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0.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근대문학의 자명성을 재고하다.
"근대문학의 자명성을 재고하다." 내용보기
비평이란 경계적=위기적인 공간 critical space에 서는 것이며, 그것은 정해진 입장이 아니라 끊임없는 이동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문고판에 부쳐`에서-  서문과 후기, 영어판에 실린 서문 프레드릭 제임스의 <다른 근대를 거울삼아>를 제외하면 모두 일곱 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장마다 <풍경의 발견>, <내면의 발견>, <고백이라는 제도>, <병이라는 의미>, <아동의
"근대문학의 자명성을 재고하다." 내용보기
비평이란 경계적=위기적인 공간 critical space에 서는 것이며, 그것은 정해진 입장이 아니라 끊임없는 이동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문고판에 부쳐`에서-


 서문과 후기, 영어판에 실린 서문 프레드릭 제임스의 <다른 근대를 거울삼아>를 제외하면 모두 일곱 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장마다 <풍경의 발견>, <내면의 발견>, <고백이라는 제도>, <병이라는 의미>, <아동의 발견>, <구성력에 대해서>, <장르의 소멸> 이란 소제목이 붙여져 있는데 목차를 보자마자 딱 푸코를 떠올렸다. 푸코의 담론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당시 일본에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포스트 모더니즘 쪽으로 읽힐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의도한 것은 일본에서 1980년대 소비사회와 함께 유행한 포스트 모더니즘과는 반대된다고 말하고 있다. 1984년 가라타니 고진이 「비평과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평론으로 일본적인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립, 근대주의자로 전향한 것처럼 취급하는 평을 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역사적 맥락도 생각하면서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가라타니는 서문에서 나카에 초민의 <실천되지 않은 이론은 진부하게 보일지언정 신선하다>란 말을 인용한다. 나에게도 그 말은 상당히 인상깊게 들렸다. `실천되지 않은 이론인 근대주의는 신선하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주의는 과연 실천된 이론이었는지 나 역시 상당히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각 장은 메이지 10년에서 20년대에 걸쳐 일본에서 일어난 문학과 사상사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당시의 제도 변화와 함께 잘 보여준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상당히 겹쳐보여서 예전에 배웠던 문학사와 문학이론들, 내 안 깊숙이 들어 있는 금기와 비슷한 감정들-근대문학 자생론과 근대문학 이식론의 대립,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대립-에 대해 되새겨보았다. 아직 전에 배웠던 것들이 강력하게 내 안에 남아있어서 그런지 조금 씁쓸했다.

 

<풍경의 발견>에선 우선 문학의 자명성을 의심한 나쓰메 소세키의 의문을 가져와, 서구가 오랜 세월 근대를 형성하면서 모르고 지나쳤던 사실들이 일본에서 한꺼번에 근대를 형성하면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근대를 내면화시키지 못한 사람들의 눈에선 근대가 어떻게 느껴졌는지 드러낸다. 문학, 즉 근대문학은 선험적이고 보편적인 게 아니라 역사적인 산물로 서구에선 근대화 과정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나 근대성이 내면화되어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한꺼번에 외부에서 받아들인 일본 내에서는 근대, 근대문학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더 그 특성과 형성과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장에선 근대화 과정 중에 나타난 `풍경`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보여준다. 풍경은 주위의 외적인 것, 타자에 무관심한 내적 인간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즉, 풍경은 외부 세계를 소원화하고 극도로 내면화하면서 발견된다. 근대문학의 리얼리즘은 풍경 속에서 확립되었고 리얼리즘이 묘사하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소원화된 풍경으로서의 풍경`이었다. 또한, 국문학사는 그런 풍경의 발견에서 형성되었다.
 흥미롭게도 가라타니 고진은 메이지 20년대에 일어난 일들, 정치적 좌절 때문에 내면=문학으로 향하는 패턴이 1970년대 일본에도 반복되었다고 하는데 그와 비슷한 일들이 우리나라에선 90년대에 일어났었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가라타니 고진이 내면화는 문학적 언설로 안정된, 의문을 품지 않는 구조로 존재하는 일로 돌아가는 것이고 정치적 구조를 소거시켜버리는 일이라고 말할 때 더 공감을 했다. 근대문학은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적 개인들이 좌절하면서 생겨난 부산물이 아닐까.
 <내면의 발견>에선 표현해야 할 `내면`이 선험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어떤 물질적 형식에 의해 가능했다고 하면서 내면의 발견 과정을 메이지 10~20년대에 일어난 여러 사회운동을 특히 언문일치 운동을 중심에 두고 살펴보았다.
 <고백이라는 제도>에선 고백해야 할 내면에 앞서 고백이란 제도가 먼저 형성되었다고 말하고, 그걸 메이지 20년대를 통해 보여주는데 당시 몰락한 무사 계층을 중심으로 번졌던 기독교의 수용 과정과 연관시켜 말한다.
 <병이라는 의미>는 『불여귀』란 작품을 통해 문학이 어떻게 신화화되었는지 보여주고 그에 따른 가치의 전도성을 드러낸다.
 <아동의 발견>에선 앞에서 얘기했던 것들과 마찬가지로 `아동` 역시 `풍경`이나 `내면`의 발견에서 생겨났다고 말하고, 아동의 발견이란 전통적 사회의 자본주의적 재편성의 일환이라고 한다. 메이지 시대 정권이 실시한 `학제 반포`와 `징병령 반포` 역시 그렇다. `학제`와 `징병제`를 통해 국가 전체는 공장=군대=학교로 재조직된다. 근대국가 자체가 `인간을 다시 만들어내는 하나의 교육장치`로 학교교육의 보조물로 <아동>은 만들어졌다.
 <구성력에 대해서>는 메이지 20년대에 일어난 문학 논쟁 `몰이상 논쟁`과 ``이야기`가 없는 소설 논쟁`을 중심으로 소설 형식 논쟁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짚는다.
 <장르의 소멸>에선 `몰이상 논쟁`에서 오가이가 장르란 것은 병렬적일 수 없고 역사적 발전단계로 존재한다고 보면서 장르 소멸의 역사적 필연성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소세키는 이런 필연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근대소설의 형식에서 벗어난 작품을 썼다. 그리고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차이를 통합시켜 버리는 근대문학의 허구성에 대한 투쟁이라고 가라타니는 말한다.

 

  처음엔 일본문학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지 않은 내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가끔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는 이해 가능했다. 그리고 읽으면서 우리나라 근대문학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들이 포스트 모더니즘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었던 것과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다른 출판사에서 조만간 이 책이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나온다는데 또 읽어봐야겠다. 여러 번 읽다보면 미처 몰랐던 사실도 더 깨달을 수 있을테니까. 새로운 한국어판 서문과 후기 역시 기대된다.

 

인상깊은 구절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근대주의, 시민주의가 아무리 진부할지언정 일본에서 근대도 시민도 실현된 적이 없는 한, 지금도 여전히 신선하다, 그렇다면 그것을 진부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누구의 죄인가> 하는 점이다. <실천되지 않은 이론은 진부하게 보일지언정 신선하다>라는 나카에 초민의 말은 나에게도 <신선>했다. 초민이 이렇게 쓴 시기에는 니체주의 같은 <이론>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그 이론들이 이미 읽을 만한 것이 못 되는 데 비해 초민의 말은 왜 아직도 신선한가. 그것은 루소에 근거를 둔 그의 <민권> 이론 때문이 아니다. 초민의 말이 신선한 것은 그것이 <비평>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비평은 이론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이론과 실천 사이의 거리, 사유와 존재 사이의 거리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다.

-한국어판 서문, 12쪽에서 발췌-



a****o 2009.08.29. 신고 공감 1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