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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의 작품 '조서'를 읽었다. 솔직히 넘 어렵고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도통 가늠하기 힘들어 아무리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도 더 이상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같이 책을 읽는 분들이 클레지오의 후기 작품 '황금 물고기'는 재미도 있고 괜찮다는 이야기에 클레지오의 후기 작품 중 하나 더 읽어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프리다 칼로에 대해... 그녀의 불꽃같은 사랑을 받은 디에고 리베라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 수 있다는 생각에 선택한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예전에 영화 프로그램을 통해 매력적인 여주인공이 프리다 칼로가 나온 포스트와 작품 설명을 본 기억이 있어 나름 기대하게 된 책이다. 프리다는 처음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유모의 손에 자란 프리다는 3살에 소아마비, 열여덟 살이 되지 않은 시점에 자동차 사고로 신장이 파손되어 더 이상 소변을 볼 수도 없고 척추를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도저히 견디기 힘든 상황인데 그녀는 놀라운 생명력과 저항력을 보여준다. 프리다는 사고를 당해 그림을 그리고 시작했고 어린 나이에 민중벽화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의 여자에게 당돌한 면을 보여줄 정도로 당찼던 그녀가 디에고를 만나 그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이 커다란 역할을 한다. 솔직히 두 사람의 불꽃 같은 사랑이 이해되지 않는다. 식인귀란 말을 들을 정도로 여자와 삶에 대해 열정적인 자신만만한 모습은 디에고가 가진 가장 큰 매력으로 볼 수 있다. 결혼을 서너 번 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프리다가 아기를 잃고 엄청난 슬픔 속에 빠져 있었을 프리다의 동생과 벌인 일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지독한 열정, 사랑을 갖고 있다. 프리다가 곁에 있었기에 디에고는 멕시코가가 인정하는 위대한 민중화가란 타이틀을 얻었다. 디에고로 인해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를 향한 사랑을 놓는 대신에 그림을 통해 승화시킨 프리다 칼로 역시 예사 인물은 아니다. 솔직히 프리다 칼로의 초현실적인 그림이 좋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오히려 불편함이 느껴지는 그림들이 많았으며 자신의 초상화를 왜 저렇게 그렸나 싶은... 그럼에도 그들의 많은 작품들이 담겨져 있어 나름 흥미롭게 보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클레지오의 글이란 느낌을 거의 받지 못한다. 프리다와 디에고를 좋아하는 것으로 읽는다면 모를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글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아쉽다. 지금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의 미술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멕시코가 낳은 세계적인 두 화가의 작품은 두 사람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가고 싶은 전시회로 책에 나온 그림들이 상당히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조만간 기회를 봐서 직접 볼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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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 르 클레지오 저. 프리다칼로에 대한 관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프리다 칼로에 대한 책이 국내에 몇권 있으나, 한두권을 제외하고는 별로 마땅치 않게 생각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검색해 보니 이 책-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가 출판되었음을 알았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르 클레지오가 쓴 작품이라니.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구입하여 읽기 시작했다.
르 클레지오의 다른 작품에서도 그렇듯, 이번 작품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문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르 클레지오는 점잖은 듯한 문체의 그 이면에 담긴 인간의 열정과 고통을 잘 표현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세계와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의 삶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작가 스스로도 인물에 대한 흥미를 갖고 이 책을 썼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프리다 칼로에 관한 책(프리다 칼로. 예경 출판사)은 칼로중심의 관점에서 서술하다 보니 디에고 리베라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었다. 물론 여성의 관점에서 봤을때 리베라는 긍정적일 수 없는 남자다. 칼로의 고통과 외로움을 아랑곳하지 않는 여성편력은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전혀 용납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관점을 떠나 칼로와 디에고의 성향을 살펴보면 칼로는 칼로대로, 리베라는 리베라대로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이 달라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칼로는 어릴적 겪은 심한 사고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는다. 사고가 사고로 끝이 난것이 아니라 평생 후유증과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할 수도 없이 몸이 기형이 된다면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칼로의 작품은 내면 지향적일 수 밖에 없다. 칼로와 리베라 둘다 사회주의 혁명을 지지하는 인물들인데 칼로에게 자신의 육체란 극복해야할 혁명의 대상이자 자아존재감을 되찾아야하는 투쟁의 대상이었다.
반면에 리베라는 엄청난 풍채와 독특한 눈빛에서 보여주듯, 열정적이고 정력적인 사람이다. 그의 작품이 대부분 벽화라는 점은 그의 예술세계가 외부지향적이며 그의 내면은 발산적 인물이라는 점을 느끼게 해 준다. 그렇기때문에 리베라는 그 열정에 걸맞게 하루에 18시간 이상, 4일 밤낮을 작업할 수 있으며, 성적인 욕구 또한 발산해야만 가능한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했듯 리베라 또한 사회주의혁명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행보는 칼로와는 달리 집단에 가입하여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하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이러한 칼로와 리베라의 모순된 내면세계는 오히려 그 둘이 평생 헤어질 수 없는 접착제가 되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칼로는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그 대상은 리베라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리베라는 아기이며 전부였다. 그렇게 모성의 관점으로 리베라를 품었기 때문에 리베라의 여성편력 또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리베라에게 칼로란 예술의 원천이자 고향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리베라는 칼로에게 끝임없이 떠나려 해도 결국에는 떠나지 못하고 칼로에게 되돌아 오게 되는 것이다.
또한 좋았던 것은 칼로가 위대한 화가의 부인으로 전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여성예술가들이 젊은 시절에 주목 받다가 잘난 예술가 남편을 만나 그를 조력하다가 결국 '그 남편의 아내'라는 조연에만 머물러야 하는 오명을 얻었다면, 칼로는 그와 달리 리베라와 독립된,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워낙 둘의 예술세계가 상반되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칼로의 주체적 의식과 리베라의 자유분방함이 칼로의 예술세계를 억누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그들의 관계를 르 클레지오는 문학적인 문체로 잘 표현하고 있다. 너무 소설적 기법으로만 쓰인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긴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문체와 인물들의 삶 모두 뛰어난 작품이고 인물의 관계와 삶이 충분히 소설속 인물처럼 극적이기 때문에 문체와 어우러져 더 큰 감동을 주었다.
--------------------------------------------------------------------------------------------- 그녀는 예술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걸작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진실과 현실, 잔혹함과 고통을 대면하는 여성의 인내심을 예찬하는 그름들이다. 어떤 여성도 프리다가 이 시절 디트로이트에서 햇듯이 화폭에 이토록 가슴이는 시를 담아내지는 못했다. <디트로이트에서 머물던 시기 칼로의 작품에 대한 리베라의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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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독서모임에서 르 클레지오의 <조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전히 어려운 '르 클레지오'에 다시 한 번 도전(?) 해 보기로 했다. 우리는 그의 책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를 선택했다. 책을 읽는 중에 서로 카톡으로 나눈 말은 '도대체 르 클레지오는 어디에 있는 거야? 프리다 밖에 안 보여.'였다. "새로운 출발과 시적 모험, 관능적 환희의 작가이자, 지배적인 문명 너머와 그 아래에 있는 인간의 탐구자" - 2008년 한림원이 밝힌 노벨문학상 수여 사유 중에서
'모조리 썩어빠진 지식인들이라 더는 견딜 수가 없어요. 나한테는 너무 가혹한 일이에요. 파리의 '예술가연하는' 저 멍청이들을 상대하느니 차라리 톨루카 시장에 퍼질러 앉아서 토르티야를 파는 게 낫겠어요.' 르 클레지오의 <프리다 칼로,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와 디에고를 이야기하며 서로 함께 한 부분, 그리고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부분을 보여준다. 나이는 21살, 몸무게는 3배의 차이가 나던 디에고는 카리스마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천재다. 그의 그런 자신감은 그의 사진과 그가 그린 자화상을 보는 순간 '아'하고 느낄 수 있다. 사진에서의 두꺼비같이 생긴 거대한 몸집과 생김새는 그의 자화상에서는 상당히 핸섬한 감각적인 남성의 모습으로 변한다. 그는 자신을 너무 사랑했던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인물이지 않았을까? 반면, 프리다는 그녀의 사진(우리는 이것이야말로 프리다의 '인생샷'으로 규정했다)보다 훨씬 못나게 나쁜 쪽으로 과장되게 자화상을 그렸다. 프리다와 디에고는 서로 닮은 점도 있겠지만, 태양과 달처럼, 삶과 죽음처럼, 빛과 어둠처럼 달랐다. '그가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이 거대한 축제라고 나는 상상한다. 모든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사람부터 돌멩이까지, 태양까지, 그리고 그림자까지 참여하는 축제. 모두가 그와 더불어, 미에 대한 그의 생각과 그의 창조적 재능과 더불어 작업하는 축제. 형태와 색채와 움직임과 소리와 지능과 지식과 감동의 축제. 온 지구를 뒤덮을 지성과 사랑의 축제. 이 축제를 벌이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투쟁하고 가진 모든 것을 내놓는다.' 프리다의 그림은 불편하다. 보는 내내 섬뜩함을 느낀다. 그녀의 그림에 대해 초현실주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바로 '현실'을 그린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초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결코 꿈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바로 나의 현실을 그렸다. 거기에는 프리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어렸을 적 앓았던 소아마비로 얇고 짧아진 오른쪽 다리,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숙하려는 시기에 겪였던 사고, 디에고의 아이를 낳아 기르기를 열망했지만 계속되는 유산으로 인한 고통, 디에고의 사랑만을 바라보고 살지만 계속 한 눈 팔기를 멈추지 않는 디에고. 그녀의 그런 그림의 시작을 알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유산을 겪은 후 그린 그림이다. 병원을 나와서 프리다는 참으로 개성 있는 그림의 시작을 알리는 두 점의 그림을 그린다. 일상의 사건들, 그녀의 욕망, 두려움, 가장 내밀한 감정들이 상징적이면서 현실적인 형태로 표현된 그림이다. 그중 한 그림에서 그녀는 제왕절개 수술 후 병원 침대에 누워있고, 그녀 곁에 아기가 있다. 다른 그림에는 피 웅덩이 속에 벌거벗은 채 누운 그녀가 있고, 침대 위로 악몽의 상징들처럼 강박적인 이미지들이 떠 있다. 부서진 골반뼈, 외과 기구들과 비데, 난초 꽃 한 송이, 괴기스런 달팽이 한 마리, 기묘한 깃발, 세 달 된 태아.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프리다는 디에고에게 도판이 실린 의학사전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병원 침대에는 숙명적인 날짜가 새겨져 있다. 1932년 7월. 그녀가 의학사전을 가져오라고 한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바로 알기, 그리고 세상 알기. 그런 면에서 프리다의 그림은 바로 '현실' 그 자체였을 것이다. 1934년 동생 크리스티나의 고백으로 알게 된 디에고의 배신으로 프리다는 모든 걸 잃었다. 그동안 그녀는 그녀가 쓰고 있던 가면을 깨뜨리기로 마음먹었다. 이 사건으로 둘은 이혼을 하게 된다. 이 결별은 가면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그녀가 가면을 깨뜨리고 돌아가고자 한 곳을 르 클레지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녀의 현실은 기억을 태우는 온갖 고통들, 현실의 상처들, 걸인들과 겁에 질린 아이들의 눈길, 마치 성전에 둘러싸인 듯 부유한 집들 한가운데서 번쩍이는 황금,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조롱당한 혁명에 참여했던 떠돌이 군인들, 일상의 느린 잔혹함, 무거운 짐 아래 허리가 굽은 여인들, 여인들의 억센 손, 아득한 시간에 닳아버린 보석 같은, 희망 없고 기약 없는 삶에 씻겨버린 여인들의 눈길. 그렇지만 디에고에게 다시 돌아온 프리다, 그녀에게 과연 디에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여전히 사랑이었을까? 그녀의 그림 "몇개의 작은 상처" 혹은 "단지 몇 번 찔렸을 뿐"이다. 이 그림처럼 디에고가 남긴 상처를 그녀는 평생 안고 산다. 책에서 볼 때는 많은 그림 중에 하나였는데, 미술관에서 직접 보니 가장 아픈 그림이다. 디에고의 칼에 찔려 흘린 피는 그녀의 몸에 침대의 흰 시트에 그리고 바닥에만 있지 않다. 그림의 프레임에까지 붉게 묻어 있다. 그녀의 아픔은 그렇게 그림을 뚫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그림과 삶에서 멕시코 인디오의 정신과 세계관을 읽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여 다음 기회로 미룬다. 나중에 알아볼 것들은 테우아칸 여자, 아즈텍의 음양사상, 이원론적 세계관이 될 것이다. 발 무엇을 위해 그것을 원하지?
행복한 외출이 되길,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앙드레 브르통은 프리다 칼로를 이렇게 말한다. 프리다 칼로의 예술은 리본 두른 폭탄이다. 프리다에게 예술은 무엇이었을까? 소통수단도 아니고 상징체계도 아니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그녀 자신이 되고, 존재하고, 감정과 육신의 파멸을 딛고 살아남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사실, 예술이 그녀의 전부였고, 바로 그래서 그녀는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고 의미를 변질시키는 그 무엇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떤 타협도 말이다. 그녀는 초현실주의자들의 후견을 거부했고, 마찬가지로 끝까지 자신의 예술을 위해 정치적 해석과 손쉬운 목적을 거부한다. 르 클레지오는 디에고와 프리다의 삶을 그려내면서 그가 찾던 지배되지 않는 인간, 혁명의 환희를 아는 인간, 그리고 무수한 억압과 고통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인간을 말하고 있었다. 디에고와 프리다의 사랑의 관계는 멕시코 자체와 닮았다. 땅과 계절의 흐름과, 대비되는 기후와 문화를 닮았다. 그것은 고통과 잔인함으로 이루어진 관계이지만 절대적 필연으로 이루어진 관계이기도 했다. 프리다는 고대 멕시코였다. 조상의 가면을 쓰고서 느린 종교적 춤을 추며 인간들 사이에 내려온 대지의 여신이고, 산맥처럼 강인한 품에 아이를 안고서 천상의 수액인 젖을 먹이는 거대한 인디오 여인이었다. 그녀는 시장에서 돌절구 위로 몸을 숙인 여인들, 부유한 동네를 떠돌며 저택의 개들을 짖게 만드는 흙짐 진 여인들의 말 없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아이들의 외롭고 겁에 질린 눈길이고, 산모의 피 묻은 몸이었으며, 비벤다스 뜰에 웅크린 채 영원한 고독에서 끌어내 저주의 주문을 읊조리는 백발 마녀의 형체였다. 그녀는 인디오의 창조적 정신이었다. 서양 세계에서 무엇도 빌려오지 않고, 오직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자신의 살점을 뜯어내듯, 신화를 피를 머금고 지칠 줄 모르는 기억의 파도에 실려 일렁이는, 매우 오래된 의식의 편린들을 길어내는 정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