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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즈카 오사무' 하면 아톰이지만 애니메이션만 접했을 뿐 정작 만화책으로는 본 적도 없었고, 하도 옛날 작품이라 요즘 보기에는 유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다 소설 서유기 세트에 증정품 형식으로 따라온 <나의 손오공>이라는 작품을 보고 단순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뎃생력의 매력에 빠져 <도로로>, <아톰>, <블랙잭>에 이어 이번에 <불새>까지 소장하게 됐다. 그런데도 세일 기회를 기다리느라 아직 손에 넣지 못한 작품들이 꽤 되는 걸 보니, 데즈카 오사무가 정말 많은 작품을 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만화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것이겠지만.
읽기 전에 웬지 모르게 불교적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던 <불새>. 다른 박스세트들처럼 뒤집어도 박스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꽉 끼는 책들을 겨우 꺼내 대충 훑어보니 고대 일본의 이야기부터 미래의 로봇, 우주의 외계 생명체까지 그려져 있다. 물론 5~6권 '봉황 편'에는 불상 만드는 이야기가 나오긴 한다. 조금 이상했던 건 앞권을 훑어 보면서 봤던 그림이 다음권에도 또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뭔가 잘못됐나 했는데, 읽어보니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에피소드 간에 얽히고설킨 내용이 있어서였다. 치밀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한 캐릭터가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가는 다른 작품에 비해 <불새>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환상특급이 떠오르기도 한다. 불새는 상징적인 존재일 뿐 캐릭터라고 보기엔 단역 쯤 된다. 인간의 눈에는 새로 보이지만 우주의 모든 생명 에너지 덩어리 같은 존재로 우주를 넘나든다. 불의 산에 산다는 불사조 불새의 생피를 마셔 영생을 얻으려는 인간들의 욕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피를 마신 사람도 속도가 아주 느릴 뿐 천천히 늙어간다.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고, 누군가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어떨 때는 불새 스스로 피를 나눠주기도 하며 삶과 죽음에 갇혀 있는 인간, 인간은 어째서 죽는가를 다룬 작품이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보다 심오하다.
과연 인간은 죽음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죽지 않는 게 행복한 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어떻게 사는가'를 강조한다.
시대도, 장르도, 분량도 다른 에피소드 들이기에 실험적인 요소도 강하다. 특이한 컷 구성도 많고, '날개옷 편'같은 경우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같은 배경을 놓고 진행되기도 한다.
특히 4권 후반부인 '우주 편'은 우주여행 중 충돌로 동면에서 깨어난 선원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동시에 진행되면서 이어진다. 캡슐을 타고 따로따로 탈출하면서 시간이라는 씨줄과 캐릭터별 날줄로 구성돼 지금 봐도 신선한 구성이다. 거기에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다잉메시지가 미스터리 요소까지 더한다.
'망향 편' 같은 경우는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지구의 인구 증가로 살기 힘들어지자 횡령한 돈으로 작은 별을 사서 정착한 부부. 하지만 남편은 곧 죽고 부인은 아들을 낳는다. 부인은 아들이 자라면 후손을 이어가기 위해 동면을 선택한다는 근친혼인 내용인데다가, 계속 아들만 낳아 또다시 동면에 빠지기까지 한다. 뭐 일종의 최초의 인류라고 볼 수도 있긴 하지만 조금 부담스럽긴 하다. 사촌간에도 결혼이 가능한 일본이긴 하지만. 작품 맨 뒤에 나오는 '독자 여러분에게'라는 메시지에서는 인종 차별 같은 장면의 불쾌감에 대해서만 말하지만,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들은 귀여운 그림만 보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기에는 의외로 잔인하고 끔찍하고 무거운 부분도 있다. 난데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누더기 해골이나 코주부 난쟁이, 데즈카 오사무 만화가 본인 같은 그만의 작품 세계라고 이해하는 게 정답이겠지만.
의사 출신답게 <블랙잭>에서처럼 의학적인 내용도 종종 다룬다. '야마타이' 같은 일본 고대사도 자주 나오지만 잘 몰라도 무난히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고, SF부분은 지금 봐도 신선한 수준이다. 역시 그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선 걸작임에 틀림없다. 만화 칸을 뚫고 나간다거나 고민상담 코너 같은 옛날 만화다운 유머도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이런 걸작 박스세트를 박스에 다시 꽂기가 힘들어 몇권을 빼서 보관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다. 책을 읽고 나면 부피가 늘어난다는 걸 고려해서 제작했으면 좋을 뻔했다. 그것 말고는 100퍼센트 만족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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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만화책 만화책시렁 325
《불새 2》 테츠카 오사무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02.1.25.
수수께끼 아닌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어째서 여태까지 모든 총칼나라는 가뭇없이 무너졌을까요? 총칼로 사람을 윽박지를 뿐 아니라, 배움책이며 배움터로 머리까지 길들이더라도, 어떻게 총칼나라는 무너지고 말까요? 바로 하나입니다. 총칼로는 새 목숨을 못 낳거든요. 오직 죽이기만 할 줄 아는 총칼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하늘을 찌르듯 우쭐거리더라도 한때입니다. 총칼을 쥔 이는 이웃을 무너뜨리거나 짓밟아 뽐내지만, 이웃이 모두 죽어 넘어가면 굶어죽어요. 스스로 살림도 삶도 사랑도 안 짓는 총칼질이란, ‘사랑으로 삶을 짓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면 똑같이 죽음길로 갈 뿐입니다. 《불새 2》은 이 얘기를 아프면서 눈물겹게 들려줍니다. 살점뿐 아니라 뼈까지 바르며 아픈 채로도 총칼이나 벼슬힘은 아무런 사랑이 될 수 없다는 대목을 똑똑히 밝힙니다. 힘을 쥐었다는 이들은, 총칼을 휘두르는 그들은, 얼핏 대단해 보이지요. 그러나 그들이 뭘 할까요? 호미도 낫도 쟁기도 아닌 총칼이 무엇을 낳을까요? 미움이며 금긋기를 일삼는 그들은 이웃이며 동무를 사랑하는 손빛이나 눈빛이 아닙니다. 삶이 되어 아이를 돌보자면 그저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숲이 되어 푸르게 어깨동무할 적에 비로소 사람입니다.
“왜지? 천하를 쥔 내게 무엇이 불만인 거니.” “내겐 당신이 살인에 미친 자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나는 승리자다. 널 복종시키고 말겠어. 이리 오너라, 우즈메.” (145쪽)
“오호호호호호호. 내 뱃속에는 그 사람의 아이가 있어요.” “뭣이? 사루다히코의 아이라고?” …… “당신은 강물처럼 피를 흘리며 모두를 멸망시킬 셈이죠. 그리고는 이겼다고 생각하나요? 호호, 착각 말아요. 우리 여자들에게는 무기가 있어요. 승리한 당신의 군사들과 결혼해 아이를 낳는 거죠. 태어난 아이는 우리의 아이예요. 우리는 그 아이들을 키워 언젠가 당신을 멸망시킬 거예요.” (146쪽) .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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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하고 죽음을 잇는 사랑 [내 사랑 1000권] 4. 테즈카 오사무 《불새》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고 하는 말을 어릴 적에 처음 들으며 ‘아니, 왜 모든 사람은 죽어야 하지?’ 하고 생각해 보았어요.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왜 태어난 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한테 주어졌다는 백 해 안팎이라는 나날은 대단히 짧다고 느꼈어요. 이러다가 사람보다 훨씬 짧게 살다가 가는 뭇짐승이나 뭇벌레를 보았고, 바닷속에서 아주 오래 사는 물고기를 보았으며, 만 살이 넘도록 사는 나무를 보며 생각이 차츰 거듭납니다. 더 긴 삶이나 더 짧은 삶이란 따로 없겠구나 싶더군요. 더 잘 살아내거나 더 못 살아낸 몸짓도 없겠구나 싶고요. 그저 저마다 다른 온갖 삶을 치르거나 겪으면서 걸어가는 길인가 싶기도 했어요. 어릴 적에 매우 궁금한 한 가지로 ‘왜 먹어야 하나?’가 있어요. 밥 한 끼니를 먹고 나서 머잖아 배가 고파요. 또 한 끼니를 먹고 나면 곧 배가 고프지요. 우리는 먹으려고 태어난 목숨인가 싶기도 했지요. 밥 한 끼니를 먹고서 무엇을 해야 뜻있거나 보람있을 만한가 하는 생각을 잊을 수 없더군요. 여기에 대단히 궁금한 한 가지로 ‘왜 자야 하나?’가 있어요. 누구나 잠들면 마치 죽음에 빠진 듯한 모습이에요. 이러면서도 매우 고요하며 느긋한 모습입니다. 아기도 할머니도 잠든 모습은 엇비슷하게 살짝 웃음짓는 모습이곤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숱한 수수께끼를 풀려고 이 땅에 태어나는지 몰라요. 수수께끼를 풀다가 못 풀고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테고요. 테즈카 오사무 님이 마지막까지 붙잡다가 마무리를 짓지 못한 《불새》(학산문화사 펴냄)라는 만화책은 삶하고 죽음을 잇는 사랑을 다룹니다. 삶을 다루고 죽음을 다루는데, 둘 사이에 사랑이 있다고 하는 대목을 곰곰이 짚어요. 죽이거나 죽어도, 밉거나 싫어도, 시샘하거나 두려워해도, 우리 사이에는 늘 잔잔하게 사랑이 흐르며, 이 사랑을 깨달을 때에 ‘불새’와 같은 넋이 된다는 이야기로 퍼집니다. 만화를 그린 하느님이라는 이름을 받은 테즈카 오사무 님인데, 《불새》는 바로 ‘만화 하느님’ 나름대로 온힘을 바쳐서 남기려 했던 사랑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깃든 하느님을 찾으려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렸구나 싶어요. 2017.6.1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