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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한국어로 쓴 외국어(언어) 이야기, 이 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이렇게 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유학을 통해서 외국에서의 생활을 오래 했고, 한국에서는 한때 대학 교수로 재직을 했었던 저자의 언어에 대한 탐구의 내용들이 이 책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국가의 언어를 배우면서, 서로 다른 언어들이 어떻게 다른 나라에 전파되는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외국어는 어디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졌는가’라는 부제가 이 책의 성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책의 서문이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일본어 등 3개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본문은 한국어로 저술했음을 밝히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저자를 잘 알고 있고, 한국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동안 몇 차례 학회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다. 저자가 한국에서 있을 때 시조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는 서문의 내용이 있는데, 당시 몇 달 동안 그와 함께 시조 읽기를 했던 까마득한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매번 저자를 만나면서 언어에 대한 특별한 능력과 관심이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언어에 대한 생각들을 접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여 글 속에 잘 녹여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다섯 항목으로 구성된 목차에서 첫 번째 항목의 제목은 ‘외국어 전파의 첫 순간, 그 시작에 관하여’이다. 세계 각국의 문자의 기원과 서로 다른 언어들이 교섭하는 가운데, 언어의 전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라 하겠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체로 초기에는 특정 종교의 포교를 위하여 그와 함께 언어가 전파되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종교의 확산 과정은 곧 외국어 전파의 역사'라고 강조한다. 때로는 필요에 의해서 새로운 문자가 탄생을 하여 그에 대한 수요가 충분하면 발전하지만, 수요가 그치면 이내 다시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언어가 지닌 지배적인 특징을 고려하면, ‘평화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외국어 전파의 속사정’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라 하겠다.
중세를 지나 금속활자가 발명되면서 언어의 전파가 상대적으로 용이해졌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 유럽의 그리스어와 이슬람 문화권의 이슬람어 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그리고 동양의 한자는 당대에 보편어(고전어)로서의 지위를 획득했음을 알 수 있다. 보편적인 언어로 자리를 잡으면서, 그 중심에 있는 문화를 주변에 전파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한 속에서 우리의 경우 한글을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고, 그것이 굳건히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유례가 없다고 한다.
두 번째 항목은 ‘제국주의와 문화 이식의 첨병, 외국어’라는 제목으로,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언어의 의미를 고찰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이 통용하는 언어는 프랑스어이고, 남미에서는 스페인어가 가장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 뒤에는 바로 근대 이후 유럽이 제국주의가 한 몫을 했다는 것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즉 식민지 국가의 약탈과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국의 언어를 강요했고, 그에 따라 그것이 식민지에서 상용어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제국주의의 확산에 절대적으로 기여를 하며, 선교라는 이름으로 식민지에 종교를 이식하면서 식민지 국가의 전통 사상을 말살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들이 이 책을 통해서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혁명과 전쟁, 그리고 외국어’라는 제목의 세 번째 항목에서는, 그야말로 혁명과 전쟁이 자주 벌어지던 전환기로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시기에 이르면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만이 아니라, 특정 민족의 주체성을 상징하는 표지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조선어학회’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주의의 침략에 일상화되던 시절, 그에 맞서서 항거를 하던 국가들에서 자국어를 지키기 위한 힘겨운 투쟁이 지속되었다. 이처럼 일제가 우리에게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듯, 지배국의 언어를 이식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도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다. 결국 외국어 전파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고, 다른 의미에서 국가의 힘을 강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네 번째 항목에서는 ‘외국어 전파의 역사는 곧 학습 방법의 변천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아마도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영어 조기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주제일 것이다. '이중 언어'에 노출되는 상황이 언어 습득의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모국어에 대한 이해도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일방적인 외국어 교육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과 달리 과거의 학교 현장에서는 회화보다 문법 위주의 교육이 성행했고, 나이가 들면 외국어 습득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외국어에 대해 얼마나 절실한 욕구를 지니는가에 따라서, 나이가 들더라도 외국어 습득 능력은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신 자유주의 시대, 영어 패권의 시대’라는 제목의 다섯 번째 항목에서는, 어느 틈엔가 ‘세계어’로 행세하고 있는 영어의 위치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는 마치 영어 구사력이 그 사람의 능력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국문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여전히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며, 또한 영어 사용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전혀 불편한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다. 외국에서 1년 동안 살면서도 읽고 쓰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지냈던 터라, 이제 필요하다면 번역 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간간이 ‘한국도 이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는 넋이 빠진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보통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저 영어는 필요하면 사용하는 외국어일 뿐이다.
그럼에도 영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저자는 ‘21세기, 외국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짚어보고 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저자의 관점에서, 필요한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절실한 요구에 응한 것이라 여겨진다. 호기심이 강했던 저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외국인들과 교류하면서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막무가내로 ‘영어가 중요하다’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작 막대한 시간을 들여서 습득한 외국어가 막상 일상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외국어는 필수 과목이 아닌, 필요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 과목이 되어야 한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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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교수로서 일본 대학에서 일본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어를 강의했던 특이한 이력을 가진 저자가 한국어로 쓴 저서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국어의 전파 과정, 학습대상으로 선호되었던 언어의 변천사, 외국어 교습법의 발전 과정과 외국어 학습의 미래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고 라틴어를 교회의 공식언어로 지정한 4세기 부터 시작된 외국어 학습은 15세기의 르네상스, 17세기 근대국가의 형성, 18세기의 제국주의, 19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며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자리를 공고히 다진다. 이어진 20세기에는 영국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를 발판 삼아 저변 확대에 성공한 영어가 양차대전과 냉전에서 승리한 미국의 패권주의에 힘입어 국제 공용어의 위상을 획득한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외국어 학습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며, 의사 소통의 도구로서 외국어를 학습할 필요성은 점점 작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언어는 단순한 의사 소통 도구이기 이전에 타민족을 이해하고우호를 다지는 매개체로서 반드시 학습되어야 할 교양이라 말한다. 인공지능이 이미 자동 번역 기능을 제공하고 그 완성도가 하루가 다르게 정교해지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영어 학습 열풍은 여전하고, 영어 학습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습자들의 시름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영어는 아직까지 사회적 자본으로 작동하고 있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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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영어 공부의 스트레스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난 왜 이렇게 영어 감각이 없을까 하면서 자책을 하고, 또 해외에서 태어나게 하거나 또는 어학연수도 못보내주는 애꿎은 부모님을 원망하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다. 영어를 잘 해서 학교에서 우등생으로 통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운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냥 국내에서 적당한 직장생활 하고 살 거면 한국말만 잘 하면 되지 않냐는 의문과 동시에(한국 말은 '잘' 하고 이런 생각을 했을까?), 소수의 엘리트들이 영어 능력으로 사람들을 변별하고 선발하기 위한 도구로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선에 귀를 기울인 적도 있다. 물론 어른과 (한국의) 직장인이 된 지금도, 영어가 엄청나게 중요한 건 아닌건 사실이지만, 잊을만 하면 영어 능력의 필요성을 종종 마주친다. 학창시절 나의 영어 공부 부족을 탓하고 여전히 주변의 영어 능력을 통해 승승장구하는 몇몇 능력자들을 부러워하는 건 별로 달라진 점이 없다. 다만 학창시절과 조금 생각이 달라진 점도 있다. 확실히 영어를 잘 하면 업무상의 이점이 있고(지리교사로서 해외 파견 가능, 또 수업 측면에서도 세계의 여러 정보를 직접 접하고 해석하여 활용할 수 있다), 더 중요한건, 구글, 파파고 등의 번역기 기술이 빨리 발전하기를 응원(?)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영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이 있는 대한민국 땅의 청년들이라면 귀가 솔깃해지는 주제를 다룬다. 저자는 그 자체가 '언어 천재'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나라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부러운 능력자이다. 미국인 언어학자인 저자는 일본과 한국에서 영어, 한국어, 일본어를 다 가르친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게다가 라틴어, 프랑스어, 몽골어, 중국어, 북미 선주민어 등의 수많은 언어를 배우는 대단한 언어 학습 욕구와 능력를 지녔다. 특히 우리나라에 꽤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생활과 한옥마을에 거주한 이력 등도 흥미를 끈다. 저자는 언어학자로서, 우수한 단일 언어를 가지고 식민지배에도 언어를 유지한 경험이 있는 한국에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왠지 저자의 배경을 살펴보면 "다양한 외국어 공부만이 글로벌 세계에서 살아남는 길이다"를 역설한다던지, "여러 외국어는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공부하면 잘 익힐 수 있다" 등의 노하우를 전수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접근방식은 다르다. 나의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 공부에 고통을 받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은 비단 우리나라의 지금 현재 풍경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정 국가가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단지 언어 교육 측면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나라의 언어가 어떠한 목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다른 국가로 전파되는 과정을 살피자는 것이다. 저자는 언어가 전파되어 온 역사적 배경, 지리적 패턴을 글로벌 스케일에서 추적하면서 현재적 의미를 고찰한다. 우선 1장에서는 여러 문화권에서의 중세까지의 모국어, 외국어, 공용어 등의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을 여러 사례를 들어서 설명해준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배워야 할 필요성은 종교, 상업, 제국 경영 등의 이유였다. 특히 유럽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에 외국어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점을 시대적 맥락으로 설명해주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도시화, 상업화, 문화 산업 발전, 인쇄 기술의 발달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모습을 보면서, 특정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하기 위해 상호 공통언어 학습의 필요성이 등장하는 과정이 지리적인 관점이어서 흥미로웠다. 같은 맥락으로 동아시아에서도 거대한 제국을 만든 원나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제국의 지배와 소통을 위해 최초로 보편 언어를 개발한 점이 비슷한 맥락이었다. 파스파 문자에 대해서는 얼핏 들어봤을 뿐 자세히는 몰랐다. 또 산스크리트어를 통해 언어라는 문화요소가 특정 장소의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르네상스의 태동 배경에는 앞서 말했듯 도시의 발달과 상인 계층의 등장이 있었다. 이들은 축적한 부를 기반으로 활발하게 문화를 소비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이들은 갈수록 막강해지는 가톨릭 교회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재발견하는 데 힘을 쏟았고, 고대 그리스 철학에 담긴 합리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 도시국가가 중심이 되고, 상인 계층이 부상한 데는 무역의 확산이라는 사회적 변화가 전제되어 있다. 무역을 통해 물산의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인적 교류되 이전과 비할 수 없이 늘어났다. 다시 말해 다른 언어권의 사람들과 접촉면이 넓어짐에 따라 그들과의 소통 능력이 중요해졌다. (...) 인쇄 기술의 발달은 역사의 새로운 변곡점을 마련해줬다. 1450년경 구텐베르크가 개발한 금속활자 인쇄술의 등장으로 인해, 그 이전까지만 해도 특정 계층의 소유물이었던 '책'이 일반 대중 누구나 거래하고 소유할 수 있는 상품의 하나가 되었다. (p.50-51) 원나라의 초대 황제가 된 쿠빌라이 칸은 몽골어와 중국어 그리고 몽골제국의 지배를 받는 여러 민족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 문자의 개발을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파스파 문자다. (...) 이 문자에 담긴 언어 보편주의의 측면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하나의 제국이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지배할 경우 이들의 소통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통일된 언어와 문자가 필요하다. 이 경우 대개 지배자의 언어를 피지배자들에게 보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쿠빌라이 칸은 새로운 제국의 통치를 위해 누구나 배우기 쉬운 보편적인 언어와 문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파스파 문자는 그런 보편성을 염두에 두고 제국의 지배자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문자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p.64-65) 인도는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공존하기 때문에 국가 운영을 위해서는 공용어가 필요한데, 외세 언어인 페르시아어와 영어가 아주 오랫동안 그 역할을 해왔다. 13세기부터 인도를 장악한 이슬람 왕조의 지배계층들은 줄곧 페르시아어를 사용했다. (...) 이런 현상은 이후 영국 지배계층을 통해 들어온 영어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영어 역시 인도의 공용어였으나 20세기말까지 민중의 언어라기보다 지배계층의 공용어로만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지배계층 외의 인도인들은 어떤 언어를 썼을까. 그밖의 인도인들은, 지배계층의 언어와는 별개로 인도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로 인해 매우 다양한 고전어를 꾸준히 사용해왔다. (...) 산스크리트어는 인도인의 공용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인들은 산스크리트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인도를 통치한 제국은 이슬람교를 믿었지만 대다수 인도인들은 여전히 불교와 힌두교 신자였고, 산스크리트어는 이들 종교의 공식 언어였다. (p.73) 그리고 2,3장에서 유럽 여러 국가들의 언어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의 위계성과 폭력성에 대해서 인상깊게 읽었다. 학교 지리 시간에 세계 여러 국가들의 언어 분포에 대해서 언급할 때, 앵글로아메리카는 영어를 쓰고, 라틴아메리카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를 쓴다고 건조하게 서술하고, 그 이유를 식민지배 문화전파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말았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언어 전파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여러 나라에서의 패턴을 비교해준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라틴어가 아닌 '모국어'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고, 그 이후에 국가 단위로 언어가 전파되어서 세계 각국이 언어가 달라졌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또한 유럽 여러 언어들의 전파는 종교의 선교, 제국주의, 국민국가 형성 등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그래서 언어가 자연스럽게 '전파'되었다기보다는 권력, 구조적 및 문화적 폭력이 수반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미국으로의 유럽 이주민들에 대한 '국민 만들기'로서 학교 영어교육, 아메리카의 선주민들에게 영어를 강제하는 부분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어서 아차 싶었다. 영국→아일랜드, 일본→한국과 같이 문화적인 동화 압력으로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어 강제 교육은 익숙히 알고 있지만, 비슷한 상황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보니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한편 소련이 의외로(?) 초기에 각 지역별 민족어를 중시하는 정책을 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물론 스탈린 후기에는 점점 러시아어 교육을 강화했지만..).
*사전 이름으로만 얼핏 들어본 '웹스터'는 영국식 영어가 아닌 미국식 영어의 표기를 체계화하여 사전으로 만든, 미국의 영어교육사에서 의미가 큰 인물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의 '국민 만들기'에 큰 공헌을 했다는 점도 인상깊은 대목이었다. 설령 초기에 선주민들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 선교사라 할지라도, 대부분 선주민들을 신자로 만들고 난 후에는, 이들에게 자신들의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했다. 신자가 된 선주민들은 처음에는 선교사의 '말'을 배웠고, 차츰 성경 독해를 위해 '글'을 읽는 훈련을 거쳐야 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같은 시기, 유럽 대륙에서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말보다 글이 먼저였다. 국가와 교파, 선교사 개인의 특성에 따라 차이는 물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선교 활동은 침략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이루어졌고, 언어를 배우려는 이들과 가르치는 이들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관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초기에 선주민의 말을 배웠던 선교사들도 선주민들이 자신의 모어에 익숙해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 언어로 소통을 했고, 그 공동체 안에서 선주민의 모어보다 선교사의 모어가 더 높은 위계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선주민들의 언어는 사라지기 시작했다.(p.110) 유럽의 선교사들이 대륙 바깥의 이방인들에게 가르친 것은 라틴어가 아닌 바로 자신들의 모어, 자국의 국어였다. 국가라는 인식이 형성되고 국가마다 국어의 정립에 힘 쓰던 때, 모든 언어의 전제이자 기본으로 뿌리 깊게 형성된 소위 '라틴어 패권'에 대한 매우 실질적인 도전이 뜻밖에도 대륙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유럽의 각 국가들이 주도한 제국주의가 종교와 자본의 도움을 받아 세계 곳곳을 활보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제국주의 국가의 언어 역시 제국주의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는 20세기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그것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다.(p.119) 도시화가 빨라지면서 이 지역의 인구 밀도가 높아졌다. 1830년대부터는 아일랜드와 캐나다 퀘벡주에서 들어오는 이민자 수도 늘어났다. 이에 따라 여러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이민자 중에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아일랜드는 영어를 공통어로 쓰고 있지 않았다. 다른 언어를 쓰는 이민자들로 인한 사회 분열을 염려하던 미국의 개신교 엘리트들은 충실한 미국 시민을 양성할 필요를 느꼈고 백인 남자들에게 부여되던 투표권의 올바른 행사를 위해서라도 제퍼슨 대통령이 중시했던 시민 교육의 필요성에 기꺼이 동의했다. 그러던 차에 프로이센의 교육 개혁 관련 소식이 전해졌고, 이는 공립학교의 제도화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 교육 내용은 영어의 독해와 쓰기가 강조되었고, 그 분위기는 매우 엄격했다. 이러한 영어 교육은 늘어나는 이민자들에게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었고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내려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에서처럼 고도화된 민족주의에 기반한 것은 아니지만, 공교육을 통해 자국어를 가르침으로써 충실한 국민을 양성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p.147-148) 내부 제국주의의 사례로 든 미국 선주민들과 아일랜드 농촌 지역에서의 영국의 언어 정책과, 또다른 제국주의 양상의 예로 든 인도에서의 영국의 언어 정책에는 매우 분명하고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이 사례들의 차이는 바로 모어의 소멸 정도에 있다. 오늘날 인도에서 영어는 비록 또 하나의 언어처럼 깊게 뿌리를 내리긴 했지만, 모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미국 선주민들은 대부분 영어를 사용하고 모어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제국주의 안에 자리 잡은 동화 압력의 유무이다. 즉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거리가 가까우면 지배국에게는 피지배국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된다. 때문에 '타자'인 피지배국민을 '내국인화'시켜야만 지배국의 안녕에 방해를 덜 받는다.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고 민족성을 말살하려고 했던 것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일본 제국주의는 자신들과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식민지 조선인들을 내국인화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자국에 위협이 된다고 여겼다. (...) 언어야말로 민족을 정의하는 중요한 기둥 중 하나라는 사실을 지배국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미국과 영국이 자신들이 통치하던 선주민과 아일랜드인들에게 자신들의 언어를 집요하게 가르치려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p.162-163) 4,5장에서는 현대 언어교육, 특히 영어교육의 확대와 방법적인 이야기가 중심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 문법과 회화 중 무엇이 중요한지, 발음은 얼마나 정확해야 하는지, 원어민에게 직접 배우는 것이 중요한지, 또 외국어 습득에 적절한 나이는 몇살인지 등이다. 이러한 방법이 중요한 이유는,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외국인에게 자국 언어를 교육시켜야 언어가 빠르게 전파되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언어학, 언어교육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러한 논의들이 나에게도 익숙한게, 다 우리가 외국어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미국식 영어'이고, 영어를 잘 해야만 성공하는 나라에 살아서 그렇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성문영어나 맨투맨 등으로 대표되는 영어 문법책들, 영어듣기평가 시험과 원어민 강사를 통한 회화교육, '어륀지' 발음과 영어교육 확대 논쟁 등이 떠오른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교육 방식이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시공간의 맥락에 구속받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2차대전 시기 미국 군대에서 이루어진 일본어에 대한 집중 교육 및 '청각 구두 교수법'은 우리나라 학교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헤드셋이 즐비한 어학실습실을 연상시킨다. 시대적인 맥락에 따라 다양한 방식들이 개발되고 적용되고 재구성되어서 특정 시기의 영어교육이 필요한 나에게도 영향을 주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글로벌 시대'의 패권 언어인 영어를 배우기 위해 적극 노력하는 한국의 여러 영어 교육 풍경에 대한 이야기들도 씁쓸했고,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배나 영향을 받지 않은 국가에서도 최근 영어교육이 중시된다고 하니, 영어는 정말 '글로벌 시대'를 장악한 패권 언어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미국인 언어학자로서 저자가 한국과 일본의 도시에 체류하면서 '영어 패권주의 경관'을 사진으로 남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도시와 관련한 몇몇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미국은 어떻게 적국 일본의 동향을 살폈을까? 미국은 일본 이민자들을 활용하기보다 자국의 군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쪽을 택했다. 군부 안에서 일본어 교육을 실시하기로 하고 미국 내의 명문대 출신 군인들을 선별해서 믿을 만한 일본인 원어민 교사로 하여금 집중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게 했다. 1941년 영어교육원을 설립한 미시간 대학교와 미네소타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부대에서 일본어 집중 교육이 이루어졌다. 일본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전쟁 이후 일본을 점령하기 위한 준비가 교육의 목적이었다. 이 당시 영어를 모어로 하는 군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해 개발한 '육군 교수법'은 전쟁 이후에 개발된 청각구두 교수법의 모태가 되었다.(p.261-262) 1945년 해방 이후 1946년 미군행정부는 제1차 교육과정을 수립하면서 영어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한국인들에게 영어 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일본인들에게 영어 교육을 지원한 것처럼 한국에도 마찬가지였다. (...) 이런 과정을 통해 많은 한국인이 첫 번째로 접하는 외국어는 당연히 영어라고 여기게 되었고 이는 곧 '외국어=영어'라는 인식을 형성했다. 비단 한국인들만의 인식은 아니다. 영어권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외국어는 곧 영어였다.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의 언어 패권으로 인해 만국의 외국어가 영어로 통일된 셈이다.(p.279-280) 한국은 글로벌화 시대 영어 사교육 시장이 갈수록 확장되는 영어 상업화의 대표적 국가가 되었다. 1980년대 초부터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고 1987년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 시대를 쟁취한 뒤 변화는 두드러졌다. 소비자의 경제적 능력이 향상되고 민주화로 인한 사회적 개방이 이루어짐에 따라 '학원'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영어 사교육 시장이 급속히 성장한 것이다. 학원이 성장하면서 교재 시장되 커졌다. 19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불어온 유학과 단기 연수의 붐, 영어 실력을 인증하는 '스펙'의 하나로 인식된 토익 시험은 더 나은 영어 교육의 장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물꼬가 트인 입시학원 자율화는 사교육 시장의 확산 속도에 기름을 끼얹었다.(p.290) 저자는 6장에서 현재와 미래의 외국어 능력의 의미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고 미래 사회를 진단한다. 저자는 당장 중국어와 같은 타 언어의 부상으로 영어 패권주의가 위협받는 시대는 오지 않을 것으로 단정한다.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제치고 패권 언어가 된 영어는, 오히려 필수적인 특정 '외국어'로서 영어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제2, 제3의 언어'로서 더욱 사용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나는 물론 내 자손들도 여전히 영어 공부로 고통받을거 같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다만 저자는 외국어 교육의 미래에 대해서 인공지능을 통한 번역 시대를 제안하면서, 지금처럼 영어 교육을 하는 이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문화자본을 독점하는 시대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글로벌 시대에 타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교양으로서 언어 학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설득력이 있었다. 내 경험에서도, 여행지에서 스마트폰 번역기로 번역해서 현지인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현지 언어로 인사말을 한 마디 했을 때 현지인이 웃으며 반가워했던 장면이 기억났다. 인공지능에 번역을 맡긴다고 언어 공부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타인과 언어로서 의사소통하면서 '글로벌 사회'의 일원을 느낀다는 게 여전히 중요하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에스페란토어 국어와 외국어의 구분이 희박해지고 국경을 초월해 자유로운 이동이 이미 빈번해진 오늘날, 영어는 더 이상 외국어라기보다는 제2언어, 제3언어로 이미 기능하고 있다. 굳이 앞서 든 지역과 국가들의 예를 나열하지 않아도 오늘날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도 영어이고, 보편적 교육을 통해 가장 많이 전승, 학습되는 언어 역시 영어다. 어떤 언어권과 비교해도 영어의 위상을 위협할 언어를 현재로서는 떠올릴 수 없다.(p.334-335) 인류는 21세기를 맞았고, 그동안의 외국어 전파 과정으로는 상상할 수 없던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조만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들의 의사소통 방식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 그러나 과연 그렇게 언어를 둘러싼 모든 장벽은 사라질 것인가? 개인은 해방될지언정 언어로 인한 갈등과 불평등은 어디선가 잠복하고 있다가 불현듯 우리 앞에 다시 어렵고 지루한 방식으로 등장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 곧 다가올 미래에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는 한편으로 날로 접아지는 지구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의 접촉 역시 계속 확대될 것이다.(p.338) 지리교사로서 세계지리 과목에 나오는 여러 국가의 언어 분포와 원인에 대해서 개략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어서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언어의 전파와 그 이면의 민족, 종교, 자본, 권력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게 되어서 좋았다. 그리고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던 개인적, 사회적인 상황에 대해서, 비단 나만의 얘기가 아닌 몇백여년 전의 다양한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영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를 익히는 것이 단지 문화자본을 취득하고 '있어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사회에서 놓치기 쉬운 상호 문화이해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했다. 좀 더 넓은 맥락에서 외국어의 전파와 수용에 관련한 이야기들을 알 수 있게 되어 좋았고, 미래 사회의 영어는 어떤 지위를 차지할지, 번역기의 발전은 어디까지 이어지고 우리 사회는 또 어떤 방향으로 갈지 관심이 갔다. 인문학,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은 여러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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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저자가 이런 정도의 글을 한국어로 쓸 수 있는지 놀랄 따름이다. 다양한 관점을 본다는 측면에서 한번 정도 살펴볼 만한 도서이다. |
| 평소 언어를 배우는것은 물론 언어의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읽게 되었어요.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 집필했다니 놀랍네요. 언어의 탄생부터 어떻게 언어가 전파되나, 언어로 인해 발생하는 권력다툼등이 흥미진진하게 나와 있어요. 앞으로의 언어의 발달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재미있었어요. 개인적으로도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사람이 다른언어를 배우고 익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라도 인류의 외국어공부는 계속된다고 봅니다. |
| 외국어를 배우기 전에 갑자기 든 호기심으로 외국어는 어쩌다 배우게 됐을까? 해서 구매한 책입니다. 정말 언어의 처음부터 끝 미래까지 알 수 있습니다. 언어의 시초가 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왜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지 앞으로 미래에도 우리는 외국어를 배울지 영어는 언제까지 공통어로서의 역할을 할 것인가 등등 정말 많은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아쉬운점은 내용이 진행되다가 사진이 나오는데 문단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사진이 나와서 약간 읽는데 방해가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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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으로 사귀려는 ‘외국말 배우기’가 되기를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100 《외국어 전파담》 로버트 파우저 혜화1117 2018.5.5. 아르메니아 문자는 비단 성경의 번역어로서만 역할을 한 것이 아니다. 자국어로 된 문학 활동을 풍성하게 해줬을 뿐만 아니라 인접 언어권의 문자를 만드는 데에도 좋은 사례가 되었다. (42쪽) 쿠릴라이 칸은 새로운 제국의 통치를 위해 누구나 배우기 쉬운 보편적인 언어와 문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고, 파스파 문자는 그런 보편성을 염두에 두고 제국의 지배가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문자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65쪽)
이러한 기관들은 하나의 국가 안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언어와 방언들 대신 왕실의 언어를 국어로 만들고, 보급하고 관리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여를 했다. (86쪽) 기본적으로 선교 활동은 침략이라는 패러다임에서 이루어졌고, 언어를 배우는 이들과 가르치는 이들은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관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 차츰 자신들의 언어를 버리고 선교사들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선주민들의 언어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110쪽) 미국 백인 주류 계층은 선주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침으로써 그들의 언어를 말살시키려 했다. 이를 통해 선주민들 고유의 민족성을 없앤 뒤 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 했다. (159쪽)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문인들은 한국어와 일본어, 한문은 물론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등을 작품에 활용하는 것에 매우 익숙했다. (234쪽) 열두 살을 지나가는 큰아이가 한창 영어를 배웁니다. 올봄까지는 영어 배우기를 시큰둥히 여겼지만, 이웃나라 사람을 잔뜩 만나는 자리에 다녀오고는 스스로 하고픈 말을 할 수 없어 갑갑했다며 영어를 배우기로 다짐합니다. 말이건 다른 살림을 배우건 언제나 발판이 있어야 할 테지요. 큰아이는 어머니한테서 빵굽기를 배운 뒤에 ‘가게에서 사다 먹는 빵’은 ‘집에서 스스로 구워서 먹는 빵’ 같은 즐겁고 아늑한 맛이 나지 않는다면서, 이제는 빵을 먹고 싶으면 스스로 반죽해서 부풀린 뒤에 스스로 굽습니다. 여러 나라 말을 배우는 재미에 사로잡혀서 온갖 말을 재미나게 배웠다고 하는 분이 한국말로 쓴 《외국어 전파담》(로버트 파우저, 혜화1117, 2018)을 읽었습니다. 재미있어요. 일본말도 할 줄 알고 한국말도 할 줄 아는 이웃나라 사람이 한국말로 책을 썼다고 하니까요. 다만 이 책은 ‘한국말로 썼다’기보다 ‘한글로 썼다’고 해야 올바르지 싶더군요. 글쓴님은 이른바 번역 말씨하고 일본 한자말로 책을 썼어요. 아무래도 글쓴님은 이녁한테 낯선 말을 익힐 적에 ‘어른 눈높이’에서 인문책이나 어른문학을 곁에 두고서 익혔을 테니, 한국 인문학이나 사회학에 두루 퍼진, 이러면서 아직 씻거나 가다듬거나 손질하지 못한 번역 말씨하고 일본 한자말로 이야기를 풀어냈을 테지요. 어린이가 외국말을 익힐 적에는 아주 마땅히 그림책이나 동화책부터 가까이하기 마련입니다. 어른이 외국말을 익힐 적에는 어떠한가요? 푸름이라면 청소년문학을 가까이하면서 외국말을 익히겠지요? 어른도 어른문학이나 어른 인문책만 가까이하기보다는 그림책하고 동화책하고 동시집부터 가까이하면 좋겠어요. 그 나라 지식 사회 말도 익히면 좋겠습니다만, 처음에는 그 나라 수수한 살림자리 말을 익힐 적에 훨씬 좋을 테니까요. 인문책 《외국어 전파담》은 글쓴님이 지구별 여러 가지 말을 배우는 동안 느끼거나 살폈던 대목을 대학 교재 얼거리로 풀어냅니다. 예부터 언제나 ‘세계 통치자나 권력자’가 제 나라 말글을 이웃나라로 퍼뜨려서 군사힘뿐 아니라 문화힘으로도 다스리려 했다는 대목을 조곤조곤 들려줍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이란 나라에서도 중국말을 섬긴 대목, 또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일본말을 ‘국어(國語)’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가르치려 하면서 한국말을 짓밟은 대목, 또 해방 뒤에 군정으로 들어온 미국을 앞세운 미국말(영국말보다는)이 확 퍼진 대목에 얽힌 뒷그늘을 읽을 만합니다. 더 살피면 한국하고 일본 사이는 여러모로 얽힙니다. 일본이 군사힘으로 쳐들어온 적도 있으나, 일본은 조선한테서 이모저모 얻거나 나누려는 뜻으로 조선에 ‘조선말을 배우는 곳’을 세워 꾸준히 사람을 보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에서는 일본말을 배우려는 곳이 있었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중국말을 섬기면서 지식 사회에서는 어릴 적부터 중국 말글을 배우도록 했어요. 한국도 꽤 예전부터 ‘외국말 배우기’를 한 셈입니다. 한국으로 나들이를 오는 여러 나라 이웃은 한국말을 배우려 합니다. 이웃으로 사귀고 싶기에 이웃말을 배우려 하지요. 군사힘이나 문화힘이나 정치힘으로 사로잡거나 윽박지르려 하는 물결이 아닌, 수수한 자리에서 서로 이웃이 되려고 만나고 배우려는 ‘외국말 어깨동무’로 나아간다면, 이때에는 제 나라 말도 이웃나라 말도 서로 기쁘게 맞아들여서 배울 만하지 싶습니다. ‘외국어 전파’를 시키는 힘이 아닌, ‘어깨동무하는 사이가 되는 즐거움’으로 서로서로 이웃 삶자리를 담아낸 말을 나누는 길이 되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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