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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공간에서 타자화 된 꿈을 꾸며 살아간 조선시대의 음악인들..
"타자의 공간에서 타자화 된 꿈을 꾸며 살아간 조선시대의 음악인들.." 내용보기
난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요즘 대세는 아이돌인 것 같다. 하긴 한류의 대표적 문화가 음악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tv를 보려고 채널을 돌리다 보면 음식프로 아니면 음악 프로다. 모두들 그런 프로를 좋아하기 때문에 방송국에서 그리 편성하는 걸 내가 싫다고 그만 두라고 할 수도 없으니 tv와는 점점 더 멀어진다. 딱히 tv를 좋아 하지도 않기에 불
"타자의 공간에서 타자화 된 꿈을 꾸며 살아간 조선시대의 음악인들.." 내용보기

   난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요즘 대세는 아이돌인 것 같다. 하긴 한류의 대표적 문화가 음악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tv를 보려고 채널을 돌리다 보면 음식프로 아니면 음악 프로다. 모두들 그런 프로를 좋아하기 때문에 방송국에서 그리 편성하는 걸 내가 싫다고 그만 두라고 할 수도 없으니 tv와는 점점 더 멀어진다. 딱히 tv를 좋아 하지도 않기에 불만도 없다. 뜬금없이 tv프로에 대해 이러 쿵 저러 쿵 말을 꺼낸 이유는 옛날, 그러니까 전통시대 음악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지금이야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대중에게 선망을 받고 또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옛날에는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책 [옛 음악가들의 삶과 욕망]은 조선시대 악인들의 삶과 욕망에 대해 쓴 책이다. 제목은 음악가라고 했지만 조선시대 음악이란 독립된 예술로서 존재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 악()이라 함은 국가의 통치와 백성의 교화를 위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악을 담당하는 악인(樂人) 혹은 악공(樂工)들은 하나의 도구처럼 다뤄졌다. 그들은 대개 신분적으로 하층민이었고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도 광대나 노비를 뜻하는 의미를 가졌다. 따라서 그들의 삶은 주목받지 도, 그렇다고 기억되지 도 못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러한 악인들의 삶과 욕망을 조명해보고 있다.

 

  조선시대 악은 기악과 노래와 춤이 결합된 총합적 개념이고, 공은 장인을 뜻했다고 한다. 따라서 악공이란 악을 담당하는 숙련된 장인을 의미했다. 이들은 예조의 장악원에 소속되었지만 국가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받지 못했다. 악공은 무속에 종사하던 지방의 관노들 중에서 차출되었으며, 악공으로 차출되면 이들의 친족 중에 2명의 보인을 뽑아 악공의 생계와 세금부담을 담당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부담이 만만치가 않아 친족 중에 악공이 나오면 도망가거나 심지어 자결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악공의 사회적 위치가 어떠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악인들은 장악원에서 국가의 공식의례용 음악을 연주했지만, 사사로이는 정승이나 양반들의 잔치에 초빙되어 흥을 돋우는 연주를 하기도 했다. 연회라는 사대부들의 화려한 공간에서 사치스러운 소비문화를 접할 수는 있었지만 대부분 행사를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었기에 연회가 끝나면 이내 잊혔다. 또 조선시대 유교적 지식인들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을 심신수양과 호연지기를 배양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이들이 유람할 때 악인들은 제승구(諸僧具)로서 기능했다. 제승구란 산천을 유람할 때 필요한 도구라는 뜻이다. 그런 가 하면 조선시대 음악은 문학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전원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목동이나 대금이 글속에 상투적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작가의 수심과 회포를 담는 용도로서 악기소리의 존재가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에서 악인의 존재는 거의 배제되거나 무시되었다. 이처럼 악인의 삶은 사대부의 소비적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들의 이름이나 연주실력이 후대에 전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연주실력이 뛰어난 일부의 악인들은 당대 유명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었기에 그 이름을 남길 수는 있지만 그것도 사대부라는 타자의 기록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16세기이후 악보를 남긴 악인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사대부들에게 악기를 가르쳤을 때 사대부들이 악보로 기록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나 재능을 남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악인은 특별한 경우에 한해서 타자의 기록에 의지하여 이름과 악보를 남길수 있었다. 그러기에 이들은 선비적 삶을 지향하는 삶의 태도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은둔자의 삶을 흉내 내거나 지조 있는 선비의 절개를 흉내내는 행동은 신분적 질곡이 주는 억압적 환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의의와 자기 음악의 값어치를 보상받기 위한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전기간에 걸쳐 악인들의 걸시기록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걸시란 신분적으로 하층에 속하는 이가 사대부에게 자신에 관한 시()를 부탁하는 것이다. 악인들이 이처럼 걸시에 집착했던 이유는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과 시를 통해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몸은 비록 낮은 계급이지만 정신만은 그렇지 않다는 정신승리를 보는 것 같다. 물론 걸시를 아무나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듯, 모든 악인들이 이렇게 살지는 못했다. 그나마 연주에 재능이 있었던 극히 일부 악인의 삶이지만 그들의 삶의 공간은 늘 타자의 공간이었고, 삶의 기억은 타자화 된 꿈이었다.

 

  악인으로 차출되어 장악원에 들어가면 오랫동안 훈련을 받는다. 장인이 된다는 것은 직업적으로 음악인의 삶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늘 사대부라는 타인의 눈에 의해 그려진다. 조선시대 악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인간의 삶과 욕망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사는 삶의 공간은 나의 공간인지, 내가 살아가는 삶의 기억은 나의 꿈이었는지를 말이다. 날이 덥다. 오늘도 삶은 이어진다. 나의 공간에서 나의 꿈을 꾸는 온전한 삶의 기억을 간직하고 싶다.

k*****1 2018.07.16. 신고 공감 4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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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음악가들의 삶과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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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사회 유교적인 사회에서 음악가 예술가로 살아가는 예인들의 이야기생각한 것 보다 그들이 사는 시대와 그 속에서 자신의 꿈과 욕망을 펼치는 이야기가 신기하네요금기도 많고 제약이 많은 시기가 오히려 창작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많이 배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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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사회 유교적인 사회에서 음악가 예술가로 살아가는 예인들의 이야기

생각한 것 보다 그들이 사는 시대와 그 속에서 자신의 꿈과 욕망을 펼치는 이야기가 신기하네요

금기도 많고 제약이 많은 시기가 오히려 창작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많이 배우네요

이달의 사락 s****o 2026.04.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