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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읽는 유미리의 작품. 몇 장 넘기지 않아 이 책도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처음의 신선함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과 어느 작가가 자전적인 것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것은 유미리 시리즈 중의 한 편이다. 비슷비슷하다면 이어진 단편, 외전, 혹은 에필로그라고 생각하기로 하자.
풀하우스, 콩나물 이 두 작품 모두 어떤 미미한 감동도 느낄 수 없었다. 가족의 붕괴 같은 것도 잘 모르겠다. 가족의 붕괴라기보단 붕괴된 사람들이 마침 가족인것 같은데. 그저 이상한 사람들이 나와서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황당한 삶을 살아가는 얘기였다. 상을 주는 사람의 안목이란 무엇인가 다른 모양이다. 아니면 나 혼자 무언가 다른 이질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풀하우스보다는 콩나물을 좀 덜 지루하게 느꼈는데, 역시 등장인물들이 이상한건가 아니면 그들을 존재하지 않는 허상으로 느끼는 내가 이상한건가 하는 자문을 계속했다. 모두가 비정상적인 사람들만 나오는 것 같았다.
다만 한가지, 불륜이란 소재는 진부하다라고 생각했는데 그 상황만큼은 진실성 혹은 현실성 있게 다가왔다. 아니 상황이라기보다는 그 현기증 나는 상태라고 해야할까. 밤새 시험공부하고 학교 다녀오는 지하철에서 앉을 자리는 하나도 없고, 마침 나타난 아줌마는 지옥간다며 옆에서 계속 말시키는 것 같은 그런 고문같은 느낌.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그저 잠자코 모친의 눈을 마주 바라봤다. 모친도 나를 바라보았지만 문득 시선을 비껴 우롱차를 탄 위스키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게 몇 잔째인가? 의식이 꽃가루처럼 날아 흐트러졌다가 천천히 흡수되어 가는 느낌이다. 뭐가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는 기분과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기분이 번갈아 엄습한다. 오늘 이 집에 발을 들여 놓을 때는 사내와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지만, 주저하고 있는 것은 사내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사내의 모친에 대한 반발에서다. |
| 표지에 보면 '1997년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 유미리의 화제작' 이라는 거창한 태그라인이 붙어있는데, 나의 경우 일본 문학 특유의 담담함을 원래 선호하는 데다가 '가족파괴상' 을 그린 소설이라는 말에 호기심을 느껴서 읽게 되었다. 우선..여백이 많이 잡혀있고 활자 크기도 크고, 단편소설 두 편이 수록되어 있는 터라 적당히 얇은 문고본이다. 그리고 표지에는 왠지 때가 탄 듯 한(?) 습기에 절어 곰팡이가 핀 듯한 거뭇거뭇한 무늬가 들어가있는데, 어찌나 리얼하던지 나는 그게 원래 디자인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지우개로 지우고, 물로 닦았었다. 표지디자인... 깔끔하면서도 왠지 굉장히 더러운 느낌이 든다. 내용은.. 역시 '일본문학 답다' 는 느낌이 드는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그냥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 특유의 담담하고 간결한 분위기. 그런데, 너무 어려워서 도통 이해를 못하겠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불분명하게 전달되는 것 같다. 내게만 그런건가... 아무튼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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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수상작이 정말로 일본에서 권위있는 상인가? <풀하우스>를 포함하여 몇 권의 아쿠타가와 수상작들은 번번히 나를 실망시켰다. 번역이 허술한건지 유미리의 문체가 허술한건지 무거운 주제와는 달리 엉성하고 허약한 문장들로 일관해 지나치게 평이하게 읽혔다. <풀하우스>와 <콩나물>은 모두 비정상적인 가정을 그리고 있는데 일본적인 정서가 강해서인지 나에게는 생소하고 잘 맞지 않았다. 같은 나이의 사분의 일 한국인인 사기사와 메구무의 가족소설이 좀 더 곱씹어볼 맛이 난다.
개인적으로 <콩나물>이 더 재미있었지만 작품의 완결성 면에서는 <풀하우스>가 나았다. <콩나물>에서 히로세의 처 요코가 전화로 매니큐어를 추천하는 부분은 꽤 신선하고 유미리 특유의, 비극 속에 내재한 희극적 요소로 보여 눈길이 갔다. 처음 콩나물이 자라는 부분을 묘사한 것도 상징적이고 섬세했다. <풀하우스>는 플롯은 단순했지만 결말의 강렬함을 위한 것이라는 작가의 의도로 짐작됐다. 두 작품 모두 어떤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구차함이 없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러나 하루키와는 달리 파편화된 에피소드들이 완벽한 하나의 주제를 향해 수렴되지 못하고 어느 정도 난삽한 느낌을 주었다. 깊이가 없는만큼 별로 할 말이 없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빛은 없다. 숨이 막히는 더위와 먼지 냄새만 차 있다. 조용히 다른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콩은 물과 어둠을 빨아들여 부드러워지고 모든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불어넣는다. 처음에 뿌리가 나온다. 약간 보라색을 띠지만 끝은 이슬처럼 투명한 백색. 뿌리는 물을 찾아 뻗는다. 콩은 침묵을 깼지만 동시에 침묵을 지키려 한다. 콩의 표면은 점차 검게 되고 주름이 생기고 이윽고 파열된다. 뱀이 허물을 벗듯 표피를 벗어간다. 그리고는 노란 콩은 서서히 머리를 숙인다. 아홉 가닥으로 갈라진 가는 뿌리는 아직 발아하지 않았지만 물을 얻으려고 혹은 잡아 뽑히는 걸 경계해 사방으로 뻗어간다. 콩은 일어나고 빛을 찾아 줄기를 뻗는다. 빛은 없다. 줄기는 더욱 뻗고, 머리 위에 모자처럼 씌워져 있던 표피가 떨어져 나간다. 소리는 없지만 모든 것을 흘려듣지 않겠다고 귀를 기울인다. 콩 한 가운데의 힘줄은 빈틈이 되어 깊어져 간다. 콩은 둘로 갈라지고 떡잎이 된다. 줄기는 빛을 찾아 더욱 뻗지만 빛은 없다. 뿌리는 물을 찾아 더욱 갈라지나, 물은 바싹 말라 있다. 떡잎은 좌우로 퍼져 조름진 노란 본잎을 내보이게 한다. 잎의 무게를 못 이겨 줄기는 옆으로 기울어져 간다.풀하우스>콩나물>풀하우스>콩나물>콩나물>풀하우스>풀하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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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미리를 알게 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지금이야, 그녀가 97년도에 아쿠타가와 상이라는 일본 최고 영예의 상을 거머쥐어 화제가 되었던 한일교포2세라는 사실을 알지만, 그것은 불과 1달전만 하더라도 몰랐던 사실이다.. 고백하건데, 그녀의 작품중 내가 가장 먼저 읽은 것은 "남자"이다. 그 책은 그녀의 개방적인 성의식을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매우 농도짙게 표현하였다 하여 또 한번의 화제를 일으켰다.
내 친구중 한명이 그녀의 팬이고 그녀가 유미리의 여러 작품을 읽었는데 이번 책은 약간 색깔이 다르다 하였다. 유미리의 책이라곤 남자밖에 읽어보지 않은 나는 물론 얼마간의 선입견을 갖고 이 책을 볼 수밖에 없었다. 풀하우스. 이것이 내가 두번째로 읽은 그녀의 책이다. 사실 가족시네마를 제일 먼저 보고 난 후 다른 작품들과 함깨 더불어 이 풀하우스를 본 후 달라진 성향의 남자를 보았어야 그것이 정도였을 것이나(뭐, 독서에 정도란 없다고 누군가 그러긴 했다..^^) 반대로 읽었으니 길이 굳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 길을 완전 역행한 셈이다.
그러나,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좋았다. 남자도 흥미있게 읽긴 했으나 무언가 공감을 느끼고, 가슴이 아리고..이런 감정을 가지진 못했는데 풀하우스는 달랐다.(초창기부터 그녀는 순수문학을 지향했고 사실 그런 작품을 썼다,물론 그랬기에 아쿠타가와라는 명예로운 상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우선 유미리의 문체 자체가 주는 그 독특한 외로운 감정이나 쓸쓸함..부터가 이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를 잡고 있었고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같은 배경지식을 어느정도 알게 되자 더욱 공감이 가 울적한 마음까지 들었다.
외모도 문체도 모두 일본인의 것이었다...감성도. 그러나 왠지 그녀의 외로운 미소에서 나는 동질감을 느꼈다. 유미리는 과거가 좀 복잡했다. 가족의 어느 한쪽을 번갈아 따라 다니며 살면서 많이 옮겨다니기도 하였고 이지메에 자살시도도 여러 번 했다고 하던데, 그녀의 사진을 보면 각각의 사진마다 웃고 있는 것이나 무표정한 것이나간에 쓸쓸함과 시련의 상처가 배여 있었다.(찡그리고 있는 것은 물론 없었다)
뿔뿔히 흩어진 가족을 다시 모으기 위해 집을 짓고 그 집에 와서 사는 다른 가족과 아버지..이를 냉철히 지켜보는 딸의 시선으로 "가족"의 개념에 색다른 느낌을 불어넣어 준 풀하우스와, 성불구가 된 남편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의 거듭되는 밀회를 가진다는 내용의 콩나물. 모두 통속적으로 '정상'이라 생각되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그것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유키리의 어린 시절과 그녀의 가족의 모습들..이로 인해 그녀에게 박힌 가족의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된 것이 아닐까..
현대인의 가족 파괴상을 그렸다고 하는데..내가 보기에는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얼핏 "실패한"가정을 나타낸 것처럼 보이나(특히 풀하우스) 나에게 그것은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였다. 돌아오지 않을 아내와 딸들의 편지함을 자신의 것과 함께 만들어 놓은 남편..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큰딸. 얼핏 반항스럽고 아버지를 증오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하는 둘째딸의 모습에서까지 나는 하나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따뜻하고 인간적이지 않은지.
또 큰딸은 새로 들어와 살게 된 (말하자면 얹혀사는) 가족에 대해서도 냉정하고 일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는데, 거기에서 그 집의 딸인 소녀의 등을 밀어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과정에서도 사실은 모성을 느끼며 애틋한 가족애를 원하는 그녀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에는 유미리, 그녀 자신의 심연의 뜻이 아니었겠는지..하면서 오늘도 또 나 혼자만의 어처구니 없고 제멋대로의 해석을 해본다. [인상깊은구절] 한밤중에 꿈을 꾼 듯했지만 일어났을 때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햇빛은 점점 강해지고 그림자는 짧아진다. 가늘게 눈을 뜨자 옆집 나무의 잎들이 고개를 끄덕이듯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소녀의 모습은 없었다. 손바닥에는 어젯밤 몸을 씻을 때 소녀의 앙상하지만 부드러운 살결에서 느낀 촉감이 아직 남아 있디. 나는 소녀의 머리가 남긴 움푹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