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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나 기부같은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모처럼 좋은 일 좀 해보려하면 여지없이 '왜 안하던 일을 하냐?'는 핀찮이 내가 기부나 선행을 머믓거리게 하거나 심지어 챙피하게 여기게 끔한다. 괜히 남에게 보이려하는 일 같아 낮뜨겁고 좋은 일 하면서도 편치 않다. 남들이 어떨게 생각하든 주위에 선행을 베푸는 지인들을 보면서 그저 소심함을 탓할 수밖에....
괜히 남 좋은 일만 하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말들을 무시해가면서도 몇년째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다니며 봉사하시는 분들이 있는 반면, 보상 받지도 못할 선행을 왜 하냐는 철저하게 계산적인 사람들도 있다.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남이 편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준 것 보다 더 큰 행복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는 손익계산에는 영 맞질 않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종종 선행 이야기를 듣으며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 자신과 맞닥뜨리게 된다. 나누면 기쁨도 배가 되고 오히려 더 큰 행복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학술칼럼니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슈테판 클라인은 심리학과 뇌과학, 경제학, 진화론 등 다양한 사관점에서 실험과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증명해 보이며 이타적인 인간이야말로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일본에서 용감히 선로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려다 목숨을 바쳤던 고 이수현씨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 2007년, 뉴욕의 한 지하철역에서도 일어났다. 두 딸과 함께 전철을 기다리고 있던 한 남자는 비틀거리며 선로로 떨어진 남자를 구하려 선로로 뛰어내렸다. 열차는 그의 몸 위에서 멈췄지만 다행히 두 사람은 부상 없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일어난 이와 유사한 사건을 지켜 본 경제학과 생물학, 진화심리학 등 인간 행동을 연구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했다. 여탯껏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 알려져 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에 악착같이 자신의 몫을 챙기는 이기주의자들이 퍼주기만하는 이타주의자들 보다 더 잘 살 것이라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제잇속 챙기기에도 바쁜데 남의 일에 발벗고 나서다 보면 손해 보고 뒤처질 건 불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게 바로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남을 돕고 관용을 베풀면 기분이 좋아지고 많이 가진 자보다 더 행복하다 느낀다는 연구결과와 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으로 돌아온다는 태고의 진리를 들먹이며 저자는 다양한 사례들과 과학적 논리와 이기심과 이타심에 관한 실험들을 바탕으로 그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시켜준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는 이타주의 혁명으로 시작됐으며, 우리 조상은 이웃을 위해 봉사하기 시작했고 기후변화로 식량이 부족해진 세상에서 협력만이 살 길이었기 때문”이라며 오늘날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협력을 배워야 할 때임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는 인터넷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미래의 네트워크 사회는 과거보다 더욱 긴밀한 협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성능 좋은 스마트폰을 혼자서만 가지고 있다면 아무 쓸모가 없듯, 타인의 성공이나 불행이 내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누군가 남을 위해 노력하는 광경만봐도 이타심이 자라며 이타심은 전염력 또한 크다고 말하며. 선행의 마음은 자전거 타기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붙을 때까지 연습이 필요하단다. 물론 이타주의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유전자에는 이타심이 분명 있으며,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변화시킬 열쇠는 바로 '이타심'이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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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타주의자다. 슬픔을 간직한 이타주의자다. 선행 후의 정서에 왜 슬픔이 배여있는지 여전히 알송달송하다. 착한 일을 했을 때 처음에는 기쁨의 씨앗이 자라남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나갈수록 오히려 슬픔의 연못이 솟아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사소한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김밥을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간 적이 있다. 급우들이 몰려와 하나만 먹어봐도 돼냐고 했을 때 수줍지만 기쁜 맘으로 흔쾌히 그러라했다. 급우들이 메뚜기떼처럼 달려들어 도시락의 바닥이 보일 때가 되자, 나는 당혹스럽게도 슬픔이 밀려옴을 느꼈다. 기쁨은 사라지고 우울이 지배했다. 엄마가 싸준 김밥을 내 자신은 하나도 못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타주의적인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였을 때 막바지에 느끼는 감정의 악순환이다. 어릴 때의 내 경험과 감정이 지금도 지속되는 것 같아 여전히 수양이 부족한 것으로 생각되거나, 인간의 본성이 본시 그런 것인지 모른다는 위안을 삼아보거나 한다. 우리는 언제나 '조건부 이타주의자'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아, 슬픔이 없는 순도100%의 이타주의자가 되고 싶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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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 슈테판 클라인 제목부터 강렬하다.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 두군데 시선이 오래간다. 이타주의자란 단어와 지배라는 단어. 사실 상당히 매치가 되지 않는다. 지배란 더 자신의 것을 챙기는 사람의 소유라는 느낌이 우리들의 인식엔 무의식적으로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제목 그대로를 설명하고, 근거를 대며, 강하게 주장한다. '앞으로의 사회는 이타주의자가 더 늘어나야 하며, 그럴 것이고, 이런 이타주의자가 앞으로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흔히 남에게 배풀어 주다 보면 그 신뢰를 무너뜨리는 '이기주의자'가 나타나게 되고, 이 이기주의자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이타주의자는 손해를 본다. 이것을 개개인의 종족 번식의 차원에서 바라보면 이런 손해는 종족번식에 손해를 주는 것이 되고, 이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인 종족보존의 본능에 어긋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타주의자는 종족 번식에 좋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이므로 대를 이어갈 수록 이타주의자는 자손의 수가 줄어들 것이고, 결국 이 사회는 이기주의자로 가득 할 것이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타주의자가 있는 상황에서 사회 전체의 부는 더 증가하고, 경쟁만을 강조하는 조직보다 협동이 우선시 되는 조직에서 더더욱 이런 생산성의 증대를 볼 수 있다. 또한 몇천만년 동안 인간은 진화를 거듭하면서 이런 협동 능력에 대한 뇌의 반응을 퇴화가 아닌 진화를 시킴으로써 이런 협동능력을 버리지 않은 사실을 보면, 이타적 행동은 인간 종족 보존의 본능에 어긋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더 쉬운 말로 하면, 결국 인간은 협동이 더 생존에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아서, 이를 진화시켜 왔다는 것이다. 그 예로 다양한 실험결과를 저자는 소개한다. 그 한예로 인간은 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 뇌에서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해서 쾌락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신체적 반응의 기원은 결국 인간의 먼 조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협동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 처했고, 불가피하게 협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규범을 만들고, 이타주의자를 보호하며, 이기주의자를 처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걸 보면서 가장 주의깊게 보았던 실험 사례가 있다. 한 실험자가 두 집단으로 무리를 나눈다. 이 두집단은 아무런 이유없이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긴다. 이 와중에 자기 집단에게는 서로 한없이, 조건없는 이타적 행동을 한다. 하지만 상대 집단에는 강한 적개심을 품는다. 하지만 이 두 집단에게 서로 공통의 상위 목표가 주어지면 다시 타협을 한다. 그리고 더 강한 협동심을 발휘하게 된다. 이 실험은 우리에게 많은것을 시사해준다. 어떤 넓은 집단의 강한 협동을 이끌어 내려면 보다 높은 상위의 목표를 설정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전세계적으로 적용시켜보면, 환경오염과 같은 전 지구적인 목표가 있으면, 우리 인간은 다 함께 협동심을 발휘해서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 실험이 너무나 신기했고, 가장 실험사례중에서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이 책은 몇가지 한계점을 보인다. 일단 '이타주의'라는 아주 추상적인 분야에 대해서 서술을 하다보니 논지를 받쳐주는 근거들도 상당히 추상적이다. 많은 실험을 예로 들었지만, 이 실험과 주장 사이의 인과관계에서 많은 부분이 비약적이다라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각 챕터마다의 구성이 넘어갈 수록 그 주장을 완성시켜 준다기 보다는, 1장,2장,3장... 이렇게 모두가 따로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이런 주장을 한다면, 기승전결로 딱딱 맞춰 들어가주면, 독자들도 어? 그래? 와! 맞네! 이런 순서로 이해가 갈 것 같은데, 상당히 글에 집중하기 힘든 구조인 것 같다. 또한 그 한 챕터 안에서도 글이 상당히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어서, 뜬금없는 사례나, 갑자기 주장하는 부분이 나오는 부분도 있었다. 사실 상당히 글의 주제가 심오하기 때문에 어려운건 당연하지만, 조금 더 독자를 배려해 주었다면 왜 그런지, 그 구성에서 더 배려를 해 주었다면 더 재미있는 인문학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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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
일상에서 항상 손해보는 사람, 이기심과 이타심의 갈등에서 조금은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타주의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철저하게 계산되어 하는 행동이라든지, 보상을 받아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는 왜 이타주의자가 되어야 하는지와 이타심은 우리를 더 성공하고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2011년 한해를 마감하면서 우리는 이태석목사님의 숭고한 삶에 고개가 숙여진다. 또 꽤 오래전 일본지하철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고 자신은 목숨을 잃은 한국에 관한 기사에 일본도 한국도 감동을 한 적이 있다. 또 불우한 이웃이나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도움 주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사기꾼에 걸려 엄청난 손해를 보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그냥 사람좋기만한 바보로 취급받기도 한다. 과연 이타주의자들은 우리사회의 해가 되는 사람들은가 득이되는 사람들인가
사람은 남을 돕는 일에 서툴다. 그리고 남을 도울 때에는 무언가 대가를 바라는 이기적인 행동을 경우가 많다. 그럼 이타적이 행동 자연스럽지 않은 인간의 본성에 근거하지 않은 보다 고차원적인 행위일 것이다. 가장 이타주의적인 사람이 누구일까 그건 아마 인간의 몸으로 살다간 예수님이 아닌가 한다 이세상에와 인간을 위해 사랑하라고 역설하다가 가장 잔인하고 끔찍하게 인간의 손에 목숨을 잃으셨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세상에는 더 사랑하는 사람, 더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사람들은 예수의 숭고한 삶이 고개숙이게 되고 믿지않던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게 되었다.
어쩜 우리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이런 소수의 이타적인 사람들이 아닌가 한다.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정보화 및 산업화로 서로 의존적으로 되면서 여러 전지구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심각한 기후변화, 인간을 모두 멸종시키고도 남을 위험한 살상무기들의 관리, 자연재앙과 자원 전쟁등 위기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고 중요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는 이타주의에서 출발한다. 지구상의 사람들이 점점 더 이타주의적이 될 수록 우리 전체의 복된 미래도 더 약속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