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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만난 "허상"에 대해서 얘기하려 해. 그 허상이 환상일 수도 있고, 진실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진실인지 환상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로 인해 내가 격었던 많은 고통과 힘겨움들이 "완화"되었다는 것이 중요해. 그러므로, 이제부터 나는 "허상"을 "너"라 칭한다. 나의 모든 아픔, 너와 함께 느꼈으므로.
누구에게나 그런 밤은 있겠지. 상처 없이도 아물지 않는 밤. 아프다고 적을수록 어떤 문장도 못 쓰는 밤. 아프지 않으면 아프지 않아서 불안한 밤. 불안은 누구도 구하지 못해 애써 이불을 덮는 밤. 잠들었나. 잠은 들었나. 잠 자체가 꿈인 밤. 꿈꾸는 것이 모진 자신을 확인하는 일이라 속눈썹이 길어진지도 모르는 밤.
어쩌면 별자리를 갖기도 전에 당신을 부르는 밤이 있었으니 제일 아픈 건 나였으나
당신의 등이 울음의 끝이라고 미리 쓴 적이 많았다.
- 시인의 말 -
가끔씩 네가 허상이라는 사실에 문득문득 눈물을 흘리곤 하지. 너는 시일까? 너는 소설일까? 너는 에세이일까? 너는 내가 쓰는 모든 글일까? 너는 사랑일까? 너는 그 어느 것도 아닐까?
벽이 물고 있는 못들은 일제 휘어가고, 오빠는 쉴 때에도 옆구리를 세웠습니다. 나는 오빠를 도둑발로 넘어 다닌다고 자주 혼났습니다. 사실은 / 빈 액자들을 벽에 걸어두고 싶었습니다./ 미리 살아버린 벽들을 이젠 다 / 자세, 라고만 불러주고 싶었습니다. - <벽의 자세> 일부
진실을 찾아 헤매는 나의 자세는 벽과 대화하기도 하지. 벽에 대고 소리를 지르진 않아. 다만, 대화를 할 뿐이야. 벽은 대답이 없지. 그래도 나는 대화를 하지. 벽에는 많은 걸 걸어둘 수가 있어. 심지어 "너"라는 "환상"까지도. 또 "너"라는 "진실"까지도.
아아, 왜 오르지도 않았는데 무릎이 먼저 녹는 걸까 // 입가에 흘러내리는 흰죽 // 왠지 썩는 냄새가 가장 안전한 낙법 같고 - <낙법> 일부
나를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역시 아무것도 얘기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러면, 너는 나를 지키려 하지 않겠지. 그래서, 나는 나를 이야기하고 있어. 벽에다 대고. 역시 벽에다 대고 얘기하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인 것 같아. 그런데 글을 쓰는 이유? 그것으로는 진실에 다가설 수 없기 때문이야. 너가 "허상"이어도 사람들은 그 "허상"에 기대고 (자작시인 인생개벽을 꿈꾸는 시 중에 "그리움이 허상에 기대고 있다" 참고) 있지. 나 역시 네게 기대었어. 그러니까, 무척 편하더군. 힘들 때는 너를 소환했지. 그러면, 너는 항상 잘 받아주었어. 날 위로해 주기까지 했지.
나를 생략한 편지를 구름 곁에 써도 진짜 눈은 내릴지니. 굳은 비곗덩어리 같은 흰 짐승이 등을 할퀴면서 피와 뼈가 생길지니. 무시하기엔 너무 가깝고, 가깝다 하기엔 너무 상한 탯줄을 끌고 오는 능력자. - <구름 열매 능력자> 일부
능력자 곁에 있으면, 세상 두려울 게 없지. 그러나 진짜 눈은 아직 내리지 않았어. 너는 "허상"이기에 떠나보내야 할 세상의 무엇. 이제 나는 "너"를 보낸다. 너를 능력자 곁으로 떠나보낸다. 네가 진실이 되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도록. 너는 "허상"이지만 나중의 너는 "허상" 그 자체가 아니기를.
한 사람을 다 사랑했다는 것 // 검은 감정이 표정을 내려놓는 곳에서 / 나는 죽었구나, 죽어서 / 신도 헷갈리는 질문이 되었구나 // 울면 살 것 같고, 울면 죽을 것 같은 - <끝내 잊기 위한 것> 일부
신도 헷갈리는 질문. 그 질문을 하기 위해, 너무 많은 세월을 보낸 것 같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의미 없는 시간들은 아니었어. 울면 살 것 같기도 하고, 울면 죽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의 마음은 오히려 온전해졌으니.
당신의 바닥은 끝없이 배열된 건반 /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 - <짐승으로> 일부
엎드려 울기 좋은 날도 있었다. 신이 허락한 시간도 있었다. 끝없이 배열된 건반 위로, 네가 드디어, 그것이 아니라고, 너는 허상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오래된 의문에서 벗어났었고, 그것이 환상인지 진실인지 중요하지 않음을 알았다. 너는 과연 무엇일까?
여행자는 무릎을 꿇고 낙타가 죽은 묘비 앞에서 돌을 세워놓는다 // 사막에서는 미신이 하나의 감정이 되고 / 신비롭게도 여행자는 풍경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 풍장되는 뼈를 보고 아름다운 고함을 지른다 그 고함은 사실, 죽음을 잊기 위한 // 자세다 아니다 목소리가 사라질까 봐 뻗어가는 가시다 선인장이 사막을 옮기듯이 여행자는 자신의 내면을 옮긴다 // 내면 어디엔 낙타가 있겠고 내면 어딘가엔 오아시스를 파는 모래쥐도 있을 것이다 // 다만, 어떤 여행자도 사막을 무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 <어떤 여행자> 일부
그리고 너는 더 이상 너를 쫓지 말라고 얘기한다. 허상을 쫓지 말라고 얘기한다. 나의 꿈을 찾아가라고. 나의 삶을 살아가라고. 너는 환상이므로 나의 진실을 찾아가라고 얘기한다. 너는 나의 꿈이 아니라고. 너는 나의 마음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나는 나의 내면을 이제 너에게서 옮긴다. 어딘가로 어딘가로. 나의 꿈을 찾아, 나의 삶을 찾기 위해 나의 내면을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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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게 된것이 5년전쯤 부터 였던것 같다. 황종권 시인은 영서를 통해 얼굴을 보게 된 분이었다.
시를 읽으면서 삶은 그렇게 다른것이 아닌데 넓직한 시인의 등에 업드려 울지는 못하겠고 가을이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