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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뭉클 ]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시력이 점점 흐려지는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희로애락 가슴을 버린 지 오래인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사랑이 폭우에 젖어 불어터지게 살아온 네가 나에게 오기까지 힘들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눈물이 가슴보다 먼저 북받친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네 뒷모습을 보면서 왜 뭉클은 아니다 아니다 하여도 끝내 가슴속이어야 하나
[ 뭉텅 ]
살다보면 뭉텅 내려앉는 순간이 있다
나는 없어지고 내 그림자가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불투명한 심연으로 무너진 나를 다스리는 시간들이 긴장을 한다
계절도 흘러가면서 배경도 흔들고 녹음 지면서 나무들 뭉텅 내려앉고
짙은 햇살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동안
그림자 속 진심이 불투명한데
뭉텅 가슴 아픈
[ 그리운 세상 ]
햇볕 따스한 오후 세시의 벽에 매달려 있는 그림자들 그들 무게에 늘어지는 시간들
문들 담쟁이들 사람들 공기들 작은 벌레들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느슨해진 벽을 뚫고 나와 서로를 쓰다듬으며 털어내는 살아 있는 것들의 먼지들
세상의 작은 것들에게 위로가 되는 따스한 먼지가 내 손등에 한 줌 햇볕으로 다시 내려앉고
그래서 다시 한번 살아갈 눈 코 입 얼굴 이마 눈썹 속눈썹 목덜미 들이 웅웅거리며
한참을 헤매지 않고서도 그리운 세상 속으로 모여든다
[ 홍조(紅潮)한 세상 ]
한 잔의 둥근 달이 뜬다
부끄럽게 조심스럽게 떠올라 다정하게 한밤을 감싸안는다
두 눈빛 사이에 뜨는 붉게 물든 한 잔
두 가슴 사이에 뜨는 충만한 한 잔
연민 사이에서 멈추는 한 잔의 눈물이 뜬다
우리 사이에서 무르익는 공간이 누룩이든 첫 만남이든
노을빛처럼 푹 익을 때까지 끓고 또 끓어오르는 홍조 한 세상을
출렁 한 잔으로 지나간다
[ 한숨 자는 사이 ]
분노가 일 때는 한숨 자고 생각하라는 그대여 그대로 인해 오늘 하루도 난 잠만 잤다
잠 속에서도 잠만 잤다
잠깐 깨어났어도 눈은 떠지지 않았고 분노는 눈꺼플 위를 현란하게 날아다녔다
밖은 출렁이고 안은 침몰중이고 비바람은 불고 바람끼리도 못 믿겠다고 운다
우는 바람들이 우는 일 말고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대신 생각해주어야지 마음먹다가도 나도 따라 울고 싶어지는데
한잠 자는 사이에 한숨은 너무 깊게 흐른다
... 소/라/향/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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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한참 생각했다. 내게 저녁은 쉽게 오는가. 요즘은 정말 그렇다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별 일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저녁이라는 생각에 허무할 때가 많다. 해는 짧은데 일에 진전이 보이지 않을 때는 급한 마음에 해를 붙들어 두고 싶어진다. 이렇게 마음이 바빠진 것도 이유가 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다보니 정작 해야할 일은 늘 그대로다. 그러니 내게 저녁은 너무 쉽게 와서 내 게으름과 산만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제목만 보고 내가 생각한 것이고 정작 시는'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는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는 물기 촉촉한 내용이었다. 한 권의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한 시인을 읽는 것이라고 하면 될까. 짧은 시들을 모아 얇은 시집 한 권을 펴내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원체 시라는 것의 재료가 가슴 속에 담긴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시집 한 권을 앉아서 다 읽기는 미안한 일이 되어버린다.
문학동네 시인선 105번으로 출간 된 이사라 시인의 시집을 여러 날동안 조금씩 읽었다. 이 시집은 내게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 궁금했는데 오늘 문득 길을 걷다가 그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을 얘기해야겠다. 이 시집을 어디에 비유하면 좋을까 생각해보다가 딱 떠오른 것은 '시골밥상'이다. 동네마다 하나쯤 있을 것 같은 식당 이름이지만 그 이름만 듣고도 기대하게 되는 특성이 있다. 우선 자극적이지 않은 것이 시골밥상이다. 늘 먹던 쌀밥에 된장찌개나 된장국, 혹은 이름만 다를 뿐인 나물국이 나온다. 김치와 무침 같은 것은 주인의 재량에 따라 매일 달라지고, 거기에 바쁘지 않는 날이면 작은 부침개 정도도 상에 올라와있다. 빠지지 않는 것은 생선 한 토막. 쌈이 곁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찬도 처음 보거나 특별한 것은 없다. 시골밥상을 차리는 주인은 소박한 재료를 사용하는데 푸성귀 정도는 곁에서 직접 키우는 경우가 많다. 먹는 사람의 건강을 생각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먹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밥상을 차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주인은 손님이 보지 못하는 세심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 시집도 그렇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언어를 재료로 자극적이지 않은 시를 서둘지 않고 찬찬히 빚어낸 것 같다. 조금씩 다가가면 있는 속을 다 내보여주는 시들이 편안해서 좋다. 내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시인이 갖은 수고로 말을 다듬은 뒤 그것을 내색하지 않은 거라 생각하고 '시골밥상' 같은 시를 곱씹어 읽는다. 시 읽기 좋은 날이다.
지붕은 이렇게 빛난다
마음이 그렇게 흔들렸어도
천막만 있으며 모이는 마음들 때문에
지붕은 이렇게 빛난다
무너진 흙바닥 믿을 땅이 없어도 지진 이후 사람이 모이고 마음이 뭉치고
저녁이 깊을수록 없는 가족도 자리잡고 앉는 밤
사진 속 너는 떠나고 없는데 있는 것들끼리 지붕을 지킨다
낡은 천막 지붕에서는 어느덧 나무가 자라고 나비가 찾아들고
그렇게 빛날 것도 없는 것들이 빛이 난다 지붕아래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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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떠난 것이 매번 과녁을 벗어난다. 잠실역 옆 송파동을 떠난 것이 녹번역 옆 응암동에 꽂혔는데 이곳이 과녁인가,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꽂혔는데 이곳이 과녁인가, 나를 떠나 너에게 꽂히거나 우리를 떠나 나에게 꽂히거나 여기를 떠나 저기에 꽂히거나 저기를 떠나 거기에 꽂히는데 그곳은 과녁인가 싶다. 매번 떠난 것들은 거슬러 다시 오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은 없고, 시위는 이미 팽팽함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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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괄호 속의 생 끝자락 이 좋았다
* 쉽고 편안하고 차분하다 아아 하고 탄식이 나올만큼 아름다운 문장들도 있었다 끝까지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 사랑하는 사람들 떠난 가슴에 사람은 어떻게 어렵사리 새길을 내나
어떻게 안 오던 비가 오고 또다시 새 꽃이 피나
*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느슨해진 벽을 뚫고 나와 서로를 쓰다듬으며 털어내는 살아 있는 것들의 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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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둘이 될 수 있고 둘은 혼자가 될 수 있고 누군가의 뒷모습을 볼 수도 있고 서로를 등질 수도 있다. 너와 나라는 말이 하나와 둘의 존재의 말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라는 마음이 든다. 지워버린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그 사람과 나의 사이를 생각하게 하고 우리 사이에서 떠나간 사람을 떠올리며 사랑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낸다. 사랑도 따뜻함도 위로가 될 수 없던 내게 낯선 시집이었지만 낯설었기 때문에 만나게 된 문장들이 더 따듯했다. 모르는 사람이 나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고 들어주는 기분. 난 한 말이 없는데 이사라의 문장들은 내 말을 알고 있었다. 억지스러운 감이 있을 수 있는데 내가 느낀 마음에는 이견이 없다. 그의 다른 시집을 궁금하게 만든 이사라의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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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이 좋아서 읽기 시작했는데 시들이 참 마음에 남고 좋았다 여러 번 읽을 때마다 다른 감상이 떠올라서 조금씩 아껴 읽고 있다 이사라 작가님의 다른 시집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사랑에 대한 따뜻한 감상이 느껴졌다. 뭔가 어떤 문장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지? 싶어서 같은 페이지도 여러 번 읽어보게 된다. |
| 저녁이 쉽게 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제목에 이끌려 구입하게 된 시집이다. 내용은 많이 난해하지 않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사랑과 이별을 잘 담아낸 공감되는 이야기에 담백하고 화려하지 않은 문체가 마음에 드는 시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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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이사라 #시인의말 늘 해질 무렵이었다. 새살이 돋아야 했던 기억들 항상 그때였다. 상처가 있는데 안 아프다고 상처가 없는데 아프다고 생각이 물들 때까지 참 오래 걸렸다. 이제 가볍게 집으로 간다. 2018년 5월 이사라 이사라 시인의 시는 편안하다. 읽다가 응? 이게 소리야? 싶은 시가 없어서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가볍게 읽히면서 가볍지 않고 마음을 울리는 시들이 있다. 사람에 대해, 슬픔에 대해, 가족에 대해, 죽음에 대해. 어머니의 죽음 이후의 일들을 시가 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은 상실감과 슬픔, 죄책감, 슬픔과도 같은 감정들의 소용돌이 휘말리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떠난 가슴에 사람은 어떻게 새길을 내는지(p.20) 알 수 없고, 너와 내가 지나온 세상이 부서지고나서야 웃게(p.40) 된다는 사실, 아무리 못났어도 인연이기에 이제 우리가 헤어질 것(p.91)이라는 사실. 잃어버리고나서야 그리워(p.110)하겠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뒤엉켜 켜켜이 함께 살아가고 있을 그 세상에서 네가 찾은 황무지가 나이기를 #황무지 사람이라서 더 크게 울 수 있는 사람이라서 여기까지 빗방울을 뭉쳐왔을가 사랑하는 사람들 떠난 가슴에 사람은 어떻게 어렵사리 새길을 내나 #사람은어떻게 내 눈 속에서 너와 내가 지나온 세상이 부서지며 웃는다 #웃는다 내 몸에서 네 마음이 쏙 빠져나갔다 너를 보내고도 내가 남아서 웃는다 #이제는웃는다 어떤 위로로도 멈추는 법을 모르는 너는 몰라 이렇게 부서지며 오는 너를 나는 왜 짧은 저항으로 끝내지 못했을까 나의 얼굴을 계속 지워버리는 너를 나 대신 누가 더 사랑할까 파도 같은 마음들 사이에 내 마음도 있네 #파도같은 귓속 멍멍한 채로 나는 시간을 다 쓴 사람처럼 들을 수 없는 사람으로 그냥 산다 한세상 보내도록 그래도 내가 사라지지 않으니 내 귀에서는 드디어 물에 젖은 귓속말이 풍성하다 슬플 일이 없을 것 같다 #이명(耳鳴) 마음이 한 장 한 장 유리창처럼 부서져 너의 사방을 위험하게 할 뿐 곁에서 어쩔 줄 모를 뿐 마지막 사랑 가지고도 닿을 수 없는 네 곁에서 내가 살아간다 #곁에서 우리가 아무리 못났어도 인연이기에 이제 우리는 헤어질 것이다 지금 여기 꽃이 피고 지고 바람이 불고 사그라지고 마음이 몇 번씩 닿았다가 무너진 인연이기에 이승 아닌 곳에서 다시 봉인될 것이다 #이승에서의날들 두서없는 시간들 사이로 황망한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어디선가 내 가방 젖어가고 내 사사로운 것들 흠뻑 젖어갈 것이고 나는 잃어버리고서야 그리워한다 손때 묻은 관계처럼 #잃어버린가방의존재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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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몇 장 넘기지 않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을 발견했습니다. 외롭고 슬픈 밤에 느끼기 쉬운 감정들을 이해하기 쉬우면서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로 잘 표현한 것 같아요. "네가 찾은 황무지가 나이기를" 연인 사이에 할 수 있는 로맨틱한 말들을, 그립고 절절한 문장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사람과 사랑에 대한 좋은 시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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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지닌 시집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좋아했던 마음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그래서 이 시집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래에 읽었던 시집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집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시의 내용은 무겁지 않더라도 시인의 언어는 묵직해서, 읽다 보면 마음에 오래 남는 문장들을 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