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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시대를 살면서 민주주의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 하고 듣고 사는것 같다. 이 책 "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는 그간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민주주의의 민주주의는 정치, 통치형태, 권력구조를 뜻하는 제도로의 측면이 있는가 하면 사상, 시민이 권력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정의를 통해 민주주의의 다양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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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 민주주의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상태라서 『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를 받아들고 민주주의에 대해 좀 더 다가가보고자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국민들은 민주주의 국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모두들 자유와 평등, 행복할 수 있는 기회 보장, 생명에 대한 안전보장을 누리고 있을까? 얼마 전 강원랜드 입사 비리로 권성동 국회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다. 이는 정정당당하게 입사채용 시험을 보는 청년들의 앞길을 막고, 입사채용 압력을 넣어 권성동 자신의 사람을 강원랜드에 채용하도록 강요했다는 사실, 정말 천인공로할 일이었다. 강원랜드 입사시험에 지원한 모든 사람들이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분배와 평등, 자유, 기회균등, ...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행태였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잘못 작동되어 정치나 권력에 종종 이용된다. 우리들은 민주주의를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할까 “1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2부 민주주의는 안녕인가?, 3부 민주주의가 갈 길은?” 총 3부로 목차가 나뉘어져 있다. “마우스랜드라는 나라가 있었다. 생쥐들의 나라인데 이 나라에선 대통령을 몇 년에 한 번씩 뽑았는데, 그들이 뽑은 대통령은 생쥐가 아니라 고양이었다.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어 삶이 매번 고달파져도 여전히 생쥐들은 고양이만 뽑았다. 달라진 것은 고양이털 색깔뿐이었다. 색깔이 바뀌면 법도 바뀌었는데, 검은 고양이 정부는 쥐구멍을 고양이 발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게 커야한다는 법을 만들었다. 생쥐들은 고통에 시달리다가 흰 고양이를 새 통치자로 뽑았더니 흰 고양이는 쥐구멍을 네모지게 만드는 법을 만들었다. 네모진 쥐구멍은 둥근 쥐구멍보다 두 배 더 크게 뚫어졌다. 생쥐들은 삶이 더 위험해지고 더 고달파졌다. 그때 한 쥐가 홀연히 깨달았다. 고양이 대통령은 고양이만 돌볼 분 생쥐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생쥐가 통치하는 나라를 만들자”고 외쳤다. 그러나 환영할 줄 알았던 다른 생쥐는 그 생쥐를 빨갱이라고 모라 감옥에 처넣었다 ” 캐나다 의원 토미 더글러스가 1962년 캐나다 의회에서 연설하면서 소개한 우화란다. 이 우화를 대하는 순간, 대한민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재벌 1%만을 위한 정치를 하던 MB와 박근해 정부를 생각하면서, 눈물 한 방울 뚝 떨어뜨렸다. IMF에 대해 모두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감당하려할 때,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 사회적으로 생겼다. 비정규직들은 월급이 반으로 깎이면서까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데, 그들의 월급 반을 챙긴 기업들은 그 돈을 노동자들을 위해 재투자하거나 분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사로운 주머니를 불려주는 현상으로 근 20여년을 비정규직들은 서러움 속에 살게 되었다. MB는 경제실리주의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고, 1% 재벌만을 위한 세금 감면법을 만들어 재벌기업들 세금을 감면해주었으나, 결코 서민들을 위한 세금 감면이나 비정규직을 정규화 하는 정책은 일체 하지 않았고, 오히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안 사사로운 주머니를 채우며 국민들은 탄압하고 억압했다. 생쥐와 고양이 이야기는 이명박 정부, 이명박 고양이를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 과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1. 민주주의는 제도를 뜻한다. 좁게는 정치체제나 통치 형태, 권력 구조 등을 가리키지요. 좀 더 넓게는 경제나 사회 시스템 같은 것들 또한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개념에 포함됩니다. 2. 민주주의는 사상, 철학, 정치 원리, 사회 운영 규범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3. 민주주의는 생활양식과 문화까지도 포괄합니다. 한 사회의 집단의식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이와 관련된 삶의 윤리와 논리 같은 것들도 민주주의 개념에 포함된다는 얘기다. 제도와 시스템으로서 민주주의, 사상과 정치 원리로서 민주주의, 삶과 문화로서 민주주의 ... . 민주주의는 이 모든 차원을 두루 아우른다. 16대 미국 대통령 링컨은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에 의한 통치를 말했다. 즉 민주주의란 인민, 곧 시민이 자신을 위해 정부(통치권력)를 세워 스스로 다스린다는 말이다. 민주주의는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꿈과 지혜와 의지가 아로새겨진 정치적 이상이자 공동체적 규범이며 삶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특정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과 절차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생겨날까? 문제를 해결하고 목적을 이루는 데 더 효율적이고 간편한 방법이 있다면 민주주의는 쓸모없는 것을 여겨지지 않을까? 이것은 괜한 우려도 아니고 근거 없는 추측도 아니다. 수많은 독재자가 민주주의를 억압하면서 가장 즐겨 내세우는 구실이 경제성장과 안보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을 추진하는데 거추장스럽고 비효율적이다. 경제성장을 이룰 때까지는 잠시 민주주의는 미뤄도 된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사회 안정과 질서가 필수적이다.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 안 된다. 민주주의는 좀 제약해도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독재를 합리화한다. 민주주의를 이런 식으로 취급한다면 그 순간부터 민주주이라고 할 수 없다. 국민을 억압하고 탄압하면서 사당화 하여 권력을 차지하고, 사사로이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급급했던 MB와 박근해, 그들은 사사로운 탐욕을 채우기 위해 민주주의를 저버리고 국민들을 경제성장과 안보라는 이름으로 억압과 탄압의 족쇄를 채웠다. 댓글알바를 대거 동원하고, 매크로를 돌려서 정부와 각 부처가 직접 나서서 댓글조작과 여론조작에 앞장섰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억압한 행위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첫 번째 대통령 이승만은 독재와 부패를 일삼고 장기 집권을 위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1960년에 분노한 시민이 들고 일어난 것이 4.19혁명이다. 이승만은 망명을 외국으로 떠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혼란스러웠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후 박정희는 18년 동안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1972년 유신헙법을 선포한 것은 특히 악명 높은 악행이었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를 없애는 것을 비롯해 민주주의를 무덤으로 몰아넣는 악법 중 악법이었다. 이에 시민 저항과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불타올랐고, 그러던 와중이던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부하의 총에 맞아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살아났을까? 아니다. 1980년 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광주항쟁이 이를 상징한다. 무차별 양민 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권력을 움켜쥔 전두환 군사독재 세력은 또다시 이 나라를 캄캄한 압제의 밤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시민 저항의 불길은 또 다시 타올랐다. 그 결정이 1987년 6월 항쟁이다. 결국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이때부터 대통령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았다. 6월 항쟁의 결과로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노태우가 당선되고 말았다. 이때 민주화운동을 벌이던 김대중과 김영삼이 동시에 노태우와 함께 출마하는 바람에 두 사람을 따르던 정치세력들이 분열되면서, 시민의 표가 갈라졌다. 이에 어부지리로 노태우가 당선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그 바람에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또 다시 비틀거렸다. 1998년~2008년까지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 정부 시절을 겪었다. 그 뒤 503과 716의 보수정부가 들어섰다. 그런 다음 촛불 시민혁명으로 문재인 새 정부가 들어섰다. 권력자들과 재벌기업이 결탁해서 사익을 추구에 몰두했던 716과 503 두 정부로 사회전반에 걸쳐 민주주의, 경제적 발전이 크게 퇴보했다. 일부 재벌기업가 권력자들만 배를 불렸을 뿐, 국민들 생활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 자한당과 바미당은 문대통령에게 경제적 낙후의 책임을 떠밀고 있다. 503과 716의 실책을 서민들의 허리가 휘어지는 사실을 감추고 지금 문대통령 정부에게 그 모든 것을 다 덮어씌우고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비롯한 민중을 무자비하게 착취했다. 민중은 경제성장의 도구이자 희생양이었다. 비록 독재 정권이 경제적 성장을 했을지 모르지만 민주주의 입장에서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이었다. 가난과 불평등은 경제 안에 문제가 아니라 경제 바깥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가난과 불평등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문제이고 권력 문제이다. 경제성장으로 만들어진 부를 어떻게 분배하고 관리하고 운용할지를 경정하는 것은 정치의 몫이다. 자본의 탐욕, 기업의 횡포, 시장의 왜곡 등을 규제하고 바로잡는 것 또한 정치의 몫이다. 그런데 이명박과 박근해 정부는 앞장서서 자본의 탐욕에 눈이 빨갰고, 기업의 횡포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기업별 손을 들어주었고, 시장의 공정성을 왜곡하는데 규제하고 바로 잡기는커녕 장단을 맞췄다. 1%의 경제가 아니라 모두가 고루 잘사는 “99퍼센트의 경제”이지, 모두가 고루 잘사는 99퍼센트의 경제이다. 정치가, 정치의 주체인 시민이 경제와 관련한 경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까닭이지요. 이것이 경제민주주의이다. 나아가서 이것이 참된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이다. 가난과 불평등 문제는 경제만 잘 꾸려 나간다고 해서 해결할 수 없다. 정치를 바꾸고 권력을 바꾸어야 한다. 돈이 아닌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 되려면 좋은 국가와 좋은 권력과 좋은 정부를 만들어 내고, 좋은 정치를 펼쳐야 한다. 그래야 좋은 경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이 경제민주주의가 이루고자 하는 일이다. 경제민주주의 크게 두 가지 측면, 하나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경제적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 부의 공정한 분배, 사회복지 강화, 대기업의 소유와 경영 구조 개혁, 이들 기업으로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 해소, 정경유착과 특권·특혜 시스템에 철폐, 부정부패와 비리 근절 등이 과제로 꼽히는데, 경제민주주의는 이 차원을 넘어선다. 다른 하나는 ‘노동’문제가 그것이다. 노동에서 주체성과 자율성과 창조성을 되찾아야, 즉 좋은 노동을 실현해야 삶의 존엄과 인생의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삶의 성숙을 이루고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하는 노동, 자기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노동,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며 더불어 행복해지는 노동 같은 것 아닐까? 민주주의는 까마득한 옛날에도 펼쳐진 적이 있습니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입니다. 그때 아테네 민주주의는 오래도록 민주주의에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를 제공해왔습니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배울 것들 중 핵심, 추첨(제비뽑기)민주주의 즉 직접민주주의의의 실천이다. 당시 아테네 정치의 주체는 시민이었다. 물론 여성, 노예, 외국인 등은 시민에서 배제되었다. 이런 한계를 전제로 하고 보았을 때,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높게 평가할 것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공공선을 실현하는 정치적 의사 결정에 자율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공적인 정치 참여는 일상적인 행위였단다. 아테네에서 어떤 정치적 합의나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은 다수결의 힘이 아니었다. 재산도 아니었고, 특정 개인의 위세나 영향력도 아니었다.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자유로운 토론이 그 절차였고, 어떤 주장과 놀 리가 공공선을 이루는데 더 걸맞은지가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공적인 정치 참여를ㄹ 하면서 살아야 자유를 누리고 자기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여긴 아테네 시민들이었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뼈대를 이루는 핵심기관으로는 민회, 평의회, 민중법정, 행정관 등이 있다. 아테네는 만회는 약 6000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1년에 40번도 넘게 자발적으로 모여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심의하고 결정했던 아테네 민주주의의 심장이었고, 평의회에서 일할 사람 500 명을 뽑는 방식은 추첨제였는데, 법안 작성, 민회 모임 준비, 공공사업과 행정 관리 등과 같은 업무를 처리했다. 민중법정은 법령에ㅔ 따른 판결, 공직에 오를 시민의 자격 심사, 공직 업무와 회계에 대한 감사 등과 같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배심원도 구실을 하는 사람들도 추첨으로 뽑았다. 여러 가지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정책이나 법을 집행하는 행정관도 다르지 않다. 700개의 관직 가운데 대다수인 900명 정도를 추첨으로 뽑았다. 군사나 재정분야 등과 같은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100명 정도만 민회에서 선거로 뽑았다. 이렇게 추첨되어 뽑힌 공직자들에게 수당을 지급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도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 부담 없이 공적인 일에 참여할 수 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비롯해 나라를 이끄는 중추기관의 핵심 종사자들, 지금 우리로 치면 국회의원, 행정관료, 법관 등을 모두 제비뽑기로 정한 게 아테네 민주주의였다. 덕분에 아테네의 모든 시민은 어떤 공직이든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어렵잖게 참여해 일할 수 있었다. 추첨에서 뽑히기만 하면 되니까요. 관련 자료에 따르면 전체 시민 가운데 50~70퍼센트가 적어도 한 번 넘게 평의회에서 일한 것을 추정된다. 아테네 사람들은 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선거로 공직자를 뽑으면 재산이 많거나 신분이 높은 특성 계층이 권력을 독차지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정치란 특별한 능력과 자격을 갖춘 소수 전문가나 엘리트가 다른 사람들을 통치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권리이자 의무였다. 무엇보다 삶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아테나 시민들은 생업에 종사하며 세금을 내는 생활인, 자기들의 공동체를 지키는 군인, 행정과 입법과 재판에 참여하는 공직자 등과 같은 여러 역할을 서로서로 돌아가며 말았다. 아테네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를 다스린다고 생각했다. 시민이 곧 정부라 여겼기에 시민이 정책과 법을 만들었다. 아리스토텔레서는 통치와 복종을 번갈아 하는 것을 시민의 덕으로 높이 평가했다 “훌륭한 시민은 자유민답게 지배할 줄도 알고, 자유민답게 복종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덕이다.”라 그는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추첨민주주의 한 형태가 실행되고 있다. 바로 2008년 1월부터 시행하는 국민참여 재판제도이다. 배심원들은 형사재판에 직접 참여하여 피고인에게 죄가 있는지, 죄가 있다면 어떤 법을 얼마나 내릴지를 정해야한다.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이런 결정을 참고해 판결을 내린다. 추첨민주주의가 민주주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추첨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이상과 본질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와 간접민주주의를 함께 융합해서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에 대해 좀더 접근적으로 개념의 이론과 실천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잘 운영되고 있다는 대한민국,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피를 흘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날이 있게 한 선배들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까지 탄핵시키기고 들어선 문정부 시대를 기대와 응원으로 나는 건너가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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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가 되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상 큰사건을 겪게 되었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남기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올바른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는 것일까? 올바른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를 읽어본다. 현대 민주주의의 시작은 1789년 프랑스혁명이다. 당시 혁명 주도 세력과 프랑스 민중은 국왕을 광장으로 끌어내어 사형시켰다. 국왕은 봉건적 신분제도의 최고 정점이었다. 그런 신분제도를 깨부순 사건이 프랑스혁명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과연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일까?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는 의견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냐 소수냐의 문제라기보다 양적인 개념보다는 질적인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수가 권력을 만들기도 하지만 거꾸로 권력이 다수를 만들기도 한다. 숫자로서의 다수에는 함정이 있을 수 있고 민주주의는 오히려 소수자와 약자를 위하는 데서 자신의 온전하 빛을 내뿜을 때가 많다. 이렇게 민주주의의 의의에 대해 알았다면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떨까? 과거의 직접 민주주의를 더이상 실현할 수 없게 되어 대의민주주의가 곧 현대의 민주주의를 대신하게 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 운영 및 사회 구성 원리, 또는 이런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라는 철학 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모든 생각과 행위의 주체는 개인이며 개인의 행복을 모든 가치 판단의 궁극적인 잣대로 여긴다. 우리의 현재 민주주의는 발전해가고 있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모든 국민 개개인의 행복을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다수의 행복을 위해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다. <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를 통해 민주주의의 역사와 발전 과정, 민주주의의 의의 등을 통해 앞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발전해 나가고,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회적 문제나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한다. 관심이 많을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도 엿보이는데 선거권을 만18세로 낮추려는 움직이도 보인다. 이렇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참여하려는 모습이 앞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밝고 건강하게 발전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시리즈이다. 청소년이 이해하기 쉽게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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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자유와 기회보장, 평등을 기치로 사회는 돌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잘못 작동되는 경우가 많고, 정치나 권력에 이용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오류나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 모든 이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이뤄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라고 해서 무조건 정치권력의 부정, 부패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구성원이 존재하는 모든 조직과 집단, 공동체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기업들의 갑질이나 부자들의 갑질도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원인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방향성과 진보된 민주주의 계승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쉽게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 자유, 평등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고, 자신의 권리나 이익에 대해서도 쉽게 판단을 내립니다. 개인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와 이에 따르는 책임, 집단문화와 공동체를 우선으로 하는 우리 사회의 풍토, 개인은 항상 희생당했거나 희생을 강요당했습니다. 이를 두고 대승적 차원에서 어쩔 수 없다는 논리, 대를 위한 소의 희생으로 축소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습관이자, 사회적인 문화입니다. 권리와 의무, 책임의 범위를 지키며, 법이 정한 틀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해야 합니다. 잘못에 대한 지적, 모든 것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 모든 기관과 조직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감시하는 시회체제, 이는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절대적인 수단입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음모와 민주주의 저해, 그 심각성을 생각해야 하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너무 정치적인 측면에서 해석하기 보단, 우리가 일상에서, 혹은 사회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부당성, 말도 안되는 관계를 모두 고려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보편화된 인터넷 문화는 소통의 범위와 정보의 공유를 활성화시켰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만 한다면, 더 나은 사회와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국민이 우선인 나라, 정치인들, 기업가들, 각종 위정자들이 제 멋대로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해야 하며, 견제와 균형, 모두가 수긍하는 바른 사회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시대정신에 부합한 의견 합의와 협치, 미래 후손들을 생각하는 교육적 활용과 사회적 의미를 더욱 부각시켜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계승해야 할 것입니다.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고인 물로 남아있는 비민주주의, 개인의 입장부터 공동체를 위한 방안까지, 사회문제와 갈등, 해결방안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며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 성인이 읽기에도 유용한 책이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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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이 글은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것입니다>> 아침에 뉴스검색을 하다보니 눈의 보이는 한 단어. 사치퀸. 고가의 가빵에 빠져 색상별 50개를 가지고 있는 말레이시아 총리 부인. 과거 필리핀에서도 1천여개의 구두로 화제가 된 영부인도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고가차량을 수집하는 독재군주도 있었고, 최근 시리아는 정권유지를 위해 국민들에게 생화학무기를 쓰기도 했다. 민주적 정권교체를 했던 미얀마는 로힝야족을 무참히 타국으로 몰아냈다. 세계는 과거의 잘못으로 이뤄진 일들이 지금도 이뤄진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한 역사학자의 이야기. 우리나라도 정권이 바뀌면서 역사책이 자꾸 바뀐다. 대한민국정부수립, 새마을운동, 민주주의에 관한 개념들이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민주주의로 환원시킨다는 방침이다. 이전 박근혜정부는 자유민주주의였다. 이유는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정서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자유를 빼는 것과 넣는 것이 무슨 차이일까? 무식했다. 자유를 넣는 것과 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이 책에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사라진 민주주의를 찾아라. 부제는 대의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가린 민주주의의 진짜 얼굴이다. 장성익 글과 방상호 그림으로 풀빛에서 펴냈다. 글을 쓴 장성익 씨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을 졸업하고, 잡지 〈환경과 생명〉, 〈녹색 평론〉의 기획 및 편집 책임자로 일했다. 지금은 독립적인 저술가 겸 환경 평론가. 민주주의를 포괄적으로 살펴보는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2부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3부 민주주의가 갈 길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와 결합한 민주주의. 부르주아민주주의. 자본주의, 자본주의 산업사회. 즉 여기서의 자유란 일부 자본가와 권력가의 자유만을 뜻한다. 힘 센자와 부유한 자의 자유를 일컫는다. 자유민주주의는 공공의 선보다는 자본주의에 편승하는 개인의 사적인 자유가 우선시된 나머지 지극히 사적인 민주주의, 가진 자와 힘센 자의 민주주의로 전락하고 있다. 정치에서 사적 이익 추구는 정치부패의 근본 원인이 된다. 서두에 언급한 부정부패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우리도 이미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역대 수 많은 정권들과 결탁한 기업가들이 저지른 부정부패의 청탁과 얼룩진 민주주의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적폐청산, 이번 정부의 화두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지금의 정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뭐든지 한꺼번에 모든 일이 풀어지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천천히 걷는 한 걸음의 발자국들이 시셈과 조롱과 야유를 받아가며 무조건 비판하며 멈추게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펴낸 의미가 남다르다.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해설서라고는 하지만, 어른들까지 읽어야 할 필독서 수준이다. 쉽게 풀어쓴 민주주의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책에서 언급한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지금 이 시대, 여기 대한민국에서 펼쳐지고 있음이 아이러니하다. 역사학자의 말이 사실인듯 싶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시민의 대표자들을 뽑아 이들에게 통치와 행정, 정치 등을 맡기는 게 대의민주주의였다. 개인의 사적인 자유와 재산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이론적인 상황은 맞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선거를 통한 국민투표가 정치를 이끌어 갈 사람을 뽑는 일이 연예인 인기추첨도 아닌데 자꾸 정책보다는 상대후보 흠집내기에 바쁘다. 그렇게 선출된 사람들은 선거때만 유권자고, 이후는 자기 갈 길 바쁜사람이 되어버린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선거투표를 해 보고 있지만 항상 그 나물에 그밥처럼 느껴진다. 넓은 국토의 다양한 의견이 있을테지만, 우린 청색이든 빨간색이든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다양성과 문화 보편성, 개인의 의견이 정치에 이어지지 못하고, 소수의 엘리트와 돈 있는 자본주의자들이 세상을 이끌어가듯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저자는 대의민주주의는 형식적, 내용적 차원에서 시민의 대표자들이 시민을 대표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오늘날 구경꾼 민주주의, 소비자 민주주의로 변질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이러한 결과로 현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두 기둥인 대의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스스로 다스림’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래 뜻을 대단히 훼손하면서 지금의 민주주의는 본래의 고귀한 이상과 가치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책의 뒷 부분으로 갈 수록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상일지 모르지만, 민주주의의 다양한 형태를 설명한다. 민주주의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참여민주주의, 껍데기 민주주의를 알맹이 민주주의로 바꿀 수 있는 경제민주주의,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일치를 실현하는 추첨민주주의,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사는 생태민주주의, 정보화 시대의 좌표를 찾게 하는 전자민주주의, 청소년의 적극적 정치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청소년민주주의 등을 이야기하면서 글을 맺는다. 최근 세계가 주목한 촛불로 이뤄낸 탄핵정국과 정권교체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는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정권유린에 대한 책임을 묻고, 사적이익을 탐한 권력자들에 관해 책임을 묻고자 한다. 과연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민주주의는 살아있는가? 저자의 바람처럼 참여와 경제, 추첨, 생태, 전자, 청소년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책장을 다 덮고나면 무수한 고민에 빠진다. 얼마후 부처님 오신 날도 있는데, 연꽃의 화려한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그 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꿈구지만, 현실은 진흙탕, 검은 흙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상은 전 국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 모든 시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공동의 선을 실천하는 바른 마음, 바른 자세, 바른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텐데. 민주주의란 의미가 자기 절제, 자기 통치, 스스로를 다스리는 절제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그냥 막연하게 생각한 자유민주주의란게 자본주의 권력자의 민주주의였고, 대의민주주의가 마냥 좋다는 인식도 바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추첨민주주의가 마음에 든다. 물론 일탈이 우려되지만 국민 모두가 한번씩 누구나 해 보는 의회민주주의를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촛불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듯이 청소년 민주주의는 왜 안되는가? 교육현장이 선거판이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까? 힘없는 소수인들, 피지배자들, 핍박속에 익숙해진 이들을 돌보는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책 속에 길이 있음을 알게된다. 일상생활의 불편함없던 삶이 이렇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알아야할 것들이 많이 있음을 배운다. 당장 불편하지 않지만, 최소한 의무와 권리처럼 내가 사라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술안주의 정치이야기가 현실을 바꾸는 노력으로 이어져야하는지를 알게된다. 민주주의, 어려운 개념으로 생각하면 수백권의 책들이 나올 이유가 없다. 그만큼 많은 고민과 진지한 연구로 수 많은 이들이 보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고민한 결과물이다. 조화로운 세상, 나라다운 나라, 국민의 삶을 보장하는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저녁이 있는 삶이 당장은 아니지만, 꼭 보장되며 삶의 속도보다는 방향이, 양보다는 질이 우선되는 그런 사회가 오리라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왜 사라졌다고 이야기하는지 이 책을 보면서 다시금 배우고 느낀다. 청소년의 필독서가 아니라 어른들의 필독서가 아닐까 싶다. 바쁜 현대인들이 한 번쯤 시간내어 꼭 읽어보고, 민주주의를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 글은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