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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서 바로 몇장 인가를 읽어 내렸다. 그 간 읽어 왔던 몇 안 되는 삶과 인생을 관통하는 에세이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 들... 하룻 밤을 재워 두고 읽었던 몇 장 뒤 부터 시작하였다. 단 숨에 끝까지 읽어 내렸다. 아니, 읽어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중간 중간 울컥울컥, 펑펑 울고 싶은 순간 들을 눈 가에 그렁하는 것으로 참아내며.. 참을 수 없는 미소가, 웃음이 나기도 하고... 작가가 나였고, 내가 작가가 되는 순간들. 이 책이 나를 그리 만들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책을 끌어 안고 펑펑 울고 나면 정말 개운해 질 것 같다. 작가님은 버스 기사가 맞다. 내가 가끔 타고 다니면서 그렇게 욕하고 뒷담화를 했던 그런 버스 기사다. 그렇기에 그의 글들이 더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시내버스를 탈 때 버스기사들을 향한 나의 눈길이 한 없이 사랑스러워지고 너그러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향한 나의 뒷담화는 입꼬리를 사알짝 올리며 '옘병, 좀 살살 몰으면 좀 좋아~~'로 바뀔 것 같다. 작가님~ 작가님이 좋아하는 거 하시며 사세요~ 버스기사가 좋으시면 그걸... 사진도 계속 찍으시고...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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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시내버스를 모는 기사의 에세이라는
말에 슬며시 호기심이 들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자신의 고향에서 버스기사를 하면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다 이내 지금 전주의 인구가 얼마일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호기심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궁금하기만 했다. 나는 전주에서 초등학교 한 학년과 중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인구가 지금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시내버스 역시 드물기만 했다. 학교까지 10리라고 했으니 대략 4킬로미터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했던 것처럼 걸어서 통학했다. 한번에 가는 버스도 없었지만, 중앙시장을 가로질러가면 버스 타고 가는 것과 별반 차이도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지금은 엄청 변해서 내가 알고 있던 곳들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시내버스를 타 본지도 참 오래된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면서 주로 이용했던 것은 지하철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시내버스를 탄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간혹
시내버스를 이용하기도 했겠지만, 지금의 기억 속에 있는 시내버스는 대부분 고등학교와 대학교 다닐 때의
기억들이다. 생각해보면 시내버스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이 아직도 떠오르지만, 딱히 운전기사와 얽힌 이야기는 없다. 기사의 눈으로 본 시내버스
안팎의 풍경은 어떠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든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지 싶다.
저자는 시내버스를 운전하면서 맞닥뜨리는
승객과의 관계, 노선 별로 달라지는 풍광, 그리고 버스기사의
애환 등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무정차와 신호위반, 난폭운전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버스기사도 하루의 일당을 벌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한 명의 노동자임을 알게 된다. 하루 열여덟 시간씩 차를 운전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때마다
자신 역시 다양하게 반응하는 것을 돌아보며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 모습에서는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세상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겪은 시내버스에 대한 기억은 하도 오래 전 기억이라 공감의 정도는 떨어지지만, 어디서나
있을법한 이야기들이기에 그것들을 바라보며 역지사지로 생각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저자의 글은 애잔하게 다가온다.
책을 읽으면서 버스기사들에게 가졌던
몇 가지 의문이 풀리기도 한다. 잊을만하면 뉴스거리가 되는 승객과 기사의 싸움이라든지, 흔히 승객들이 불평하는 기사의 무뚝뚝함과 물어봐도 왜 대답을 잘 안 하는지 알 것도 같다. 하루 종일 기점에서 종점, 다시 종점에서 기점으로 오가기를 반복하는
권태로운 일상 속에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그들의 삶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모든 사람의 삶에는 나름의 이유와 방식이 있다. 저자의 글은 지금까지 내 시선으로 바라본
그들의 삶을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더불어 내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짐을 느낀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 겨우 살아진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글 역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한 단단한 이야기들이다.
글 속에 나오는 지명들이 우선은 반갑기만 하다. 풍경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앞뒤의 문맥으로 알아차릴 수 있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 있는 광경들이 생각나면 책을 읽다 말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이름도, 얼굴도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그때 같이 뛰어 놀던 동무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립기도 하다. 한 버스기사의 글을 읽으면서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삶을 생각해보고 다른 이들의 삶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타인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버스기사의 눈빛이 너무 좋다. 마치 활짝 피어난 이름 모를 꽃들의 시선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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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님의 삶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열심히 사시는 모든분께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서비스는 마인드가 아닌 몸이 문제이라며 오전에는 선진국형 기사 오후에는 개발도상국형 기사 저녁에는 후진국형 기사 내용과 시내버스가 대학이라는 인생을 성숙시키는게 대학이라는 명언을 새삼 확인하게되었어요 하혁 기사님 허혁 작가님 화이팅!!!!!!! 허혁님께서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야 많은 제 2,3의 허혁님이 살아갈 희망이 됩니다 하혁 기사님 허혁 작가님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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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하게 다가와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현직 버스기사의 에세이. 버스 안에서 바라본 세상과 사람, 자기 성찰에 대한 이야기. “버스는 한번 문 닫으면 돌이키기 어렵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옳고 자기 인식 수준에서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삶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대목이다”, “당신 몸이 앞으로 안 쏠리면 시내버스가 아니다” 등 노동과 경험에서 나오는 힘 있는 언어, 타인과 자신을 깊이 들여다본 성찰의 언어, 때론 모멸과 극한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 찾아오는 해학과 유머의 언어로 가득하다. 약속장소를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려본 사람이라면, 출퇴근길 만원버스에 몸을 실어본 사람이라면, 기사가 난폭운전을 한다고 투덜거려본 사람이라면, 버스 차창을 멍하게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본 사람이라면, 그런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냥 버스기사’인 저자의 글에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
| 세상 살면서 힘들면서도 조그마한 재미를 위안 삼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버스기사님들을 볼 때 조금은 달리 보일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소시민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서로 이해해주고 힘이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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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대체로 단문이지만, 그의 마음은 결코 짧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버스기사의 글이라 쉽게 볼수도있지만 역시나 경험과 경륜은 무시할수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에서 빚어나오는 깊은 철학에서 오는 글들이 굉장히 살아 숨이 쉰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무심결에 지나쳤던 버스 운전기사님의 어려움, 그안에서 느끼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볼수있는 시간이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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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그냥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이 좋았다. 노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니 그냥 좋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노동의 힘듦과 대단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공감하며 읽었던 것 같다. 최근에 패터슨이라고 매일 시를 쓰는 버스 기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본 직후라서 그런지 글을 쓰는 버스기사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버스에 타서 빨리 자리에 앉으려고 노력했던 승객이나 반대편에서 마주 오는 버스기사들의 수신호를 눈여겨 본 사람들이라면 더욱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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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화가 날까요?'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 인간의 대표적인 능력 중에 하나는 '예측'입니다. 2만여전 인류는 사바나에서 포식자들을 피해 사냥하면서 내 앞에 있는 저 동물(사자)은 나에게 유해한가? 무해한가?를 예측해야 했습니다. 또는 내 앞에 나타난 저 사람은 나에게 우호적인가. 적대적인가를 예측해야만 했던 거지요. 예측의 성공유무에 따라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기때문에 우리는 예측이 빗나가면 화가 나도록 진화되었습니다. 출,퇴근시 사무실에서 A와 인사를 하면서 저는 예측을 합니다. 인사를 서로 나누며 얼굴을 쳐다보며 여운을 느끼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A는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고개를 '홱' 돌려버리며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모니터를 응시합니다. 예측이 빗나가는군요. 물어볼 것이 있어서 옆으로 가서 불러봅니다. "B씨"라고 부르면 "네" 라고 대답하고서는 하던 일을 마저 하며 몇 초의 간격을 두고 그제서야 고개를 돌립니다. 대답과 함께 나를 바라볼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갑니다. 전주시의 한 버스기사 허혁은 버스기사 초년생일때 매일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예측을 합니다만 번번히 실패합니다. 예를 들면 버스에서 전화하는 승객이 너무 신경쓰여서 운전에 집중이 되질 않는거죠. 고민끝에 선배에게 의논하면 '자네가 너무 예민한 편이고먼' 이라며 오히려 나무란다고 합니다. 수많은 인간군상들을 버스에 태우고 다니는 7여년의 버스기사 생활을 보내며 허혁 작가는 깨닫습니다. 삶이 징그럽고 고독하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옳고 자기 인식수준에서는 최선을 다할 뿐' 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질곡으로 가득찬 버스기사의 이야기는 늘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면서 들었던 궁금증을 해소해줍니다. 늘 승객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다가 기사의 관점을 들여다보니 그들 나름의 이유가 납득이 되는거지요. 그리고 이 책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보며 '예측의 범위를 넓혀 화가 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라'라는인사이트도 느낍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책의 말미에 있는 에필로그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그가 쓴 에필로그를 보면 글쓰기가 자신의 무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걸 느낍니다. #허혁 #수오서재 #버스기사 #김민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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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기사님들을 보며, 내가 먼저 이래도 되는걸까 생각이 들곤했다 웃지 않을 권리도 기사님의 권리인걸 그들의 화장실과 식사 그리고 반복적인 지루함과 배차 시간을 맞춰야 하는 압박감 매 정류장마다 타고 내리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는 긴장감 이 것들을 알고나, 쉬이 싫은 소리를 하며 살아가는걸까 버스기사님 뿐만 아니라 공장의 노동자, 건설 노동자 등 개별화 된 삶의 이야기들이 진정한 인문학이라는 생각이 부쩍 들었다 버스 아저씨가 왜 그럴까 그럴 수 밖에 없는 삶의 조각과 마음의 퍼즐들이 조금씩 맞추어져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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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이 없는 지역에 살아서 버스를 자주 이용했었는데, 불편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특히 등하교시간이나 주말 같은 경우는 기사님이 더 날카로워지는 걸 느꼈다. 짐을 한아름 싣고 타는 어르신들에게 왜 저렇게 불친절하게 말할까? 깜빡하고 벨을 늦게 눌렀다면 조금 지나쳤지만 그래도 멈춰주면 되는 것 아닐까? 어디 가는 버스냐고 물어보면 맞으면 맞다 아니면 아니다 정도는 말해줘도 되지 않나? 등등. 그 원인은 장시간의 노동에 있었다. 물론 승객 한명한명 눈인사를 해주거나, 내릴 때 조심하라고 하시는 친절한 기사님들도 계시지만, 일을 할 때 모두가 친절해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열여덟시간 동안의 노동이라니. 한시간 남짓 운전을 해도 종아리가 저릿해오는데.. 항상 승객입장에서 불평만 했었는데, 이제는 버스기사님 선글라스 속의 고된 눈을 보아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