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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은 구체제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한 민중의 시민혁명으로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유, 평등, 박애의 대명사라 불리우는 프랑스 대혁명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는 물론 당시 주변 국가들에 대한 파급 효과는 물론이거니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진행중인 각종 혁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프랑스의 역사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인류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잘 모른다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프랑스 대혁명을 전후로 한 계몽 사상이라든지 나폴레옹의 활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그 사이에 발생한 이 사건은 그저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라든지 루이 16세를 단두대에서 처형과 같은 단적인 사건에만 국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와노 겐지의 [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 대혁명의 구체적인 실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대혁명을 다룬 책들은 많지만, 그 책들과 비교하여 [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의 특징을 짚어본다면 바로 사건에 대한 핵심만을 명확히 짚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제목에 '짧게 쓴'이라는 단어가 언뜻 이 책의 내용을 과소평가 할 수 있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시점에서 이는 프랑스 대혁명에 대하여 알토란과 같은 핵심적인 부분에만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음으로 이해된다. 쓸데없는 내용들은 과감히 생략하고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배경과 진행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그동안 계몽 사상이라든지 나폴레옹 또는 로베스피에르라는 인물에 의하여 가려져 있던 혁명의 전반적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는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 처형과 같이 단편적인 사건으로만 이해하거나, '국민의회-입법의회-국민공회-총재정부'와 같은 암기식의 순서로만 이해했던 프랑스 대혁명에 대하여 그 의미와 진행 과정을 좀더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된다.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이 책이 전달해주는 내용이 남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데, 나의 눈길을 먼저 사로잡는 부분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계몽주의라 할 수 있다. 최근 읽었던 프리드리히 쉴러의 [빌헬름 텔]에서도 차용이 되는 자연권을 토대로 한 인민과 국가의 계약 관계에 대한 것이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이라 생각하였지만, 케네(1694~1774)의 '중농주의'와 디드로(1713~1784)의 '백과전서파'에 대한 설명은 혁명 사상이 계몽주의 하나로만 국한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인민과 국가의 관계에 대하여 이상적인 개념을 언급한 것이 바로 루소의 계몽주의라면 케네의 중농주의는 당시 변화의 바람이 일던 경제 체제에서 토지가 생산 수단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신분 체제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던 당시의 사회에 훗날 자본주의 또는 반봉건주의의 바람을 불어 넣었으며, 디드로의 '백과전서파'는 다양한 변화된 사상을 문서화하면서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상을 심어주는데 큰 공험을 하게 된다. 특히 '백과전서파'는 루소는 물론 훗날 대혁명의 주역으로 활동하는 인물들이 초기에 다수 참여함으로써 점점 세력화되는 부르주아지의 입장에서의 변화 내지는 혁명을 꿈꾸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단순히 구체제의 모순이라든지 부르주아의 태동에 의한 시민 혁명으로 알고 있던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적 원인과 동인을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즉, 상층 부르주아와 농민, 무산 계급의 각각 다른 시선으로 당시 사회의 모순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한 그에 따른 그들의 해결 방안이 결합되어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라는 것을 넘어서서 이후 혁명 기간 내내 무수히 많은 쿠데타와 정쟁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꼭 알아두어야 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즉, 귀족가 같은 특권층의 계급이 누리던 바를 혁명을 통하여 일정 부분 공유하게 된 상층 부르주아지의 노선이라든지 상퀼로트라 불리우는 무산 시민 계급이라든지 농민 계급이 혁명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바에 대한 충돌과 조정의 과정이 바로 1789년을 시작으로 이후 나폴레옹의 통령 정부가 수립될 때가지의 프랑스 대혁명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이라든지 루이 16세의 처형으로 혁명이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혁명은 지속되었던 것이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루이 16세를 비롯한 왕가의 탈주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791년 6월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려던 왕실은 결국 도주 중 다시 파리로 돌아와야 했는데, 이는 그의 명을 재촉하는 사건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이 책은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혁명 세력이 복잡한 상황에 직면함을 짚어준다. 이 <바렌트 사건>을 계기로 푀양파는 위태로운 상황의 국왕에게 양보를 받아내어 입헌 왕정을 받아내려고 하였기에 곧바로 <바렌느 사건>을 계기로 루이 16세의 처형이 앞당겨진 것이라 볼 수 없다. 오히려 당시 집권한 지롱드 당이 내부의 불만과 정쟁의 회오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루이 16세를 처형하여 대불동맹의 결성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은 전쟁이 혁명의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혁명의 불온한 기운이 자신들의 국가에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가 먼저 전쟁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롱드 당의 도발이 그들의 전쟁을 유도한 것임을 알게 된다.
실제로 루이 16세의 처형으로 인하여 방데 지방에서는 1793년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으며, 지롱드 당과 경쟁하던 자코뱅 당 역시 정권을 획득하기 위하여 폭력적인 시위를 벌였으며, 더욱이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시민들의 불만과 더불어 토지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 강제적인 모병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혁명 정부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빅토르 위고의 [93년]이라는 작품이 바로 1793년 방데 지방의 왕당파의 반란을 소재로 하고 있을 정도로 1793년은 프랑스의 혁명정부, 특히 지롱드 당에게 시련이 가득한 시기로 기록된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조차 오히려 정쟁을 위하여 유발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지롱드 당과 자코뱅 당의 경쟁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기존에는 이 둘의 차이가 온건파와 강경파 정도로만 이해가 되었지만, 사상적 배경이 동일하다는 점은 오히려 이들이 혁명 완수에 대한 주도권 확보가 갈등이 주된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혁명과 깊은 연관을 맺으면서 몰락과 더불어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하고 이후 쿠데타를 통하여 총재 정부를 해산한 이후에 제1통령으로서 통령 정부의 수장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는 점도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을 통한 또 하나의 소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사실 나폴레옹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대부분 그의 전쟁에 관심이 있던 터라 그가 로베스피에르의 동생의 연줄로 인하여 툴롱 전투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로베스피에르의 몰락으로 인하여 그 역시 감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이후 어떻게 재기할 수 있었는지를 바로 총재 정부의 정책을 통하여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5인이 총재로 구성된 총재 정부는 자신들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다수의 세력들 사이의 조정자가 되어야 했으며, 이들 역시 불만을 전쟁에 대한 관심으로 돌리기 위하여 군대를 수없이 호출해야 할 상황이었기에 총재 정부의 일원인 바라스가 나폴레옹을 전격 등용한 것이 단순히 조세핀의 연줄에만 의지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는 그동안 단편 또는 암기식으로 이해했던 사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짧게 쓴'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 책을 과소평가할 여지는 많겠지만, 직접 이 책을 읽는다면 군더더기를 최소화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책임을 이내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여러번 읽음으로써 이 시기에 대한 확실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게 된다면 이를 소재로 한 수많은 책과 영화가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 두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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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개념에 대하여
흔히 생산관계 혹은 경제체제를 기준으로 구분하면, 원시 공동체 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농노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가까운 미래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사회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구분 자체가 전세계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유럽이라는 특수한 지역의 역사에 따른 것이라는 문제점은 있다.
이러한 경제체제의 이행기를 저자는 ‘혁명’이라고 보는 것 같다.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좀 다른 혁명도 있을 수 있고, 또 실제로 있었다. 봉건제가 자본주의로 전환되는 시점에 일어나는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사실과 대비시켜 생각해보면, 노예제가 봉건제로 교체될 때의 ‘봉건 혁명’, 또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교체될 때의 ‘사회주의 혁명’ 두 가지가 있다.” [p. 22] 동시에 저자는 “혁명은 민족이 역사에 떠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자립성을 선명하게 역사 속에 확립하는 작업” [p. 5]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고대에서 중세로의 전환인 ‘봉건 혁명’이 이루어질 때 이미 ‘민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때도 오늘날 쓰는 ‘민족’ 개념을 사용할 수 있을까? 아직도 낯선 ‘봉건 혁명’이라는 개념과 함께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프랑스 혁명에 대하여
지배층에 대한 불만이 끓어오를 때 민중은 그 의사를 폭력으로 분출한다. 하지만 대부분 반란으로 기록되고, 일부만 성공한 반란, 즉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남는다. 물론 ‘역성혁명’의 ‘혁명’은 그저 왕조의 교체에 불과할 뿐 저자가 말하는 ‘혁명’이 아니다. 저자의 주장대로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혁명’이 되는 것은 이러한 민중의 의사표현 가운데 극히 일부만 가능했다.
왜 수많은 민중의 의사표현 대부분이 혁명이 되지 못할까 간단하다 그들의 행동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사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과전서파의 사상적 세례를 받은 프랑스 혁명이 ‘혁명(革命)’인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영국의 청교도 혁명(1640~1660)과 미국의 독립혁명(1775~1783)과 비교해 보면 이는 더욱 선명해진다. “17세기에 일어난 영국 혁명은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종교의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계급은 물론 존재했지만 그것은 아직 자신을 하나의 사회적 존재로 자각하지 못하고 가톨릭 집단 또는 영국 국교회와 거기에 대립하는 퓨리턴파라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계급의 이해관계들이 솔직하고 공공연하게 표출되지 못한 것이 혁명을 불철저하고 점진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영국 혁명에서의 자유와 권리는 무엇보다도 영국인, 그 중에서도 젠틀맨이나 상층 부르주아의 자유이고 권리였다. 그것은 영국인이라는 국민성이나 상류계급이라는 특수한 계층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독립전쟁’의 사상 속에는 지구상의 모든 민족은 자신이 바라는 국가를 자신이 바라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보편적인 원칙이 포함돼 있다. 그것은 영국 혁명보다도 한층 더 나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이 혁명은 계급투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민족투쟁적 요소가 더 많았다.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고, 사회 내부의 관계를 뒤집어엎는 것은 2차적인 문제였다. 그 가장 명백한 증거는 미국 혁명이 흑인 노예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의 ‘식민지인’의 권리는 실은 백인의 권리였을 뿐이다.” [pp. 19~20] 즉, 저자에 따르면, 계급은 존재하나 종교적 껍데기를 벗어 던지지 못한 영국의 청교도 혁명이나 영국 식민지배를 거부한 민족혁명적 성격이 강한 미국의 독립혁명과 달리 “프랑스 혁명은 더욱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혁명이었다. 영국적 자유와 미국적 평등(을) 더욱 확대되고 보편화” [p. 20]시킨 민중의 혁명인 셈이다.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
“혁명이 현실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p. 51]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과는 달리 “17세기의 영국에서는 ‘혁명’은 있었지만 ‘계몽’은 없었다. 19세기의 독일에서는 ‘계몽’ 사상만은 풍부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혁명’은 사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p. 51] 따라서 이들 혁명은 ‘불완전한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프랑스 대혁명을 혁명으로 만들어 준, 사상적 배경인 ‘백과전서파’의 주장은 어떤 것이었을까 백과전서파는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를 중심으로 <백과전서 혹은 과학, 예술, 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전>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글을 기고한 여러 집필진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이들은 전체로서의 사상적 통일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성(理性)’을 주장하고, 가톨릭 교회와 절대왕정에 반대하는 점은 대체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좀더 세분화하여 얘기하고 있다. 즉, 경제적으로는 프랑수아 케네(François Quesnay, 1694~1774)의 ‘중농주의(重農主義)’를, 철학적으로는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의 ‘유물론(唯物論)’을, 정치적으로는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인민주권론’을 각각 한 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사상적 세례가 각각의 계급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는 다른 문제다. 흔히 ‘제 3계급’ 혹은 ‘제 3신분’으로 뭉퉁그려 말하지만, 부르주아(Bourgeois)와 상퀼로트(Sans-culotte), 농민이 당시 사회의 모순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해결 방법도 각각 다르다. 이는 끝내 혁명 기간 내내 발생한 쿠데타 등의 원인이 되었다.
혁명은 끝났는가
“ “혁명은 끝났다. 혁명이여, 멈춰라!”라는 외침은 1789년 이래 여러 당파와 계층에서 반복돼 왔다. 그러나 혁명은 멈추지 않았다.” [p. 205]
제헌의회에 의해 혁명의 혼란을 끝내기 위해 ‘1791년 프랑스 헌법’이 제정되어 입헌군주정과 제한선거제가 도입되었다. “지주와 대자본가들에게는 그 정도의 혁명으로 충분했다. 봉건적 특권은 사라졌고, 교회재산은 몰수됐으며, 종교는 국가제도 속에 편입됐다. 경제활동은 자유로워졌고, 특권과 길드를 폐지하면서 노동자들의 단결권도 부인해버렸다. 귀족을 대신해 지주와 부르주아지가 사회와 국가의 새 주인공이 되려 하고 있었다.” [p. 207] 하지만 소위 ‘1차 혁명’은 혁명파와 반(反)혁명파의 타협의 산물로 부농(富農)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민과 소부르주아, 도시 하층민을 배제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반발은 1791년 말부터 1792년에 걸친 농민폭동과 소요로 나타났으며, 1792년 8월 10일 튈르리 궁전 습격은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봉건적 부담은 완전히 일소되고 국유재산을 농민들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형태로 매도하는 조치가 승인됐다. 부르주아와 중산층 농민은 모두 해방됐다.” [p. 208]
이렇게 소위 ‘2차 혁명’까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농촌의 빈농(貧農)과 도시의 하층민은 그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들의 갈망을 받아들여 실현시키려 노력한 것이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 1758~1794)가 이끄는 자코뱅파이었다. 그들은 “빈곤을 근절하기 위해 국유재산을 빈민에게도 분배하고 최고가격제를 실시했으며, 매점매석과 투기를 억제했다. 또 한편으로 그들은 ‘최고존재(=이성(理性) 또는 자연법칙)의 제전’을 열어 ‘평등공화국’을 신성화하려고 했다.” [p. 209]
공포정치로 대표되는 로베스피에르의 실험은 테르미도르의 반동 혹은 테르미도르의 쿠데타로 종결되었다. 이와 함께 혁명의 주도권은 지롱드파로 넘어갔다. 이들은 “봉건제의 폐허 위에 자본의 낙원을 쌓아 올렸다. 이는 부르주아만의 힘으로 실현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낙원을 총검의 힘으로 지켜내려 했다. 그 하나는 왕당파로부터, 또 하나는 자코뱅파로부터. 이제 막 발아한 산업자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강대한 군사력과 군사독재가 필요했다. 부르주아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부르주아적 정치방식인 의회주의를 폐기하지 않을 수 없는 역설에 빠졌다.” [p. 210]
옥의 티
p. 210 테르미도르(반동)와 함께 부활한 것은 부르주아지였다. ⇒ 테르미도르의 반동과 함께 부활한 것은 부르주아지였다
♣ 테르미도르(Thermidor)는 프랑스 대혁명 때 제정된 프랑스 혁명력의 11번째 달이며, 반동 (Reaction)을 의미하지 않는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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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 이 책은? - 이 책을 읽게 된 계기 프랑스 혁명사, 언젠가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다. <셰익스피어 인문학>에서 사극을 강의하고 있는데, 셰익스피어가 쓴 사극 중 영국을 무대로 하는 사극은 영국과 프랑스 간에 벌어진 백년 전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극이 몇 개 있다. 그래서 수강생들과 같이 백년 전쟁을 공부했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한 것이 또 생긴다. 백년 전쟁 이후에 양국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다. 그래서 백년 전쟁 이후의 역사 전개를 살펴보는데, 영국 쪽으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데 비하여, 프랑스 역사 쪽으로는 소홀히 했었다. 그러던 중 마침 눈에 띈 책이 이 책, 프랑스 혁명사였다. 그것도 ‘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이니, 촌음을 아껴야하는 나로선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길고 긴 역사적 갈등이 백년 전쟁 이후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물론 이 책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사항은 없다. 단지 하나 이런 것이 보인다. <미국 독립전쟁에 프랑스 의용군이 참가한 것은 전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싸움이 공상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프랑스인이 영국에 보복하고 싶는 감정을 만족시켜 준 것이었다.>(77쪽) 다른 자료를 참고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럽 최강국이던 프랑스의 재정이 이토록 나빠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연이은 전쟁 패배와 루이 14세 이래 왕실의 사치, 미국 독립전쟁에 대한 대규모 원조의 후유증이 겹친 탓이다.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한 것은 영국에 대한 오랜 감정 때문이었다, 결국 백년전쟁에 따른 오랜 감정이 미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재정궁핍에 이르게 되었고, 프랑스 혁명에 이르게 되었으니, 백년전쟁의 여파가 프랑스 혁명에까지 미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의 발발과 그 경과를 시간순으로 정리해 놓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혁명의 모습을 시간 순으로 살펴볼 수 있다. 책의 말미에 연표도 만들어져 있어, 더더욱 정리가 쉽다. 연표에는 1787년부터 1799년에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가 일어나기까지의 역사를 간단명료하게 사항을 정리해 놓고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의 의미.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과거의 경험이나 사실에 제각각의 중요도를 부여하고, 취사선택을 하고 관련 상황을 따져보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6쪽) 프랑스 혁명 연구자인 영국인 톰슨 : <혁명의 역사를 쓰는 데는 서술을 좀 줄이고 사색을 좀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뭐라 해도 모든 사건이 꼭 같은 중요성을 지니고, 모든 인물이 꼭 같은 의미를 지니며, 모든 법률이나 제도가 사회의 진로에 꼭 같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6쪽)
용어 정리 군데군데 정리해야 할 용어들이 나온다, 그런 용어를 확실히 해 놓지 않으면, 부분적이든 전제적이든 이해가 어려워지기에 그런 용어들의 정리가 필수적이다. 예컨대 ‘부르주아지(bourgeoisie)’와 ‘부르주아(bourgeois)’ 같은 개념들이다. <부르주아지는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를 가리키는 명사이고, 부르주아는 시민, 중산층, 유산자, 자본가 등의 의미를 지닌 명사 및 형용사로 쓰인다.> (18쪽) 그렇게 두 용어의 구분이 제대로 되어야 다음과 같은 문장이 이해가 된다. <봉건적 특권은 사라졌고, 교회 재산은 몰수됐으며, 종교는 국가제도 속에 편입됐다. 경제활동은 자유로워졌고, 특권과 길드를 폐지하면서 노동자들의 단결권도 부인해 버렸다. 이는 특히 재산가나 실업가들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 교회 재산은 부르주아지가 사들였다. 179년까지 광대한 교회령의 정반 내지 그 이상이 부르주아 손에 넘어갔다.>(207쪽) 밑줄 긋고 정리해 놓고 싶은 것들 <인간의 역사는 단지 하나의 국민만이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민들이 짊어지고 끌고 간다.> (24쪽) 혁명에 관하여 <혁명이 일어나려면 혁명적 계급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지배계급이 분열해서 정치적 위기가 만인들 눈앞에 드러날 필요가 있다.> 레닌 (81쪽) 계몽사상과 혁명 <혁명이 현실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51쪽) <계몽과 혁명은 프랑스에서는 보기 좋게 결합했다. 17세기의 영국에서는 혁명은 있었지만 계몽은 없었다. 19세기의 독일에서는 계몽사상만은 풍부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혁명은 사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51쪽) 다시, 이 책은 레비 스트로스는 그의 책 『인류사 강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 질서에 의문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혹은 정당화하거나 고발하기 위해 역사에 호소합니다. 과거를 해석하는 방법은 우리가 속한 환경과 우리의 정치적 신념과 도덕적 태도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프랑스 시민에게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현재 사회의 일종의 지형을 설명해 줍니다. 이 지형을 좋게 보느냐 나쁘게 보느냐에 따라,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보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달라지고 또 서로 다른 미래를 열망할 수 있습니다.> ( 『인류사 강의』, 레비 스트로스, 100쪽) 이 책으로 일단 ‘역사’와 마주한다. 역사는 과거에 마감된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또한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책 프랑스 혁명사를 읽으면서, 우리나라 촛불혁명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언젠가 미래에, 프랑스 시민에게 프랑스 혁명이 그 ‘현재’의 지형을 설명해주듯이, 촛불혁명이 우리나라의 그 ‘현재’의 지형을 설명해 줄 수 – 더 나은 미래 – 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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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배운 프랑스 혁명은 왕과 왕비가 단두대에서 처형됐다는 사실로 인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별다른 관심이 없다가 작년에 읽은 <대세세계사2>를 통해 프랑스 혁명이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낳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 프랑스 혁명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는 프랑스 혁명의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내 바람을 충족시키는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혁명의 역사를 쓰는 데는 서술을 좀 줄이고 사색을 좀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는 프랑스 혁명 연구가인 톰슨의 의견에 공감한 저자가 역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 모든 사건이 꼭 같은 중요성을 지니고, 모든 인물이 꼭 같은 의미를 지니며, 모든 법률이나 제도가 사회의 진로에 꼭 같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과학의 힘을 많이 빌었다고 한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민족의 역사와 혁명의 관계에 대해 다음처럼 말한다. 혁명은 민족이 역사에 떠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자립성을 선명하게 역사 속에 확립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강렬한 의지와 행동의 축적이다. 이때 민족은 무한한 힘을 자각하게 되고 시간의 흐름은 흡사 멈춘 듯이 보인다. 사회의 모든 관계, 모든 가치는 역전돼 강대한 것은 비소卑小해지고 비소한 것은 강대해진다. 그리하여 민족은 역사의 주체가 돼 자기 존재를 영원히 세계사 속에 새겨 넣게 된다.
1789년 시작돼 그 후 10년 간 계속된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며,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혁명이었고, 민중의 혁명이었다고 한다. 부르주아 혁명이 무너뜨린 정치체제는 '절대왕정' 또는 '절대주의'라 불린 체제였다. "부르주아 혁명이란, 봉건제를 폐지하고 인권과 자유를 쟁취해서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혁명"이다. 프랑스 혁명이 보편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은 자유와 평등을 실현한 혁명이었으며 모든 개인과 민족과 인종을 해방하는 보편성을 지녔다는 점에서다. 그것은 프랑스에서의 정치 투쟁이 명백한 계급투쟁으로 전개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또 민중의 혁명이라 함은 광범한 민중이 혁명에 참가해 혁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혁명사가 마티에는 "혁명은, 사상의 영역에서는 이미 이 세기 중반 이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사상의 혁명'이란 점에서도 프랑스의 지위는 독특한데 18세기에 일어난 계몽 사상이 프랑스 혁명과 결합했기 때문이다. "계몽사상은 ... 사회 내부의 여러 계급의 움직임과 요구를 반영하고, 그것을 이론화한 것이다." 비판의 철학이었던 계몽사상은 당시 사회를 지배한 일반적 사조인 기독교(가톨릭)와 국가주의와 중상주의를 거슬러 위험을 무릅쓰고 주장을 펼쳤다.
일반적으로 계몽사상은 '자연법' 사상이라는 토대 위에 서 있다. 이 사상은 '외계=사회현상'에 대해 '자연'과 '인위'를 구별하고, '인위'는 임시적, 일시적이며 '자연'이야말로 영원히 변치 않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거짓인 '인위'를 없애고, '자연'을 추구하며 '자연'과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자연법 사상은 중세에는 '신의 질서'의 토대가 됐고, 또 근세에는 절대군주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으나 영국의 홉스, 로크 등의 시대에 이르러 인간중심적인 사상으로 개조됐다. 즉 사회와 국가는 신의 의지나 국왕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의지와 이성에 의해 성립된다는 설이다. 눈앞에 있는 현실의 국가나 법은 '인위'이며, 이 '인위'의 저편에서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고 그것을 '인위'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연법사상은 인간이성이나 인간의 의지(자연권)를 토대로 삼아 현실의 국가나 법을 비판하고 개조하기 위한 사상으로 귀환된다.
18세기 계몽사상 전반에 활동한 인물은 몽테스키외와 볼테르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던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을 통해 "인간 및 인간사회를 그 자체로서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길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가 제기한 '삼권분립론'은 "절대왕정을 개혁하는 법적 기구로서 객관적인 유효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혁명적 부르주아지가 절대왕정을 비판하고 개조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국가론을 착상하도록 했다. 또 볼테르는 인간성과 이성을 앞세워 무지와 미신을 날카롭게 공격했다.
1750년대 이후 계몽사상은 한층 더 현실적으로 바뀌어간다. 혁명에 영향을 미치는 사상가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케네가 대표하는 중농주의와 디드로가 대표하는 '백과전서파', 그리고 장 자크 루소다. 이 가운데 진보주의 입장을 취했지먄 혁명을 주체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백과전서파와 달리 루소는 가장 이상주의자로서 현실 사회를 낙관하지 않았다. 그는 "이들 모든 악덕은 인간에 속하는 것이라기보다 악한 정치하의 인간에 속하는 것이다"라며 사회개혁의 열쇠가 정치임을 직관했다. 그는 <인간불평등 기원론>과 <정치경제론>에서 "사회악의 근원에 불평등이 있다는 것, 재정이나 조세는 이 불평등을 긍정하는 토대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논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근대사상의 초석을 놓은 명저로서 혁명적 민주주의 국가론이라 말할 수 있다.
루소는 국가주권의 구성요소를 국왕도 귀족도 아닌 일반 인민 속에서 찾았으며, 인민의 의지야말로 최고의 결정자이며, 법도 권리도 정부도 모두 이 '일반의지'에서 도출되고 그것을 통해 심판받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프랑스 혁명이 진전되어감에 따라 "인민의 정치적 해방"이라는 루소적 과제에 끝까지 충실한 혁명가가 로베스피에르다. 그는 "재산을 가진 자만이 진짜 시민"이라고 주장하는 다수파인 백과전서파에 맞서 "모든 시민은 누구든 선거권과 모든 종류의 의원이 될 권리를 갖고 있다"고 한 소수파였다. 그는 혁명을 전쟁 위에 두고 자유를 구실로 벌이는 전쟁에 반대했다. "자립적인 근로 농민이나 수공업자를 중심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화국을 만드는 것"이 이상이었던 로베스피에르와 산악파는 정치적으로 독재와 공포정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던 그는 운명의 날인 테르미도르의 9일, 반대파에 의해 체포돼 달아났다가 붙잡혀 처형됐다. "1794년까지의 혁명이 늘 '파리의 거리' 시민들에게 호소한 것과는 달리 테르미도르 이후는 언제나 군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 길은 곧바로 '보나파르트 독재'로 통하는 길이었다."
저자는 "프랑스 혁명은 지구상의 모든 민족과 민중이 '자유, 평등, 우애'를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 한 틀림없이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라고 이 책을 마무리한다. 짧게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의 의의와 전개 과정이 생생하게 다가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 궁금한 모든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라고 싶다.
-이 리뷰는 출판사 두례의 서평단에 선정돼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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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랑스 혁명을 부르주아의 모범일 뿐 아니라, 역사상 모든 혁명의 모범으로 부를까. 하지만 이 혁명도 역시 인간이 일으킨 혁명이라고 가와노 겐지는 말한다.(p. 5)
프랑스 혁명을 이상화한 나머지 이따금 볼 수 없는 것을 이 혁명 속에서 보거나, 반대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나는 이 혁명을 인간이 일으킨 인간다운 혁명으로 다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혁명은 인간의 강점과 약점,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지닌 것이고, 또 바로 그 때문에 모범적인 혁명으로 평가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p. 5~ 6)
혁명은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이기고, 젊은이들이 늙은이들을 이긴 것이었다.(p. 17)
민중의 혁명. 프랑스 혁명을 특징짓는 것은 이 한마디에 다 들어 있다. 그 당시의 역사적 시점에서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어야 했으며, 달리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당대 부르주아의 의지에 반하기까지 하면서 계속 떠밀려간 부르주아 혁명이었다. 그것은 가장 철저한, 급진적인 부르주아 혁명이며, 그런 의미에서 혁명의 모범이다. 이 혁명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또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은 광범한 민중이 혁명에 참가해 혁명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사실과 깊이 연관돼 있다. (p. 21)
프랑스 혁명이 민중의 혁명이기에 오늘날에도 주목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워낙 방대해서 어디서부터 파고들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기 마련이다. 그렇다면『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짧게 쓰여진 책이다. 프랑스 혁명 연구자인 영국인 톰슨이 “혁명의 역사를 쓰는 데는 서술을 좀 줄이고 사색을 좀 더 많이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뭐라 해도 모든 사건이 꼭 같은 중요성을 지니고, 모든 인물이 꼭 같은 의미를 지니며, 모든 법률이나 제도가 사회의 진로에 꼭 같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로베스피에르와 프랑스 혁명』), 라고 말했다고 한다.(p. 6) 가와노 겐지는 이를 적극 반영했다. 에드워드 카는『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위대한 역사는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시각이 현재의 여러 문제에 대한 통찰에 비추어져야만 쓰여질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했다. 프랑스 혁명은 이미 위대한 역사지만, 가와노 겐지에 의해 더 위대해진 느낌이다. 물론 그의 사색이나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가와노 겐지는 “프랑스 혁명은 지구상의 모든 민족과 민중이 ‘자유, 평등, 우애’를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 한 틀림없이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라는 글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p. 213)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싶어 어깨가 무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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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학창시절에 역사, 즉 세계사에 대한 공부를 떠올려 볼 때 암기식으로 치우친 점, 또 하나는 성인이 되어 역사에 대한 공부가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에 좀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대한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읽기 쉽고 간결하게 정리했다는 소개에 더욱 호기심을 끌었었다. 읽고 난 후의 소감은 여러 이유로 집중을 다하지 못하고 띄엄띄엄 읽게 되는 바람에 맥을 잇기 어려웠고 그로 인해 흥미를 못 느꼈다는 점이 아쉽게 다가온다. 이 점을 반성하며 추후에 다시 읽는 기회를 가진다면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여기서 다루는 시대적 배경은 민중이 바스티유를 공격하기 2년 전인 1787년부터 나폴레옹이 실권자로 등장하는 1799년까지 10여 년간의 프랑스 혁명을 다루고 있다. 기존의 혁명의 역사와 달리 서술 쪽보다는 사색을 하는 쪽에 좀 더 기울였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점은 서술이 길어져서 지루한 책읽기가 될 수도 있는 독자에게 배려심이 엿보여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선 목차의 구성을 보면, 1장. 혁명과 계급 2. 계몽사상 3. 혁명의 계기 4. 왕과 의회와 민중 5. 전쟁과 혁명 6. 혁명과 민중 7. 부르주아 국가의 출현 종장. “혁명은 끝났다”로 되어있다.
1장부터 3장까지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배경과 계기를 설명하고, 4장부터 7장까지는 프랑스 혁명의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크게 나뉜다. 1장은 혁명 집단과 반혁명 집단의 대립, 프랑스 혁명의 주체와 관련된 계급을 분석한다. 2장은 프랑스 혁명이 유일하게 ‘계몽’과 ‘혁명’이 어우러진 사상의 혁명이라는 점을 들어 케네, 디드로, 루소 등으로 대표되는 18세기 후반기 계몽사상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당시 ‘사상의 혁명’이라는 점에서도 독보적인 지위를 가졌던 프랑스로서는 ‘계몽’과 ‘혁명’의 결합은 행운으로 작용하여 혁명이 실현되었음을 설파하고 있다. 3장은 전쟁과 귀족의 저항 등을 중심으로, 프랑스 혁명의 주체와 사상이 언제 어떤 계기로 어떻게 혁명이 일어났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4장부터 7장까지는 프랑스 혁명의 발발부터 나폴레옹이 실권자로 등장하는 시기까지를 간결하게 정리하고 분석해 준다.
그렇다면 혁명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프랑스 절대왕정 시대는 끝없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 항해 무역 등 식민지의 증대 목표는 귀족이나 상인 군주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피폐해진 민중의 저항은 커질 수밖에 없다. 수공업자와 농민들이 몰락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부랑자와 도시빈민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남는 것은 분노밖에 없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1787년에 시작된 ‘귀족의 저항’이라고 하니 다소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다. 혁명이 일어난다면 귀족과 성직자들은 타도당할 수밖에 없는 계급임에도 그들이 혁명의 불씨를 지녔다는 점이다.
계몽주의자들 중 유일하게 루소만이 ‘인민의 소리는 신의 소리’(P80)라고 표명했다고 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인민을 어리석은 부류로 폄하하며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혁명의 싹이 트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 혁명과 모든 혁명의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혁명의 순교자’였던 로베스피에르도 ‘테르미도로 반동’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하지만 그의 1,2년에 걸친 정치적 실천이 무효가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레닌에게는 ‘가장 좋은 학교’가 되었으며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의 거대한 빗자루”가 되었기에 인민들이 자유롭고 민주적인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계 도처에서 혁명은 진행 중이다. 프랑스 혁명은 부르주아의 혁명과 동시에 민중이 참가하여 민중이 승리한 혁명이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촛불 혁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혁명 주역들의 ‘인물 약전’과 간략히 정리한 ‘혁명 약연표’는 프랑스 혁명을 좀 더 쉽게 이해하는데 유용해 보인다. 프랑스 혁명의 역사에 관심 있는 독자가 읽는다면 짧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유익한 독서가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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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은 근대로의 이행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부르주아 혁명의 가장 대표적인 혁명인 동시에 역사상 일어난 모든 혁명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우리는 의외로 프랑스혁명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그저 1789년 일어났다는 것,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절대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이행했지만 10년만에
쿠데타로 무산되었다는 것 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프랑스혁명에 대해서
더 이상 알려 하지 않은 것은 등장인물들도 많고,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그렇게까지 자세히 알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도 한몫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었다. 그러다 일전에 [레미제라블]을 읽으면서 프랑스혁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작품의 배경이 혁명기의 파리를 소재로 하고 있어서이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배경이나 당시 민중들의 상황에 대해 알았더라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나폴레옹이 실권자로 등장하여 왕정으로 복귀하기까지, 10여년에 걸친 혁명 기간을 간결하게 정리한 책이다. 간결하다고는 하지만 200쪽이 넘는 지면에 프랑스혁명에 대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빠짐없이 다루고 있다. 저자는 먼저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격부터 규정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혁명이 군주정치가 지배하는 유럽에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 국왕을
처형하고 군주정을 평민들의 국가인 공화정으로 바꿔 나라 안팎에 선언한 혁명으로, 자유와 평등이 실현된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혁명이라고 규정한다. 이는 정치투쟁이 계급투쟁으로 전개되었고, 광범위한 민중이 참여하여 혁명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780년대 중,후반 프랑스에서 부르주아 세력은 귀족세력보다
강하지도,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의
정치체제는 봉건국가 최후의 단계를 보여주는 절대왕정 이었지만, 생산의 발전에 따라 부르주아 세력이 질과
양 모든 면에서 강화되었다. 그리고 이들 부르주아 계급은 절대왕정의 정책에 대립하기 시작한다. 한편, 농업에서는 영주와 자영농사이의 봉건적 착취 관계 위에 영세
농민 등과 같은 새로운 계층이, 그리고 상공업에서는 전통적인 길드 수공업자들이 소수의 대상인에게 예속되면서
임노동자로 전락한 도시빈민이 생겨났다. 이들 빈농과 도시빈민으로 구성된 제4계급이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혁명세력과 귀족으로 대표되는 반혁명세력이 싸우는 가운데 머리를 들고 혁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18세기는
계몽의 세기이기도 했다. 계몽은 사회내부 여러 계급의 움직임이나 요구를 반영하고 그것을 이론화 한 것이다. 17세기 영국에서 혁명은 있었지만 계몽이 빠졌기에 민중들이 참여하지 못한 것이나, 19세기 독일에서 계몽은 만발했지만 혁명을 주도할 계급이 존재하지 않아 혁명이 일어나지 못한 것과는 달리, 18세기 프랑스에서는 계몽과 혁명이 보기 좋게 결합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1780년대 후반 프랑스에는 ‘혁명적 계급이 이미 존재했고, 혁명을 위한 사상도 분명히 존재했’다고 한다. (73쪽)
이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결코 작지가
않다. 혁명은 사회적 모순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 모두가 그 모순을 인지하면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혁명이 현실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 게다. (51쪽) 이는 거꾸로 말하면 사회적
모순이 심화될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프랑스가 식민지를 잃어가고 영국이 패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18세기 유럽의 절대왕정시대는 끝없는 전쟁의 시대이기도 했다. 연이은 전쟁으로 왕권에 대한 신뢰는 흔들렸고, 패전에 따른 전쟁비용
부담으로 세금이 국민을 짓누르자 민중의 저항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기 절대왕정이 위기를 모면하고자
추진한 것이 바로 위로부터의 부르주아적 개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봉건제와 절대왕정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르주아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도입된 자본주의는 체제 모순을 야기시키고 생산자 대중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게 되면서 혁명의
계기가 되었다. 1789년 개혁을 위해 성직자, 귀족, 제3신분으로 구성된 삼부회가 구성되었지만, 성직자와 귀족들은 시간을 끌면서 개혁에 미온적이자 제3신분은 국민의회를
조직하고 절대 왕정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프랑스혁명의 막이 오른 것이다.
프랑스혁명은 이후 혁명과 반혁명의 대립
속에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면서 1799년 프랑스혁명 최후의 쿠데타로 나폴레옹이 실권을 장악하며 왕정으로
복귀하기까지 10년동안 계속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절대권력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계급을 배반하는 정치인들의 습성을 알게 된다. 루이 16세는 국민의회파를 제압하기 위해 외국인 군대를 소집했다가 결과적으로 민중이 혁명에 참여하게 만들고, 바스티유 감옥에서 공방전이 일어나는 단초를 제공한다. 1791년
입법회의가 구성되었을 때는 유럽 각국에 동맹을 결성하여 프랑스를 공격해달라고 했다가 결국 자신의 죽음을 재촉한다.
그런가 하면 혁명지도부는 끊임없이 분열한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맞는 선에서 국왕과 타협하여
혁명을 끝내려 시도하는가 하면, 공화정 수립을 요구하는 민중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혁명을 멈추어 서게
만들기도 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 민중의 일시적인 불만에 편승하여 혼란의 확대를 꾀하는가 하면, 군대를 동원하여 그런 민중들을 제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프랑스혁명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는다. 하나는 ‘반동에 한 걸음 양보하면 즉각 몇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186쪽) 또 하나는 정치인들은 권력을 쟁취하게 되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계급을 배반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익히 보아오는
사실이기도 하다. 프랑스혁명사를 읽으면서 오늘의 우리 현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저자는 프랑스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인 동시에 민중의 혁명이라고 말한다. 광범위한 민중이 참여하여 구세력을 완전하게 제압하면서 민중이 승리한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또 두렵게 느끼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프랑스혁명 역시 인간이 일으킨 혁명이기에 인간다운 혁명으로 봐야한다고 강조한다. 혁명을 이상화 시킨 나머지 볼 수 없는 것을 보거나,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면서 사건이나 인물에 관심이 가기보다는 혁명의 배경이나 계급간의 투쟁 양상에 더 눈이 갔다.
저자는 이 책이 짧게 쓴 프랑스혁명사라고 했다. 그러나 일반인인 우리가 읽기에는 오히려 프랑스혁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물론 프랑스혁명에 대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지는 별개로 하고 말이다. 책을 읽고 나니 전에 [레미제라블]을 읽으면서 무심코 넘어갔던 혁명기의 파리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읽는다면 전에 느끼지 못한 새로운 느낌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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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부모는 아이에게 철학을 선물한다"를 읽으면서 그렇게 개성이 강한 프랑스의 교육은 종교와 거리를 두고 인권을 강조하는 철학,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줄 아는 철학을 강조한다는 것 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종교와 분리 또 강력한 각자의 인권 존중 사상은 어디에서 시작된 건 지가 궁금하던 차에 "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를 만나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잇었습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혁명과 계급, 게몽사상, 혁명의 계기, 왕과 의화와 민중(1789~1791), 전쟁과 혁명(1791~1792), 혁명과 민중(1792~1794), 부르주아 국가의 출현(1794~1799), 종장 "혁 명은 끝났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잘 아는 것 같지만 제대로 모르는 부분이 있는 프랑스(대)혁명을 이번 기회에 체계적으로 정리 하기에 딱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전체적인 조망을 하고 인상 깊은 몇 문장을 공유하는 것으로 리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1789년 바스티유 파괴와 농촌에 휘몰아친 '대공포'의 뒤를 이어 왕과 왕당파는 "혁명은 끝났다. 혁명이여 멈춰라"라고 외쳤다. 그러나 혁명은 멈추기는커녕 그때 막 시작됐을 뿐이다. 205쪽
1791년 헌법이 규정한 입헌군주정과 제한선거제 속에서 새로운 프랑스의 모습을 보았다. 제헌 의회가 막을 내리면서 혁명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실은 제 1차 혁명이 끝난 것을 의미한 데에 지나지 않았다. 지주와 대자본 가들에게는 그 정도의 혁명으로도 충분했다. 봉건적 특권은 사라졌고, 교회재산은 몰수됐으며, 종교는 국가제도 속에 편입됐다. 경제활동은 자유로워졌고, 특권과 길드를 폐지하면서 노동자들 의 단결권도 부인해버렸다. 이는 특히 재산가나 실업가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제헌의회의 종막에 즈음해 로베스피에르는 "하지만 혁명이 끝났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날카로운 예언이었다. 사회적으로는 광범한 농민층, 소부르주아 계급이 아직 혁명의 소용돌이 바깥에 남겨져 있었다. 207쪽
제2차 혁명은 불가피했다. ...... 1792년 8월 10일의 혁명은 병사와 농민과 도시 소시민의 애국주 의와 혁명적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 입증해준 사건이엇다. 봉건적 부담은 완전히 일소되고 국유재 산을 농민들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잇는 형태로 매도하는 조처가 승인됐다. 부르주아와 중산층 농 민은 모두 해방됐다. 8월 10일의 혁명 뒤 정권의 귀속을 둘러싸고 부르주아파와 소부르주아파가 격렬하게 싸웠다. 농민이 현실의 영주적 지배를 추방하고 도시의 민중이 자치조직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자코뱅적 강제, 즉 테러가 필요했다. ......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없이 혁명을 바랄 순 없다"고 역설했다. 1793년 5월 31일에 시작되는 산악퍄 독재는 그런 요구에 부응한 것이었다. 이를 제3차 혁명이라 할 수 잇을까. 208쪽
왜냐하면 로베스피에르야말로 민중의 힘을 토대로 자본의 지배에 단호하게 맞서 싸우고자 했 고, 한때나마 그것을 성공시킨 최초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테르미도르(반동)와 함께 부활한 것은 부르주아지였다. 부르주아지는 산악파가 파괴한 봉건제의 폐허 위에 자본의 낙원을 쌓아 올렸다. 이는 부르주아만의 힘으로 실현된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 만 그들은 이 낙원을 총검의 힘으로 지켜내려 했다. 그 하나는 왕당파로부터, 또 하나는 자코뱅파 로부터. 이제 막 발아한 산업자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강대한 군사력과 군사독재가 필요했다. 부르주아 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부르주아적 정치방식인 의회주의를 폐기하지 않을 수 없는 역설에 빠졌 다. 210쪽
혁명 덕택에 이제까지의 가졍지에다 새로운 국유재산까지 추가로 얻게 된 수백만의 농민들, 이 른바 분할지 농민들은 보나파르트의 집행권력 강화를 환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나파르트의 권 력이 왕당파의 공세뿐만 아니라 테르미도르나 총재 정부 시대의 자유롭고 무제한적인 자본의 공세 로부터도 자신들을 지켜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혁명은 부르주아지의 마음에 공포의 기억과 다소간의 좋지 않은 뒷맛을 남기면서 최종적으로 막 을 내렸다. 211쪽
레닌은 1915년에 이렇게 썼다. "위대한 부르주아 혁명가에게 가장 깊은 존경의 염을 품지 않는다면 마르크스주의자일 수 없다. 이 들 혁명가는 부르주아적 조국의 이름으로 말할 역사적 권리를 갖고 있다. 그들은 봉건제에 대한 투쟁 속에서 몇 천만이 신흥민족을 문명생활로 일으켜세웠다." 그럴 때 그는 특히 로베스피에르를 거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부르주아 혁명과 사회주의 혁 명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잇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13쪽
다음은 의외였거나 마음에 드는 문장 몇 건을 적어보겠습니다.
군주정치가 지배하는 유럽의 대지 위에서 긴 세월 순종의 대명사로 불리던 프랑스 민중이 돌연 분노로 이글거리는 무서운 함성을 내지르며 들고 일어섰다. 그들은 국왕을 붙잡아 처형하고 군주정을 공화정으로 바꿨으며, 귀족과 성직자들을 쫓아내고 평민들의 국가를 만들어 나라 안팎에 공공연히 혁 명을 선언했다....... 눈 앞의 질서에 길들여져 있는 인간은 다른 사회나 다른 시대가 있을 수 있다는 것 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였다. 혁명을 통해 비로소 프랑스는 활기를 되찾 고 한층 더 번영했다. 17쪽 역사속의 혁명 중에서
농업분야를 보면, 기본적으로 영주와 자영농 사이의 봉건적 착취관계가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그 주변에 차지관계가 발전해 평민적 토지소유자와 영세농민, 자소작농민과 날품팔이 농민 등의 새로운 계층이 생겨난다. 이런 관계 속에서 한층 더 진보한 제대로 된 근대적 관계, 즉 대차지농과 농업노동 자라는 자본주의적 관계가 선구적인 형태로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봉건적인 관계와 반봉건적 및 근 대적인 관계라는 이중구조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40쪽 혁명과 계급 중에서
정치적으로는 독재와 공포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도덕적으로는 미덕을 강조하고 국가종교 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루소가 그랬듯이 그들도 또한 관념론자였다. 로베스피에르는 말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노동으로 필수품과 식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임 무를 사회가 일단 수행하는 이상 ...... 재산을 열망하는 자는 자유의 벗이 아니다. ...... 많은 부패를 초래하는 부는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보다 그것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유해하다." 151쪽 혁명과 민중 (1792~1794) 중에서
반혁명 집단과 혁명 집단이 서로 격렬하게 싸우는 가운데 이른바 제4계급인 도시 빈민과 빈농의 정치세력이 머리를 들고 혁명운동에 참여한 것, 이것이 프랑스 혁명 당시의 세력분포였다. 47쪽 혁명과 계급 중에서
백과전서 및 백과전서파는 프랑스 혁명을 위한 사상을 보급하고 선전한 직접적인 당사자라는 평 가를 받게 된다. -중략- 백과전서파의 영향과 정책을 무시하는 자는 그 누구도 우리 혁명의 서곡에대해 완전한 이데를 가 질 수 없게 될 것이다. - 로베스피에르 백과전서파의 철학은 그 대부분이 잊혀졌고, 그들은 프랑스혁명만 남겼다. - 샤토브리앙 62쪽 계몽사상 중에서
레 미제라블에서 도시 빈민과 농촌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보면서도 그들이 농노의 옷을 입고 있 지 않기에 그냥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도 '음 그런 구호가 있었구나,' 하는 정도 였지요. 하지만 오늘 이 책 속의 짧은 내용을 잘 정리해서 읽으니 프랑스 대혁명이 다르게 보이네요. 174쪽의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의 행복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것 을 행운이라 여겼다."는 문장은 그것이 혁명의 상승 기운이 끝나고 남아있는 문제를 분파 투쟁이라는 폭력적인 수단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 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지롱드파와 산악파 그리고 루소의 사상 등등 모든 것을 잘 정리할 수 있었고 166쪽의 "이제까지의 영 주의 모든 공조, 봉건계약, 토지임대 계약에 의한 경상적/임시적 권리들을 전년도 8월 25일의 법령으 로 제외된 것까지 포함해서 무상으로 금지한다."는 법령이 제정된 이유까지 그리고 각자의 이해관계 와 신념의 차이로 인해 벌어진 살인과 유혈 사태 그리고 민중의 소망들까지 찬찬히 세심하게 돌아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이 리뷰는 예스24리뷰어클럽을 통해 증정 받은 책을 갖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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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프랑스관련교과목의 선택으로 프랑스역사를 처음으로 깊이 있게 알 수 있었던 것같다. 학과상 프랑스를 조더 깊이 알게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에 수강을 하였지만 결과적으론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두 학기의 시험이 겨우 낙제를 면할 수 있을 정도 였었다. 그당시 몹시 당황해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곤 다시는 처다보기 싫었었고 기억속에서 잊혀졌던 것 같다. 그러나 그뒤로도 프랑스 언어는 나의 입과 머리를 붙잡고 놔주지않고 애를 먹여오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나의 프랑스어가 조금이라도 나아진건 아니다.
얼마전에 읽었던 <두 도시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안에서 그려졌던 혁명의 이야기 머릿속에 남아있다. 민중의 분노와 처절할 정도의 복수들, 그리고 혁명의 이면들의 이야기들을 바라보며 바랐던 것과 그 이상들의 엇갈린 방향들이 각기 계층의 엇갈린 요구와 욕구는 결코 하나로 갈 수 있는 길인가보다란 생각이 지금도 남아있다.
<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 제목이 주는 매력이 좋아서 무작정 선택하였고 운좋게 볼 수 있게 된 책이다. 일본의 유럽과 프랑스에관한 애정으로 일본인 저자가 쓴 이 책<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는 특히 '짧게 쓴'이란 단어들이 매력적이었지만 내용은 절대적으로 짧지않은 책이다. 특히나 혁명사를 다룬 책이었고 우리모두가 알고 있는 프랑스 혁명사는 모든 혁명사의 기초이자 근간이 되는 역사이다. 책을 "부르주아 혁명과 모든 혁명의 모범이 된 '프랑스 대혁명' 방대한 프랑스 혁명사를 읽기 쉽고 간결하게 정리한 책!"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을 개인과 민족, 인종 장벽을 넘어선 부르주아 혁명야요 그 부르주아적 한계마져 넘어서려 했던 민중(인민) 주체 보편혁명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을 부르주아 혁명의 모범이라 부른다. 프랑스 혁명은 지구의 모든 민족과 민중의 '자유, 평등, 우애'를 위한 싸움을 멈추지않는 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 평등, 우애'를 위한 싸움을 우리는 해오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일 것이다.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 볼때 이런 사고를 갖은 적이 그리고 그것이 허락된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은 프랑스 혁명사를 들려주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하고 있다.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사가 모든걸 대변해줄 순 없다. 각자에게 맞는, 각자의 입장과 상황이라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프랑스 햑명에서 많은 것을 선택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어떤 입장이었을까? 저자는 객관적 서술을 통해 "이 혁명은 인간의 강점과 약점,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지닌 것이고, 또 바로 그 때문에 모범적인 혁명으로 평가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를 보며 미래를 배운다고 했다. 얇고 잛게 정리된 이 한 권의 책<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는 우리에게 절대 얇지도 잛지도 않은 질문들을 해대고 있다. 그 대답은 우리의 몫이고, 우리의 할 일은 저자의 바램처럼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현재 살아 있는 사람으로써 과거의 경험이나 사실에 제각각의 중요도를 부여하고, 취사선택을 하고, 관련 사항을 따져보ㄱ려고 시도"하다보면 더 나은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래를 준하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 도서출판 두레의 두레아이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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