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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액셀 호퍼 외/ 윤승희 아름다운사람들/2018.5.14. sanbaram 정신분석의 문을 연 프로이트와 명상을 통한 깨달음을 방편으로 삼는 붓다를 상징하는 의자와 방석으로 대비된다.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고 활용해 보자고 하는 의미에서 열리게 된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이다. 지은이 액셀 호퍼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정신분석적 중립성을 정의하기 위하여>라는 논문으로 미국정신분석학회에서 수여하는 논문상을 수상했다. 정신치료와 정신분석 분야에서 40년 넘게 임상 경험을 쌓았다.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은 “소파와 방석 : 정신분석과 불교는 서로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2013년 9월28일 미국 보스턴 파인매너칼리지에서 열린 심포지엄 내용을 기반으로, 정신분석과 불교심리학의 접점을 주제로 하는 9편의 논문을 엮어 놓았다. ‘의자(카우치)와 방석’이라는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두 학문의 핵심적인 방법론을 비교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정신분석을 전공한 의사 또는 불교학자이면서 불교수행을 겸하고 있다. 내용 구성은 1부 프로이트의 의자 : 정신분석은 왜 필요한가?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들, 불교의 심리학, 알아차림이 전부는 아니다. 2부 붓다의 방석 : 불교심리학의 벽을 넘다 -정신분석과 불교의 참 모습, 불교는 과정의 심리학이다. 붓다와 위니콧, 마크 앱스타인의 “붓다와 위니콧”에 관한 고찰, 정신분석과 불교는 어떻게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가? 정신분석과 불교, 두 영역에서 공존한 삶. 3부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 정신분석과 불교의 연대 -정신분석과 불교는 어떻게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가? 등이다. “액셀 호퍼는 독특한 방식으로 정신분석과 불교 간의 대화를 발전시킬 역량 있는 저자들을 한데 모아 이 훌륭한 책을 완성했다. 대다수 저자들은 다양한 정신분석학파의 이론과 임상 경험을 모두 갖춘 동시에 불교수행을 체험한 이들로서 오랜 기간 자신들이 이해한 불교의 원리와 명상 경험을 정신분석 치료와 결합하려고 애써왔다. 니나 콜타트, 제럴드 포걸, 마크 엡스타인, 델리아 코스트너, 세라 웨버, 그리고 액셀 호퍼도 여기에 포함된다. 더불어 서구 불교학자이면서 수행자로서 다양한 전통 심리치료 전문가들과 불교 수행자들 간의 대화에 적극 참여해온 앤드루 올렌즈키는 불교심리학이 정신분석에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그 잠재적인 가능성에 관한 혜안을 제공한다.(p.12)” 이 책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고, 현재 진행 중인 정신분석과 불교 사이의 대화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에서는 불교방법론의 하나인 알아차림, 자비의 개념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만으로 불교 안에 내재된 가능성을 모두 드러내기는 어렵다. 이론의 차원에서 깊이 있는 비교 연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방법론이 도입된다면, 서구심리학은 더 풍요로운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p.16)” 이 책은 아홉 챕터로 되어 있다. 도입부에서는 정신분석과 불교의 기본 원리를 소개한다. 정신분석과 불교가 서로 교차하는 부분들을 비교하고 대조한다. 이를 위해 먼저 마음의 종잡을 수 없는 불가사의와 비밀을 탐구한다는 공통의 관심사에서 출발해 두 영역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을 살펴본다. 그 첫 번째는 비판적 판단 없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방식, 즉 불교의 명상과 정신분석의 자유연상 및 일정한 거리를 둔 주의집중이다. 두 번째는 복잡한 인간 상호 간의 소통 방식이다. 아울러 통찰과 깨달음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불교와 정신분석에서 주의를 집중하는 고유의 방식들에 대한 토의도 도입부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대개 과거나 현재에 매달려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지 못한다. 현실을 그대로 바라본다는 목표의 중요한 부분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찰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불교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명상은 우리가 현실을 회피하는 수많은 방식을 바라봄으로써 수행자로 하여금 스스로 지어낸 왜곡을 덜어낸 현실을 보게 도와준다. 도달하기 어렵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찰나의 현실을 완전히 경험하는 것이 목표다.(p.34)” 정신분석가들은 무의식이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저마다의 독특한 방식을 상상하게 만든다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정신분석 역시 무의식의 작용에 대해 알아차리게 함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현실을 덜 왜곡된 모습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 불교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라고 한다. “최근 수십 년간 관계이론이 부상하고 있다. 관계이론은 대상관계이론과 달리 주관적 경험들이 어떻게 자신과 타인에게 거는 기대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 다양한 방식들을 탐구한다. 관계 분석은 정신분석가와 환자 사이에 지금, 현재 일어나는 상호작용에 집중한다. 관계이론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관계적, 상호주관적 이론을 포함한 다양한 시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2인 심리학’이다.(p.55)” 초기 분석 이론들이 분석가가 객관적 진실을 손에 쥐고 있다는 주장을 견지한 반면, 현대의 이론은 상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분석가와 환자, 두 무의식의 마음, 서로의 영향을 미치고 서로에게 반응하는 두마음의 독특한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본다. “불교수행의 세 가지 요체 또는 핵심 3단계를 ‘삼학’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삼학은 윤리를 뜻하는 ‘실라(계 :戒), 명상을 뜻하는 ’사마디(정 : 定), 그리고 수행 끝에 얻게 디는 지혜를 뜻하는 빤냐(혜 : 慧)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적으로 알아차림 명상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는 이 삼학의 맥락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p.87)” 실라는 알아차림이 일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발판을 제공한다. 알아차림은 선한 마음 상태와 행동이 길러진 후에야 생겨날 수 있으며, 이렇게 생겨난 알아차림은 궁극적으로 통찰과 지혜가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연다. 명상 수행을 의미하는 사마디는 통찰을 얻기 위한 기본 도구이며, 통찰을 통해 우리는 빤냐, 즉 지혜로 나아간다. 삼학의 각 단계는 바로 이전 단계들을 바탕으로 생겨나며 세 가지가 서로 맞물려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고 설명한다. “붓다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생의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조건 안에서의 자유였다. ‘깨달음의 획득(열반)’은 최고의 또는 궁극적인 수카인데, 내가 보기에 깨달음에는 매우 강력한 심리학적 변형이 따라오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이는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저항하지 않고 어떤 조건이 닥치든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평온과 복을 누린다.(p.150)” 이는 더 이상 치통 같은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붓다도 여전히 육체적 고통은 경험했다.) 낮은 차원의 괴로움(두카)을 높은 차원의 행복(수카)의 맥락 안에 가둔다는 의미다. “색과 공의 결합으로 정리되는 붓다의 깨달음을 때때로 ‘위대한 결합’또는 ‘마하무드라’라고 칭한다. 고요한 하늘과 요동치는 물을 동시에 안을 수 있는 마음은 자유롭다. 어머니와 분리되는 지점에서 놀고 있는 아이처럼, 해방된 마음도 분리와 결합을 잇는 지점에서 노닌다.(p.202)” 하나를 파괴하고 다른 하나를 이상화함으로써 해탈을 얻으려 했던 붓다의 시도는 흔히 품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했다. 괴로움으로부터 놓여나기 위해 붓다는 바다에서 또는 하늘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대신, 스스로를 두 세계의 중간, 바닷가에 두어야 했다. 이것은 그의 내면세계의 작용이다. 그 안에서 그는 두 세계가 서로 의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의외이긴 하지만 그를 자유롭게 했고, 그로 하여금 자기와 타자에 대한 관념을 재평가하도록 만들었다고 붓다의 깨달음을 설명한다. “치료와 영적 수행의 길은 우리에게 풍부하게 베풂은 물론 서로에게도 뭔가를 제공한다. 정신분석과 불교는 나를 자극하고, 겸허하게 만들고, 내 안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했다. 또 나로 하여금 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깨닫도록 도와주었다.(p.295)” 불교 수행을 통해 정신분석가는 몸을 더 잘 경험할 수 있고, 따라서 환자의 연상은 물론 자신의 연상을 더 새롭고 심화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명상은 몸을 통해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용보다 과정을 우위에 두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하는 독특한 경험이다. 가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도움을 준다. ‘무의식의 소통’이라는 프로이트의 이론과 불교의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개념은 미래의 명상가와 정신분석가들이 더 풍요롭게 해석해갈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정신분석의 미래는 몸의 중심적 역할과 느낌에 대한 한계를 얼마나 새롭게 통찰하고, 그 새로운 통찰이 이제껏 축적된 귀중한 사유에 어떻게 기여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앞으로 프로이트의 이론과 불교의 명상을 융합하여 새롭게 인간정신을 탐구하는데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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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액셀 호퍼 외/ 윤승희 아름다운사람들/2018.5.14.
정신분석의 문을 연 프로이트와 명상을 통한 깨달음을 방편으로 삼는 붓다를 상징하는 의자와 방석으로 대비된다.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보고 활용해 보자고 하는 의미에서 열리게 된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이다. 지은이 액셀 호퍼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정신분석적 중립성을 정의하기 위하여>라는 논문으로 미국정신분석학회에서 수여하는 논문상을 수상했다. 정신치료와 정신분석 분야에서 40년 넘게 임상 경험을 쌓았다.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은 “소파와 방석 : 정신분석과 불교는 서로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2013년 9월28일 미국 보스턴 파인매너칼리지에서 열린 심포지엄 내용을 기반으로, 정신분석과 불교심리학의 접점을 주제로 하는 9편의 논문을 엮어 놓았다. ‘의자(카우치)와 방석’이라는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두 학문의 핵심적인 방법론을 비교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정신분석을 전공한 의사 또는 불교학자이면서 불교수행을 겸하고 있다. 내용 구성은 1부 프로이트의 의자 : 정신분석은 왜 필요한가?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들, 불교의 심리학, 알아차림이 전부는 아니다. 2부 붓다의 방석 : 불교심리학의 벽을 넘다 -정신분석과 불교의 참 모습, 불교는 과정의 심리학이다. 붓다와 위니콧, 마크 앱스타인의 “붓다와 위니콧”에 관한 고찰, 정신분석과 불교는 어떻게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가? 정신분석과 불교, 두 영역에서 공존한 삶. 3부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 정신분석과 불교의 연대 -정신분석과 불교는 어떻게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가? 등이다.
“액셀 호퍼는 독특한 방식으로 정신분석과 불교 간의 대화를 발전시킬 역량 있는 저자들을 한데 모아 이 훌륭한 책을 완성했다. 대다수 저자들은 다양한 정신분석학파의 이론과 임상 경험을 모두 갖춘 동시에 불교수행을 체험한 이들로서 오랜 기간 자신들이 이해한 불교의 원리와 명상 경험을 정신분석 치료와 결합하려고 애써왔다. 니나 콜타트, 제럴드 포걸, 마크 엡스타인, 델리아 코스트너, 세라 웨버, 그리고 액셀 호퍼도 여기에 포함된다. 더불어 서구 불교학자이면서 수행자로서 다양한 전통 심리치료 전문가들과 불교 수행자들 간의 대화에 적극 참여해온 앤드루 올렌즈키는 불교심리학이 정신분석에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그 잠재적인 가능성에 관한 혜안을 제공한다.(p.12)” 이 책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고, 현재 진행 중인 정신분석과 불교 사이의 대화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에서는 불교방법론의 하나인 알아차림, 자비의 개념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만으로 불교 안에 내재된 가능성을 모두 드러내기는 어렵다. 이론의 차원에서 깊이 있는 비교 연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방법론이 도입된다면, 서구심리학은 더 풍요로운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p.16)” 이 책은 아홉 챕터로 되어 있다. 도입부에서는 정신분석과 불교의 기본 원리를 소개한다. 정신분석과 불교가 서로 교차하는 부분들을 비교하고 대조한다. 이를 위해 먼저 마음의 종잡을 수 없는 불가사의와 비밀을 탐구한다는 공통의 관심사에서 출발해 두 영역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을 살펴본다. 그 첫 번째는 비판적 판단 없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방식, 즉 불교의 명상과 정신분석의 자유연상 및 일정한 거리를 둔 주의집중이다. 두 번째는 복잡한 인간 상호 간의 소통 방식이다. 아울러 통찰과 깨달음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불교와 정신분석에서 주의를 집중하는 고유의 방식들에 대한 토의도 도입부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대개 과거나 현재에 매달려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지 못한다. 현실을 그대로 바라본다는 목표의 중요한 부분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찰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불교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명상은 우리가 현실을 회피하는 수많은 방식을 바라봄으로써 수행자로 하여금 스스로 지어낸 왜곡을 덜어낸 현실을 보게 도와준다. 도달하기 어렵겠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찰나의 현실을 완전히 경험하는 것이 목표다.(p.34)” 정신분석가들은 무의식이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저마다의 독특한 방식을 상상하게 만든다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정신분석 역시 무의식의 작용에 대해 알아차리게 함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현실을 덜 왜곡된 모습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 불교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라고 한다.
“최근 수십 년간 관계이론이 부상하고 있다. 관계이론은 대상관계이론과 달리 주관적 경험들이 어떻게 자신과 타인에게 거는 기대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 다양한 방식들을 탐구한다. 관계 분석은 정신분석가와 환자 사이에 지금, 현재 일어나는 상호작용에 집중한다. 관계이론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관계적, 상호주관적 이론을 포함한 다양한 시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2인 심리학’이다.(p.55)” 초기 분석 이론들이 분석가가 객관적 진실을 손에 쥐고 있다는 주장을 견지한 반면, 현대의 이론은 상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분석가와 환자, 두 무의식의 마음, 서로의 영향을 미치고 서로에게 반응하는 두마음의 독특한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본다.
“불교수행의 세 가지 요체 또는 핵심 3단계를 ‘삼학’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삼학은 윤리를 뜻하는 ‘실라(계 :戒), 명상을 뜻하는 ’사마디(정 : 定), 그리고 수행 끝에 얻게 디는 지혜를 뜻하는 빤냐(혜 : 慧)로 이루어져 있다. 전통적으로 알아차림 명상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는 이 삼학의 맥락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p.87)” 실라는 알아차림이 일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발판을 제공한다. 알아차림은 선한 마음 상태와 행동이 길러진 후에야 생겨날 수 있으며, 이렇게 생겨난 알아차림은 궁극적으로 통찰과 지혜가 발달할 수 있는 기회를 연다. 명상 수행을 의미하는 사마디는 통찰을 얻기 위한 기본 도구이며, 통찰을 통해 우리는 빤냐, 즉 지혜로 나아간다. 삼학의 각 단계는 바로 이전 단계들을 바탕으로 생겨나며 세 가지가 서로 맞물려 온전한 하나를 이룬다고 설명한다.
“붓다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생의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조건 안에서의 자유였다. ‘깨달음의 획득(열반)’은 최고의 또는 궁극적인 수카인데, 내가 보기에 깨달음에는 매우 강력한 심리학적 변형이 따라오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이는 더 이상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저항하지 않고 어떤 조건이 닥치든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평온과 복을 누린다.(p.150)” 이는 더 이상 치통 같은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붓다도 여전히 육체적 고통은 경험했다.) 낮은 차원의 괴로움(두카)을 높은 차원의 행복(수카)의 맥락 안에 가둔다는 의미다.
“색과 공의 결합으로 정리되는 붓다의 깨달음을 때때로 ‘위대한 결합’또는 ‘마하무드라’라고 칭한다. 고요한 하늘과 요동치는 물을 동시에 안을 수 있는 마음은 자유롭다. 어머니와 분리되는 지점에서 놀고 있는 아이처럼, 해방된 마음도 분리와 결합을 잇는 지점에서 노닌다.(p.202)” 하나를 파괴하고 다른 하나를 이상화함으로써 해탈을 얻으려 했던 붓다의 시도는 흔히 품는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했다. 괴로움으로부터 놓여나기 위해 붓다는 바다에서 또는 하늘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대신, 스스로를 두 세계의 중간, 바닷가에 두어야 했다. 이것은 그의 내면세계의 작용이다. 그 안에서 그는 두 세계가 서로 의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의외이긴 하지만 그를 자유롭게 했고, 그로 하여금 자기와 타자에 대한 관념을 재평가하도록 만들었다고 붓다의 깨달음을 설명한다.
“치료와 영적 수행의 길은 우리에게 풍부하게 베풂은 물론 서로에게도 뭔가를 제공한다. 정신분석과 불교는 나를 자극하고, 겸허하게 만들고, 내 안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했다. 또 나로 하여금 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깨닫도록 도와주었다.(p.295)” 불교 수행을 통해 정신분석가는 몸을 더 잘 경험할 수 있고, 따라서 환자의 연상은 물론 자신의 연상을 더 새롭고 심화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명상은 몸을 통해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용보다 과정을 우위에 두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알아차리게 하는 독특한 경험이다. 가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도움을 준다.
‘무의식의 소통’이라는 프로이트의 이론과 불교의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개념은 미래의 명상가와 정신분석가들이 더 풍요롭게 해석해갈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정신분석의 미래는 몸의 중심적 역할과 느낌에 대한 한계를 얼마나 새롭게 통찰하고, 그 새로운 통찰이 이제껏 축적된 귀중한 사유에 어떻게 기여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앞으로 프로이트의 이론과 불교의 명상을 융합하여 새롭게 인간정신을 탐구하는데 이 책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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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파와 방석: 정신분석과 불교는 서로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2013년 9월 28일 미국 보스턴 파인매너칼리지에서 열린 심포지엄 내용을 기반으로 기획되었다. 이 때 발표된 내용들을 출판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심포지엄에 발표되지 않는 내용을 추가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바로 서양의 정신분석과 불교의 심리학이 만남이다. 정신분석학이라고 하면 프로이트를 떠오른다. 불교하면 붓다를 생각하게 된다. 정신분석학과 불교의 같은 듯 다른 이야기를 심리학적으로 풀어간다면 어떤 이야기가 전개가 될 수 있을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궁금했다. 사실 불교를 종교로 생각했던 나에게는 신선하기도 하면서도 새로웠던 부분의 책이다보니 새롭게 다가왔다.
정신분석은 개인의 방어기제를 이완시키며 고통의 근원에 심층적으로 접속한다.(p18) 자신을 불안하게 만드는 고통은 무의식적 뿌리에 근원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무의식을 만나기도 어렵고 오랫 시간 수행하고 견디어 낼 수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추천하는 글에서 말한다. 바로 정신분석 임상과 불교명상을 함께 체험한 서구 정신분석가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불교는 하나의 철학으로 고유하고, 복잡하고, 윤리적인 심리학을 내포하고 있으며 인간의 괴로움을 경감하는 데 목적이 있다.(p24) 그래서 괴로움의 존재와 경감을 시키기 위해 '무상'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주의집중'에 있다. 바로 '집착'과 '회피'를 없애야 한다고 말이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자아(ego)'의 심리학적인 기능과 기술적 정의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self)'라는 더 큰 개념과 다르다. 프로이트가 사용한 말은 독일어인 '다스 이히(Das Ich)'는 영어로 '자아(ego)' 와 '자기(self)' 모두를 의미한다. 전신분석에서 ' 자기(self)'의 정의는 다양하지만 자아의 기능은 매우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는데, 불교의 무아는 자의 제거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인지, 감각, 지각, 판단, 현실 검증의 기능을 수행하는 주체로서 자아의 존재를 인정한다.(p26)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소통 현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 인간이 무의식이 다른 인간의 무의식에 대해 의식을 통하지 않고 반응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p39)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 간의 소통이라는 개념은 불교에서 개인 공동체, 나아가 모든 의식 있는 존재들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는 개념이다. "벽이 없는" 소통을 말한다.
명상과 정신분석의 공통된 핵심은 바로 집중이다. 정신분석에서 한자의 주의는 자유연상에 쏠려있고, 환자는 주어진 순간 마음에 떠오르는 모든 것에 집중한다. … 불교명상에서는 오직 명상하는 한 사람만이 주의를 집중한다.(p40) 알아차림은 주의집중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주의를 완전히 집중을 하게 되면서 최적의 방식을 찾도록 스스로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의집중이 알아차림과 동의어가 아니라고 액설 호퍼는 말하고 있다.
“(어머니와 분리해 존재하는) 아기란 없다. (there no such thing as a baby)!”(p188)는 말처럼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명상을 통해서나 내담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어느 날 눈에 보일 때가 있다. 이 새상과 분리된 자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통찰을 통해 관계 안에 존재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런 통찰이 축적되고 어떤 사유를 하는가에 따라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음을. 그래서 저자는 '무의식의 소통'이라는 프로이트의 이론과 불교의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개념은 미래의 명상가와 정신분석가들이 더 풍요롭게 해석해 나갈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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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하면 우선은 프로이트를 떠
올린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서 얻어 들은 것이 있기에 단편적이나마 정신분석이 어떤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막상 그게 무어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이 궁해진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친근하게 다가오고 주위에서 접하는 것이기에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표면에 드러난 것만을 보고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신분석도
그렇고 불교도 그렇고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는 욕심이 이 책을 읽게끔 만들었지 싶다. 프로이트와
붓다라니.. 정신분석과 불교를 동시에 알게 만드는 뭔가 거창한 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다.
이 책은 정신분석학과 불교심리학이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를 주제로 하여, 정신분석학자와 불교학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정신분석가로써 환자들을 치료하고, 또
불교학자 혹은 신자로써 불교의 명상을 체험하면서 그 둘 사이의 접점과 차이에 대해 비교한다. 즉 정신분석학의
내면탐색과 불교의 명상이 어떤 유사점과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지, 또 정신분석학이 불교의 수행방법을 환자들의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불교는 종교이기 이전에 인간의 괴로움을
경감하는 방법론을 다룬 학문이기도 하다. 괴로움을 경감시키기 위해 불교는 명상이라는 수행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기 신체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수용하면서 순간순간의 경험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괴로움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이런 ‘알아차림’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최종적인 목적지는 아니다. 불교에서
추구하는 것은 괴로움의 경감이라는 단순한 증상의 치유가 아니라 그 자체의 완전한 해소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이나
행동치료와 같은 심리치료 역시 인간의 괴로움을 다루는 치유의 한 형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심리치료가
증상완화를 목표로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신분석은 증상의 완화뿐만 아니라 당장의 위기상황을 초래한 원인을
찾고자 더 깊이 파고 들어간다. 이를 위해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을 다루는데, 이것이 여타 심리치료들과 다른 점인 동시에, 불교와 접점을 이루는
지점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괴로움의 경감에 대한 불교와
정신분석의 접근방식이 모두 경험적이고,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 마음에 담긴 내용물을 중립적인 태도로
탐색하여 통찰을 얻고자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불교는 인간의 보편적인 조건을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 반해, 정신분석은 개별사례를 해석하여 자기이해를 통한 증상극복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개인의 방어기제를 이완시키면서 고통의 근원에 심층적으로 접속하여 개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고통의 무의식적 뿌리를 알아가는 정신분석과, 자기성찰을 통해 해탈을 추구하는 불교수행의 한 모델인
명상은 서로 상호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 저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정신분석은 치유의 방법이면서 마음을
읽는 이론이라고 한다. 인간의 행동은 흔히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계산되지 않은 동기, 즉 무의식에 의해 촉발된다고 정신분석학에서는 말한다. 또한 불교의
확고한 가르침은 우리가 마음을 주의 깊게 살필수록 마음은 더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 저자들은 정신분석을 통해 무의식을 들여다보고, 불교적 성찰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는 두 가지
방식을 탐구하면서, 불교의 명상과 정신분석 임상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
그리고 생각, 느낌을 통해 그것들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정신분석가와 불교수행자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고, 서로에게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책을 읽고 난 지금, 이 책의 제목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프로이트의 의자라
함은 프로이트로부터 시작된 정신분석에서 분석자가 환자의 무의식을 들여다보기 위한 자유연상을 의미하고, 붓다의
방석이라 함은 붓다로부터 시작된 불교에서 성찰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는 명상을 뜻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정신분석이나 불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이 책을 이해하기가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 다만 동양의
심리학이라는 불교와 서양 심리학의 최고라는 정신분석학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아간다.
책을 읽으면서 이해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저자들이 말하는 불교용어였다. 그들이 사용하는 불교용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지 싶다.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생소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불교용어를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영 낯설다. 어찌되었든
정신분석학과 불교에 좀 더 지식을 쌓고서 이 책을 읽는다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부족한 것을 좀 더 배워 알아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천은 더디기만 하다.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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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은 “소파와 방석 : 정신분석과 불교는 서로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2013년 9월28일 미국 보스턴 파인매너칼리지에서 열린 심포지엄 내용을 기반으로, 정신분석과 불교심리학의 접점을 주제로 하는 9편의 논문을 엮어 놓았다. ‘의자(카우치)와 방석’이라는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두 학문의 핵심적인 방법론을 비교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정신분석을 전공한 의사 또는 불교학자이면서 불교수행을 겸하고 있다. 내용 구성은 1부 프로이트의 의자 : 정신분석은 왜 필요한가?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들, 불교의 심리학, 알아차림이 전부는 아니다. 2부 붓다의 방석 : 불교심리학의 벽을 넘다 -정신분석과 불교의 참 모습, 불교는 과정의 심리학이다. 붓다와 위니콧, 마크 앱스타인의 “붓다와 위니콧”에 관한 고찰, 정신분석과 불교는 어떻게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가? 정신분석과 불교, 두 영역에서 공존한 삶. 3부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 : 정신분석과 불교의 연대 -정신분석과 불교는 어떻게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가? 등이다. “액셀 호퍼는 독특한 방식으로 정신분석과 불교 간의 대화를 발전시킬 역량 있는 저자들을 한데 모아 이 훌륭한 책을 완성했다. 대다수 저자들은 다양한 정신분석학파의 이론과 임상 경험을 모두 갖춘 동시에 불교수행을 체험한 이들로서 오랜 기간 자신들이 이해한 불교의 원리와 명상 경험을 정신분석 치료와 결합하려고 애써왔다. 니나 콜타트, 제럴드 포걸, 마크 엡스타인, 델리아 코스트너, 세라 웨버, 그리고 액셀 호퍼도 여기에 포함된다. 더불어 서구 불교학자이면서 수행자로서 다양한 전통 심리치료 전문가들과 불교 수행자들 간의 대화에 적극 참여해온 앤드루 올렌즈키는 불교심리학이 정신분석에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그 잠재적인 가능성에 관한 혜안을 제공한다.(p.12)” 이 책은 우리의 사고를 자극하고, 현재 진행 중인 정신분석과 불교 사이의 대화를 의미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신분석과 심리학에서는 불교방법론의 하나인 알아차림, 자비의 개념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론만으로 불교 안에 내재된 가능성을 모두 드러내기는 어렵다. 이론의 차원에서 깊이 있는 비교 연구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방법론이 도입된다면, 서구심리학은 더 풍요로운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p.16)” 이 책은 아홉 챕터로 되어 있다. 도입부에서는 정신분석과 불교의 기본 원리를 소개한다. 정신분석과 불교가 서로 교차하는 부분들을 비교하고 대조한다. 이를 위해 먼저 마음의 종잡을 수 없는 불가사의와 비밀을 탐구한다는 공통의 관심사에서 출발해 두 영역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을 살펴본다. 그 첫 번째는 비판적 판단 없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방식, 즉 불교의 명상과 정신분석의 자유연상 및 일정한 거리를 둔 주의집중이다. 두 번째는 복잡한 인간 상호 간의 소통 방식이다. 아울러 통찰과 깨달음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불교와 정신분석에서 주의를 집중하는 고유의 방식들에 대한 토의도 도입부에 포함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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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joyjoy65/221291873079
내가 아는 의자 디자이너인 그의 작업실엔, 세상에 몇 개 없는 아트 작품인 귀한 의자들이 있었지만, 앉는 사람없이 저 혼자들 비어 있었다. 정작 그는 좌식생활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가 쉬는 방엔 의자도 물론 없었고, 옻칠을 한 키 작은 칠기 밥상에서 그는 차를 마시고, 바닥엔 프레임이 없는 매트리스를 사용했다. 그의 공간에서 옛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차를 마시던 일은 무척이나 불편했다. 왜 굳이 땅바닥 생활이 좋은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프로이트의 의자와 붓다의 방석]이라는 책의 제목을 보면서, 난 그의 작업실 바닥이 생각났다. 의자와 방석이 한꺼번에 깔려있던 그 공간에 최고의 현재와 오랜 고풍의 어제가 공존하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프로이트의 의자는 누워서 쉴 수 있는 카우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정신분석을 위해 환자가 누워서 상담받을 수 있는 의자를 의미한다. 물론 붓다의 방석도 불교적 명상을 위한 위한 자리이다. 의자이든 방석이든 그것은 치료하는 장소를 뜻하며, 프로이트든 붓다든, 누군가의 심리적, 정신적 결핍과 문제의 근원을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 바닥이 정말 불편했었는데, 유난히 허리가 아픈 요즘, 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고 누워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했는데, 자세 때문인지 그동안 생각했던 바닥의 불편함이 아닌 새로운 평안함과 안식으로 다가왔다. 방석이 이렇게 편할 줄이야!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있는 습관 탓에 생긴 고통이, 바닥으로 내려오니 저절로 치료되는 것만 같았다. 프로이트가 심어놓은 정신분석의 방법론이나 불교적 명상론이 함께 존재하거나 오묘한 끈으로 묶여있다고, 여러 심리학자들이나 의사와 연구자들은 그 특별한 두 세계의 근원과 맥락을 통찰하면서 연구하고 실험했으며, 거기에서 발견한 진리를 나름대로 논문 9편으로 정리하고 발표했다. 39 "한 인간의 무의식이 다른 인간의 무의식에 대해 의식을 통하지 않고 반응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133 222 목차 1부 프로이트의 의자: 정신분석은 왜 필요한가?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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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런 책을 번역, 출판해 준 출판사에 감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또한, 전문분야의 책임에도 읽기에 큰 불편함과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지않는 훌륭한 번역에도 감탄했다.(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운 번역이 상당히 많은 현실을 마주쳐 본 저로서는 고마울 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몰랐던 불교의 여러가지 측면들을 알게되어서 좋았고, 그러한 면들이 현실적인 정신분석 치료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보여질 수 있는가하는 점들이 특히 흥미로웠다. 또한, 동양과 서양의 관점이 하나로 통합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나를 더욱 더 이 책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혹시, 융 심리학과 주역을 비교한 책이 어디 있지는 않을까하는 희망과 함께 이러한 내용의 책들이 앞으로도 많이 발견되고 출판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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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소파)과 불교(방석)는 서로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라는 태제 아래 여섯 명의 정신분석학자와 심리학자들의 아홉 편의 논문을 통해서 두 학문의 핵심적인 방법론을 비교하고 있다. “이 책은 서구 심리학과 상담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활로를 보여주고, 불교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불교의 현대적 모색을 가능케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17p)
그럼 이들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 정신 분석학 내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았다.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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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이 많기도 하지만 이 책을 발견했을 때 '프로이트의 의자 vs 붓다의 방석'이라는 표현이 재밌어서 읽어 보고 싶었다. 이 책은 액설 호퍼뿐 아니라 여러 명의 그래서 더 이상 심리학이라고 과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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