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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차인표는 신인시절부터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던 인물이다. 두 아이를 공개 입양하며 많은 이들의 찬사를 이끌어 냈고, 최근에는 나눔이라는 새로운 문화까지 전파하고 있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는 하나 그와 같은 트랜드(?)에 반하는 움직임 역시 만만치 않다. 특히 당장에의 이익을 얻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 일부를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제 밥그릇 챙기는 이기적인 행태와 비교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많은 이들은 나눔이 물질적으로는 제 것의 상실일지 몰라도 그에 못지않은 뿌듯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손해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심리적인 부분까지 감안한다면 경제적으로 보았을 땐 설명이 어려웠던 행위일지라도, 수치로 표기하긴 뭐하나, 다분히 경제적인 틀 안에서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나눔이 세상을 얼마나 윤택하게 만드는지, 나눔을 실천하는 개개인에게 어떤 만족도를 선사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이제껏 많은 책들이 다루어왔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달랐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기부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은 마르셀 모스였다. 그는 저서 ‘기부론’을 통해 보편적으로 ‘선행’으로 여겨지는 기부 행위도 결국에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교환에 불과함을 증명해 보였다. 그에 따르면 베푸는 행위는 자신의 능력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행위와도 같으며, 수혜를 입은 이 역시 그에 부합하는 되돌려줌을 해야만 한다. 만일 무언가를 받고도 아무런 답례를 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의 관계 유지는 힘들어진다. 또한 답례를 함에 있어서 무엇을 상대에게 줄 것인가 역시 중요하다. 상대가 나에게 준 것과 동등한 것을 상대에게 주어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상대는 오히려 모멸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비슷하다. 자신이 받은 것만큼을 베풀지 못한다면, 수혜자의 입장에서는 제 능력이 기부자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 되어버린다. 혹 받은 것 이상을 베푼다면 상대의 능력보다 내 능력이 뛰어남을 선언한 것과도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어버린다. 즉, 상대와의 관계를 지속시키느냐 혹은 상대보다 우월한 지위에 서느냐 역시 무엇을 기부하느냐를 통해 결정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설명이 맞다면 기부는 결국 받을 것을 염두에 둔 행위에 불과하다. 이어지는 바타유의 사유에서도 이는 유사하게 전개된다. 그는 누구에게도 되돌려줌이라는 행위가 필요치 않은, 순수한 기부행위에 대해 강조를 한다. 이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기부는 순수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에 부합하는 듯해 보인다. 하지만 아무것도 되돌려 줄 수 없을 정도의 기부는 오히려 끔찍할 것이다. 기부자는 제 일부를 나눔으로서 극도의 만족감을 누리는데, 이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제공할 수 없고 오로지 받아야만 한다면 말이다. 이는 극도의 빈곤한 생활을 감당해야만 하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떠올려 볼 때 좀더 명백해진다. 무언가를 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그들의 무기력한 모습. 받는 것에 대해 너무도 익숙해진 나머지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조차 하지 않는 그 모습 말이다. 기부자는 수혜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바타유가 원한 절대 순수 기부 따위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것임을... 아브라함이 제 아들 이삭을 재물로 바치는 행위에서나 만나볼 수 있지,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절대 순수 기부임을 모스와 바타유를 향한 데리다의 비판에서 접할 수 있다. 이로부터 더 나아간 것이 바로 사르트르인 듯 했으니, 그는 아예 기부라는 행위로부터 ‘주체’를 삭제함으로써 기부 행위에 가미될 수 있는 권력의 문제를 배제할 것을 주문한다. 기부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면 익명으로 기부할지어다? 나눔은 고결하다고 단순히 생각을 해왔건만 책 한 권이 나눔의 복잡함에 대해 눈뜨게 해주었다. 복지가 생산성을 저해하고 나아가 무기력한 인간을 양산한다는 말이 복지국가의 해체를 불러 일으켰음을 잘 알고 있다. 인간성 파괴의 주범, 국가 경제를 망치는 요인. 나눔의 일환인 복지가 지닌 파괴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지 물고기를 직접 잡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다. 어쩌면 많은 돈을 쥐어주는 것보다 조금이나마 돈 버는 방법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좀더 선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나누지 않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나누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나눔이 비록 내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이기심으로부터 비롯되었을지라도, 그와 같은 나눔이 모였을 경우 세상은 바뀐다. 심오하게 고민한 끝에 “안 돼!”라고 말하는 것보단 일단 행동하고 보는 무모함이 낫다고 난 믿는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믿을 것이고, 그 믿음에 기초해 행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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