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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세상의 모든 책들이 다 있답니다.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어떤 분야의 것이건, 어떤 장르에 속하건 모두 찾을 수 있지요. 또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아직 쓰이지 않은 책들, 화재로 타버리거나 세월이 갉아먹어 썩어버린
책들,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허구의 책들까지도 모두 찾을 수 있지요."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읽다가 너무 지루해서
던져 버린 책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전개에 짜증 나서 분노했던 책들도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책에서도 배울 점은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책을 써야만 했던 작가의 욕망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입장에서 평생 아무리 부지런히 책을 읽는다 해도, 읽고 싶은 책들을 전부 읽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신중하게 책을 고른다. 매일매일 책을
읽어도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고 죽을 수는 없다니 얼마나 슬픈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부지런히 책을
고르고, 책과 만나고, 그 세계 속을 유영하는 중이다. 그래서 자칭 독서가, 혹은 애서가, 그리고 책중독자들을 비롯한 작가들이 쓴 독서, 책,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은 거의 모두 다 읽어 본 편이다. 왜냐하면 평범한 일상 속의 인간관계에서는 나의 책에 대한 애정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문 편이니 말이다. 가끔은 나도 그 말도 안 되는 책에 대한 애정을 공감 받고 싶고, 이해 받고 싶고, 그리고 나보다 더한 애정을 표현하는 이들을 보며 그래도 나는 평범한 편이라고 위안받고 싶다. 이번에 만난 소설가 김운하의 이 작품은 저자의 표현대로 '책과 독서에 대한 애정고백서'이다. 독서의 재미를 발견하고는 자연스럽게 애서가가 되고, 책 중독자가 되었고, 심지어 희귀본 수집가로 나섰다가, 결국은 직접 글을 쓰는 작가가 된 저자의 이력은 그야말로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부러움을 가득 동반하게 한다. 책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직접 새로운 책을 창조할 수 있는 위치까지 이른다면,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결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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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서재와 에코의 서재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이제는 마침내 확고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어느 날 불현듯 내가 책무덤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집이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책창고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내 삶조차 책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울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내게는 하나의 거대한 부자유, 구속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책으로 만들어진 기가 막히게 매혹적인 표지 이미지처럼, 이 책 속에는
마치 꿈같은 장면이 등장한다. 저자는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다락방에 올라가 커다란 종이
박스들 사이를 헤집다가 순간적으로 기우뚱하고 어디론가로 추락한다. 정신이 든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천장이
아주 넓고, 벽면에 온통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서재에 있었다. 그리고
서가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말을 한다. 여기는 '당신이
늘 꿈꾸던 서재'라고. 당신이 원하고 찾기만 한다면 어떤
책이든 모두 찾을 수 있는 그런 곳이라고. 그러니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책이라도.'
누구나 한 번쯤 상상 속의 서재를 꿈꿔보지 않았을까. 나는 주로 소설
속 이야기에 등장하는 허구의 책들이 궁금한 적이 많았다. 예를 들어 이런 책들이다. 스티븐 킹의 <파인더스 키퍼스>에 등장하는 천재작가 로스스타인의 <러너, 전쟁에 나서다> 같은 책. 극중
로스스타인의 이 작품은 미국 문학사상 <앵무새 죽이기>,
<호밀밭의 파수꾼>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묘사된다. 스티븐 킹이 이런 분위기의 작품을 실제로 써주시면 어떨까 작품을 읽는 내내 상상하는 것으로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조엘 디케르의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에 등장하는 두 소설가의 작품들도 궁금했다. 이야기
속에서는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 위대한 소설가로 극중 묘사되는 해리 쿼버트가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소녀의 유해와 함께 그의 대표작의 타자원고가 발견된다. 그 원고를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의 제자이자 미국 문단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마커스 골드먼이 스물여덟 살의 나이에
무려 이백만 부나 판 소설도 실제로 읽어보고 싶었고 말이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인다. 김운하 작가는 상상 속의 저에서 어떤 서재 목록들을 써내려갔을까. 그리고
그 책들을 정말 만날 수 있었을까.
책중독자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책에 대한 애정 넘치는 에피소드들과, 지독한
애서가가 밝히는 '쾌락주의 독서법' 그리고 사랑하는 작가를
위해 기꺼이 스토커가 되고자 하는 독자들의 마음과 상상 속에서 마법의 타자기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다 너무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독서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내지는 책이란 이런 것이다.는
식의 잘난 척이 없고,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책에 대한 지독한 애정을 표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독서와 책과 작가에 대해 사유하게 만드는 책이라 더욱 좋았던 것 같다. 나도 저자처럼 평생토록 오직 책만 읽다 죽을 수 있기를 갈망한다.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한번쯤 해 본 적이 있다면, 당장 이 책을 만나 보시길!
*'이 서평은 필로소픽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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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edagogics.tistory.com/113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 모든 글은 인용 , 복사 및 변형을 불허합니다.
- 본 게시물은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서평단 활동의 일환으로, '필로소픽 출판사'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양서를 읽을 수 있게 해 주신 필로소픽 측에 감사드립니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2쪽.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15쪽.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67쪽.
학창시절, 나는 교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학생이었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도서관 청소를 자원했으면서도 청소는 뒷전이고 도서관에서 줄곧 독서에 매진할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는 후문(後聞)은 성인이 된 후에야 모친의 지인이신 분으로부터 접할 수 있었다. 그만큼 유년시절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독서를 진실로 즐겨하던 나는 최근 걱정거리가 생겼다. 바로, 죽기 직전까지 내 서가(書架)에 꽂혀져 있는 종이책들과 리더기에 다운로드 받아둔 E-book들을 완독(玩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20대 후반이니, 심각한 노안이 오기 전까지 약 25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으며, 그 이후 돋보기를 끼고 안경을 볼 수 있는 시간도 30년밖에 되지 않는데, 아직 ‘읽은’ 책보다 읽고 싶어 구입했으나 ‘읽지 못한’ 책들이 훨씬 많으니……. 그러나 저자의 글을 읽으며 이는 나만의 불안이 아닌 독서가들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자연스런 걱정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해리포터』만큼이나 신비롭고 환상적인 표지를 지닌 이 책은 소설 등의 문학작품이 아닌, ‘책에 대한 이야기’로서, 소설을 쓰는 일을 업(業)으로 둔,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한 독서가의 에세이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각 챕터마다 화두를 던진다. 제1부 「나쁜 책, 스토커, 그리고 독자」에서는 독자로서 지닐 수 있는 독자들의 책에 대한 감정과 독서법에 대해, 제2부 「사형수, 도둑, 선원, 알코올중독자 그리고 작가」에서는 삶 전체가 바로 곧 작품이었던 작가들의 생(生)에 대해, 그리고 책의 제목이 되는 마지막 제3부「네 번째 책상 서랍, 타자기, 그리고 회전목마」에서는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며 서재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선 저자가 다룬 가장 핵심적인 화두(話頭)는 우리 사회의 독서 문화에서 자성해야 할 부분인 고전주의(古典主義) 독서법이었다. 서울대생, 하버드생들이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읽은 도서 목록들이 신문에 기사화되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이처럼 소위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고전(古典) 목록에 포함된 작품들에 대해 독자들에게 과도한 ‘부담감’을 부여하는 독서문화에 대해 저자는 강력히 비판한다. 국어교과에서도, 교과서에 문학작품을 수록하는 기준에 있어 ‘정전(正典)’의 자격 여부가 핵심적인데, 교과서에 선정될 만한 정전(定典)의 기준이 재검토될 때, 그리고 현대 사회의 새로운 작품이 정전(定典)으로서의 가치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충분히 수용하고 인정할 때 더욱 다양한 양질의 작품들을 학습자들이 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일컨대 최근 사회에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조남주 작가님의 소설『82년생 김지영』의 경우 그 문제의식과 시대의 반영 면에서 보편적인 타당성을 충분히 인정받은 바 있다. 때문에 문학사 일컫는 정전(正典)의 자격을 아직 부여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교과서에 수록될 만한 정전(定典)의 자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저자가 소개했듯이, 현대에 와서는 교육 고전(古典)으로 널리 알려진 장 자크 루소의 작품『에밀』이 1762년 출간 당시만 해도 금서로 지정되어 루소가 스위스로 망명을 가야만 했던 일화를 통해 고전(古典)이나 정전(正典)의 자격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재조정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문학치료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이로서 저자가 말했듯 독자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관심사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는 작품, 즉 작품을 통해 작가의 고민과 작품의 고민을 통해 자신의 고민들이 이어지는 작품이야 말로 독자 자신에게 고전(古典)이 되는 작품이라는 저자의 메시지에 매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작품서사와 자기서사가 긴밀히 조응(照應)하거나, 작품서사와 자기서사의 간극이 작품을 통해 조정되고 변화할 수 있을 때 그 작품은 한 개인에게 고전(古典)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가령 그것이 자기계발서나 실용서라고 하더라도 독자의 자기서사가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변화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작품서사를 지니고 있다면, 해당 독자에게는 고전(古典)으로 자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의미에서 내게 있어서는 중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감응(感應)을 받고 있는 헤세의 작품들이나 김탁환 작가님의 작품들이 고전(古典)에 속하는데, 나의 자기서사가 문학치료학의 서사이론 영역 중에서도 보살핌의 대상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모감싸기 서사’에 가장 공감하며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헤세의 성장소설, 교양소설이나 사람의 내면과 내면이 맞닿아 있는 서사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상상의 서재’에서 만난 <세상에서 사라진 책들의 목록> 에 대한 아이디어도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유년시절부터 역사를 좋아했던지라 역사책을 읽으며 늘 현재까지도 논란중인 당쟁희생설과 사도세자의 역모라는 설 등으로 대립되는(정병설과 이덕일교수의 논란이 대표적.) 사도세자의 비극에 대해 – 그 진실과 자신의 심경을 영조가 기록해 둔 책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나, 속편이 없는 작품에 대해 속편이나 후일담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소설 해리포터에 대한 팬픽션(2차 창작)에 본편에서 나타나지 않은 독자들의 소망을 투여하는 것이 그러하고, 다음에서 연재중인 웹툰 <왕, 그리고 황제> 같은 작품이나 시간을 되돌리는 역사드라마 등의 작품들이 ‘만약’ 세상에 없는 책/작품들이 존재했다면, 발견된다면 어땠을까 꿈꾸어 보는 독자들의 소망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38쪽.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40쪽.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43쪽.
2부에서 저자가 소개한 작가들은, 작가이기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경험한 삶의 비극들이나 독특한 삶의 자국들이 그들의 작품에 반영된 일화들이 소개된다. 때문에 2부를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다. 유형지에 머물렀던 경험이 있는 사형수 도스토예프스키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한 일화인지라 차치하고서라도, 『콜리마 이야기』의 저자 바를람 살라모프가 정권의 핍박으로 인해 겪은 고통, 장 주네의 『도둑 일기』가 당대 사회의 독자들에게 준 영향(부조리에 대한 고발) 등은 매우 놀라웠다. 1970년대 노동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위장취업까지 하면서 그러한 경험을 작품에 녹인 황석영, 방현석 작가님의 삶이나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대학원을 다니며 경험한 ‘대학’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결국 청춘을 다 담았던 연구자의 길에서 돌아나와야만 했던 김민섭 작가님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그리고 대학에서 소설이론이나 소설 창작에 대한 수업을 따로 들으신 적이 없음에도, 그저 노동자로서 글을 쓰신 회색 인간』의 저자 김동식 작가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작가님들의 삶에, 그리고 작품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작가님들이 경험하신 ‘특수성’과 더불어 어쩌면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보편성’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특히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일화는 이유진 선생님의『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유진 선생님께서는 파리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바로 귀국한다면 교수직이 보장되어 있었던 그의 삶에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 참여로 인해 정치권으로부터 탄압, 그리고 그로 인한 망명이 이어졌고, 개인사적으로는 아들이 선천성 장애를 지니고 태어나는 비극까지 앉게 되었다. 연이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가 분노와 서러움의 감정으로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겪은 비극을 후손, 후학들이 격지 않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책을 읽고 연구하며, 추구할 만한 올바른 가치와 태도를 지켜나가고자 노력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즉 소크라테스가 일컬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온몸으로 실천한 것이며, 저자가 소개한 또 다른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가 표현한 ‘지식인’의 참된 모습이 바로 이유진 선생님의 삶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표현을 통해 되새기고 이유진 선생님의 삶을 통해 발견한 ‘지식인’의 모습. 대학에서 얼마나 전문적인 분야를 전공했는가, 얼마나 많은 학위를 취득했는가보다는 꾸준히 양서(良書)를 읽으며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고, ‘좋은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자신이 배운 바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이를 실천에 옮기는 점임을 다시금 깨닫고 지금의 나는 과연 참된 ‘지식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가 자성하게 되었고 이에 부끄러워졌다. 더 많이 세상과, 그리고 타인의 식견과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86쪽.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88쪽.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134-135쪽.
마지막 3부에서는 드디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책상에 달린 열 한 개의 서랍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특히 열 한 개의 서랍 중 ‘세 번째 서랍’과 ‘네 번째 서랍’이 가장 흥미로웠다. 저자에 따르면, 세 번재 서랍의 경우 칸트가 일컬은 ‘현상세계’, 즉 우리가 감각을 통해 경험 가능한 인식 세계, 곧 현실을 의미하는 반면, ‘네 번째 서랍’은 세 번째 서랍에 ‘시간’이라는 환상의 차원이 덧붙여진 세계를 의미하고 있다. 즉 우리가 여러 문학작품에서 만나는 시/공간을 넘은 여러 인물들과 시, 공간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 번째 서랍이 우리의 현실 그 자체라면, 네 번째 서랍은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허구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소설’의 정의(定義)와 같이, ‘허구적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현실 공간이다. 세 번째 서랍과 네 번째 서랍에 대한 부분에 대해 생각하며, 네 번째 서랍에 속하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작품 속 인물들이 기실 세 번째 서랍에 속하는, 『돈키호테』를 읽은 독자들이었듯이, 네 번째 서랍 속의 세계에 속하는 ‘해리 포터’라는 소년은 세 번째 서랍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학대 속에 외로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어떤 꼬마 아이일 수 있으며, 네 벤째 서랍에 속하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속 한스 기벤라트가 획일화된 학교교육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성장해 온 바로 옆의 한 소년이거나 심지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재발견 할 수 있었다. 『구운몽』에 등장하는 성진-양소유의 욕망이 기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욕망 그 자체였으며, 『홍길동전』의 길동과 그의 수하들이 바로 세 번째 서랍에 자리하는 수많은 서얼들과 양민들을 대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 특히 소설을 ‘허구적’인 것이며 현실과는 괴리된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읽으면서도 현실과 작품을 분리시키고 있을지 모르는 혹자(或者)들에게 바로 이 부분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마술적이고 환상적으로 보이는 네 번째 서랍 속의 수많은 세계들은, 바로 우리가 지금 뿌리내리고 있는 세계를 비유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으며 두 세상은 늘 평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12쪽.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제기한 고전(古典)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에 동조하기도 하고, 책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에 늘 책을 한 권씩 사 오고야 말고 심지어는 좋아하는 책가의 책을 수집하고픈 욕심이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만나게 되는 한권의 책이 주는 기쁨에 어쩔 수 없는 애독가로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도 하며 다양한 감정들을 느꼈다. 또한 이러한 종류의 글 –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책에 대한 책’들이 그러하듯이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있었던 작가와 작품을 새로이 접한 바, 새로이 만나게 될 작품들에 벌써 기대가 된다. 물론, <바벨의 도서관>을 통해 이미 깨달았듯이, 무한한 우주 그 자체인 그 도서관에 소장될 수 있는 책의 권수조차 유한한데, 나약한 한 개인일 뿐인 나 또한 내가 읽고 싶은, 읽고자 했던 책들을 모두 읽지 못할 것임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책을 읽어나가는 이유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책이 선사하는 그 자체의 즐거움 너머 세 번째 서랍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이 ‘네 번째 서랍’ 속의 새로운 세계,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나와 다르면서도 유사한 인물들을 통해서 내 내면의 깊은 곳과 마주하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과, 그리고 세상과 대화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선물 같은 순간에 마음 깊이 감사하며, 앞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네 번째 서랍, 다섯 번째 서랍, 여섯 번째 서랍- 수많은 작품들을 진실로 기다린다. 더불어 이러한 기쁨과 설레임이 넘치는 책상 서랍 속 여정에 동참하는 분들이 점차 늘어가기를 소망한다.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87-88쪽.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04쪽.
- 김운하,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필로소픽, 2018, 284쪽.
'이 서평은 필로소픽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것임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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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독특함을 지닌다. 처음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떠올려보자. 이 책은 판타지 소설인가? 해리포터같은? 표지 또한 유럽의 어느 성을 표현한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니 이 책의 서평을 과연 어떤 식으로 전개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우려와 다르게 이 책은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허구맹랑한 상상력도 아니다. '세계를 담은 한 권의 책이 있다면'이라는 부제의 이 책은 책 중독자인 저자의 자기고백서이자 독서 가이드라인이다. 신비로운 이 책의 제목은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착안한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책과 독자의 관계를 밝혔다.
사실 이런 책을 몇 권 읽었다. 학창시절 내 인생책 손가락에 꼽았던 광고인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가 그렇고 최근에는 마케터 김봉진의 '책 잘 읽는 방법' 또한 그 맥을 함께 한다. 흔히 말하는 '독서법'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가끔 자극이 필요할 때 이러한 책들을 꺼내읽곤 한다. 나보다 독서에 경험이 많고 세상에 혜안을 가진 저자의 생각을 읽음여 본받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독서가 '틀리지'않았음을(틀린 독서방법은 물론 없다. 다른 방법만이 있을뿐) 위로 받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책은 위의 책들과는 조금 흐름을 달리한다. '책은 도끼다'는 주제별로 책을 한 두권씩 선정하여 그 책에 대한 소개를 하는 것이 주요 골자고 '책 잘 읽는 방법'은 초심자에게 쉽게 자신의 독서 노하우를 전달하는 느낌이다.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는 '책과 사랑에 빠지는 단계'에 따라 저자의 느낌과 그 느낌을 받은 저서들을 소개한다. 물론 그 단계속에 독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해서도 쉽게 설명한다.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고 내가 이 책을 친구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1. 우리는 꼭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그동안 꾸준히 적은 양의 책이라도 읽어온 '독자'이지만 올해 친구들과 한 약속이 있다. '고전 독파'. 모 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차례로 읽어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고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이 책은 이런 나의 맹점을 잘 짚어 주었다. 단순히 '고전'이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인 나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고 내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어야 고전이 될 수 있다고. "자기 자신에 대한 진지한 관심", "작가의 고민과 작품의 고민, 그리고 당신이 책 속에서 발견한 고민들을 연결시키며 생각해보라"라는 저자의 일침은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최근 읽은 두 권의 고전 중 한 권은 나의 현재의 고민과 맞닿아 공감했고, 다른 한 권은 겨우겨우 책장을 넘겼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야 하는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 묵독하는 사람, 낭독하는 사람, 필사하는 사람. 책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통해 다른 독자들을 '염탐'한다. 그동안 묵독의 방식만을 고수한 내게, 세상에는 다양한 읽기 방식과 책 내용 체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이 책에서는 (입문단계) 다독, 독서 노트 정리 습관 [예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에서 부터 양서를 골라 여러 번 읽는 방법(깊게 읽기)을 추천한다. 그 동안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보지 않았는데 내게 의미가 있는 책은 다시 한 번 꺼내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생각해보면 '글을 읽고 사유하는 취미' 즉, 독서를 취미로 가진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닌가. 하지만 이 취미를 '효율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잘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 가끔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이 책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거이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 저자의 '책사랑'과 '책에 대한 겸손함'이 느껴져서 나 또한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읽지 않은 책이 점점 더 늘어난다" "독서를 통해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모르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진다" 이 두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럼에도 이 어려운(?) 길을 계속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길에는 다른 동지들이 많이 있을거란 확신이 든다.
- 이 서평은 필로소픽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것임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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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도대체 이 책은 어떤 책일까? 책 제목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책 제목이 이 책이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소설일까? 에세이일까? 혹시나 내가 모르던 명작이었던 걸까? 무엇보다도 김운하 작가의 책이었기에 책 제목에서 주는 궁금증보다는 기대감이 책을 펼치게 만들었다. " 책과 인연을 맺는 방식이나 스스로 책을 찾아 읽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책은 만화책을 뜻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만화책에 맛을 들였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툭하면 온갖 핑게를 대고선 학교 대신 만화방에 틀어박히곤 했었다. 소풍가는 날에도 나는 도시락을 들고 학교 대신 만화방으로 향했고, 심지어 부모님께 받은 수업료까지 만화방에 갖다 바치던 끝에 담임선생님께 그 사실이 들통나 곤죽이 되게 맞기도 했을 정도로. " 결코 읽기를 끝낼 수 없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서문은 작가의 책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릴 적 만화방에서 살다시피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만화책 독서가 가져온 삶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가 알아간 책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이런 이야기들은 김운하 작가가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책에 대한 스토리를 들으면서 세상에는 너무나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책이 주는 즐거움과는 바꿀 수 없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가 되면서도. 책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세상의 너무나도 많은 즐거움들에 책을 빼앗기는 경험이 많이 있는 나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문을 넘어서 본문에서 만난 이야기는 이런 작가의 책 이야기이다. 제1부 나쁜 책, 스토커, 그리고 독자 제2부 사형수, 도둑, 선원, 알코올 중독자, 그리고 작가 제3부 네 번째 책상 서랍, 타자기, 그리고 회전목마 목차만 보아서는 도무지 어떤 내용인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제목이지만 작가가 나름대로 기준을 잡고 분류해둔 책 이야기를 하나하나 재미있게 풀어냈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 나 또한 이 은둔 작가들의 생각이나 처신에 매우 격하게 동감한다. 그러나 대중매체가 작가의 평판과 인지도를 좌우하는 오늘날, 특히 좋은 책이 아니라 유명한 사람의 책이 잘 팔린다는 이상한 법칙이 통용되는 한국 출판 시장에서 과연 이런 극단적 은둔주의가 잘 먹힐지는 의문이다. 유명한 작가라야 광고가 붙고, 광고가 붙는 만큼 책이 더 잘 팔린다. 좋은 책이라도 무명작가라면 어떤 출판사도 섣불리 책 광고에 나서기 힘들 것이다. 아쉽게도 21세기 출판 시장에선, 이런 극단적 은둔주의는 이젠 신화나 전설에 더 가까운 일이 될 것 같다. " 작가의 통찰력 있는 생각이 담겨 있는 부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좋은 글보다는 유명한 사람의 글을 읽게 된 우리의 현실. 이런 우리의 현실을 비판적이면서도 날카롭게 바라본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이 주는 재미는 바로 이런 점이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중간중간 묻어 있는 작가의 생각들이 책이 주는 이야기와 함께 어울러져서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력과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까지 어느 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책에 담겨 있었다. " 원숭이가 무한한 시간 동안 무작위로 타자기를 두들겨 프루스트의 소설을 쓸 확률은? 이 모순을 더 깊이 파고들기 전에, 우리는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즉 히라노 게이치로의 계산이 맞다고 가정했을 때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책이 바벨의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을까 하는 문제다. 예를 들어 일곱 권으로 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그 속에 들어갈 수 있는가? 즉 25의 131만 2000제곱이라는 유한한 확률 조합 가운데에는 반드시, 필연적으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이 쓰이게 될까? " 원숭이가 무한한 시간 동안에 무작위로 타자기를 두들겨 프루스트의 소설을 쓰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였다. 이 책은 이런 익숙한 이야기에도 새로운 생각을 던져준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지 못하였던 부분들을 건드려준다. 책을 읽는 동안 어떻게 이런 부분들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내린 나만의 결론은, 작가의 엄청난 독서 내공이 이런 부분에서 발현된 것이라 생각한다. 어마어마한 독서가 작가의 이런 글을 이끌어낸 것 같다. " 잃어버린 말은 비밀을 간직한다. 그리고 독자는 책과 함께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한다. " 이 책에 대해서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목이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부터 시작해서 우리에게 익숙한 책에 대한 이야기, 낯선 책에 대한 이야기 등 수많은 책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생각들을 나누면서 가끔은 작가에게 동의도 할 수 있고 어떤 부분은 작가의 생각에 의문을 품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책을 읽으면서는 학생들과 함께 토론할만한 이야기거리가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책을 읽었지만, 아직 이 책을 다 읽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아마도 이 책을 다 읽었다라고 생각이 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독서 경험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책을 몇 차례는 더 펼쳐보아야 그제서야 읽었다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 독자는 한 권의 책과 함께 그들만의 내밀한 비밀을 영혼 속에 간직한다. 그리고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책과 독자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 [이 서평은 필로소픽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것임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