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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몇 해 앞서 나왔던 원작 소설을 인상 깊게 읽었었다.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현실감각 없이 쉴 새 없이 말만 쏟아내며 시간만 보내는 한심한 대신들이 가장 인상에 남았었다. 영화를 보면서 우선 놀란 것은 그런 소설 속 말의 홍수를 영상으로도 훌륭히 담아내서, 그냥 듣기만 하더라도 답답한 기분이 제대로 전해진다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답답한 현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드는, 현실감각 제로의 멍청한 자칭 지도자들.
영상화 되면서 더욱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역시나 배우들의 비주얼이다. 이병헌과 김윤석의 등장은 자연히 그들의 캐릭터에 좀 더 집중하게 만들면서, 글로만 봤던 대립은 좀 더 생생하게 그려낸다. 연기파 배우 두 사람이 표현하는 척화와 주화 사이의 갈등은 마치 단단한 둑처럼 좀처럼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답답함이 몇 년이 지난 후 영화를 보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또 답답하다. 현실감각이 너무나 부족하면서도 자기들이 다 아는 양 온갖 헛소리들만 떠들어대는 각종 리더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의 귀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뉴스 속에서 보고 있는 이들은 대개 이런 수준이라는 건데, 되도 않는 아무 말 대잔치를 보고 있으려면 그냥 한숨만 나올 뿐이다.
왜 우리들의 자칭 리더들은 이런 수준일까 생각해 보니, 애초에 자격이 없는 이들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과거 조선 시대에는 기본적으로 과거를 통해 관직에 올랐지만, 사실 과거라는 게 시문을 읊고 경전화 된 서적들의 내용을 얼마나 많이 외우고 빠른 시간에 재조합하느냐에 불과한 시험이었다.
그럼 오늘날에는 좀 다를까 싶은데, 사실 공무원 시험이라는 게 어디 현실감각을 묻는 시험이던가? 여전히 일부에서 부활을 외치는 사법고시라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얼마나 많이 외우고 있느냐를 묻는 시험이긴 마찬가지다. AI 시대에 이게 무슨 시대착오적인 시험법인지. 로스쿨로 전환되면서 조금은 달라지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만의 계급을 획득하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계는 또 말할 것도 없으니.. 즉, 우리는 리더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왕조 시대의 왕이야 어쩔 수 없지만, 수많은 선거로 뽑히는 리더들의 수준이 이 모양인건, 다분히 그들을 꾸역꾸역 그 자리로 선출해 밀어 올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뭐 다른 방법이 있나 싶은데, 글쎄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우리를 이끄는 사람들, 우리의 여론을 주도하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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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南漢山城, The Fortress, 2017)" 은 2018년 올 한해 가장 기대를 모은 화제작으로 2007년 출간 이래 70만부 판매, 100쇄를 기록하며 스테디 셀러에 오른 거장 '김 훈'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특히,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의 왕과 그 앞에서 벌어지는 두 충신의 대립, 갈등 그리고 흔들리는 조선의 운명 앞에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통찰력 있게 담아낸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겨낸 웰 메이드 사극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배우 '이병헌 & 김윤석' 이 함께 출연해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여기에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 등 쟁쟁한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해 강렬한 존재감을 더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 "도가니" (2011)와 "수상한 그녀" (2014)로 장르를 넘나드는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연출력을 선보였던 '황동혁'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무엇보다 영화속 상황들이 지금의 현실과 매우 닮아 있다는 사실 또한 놀라움을 안겨주는데 당시 우리 선조들이 했던 고민과 결정을 다시 한번 되짚어 봄으로써 현대에 당면한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더군다나, 원작 소설의 힘이 커서 영화화에 어려움을 겪을 법한데 감독은 진중하고 묵직하며 힘 있는 사극 연출의 정공법을 선택해 작품을 만들었으며, 역사적 인물 '최명길' 과 '김상헌' 의 날 선 논쟁의 대사들을 배우 '이병헌' 과 '김윤석' 이 제대로 소화해내며 원작의 느낌을 잘 살려냈다고 본다.
영화를 Keyword로 요약하면 "황동혁" "이병헌 vs 김윤석" 그리고 "류이치 사카모토" 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먼저 "황동혁" 은 2007년 영화 "마이 파더" 로 연출에 입문한 이후 2011년 가슴 아픈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 2014년 따뜻하고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 "수상한 그녀" 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주목 받는 신예감독중 하나이다.
특히, 이번 영화는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청의 굴욕적인 제안에 "화친" 과 "척화" 로 나뉘어 첨예하게 맞서며 참담하게 생존을 모색했던 '김 훈' 작가의 원작소설을 토대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한층 드라마틱하게 완성시켰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이병헌' 과 '김윤석' 과의 함께해 날카로운 논쟁과 갈등 중 옳고 그름을 넘어서 무엇이 지금 백성을 위한 선택인가에 대한 고민과 화두를 던지며 380여 년이 흐른 현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깊은 울림과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했다.
이어서 "이병헌 vs 김윤석" 은 역사적 인물 '최명길' 과 '김상현' 역을 맡아 불꽃튀는 연기대결을 펼쳤는데 2012년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의 '이병헌' 그리고 매 작품마다 폭발력 있는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영화 "추격자, 도둑들, 검은 사제들" 의 '김윤석' 이 라이벌 구도로 만났다.
특히, '이병헌' 은 치욕을 견디고 청과의 화친을 도모하고자 하는 '최명길' 역을 맡아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신념을 전하며 상대를 설득하려는 캐릭터를 탄탄하고 흡인력 있는 연기로 소화해 내고 있다.
여기에 '김윤석' 은 청과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김상헌' 역을 맡아 특유의 묵직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데 첫 정통 사극 연기에 도전한 만큼 무엇이 백성을 위한 길인지를 깊게 고민하는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두 배우 모두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팽팽한 연기 시너지로 관객들의 몰입도를 최고조로 끌어 올렸는데 깊이있는 연기 내공에 걸맞는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아울러, "류이치 사카모토" 는 일본 출신의 아티스트이자 뮤지션으로 1987년 영화 "마지막 황제" 의 음악을 맡아 골든 글로브상과 아카데미상 작곡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영화음악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이후 영화 "마지막 사랑" (1990), "하이힐" (1991), "폭풍의 언덕" (1992),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2015) 등에서 영화음악을 맡아 왔는데 전자음악 뿐만 아니라 힙합,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소화해내며 폭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특히, 이번 영화의 음악에선 오케스트라 연주 위로 흐르는 대금, 피리, 아쟁, 사물놀이 등 한국의 전통악기 들이 포인트가 되어 반전을 더해주는데 마치 "안으로 밀어넣은 울림의 음악" 이라고 하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추천드리고 픈 트랙 "만고의 역적" 은 현대음악과 서양음악 그리고 자신의 음악과 한국의 전통음악을 결합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그의 인터뷰 내용처럼 영화의 주요테마 "자존심" (Pride)과 "구원" (Salvation) 사이의 분투를 담아내고 있다.
영화를 본 후 느낌을 담은 곡은 'Queen' 의 "Who Want to Live Forever" 를 추천한다.
영화속 "척화" 와 "화친" 간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고통을 받는 이들은 결국 힘 없는 민초들 일텐데 백성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왕의 존위을 위한 것이라 하겠다.
답답한 현실 만큼이나 과거 우리 선조들의 역사 또한 그리 다르지 않을텐데 지금도 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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