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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대출도서 리뷰 프로젝트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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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열’, ‘유리갈대’에 이어 세 번째 만난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입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빙평선’ 역시 훗카이도 동부 작은 항구도시 구시로가 주된 배경입니다. 전작들이 구시로 외곽의 습지가 주 무대였다면, ‘빙평선’은 구시로 곳곳의 사계절을 비롯 겨울이면 유빙으로 둘러싸이는 오호츠크해의 작은 포구마을에까지 무대를 확장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밝힌대로 사쿠라기 시노는 ‘인물’과 ‘풍경’을 무척 중요시 여기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만큼 ‘인물’과 ‘풍경’이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치면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경우는 무척 보기 드물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됩니다. “바다에서 살아있는 생물처럼 다가오는 해무 때문에 도시 전체가 갯내에 휘감겨 있었다.” “이 도시의 안개는 바닷물을 머금고 여름 거리를 바다 밑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야기의 무대이자 작가의 삶의 터전인 소도시 구시로의 ‘풍경’에 대한 묘사는 극적이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침잠하는 느낌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불온한 기운도 느껴지는가 하면, 어딘가 서정적이거나 애틋한 감상에 젖게 만들기도 하고, 또, 짙은 해무 속에 무엇이든 감출 수 있을 것 같은 관능적인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이런 ‘풍경’ 속에서 삶을 영위해야만 하는 구시로의 ‘인물’들은 평범한 듯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온갖 감정에 휩싸인 채 살아갑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그들의 삶은 마치 짙은 해무 속에 갇힌 것처럼 보입니다. 대도시로 도망쳤지만 결국 구시로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젊은 남자, 내일이 없는 구시로에서의 삶이 답답하지만 타협과 자기 위로로 삶의 균형을 맞추는 여자, ‘도쿄 며느리’라는 비아냥과 내리막길 뿐인 구시로에서 적극적으로 도망치려는 여자,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이발사가 되어 박제 같은 삶을 살다가 뜻밖의 구원을 만난 남자 등 마치 구시로에게 발목을 잡힌 채 허우적대는 인물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뒷표지의 한 줄 카피는 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얽매이고, 무언가에 짓눌린 채 살아간다.” “황량한 대지만큼이나 척박한 삶 속에서 저항과 순응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 그렇다고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불행하거나 피폐한 삶을 산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주연 또는 조연을 맡은 ‘여성’들은 ‘남성’이나 ‘풍경’에 비해 아주 단단하고 든든합니다. 여섯 편의 수록작 중 세 편은 남성이, 세 편은 여성이 화자를 맡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어느 쪽이든 작가의 메시지를 발산하는 것은 모두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여성 화자의 경우 대부분 부당하게 구속된 삶을 깨뜨리는 능동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고, 남성이 화자로 등장하더라도 독자의 시선은 어느 새 저절로 조연 여성을 향하게 됩니다. 대도시에서 실패하고 귀향한 뒤에도 그저 철없고 이기적일 뿐인 남자를 다독여 성장시키거나, 퇴폐적이고 관능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누구에게도 사육당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오랜 기다림 속에 작은 행복을 얻었지만 끝내 자기 손으로 그 파국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남성’들은 왜소해 보이고, 본능에만 충실하거나 아직 미숙한 캐릭터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소위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바다까지 얼려버리는 혹독한 겨울, 짙은 해무로 휩싸이는 축축한 여름, 그리고 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배지의 분위기를 내뿜는 몰락 직전의 소도시의 암울함속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든 파괴하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설계하는 평범한 여성들의,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가 은은하고 깊은 심도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사족 같지만, 때로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에 ‘관능’, ‘성적 욕망’이라는 포장을 씌우곤 하는데, 실제로 매 작품마다 그런 부분이 강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뭔가 야릇한 냄새를 풍길 거라고 기대(?)한다면 그건 큰 오산입니다. 오히려 이 작품 속의 ‘성적 욕망’은 서글프거나 애틋한 정서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빙평선’의 경우 전작들에 비해 그 정서가 좀더 진하고 깊게 배어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서글픈 욕망 때문에 ‘인물’과 ‘풍경’이 훨씬 마음 아프게 읽혔습니다. ‘빙평선’은 사쿠라기 시노의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완성도 면에서는 이후에 출간된 ‘호텔 로열’이나 ‘유리갈대’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사쿠라기 시노의 일관성 있고 힘 있는 필력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밝고 빛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감히 권하기 어렵지만, 이 투박한 서평의 분위기에 호기심이 이는 독자라면, 해무와 유빙으로 포위된 채 침잠한 듯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라면,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들을 찬찬히 음미해볼 것을 조심스레 권하고 싶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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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나오키상 수상 작가인 사쿠라기 시노의 첫 소실집인 <빙평선>에는 그녀의 초기 단편소설 6편이 실려 있었다. 일본에서도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유명한 홋카이도에서 나고 자란 사쿠라기 시노는 이 책에 소개된 첫 작품 ‘설충’으로 2002년 등단 이후 꾸준히 고향을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시골이 싫어 젊은 날 도시로 떠났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귀향 후 단조로우면서도 위태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남녀를 그린 ‘설충’을 시작으로 불임으로 이혼 후 귀향하여 기모노 침선장이 된 여인의 이야기가 담긴 ‘안개 고치’, 남편과의 사랑은 식어버리고 원치 않는 임신을 강요하는 시모와의 불편한 관계로 결혼에서 탈출하고 싶은 아내의 심정을 그린 ‘여름의 능선’, 스승의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젊은 이발사 앞에 나타난 유혹적인 여인과의 관계를 담은 ‘바다로 돌아가다’, 연인과의 지지부진한 관계를 정리할 겸 떠났다가 결국 그의 곁으로 돌아오고만 여자의 ‘물의 관’, 끝으로 책의 표제작인 ‘빙평선’에선 폭압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나름 성공해 돌아온 남자가 과거 여자와의 재회 후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각각의 이야기를 요약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분명히 다른 인물과 다른 상황인데도 <빙평선>에 실린 여섯 가지의 이야기는 어쩐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지극히 가부장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그려지는 여성들의 모습이 일단 그렇다. ‘설충’에서 양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하고 그녀 자신은 과거 연인과 불륜 관계에 빠진 시키코나 멀리 필리핀에서 돈에 팔려 시집온 마리, 그리고 남편의 결정에 반기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는 다쓰로의 어머니까지 말이다. ‘안개 고치’와 ‘여름 능선’에서 여성은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는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내쳐지거나 눈칫밥을 먹어야 한다. ‘바다로 돌아가다’, ‘빙평선’에서 여성은 남자들의 쾌락의 상대이고, ‘물의 관’에서 전문직 여성인 료코 역시 주도적인 관계 정립을 하려 했지만 떠난 연인이 아프다는 소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만다.
이 같은 일련의 서사는 겨울이면 폭설이 일상인 척박한 홋카이도의 지역 색이 아마도 작품 전반에 녹아든 결과일 것이다. 특히나 이 폐쇄적인 곳에서 젊은이들은 탈출을 갈망하고, 그렇게 떠났다가도 돌아오게 되는 ‘고향’이란 곳을 저자는 바탕에 깔아 놓았다. 이 책을 통해 사쿠라기 시노라는 작가도, 또 그의 소설도 처음 접해 보았다. 알고 보니 이 작가는 관능적인 표현에 능한 대표적 작가라고 한다. 몇몇 작품에서는 농도 짙은 남녀 관계의 묘사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 표현이 매우 세련되고 감각적이었다. 끝으로 사쿠라기 시노의 문학적 표현들을 우리말로 재해석 한 양윤옥의 번역도 훌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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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전에 읽은 작가의 소설은 <유리 갈대>가 전부다. 검색하니 익숙한 표지가 몇 권 더 보인다. 아직 이 작가는 나에게 낯설다. 이번 단편집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읽으면서 낯익은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비슷한 환경과 문화에서 비롯한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고부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은 거의 보지 못했다. 농촌이란 지역 특색이 나올 때 한국의 농촌과 이미지가 겹쳐지고, 몇 장면은 앞으로 한국에서 일어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
여섯 편의 단편들은 모두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다. 그렇다고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다. 홋카이도 하면 가장 먼저 삿포로를 떠올리는데 홋카이도는 생각보다 넓다. 한반도의 삼분의 일 크기다. 왜 홋카이도의 크기를 말하느냐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사는 공간이 일반적인 우리의 인식보다 먼 곳이기 때문이다. 첫 작품 <설충>의 다쓰로가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간 곳이 삿포로다. 최근에 한국은 거의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있지만 불과 수십 년 전에는 각 지역의 대도시로 인구가 몰렸다. 이 기억을 공유한다면 작품 속의 몇 가지 상황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또 다쓰로의 아버지가 필리핀 여자를 며느리로 데리고 온 것도 우리에겐 낯익다. 농촌 총각이 동남아 등지에서 여자를 사오는 것이 요즘은 흔하니까.
관능소설가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에로틱한 장면이 가득하지는 않다. 몸과 섹스에 대한 묘사가 있지만 그것은 관계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의도가 전혀 없지는 않다. <설충>에서 다쓰로와 시키코의 섹스는 익숙한 행위의 연속으로 다가온다. 감정의 밀도는 없고 행위만 있다. 하지만 이 행위의 이면에는 감정이 숨겨져 있다. 일상에 변화가 생길 때 이것이 드러난다. 그것은 돈을 주고 산 아내 마리의 존재다. <안개 고치>는 기모노 침선장 이야기다. 결혼 2년 만에 이혼한 마키와 그녀 밑에서 수련하는 야요이의 과거를 작가는 담담하고 건조하게 보여준다. 상황은 분명히 분노를 자아내는데 설명은 감정이 많이 배제되어 있다.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재밌다.
<여름의 능선>은 결혼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착한 할머니는 시어머니가 되고, 온후한 남편은 착한 아들로 변해버렸다.” 이 문장은 결혼이란 제도가 만들어낸 현실이다. 아들 손자를 원하는 시어머니와 삶에 지친 아내, 시골에 온 젊은 선생, 작은 마을에서 도는 소문 등은 개인의 삶이 사라진 공간이 얼마나 힘겨운지 보여준다. <바다로 들어가다>는 유일하게 1974년 과거의 시점을 다룬다. 젊은 이발사와 그를 찾아온 술집 여자의 관계는 서서히 진행되면서도 은밀하다. 감정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 조용히 소용돌이 친다. 이 이발사의 이후 삶은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의 관>은 정체된 관계와 그 밑에 가려진 감정과 사실들이 치과 치료 등의 문제와 연결되면서 펼쳐진다. 작은 지방 마을의 의료기관이 부족해 의사를 공고해서 찾아야 하는 현실과 지금의 정체된 관계를 벗어나려는 충동이 엮이면 상황은 급진전된다. 소소하지만 재밌는 장면이 많다. 료코가 연상의 세이치로를 맡는 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연민이나 집착일까? 표제작 <빙평선>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관능적이다. 성공이 보장된 도쿄대 출신 재무성 관료가 과거의 여자이자 몸 파는 여자에게 매몰되는 모습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직 젊기 때문일까? 아니면 과거의 집착일까?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에 놓인 그에게 가장 큰 걸림돌은 아버지다. 그런데 이 부모가 죽는다. 가장 먼저 의심하는 인물이 있는데 이 또한 반전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장면은 그 상황보다 그 다음에 벌어질 상황에 더 눈길이 간다. 장편과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소설은 어떤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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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도시인 삿포로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라벤더가 만개한 6월의 삿포로는 꽃으로 가득 찬 도시였다. 공항에서 내려 삿포로까지 이동하면서 눈에 비친 풍경을 보면서 참 일본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의 모양새도 그렇고, 드덮게 펼쳐진 평원들을 보면서 여기가 일본인가? 너무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듯 홋카이도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꽃이 피는 계절에 그곳을 방문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홋카이도를 혹한과 폭설의 땅으로 알고 있다. 마치 일년 내내 겨울만 이어질 것 같은 땅,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떨까. 소설 「빙평선」은 그 혹한의 땅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모습을 담아낸다. 책에 수록된 단편은 모두 여섯 편,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성별도 살아온 환경도 다 다르지만 이들 모두 꿈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가 낙향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꿈을 좇아 대도시로 갔다가 빈속으로 낙향한 뒤 불륜으로 공허감을 달래는 연인. 아들의 나이가 먹어가자 돈을 주고 필리핀 며느리를 들이는 부모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대를 이을 아들이다.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와 전통 기모노 침선장이 된 여인, 도쿄에서 시집와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시댁의 부당한 취급과 남편의 외도를 견디는 아내, 자신의 가게를 찾은 유흥업소 종사자와 사랑에 빠진 이발사. 애인과의 무의미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시골 치과의사를 자처한 의사,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도쿄대학에 입학한 후, 세무서장으로 금의환영해 첫 관계를 맺었던 여인과 10년만에 재회한 남자. 사람 사는 모습이야 다 제각각이지만, 참 다르면서도 비슷한 이들의 일상이다. 그들은 모두 마을공동체라는 족쇄와 옛 풍습에 묶인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기도, 자유로운 삶을 살기도 어렵다. 여자는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주어진 삶의 무게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 속 인물들이 무조건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그저 세월이 흘러가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 각자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그것이 주변의 지지나 공감을 받지 못한 선택이라 해도 게이치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 한편이 답답해오면서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는데.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삶의 깊이가 있음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열정으로 가득찬 삶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체념이라고는 볼 수 없는 삶. 그래. 설령 비애로 가득찬 삶이라고 포기하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척박한 환경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볼 수 있는 짧지만 묵직한 이야기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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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기 시노의 <빙평선>은 여섯 편의 단편을 모은 책입니다. 일본의 정서가 우리와 이토록 비슷했구나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작품들입니다. 때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한다느니, 여자는 그저 아들을 낳아야 한다느니, 동네 사람들한테 말 나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느니 등등... 문득 근래 봤던 영화 <버닝>이 떠올랐습니다. 그만큼 짧은 단편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 분명 서로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는 여섯 편의 소설인데도 그 흐름이 전혀 끊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설충>의 주인공 다쓰로와 시키코의 아슬아슬한 관계, <안개 고치>의 주인공 마키와 야마모토의 애매한 관계, <여름의 능선>의 주인공 교코와 남편 다키의 냉랭해진 관계, <바다로 돌아가다>의 주인공 게이스케와 기네코의 가깝고도 먼 관계, <물의 관>의 주인공 료코와 니시데의 끈질긴 관계, <빙평선>의 주인공 세이치로와 도모에의 안타까운 관계. 저마다 사연은 다르지만 여자와 남자라는 관계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들의 일상은 단조롭고 특별한 사건은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이웃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만약 소설이 아니었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서 주인공의 속내를 들여다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의 소용돌이, 눈보라 치는 길을 홀로 헤쳐가는 듯한 느낌. 온전히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서 주인공의 일상에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답답했습니다. 현실에 붙잡혀서 옴짝달싹 못하는 주인공의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가슴 한켠이 무겁게 짓눌리는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산다는 건 뭘까, 그냥 살아가는 대로 순응하는 것이 맞는 걸까. 한 번쯤은 마음이 원하는대로 살 수는 없는 걸까. 마지막 <빙평선>은 사쿠라기 시노의 데뷔작이라는데, 왜 이 작품이 그녀의 소설 세계의 원점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숨을 쉬면 가슴이 얼어붙을 것 같은 찬바람, 발밑에는 얼어버린 바다 그리고 달빛은 저 멀리 바다 끝 빙평선을 비추는 그 곳에서 도모에는 세이치로에게 말합니다. "여기서 떠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297p) 열여덟 살의 세이치로처럼 우리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도모에의 이야기가 어쩐지 거짓말처럼 들렸던 것이 실은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 소설도 소설이 아닌 실화 같아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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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평선" 제목에서부터 머리 속에 이미지가 그려진다.이 소설집은 표제작 <빙평선>을 포함한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것으로, 작가의 고향인 홋카이도 특히 겨울이면 유빙으로 뒤덮이는 오호츠크해 연안 마을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6편의 작품에는 젊은 시절 대도시로 나갔다가 결국 실패한 채 빈손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어릴적 연인을 다시 만나 불륜의 관계를 가지는 연인의 이야기, 아이를 갖지 못한 탓에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돌아가신 어머니의 뜻에 따라 전통 기모노 침선장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 여인의 이야기, 힘든 시집살이와 시어머니의 집요한 손자타령, 남편의 무심함과 외도를 견디며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해온 아내가 페리여행 팜플렛 접하면서 집을 나서게 되는 이야기, 자신의 가게를 찾은 창녀와 사랑에 빠진 젊은 이발사 이야기, 자기보다 15살 연상의 치과크리닉 원장과 5년간의 지루한 애인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시골 치과진료소 부임을 자처한 치과 여의사 이야기, 폭압적인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 밑에서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내다 도피하듯 열심히 공부해 일류대학에 합격해 떠났다가 세무서장이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과거 관계를 맺었던 몸파는 여자와 10여 년 만에 재회한 남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표지의 이미지, 소설들의 배경인 춥고 차갑고 우울하게 느껴지는 풍경 속 색채의 분위기처럼 소설 속 주인공들의 처한 상황이나 그 배경은 침울하기도 또 답답하기도 하다. 그들의 삶이, 생활이 답답하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작품의 배경인 자연의 척박함이 주인공들의 불행과 맞닿은 듯 했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이 불행을 벗어나려고 한다. 자신의 굴레, 속박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탈출하는 인물도 있고 그 반대로 주어진 현실을 순응하되 조금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인물도 있다. 주로 여성을 통해 그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그 강인함이 인상적이기도 하다. 이 소설집의 특색이라면 훗카이도라는 지역적 특색을 담은 묘사와 그럼에도 화려한 수식이나 기교가 없이 단순한듯 쉽게 느껴지는 문장과 그를 통한 등장인물의 내면을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편들을 모아 두었음에도 각 단편들이 그 짧은 내용 속에서도 완성도를 갖춘 느낌이라 꽤 만족스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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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작품을 읽고자 할 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빙평선』은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고 하는데 「설충」을 포함해 표제작인 「빙평선」에 이르기까지 총 6편의 담편이 실려 있다.
「설충(雪蟲)」은 홋카이도 지방에서 보이는 하얀 솜털 같은 날벌레로서 마치 눈이 오는것 같아 보인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야기 속 주인공은 고등학교때부터 연인이였다고 볼 수 있는 두 남녀 다쓰로와 시키코가 고향을 떠났다가 각자의 삶을 사는 동안 인연을 계속 이어오다 다시 고향에 돌아 온 뒤에도 남녀의 관계를 맺고 있는 이야기로 여자에게는 갑작스레 죽은 남동생을 대신해 집안의 일을 이어야 할 데릴사위로 들어 온 남편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육체적 관계를 계속 이어가던 두 사람은 역시나 집안 살림을 일굴손자가 필요했던 다쓰로의 아버지가 필리핀 처자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둘의 관계는 달라지는데...
「안개 고치」는 유명한 침선장인 지요노의 입주 제자가 되어 오랜 시간을 노력한 끝에 실력을 인정받아 자신의 기모노 연구소를 차린 마키와 그 지역의 포목점의 사장으로 상권에 어느 정도 힘을 가진 히나코, 그녀의 가게에서 일하는 야마모토, 그리고 지요노가 마키 이후 들인 유일한 입주 제자인 야요이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심리를 그려내고 있으면서 동시에 마키가 점차 침선장으로 성장해가는, 이제는 자신이 야요이를 입주 제자로 들여 교육을 시키면서 자신도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름의 능선」은 작은 낙농마을로 실습을 왔다가 가즈야라는 남자와 결혼한 교코라는 여성의 이야기로 교코는 첫 딸을 낳고 확 자신의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아들을 낳지 못했기에) 시어머니 다키, 그리고 우유부단한 남편 가즈야 사이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남편이 다른 여성과 부정한 관계를 맺고 어느덧 둘째(아들)을 원하는 시어머니가 은근히 그 관계를 부추기는 듯하자 결국 딸을 데리고 페리를 타기 위해 새벽에 집을 떠나는 이야기다.
「바다로 돌아가다」는 스승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은 이(미)용사 게이스케 앞에 어느 날 목에 오리온 자리의 점이 있는 여성이 불현듯 나타나 그의 마음을 흔드는 이야기로 그녀는 처음 그에게 왔던 날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물의 관」은 치과 의사인 료코와 그녀가 일하는 치과의 원장인 니시데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자신과 만나면서도 다른 여성과 염문을 뿌렸던 니시데가 갑작스레 쓰러지면서 둘의 관계는 확연히 달라지는데...
마지막 표제작인「빙평선」은 미래가 뻔한 어촌 마을, 가정폭력과 술주정,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기를 치는 것이 일상인 아버지와 그 속에 무방비로 노출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세이치로가 아버지 몰래 공부까지 해가며 결국 도쿄의 대학으로 떠났다가 세무서장이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을 떠나기 전 인연을 맺었던 도모에라는 연상의 여성과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인생의 전환점에 놓여 있다. 그리고 모두 불안하나 현재에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으로 마무리된다. 이런 분위기는 홋카이도의 해무(海霧)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그 분위기와 어울진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인생의 허무가 느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겠지 싶고 또 누군가는 스스로가 지금과는 달리 살겠다는 마음가짐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어서 마냥 우울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던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