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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타지키스탄 두샨베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이는 저자 소개란의 첫 번째 문장이다. 이를 읽어서는 그와 우리나라 사이에 어떠한 관계도 알 길이 없다. 그의 성은 ‘박’이다. 러시아 한인 5세. 1.5세만 되어도 외국어를 모국어 삼아 살아가는 이들이 다수다. 5세라니 그의 선조가 우리 땅을 떠났을 무렵까지의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길게 느껴진다. 일종의 선입견이 내 안에 굳건히 자리잡아서인지 그의 글은 이국적이었다. 태어나길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으므로 이는 그가 지닌 정체성과는 별개로 당연한 일이다. 그가 대한민국에 어떠한 감정을 품고 있으며, 평소 얼마나 자주 이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그는 자신이 속한 세상을 노래할 권리를 지녔다. 문학과 회화, 이 두 가지의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저자다. 그 사실을 알고 접해서인지 소설 속 인물이 저자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는 두 개의 작품이 수록됐다. 하나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과가 있는 풍경>이고, 다른 하나는 <해바라기>다. 이야기는 서로 다르며, 등장인물 또한 상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의 공통점을 꼽자면 때 묻지 아니 한 인물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첫 번째 작품의 주인공격인 드미트리의 행동에는 준비성이랄 게 없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며, 그로 인해 약간의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매끄럽고 보드라움이 절로 느껴지는 한 여인의 손으로 향했던 그의 시선.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가 제 손을 물끄러미 한 동안 바라보고 있다면 거부감이 들 터이다. 어디 그 뿐인가! 그는 어느 집의 마네킹을 사람으로 착각한 나머지 훼손하고야 만다. 당시 그는 마네킹에게 근처 카페에서 차라도 한 잔 마시자는 제안을 하려 들려다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볼품없는 겉모습의 그를 세상은 냉대한다. 그에게는 거의 전 재산에 해당한다 해도 좋을 카메라를 담보로 내밀며 신뢰를 얻어 보려 하지만 그에겐 소중할지 몰라도 다른 이들에겐 아니다. 이후 찾아온 행운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감정에 충실한 그의 모습이 여실히 읽힌다. 딱히 양심까지 언급한 건 아니지만 그는 스승의 작품을 매개로 돈을 벌려 들지 않는다. 아무도 누가 진정 그 사진을 찍었는지 문제 삼지 않음에도 그는 우직하게 사실만을 입에 담음으로써 자신이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의 일부를 포기한다. 고기는 먹어본 자만이 즐길 줄 안다는 말처럼 행운을 누려본 적이 드문 그는 행운을 온전히 독점하는 일에 서툴다. 부랑자에게 돈을 건네는 그의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기란 쉽지가 않다. <해바라기>의 등장인물도 마찬가지다. 끔찍하게도 그는 지뢰 폭발 사고로 열여덟 살에 장애인이 됐다. ‘그로즈니’라는 지명을 언급할 때면 사람들은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이 그에게 쏠렸던 양 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심지어 그는 가족도 없다. 외삼촌이 있긴 했지만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다. 그가 택한 것은 인형극이었다. 직접 무대를 꾸미고 인형을 제작해 아이들 앞에서 공연을 펼친다. 삶이 곧 피폐였을 그가 제시하는 동화 속 세상은 역설적이게도 해맑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해 마음껏 나래를 펼친 그를 향해 아이들은 힘껏 박수를 보낸다. 같은 동화를 어른들 앞에서 읊어야 할 때 그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다. 그 대목에서 나는 그의 인형극이 실은 그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아챘다. 꼬마 관객들로부터 그는 자신이 지니지 못한 에너지를 얻는다. 자신이 영영 속하지 못할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아이들은 그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도치 않았음에도, 제공하고 있었다. 세상의 언어를 빌리자면 ‘부적응’일 테지만, 두 인물은 지향하는 바가 분명했다. 자신이 속하지 못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닮은꼴 두 인물에게서 나는 결코 꺾이지 아니 할 자존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소소함의 연속이었다. 굴곡이 심하지 않은 이야기들은 자칫 지루함을 자아낼 법도 했다. 이런 식의 전개에 익숙잖은 나는 하나의 이야기가 끝이 났음에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잠시 방황했다. 왠지 뭔가 후속 이야기가 이어져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완결이 중요했던가. 깔끔하게 정리됐다 여겨온 것들이 실상 마침표가 아닌 적도 많았다. 끝났으되 끝나지 않았으므로 여운이 짙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