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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옥한흠목사님의 인자하시고 교역자들을 참 사랑으로 지도하셨던 그 모습을 기억해 본다. 직접 그분께 경험되지는 않았지만 그 분의 참으로 많은 흔적들은 우리에게 큰 모범이 되고 참 그리스도의 사랑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그전에 그분의 수 많은 제자들이 옥 목사님께 받은 사랑들을 나열한다면 끝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사랑하는 목사님의 자녀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바라보면서 더 옥 목사님의 대해 알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다. 「진영」은 어느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옥 목사님의 자녀가 아버지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할머니가 계신 시골(진영)로 놀러가서 또한 초등학문을 배울 때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어린나이에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할머니댁으로 이사와서 때로는 힘들고 아픔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세상을 알아가는 귀한 시간인 듯하다. 저도 늘 방학 때가 되면 누나와 함께 외할아버지댁에 놀러가서 함께 놀고 그곳에 있는 아이들과 정말 재미있게 놀던 때가 생각나며 그곳에 있는 한 소녀를 알게 되었고 잠시 그 소녀를 좋아했었고 그래서 늘 방학때가 되면 시골에서 재미있게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지낼 생각에 매번 방학이 기다려졌다. 이러한 삶 때문에 진영에서 지낸 꼬마주인공 옥성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 세계에서 우상이 되어 서울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그러면서도 진영사람이 다 되어 행동이나 말투에서 그 지역 사람이 됨을 볼 수 있다. 그가 다시 서울로 올라갔을 때 말투에서 베어있는 사투리 때문에 많은 아이들에게 큰 괴롭힘을 받게 된다. 진영에서 다니는 학교에서 방송국이 찾아 온다고 하여 설레고 있으나 실망하게 된다. 아멘 할아버지의 뜨거운 기억들이 한 아이에게 뜨거운 사랑을 알게 하고 소중한 추억을 더하게 된다. 이렇게 진영에서 보낸 그의 삶에서 다시 찾아온 아빠를 만났을 때 그 따뜻하고 깊은 그 관계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성호가 성장하면서 그에게 흐르는 여러 가지 소중한 추억들은 그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고 풍부한 성장배경을 통해 세상이 주는 것들보다 너무나 값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책을 통해 가슴 따뜻하게 되었고 고 옥목사님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위해서 가족까지 한국에 두고 가는 목사님의 담대함과 미국에서 홀로서기 가운데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목사님의 위대한 능력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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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부재를 느끼기는 커녕 너무도 풍성한 사랑의 장소인 저자의 진영에서의 추억을 통해 저 또한 저의 아버지와의 어린 날의 추억을 기억해 봅니다. 옥한흠목사님의 철저한 성품의 아버지 아래 왠지 나사하나 빠진듯한(?) 장남의 모습에 더욱 큰 잔잔한 감동을 느낍니다. ^^ 아마도 이 책의 내용을 하늘에 계신 옥목사님께서 보신다면~ 엥~얘들이 이렇게 지냈구나~~하며 눈물가득 미소를 지으시지 않을까요???
책을 구입하며 전체 비닐 포장이 되어있어 이상하게 생각도 하고 별나게 판매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ㅎㅎㅎ 뒷편에 구성된 그야말로 보석과도 같은 사진을 넣어주심에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바로 소장용도서로 분류하였습니다.
귀하고 귀한 추억을 같이 나누어 주신 옥성호 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리며 저자님은 물론 책 속에 등장하는 사모님, 훈이님, 성수님 그리고 진영의 식구들, 거제도의 식구들, 그리고 목회중의 모든 분들이 옥목사님을 그리워 하듯이 저 또한 그 그리움을 마음에 담고 책의 마지막의 글... ''비록 같은 하늘아래서 다시는 만날 수 없지만 이 삶 너머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새로운 진영을 살고 있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저 또한 주님이 허락하신 새로운 진영에서의 삶을 풍성히 누리는 은혜를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연말연시의 분주한 가운데 엄청 웃으면서 읽을 수 있게하여준,,, 진정으로 마음 따뜻한 도서를 만남에 감사드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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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써내기 시작했을 때 조금은 불편한 느낌을 받았더랬습니다. 조금은 극단적이고 편협하게 보이는 성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왜 이런 성향을 지니게 되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아버지 부재'의 부정적인 영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수년 전 옥한흠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가족들과 오랜 시간 떨어져 공부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그 시간이 결코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자신은 동생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저자가 기록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그가 진영에서 보냈던 시간이 무척이나 즐거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그가 힘들어 했던 것은 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와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단독주택 2층에 세들어 살면서 느꼈던 열등감이나, 아버지가 개척한 교회가 상가건물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느꼈던 열등감이 그를 힘들게 했지, 진영에서 지내던 시기는 결코 그에게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생활에 대한 저자의 글을 통해서 저자에게 있어 진정한 '아버지의 부재'는 서울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자훈련과 심방으로 인해 아버지의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저자의 청소년기가 이 책에서 기록하고 있는 시기 이후에 펼쳐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한동안 신앙을 떠나 방황했던 것도 어쩌면 그 청소년 시기와 깊은 관련이 있지 않은가 추측해 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 시기에 겪었던 힘들었던 기억이 이제는 저자에게 또 다른 힘이 되어주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는 아버지 옥한흠 목사님이 유학을 하시던 그 시기에 대해 미안해 하시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옥한흠 목사님께서 저자에게 미안해 하셨던 것은 비단 그 시기에 대해서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인 저자가 이제라도 그 시기는 물론이고 그 이후의 시기에 대해서도 아버지를 이해해 드리고 있음에 대해 하늘에서나마 기뻐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목회자의 자녀들이 집안 형편이나 교회의 규모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비교하면 부끄러울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렇다고 어떻게 해 줄 방법도 없는 처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하지만 옥한흠 목사님처럼 최선을 다해 설교하고 훈련하고 사역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돌아보심이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자가 일 년여 만에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를 찾았을 때 느꼈던 그 감격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경험하게 해 준다면 얼마나 기쁠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주일학교를 운영할 형편이 되지 않았을 때, 과감하게 다른 교회 주일학교에 위탁교육을 부탁하신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목사님다운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을 빼앗길까 걱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조건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도록 하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찾으셨던 모습이 무척이나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서 얼마나 확고한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오셨는지, 그리고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나 열정적으로 섬기셨는지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큰 도전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의 제 모습이 그에 미치지 못함을 여실히 느끼면서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어 본 바로는 이 책이야말로 저자의 책 중에 가장 재미있고 술술 읽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글 솜씨가 가장 잘 드러난 책이 바로 이 책인 듯 싪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가 천상 글쟁이로 살아야 할 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저자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됨을 느낍니다. 저자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 책처럼 따뜻함을 느끼게 해 주는 책으로 저자를 만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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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수 없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 나는 과거 3년간의 진영보다 좀 더 긴, 새로운 진영을 살고 있다고, 비록 같은 하늘 아래서 다시는 만날 수 없지만 이 삶 너머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새로운 진영을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p.236
진영..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우리나라 지리라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나로써는 '진영'이라는 것에 대해 나 혼자의 해석을 하면서 제목을 오해했던 듯 싶다. 책을 손에 들고보니 '진영'이라는 것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진영리에서 저자의 아버지 고 옥한흠 목사님께서 국비장학생으로 미국을 3년간 가셔야 했던 그 3년의 부재시간동안 진영에서 지냈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2006년 폐암이 발병한 이후, 부쩍 지난 시절에 대한 회한들을 표현하시곤 하셨던 아버지. 무엇보다도 교회일이 바빠, 가족과 함께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한 점에 대해서 많이 안타까워하셨다. 그중에는 가족을 3년간이나 떨어뜨려 놓아야 했던 아버지의 유학 시절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 아버지께 3년간의 아버지의 부재는 결코 자식들에게 불행이 아니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아버지 생전에 책이 출간되지 못한 저자의 안타까운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외할머니댁인 진영에 내려갈 당시 저자 나이 초등학교 2학년. 그곳에서의 3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대로 독자들에게 그때의 심정을 말로 읽어주듯이, 어쩜 그 심정이 그리도 적나라한지. 읽으면서 상황들에 웃음이 터져나와 몇번이나 주위를 의식해야만 했다. 아버지와의 헤어짐에는 관심도 없던 진영에 대한 기대감의 이야기나, 진영에서 서울로 올라올때엄마보다 더 좋아하는 할머니께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돌아서온 그 때의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많이 웃었다. 서울아이가 시골로 전학가 표준어로 인해 시작된 반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에 대한 무용담, 커져가는 자신감이라든지, 그 언저리에 묻어있는 크고 작은 거짓말 속에는 아이들이 하는 거짓말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또 저자와 함께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무렵 아이들의 순박함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그 또래 아이들에게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었지 않았다 생각했다. 한살 차이 동생, 자신을 언니라 불렀던 훈이에 대한 형으로써 가지는 미안했던 마음들도 솔직하게 고백되어져 있었다. 동생이 설겇이로 모은 푼돈을 모아 마이마이를 사준것이나, 선물로 준 구슬을 배로 늘려 동생에게 주려고 했으나 그길로 다 잃고 돌아왔던 일. 또 어머니가 아끼는 밥통을 찌그러트리고, 돈 100원에 자신의 잘못을 동생이 뒤집어 쓰고 어머니께 많은 매를 맞으며 미안함에 집을 뛰쳐나갔던 모습등이 참 훈훈한 형제애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 올라왔던 시절. 아버지는 교회를 개척하시고 진영에서와는 달리 서울에서의 생활은 비교에 시달리며 힘들었던 사춘기 무렵. 그 미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와의 만남은 더더구나 아버지는 목회활동으로 바쁘셔 만날길이 없었을 것이다. 신학교 다니던 무렵 나는 적어도 목회자의 자녀들을 향해 '목사님 아들이,딸이 왜 저래'라는 적어도 한번은 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고 싶다. 그런 내가 목회자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어린 아이지만 내 아이들이 그런 말을 듣고 자란다. 부모로써 뜨거운 눈물이 목을 넘긴다. 사명도 없이 그저 한 부모의 자녀일 뿐인 아이들은 오늘도 저 혼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저자는 아버지의 그 외로운 미국생활에서의, 그리고 계속되어온 아버지의 사랑의 눈물과 기도때문이었으리라. 고등학생 무렵 아버지의 서재에서 몰래 아버지의 일기장을 훔쳐보던 어느 날은 미국생활하실때 아들의 편지를 받고 아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링컨 컨티넨탈'안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셨던 대목을 읽으며 한없이 울었던 그 대목. 그순간이 있었기에 아버지를 사랑하기 보다 이해하려고만 했던 아버지. 그래서 만나지 못했던 그 아버지의 사랑을 만났으리라. 아버지이기에 사랑했어야 하는 순간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그 순간을 말이다. 저자보다 연배는 약간 어린 나이고 서울에서 자랐지만 어릴 적 순수했던 나의 옛 시절을 읽는 것도 같은 묘한 느낌과 형제간의 훈훈한 정이랄까. 그건 부러움을 넘어 시샘으로 다가왔다. 또 가족이란 사랑해야 하지만, 이해하려 하기에 만나지 못하고 한 공간안에서도 너무도 먼 타인처럼 살아가는 가족들, 사실은 서로를 향한 사랑과 눈물이 베어있음을 행간에서 읽어내고 마음이 참 설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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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은 경남 김해시에 자리 잡은 한 지역을 말한다. 아버지의 3년의 유학시절에 그 공백 기간 동안 저자인 옥성호씨는 어머니와 두 동생과 함께 진영이라는 곳에 잠시 머물면서 그때의 추억과 함께 많은 독자들을 향수에 젖게 만들었다. 이 책속에서는 하나의 거짓도 없이 순수한 어린 초등학생 소년의 시각과 입장에서 그려졌기에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 담겨져 있다.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은 누구에게나 추억이 될 만한 이야기가 항상 가득하다. 가난이라는 무거운 단어 앞에서 추운 겨울날 옷 속에 신문지를 넣어서 추위를 이겨낸 잠시 잠깐의 글 속에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시골 풍경은 그리움을 남겨진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어쩌면 아주 긴 3년이라는 시간동안 저자 옥성호씨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형성해주는 듯하다. 아주 사실적이면서도 그때의 느낌을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쓴 점과 성인이 되었을 때의 지금의 생각을 오가면서 묘사하였다. 진영에서의 추억은 서울로 이사를 가지 않았다면 추억에 그다지 많은 영양을 주지 못했을 거다.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느끼는 감정은 진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각인되어 있었다. 성인되어서도 잊지 못했던 많은 사건들이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그곳 진영에서 미리 배웠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링컨 컨티넨탈 사진, 강아지 래시와의 이별, 전기밥통 사건, 어머니가 사준 빨간줄의 시계가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게 해준 추억과 동시에 서울에서의 좋은 기억은 없다. 남의 집 전셋집에 사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과 아버지의 교회 또한 그러했고 자동차에 대한 남들이 그러했다. 학교에서의 조사 때문에 모든 것이 밝혀졌지만 왜 그런 조사를 했는지 지금도 모르는 저자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아버지의 일기장을 몰래 보면서 점점 더 그리움과 고마움을 느끼는 모습이 아픔을 달래가는 풋풋한 모습이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아버지에 대한 사랑에 감사 할 줄 알고 늘 아빠의 거룩한 존재를 잊지 못 할 것이다. 진영에서의 추억은 3년에 걸쳐 끝이 났지만 그 3년 동안 저자가 느끼고 생각하고 깨달았던 소중한 진영에서의 추억이 이 책 한권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단락에서의 사진은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는 잔잔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었다. 특히 사진 뒷면에 새겨진 아버지의 글 속에서는 그때의 상황과 생각을 면밀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고 후에 저자 옥성호씨의 추억 속에 남겨질 사진들이었다. 누구에게나 향수에 젖게 만드는 추억이 한가지씩은 있다. 그러나 그 추억이 자신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겨진다면 그건 진귀한 보물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마치 진영에 있는 제 3자가 되어 버린 것처럼 저자의 행동에 귀를 기울 리게 되었고 가슴 뭉클했던 지난 얘기를 하는 저자의 과거형 이야기 속에서 다시는 오지 겪어보지 못할 추억임을 느끼게 만들었다. 실제 있었던 저자의 글이었기에 가슴으로 다가온 따뜻한 온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뭔가 큰 파워를 날릴만한 이야기는 없었는데 1970년대의 풍경에 더한 느낌을 주는 잔잔한 자서전의 일부에 불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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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옥한흠 목사님께서 미국으로 유학하시고, 남은 가족들은 어머니의 친정인 진영에 3년간 지내게 됩니다. 경상남도 진영읍 진영리 253-12. 아빠의 부재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요?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가 경상도를 가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지는 않았을까요?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물론 그곳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아이들과의 관계의 어색함은 있었지만, 그시절이 그립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들은 천사들의 합창처럼, 장난꾸러기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재잘거림이 가득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기록한 저자를 보면, 정말 그 시절을 좋아했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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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편안함으로 "진영"을 만났음을 먼저 밝힌다. 그만큼 참 친근함으로 만났고 진영이라는 동네가 있다는 것도 알았으며 아버지의 존재와 가족의 따뜻한 심장과 어린아이의 천진난만이 지나쳐 철닥서니 없는 모습을 만날수 있었다. 그리고 내 가족에 대한 아련한 가슴 먹먹한 눈앞이 침침하고 코끝이 찡한 목줄기가 꽉 막히는 그리움을 만나게 되었다. 40대가 넘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가슴 밑바닥에 꼬깃꼬깃 저장된 그 따뜻한 동질감까지도 봄날 아지랭이 기지게 펴듯이 느리지만 황홀한 추억의 한자락과 맞잡은 듯한 설레임으로 마주볼 수 있었다. (고)옥한흠목사님은 대한민국에 사랑의교회(건물을 의미하지 않음)라는 발자취를 남기셨고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라는 동네엔 성호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진 가족에 대한 사랑을 남긴듯하다.진영의 작가님인 옥성호님은 진영이라는 동네에 충무라는 동네에 강남은평교회(80년대초 사랑의교회로 개명)에 남서울중앙교회에 아니 엄밀히 말하면 남서울 중앙교회 400명 배가운동이라는 굴귀 위에 성도교회 대학부 위에 교회마당에서 들리던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양 속 아버지의 목소리 위에 아버지가 제일 좋아 하셨다던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찬양속에 동물이 영역표시 하듯이 성호의 이름으로 가족의 이름으로 마음의 발자취를 남긴듯 하다. 인생길에서 평범하다면 무진장 평범한 시대를 살았던 성호와 가족들의 삶을 나의 지나 온 생활 속의 나자신과 나의 가족의 모습을 생각의 풍선속에 같이 들여놓고 제3자의 입장에서 아련하게 쳐다보는 듯한 "진영"이 내 가슴 속 따뜻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내 아버지도 (고)옥한흠목사님처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철저한 부지런함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셨고 연세가 있으신 지금도 굳은살이 박힌살이 되어버린 모습으로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뎌내시고 계시고 내엄마도 사모님처럼 가족의 뒷바라지를 위해 알뜰살뜰 종종거리며 사셨겠지 그런데 나는? 지금의 나는? 내 모습은? 과연 내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걱정스럽다. 부모의 행동을 보고 공부하는 방법을 알아가는(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하며 내 생활의 따뜻한 휴식같은 따뜻한 차 한잔의 위로같은 "진영"을 여러분들의 생활에서도 자그마한 너울같은 여유(안식)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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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인 김해시 진영읍에서 따온 '진영'이라는 데서 다소 놀라웠다. 사실 이전에 '진영'이라는 동네 이름을 주위에서 가끔 들으면 가까운 지역인데도 불구하고 그게 행정구역상 어느 시에 소속되는 것인지 몰라서 더듬거린 적이 몇번 있었기 때문이다. 가깝더라도 가본 적이 없어서였겠지. 오히려 책 이름을 '김해'라고 이름지으면 누구나 알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책 표지에 나온 주소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충 그 이유가 짐작되었다.
저자가 살았다는 외가댁이기도 하면서 옛날 일제시대 일본 장군이 살았다는 집. 일제시대 건축양식에 관심이 많다보니 책을 읽으며 '어떤 집인지 사진을 봤으면...', '아직도 있으면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책 맨 뒤에 사진이 있어서 정말 다행스러웠다. 진영을 떠나는 날, 그러니까 1978년에 찍은 사진과 지금의 사진이 그리 다르지 않다. 지붕이 허름해지고, 창문이 약간 열려있는 것, 1층의 상점 간판이 바뀐 것 정도가 다르다.
저자의 아버지께서 장학생으로 미국에 공부하러 간 3년 동안, 저자와 두 남동생, 그리고 어머니가 살았던 외가댁이 '진영'이었다. 그리고 맞은 편에 '진영역'이 있었고, '진영읍교회'를 다녔다고 했다.
이 책에서 많은 지면이 할애된 '대흥초등학교'도 검색해보았다. 저자의 외가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당시 저자의 외할머니는 진영에서 '부산댁'으로 통하셨고, 자녀들을 줄줄이 서울대에 보냈다고 한다면 '진영'에서는 정말 유명한 분이었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진영'이란 단어에 저자의 모든 추억과 그리움, 온갖 느낌이 집약되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동안 '초등학교'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예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기억이 떠올랐다. '최고지도위원','지도위원'이라는 명칭이 나왔지만, 내가 다닐 때도 '지도위원'이라는 훈장(?)이 있었다. 이런 명칭은 전국이 동일할 줄 알았는데, 서울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어서 약간 의아했다.
촌지이야기도 참 독특한 선생님을 만났었구나 싶었다. 그것도 선생님이 학부모와 면담 후, 아이들 앞에서 학부모에게서 얼마를 받았는지 아무렇지 않게 세고, 앞자리에서 그것을 자세히 본 아이는 뒤에 앉은 애들한테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니, 그리고 3천원인지, 4천원인지, 2천원인지에 따라 아이들의 반응이 달라졌다니 참 익살스러우면서도 씁쓸한 현실을 잘 묘사한 것 같다.
학교에서 각 가정에 냉장고가 있는지, 자가용이 있는지는 당시 왜 물었던 것일까? 나 역시 그런 질문을 받았었고, 그 때는 아무렇지 않게 손들고 그랬는데, 책을 통해 그때를 다시 회상해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선생님이 교실을 잠시 비울 때, 지도위원에게 떠드는 아이 이름을 칠판에 적게 했다는 이야기에서도 지난 추억이 생각났다. 나도 그런 감시원(?) 역할을 했었다. 그러고보면 좀 잔인한 풍경이 교실에서 많이 연출된 것 같다. 저자는 어쩜 그렇게 초등학교 때 기억을 선명하게 잘 기억하고 있는지 놀랍다. 70,80년대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들에게는 무척 공감이 되는 장면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아버지와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저자에게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않기를 바랬다던 저자의 의도는 적중했다. 정말 장난꾸러기에, 천상 그 나이 아이였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대목이 많았다. 그래서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왔고 따스하게 느껴졌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진영'에서는 공부 잘하던 아이가 '서울'로 전학가서는 빌빌댔다는 장면에서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말이 일리가 있다(pp.39-40)'라고 표현한 점이다. 잘못 읽으면 '진영'보다는 '서울'에서 아이를 교육시키는 것이 낫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할 것 같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진영 사람은 아니다.) 저자의 말에 공감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 이런 생각을 해본다. 교과서나 시험 내용이 '진영'에서 자란 아이들 보다 '서울'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유리한 언어와 표현, 내용으로 구성되어서가 아닐까? <부족한 기독교>를 써서 허를 찌르는 비판과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 것처럼 이 부분에서도 조금 더 신중을 기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린 시절의 추억 이야기는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었고 웃음이 나오는 장면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웃긴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사랑, 목회자를 아끼고 섬기는 성도들의 사랑 등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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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옥한흠 목사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관심 밖일 수도 있는 책.... 한 가정의 가정사 중 짧은 한 부분의 이야기...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저자의 장난끼와 유쾌함이 묻어나는 이야기...
스르르 미소를 짓게도 되고... 박장대소도 하면서...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책 뒤의 사진들... 그리고 메모들을 보며... 옥한흠을 추억해 본다...
옥한흠 목사님을 아는 분이라면... 한번쯤 꼭 읽어 보시길...
그 분을 모르시는 분이라도... 70년대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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