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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는 자라오면서 입은 지독한 상처를 양분으로 하여 소설을 쓴다. 그녀의 소설은 지독하게 환상같고 덜마른 딱지를 헤집어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녀는 길고 긴 어린시절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그 악몽을 그대로 옮긴 것, 그게 그녀의 글이다. 유미리의 소설을 깊이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녀가 양분으로 삼아 흡수하고 있는 그녀 개인의 과거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녀의 과거는 그녀 혼자의 과거가 아니다. 그녀의 부모, 그 부모의 부모, 그리고 그 위의 아득한 부모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재일교포의 과거다. 유미리의 부모는 그 근원이 어디인지 모른다. 부모의 과거가 가로막히면서 자식들 역시 근원을 모르고 헤맨다. 재일교포들은 '남의 나라'에 머무르고 있다는 이방인의 의식을 떨치지 못한다는데, 유난히 예민한 유미리는 더했던 것 같다. 일관적인 사랑 대신 때론 정신분열증처럼 보이는 사랑과 폭력을 번갈아 줬던 아버지, 자식들을 내버리고 애인들과 도망치고 술집에 나가는 어머니, 그들의 애인을 지척에서 보고, 학교에서는 왕따로 찍혀 고문당하다시피 하는 생활. 과거를 읽으면 읽을 수록 도대체 어떻게 이런 악몽 속에서 살아왔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녀의 소설이 매우 생생한 것은 그 상처를 고스란히 안아 글을 쓰는 것으로 풀어놓기 때문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네다섯 살 대부터 줄곧 도망자였다. 미국의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조 루이스가 <링에서는 도망칠="" 수는="" 있어도="" 숨을="" 수는="" 없다="">라는 말을 했는데, 나 역시 숨지는 않았다. 그렇다, 그저 도망쳤을 뿐이다.링에서는> |
| 유미리의 작품들은 모든 글들이 전적으로 자신의 삶인양 표현되기 때문에 때론 가볍게, 때론 너무 무거운 생각들을 어우러지게한다. 그녀의 생활과 그녀의 과거, 그녀의 부모들. . . 그리고 그녀의 조상들 모두에 대한 비교적 객관적인 자세에서 담담하게 써내려간 <물가의 요람="">은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했다. 이 작품은 <석영초>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제목만 바꾸어 펴낸 것이다. 제목을 바꾸게 된 이유는 해변가 모래 속에 반쯤 파묻힌 유모차가 자신의 기억의 망막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가 말을 했다. 이렇듯이 그녀의 작품은 눈에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 느껴지는 것들을 그 자리에서 그저 술술 글로 엮어내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작품 속에서는 자신의 어머니나 아버지의 출생과 그들의 평범하지 않은 사상과 생활들, 일본내에서 한국인들이 살아가는 모습, 일본 안에서 한국인들의 위치라든가, 그녀가 그동안 태연히 엮어낸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과 생활들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자신의 가족 소개 및 생활 소개를 비교적 상세히 지루하지 않은 문체로 술술 엮어가되 절대 가볍지 않은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묘하게 일치감을 느끼게 하는 것들은 그녀의 독특한 생활 표현 방법이다. 우리가 부담스러워할 부분들을 그녀는 쉽사리 이야기하고,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엮어낸다. 솔직하다는 표현 자체가 진부하게 느껴질 거 같은 유미리의 글. . . <물가의 요람=""> . . . 일본에 주기엔 아까운 작가입니다.물가의>석영초>물가의> |
| 개인적으로 유미리의 팬이라서. 두 권의 책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권이다)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글과 그 글의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 굳이 찝어내자면, 그 책은 표지가 더 고급스럽고 유미리가 유명해진 이후의 글이라 상태도 신경을 썼고, 예전의 이야기들이 더욱더. 짤막하게 줄여져 있다는 것. 사실, 처음 드는 생각은 "아니, 이제 돈이 없나." 였다.. 유미리의 자서전을 사고 싶다거나 성장배경을 알고 싶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쪽을 추천한다. 비록 오래되어서 질도 좋지 않고 애매한 상태이지만 축약된 에세이보다는 흐름이 좋고 솔직한 글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