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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복지관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출간하게 된 중증 장애인 에세이 <행복추구권>의 서평을 특수학교 교사시던 저자께 무턱대고 부탁드렸다. 뜻밖에 흔쾌히 허락해주시고 아주 장문의 마음을 담은 서평을 해주셨다. 그렇게 뜻밖에 인연이 시작됐다. 그리고 선생님의 책 <잊었던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을 사들고 선생님을 찾아뵙고 서명을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서명 받을 요량으로 솔직히 내용이 뭔지도 모르고 구입한 터라 뒤늦게 책을 읽었다. 이제야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이라니 의미심장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추억을 비롯한 온 동네를 휘젓던 유년 시절의 '나'를 만나는 시간을 이야기한다.
난 아버지와의 추억이랄 것도, 기억도 그다지 없다. 있다 해도 별로 유쾌한 기억은 더더구나 없다. 아버지의 귀가 시간은 늘 12시 자정과 함께였고 등교 시간은 아버지의 취침시간이었다. 어쩌다 그 귀가 시간에 아버지의 손에 뭐라도 들려 있을라 치면 자고 있는 우리 삼 형제를 모두 깨워 기어코 자던 아이들에게 먹이며 생색을 내셨다. 자다 뭘 먹는다는 게 얼마나 힘겨운 일이었던지. 그게 빵이었다면 체하기 일쑤였다. 아버지의 낙이 우리에겐 고통이었다.
프롤로그를 보며 어떻게 과거의 추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상처로 기억되는 갖가지 추억이 다시 보니 행복하고 그리움"이라는 말은 저자의 유년이 내 유년만큼이나 아프지 않았다고 치부해버렸다. 난 내 유년의 기억이 당최 '객관적'이 되지 않아 더 아프다.
엄마와 우리 형제는 '술'이라면 치를 떤다. 지금도 그렇다. 동생들은 사회생활에 어쩔 수 없는 정도를 마시지만 난 아예 거절하는 편이다. 오죽하면 대학교 오티에서 선배들이 주는 술을 마다하다가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존경하는 사람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한 녀석이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발표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들은 다 똑같은 줄 알았다.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화내고 술에 취한 모습들. "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게 내 삶의 모토였다. 그래서 지금도 '술'은 입에도 대지 않으려 노력한다.
늘 적삼이 젖을 정도로 가족을 위해 일하셔야 했던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회상이 너무 따뜻하고, 잔치나 상갓집에 다녀오시면서 주머니에 주섬주섬 챙겨 오셨던 먹을거리 역시 그렇다. 저자의 아버지의 따뜻함과 늘 인자하시던 어머니의 기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지만 12살 너무 이른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는 상실감이 전해져 가슴 먹먹하기도 하다.
비료포대로 눈길을 만들며 눈썰매를 타던 것이나 논에 물을 채워 스케이트 날을 박은 썰매를 타던 일이나 물컹한 물엿이 들었던 쫀듸기, 교실 난로 위에서 뜨겁게 덥혀지던 양은 도시락, 공책이랑 연필을 받으려고 산등성이를 헤매고 다니며 삐라를 줏던 일, 무서워 덜덜 떨며 어깨를 내어주던 불주사, 온 가족 행사였던 운동회, 위문편지와 라면 봉지에 쌀을 담아내던 일, 폐품 수집, 마루 복도를 왁스로 닦으며 청소하던 일 등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나를 '다시' 만나고 있다.
특히나 저자는 운동회 날에 대미를 장식하던 차전놀이에서 말이어서 힘들었다고 하지만 난 차전에 올라탄 장수였는데 사실 장수는 더 힘들다. 5미터 정도의 높이에 올라타 한 손은 피가 통하지도 않을 정도로 꽉 움켜쥔 채로 한 손은 번쩍 들고 방향을 지시하며 승패를 책임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쨌거나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고 자식들을 부양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중년의 나에게 '다시' 유년을 선물 받은 느낌이 들었다. 감사한 책이다. 이제 팔순을 앞두고 있음에도 여전히 술 병을 놓지 못하시는 내 아버지를 보노라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만 선생님이 써 주신 말처럼 "이해할 순 없지만' 가끔 아버지의 쪼그라든 어깨를 보며 인생을 배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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