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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극우도 쪽팔려 못하는 말을~ 임나 일본부 왜의 세력이 백제 신라도 두려워 했다고? 일본에서 지원 받으신적 있음? 철기 생산을 못했던 왜가 얼마나 강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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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서로 도와가며 한집처럼 지내자, 우리는 한겨레다, 단군의 자손이다! 뭔 뜻인지도 모르고 불렀던 노래가사가 요즘 들어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단일민족에 대한 믿음은 신화일 따름이라는 말에 혹자는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일자리를 빼앗는 외국인들은 제 나라로 돌아가라는 구호도 심심찮게 듣고 있다. 최근에는 ‘가짜 난민’ 논란까지, 세상이 뜨겁다. 속고만 살아온 것일까. 나의 세상을 구성해 온 하나의 축이 무너지는 걸 느낀다. 만일 내가 이제껏 믿어온 것이 허구라면, 누가 무슨 이유에서 이와 같은 허튼 말들을 진리라며 유포한 것일까. 애초부터 단일민족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문명이 국경을 넘나들 듯 사람 또한 이동했을 게 분명하다. 이는 ‘세계화 시대’라는 오늘날에만 국한된 일이 결코 아니다. 한 권의 책을 이번에 읽었는데, 책 제목이 ‘고대, 한반도로 온 사람들’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라 일컬을 법한 시대에 이르렀을 때조차도 나와는 다른 생김새를 지닌 혹은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였다. 이를 증명해 보이고자 저자는 제법 구체적인 사례들을 소개했다. 사실 이를 받아들이기가 내 입장에서는 적잖이 불편했다. 몇몇은 이제껏 배워온 역사와 배치되는 듯도 했기 때문이다. 낙랑, 진번, 임둔, 현도군. 한사군으로 불리는 곳들의 위치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위치가 어디냐에 따라 우리와 중국의 고대 역학관계는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격에 대해서도 왈가왈부 중이다. 이 또한 엄연한 우리의 역사라는 목소리 또한 높다. 위만조선/기자조선, 마한, 변한, 진한, 즉 삼한 주민들의 특성, 더 나아가 임나일본부에 이르기까지. 무엇하나 편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우선,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된 낙랑에 대해 저자는 ‘제국의 목재 조달 사령부’라고 보았다. 단순히 물자만을 조달한 게 아니다. 낙랑이 존속하는 기간 동안 끊임없이 중국인의 유입이 일어났는데, 총인구의 14퍼센트가 중국인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14퍼센트라니, 어마어마한 수치다. 물론 그들이 모두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일부는 고조선 문화에 동화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위만조선 또한 마찬가지다. 고조선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권력이 충분치 않았다. 토착세력을 어느 정도 존중하지 않고서는 권력을 손에 쥘 수 없었기에, 위만조선은 기존 고조선의 질서를 크게 뒤흔들지 않았다. 그렇다 하여 위만조선이 이민족의 유입에 의해 성립한 것이라는 사실이 변치는 않는다. 사실 내게 가장 불편했던 이야기는 일본에 얽힌 부분이었다. 임나일본부에 대해 말도 안 되는 가설이라는 식으로 배운 게 엊그제 같건만, 저자는 왜인이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광개토대왕비의 내용을 훼손해가면서까지 일본이 이를 엄연한 역사로 만들고자 안간힘을 썼다고 굳게 믿어왔건만, 저자는 심지어 한때 신라와 백제를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로 막강했다고까지 말했다. 객관적이라는 말 자체가 어느 정도 가치를 머금고 있다. 중국 중심의 질서를 기본으로 여겼던 고려시대에 김부식은 물론 일연조차도 기자조선을 우리 민족의 원류 마냥 이해했다. 1900년대 초반 풍전등화 운명에 처한 나라를 걱정하는 과정에서 몇몇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단군에 눈떴다. 식민주의에 저항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단군이 급부상했다. 조선시대까지도 단군보다 기자가 중시됐건만, 이제까지의 역사를 부정함으로써 사람들은 독립의 정당함을 역설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단군은 모든 이들의 조상으로 떠올랐고, 기원전 2333년은 우리 역사의 출발점이 됐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단일 민족이어야만 했다. 조선 후기의 쇄국정책을 떠올려본다. 애국심의 발로였다고는 하나 아쉬움이 큰 건 사실이다.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었고, 그로 인해 근대화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고 오늘날 우리는 이를 해석한다. 다양성은 한 사회의 건강함을 증명해 보이는 지표다. 단 한 번도 한반도의 주민이 단일민족이었던 적은 없다는 발칙한 주장이 사실이어서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를 조심스레 되물어본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에게 혼란을 선사했으며, 여전히 믿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