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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독서모임에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작품을 읽었었다. 우리에게는 한 권인 책이 원래는 세 작품을 합친 거였다는 걸 책을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책을 읽고 아고타 크리스토프라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말에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었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나면 그 책이 쓰여졌던 배경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는 본래 모든 작품들의 탄생을 예고한다. 작품이 쓰여진 시기나 배경등에 사용되기도 하고 작가가 천착하고 있었던 주제를 파악할 수도 있게 한다. 이번 작품 『문맹』은 자전적 이야기로 헝가리 출신의 작가가 유년기와 열아홉 살에 일찍 결혼을 하고 정치적 상황 때문에 스위스로 이주해 가는 과정과 작가로 탄생하기 전까의 과정을 담았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라는 작품속에서는 쌍둥이 두 인물이 등장한다. 루카스는 작가 자신을, 클라우스의 모델은 어릴적 따로 떨어져 기숙사에서 생활했던 오빠를 투영했다. 어릴적 살았던 마을을 떠나 가족이 각각 흩어져 살아야 했었고, 오빠와 따로 떨어져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했던 작가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 특히 오빠에 대한 그리움을 루카스와 클라우스라는 인물을 통해 나타냈던 것 같았다.
책은 꽤 얇다. 웬만한 중편소설 두께이다. 짧은 문장들 속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이야기는 그 시절 헝가리의 정치적 상황을 말한다. 헝가리의 국경 마을에서 생활했던 작가. 남편의 정치적인 이유때문에 딸과 함께 스위스로 가야했던 여정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야 했던, 참담한 시간을 서술했다.
자신들의 적이라 여겨 적의 언어라 칭했던 프랑스어. 프랑스어로 말은 하지만 읽을 수는 없었던 고충 때문에 문맹 상태가 되어 프랑스어 초급반에서 공부를 시작했던 일까지 토로했다. 글을 쓰는 작가지만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했으며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했다. 네 살 때부터 글을 읽었지만 고향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문맹 상태일 수 밖에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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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 나의 삶, 나의 작가로서의 여정에 대해,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103 페이지)
이 책은 소설가 백수린의 번역으로 탄생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작가라는 것 때문에 거부할 수 없었다던 백수린 작가를 사로잡을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글을 쓰는 소설가에게 역시나 평생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라는 작가의 글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짧은 문장, 얇은 두께의 글이지만 아고타 크리스토프라는 작가의 글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글쓰기의 모태가 되었을 자전적 이야기는 작가의 글쓰는 작업의 근간이 될 뿐더러 작가를 살아있게 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글쓰기라는 작업으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 했을 것이고, 모국어를 기억하려 하면 할수록 감출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글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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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를 배우는 이유는 각자 제각각이다. 헝가리 사람으로 이국어인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 아고타크리스토프! 그녀의 문장을 사랑해서 프랑스어를 열망하게 되었다는 한 여성의 감수성이 프랑스어 수업과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연결시켰다. 그럭저럭 둔해지고 생활감각만 뚜렷해지는 내 인생의 이 시점에 프랑스어가 찾아왔다.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로 시작하여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으로 끝나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장은 슬픔에 반응하는 글이다. 전쟁이 남긴 허기와 허무를 짓누르는 고통의 글이다. 그리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시이다. 뭔가 읽을 것이 있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나는 계속 읽고, 그러고 나면 울면서 잠든 밤사이에 문장들이 태어난다. 문장들은 내 곁을 맴돌다 속삭이고 리듬과 운율을 갖추고, 노래를 부르며 시가 된다. 어제, 모든 것은 더 아름다웠다. 나무들 사이의 음악 내 머리카락 사이의 바람 그리고 네가 내민 손안의 태양 [p34] 그녀는 지금 [어제 Hier]를 읽는 중이라고 했다. 책속에 등장하는 프랑스어를 읽고 싶다는 그녀의 바램은 곧 현실이 될 것이다. 그녀가 기울인 시간만큼....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원하지 않았던 잃어버린 모국어의 기억을 적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재탄생시키며 쓸쓸한 여백으로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맹 L`analphabete]은 말하고는 있지만 결코 쓸 수 없었던, 쓰여질 수 없었던 파편된 기억들을 조금씩 모아놓은 이야기이다. 스스로를 문맹이라 말하면서도 치열하게 언어와 맞서는 글이기에 쉽지 않은 글이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역사의 시간이 있었고 잊혀질 뻔한 그래서 혹시 문맹으로 살아야 했을지도 모를 시간이 있었다. 다행히 적의 언어를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으니 안도하지만 머릿속 깊이 우린 안의 문맹의 흔적이 가끔씩 보일 때가 있다. 혹시 그런 적 없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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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문맹이었던 적은 있었을까? 외국어를 배울 때 그랬을까? 아지면 바삐 돌아가는 세월에 흐름속에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를 들을 때 문맹이었을까?
우리는 문맹일 수 있다. 얼마전 동상이몽이라는 프로에서 한고은, 신영수 부부의 이야기처럼. 미국의 동생과 통화할 때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한고은씨옆에 손만 흔들고 있는 신영수씨를 보면서 어느 한 순간 문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하는 곳의 일을 너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만 다른 지역, 장소에서는 몸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닌,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하는 행동을 보는 것이 바로 문맹일 수 있다는 것을.
아고타 크르스토프는 헝가리 작가이다. 무수히 많은 외세 침공을 반았던 그녀도 러시아 창공을 받은 후 스위스로 망명을 했다.가 반 두 개를 들고서. 가방 하나에는 아이의 옷과 기저귀, 다른 가방은 사전을 들고 급하게 떠나야 했다. 남편의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헝가리를 떠나 스위스에 정착을 한 그녀는 이제까지 썼던 언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배웠다. 헝가리어가 아닌 새로 배운 프랑스어로 글을 쓰면서 스스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스위스인들이 친절하게 대해 주었지만 아무것도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그 상황을 그대로 <문맹>속에 담겨져 있다. 이 첵은 바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사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사막, 문화적 사막, 혁명과 탈주의 날들 속에서 느꼈던 열광이 사라지고 침묵과 공백, 우리가 중요한, 어쩌면 역사적인 무언가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나날들에 대한 노스탤지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뒤따른다.(p89)
이해가 되지 않았던 말들. 망명을 하면서 생각했던 일들은 저 멀리로 사라지고 그저 활기 없는 나날이었다. 희망도 없고 변화가 없는 삶의 연속이었다. 먹을 것이 있고 추위를 없앨 석탄도 충분하지만 언어를 잃어버린 것은 너무나 많은 댓가를 지불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프랑스어를 말을 하였지만 글을 쓸 수 없었다. 4살 때부터 읽었던 그녀가 읽지 않고 5년의 세월을 보냈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면서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말을 할 수 있지만 쓰고 읽을 줄 몰랐던 그녀가 2년 후, 우수한 성적으로 프랑수어 교육 수료증을 받았다. 그러면서 프랑스어로 번역되어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자신의 자아를 찾아갔다. 책을 읽던 아이가 모국어를 읽어 적의 언어를 배워서 작가가 되는 과정을 담담히 적어낸 이야기. 사회적으로 역사적 비극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던 자신의 삶을 그대로 <문맹>에 풀었놓았다.
<문맹>의 저자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덜 문학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자신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 아닐까? 역자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사실적인 느낌과 동시에 그녀가 이겨내는 것을 보면서 빠르게 변화되는 곳이 살고 있는 우리도 어느 순간 문맹이 되어감을 느끼게 된다. 잘 모른다고 말도 할새도 없이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문맹이 되어간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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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글에는 작가들 자신의 이야기가 분명 적잖이 포함되어있다고 생각한다. 문맹(자전적 이야기)에는 제목에 이미 자전적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조금 더 확신하게 된것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라는 소설이 작가의 경험 없이는 나올 수없는 글이란 것이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읽는 내내 불편하고 거북해서 머릿속 한켠에 전쟁의 현실은 이것 만큼 비참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책을 보고나니 그런 바람은 무의미해져버렸다.
활자중독이라고 해야할까? 나는 그것(?)을 부러워한다. 예전에 무릎팍도사 라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당시 안철수(지금의 정치인)대표가 본인은 눈에 보이는 글씨는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고 했었다. 심지어는 책의 머리말부터 뒷장의 책값까지 읽어야한다는 것. 나도 그렇게 보이고 싶은 허세 같은 것이 있었다. 그렇게 보이고 싶다는 것은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의 반증같지만.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녀는 활자중독자 같다. 전쟁때문에 모국인 헝가리를 떠나 스위스로 이주하면서 본인이 느끼는 자신의 모습과 역경을 '문맹'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했다. 물론 내가 영어권에서 영어를 배우고 영어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면 지금까지 20년 넘게 영어를 배워오면서도 이렇게 영어를 못하진 않겠지만, 지금껏 내가 써왔던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언어를 써야한다면? 그나마 영어권이라면 좀 나을테지만, 러시아어 처럼 나에겐 완전 생소한 그런 언어라면?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사람은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줍잖은 경험으로 영어권 나라에 몇개월 체류한적이 있다. 한국인인 가까운 언니가, 어느정도 머무르다보면 한국어도 생각나지 않고 영어도 생각나지 않아 너무 답답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그걸 극복해야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 생활이 견딜만해 진다고 말한적이 있다. 작가가 새로운 나라에서 느낀 감정으로 백분의 일이라도 느낀 것일지는 모르지만, 타국에서 느껴야 했던 외로움과 언어의 답답함이 느껴져서 슬펐다.
이 책의 글은 짧다. 픽션도 아니고 작가가 경험한 일들을 일기쓰듯 써내려갔다. 담백한 문체가 슬프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 기억에 남는 사람이라면 이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어떻게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 쓰여졌을지 조금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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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만’ 책 목록에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주변의 독자들도 극찬하는 그 작품을 몇 년 동안 다 읽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읽다가 만’ 책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럽다. 초반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말았으니까. 무엇 때문에 아직 완독하지 못한 작품으로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지 다짐하는 목록에 넣어둔 지 오래다. 그만큼 간절하게 읽고 싶은 작품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왜 그 작품을 그렇게 읽고 싶은 건지 이유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저 언젠가부터 숙제처럼, 목표처럼 읽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만들어준 작품이라는 것밖에는. 아무래도 하다가 만 일로 남기기에는 뭔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 끝장을 보고 싶다는 전투적인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어떤 이유로라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읽고 싶은 작품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그런 작품을 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하니 이 책을 먼저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게 된 책이다.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독일과 소련에 침략당한 조국을 목격한다. 체제에 반대하던 남편과 함께 스위스로 망명했다. 생활을 위해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그게 삶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타국 생활에 가장 힘들었던 건 언어였다. 조국의 언어를 쓰지 못하고, 프랑스어를 대하면서 그녀는 문맹이 되었다. 평소에도 이야기를 상상하고 글을 쓰는 게 습관이 되었던 그녀가 마주한 낯선 언어가 그녀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 위험한 망명길에서도 그녀가 놓지 않은 게 사전이었다면 말 다 했지. 어쩔 수 없는 환경에 그녀는 프랑스어를 배운다. 새로 배운 언어로 글을 쓴다. 그녀에게 프랑스어를 배우는 일은 마치 전쟁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해냈다. 비록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셈이지만, 이렇게 기록해냄으로써 그녀만의 싸움을 이겨냈다. 그 과정이 그녀를 어떤 작가로 만들었는지, 잃어버린 기억과 역사를 어떻게 기록해냈는지 알게 하는 자전적 이야기다.
나는 헝가리에 내 비밀 작문 노트뿐만 아니라 처음 쓴 시들도 놓고 왔다. 나는 그곳에 나의 오빠와 남동생을, 부모님을, 미리 알려주지도 못하고 잘 있으라거나 또 보자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두고 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날, 1956년 11월 말의 어느 날, 나는 하나의 민족 집단에 속해 있던 나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73페이지)
조국의 언어를 잃어버린다는 일. 헝가리를 떠나면서, 그곳에 그동안 삶의 모든 것을 두고 떠나오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저자의 말에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이미 한번 겪어왔던 그 순간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조국의 언어는 한 개인의 삶에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처럼 익숙한 것이지만, 더는 그 언어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순간 언어와 동시에 조국을 잃은 게 되어버린다. 나를 지탱해주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모든 것이 되었던 시간과 장소를 잃어버리는 일이, 인생에 얼마나 큰 사건이 되는지... 여전히 외국어를 못 하는 나는 저자의 상황이 너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처한 환경에 적응하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외국어를 거부해도 받아들여야만 했던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 언어를 대하는 초기의 모습이 이랬을까 싶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과 쓰지 못하는 나날을 만들어버린 시간이 답답했을 테지. 그 모든 상황이 개인의 책임으로 만들어진 일이 아니라,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일 때문이라면 괜한 마음에 억울하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배워야만 했던 언어를 대하면서 그녀는 스스로 문맹이라 칭하며 그 시절을 기록한다. 다 알지 못하는 프랑스어로, 짧은 문장으로. 그 글 속에 묻어있는 한 사람의 생이 그대로 들려온다.
뭔가 읽을 것이 있을 때면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나는 계속 읽고, 그러고 나면 울면서 잠든 밤사이에 문장들이 태어난다. 문장들은 내 곁을 맴돌다, 속삭이고 리듬과 운율을 갖추고, 노래를 부르며 시가 된다. (34페이지)
언어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렇게 중요하고,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되어버리는 비중을 차지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간절한 느낌을 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헝가리 국경을 넘으면서 챙길 수 있던 게 달랑 가방 두 개였는데, 그 가방 중의 하나는 아기의 기저귀 같은 용품을 넣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전을 넣은 것이라는 거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순간 그동안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챙겨갈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경제적인 부분을 조금 도와줄 것들을 먼저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나는 이 순간 물질적인 부분을 먼저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사전을 넣었다. 낯선 언어를 대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곳의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일상이 불편해질 것을 알아서였을까. 어쩌면 그녀는 조국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그때부터 타국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생활을 맞이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인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사전을 챙긴 이유가 무엇이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녀에게 언어는, 읽고 쓰는 일은 운명이라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오히려 짧은 문장들 속에서 더 잘 전달되는 감정, 생각이 있다. 문장은 짧고 간결해야 좋다고 말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다 알지 못해서, 잘 몰라서 적어 내려간 그 언어의 표현 때문에 더 분명하게 그녀의 감정이 전해지기도 하지 않았을까. 때로는 말줄임표 속에서 읽히는 게 있지 않은가. 저자의 글에서 언어라는 매개로 전달되는 삶의 굴곡, 역사의 한 장면의 생생함이 있지만, 무엇보다 저자 자신의 간절한 쓰기와 읽기의 목마름이 보인다. 프랑스어가 아니었더라도, 그녀는 그곳에 처해진 어떤 언어라도 습득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쓰고, 읽어야 했으므로. 운명처럼.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 (9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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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먼 길을 떠나 본 자는 알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길이 아니라 돌아갈 곳이 있고 내가 선택할 여지가 있을 때 ‘자유’를 느끼게 됨을. 나는 언어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집이자 돌아갈 곳을 의미하는 조국, 부모, 모국어를 사랑하는 것은 ‘당위’인가. 인간은 진화적으로 ‘보편 문법’(촘스키)을 갖고 있고, 생존 본능으로서 ‘소속감', '공동체의식’이 있기 때문에? '언캐니(Uncanny, 낯익은 낯섦, 프로이트의 유명한 논문 「운하임리히(Unheimlich)」를 영어로 번역한 말)’나 ‘주이상스(Jouissance, 고통 속의 쾌락, 라캉)’같이 모국어로 적당히 표현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 단어를 내가 특별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사대주의나 스노비즘인가. 언어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알고자 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본능과 맞물려 있음을 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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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은 참 특이하기도 하지만, 그 행간에 담아있는 이런 저런 사건들을 미쳐 다 읽어내지 못한듯한 아쉬움이 많다. 그래서, 이 작가의 새로운 책이 나올때 마다 찾아보려고 노력은 하지만, 의외로 우리 나라에 출파된 그녀의 책은 별로 없는듯. 내용은 심플하다. 일단 가난했고, 책을 많이 읽었고, 이십대 초반에 헝가리에서 다른 나라로 쫓기듯 도망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즈음의 정치적 현실과 그리하여,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배우고, 마치 그 언어가 모국어가 된 것마냥 글을 읽고 쓸수 밖에 없음에 은근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뭐, 이 정도 밖에 없다. 왜냐면, 내용은 둘째치고, 이 책의 분량이 너무 적어, 말이 128페이지 큰 활자와 지면에서 사방 테두리는 또 얼마나 잘라 내었는지, 거기에다 중간 중간 빈 페이지로 글과 글을 나눈 것까지 포함하면 한 50페이지는 되려나? 거의 A4용지 한 다섯장 수준. 즉, 30분만 마음먹으면 읽어낼 수 있는 것을 무려 9900원에 판매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싶다. 그것도 '한계례 출판'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말이다. 굳이 책을 만들어 돈주고 팔기보다는 어느 블로그에 연재를 하던지 하여, 읽게 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가 아무런 생각없이 긁적거린 것으로도 의미가 있겠으나, 그렇다고, 돈버는데에 혈안이 되어 이런 것을 책을 묶은 것은 아주 한심한 짓같다. 그래서 이 책은 사서 읽기 보다는 어느 서점 매대에 가서 서서 읽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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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새로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있는 책이었다. 작가가 살아낸 드라마틱한 인생을 짧고 간결하게 써내려간 <문맹>은 깊은 울림을 준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읽은 후의 감동이 <문맹>을 읽으면서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야기의 힘이 아니라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진심이 느껴지는 책이다.
책속에 실린 짧은 시 한편은 더 없이 아름답다.
어제, 모든 것은 더 아름다웠다. 나무들 사이의 음악 내 머리카락 사이의 바람 그리고 네가 내민 손안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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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왔으니 읽어야지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좋아합니다 그 못생긴 표지, 그 표지, 아 그 진짜 그 표지 왜! 그 표지의 고통을 껴안으면서도 읽고 또 읽고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사랑이겠지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기에 기대 많이 했습니다 궁금한 거 많았거든요? 그런데 뭘 알기도 전에 끝나버렸어.. 짧아...선생님...아선생님 더 써줘...더 써줘 제발 더 써줘요....
* "더 실용적인 것은 아주 많잖아 .그렇지 않아?" 여전히 지금도, 매일 아침, 집이 비고, 모든 이웃들이 일하러 나가면 나는 다른 것을, 그러니까 청소를 하거나 어제 저녁 식사의 설거지를 하거나, 장을 보거나, 빨래를 하고 세탁물을 다리거나, 잼이나 케이크를 만드는 대신 식탁에 앉아 몇 시간동안 신문을 읽는 것에 가책을 조금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쓰는 대신에.
* 본의 아니게 의미심장한 발췌를 남기게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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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좋아요. 표지도 멋지고 양장이라 손에 쥐는 맛도 있지요. 게다가 애인이 좋아하는 박도 들어가 있어요. 빛에 반사되는 그 찬란함이란! 그래도 이런 이야기라면 좀 더 가벼운 책으로 싸게 만들면 어땠을까 싶어요. 그래야 사람들이 좀 더 지갑을 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봐야 뭐, 이 나라에서는 읽을 사람만 읽겠지요. *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신문, 교재, 벽보, 길에서 주운 종이 쪼가리, 요리 조리법, 어린이책, 인쇄된 모든 것들을. * 책을 펴자마자 한 사람이 떠올라요. 참... 놀라운 일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