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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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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꺾다.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오다니.그냥 아무 생각 없이 책 제목을 읽어보니, 왜 작가는 꽃을 꺾었을까?혹독한 겨울을 견뎌 피어난 꽃을, 그냥 핀 채 그대로 두고 바라만 봐도 참좋을 텐데, 왜 꺾었을까?그리고 그 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불현듯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꽤 오래도록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그냥 상징이었겠지, 은유였을까? 그리 작가의 심정을 이해하려 애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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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꺾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오다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책 제목을 읽어보니, 왜 작가는 꽃을 꺾었을까?

혹독한 겨울을 견뎌 피어난 꽃을, 그냥 핀 채 그대로 두고 바라만 봐도 참

좋을 텐데, 왜 꺾었을까?

그리고 그 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불현듯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꽤 오래도록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그냥 상징이었겠지, 은유였을까? 그리 작가의 심정을 이해하려 애쓰면서.

이렇게 생각이 많은 이유는 맞다, 봄이 오고 있어서다.

‘새봄의 꽃 같은 산문들’이라는 평을 듣는 작가의 글을 읽는 탓이다.

아니지.

‘내가 하늘을 보는 까닭은 새 한 마리가, 별 하나가, 말 하나가 거기

있어서라는.’ 작가의 말은 다시 읽고 또 읽어보면 그 맛이 또 어떠한지!

등단 57년째의 작가로서의 부드러운 시선과 치열한 사랑이 있어 좋았다.

스무 살 시절 어느 가을 한밤, 바다 저편 숙부네 논으로 각자 목선을

저어간다.

목선에 볏짐을 두둑하게 실었으므로, 밀물 때를 맞춰 김발 말목 속을 피해

모래밭 쪽으로 노를 저어야 했는데, 아차 하는 사이에 별빛에 비친 김발의

말목들이 나타났다.

작가는 겁이 났다고 고백한다. 이때 자신을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다.

공포로 인한 전율이 식은땀을 흐르게 했지만, 두 팔에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었고, 드디어 마을 앞 포구의 모래밭에 배를 댄다.

그때 작가는 ‘나를 이 어둠 속에 묻어두는 것도 나이고, 나를 그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도 나이다.’라고 생각했단다.

이후 평생 동안 독한 마음먹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 밖으로 끌어내려고

분투하고 분투했으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그 분투였다고 진단한다.

작가는 시 한 편, 소설 한 편을 쓰는 일을, 이 우주에 꽃 한 송이로써 장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읽거나 쓸 때는 어린아이의 심성이 되어서.

우리들의 삶은 물처럼 흘러야 한다고도 들려준다.

밥도 물이고 글도 물이고 삶도 물인데, 모든 건 물처럼 도전적으로 흘러야

하며, 막힘없이 흘러야 썩지 않는다고 말한다.

더구나 우리들의 몸도 물처럼 흘러야 한다고 하니, 그 흐름이 공격적으로

피어나야 한다고 하니, 작가는 보살쯤은 되었지 싶다.

얼마 전 이른 봄에 장흥 천관사에 가서 봄을 먹고 시 한 편을 썼다는데,

천관사에 가서 봄을 먹었으니 좋았겠다 싶고,

보랏빛 오랑캐꽃을 먹고, 분홍빛 꽃잔디꽃을 먹고, 황금색 배추꽃까지 먹어

버렸으니, 얼마나 거대한 한 송이 꽃이 되었으며, 얼마나 가슴 두근거렸겠나

싶어 참으로 부럽다.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추억과 그리운 기억이 많다.

“밥이 보약이다.”

이것은 어머니가 두고 쓰시는 말씀인데, 작가는 어머니의 그 말씀을 그대로

알아듣고 실천한다. 땅이 밥을 만들고 밥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가므로 그렇단다.

그러면서 작가가 쓰는 시나 소설도 결국은 밥의 결과라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다.

책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을 밥 먹듯 해야 더욱 어렵고 딱딱한 책들을

읽어낼 소화력이 생긴단다.

글도 얼마쯤 참고 써가다 보면 관성이 붙어 술술 풀리기 마련이고,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즐거움이 꽃망울들처럼 펑펑 터진다니, 그렇게 따라

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물을 많이 마시는데, “물로 생긴 몸이므로 물을 많이

마셔야 건강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다른 거란다.

다시 작가는 기억 속의 어머니 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준다.

첫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하는 작가는 어머니가 집 모퉁이 언덕 위까지 나와

계신 걸 모르고, 후배랑 이야기에만 매달렸고, 한재고개 꼭대기에 올라섰을

때 후배는 “아따, 뒤 좀 돌아봐 드리시오.”라고 매정하다는 듯이 말하는 게

아닌가!

그 말에 정신 차리고 뒤돌아보자, 아직도 어머니가 손을 흔들며 바라보던

모습으로, 작가의 기억 속에 늘 어머니는 서 계신다는 얘기이다.

작가는 이런 말도 들려준다.

선선한 봄은 순간이고 햇살 쨍쨍한 무더운 여름은 길고 길다고.

우리들의 여름은 출렁거린다, 산은 하늘을 향해 우쭐거리고 덩실거린다며

여름은 길게 출렁인다는 예찬을 한다.

여름을 잘 보내려면 태양과 산과 강과 들판과 바다를 알아야 하고, 우주를

성숙하게 하는 것은 작열하는 태양이라는 ‘뙤약볕 신화’를 알아야 한단다.

여름을 도전적으로 즐긴다는 것은 젊다는 것이고, 젊다는 것은 세상을

공격적으로 제압한다는 거라고, 도전을 재차 강조한다.

‘가지치기를 하다 들어온다. 차를 마시면서 생각의 가지치기를 한다. 어떤

생각은 잘라 없애고 어떤 생각은 남길까.’라는 이런 구절은 오래도록 기억

하고 싶어진다.

부록으로 실린, 병을 사유로 낚은 사유와 시를, 그러한 의도가 없는데

쓰여진 시를, 삶의 앙금 같은 시를 조금 측은한 시선으로 읽고 있다.

‘80세 누님의 장례식에 다녀왔을 때 당시 98세이시던 노모는 하느님이 병든

것을 솎아내는 것이라고 열없는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중얼거리셨는데, 아아,

이제 그 하느님이 나를 솎아내려 하고 있는 모양이다.’라는 글이다.

그러나 아직은 버팅기어야 한다고, 뒷글을 달고 있다.

병상 일기는 자주 반복해서 읽어야겠구나 싶다.

‘너희 자신만의 독특한 슬픈 눈빛을 지녀라. 그 눈빛으로 너희만의 풍경을

창조하도록 하여라.’는 구절과 ‘나에게는 시간이 있다, 하고 다짐하며 즐겁게

놀이하듯 살아라.’는 구절은 특히 그렇다.


[뒷이야기]

작가는 참 좋으시겠다.

고향 후배 화가님이, 어쩌면 사무치게 외로운 노년기의 작가 초상을

퍽 곱상하게 그려 함께 책에 실었으니 얼마나 좋을꼬!

표지의 꽃 같은 별들은 우리 모두 언젠가는 돌아갈

바로 그런 집도 함께 있으니 더욱 든든할 테고.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j*****5 2025.03.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