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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책을 처음 봤을때 제목을 보고는 그런데 내용을 보다보니..
옥수수를 하나하나 정성껏 심고 보살피는 아이들.
그모습이 마치 가족이라도 놓고 온것 같은 마음이 전해졌답니다.
책에서는 6.25 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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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책을 처음 봤을때 제목을 보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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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이
직접 땅을 파서 옥수수를 심고
쑥쑥 자라던 그 옥수수
전쟁이 나는 바람에 이별을 합니다
사투리로 된 시라 사실 한 번에 이해하긴 힘들었어요 6.25 전쟁이 배경이라는걸 얘기해주지 않아서 <강냉이>는 전쟁의 아픔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이제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아픔이 없기를...
7월에 서평을 올리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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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이라니..얼마나 기뻤는지 입이 귀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어려웠다. 그래서 몇번을 다시 읽어보느라 다른 어떤 책보다 서평이 늦어버렸다. 평소에 시를 좋아하긴 하지만 아이들과 시가 가지고 있는 함축적인 의미를 같이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권정생 선생님의 일생도 이야기 해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옥수수가 강냉이란 이야기도 해 주면서 책에 접근했다. |
| 권정생 선생님께서 초등학생때 직접 쓰신 글이라니 너무 놀랍습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피난길을 떠나야했던 어린아이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듯해서 마음 한쪽이 아파왔는데, 머릿속엔 강냉이 생각만 했던 아이의 순수함에 슬픈 미소를 짓게 되네요. 글의 감정을 오롯이 담고있는 듯한 그림까지 더해져서 더욱 깊은 감동을 주는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여러번 읽고 또 읽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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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외가는 안동이다. 내가 자라온 곳이 안동이란 말도 된다. 몇 해 전에 외가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권정생 선생님이 사셨던 집을 찾았다. 우리 가족은 그집 마당을 들어서면서부터 할 말을 잊었다. 집이라고 해봐야 허름하고 작은 흙집 하나 덩그러니 있고 한 편에 옛날 화장실이 전부였다. 그래도 누군가의 발길이 이어지는지 마당 한쪽에는 부추가 자라고 있었고 시든 꽃 한다발이 방문 앞에 놓여 있었다. 문틈으로 엿본 방은 자그만했고 선생님의 사진과 앉은뱅이 책상이 보였다. 손을 펼쳐 네모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작은 창문 하나 나 있는 그 초라한 방에서 선생님이 사셨다. 이런 환경에서 저토록 맑고 진실된 글을 쓰셨다니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강냉이》는 권정생 선생님이 어릴 때 쓴 시로, 입말을 그대로 살려 쓴 시다. “내 혼차 모퉁이저꺼짐두고왔빈 강낭생각했다” 내게는 익숙한 말이라 바로 이해되었다. 아이는 시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뒤쪽에 표준어로 바꾼 시를 읽고서야 이해되었다 한다. 안동에서는 이런 말을 쓴다며 생생히 그 방언으로 읽어줬더니 신기해 한다. 전쟁통에 피난와서는 집모퉁이에 심어놓은 강냉이를 생각한다. 이제는 제법 많이 자랐을텐데 저 혼자 외로이 있을 강냉이를 떠올린다.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하나 쓰지 않은 시인데 슬프고 먹먹하고 애틋하고 아련한 감정이 올라온다. 아울러 전쟁에 대해 들은 그 어떤 설명보다 전쟁이 피부로 느껴온다. 어린이 권정생이 쓴 시는 이토록 생생하다. 여기에 어우러진 그림은 또 어떠한가. 굵은 선에 거친 채색은 힘이 느껴지고 그림만으로도 전쟁이 주는 비극이 잘 전해온다. ‘강냉이’ 이야기를 짧게 시로 썼을 뿐인데 그 감동은 어마어마하다. 권정생 선생님의 삶이 녹아있고, 민족의 아픔이 서려있어 그렇다. 소년 권정생을 시로 만나는 경험은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두고두고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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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이 저학년가족 권정생 시, 김환영 그림 가족한줄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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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이
집 모퉁이 토담 밑에 한 페기 두 페기 세 페기
생야는 구덩이 파고 난 강낭알 뗏구고 어맨 흙 덮고
한 치 크면 거름 주고 두 치 크면 오줌 주고 인진 내 키만춤 컸다
“요건 내 강낭” 손가락으로 꼭 점찍어 놓고 열하고 한 밤 자고 나서
우린 봇따리 싸둘업고 창창 길 떠나 갔다 모퉁이 강낭은 저꺼짐 두고
“어여-” 어매캉 아배캉 난데 밤별 쳐다보며 고향 생각 하실 때만
내 혼차 모퉁이 저꺼짐 두고 왔빈 강낭 생각 했다
‘인지쯤 샘지 나고 알이 밸 낀데……’
아버지는 고향 마을 우리 집 밭에 옥수수를 심었다. 덕분에 옥수수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해마다 여름이면 옥수수를 맛보았다. 한여름 밤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며 옥수수를 먹을라치면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옥수수 생각이 나서 가끔 쪄 먹는다. 몇 년 전에는 주말농장에 옥수수를 심었다. 봄 밭둑에 세 알씩 심었다. 작은 구덩이를 파고 옥수수 알을 점을 뿌리듯 심었다. 호미 두 개 정도의 간격으로 심고 오매불망 옥수수 수확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거름도 주고 오줌도 주며 정성을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까닭이다. 농작물은 정성으로 자란다. 그래서 농작물을 키워본 사람은 농작물과 깊은 관계가 된다.
권정생 선생님 시는 『동시삼베』(문학동네, 2011년)에서 옮겼다. 선생님이 초등학교 다닐 때 쓴 시로, 스물일곱 살 때인 1964년에 직접 손으로 쓰고 그려서 엮은 시집에 실려 있다. 안동 사투리가 그대로 쓰여 있는데 표준말로 옮긴 것보다 정겹다. 전쟁으로 집을 떠나와 형이랑 구덩이 파고 심었던 강냉이를 그리는 아이의 마음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아이가 주인공이고 옥수수 이야기이지만 전쟁이 배경이다. 앞뒤 면지가 푸른 하늘에 별이 반짝이지만 본문 그림에는 화염이 타오르기도 하고 핏방울이 튄다. 그래서 전쟁의 비극이 더 극적으로 다가온다. 전쟁은 옥수수를 심고 수확하는 즐거움마저 앗아간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전쟁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넓고 깊으며 크지만 일상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도 포함한다. 그것을 간명하게 보여준 것이 권정생 선생님의 시이고 거기에 김환영 작가의 그림이 적절하게 그림을 입혔다. 지금 우리는 전쟁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주 잊지만 단지 휴전 상태일 뿐인 세상이다. 어서 평화의 시대가 활짝 열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기를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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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랑 엄마랑 심은 강냉이를 수확하기도 전에 전쟁으로 인해 고향을 떠났던 아픔을 아이의 입장에서 잘 표현 되었고, 그 느낌을 내용을 읽지 않아도 그림으로 알수 있었어요. 책을 읽어주고 나서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요즘 쓰는 단어로 되어있는 글로 다시 읽어주니 더 잘 이해 하더군요. 6월을 맞아 현충원도 다녀오고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전쟁이란 아픔을 이 책을 통해 얘기할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아빠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림움이 잘 표현되었어요 엄마 단어 설명을 많이 해주어야 했지만 그림도 좋았어요 초등저남 강냉이가 걱정되요 초등저여 전쟁은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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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침략과 전쟁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DNA가 있는것 같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전쟁과 침략에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 책을 읽다보며 마음이 한부분이 뭉클해질때가 있다 어릴 척 할머니가 들려줬던 전쟁 경험담 뒷뜰에 작은 동굴을 파 어린 큰아버지와 큰고모 숨기고 울고 있는 아기였던 아버지의 입을 수건으로 막았다는 할머니의 옛이야기가 다시 문뜩 문뜩 생각이 난다 강냉이란 이 전쟁 동화책을 읽다보니 처음에는 사투리식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두 세번 읽어 내려갔다 먹을것이 많지 않던 그시절 작은 씨앗하나 심어 새싹들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며 그 싹이 쑥쑥 자라 열매가 영글어 금방 맛난 강냉이를 먹어보리라는 희망하던 모습이 전쟁으로 고생해서 키워놓은 곡식을 거두지도 못하고 떠나야하는 모습에 너무 안타까워 마음이 아파왔다. 아픈 과거를 잊지 말아야하지만 다시는 이런 무서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음하는 바램이다 저학년 아이에게는 사투리식 문장이 어려워 그림만 보았을때 느낌을 물어보았다 '옥수수 씨앗 심고 키워서 맛나게 먹고싶어'라고 표현 하였다 동화책의 이야기를 전쟁으로 인해 고향에 있는 소중한것을버리고 떠나야 함을 이야기 나누고 제주도 난민을 비교하며 전쟁의 고통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아빠ㅡ우리 어릴적 보릿고개 시절과 영화 드라마 등 보고 느껴본걸 경험삼아 이해할수 있는 동화책이지만 어린이들에게 어떤 감동과 스토리로 전해질지 아이러니한 동화책임 엄마ㅡ사투리 구수함을 느끼게하나 어린이들에게 사투리에 대한 해석이 되어 있음 좋을듯하다 그림의 컬러는 쓸쓸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저학년 남아ㅡ 옥수수 키우는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엄마에게 동화책 이야기 듣고 옥수수 못먹고 떠나는 아이 가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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