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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가끔 일상 생활에서 지칠때가 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바로 "여행"이다. 그래서, 몇번 여행을 갔다. 가끔은 큰 도시로 또 가끔은 시골로 여행을 다녔다. 많은 여행들이 기억에 남지만, 기억에 남는 여행들중에 하나가 바로 인디언 구역 여행이다. 미국에서 우연히 참여하게 된 여행인데 첨에는 무척 기대감이 높았다. 그런데, 인디언 구역은 큰 버스로 갈수가 없어서 작은 지프차로 이동했다. 반사막의 도로를 오픈된 지프차로 달리는 와중에서 날리는 붉은 모래를 엄청 삼켰다. 기대감은 사라지고, 얼른 지프차로 내리고 싶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Monument Valley (모우먼트 벨리)는 너무 아름다웠다. 황량한 붉은 사막이었지만, 그 황량함이 오히려 내게 꿈틀대는 무언가를 일으켰다. 인디언들이 그린 벽화가 있는 동굴도 방문했는데, 난 그곳에서 모닥불을 켜고 밤하늘을 보고 싶었다. 이 기억은 내게 좀더 미지의 곳에 대한 여행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그래서, 이 책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 책은 원시의 자연을 찾아나선 한 여성의 기록이다. 나와 같은 여성이 원시 자연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제약이 있다. 그럼에도 7년간이나 여행을 유지하였고, 자연속에 동화되었다. 작가는 밀림숲속, 얼음의 땅 빙하, 바다로 둘러싸인 섬, 온몸이 말라갈것 같은 사막, 고산병으로 고생하면서 오른 산, 조용한 불교 사원등으로 전방위로 돌아다녔다. 그녀는 야생의 부족을 만났고, 야생의 자연을 만났고, 야생의 자신을 만났다. 정확히 그녀와 100%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녀의 느낌을 조금은 이해할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Monument Valley (모우먼트 벨리)로의 여행이 없었다면, 이정도의 이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황량한 붉은 사막을 보고 꿈틀되는 그 기운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저 부러움과 그리움, 질투심으로만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또한 서부영화의 배경이 되어야 했던 이유를 느낄수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또다시 그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그와 동시에 두려움이 자라난다. 사진도 없는 이 불친절한 책이 나에게 "넌 어때"라고 묻는 것 같았다. 분명한 것은 난 제이 그리피스처럼 여행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녀보다 덜 용감하고, 더 안정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게나마 인생의 무게감과 더러움을 털어내야만 할때 이와 비슷한 여행을 하고 싶다. 자연과 원시를 느낄수 있는 곳을 가고 싶다. 특히 사막의 밤 하늘을 꼭 보고 싶다. Monument Valley (모우먼트 벨리)에서 그 동굴에서 모닥불을 켜고 밤하늘을 보면서 인생의 설움을 별들에게 한탄하고 싶다. 이 책은 반 문명에 대한 찬양이며, 무의식 깊은 곳의 본성을 자극하는 책이었다. 원시의 자연을 보고싶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 책을 펼쳐보지 말기를 권한다. 하지만, 동물의 왕국등 자연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게 보았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세상이 도시문명을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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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이 그리피스의 <시계 밖의 시간>(당대, 2002)을 읽으면서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경험을 했다. 이번에는 나의 어떤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해부되고 박살날까? 이런 막연한 기대감으로 이 책,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을 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문명과 원시에 관한 나의 고정된 시각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경험을 했다. 이 책은 단순한 오지 여행의 체험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인간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야생성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시작한다. 그녀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물질의 네 가지 원소로 생각했던 흙, 공기, 불, 물, 여기에다 얼음이라는 요소를 추가해서 여행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삶의 근원을 찾아 험난한 7년 동안의 여행을 떠났다. 그 여행에서의 사유(思惟)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땅(흙)! 우울증으로 영혼의 길을 잃은 그리피스는 아마존을 여행하면서 그곳 주술사로부터 ‘아야와스카’라는 강력한 환각성 약물을 받아먹는다. 그것은 마치 독미나리를 마시듯 말할 수 없이 역겹고, 별을 마시듯 눈부시게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p. 29). 그녀는 아마존의 야생성을 경험한 것이다. 야생의 숲이 얼마나 생명력으로 넘쳐나는지, 만물이 섹스를 한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기독교로 문명화된 세상에서는 사악하다고 폄하되고 억압된 것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야생성에 진정한 생명력이 넘실댄다고 주장한다. 얼음! 북극은 파도가 얼음바다 밑에서 물결치고 빙산에서는 먹먹한 소리가 나는 음향의 세계다. 저자는 이누이트(Inuit)가 많이 사는 누바부트(Nunavut)로 여행을 떠났다. 북극은 황량한 황무지가 아니다. 북극의 혹한 속에서 이누이트는 오히려 그 자연에 안기는 삶을 산다. 저자는 빙하가 깨어질 때, 정신의 단층을 따라 엄청난 비명소리를 듣는다. 그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어붙고 침묵했던 마음이 분노를 터뜨리며 산산이 부서져야 진정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야생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물! 저자는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Sulawesi) 섬 근해에 바다 생활을 하는 바다 집시 바조(Bajo) 족을 찾아갔다. 그들을 통해 자신들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 세상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바다는 언제나 시작으로 넘친다. 죽음과 생명이라는 상극의 연인이 바다 침대에서 뒹굴 때 모든 생명이 시작된다. “바다에는 경이로움과 영광 그리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종류의 정신을 지닌 고운 광택이 나는 짙은 남색의 야생성이 존재한다”(p. 371). 불! 저자는 호주의 그레이트샌디사막(Great Sandy Desert)을 찾아 갔다. 그곳은 유럽인들의 지도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고 단조로운 지형으로 그려져 있지만, 원주민 예술가들에게는 색과 생명력, 움직임과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그 사막의 모래는 영원성을 암시하고 모래언덕의 교차는 현재성을 암시한다. 그 곳 원주민들은 불의 전문가들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산불처럼 사방을 뛰어다니는 유목민의 충동이 있다. 바람(공기)! 저자는 제대로 된 지도 한 장 없이 웨스트파푸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한 때는 식인종이었던 사람을 만나 자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는 자유를 발음하는 순간 야생의 공기를 울리는 힘을 느꼈다. 길들여지지 않는 영혼은 바람과 같다고나 할까? 희극! 저자는 마지막으로 야생의 정신으로 희극이라는 챕터를 추가했다. 연인이자 친구였던 사람과의 이별은 그녀를 정신의 황무지로 거칠게 내몰았고, 결국 그녀는 외몽골의 불교 사원으로 갔다. 주술사도 만났고 자살도 생각했다. 그녀는 기독교가 현재의 삶을 무지개빛에서 회색빛으로 바꾸었다고 비판한다. 희극처럼 삶은 가볍고 자유로우며 야생성을 회복해야 한다.
제이 그리피스는 7년간의 여행을 통해 원시의 땅과 하얀 얼음이 우리의 존재를 얼마나 포근하게 감싸는지, 물과 불의 강렬함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에너지를 주는지, 원시의 바람이 우리를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 느꼈다. 저자는 우리가 존재의 근원에 있는 야생성, 그것을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문화와 문명이라는 기치 아래 억눌리고 파괴된 원시의 야생성, 그것은 다시 회복되고 활짝 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는 작가의 말에 일면 동의하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원시와 야생성에 대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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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굉장히 단백하다. 대부분 단문이다. 서사가 사유로 넘어가는 간극에서 깊이가 느껴진다. 단어의 선택에도 거침이 없다. 단어를 해체시키면서 사물의 형상은 오롯해진다. 저자는 원주민들의 언어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원주민들은 주로 자기 부족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다가 중간에 자신들의 언어에는 없는 단어들을 말할 때는 그들의 지배어를 사용한다. ...... 그들의 언어는 막히지 않은 광대한 야생의 자연을 표현할 수 있으나 자연의 시간에 울타리를 치고 야생의 땅을 측정하지는 못한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이 이러하다. 야생의 땅과 숲, 바람, 물, 불.... 읽으면서 광대한 야생의 느낌이 났던 것도 저자가 선택한 언어에 있었음을. 야생의 삶에서 소유를 위한 울타리나 땅에 대한 측정은 언어에서 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의성어에 대한 부분도 나오는데 그는 모든 언어의 의성어가 자연 세계를 반영한다며 이런 예를 드는데 정말 놀랍다. 우리 한글의 과학성이 이렇게도 증명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예를 들면 “올빼미는 어둠 속에서 ‘아울’하고 운다. 강물은 강둑에 ‘철썩’하듯 혀에서도 철썩거린다.” 가만히 읊조려 보라. ‘철썩....’ 정말 우리의 혀끝이 강둑에 닿은 강물처럼 출렁인다는 사실. 언어에 대해서는 영어적 해석도 많았는데 영어의 단어가 은유와 암시가 함축된 정말 멋진 언어라는데 새삼 놀랍다. 책을 읽으면서 바람의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그 바람은 깊은 산에서 맑은 공기들과 노닐었을 것이고 작은 꽃봉오리가 붉은 꽃을 활짝 펼칠 수 있도록 토닥여 줬을 것이고 이른 아침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어린 뱀을 보호하려는 어미뱀의 살갗에서도 잠시 노닐었을 것이다. 꼭 야생과 아마존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닐 것임에도 숲에 대한 경이로움은 그녀가 쓰는 언어에 적절히 순응하는 듯 아름다웠다. 나는 가끔 내가 여자라는 것에 불만을 품을 때가 많다. 오지에 대한 체험이 어려운 것도 내가 여자라는 약한 성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의 저자인 제이 그리피스는 나와 똑같이 생리를 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아마존이라는 곳이 그렇게 만만하겠냔 말이다. 그런 그녀도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이 아마존의 도시와 마을이었다고 말한다. 악취와 비위생적 생활, 이상한 술에 절어 사는 사람들, 고산병과 구역질나는 두통. 그럼에도 그녀는 아마존의 자연 속에서 치유를 경험한다. 더불어 아마존의 정글은 여성성과 아주 가깝다고 말한다. 메스티소 조각가의 말을 빌어 “숲은 여성입니다. 왜냐하면 파괴적이고 변화무쌍하며 비옥하고 관능적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적절한 표현을 한다. 여성성과 야생성의 오묘한 조화가 아주 그럴 듯하다. 인간이 어떻게 흘러왔고 흘러가야하는지 인문학적인 견해도 아주 풍부했다. 상당히 두꺼운 책이지만 아주 술술 익혔다. 무엇보다도 우주와 자연과 신화와 인간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웠다. 인간의 야생성과 사나움, 폭력, 위험 등을 근원적으로 설명하는 아주 괜찮은 책이었다. 언어가 살아서 숨 쉬고 팔딱거리는 느낌이 손에 잡힐 듯 경쾌하다. 2012년 신년 참 괜찮은 책을 만나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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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여행기라고 가볍운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는데, 이 책을 읽을수록 나는 여행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해왔던 게 과연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인가 의심하게 되었다. 이 책 속의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며 더더욱 나는 여행을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구나, 여행을 했었다면 배워어야 할 무언가를 하나도 깨우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여행을 체험하지 못했다는 것을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순간마다 체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여행이라고 불러왔던 어떤 시간 동안에 내가 얼마나 오만하게, 태만하게 굴었는지 반성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새해 첫번 째 책이었다. 제목도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의미를 알 수 없었고, 노란색 띠지에 큼직한 글씨로 누구의 추천책이라고 알리고 있는 것도 딱히 매력적이지 않았었다. 그랬었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일단 읽어봐야 한다. 읽어보면 알게 된다. 일단 몇 페이지만 읽으면 단숨에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에도 수긍하게 되고, 띠지에 적혀있는 추천글에 공감하게 된다. 반 정도 읽고나서 띠지에 읽는 글을 다시 읽었었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글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요즘 이 책을 다시 넘겨보고 있다. 그러면서 여행을 해야겠다고, 정말 여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참 좋을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 생각의 단편들을 퍼즐 조각처럼 멋지게 맞춰서 지금 이 순간 짠하고 펼칠 수만 있다면...! 근데 그게 안되서 안타깝다. 다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을 뿐. 7년간의 여정은 책의 두께보다 훨씬 더 무게감있게 다가온다. 그 기간 동안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와 작가 자신의 성장은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돌아보게 만든다. 앞으로도 이 책은 때때로 넘겨볼 것이다. 그리고 내 여행을 바꿔볼 참이다.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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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원시자연을 찾아다니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고 자연을 받아들이며 자연이 주는 무한한 해택과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그 속에서 정글 혹은 추위의 혹한 속에서 살아가는 북극, 그리고 바다 위에서 살아가는 그 곳을 사랑하게 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와 마을을 저자는 황무지라 표현합니다. 자연의 숨결과 순리 그리고 그 들이 만들어낸 법칙에 순종하는 자연의 삶에 비하면 인위적인 도시의 모습은 딱딱하고 메마른 황무지와 같은 곳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원초적인 자연의 모습은 많은 시적인 표현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자연의 야생성을 가진 그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감정은 도시인의 그것에 비하여 많은 자연의 냄새와 특성을 그리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행동을 담아내는 지혜 또한 포함하고 있습니다. 백인들이 눈보라 속에서 죽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눈보라가 칠 때 얼어 죽지 않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상황에서 이누이트의 규칙은 정 반대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그 즉시 멈추고 피난처를 만들고 기다려야 한다.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210쪽) 이누이트의 생활은 철저히 자연에 수긍하는 삶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마존 정글에 사는 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도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 속에서 자연을 이겨내기 위한 가지가지 발명품들을 만들어 내면서 살아갑니다. 그 다른 차이가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행동양식을 만들게 되지는 않았을까 합니다.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생활에 도시의 황무지의 법칙을 전파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는 것 역시 저자의 붓끝에서는 피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거칠게 보이는 자연의 모습에서 인간은 그 자연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에 익숙한 동물이니까요. 전 세계에서 내가 본 선교사들은 사람들을 기독교인이라기보다는 중산층 자본주의자로 개종시키느라 바빴다. (136쪽) 저자는 아마존의 정글에서도 살아보고, 북극의 혹한에서 이누이트들과도 살아봅니다. 바다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도 그리고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도 살아 보면서 이 버려진 땅이라 여겨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그의 시적인 표현은 어쩌면 이야기의 중간에 그림을 상상하고 잔잔함을 상상하고 때로는 매서운 칼바람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장점이자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그 즐거움을 더해주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뿌리는 땅 위에서 잔물결을 일으키고 덩굴은 나무에서 강물처럼 흘러내리며 나뭇잎은 초록으로 빛난다. (80쪽) 바람은 나뭇잎의 의미를 비틀고, 비는 하늘에서 숲으로 다시 숲에서 하늘로 까불고 뛰놀며 언어의 순수한 비옥함을 드러낸다. (50쪽) 바람은 눈 위에 글을 새기고 물 위에 흔적을 남기며, 파 들어가고 기울며 벼랑 끝에 차양처럼 붙어 있는 눈 더미의 긴장을 서술한다. (175쪽) 자연을 표현하는 글에서 풍경을 상상하게 하고 그 움직임을 읽는 사람에게 만들어 주어 마치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풍경화 혹은 영화의 배경을 상상하게 만들어 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멋진 글로 그리고 저자의 힘든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책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자연의 극지 아니 오지라고 하는 그 자연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마도 그 누군가는 이 아름다운 세상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져 좀 더 그 자연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을 늘려 나가기 위해서일 것 같습니다. 야생적인 것은 살 수도 팔 수도 없고, 빌리거나 복제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명백하고 잊을 수 없으며 수치를 모른다. 땅과 얼음, 물, 불, 공기처럼 근원적이고 어떠한 성분으로도 분해되지 않는 순수한 정신, 바로 제 5원소다. 당신의 야생성을 낭비하지 마라.(159쪽)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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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이 책<땅,물,불,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를 선택한 이유부터 설명하고 싶었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이 판타지 같았기에 재미를 위해 선택했고 막상 본문에 들어가서 그것과 다름을 알고는 많이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 책은 편안하게 다닐수 있는 그런 종류의 여행책도 아니었다. 저자는 어디를 가면 어떤 관광거리가 있다는 친절함을 베풀지도 않았고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여행을 해보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땅,물,불,바람과 얼음의 여행자>는 저자 제이 그리피스가 생명을 걸고 겪어나간 고행처럼 느껴진다는 것이 책을 본 내 소감이다.
야생의 땅(숲), 야생의 얼음(빙하), 야생의 물(바다), 야생의 불(사막), 야생의 공기(자유), 야생의 정신(희극)으로 나뉘어진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좋아하는 내게 있어 책으로나마 그녀가 걸어간 길들을 뒤쫓아가며 왜 그녀는 그런 고행을 자처하지에대한 의문을 품지않을수 없었다. 저자에 말에 의하면 자연속의 모든 것들이 그녀를 부르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야성의 천사가 보내는 강렬학 거부할 수 없는 부름이었다.' (p.11)라는 말로 야생의 모든것을 찾아 떠나기 시작한 7년간의 생존의 기록이다. 어렸을때부터 인간의 문명사회에 운연중 훈련되어지고 길들여있던 것을 거부하고 자연으로의 탈출을 시도한 그녀의 용기를 대단하다고 찬사를 던져야 할까?
사람이 물질화된 문명안에서만 살아갈수 있는도 믿는것도 하나의 편견일런지도. 그녀가 다녀온 땅에서 자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을 볼때 사람 또한 자연의 일부분이며 그것에 적응하면서 살아갈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된다. 과연 그녀 제이 그리피스의 어린 시절은 남달랐다. 어린 시절 서재에 꼿힌 수많은 책들중《티베트에서의 7년》이란 책과 같은 여행책을 보면서 머나먼 나라의 꿈을 꾸기 시작했단다. 평범한 나라면 누군가 돈을 주고 시키더라도 절대 하지않을 그런 여행을 열일곱 살때부터 히치하이크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을 시작으로, 그후로 틈(시간)만 나면 자신을 혹독한 고행의 길로 몰아넣기 시작했고 그것을 통해 자연과의 교류를 느껴으며 기쁨을 얻어갔다.
초록의 식물과 언어로 뒤얽힌 아마존 숲과 안데스산맥, 캐나다의 작은 에스키모 거주지, 밤겨울과 낮여름 그리고 가을의 황혼으로 둘러싸인 북극의 빙하, 인도네시아의 바다 집시 마을과 심해, 오스트레일리아의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는 모래사막, 웨스트파푸아의 벌거숭이산, 외몽골의 외딴 사원 등 인간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최소한의 타협만을 하며 살아가는 도시화된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개발되기 힘들 그런 미지의 장소들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곳들에서 그녀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사람만이 자연의 파괴자일뿐, 다른 모든 생명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간다고 믿는 나에게 있어 저자의 말 "오히려 인간의 영혼은 야생성이 가장 뚜렷하게 구현된 형태" (p.16)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네팔, 태국, 웨스트파푸아, 남미지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내가 본 선교사들은 기독교인이라기보다는 중산층 자본주의자로 개종시키느라 바빴다.' (p.136) 자연속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던 그들에게 미개인 또는 후진국이란 이름을 붙이며 문명속으로 끌여들이고 화페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과연 '선물'이며 그들이 바라는 자유일까? 숲에 의지하며 공짜로 얻어왔던 것들을 이제는 일을해 돈을 벌어야하고(누구를 위해 일을 해야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 그런식으로 그들을 숲밖으로 이끌어 내었고 저렴한 임금으로 고용, 상품들을 생산해내었고 그것을 자신들의 나라고 가져갔으니~) 그것을 이용 문명화된 현대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과연 그들은 행복해 졌을까?
책이라는 안전장치를 앞에 두고서야 나는 제이 그리피스가 안겨주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온전히 받아들일수가 있었다. 몸은 현대문명에 예속되어져 있을지라도 정신은 자연속을 누비는 자유로움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책을 통해서나마 그런 자유로움을 받아들일수 있음을 고마워하면서도 도전할 정신적 욕망이 부족함을 부끄러워해야만 했다. "여행에서의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얻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p.404)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로서 여행의 진정한 의미이자 뜻을 전하고 싶다. 여행을 통해 매일 다람쥐 체바퀴 돌듯하는 지루해진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곳 또한 내가 처한 현실과 약간 다른 일상일 뿐이었다.
과연 나는 진정한 자유를 일탈을 시도할수 있을까? 제이 그리피스처럼 극지의 지역을 찾아다니지는 않더라도 인간우월주의로서 이간의 편안함을 위해 자연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대열에 참여할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분으로 나를 인정하고 자연과 타협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갈 길을 찾아야만 하겠다. 사람이 생존해있지않은 오지를 찾아들어가는 용기는 없을지라도 자연과 생존을 함게 할수있는 길에 동참해 갈것이다. 판타지 휴의 책으로 알고 선택했고, 다시 여행책으로 읽어갔으나 알고보니 분류는 인문학이었던 이책에 대해 어떤식의 결론을 내려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것은 각기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 나 또한 내 나름의 몫을 성실히 시행할 나름이다.
'지구는 근엄한 우주에서 자신의 애액에 취해 발광하는 바커스의 여사제, 미친 여자다. 지구는 부라자, 우주에게 자신의 송라인을 불러재끼는 파렴치한 음유시인이다. 지구는 흥청대기다. 지구는 매일 별을 발밑의 등 삼아, 태양을 무대로 곡예를 넘는 서커스다.' (p.654)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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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되어 온 책을 처음 보고 곧 후회했다. 이런 책일 줄이야! 책표지를 둘러싼 띠지에 TV 방송국 예능 PD로 유명한 분이 "이 책은 엄청난 책입니다. 너무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하고 있지만, 직장일이 갑자기 바빠진 요즈음에 읽기에는 부담이 되는 책이라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이 책은 지은이가 7년 동안 야생의 세계를 방랑한 사유의 기록이다. 그이의 발길은 온통 초록의 식물로 뒤 얽힌 아마존의 정글과 험준한 안데스 산맥, 캐나다의 작은 에스키모 거주지, 북극의 빙하, 인도네시아의 바다 집시 마을과 심해,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래사막, 웨스트 파푸아의 벌거숭이산, 외몽골의 외딴 사원으로 이어진다. 야생의 대지에서 인간의 정신을 탐색한다.
600페이지도 넘도록 빽빽하게 들어있는 글은 한 구절 한 구절 아름다운 문장이지만, 사유의 깊이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가령, 아무렇게나 책장을 확 넘겨도 아래와 같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바다 깊은 곳, 죽음과 어둠만이 존재할 것 같은 곳에서도 생명은 가벼워지는 바닷물을 통해 다시 위로 구르며 솟아 오른다. 비극은 생명의 정수가 아니다, 그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바다의 짭짤한 눈물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어둡고 무거운 슬픔의 바다, 그 내면의 심해로부터 순수하고 헤아릴 수 없는 가벼움이 고개를 쳐들고 몸을 뒤틀며 태동하기 시작한다."
지은이는 야생의 의지를 찾아 나섰다고 한다. 야성의 의지가 야성적인 아름다움 속에 자연력의 생기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드러내는지가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이 자연을 구성하는 원소라고 믿었던 흙, 공기, 불, 물에 따라 여행의 밑그림을 그리고 야생의 땅을 상징하는 '숲', 얼음을 상징하는 '빙하', 물을 상징하는 '바다', 불을 상징하는 '사막', 공기를 상징하는 '자유'를 소제목으로 삼았고, 마지막은 비극의 황무지, 희극의 야생성으로 야생의 정신을 마무리한다.
처음 몇 챕터를 읽고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는 것을 포기했다. 이런 문장의 향연은 정신의 현기증을 동반한다.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마음 내키는 대로 책장을 펼쳐서 조금씩 읽었다. 예능 PD의 말대로 '엄청난' 책이지만, 너무 재미있다고 호들갑을 떨 책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읽은 책 중에 인상 깊기로 몇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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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대 그리스 땅의 네 가지 원소에 따라 여행의 밑그림을 그렸다. 흙, 공기, 불, 물, 여기에 마치 엄연한 원소 가운데 하나라도 되듯 얼음이 추가되었는데, 사실 얼음은 자연의 중요한 원소 가운데 하나다. (p.14)
고대 그리스의 네 가지 원소에 따라 자연을 탐험하기로 하고 저자는 길을 떠난다. 7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이 두툼한 책이 완성되기 까지 그의 여행이 처음부터 끝까지 추구하는 단 하나는 원시 그대로의 자연을 살아보는 것이다. 요즘 여행서처럼 사진을 싣지도 않고 오직 자신의 느낌과 체험을 글로, 철학으로 풀어내는 그의 여행은 문명인다운 설명을 거부하고 자연의 자리에서 그대로 그 땅을 자신들의 '집'삼아 사는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고, 그들의 말에 귀기울여 그들의 인식을, 그들의 철학을 받아들이는 데에 집중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을 찾아나서는 여행은 따라나서는 독자조차도 그 고되고 곤곤하고 위태로움을 느낄 정도다. 야생의 숲 아마존에서 원주민 주술사의 처방대로 우울증을 치료하고 그는 힘을 내어 여행을 시작한다. 자연 속의 동물들은 다른 모습을 한 우리 자신이라고 믿는 이들, 나무에도, 강에도 인간과 연결된 혼이 있다고 믿는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그들과 직접 생활하면서 공감으로 배워낸다. 원시의 자연은 태고적부터의 이야기가 넘쳐나며, 자연과 상생하는 삶을 당연시하는 원주민들에게서 우리가 잊었다고 생각하는 태초로부터 전해오는 지혜를 배운다. 야생이 생명을 위협하는 아마존에서도, 우리가 황무지라고 부르는 북극이나, 사막에서도 그곳에 사는 부족들은 생명과 의미로 충만한 자신들의 대지에서의 삶을 풍요롭게 누린다. 저자는 여행자나 이방인이 아니라 바로 그곳의 주민 중의 한 명이 되어 그들의 지혜를 배운다. 문명과 멀어진 '거친 야생의 자연'(p.177)은 그의 감각을 오직 자연과 인간의 본질에 다가가게 한다. 그의 생각은 깊어지고, 그의 지혜는 겸손해진다. 그는 문명에 의해 사라져가고 좁아져가는 이 세계들을 안타까워 한다. 이누이트족에게서 이제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잊게 된 얼음에 관한 단어 33개를 기록하고 뜻을 적는다. 그들이 자신들의 생존에 꼭 필요한 단어들을 잊게 되고, 자신들에게 전해내려오던 이야기들을 잊은 것이 서양식교육을 강요당하면서 문화적 자존감을 잃게 된 탓이라고 그는 고발한다. 바다 집시 바조족의 터전인 바다에서, 자신들의 신성한 장소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막의 부족들에게서, 웨스트 파푸아의 황무지에서 선교사들로부터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나가려 애쓰는 부족들에게서 그들의 사라져가는 야생의 삶의 모습을 기록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연을 만들고 그 자연 위에 인간을 살게 한 가장 원시적인 요소들, 땅, 물, 불, 바람, 얼음으로 충만한 대지에서 저자는 야생의 삶의 다큐멘터리를 기록해나가고, 본질에 대한 철학을 끊임없이 길어올린다. 오직 그녀만이 기록할 수 있었던 원시의 삶에 대한 기록들은 흥미를 자극하고, 그녀가 차분하게 사색하는 철학들은 지적인 욕구를 채워준다. 그리고 폭력적인 문명전파에 대한 그녀의 지탄과 원시적 삶에 대한 그녀의 예찬은 우리 자신을 숙연하게 돌아보게 한다. 직접 읽어야만 알 수 있는 아름답고 활기차며 진정성 가득한 그녀의 문장을 꼭 직접 느껴보라고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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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욱 교수는 자신이 읽었던 저자중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을 최고의 작가로 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해양과학자이자 대중저술가, 여류작가로서 시적 은유와 자연에 대한 찬미로 미국내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그녀가 사십여년만에 이 책에서 되살아난 듯 했다. 문장만 훌륭한게 아니라 엄청난 지식까지 보여준다. 인류학 언어학 생태학 문학 음악 등 적절한 기둥이 그녀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제이 그리피스! 과연 김영희피디가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극찬을 할 만한 작가이며 책이다.
# 그녀는 방랑자다. 이미 “18살에는 티베트까지 가려 했으나 인도까지밖에 가지 못했다”고 말한 것에서 보듯 글자 그대로 오지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나는 스스로 태우는 한이 있어도 불처럼 살고 싶었다”고 얘기한다. 그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시골이나 전원차원이 아니라 야생성이다. 그녀는 “인간의 본성이 유년기부터 잘 길들여지는 세상, 냉난방기가 끊임없이 가볍게 돌아가고 창문은 영구히 닫힌 이 클로로포름의 세계. 통조림으로 만들어진 생각들이 진열된 슈퍼마켓의 통로로 그 곳에서 감정은 살균되어 나왔다”고 할 정도다.
# 야생성을 말살시킨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북극지방을 보자. 백인들은 시계와 성경 술과 마약을 들여왔다. 그리고 한가지 더 치명적으로 위험한 것을 들여 왔는데 그 것은 바로 학교였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이유는 북극에서 생존에 필요한 전통적인 지식은 학교밖에서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사냥하는 법이나 땅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해, 그 결과 사람들은 가게에서 산 음식에 의존하게 되고 현금이 없으면 굶어죽어야 한다. 젊은이들은 이런 무지로 인해 사실상 작고 밀폐된 감옥에 갇힌 셈이고 그 감옥에서 그들은 미쳐 마약과 휘발유를 먹고 죽어간다.
# 아마존도 다를 바 없다. 원주민은 처음 백인과 접촉시 5년내 주민의 1/3에서 1/2이 사망하는데 석유회사와 벌채회사와 함께 굳이 선교사들은 접촉하지 않은 아마존에 들어와 접촉해 결과적으로 주민들을 죽인다. 또한 그들은 자본주의의 첨병이라며 비판한다. 전에는 필요 없었던 성냥 소금 설탕 같은 것을 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왜 문명화되었나. 원주민은 설탕과 석유와 돈과 옷과 음식을 시장에서 더 많이 사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선교사들은 야생에서의 생기 넘치는 삶을 미적지근하고 정돈된 정확한 생활방식으로 교체시키고 유럽과 미국을 선호하는 충실한 소비자가 되는 법을 배우도록 길들여진다. 아마존의 눈물에서 보여준 바대로 숲에서 강제로 끌려나온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사회의 맨 빝바닥 계층으로 떨어져 마을의 슬럼가에 버려진다.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처럼 보석같은 말들이 많아 어느 페이지 하나 밑줄을 안 칠 수가 없었다. 야생성에 대한 서사시이며 원주민들에게 대한 보호헌장이며 문명비판서이다. 이런 주옥같은 글을 번역한 전소영씨의 노력으로 마치 우리나라 작가의 글을 읽는 줄 알았다. 이 책을 읽은 후 웬간한 작가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듯하다. 눈버렸다. 괜히 읽었다. 1월초지만 개인적으로는 올해의 책이 될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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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원시의 자유를 찾아 떠난 7년간의 기록, 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스스로를 태우는 한이 있더라고 불처럼 살고 싶었다 라고 말하는 저자 제이 그리피스에 의해 완성된 책이다. 작가는 어렸을 때 부터 지구 곳곳을 찾아가고 싶은 꿈이 많았다고 한다. 한 번에 7년이나 원시의 자연 속에 뭍혀 살 결심이 굳혀진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어렸을 적엔 아홉살 부터 동네에서 가장 울창한 정원에서 잠들기 위해 도망친 적도 있고, 18살 때에는 인도를 여행하고 안나푸르나를 꿈꾸었고 결국 숨이 끊어질 정도로 힘들게 이질에 걸려서 돌아오기도 했다. 이렇게 야생의 자연을 그리워 하는 것은 사람의 본능일까? 이 작가만의 본능일까. 그는 말한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진영만이 존재한다고. 불모지의 대리인과 야생의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과 생명을 짓밟는 진영. 우리는 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언뜻 소개만 들으면 마치 탐험가가 오지를 탐험한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같은 책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책은 마치 노벨 문학상의 작가가 글을 쓰듯이 약간은 어려우면서도 문학적이고 내면적인 표현들로 가득하다. 여행의 여정을 따라서 책이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마음의 지도에 의해서 쓰여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하루하루를 시작하며 시작과 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람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빛을 찾았던 내용들을 이야기하면서도 시적인 표현들을 놓지 않는다. 어쩌면 끝없는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건조한 책들에 길들여진 사고에서 벗어나라는 저자의 경고가 들리는 듯 하다.
그리피스는 훌쩍 떠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의 욕구를 스스로 대변해준 듯 했다. 야생으로 떠나는 것은 그에게 그런 의미였다.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태곳적 욕구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그는 아마존의 원주민 사회에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북극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도 한다. 바다에서, 뚝 떨어진 대륙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웨스트 파푸아에서...그는 끊임없이 야생의 한 쪽 구석을 찾아 헤맨다. 온 지구 상의 야생을 한 몸으로 경험했다. 그는 자연의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경외감에 찬탄하며 모든 자연들을 자신의 폐 속 깊숙이 끌어안고 있다. 대부분의 곳에서 말이 안 통할 것인데도 자연과 사람이라는 단순한 관계만을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그 곳의 사람이 되어 가는 그리피스의 여정이 참으로 흥미롭고, 감동적이었다. 나는 자연에 묻히길 원하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연과 인간이라는 가치만으로 묶이고 화합할 수 있는 사람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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