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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하면 이현승 감독의《푸른소금》(2011) 대사가 떠오른다. 그 애(세빈) 사랑하십니까, 라는 애꾸(천정명)의 질문에 두헌(송강호)은 이렇게 대답한다. “인간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야. 사랑.. 네가 생각하는 사랑이 붉은 색이면 자주색도 있고, 뭐 파란색도 있고 그런 거겠지. 노란색, 깜장색, 하얀색, 다 있는 거지.” 『프랑스 남자의 사랑』이란 제목을 보고는, 그 사랑은 어떤 색일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프랑스 남자의 사랑은 뭐가 다른 건가, 라는 의문도 있었다.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 소설가 중 한 사람이자 철학과 경제학, 정치학에 걸친 인문 분야를 넘나드는 세계적인 석학 에릭 오르세나의 소설에서는 두 명의 프랑스 남자가 나온다.(주인공의 남동생도 종종 등장하지만, 대표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주인공이자 화자 에릭과 그의 아버지다. 프랑스 남자라고 했지만, 에릭은 일단 자신이 쿠바 출신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미리 알린다. 그렇다면 왜 제목으로 ‘프랑스 남자의 사랑’이라고 했을까, 했더니 원제는 ‘L'origine de nos amours ’로 사랑의 기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 해 여름, 아버지와 나는 사랑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후, 우리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p. 7)
뭔가 특별한 부자라고? 이들 역시 단 세 마디를 넘어서는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사실 ‘그해 여름’이 특별한데, 부자가 1975년 6월 말에 이틀 간격으로 이혼했다. 아버지는 에릭에게 결혼이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에릭은 동감한다면서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을 선택할 정도로 어리석었던 것뿐이라고 답한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우리나라 속담에 있는데, 프랑스(혹은 쿠바)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아버지는 이혼의 원인을 조상의 유전자로 돌린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랑에 실패하게 만드는 유전자다. 아버지는 이에 대해 아들에게 차차 이야기해 주는데.. 사랑에 실패하는 유전자가 정말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자는 극복한다. 에릭은 재혼을 하고, 아버지도 좋은 여자를 만난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 속의 왕자와 공주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거짓말이 필요할 정도로 불화도 있기 마련이다. 마냥 행복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노력할 수는 있다.
“에릭!” “네, 아빠.” “너 자신을 더욱 사랑할 거라고 이 애비한테 약속해줄 수 있겠니? 물론 지금 당장 그러라는 건 아니야. 하지만 언젠가는 그래줄 수 있겠지?” “노력해 보죠, 아빠. 노력할게요.” (p. 81)
에릭은 작가로서도 노력한다.(‘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에릭 오르세나는 거의 해마다 저서를 한 권씩 펴내는 부지런한 작가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나는 여러 작가를 배출한 집안의 구성원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악몽인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작가라고 하는 부류의 포식자에게는 모든 것이 먹잇감이며, 끈적끈적한 것, 차마 밝힐 수 없는 것이라면 특히 게걸스럽게 달려들어서 자기 마음대로 재활용한다. 더 고약하게 만들거나 미화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작가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에도, 나아가 미래에도 결코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없다는, 불쾌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날이 찾아올 것이다. 누이와 남동생도 자신들만의 라 플로티유를, 나름의 만남의 의식을 간직하고 있을 테니까. 그 내밀한 보물은 그들의 죽음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혹시 비밀이 진실을 더 잘 간직하는 건 아닐까? 그 진실을 털어놓는 이야기보다 말이다. 그리고 혹시 말이라는 건, 제아무리 적확하고, 제아무리 세심하게 선택된 말이라 할지라도, 화자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미화하거나 필연적으로 왜곡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기 집안을 대표하는 작가에게는 피하기 힘든, 상당히 불편한 질문들이다. (p. 283~ 284)
죽어버린 자신의 사랑을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서 이런 책을 내는 것만 봐도 그의 노력을 알 수 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소설의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하고 있다. 우선 이름이 같고, 직업이 같다. 1975년에 아버지와 이틀 간격으로 이혼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화자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미화하거나 필연적으로 왜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니까 굳이 찾아보고 싶지는 않다. 프랑스 남자 두 명이 사랑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이혼이라는 실패를 통해 다시 사랑하고 행복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도 성공적이지만, 과정 역시 그렇다. 부자의 끊임없는 대화가 참 아름다운 소설이다. 굳이 색으로 표현하자면 무지갯빛이랄까. 어쩌면 모자의 대화도 책으로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 대화는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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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위즈덤하우스 서평 모집 당첨 도서. 양장본에다 북끈까지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조합이다. 어쩜, 오탈자 하나가 없다니 책이 새삼 더 귀해 보인다.
<저자는>
<책읽고 느낀 바>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사랑한다는 확신이 들때라야 결혼하지 싶다. 각기 다르게 살아 온 남녀가 한 가정을 꾸림에 있어서 대충이라든지 장난식으로 결혼을 하는 사람은 없을게다.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을 해도 이혼하는 지경도 생긴다. 오죽해야 콩깎지가 씌였다느니 검정봉지를 썼었다느니 라는 말이 나올까. 사랑의 유효기간은 180일 이라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삽시간에 달아오르는 사랑이라면 또 금새 식을게 뻔하지만 적어도 섣불리 결혼을 하는 사람은 드물거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주에 이틀 간격으로 이혼을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남인 아버지. 장남이은 아버지를 퍽 자랑스러워하며 또 멋진 남자로 생각한다. 장남과 아버지는 닮은 면이 많다. 여자를 좋아한다. 여자를 좋아하나 결별도 많이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으나 이번에는 다르다. 그 근원이 어디에 있을까를 궁리하다 심도높은 대화를 하기에 이른다.
장남인 에릭은 글을 쓰는데 결별만 6번을 했다. 이자벨만큼은 에릭과 영원할거라 믿은 아버지. 누이는 자식 넷을 둔 인정받는 커리어우먼. 추진력과 실행력을 겸비한 현실 감각이 뛰어나다. 모두가 애석해할 때 사직서를 던질 줄 안다. 차남은 정신과 의사로 아내와 사이가 좋다. 삼남매는 성격과 삶의 방식이 다른데 아버지와 장남은 비슷하다. 그런 아버지와 형을 남동생은 비난도 하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으로 관찰도 한다.
이 책의 주가 되는 아버지와 장남의 대화를 보며 남자들도 이렇게 수다스러울 수가 있구나. 두 부자의 대화가 본질을 두고 깊이 있게 얘기하기보다는 남의 다리 긁는 식도 나오고, 툭하면 삼천포로 빠지고, 때로는 프랑스 유머가 등장해 정서적 교감은 덜 되었다. 주석은 왜그리 많던지. 한 페이지에 한 두개는 기본, 서너 개도 상당하다. 그나마 주석이 하단에 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다지만 몰입을 상당히 방해하더라.
두 이혼남이 오두막에서 만났다. 아들이 먼저 와서 풍경을 보면서 글을 쓰며 마음을 가라앉히던 참이었다. 아버지가 그것도 배려라고 가능한 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하던 중 대화의 물꼬를 튼다. 자신 둘이 반려자와 알콩달콩 살지 못하는 원인을 분석했는데 그게 선조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 같지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건성으로 대충 듣는다. 그러자니 자꾸 딴소리를 하게 되고 그걸 또 모를리 없는 아버지는 진정성 있게 얘기한다.
그러니까 그 선조는 쿠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거길 간 이유가 몸을 따듯하게 하기 위함이라나. 체온을 따듯하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증, 증, 증조부(현조부)께서 밤일을 잘 못하셨다. 그 이유가 몸이 굳어서고 그러자니 체온을 녹이면 잘될까 라고 생각한 것. 양복쟁이셨던 현조부는 병원에 갔고 그 처방의 하나가 카페에서 두 시간을 머물라는 것. 그 시간동안 그 동네의 여자란 여자는 다 지나가는 걸 수줍어하며 몸을 배배 꼬며 어쩔 줄 몰라하는 걸 즐기는 카페 주인. 현조부는 럼주 한 잔이면 되는데 카페 주인은 매상도 오르지 않으나 카페 마스코트같은 현조부를 위해 성심을 다했다. 병원도 카페 주인이 소개했다.
그러던 어느날 카페 주인에게 자신은 여자들이 좋은데 수줍어서 눈을 둘 데가 없다는 말을 하고 몸이 굳어서 이곳에 정착했다는 비밀을 말한다. 카페 주인은 음악을 권했고 두 시간 동안 음악 과외를 받기에 이른다. 물론 카페 주인이 소개한 선생인데 이 남자가 바람기 있다는 건 누구나 안다. 음악을 배운다는 자체에 매료된 현조부는 소질은 없었으나 노력을 다했다. 그런 어느날 럼주를 반만 마신 상태서 갑자기 일어난 현조부. 카페 주인이 말릴새도 없이 쏜살같이 달려간 곳은 집. 전날 기름칠해 둔 대문은 삐꺽이지 않았고 그렇게 열린 대문 사이로 보이는 건 손놀림이 유연한 음악 선생과 자신의 처가 통정을 하고 있던 바.
카페 주인은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생각하며 그냥 마시던 럼주 한 잔을 다 마시고, 두 시간 동안 하던대로 이 자리에 있었으면 아무 일이 없었을거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한다. 불륜 현장을 봤지만 역시나 소리 안나게 대문을 닫고 나온 현조부. 음악 선생도 현조부가 다 알았다는 걸 알고는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모든 것들이 경매로 나오자 초록 노트만큼은 낙찰받고 싶었으나 조롱 받을 걸 염려해 꾹 참는다. 피아노가 마지막으로 남았는데 다른 이는 생각도 못할 가격을 제시해 낙찰받은 사람이 현조모. 피아노를 들이느라 방은 좁아졌고 그 물건이 온 후로 부모님이 냉랭한 게 이상한 두 아들.
현조모는 피아노를 쓰다듬으며 통곡하는데 그 이유를 알 길 없는 두 아들은 속상하다. 현조부에게 물으니 지금은 말해줄 수 없고 나중에 크면 말해준다는데 두 아들들하고는 다르게 속상하다. 현조모는 가족이 외출하며 피아노를 열고 독수리타법처럼 눌러본다. 피아노 열쇠를 미리 복사해둔 현조부는 아무도 없을 때 피아노를 치고 싶지만 놀라운 자제력으로 참는다. 그런 어느날 열 살과 열 한 살인 두 아들이 도끼를 가져와 피아노를 이쑤시개처럼 뽀개버린다. 그리고 나서 그 집안은 다시 유쾌해졌다. 근심 덩어리가 없어져서다.
아버지는 현조부에게서 단서 하나를 찾아낸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코믹이 따로 없다. 이야기 같지 않은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낄낄대고 있는 자신을 본다. 이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말 같지 않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그게 맞는 것 같은데 실은 허황된 이야기를 그리도 맛깔나고 감칠 맛 나게 무쳐낸 글력이었음이라. 여기서도 그런 익살이 수시로 나온다. 또한 서정적인 문구도 많다. 남자들이 수다스럽기가 말로 할 수가 없다고 무시하다가도 말 같지 않은 이야기에 어느새 빨려 들어가는 경지가 이 책엔 여러 곳이다.
중략
선천적으로 부모에게서 받은 유전자와 후천적으로 형성된 유전자가 있다고 본다. 자신이 어느 쪽을 더 발전시키느냐가 관건. 주어진 삶의 방식따라 변화할 수도 있겠으나 타고난 본성은 여간해선 바꾸기 어렵다고 본다. 자신이 바꾸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는 결핍이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정신적 허기가 늘 불안함이고 정착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게 가장 많이 투영된 게 장남 에릭인가 싶었다. 독하지 못하며 사악하지도 않으면서 우유부단하고, 허장성세를 떠는 캐릭터 아주 밥맛이다. 부자가 좀 그렇다. 더구나 뜨거운 여자가 아니라도 보통의 아내를 가졌다면 밤일도 굳어서는 안되는데...은근 이 책 재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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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책에서 이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관심이 생겨 이 책을 빌려 봤다. 작가의 이력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이 작품에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담겨 있다고 했는데 여러 모로 흥미로웠다.
프랑스 소설 혹은 프랑스 작가의 소설 분위기를 내가 어떠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아주 대충이겠지만), 또 내가 이 취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아주 조금 알게 된 듯하다. 확실한 건 예전보다 호감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내가 좋아한다고 여기는 영역이 넓어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좋아하는 게 많아지는 건 어쨌든 좋은 일이니까.
소설의 내용은 좀 평범하다. 그리고 많이 수다스럽다. 무엇보다 유머가 넘쳐서 유쾌하다. 내가 이 유머라는 요소에 얼마나 약했던가. 평범해 보이는 내용도 체신머리 없어 보이는 부자 캐릭터도 다소 지루한 인생 이야기도 다 넘겨 줄 만큼 충분히 강력했으니. 다만 막 재미있었다고 할 수는 없어 이게 좀 아쉽기는 하다.
프랑스 남자들이 이렇게 말이 많았나? 아니 프랑스 사람들이 대체로 그러했던가? 내가 일반화 오류에 빠져 있나? 뭐, 이미 이런 편견을 갖게 되고 말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고. 소설에서 화자와 화자의 아버지의 삶은 비슷하게 전개된다. 특히 결혼과 이혼이 반복된다. 희한하게도 두 사람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해서 자주 만나 이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소설이든 현실이든 부자 간에 이렇게 말이 많은 모습을 보기는 참 힘든데). 화자는 이야기를 전하는 소설가로서, 화자의 아버지는 소설가인 아들에게 또 자신의 조상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달자로서.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사람, 이야기를 하는 데에 사명감을 갖고 있는 사람, 소설가는 이런 사람인 걸까? 어떤 이야기도 함부로 흘려 듣지 않고 어떤 이야기도 함부로 남발하지 않으며 한 사람에게라도 더 잘 더 재미있게 전하기 위해 요모조모 궁리하는 사람. 소설이라는 게 결국 이야기라는 것을, 소설가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오랜만에 확인하도록 해 준 글이었다. 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일단 미뤄 두고.
관심이 끝나지 않았다. 이 작가의 다른 글을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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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프랑스 남자의 사랑
수요일과 금요일, 어느 한 주에 거의 동시에 이혼을 하게 된 아버지와 아들이라니. 여느 부자들처럼, 무덤덤하게 지내오던 두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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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학에 대한 나의 선입견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라크 게이블을 닮은 아버지와 작가 자신인 듯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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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사람들 말을 듣지 않는다. 어쩌면 더 잘 듣기 위해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엄마가 이야기할 차례예요. 물론 이야기가 모자라는 건 아니예요. 끼익끼익 소리를 내던 바퀴 달린 수레 이야기, 그런 건 들려주지 않아도 돼요. 어차피 안쿠, 그러니까 죽음이 우릴 덮쳤으니까요. 그런데 물가에 떠도는 정령 이야기라면 들려주세요. 물 속에 가라앉은 도시 이야기며, 눈물 장수 이야기, 목소리 정원 이야기라면 안 될 까닭이 없잖아요? ... 그리고, 우리에겐 시간도 많고요. 특히 사랑이 문제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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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tv를 통해 프랑스 사람들은 토론을 일상 생활처럼 한다고 들었다. 자신의 의견을 애기하고 상대방 의견에 대해 비판하는..하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 만큼은 열띤 토론을 띄우지만 끝나고 나면 언제 그런듯이 다시 웃으면 얘기를 한다. 이 얘기를 들으니 뭔가....감정이 있을 텐데 이게 가능해? 당연히 문화의 차이라 당시에는 쉽게 수긍이 안됐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니 자신의 주장을 말고 같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이 긍정적으로 보였다.
오늘 읽은 <프랑스 남자의 사랑>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공통점은 남성이고 둘다 몇일 간격으로 이혼을 했다. 보통, 자녀의 인생은 부모의 영향이 있다고 하는데 그저 그런갑다 하는 것을 이혼한 아버지는 이혼한 아들에게 그 이혼의 이유에 대해 유전적 결함이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어릴 적 아버지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아들은 동시에 이혼을 겪게 되면서 그동안 얘기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처음 책을 읽기 전 두 사람의 이야기 방향이 서로 주고 받으면서 되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아들의 과거를 넘어 먼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쩌면 선조들의 영향이 이 두 사람에게 내려왔으니 현재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라는 .... 조곤조곤 흘러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니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간접적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알게 되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사랑에 실패하는 것에 굳이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굳이 이유를 찾아 나서는 두 사람의 얘기에 은근슬쩍 내 모습을 찾아보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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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여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는 오르세나의 소설이다.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겠는데, 주인공이 소설가이고 배경이 되는 무대가 섬의 비중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이틀 간격으로 이혼한 어느 부자(父子)의 이야기가 부드러운 밀물처럼 독자의 마음을 적신다. 시골집이 있는 브레아 섬으로 가 마음의 안식을 찾은 아버지와 아들은, 사랑에 실패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마음껏 수다를 떨며 답을 모색한다. 화자를 지은이 자신인 낙천적인 소설가로 설정해서 경쾌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 소설 초반, 주인공이 밝히는 유년 시절의 가정과 아버지 그리고 자신의 모습은 퍽 화목한 모습이라 무미건조한 내 어린시절을 비추어 볼 때, 샘이 들 정도였다. 어린 아들에게 위험천만한 레이싱 경기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쿡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고 아버지의 친구들 앞에서 구수한 언행으로 역사 지식을 뽐내는 아들의 모습은, 아직 부모의 입장이 아니라서 정확히 형언할 수 없지만 대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가장 큰 인상을 준 장면은, 주인공이 고민할 때마다 툭 던져 주듯 조언을 해주는 파트릭 모디아노작가라든지 '시르트의 바닷가'를 쓴 대문호 줄리앙 그라크가 그야말로 특급 출연 해주시는 부분이다. 문학 애호가인 내게, 오르세나와 그라크의 산책 장면은 가슴 찡한 무언가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허구인지 실화인지 확인 불가능하지만 오르세나가 자신의 이름을 '시르트의 바닷가'에 나오는 가상 도시의 이름과 같게 만든...... 대문호에게 센스 넘치는 답장을 받은 대목은 역시나 유쾌했다. 화자, 아버지, 그리고 선대의 사랑 이야기가 유머와 해학으로 빚어져 나오지만 으례 그렇듯 사랑이라는 빛 뒤에는 이별이라는 어둠이 도사릴 때가 많은 법이다. 이 모든게 포함된 게 '인생'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 보인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부분도 제법 흥미롭고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노쇠한 아버지가 대대로 실패한 사랑의 사슬을 자식대에는 끊어주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장면말이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가 위대한 순간은 바로 이 때가 아닐런지. 여튼, 프랑스적인 따뜻한 유머와 수다, 재치로 가득찬 이 소설이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강렬한 매력으로 어필 할 듯 싶다.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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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석학", "프랑스 최고의 지성" 이란 말에 나는 겁을 먹었어야했다. 겁도 없이 프랑스 최고의 지성의 글을 넘보다니....역시나 그 나라에 대한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읽은 책은 버겨웠다. 번역이 엉망이라 읽기 힘들다는 핑계조차 댈 수 없는 책이다. 진짜 문장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읽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되려 가독성까지 있었다. 문제는 그저 나의 가치관과 주인공의 가치관이 상이하여 감정이입이 힘들다는 것, 자유연애가 범람하고 불륜이란 것이 또다른 사랑으로 치급되는 분위기, 더불어 너무나 쉽게 그 사랑을 찾아가는 용기가 나에게는 어색할 뿐인데 그런 나를 배려하지 않고 막 뜀을 넘는다. 오해는 마시라, 책 어느 곳에서도 불륜을 조장하고 꾸미거나 하지 않는다. 그저 너무나 자연스러운 병풍처럼 그렇게 있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프랑스남자의 사랑 정말 특이한 책이다. 책 읽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인물을 이해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은 책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하고 다른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라 그런 듯 하다. 무엇보다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나에게 책을 이해하기 쉽지 않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이야기되는 쿠바에 대한 언급도 그러하고 그들 선조에게 있었던 일들도 그것이 왜? 라는 의문에서 벗어나질 못하게 했다. 아무래도 더 많은 배경지식이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작가와 동명이인인 에릭 오르세나는 괜찮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을 했지만 이혼을 했다.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해에 ....그러다 아름다운 여성과 재혼을 하게 되는데 결혼 당일 아버지가 사라진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아버지는 왜 갑자기 사라지신 걸까? 두 부자가 이혼후 사랑에 대한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이야기들이 그들의 동질감을 높여줬기에 홀로 남겨진 쓸쓸함 때문에 사라지신걸까 의심했다. 역시나 나는 프랑스남자를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가 사라진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결론적으로는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고 오히려 그의 사라짐이 그 결과를 가중시켰을 뿐이었다. 이 집안에 내려오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저주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했을까? 아니면 그런 핑계라도 대면서 자신의 행동수정을 이루고 싶지 않았던 프랑스남자의 변명이었을까? 책을 읽고나서도 계속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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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주인공인 나는 같은 시기에 이혼을 했다. 아버지와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조상의 저주가 아닐까라는 아버지의 말에 흥미를 가지게 되고 나름의 방식으로
아버지는 그 원인을 찾게된다. 아버지는 그 원인을 쿠바의 조상들이 물려줬을 거라고 예상하고 원인 찾기에 나선다. 프랑스남자의 사랑은 정말 프랑스적인 소설이다. 딱 그 생각이 든다. 이혼이라는게 조상의 나쁜 습관 혹은 저주라는 부분도 그렇고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조상을 조사하여 19세기 쿠바로 이민간 양복쟁이 조상의 이야기도 그렇고 뭔가 해학적이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다. 이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홀해질 수 있는 관계에서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들을 엿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하나의 재미가 아닐까 싶다. 한편으론 부모와 껄끄러울수도 있는 이야기를 그렇게 서슴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프랑스의 문화가 참 좋아보이기도
한다. 독특하지만 재미있었던 소설이었던 것 같다. |
![]() P.277. "당연하지.아들,이야기란 말이지, 태곳적부터 오는 거란다. 대륙들이 쪼개져서 표류하기 한참 전부터. 추론하는 이성이 서글픈 승리를 거두기 한참 전부터 말이야." 세계적인 석학이자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는 에릭 오르세나의 최신 장편소설 <프랑스 남자의 사랑>을 만나보았습니다. 처음 제목을 접하고 프랑스 남자의 자유분방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이라는 작가의 작품답게 사랑, 이별, 그리고 결혼 등에 대한 깊은 사색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내면을 부자의 대화를 통해서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작가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생각들을 부자의 대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를 이루는 흐름은 '사랑'입니다. '지속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30년이 넘도록 이어집니다. '지속적인 사랑'의 실패 원인을 찾아 쿠바에 살았었다는 조상까지 조사하는 아버지와 그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아들이 조금은 우습기도 하고 황당스럽기까지 하지만 이틀 간격으로 이혼한 20대의 아들과 50대의 아버지의 입장이라면 어쩌면 자신들 실패의 원인을 자신들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찾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30년 동안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불가능한 사랑의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가 완성될때쯤 다시 재혼한 아들을 두고 아버지는 사라집니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새로운 흐름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사라진 시점이 아들의 재혼 다음날인데 아들은 신부를 홀로 두고 아버지를 찾아 나섭니다. 이번 재혼도 시작부터 꼬인듯한데...아버지와의 대화를 그리워했던 것인지, 여성과의 사랑보다는 혈육에 대한 사랑이 더 커서였는지 '에릭 아르누'는 아버지를 찾아 나섭니다. P.161. 지옥도 선의에 찬 죄인들로 득실거린다는데, 하물며 그 어떤 관습적 지표도 존재하지 않고, 선과 악도, 진실도 거짓도 존재하지 않는 사랑이란 야생적인 세계에서야... ... . 소설을 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재미나게 쓰인 철학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3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마치 가벼운 선문답처럼 느껴져서 더욱 재미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바탕은 '신뢰'가 있어야 하고 또한 우정의 바탕에도 '신뢰'가 있었야 한다는 것을 쿠바에 살던 조상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지속적인 결혼 생활을 바라는 아버지를 위해 거짓 편지를 보내는 아들을 통해서 '선의'에 대한 이야기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작가의 본명이 등장하면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가 하는 즐거운 착가에 빠져들게 하는 또 다른 재미도 맛볼 수 있는 정말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사랑에 대한 많은 흥미롭고 재미난 이야기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프랑스 부자의 대화를 엿들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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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문드문 소설을 읽기도 하는데 자꾸만 소설을 읽는 것이 두려워진다. 긴 호흡의 이야기를 읽어내는 힘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쯤 읽으면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빨리 넘겨버리다가 중요한 내용을 빼먹고 읽기도 하고, 절반까지 가는 것도 힘들어 포기하는 책들도 생겨났다. 나도 나이가 드는 것인가. 클래식한 제목의 프랑스 소설을 만났다. 프랑스 남자의 사랑. 으흠.. 프랑스 소설. 유럽쪽 소설을 읽으려면 좀 더 피곤해진다. 작가는 원활한 전개를 위해 독자에게 어느 정도의 "사전지식"을 요구하게 되는데 유럽소설은 그것이 좀 더 높은데다가 역사적 배경까지 들어가면 이해가 잘 안 된다. 게다가 프랑스 소설.. 글도 말만큼 복잡하고 많지 않은가. ㅎㅎ 하지만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첫 문장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며칠 사이에 이혼을 하게 된 상황이라니. 게다가 이 불운에 대해 이 두 사람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들의 유전자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일인칭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소설인지 자기고백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만큼 몰입도가 높은 소설이다. 이혼을 겪은 "나"는 이혼의 아픔을 다스리기 위해 휴가를 떠난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이혼을 하고 아들의 곁으로 온다. 그는 "죽어버린 사랑"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다 글을 써보기로 했다. 그 글의 소재는 자신과 아버지의 사랑이야기. 이야기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받은 "유전적 소인"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소설가가 될 운명"이었다. 해체의 아픔을 겪고 거처를 옮겨다니며 유목하는 그들은 사랑에 부침이 심한 사람들이다. 그와 아버지는 심각하게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한 여자와 사랑하고 정착한 "나"의 남동생은 두 사람이 계속 만나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궁금해했다. “아빠와 이 형이 말이다, 어째서 똑같이 애정 전선에서 실패하는 건지, 요즘 그 이유를 알려고 연구 중이거든." "아, 그런거야. 아빠와 형, 둘 다 정말 웃겨!" "아빠와 나는 우리가 가문에 내린 저주의 희생자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너는 어떻게 그 저주를 벗어났는지도 몹시 궁금해." "그렇다면 차라리 유전학 강의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엔 뛰어난 노인대학도 여럿 있거든." "인마, 근데 너랑 나랑은 똑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았잖아......" "강의를 들으면 일부 유전자만 발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나머지 유전자들은 그렇지 않고 말이지. 어째서 아빠와 형에게서는 문제의 유전자가 발현되었을까? 문제의 핵심은 바로 그거라고.“ 이 책은 온전히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말 말 많은 두 부자이기도하지만 사랑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진지한 것이다. 1분 이상 대화도 힘든 한국의 아버지와 아들이었다면 절대 가능하지 않았을 일들이 "프랑스 남자"이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와 닿았다. 게다가 주제가 사랑 아니던가. 사랑에 대해 토론을 하는 한국 아버지와 아들? 상상이 되지도 않고 어쩐지 어색하기만 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이와 상관 없이 사랑을 끝없이 갈구하는 두 남자를 보며 죽어버린 내 사랑도 되살릴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해졌다. 예전엔 늘 누군가를 좋아하며 살았던 것 같은데 허겁지겁 살다보니 그 마음을 잊었다. 물론 아이들과 가족에 대한 마음은 있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늘 확인하는 뜨거운 사랑은 이제 더 이상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서이다. 옮긴이는 이 소설 안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입구는 사랑, 두번째는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 세번째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로 꼽았다. 자신의 이야기처럼 솔직하게,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멋진 이야기를 펼쳐낸 책, <프랑스 남자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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