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TV에서 하루에 한 번은 만나는 광고가 출산장려 공익광고다. 마치 아이만 낳으면 행복한 미래가 열리기라도 한다는 듯 주문을 걸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여성의 인권이 중동과 비슷한 100위권인 나라, 성추행·성폭행, 데이트폭력, 가정폭력의 상시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 남성과 똑같이 배우고 졸업해도 성차별과 임금차별, 외모차별이 부동인 나라, 육아와 살림이 여성에게만 부담 되는 나라,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수 억원이 드는 나라에서 저출산은 필연이다. 출산과 젠더 정책에서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구호를 외치는 건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도 왜 변하지 않는 걸까.
페미니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다. 가부장제하의 남성중심 문화가 만들어온 지구촌 위기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미투 운동으로 한국 여성의 일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게 세상에 드러났는데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실감할 만큼 변한 게 없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목소리는 항상 '나중에'나 '해일이 몰려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는 꾸짖음 속에 묻히고 만다. 하지만 성차별 해결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 성차별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적폐이기 때문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자본주의의 전제는 가부장제(젠더)고 젠더의 전제는 이성애제도'라고 설명한다. '인종차별과 젠더 차별을 활용한 임금격차가 없다면 자본은 임금을 조절할 수 없'으니 '노동운동을 분열시키는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가부장제'라고 한다. 가부장제를 유지시키는 젠더와 이성애제도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문제임에도 탈정치적으로 보이는 것은 남성과 여성이 섹스를 하고 가족을 이루기 때문이다. 사실 섹스는 가장 정치적인 문제고 남녀관계는 정치적인 관계다. 여성주의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저항하려는 게 아니라 '파이를 같이 만들자'는 것임을 강조한다.
기생충 학자 서민 교수는 서른 살까지 보통 남자였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성차별을 언급한 강준만 교수의 이야기를 들은 뒤 페미니즘 도서를 탐독하고 페미니스트가 됐다고 한다.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비웃을까봐 걱정하지만 여자는 남자가 자기를 죽일까봐 걱정한다'며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관계의 온도 차를 정확히 설명한다. 여자들을 침묵시키기 위한 남자들의 노력은 인터넷상의 '주작(조작)', 가해자 빙의, 남성에게 불리한 기사만 나오면 여가부 폐지하라, 여자도 군대가라는 등 물타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기 등 인터넷상에서 여성혐오 댓글을 달기 위해 항시적으로 대기중인 젊은 남자들이 많은데 한국 남자들이 이젠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손아람 작가는 '대중 문화 속의 여성'을 고찰하며 남성 작가의 문학 작품과 영화 속에서 여성 인물의 역할 비중과 주체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 작가의 의식의 변화에 한계가 있는 한 소비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남성 작가와 영화감독에게 영향을 미칠 만큼 대중이 눈높이와 목소리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인권운동가 한채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차별을 줄이기 위해 교육하고, 조사하고, 시정하는 절차와 권한과 예산을 부여하는 기본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가 제정하려고 했던 차별금지법이 2017년 문재인 후보의 대선 공약에서 빠진 것은 명백한 후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 한국 근대사에서 뿌리깊어진 정교유착이 있음을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가장 오래된 적폐임을 설명한다. 헌법 20조에 명시된 정교 분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다보니 보수 종교계에서 반대하는 차별금지법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페미니스트 정치 덕후 권김현영은 2008년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로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여성단체의 가능성은 역사화되지 않았고, 2015년에 시작된 여성혐오 이슈는 공론장에서 철저히 외면받았다고 술회한다. 우리 사회에는 사회변화를 위한 새로운 기획과 목소리들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지만 386세대인 룸살롱 남성연대의 기득권에 막혀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토로한다. 또 저출산 문제의 해법은 지금과 같이 가족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정책에 맞출 때 실효가 있음을 유럽의 사례를 통해 배워야 한다.
대중문화 연구자 손희정은 '음모론 시대의 남성성과 검사 영화'를 살펴보며 배타적, 남성중심적으로 구성돼 있는 남성연대가 작동하는 핵심에 '이야기'와 '상상력'이 있음에 주목한다. 강간이라는 실제 행위도 중요하지만 실제 행위가 가능해지고 필요하다고 상상하는 그 '상상력'이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고 폭력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행본 세 권에 걸쳐 성차별적 인식을 보여준 탁현민 행정관 인사는 문재인 정부가 젠더 정책에 무능함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법철학 교수 홍성수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혐오표현에 무방비 상태나 다름 없다고 지적하며 방심하고 있다가 언제든지 혐오표현이 차별과 폭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사회의 혐오와 혐오표현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아무도 쉽게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바로 지금이 혐오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적기'라고 설명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마련 이전에 학교와 회사에서 혐오표현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고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혐오표현 자체를 규제해야 할 뿐 아니라 여성, 성소수자, 이주자 등에 대한 편견에 기반한 증오범죄를 철저히 규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여성, 인권, 대중문화, 정치, 법 등 각계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일곱 명이 오늘을 바라보는 페미니즘의 현주소를 짚어낸 강의를 마무리하며 정희진은 한국사회에서 인식론으로서 젠더의 지위가 서구보다 미비함을 지적한다. 한국사회는 '단지 여성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 아니라, 타자, 약자,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이고 인권과 민주주의의 의식이 없는 것'임을 지적한다. 한국 사회의 성차별도 문제지만 성차별에 대한 남성과 여성의 인식차가 더 크다는 게 문제라는 말에 공감한다. 문재인 정부가 젠더 문제를 회피하는 한 젠더 스캔들은 계속 터질 것이며 저출산은 요지부동일 것이다. 고통은 회피할수록 더 커진다. 한국 사회와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즘을 통해 더 많은 민주주의를 끌어안길 바란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이 책의 장점은 책을 통해 이론적으로 알던 페미니즘의 내용을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 영화, 종교, 법 등의 현실에 비추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다시 읽기를 하며 재작년 처음 읽었을 때 다소 어렵게 느껴지거나 잘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이해되어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
가부장제 사회는 고양이(남성)와 쥐(여성)가 섹스를 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니, 폭력이 발생하죠. 잡아먹히고, 패고, 맞고 ... 성산업, 성매매는 이 문제가 제도화된 것입니다. 톰과 제리의 사이는 나쁘거나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고, 제리가 각성하면 인류 문명의 근본이 흔들리는 거죠 ……
고양이가 쥐를 지배하는 사회, 남성지배사회에서 성폭력이나 성매매는 일탈이 아니라 규범입니다. 톰이 제리를 ‘돌리는’ 거죠. ... 남성연대 혹은 남성들 간의 교환물로서 여성을 동원하고 활용하는 것이죠. 가부장제 사회의 젠더 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왜 어려운지를 이야기하는 정희진은 적대 관계인 '톰과 제리'를 비유로 들어 설명한다. 남성 중심 사회가 유지되는 데는 이러한 모순 관계가 개인적인 섹스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패미니즘의 가장 기본적인 주장 중 하나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The personal is the political)”죠. 이 말이 뭐냐면, 남성에게는 퍼스널한 문제가 여성의 입장에서는 폴리티컬하다는 거예요. 여성에게는 공적 영역도, 사적 영역이라 간주되는 영역도 모두 정치의 장입니다.
'한국 남성이 본 한국 남성'을 말하는 서민은 온라인 상에 나타난 젊은 남성들의 여성혐오적 반응을 살펴보며 그들이 왜 성폭력 가해자에게 빙의하는지 설명한다. 그동안 왜 남성들은 걸핏하면 피해 여성을 꽃뱀으로 모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아래 설명 과정에서 꽃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 제일 이상한 게 바로 가해자 빙의입니다. ‘나도 잠재적 가해자이니 언젠가 내가 가해자 될 때 너희들이 도와줘’ 이런 논리가 아니면 가해자에 빙의할 필요가 없죠. 예를 들어 ‘호식이두마리치킨’ 회장이 성추행을 합니다. 이런 사건에서는 그냥 그 회장을 욕해주면 됩니다. 그런데 남성들은 “욕하지 말고 지켜보자”, “피해자가 꽃뱀일 수도 있다. 결과 나오면 욕해도 된다” 이런단 말입니다. 이런 신중함이 ‘김여사’를 욕할 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부는 “솔직히 이건 돈 많은 노인 꾀어 돈 좀 뜯어내자는 거지. 남자라서 당한 거지”, “꽃뱀에 한 표” 이런 글들을 올려요. 신기하죠. 남자들이 정말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면 이럴 필요가 없어요. 게다가 피해자가 거듭된 요청에 어쩔 수 없이 합의를 해주고 3억원을 받았더니 난리가 났죠. “수상하네요”, “다급하게 고소하고 취하?” 이러면서 피해자를 ‘꽃뱀’으로 만들어요. 아시다시피 합의하면 처벌이 관대해지니 성추행 가해자가 합의를 종용하는 거잖아요. 회장측 변호사가 피해자를 귀찮게 하니까 짜증도 나고 무섭기도 해서 합의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합의하면 ‘꽃뱀’이 됩니다. “성추행을 당하고 강간당할 뻔하다가 도망쳤다 해도 합의한 이상 꽃뱀일 뿐이다”, “경찰한테 신고했다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한 건 이상하네” 이런 식으로 여자를 ‘꽃뱀’으로 몰며 가해자 편을 들어요.
영화를 보며, 또는 소설을 읽으며 여성혐오인지 아닌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을 종종 만난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성희롱이나 여성에 대해 성적 대상화의 시선을 반영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여성혐오적인 현실을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작품성을 중심으로 작품을 평가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손아람 작가의 설명을 다시 읽으니 이제는 좀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작가가 작품 안에서 세계의 문제를 드러낼 때는 보통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를 모형으로 만들면서 일종의 ‘문제적’ 대상화를 하지요. 문제의식이 있는 작가들은 거기서 작업을 끝내지 않습니다. 대상화된 인물들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싸우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게 바로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이 완결되면서 작가의 의도대로 이 세계가 작품 안에 ‘투사’된 것입니다. 여성혐오라고 비판받는 영화는 세계의 문제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재생산하는 데서 멈춥니다. 단지 여성이 두들겨맞는 장면이 영화에 나왔다고 ‘여성혐오’라고 말하는 여성관객은 없습니다. ... 관객들은 맥락을 본능적으로 구분해냅니다. 영화가 여성인물이 당면한 문제를 전시하고 지나가는지, 아니면 작가의 문제의식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인지.
우리나라는 종교가, 그 중에서도 보수 개신교가 정치에 자주 참여한다. 특히 선거철이면 각 당의 후보들이 여러 종교단체를 찾아가 한 표를 부탁하는 광경이 익숙하다. 하지만 한채윤의 '종교화된 정치, 정치화된 종교'를 읽어보면 그들이 단지 표를 부탁하는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기총’은 1989년에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자신의 정권에 도움이 되기 위해 보수개신교를 규합한 연합체를 만들도록 한 거죠. ‘한교연’은 2012년에 ‘한기총’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서 갈라져 나온 연합체입니다. ‘KNCC’는 1924년에 만들어진 단체이고 진보개신교를 대표하는 연합체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보들은 이 세 개 단체를 다 방문해야 합니다. 눈치가 보이니까요.
정교유착의 문제는 힘있는 자들끼리 기득권을 계속 나누어 먹으려고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관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검사영화들이 선보이며 그전에 나온 경찰 영화의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남성 중심인데다 주로 폭력 영화라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손희정의 '음모론 시대의 남성성과 검사영화'를 읽고 관심을 갖게 됐다. 영화 <내부자들>과 그밖에 검사영화들을 중심으로 검사영화의 특징과 공통점들을 소개하니 이해하기 쉽고 남성연대와 강간문화가 유지되는 한 방법으로 이야기와 상상력의 힘이 세다는 걸 수 있다. 특히 몇 년 전에 본 영화 <아가씨>에서 이해하지 못한 대목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와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다시 영화 <아가씨>로 가볼까요 박찬욱 감독은 남성-동성사회성과 그 위계를 유지하는 ‘여성혐오’의 성격이 이야기와 이미지, 판타지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조선인 조진웅이 ‘진짜 일본인’이 되기 위해서 일본여자와 결혼하고 그렇게 ‘내선일체’에 동조하고, 더불어서 일본 고위급 남성들에게 여성의 포르노그래피적 이미지를 구술과 연행이라는 형태로 제공하죠. 조진웅이 김민희와 결혼한 하정우에게 계속 요구하는 것 역시 ‘첫날밤이 어땠는가’에 대한 상세한 묘사입니다. ‘말’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성’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것이죠. 결국 여성에 대한 강간과 멸시가 가능해지는 것은 이런 ‘상상력’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19라는 비상 상황 속에서 수많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우리는 노동자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산업재해가 계속되고 경비노동자의 인권은 왜 보장받지 못하는지 답답하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디지털로 옮겨가 더욱 악랄해지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부끄럽고 한심한 현실 속에 놓여있다. 언제까지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은 나중으로 돌려질 텐가. 마지막 장을 정리한 정희진의 말이다.
"고통을 회피하는 사회는 더 고통을 치릅니다. 제가 문재인 정부에게 바라는 점은 고통에 직면하고 열려 있기를 ……. 물론 여성들의 고통도 포함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