 건강만이 아닌 잠을 잘 자는 건강도 최근 주목받기 시작했다. 불면증이 있는 사람이 정상적인 하루를 보내기 힘든 것 처럼 지난 밤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면 신체적으로,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잘 자는 것'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 "잃어버린 잠을 찾아서"는 성직자 출신의 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마이클 맥거가 집필한 책으로 세상의 모든 잠을 다룬 책으로, 트라우마로 인한 불면 혹은 무 호흡증으로 인한 불면,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의 잠에 관한 모든 지식이 담겨져 있다. 단순히 잠에 관한 과학적인 이야기 뿐만 아니라 과거 인물들의 잠에대한 철학 등을 인용 함으로써 다양한 스코프를 제시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역사 이래 인간은 잠과 꿈의 비밀을 밝히고자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밝혀진 부분들은 아주 적은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책 한권을 통해 잠의 모든것을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전구의 발명으로 밤을 몰아낸 발명왕 에디슨은 잠잘 시간도 아까워 했던 천부적으로 부지런한 위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낮잠을 즐겨 자거나 연구 중에도 자주 졸았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침대보다 연구실에 보낸 시간이 더 많았을 에디슨 이지만 부족한 잠은 낮잠이나 쪽 잠으로 채웠던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침대와 거리가 멀었던 에디슨이 운명을 달리한 장소는 연구실이 아닌 침대였다는 점도 재미있는 대목이다. 이와는 정 반대로 삶을 보낸 위인이 있다. 나이팅게일은 36세 이후의 생을 침대에서 보냈다. 36세이후 9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든 일상을 침대에서 보냈다고 한다. 책과 제안서 집필, 병원 설립등 수많은 사회 활동을 침대 위에서 했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잃어버린 잠을 찾아서"는 작가 자신이 겪었던 고통(무호흡 증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그리고 쌍둥이를 포함한 세 아이를 키우느라 잠못 이뤘던 수많은 나날들)으로 인해 자연스레 많은 관심이 쏠리게 된 잠에 대하여 그가 알고 있는 모든 동서고금의 지식을 작가만의 독특한 위트와 함께 풀어낸 책이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세상의 모든 달콤하고 괴로운 잠 이야기'란 말 처럼,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잠이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잠이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잠에 관해 과학과 철학 그리고 문학과 우리 주변의 삶을 모두 담아낸 책이 또 있을까? 잠에 관한 끊임없는 재미를 찾아보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