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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근사한 식당에서 양식을 먹을 때,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곁들이면 효과가 좋은 술이다. 와인 한 잔씩만 곁들여도 분위기가 고급스러워지고 세련되어진다. 와인은 예로부터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술이었고, 이와 관련하여 서양 문화권에서 와인을 즐겨 먹어 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고급 와인은 물론 대형 마트에서도 쉽게 와인을 접하고, 와인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향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한편 와인은 지리적 시선으로 바라보면 흥미로운 음료다. 와인은 술이고 음료인데 왜 지명, 산, 강, 지도만 볼 것 같은 지리학에서 와인을 바라볼까? 지리학은 사실 대중적 인식과는 달리 의외로 일상적인 것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지표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와인을 먹는 행위를 하고, 그 와인 문화로 인해 지표 위의 경관이 변화하는 과정이 지리학적으로 매우 흥미롭기 때문이다. 게다가 와인 문화 그 자체에도 '떼루아(terroir)'라는 지리적 의미의 말이 있지 않은가? 와인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꽤 알려진 일반적인 단어의 뜻풀이만 해 보아도(불어로 '땅'이라는 의미로, 와인 생산지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의미임), 와인이 다른 음료에 비해 지리적으로 흥미롭게 바라볼 만하다는 점을 짐작하게 해 준다. 그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떼르와는 '땅', '토양'에 해당하는 프랑스어지만, 떼르와는 와인에 영향을 미치는 그 지방의 모든 환경과 사회의 특징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된다. 많은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장소의 모든 특징들 즉, 떼르와가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지리를 음미하는 것을 의미한다. 떼르와는 장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p.30) 이 책은 지리학자가 쓴 와인에 대한 책이다. 누구나 아는 대상인 와인을, 그리고 매우 지리적으로 흥미로운 대상인 와인을,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지리학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 책이다. 지리학자들이 지리학 연구 대상을 접근하는 방식으로 와인 생산용 포도 재배지, 와인 생산과 소비 과정, 와인과 관련한 경관 특성과 변화 등을 탐구한다. 먼저 초반부에서는 일반적인 기후, 지형, 토양의 특성, 와인 생산용 포도 재배 적지가 어떤 기후, 지형, 토양 특성을 띠는지를 챕터 별로 살펴본다. 와인의 자연 경관을 주목하는 것이다. 기후적 측면에서 특히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세계지리 교과에서 접근하는 것과 유사하게 '지중해성 기후'를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하기 적합한 것으로 언급한다. 실제로 포도가 맛있게 잘 자라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여름의 고온건조, 겨울의 온난다습이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특이한 기후조건인 지중해성 기후와 잘 맞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서안해양성 기후로 분류되는 곳에도 일부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 있어서(프랑스 중부, 독일 남부 등), 보통 수업시간에는 개인적으로 이곳들은 언급하지 않았었다. 마침 책에서 추운 날씨에 잘 적응하는 일부 포도 변종이 서안해양성 기후의 와인 생산지와 관련이 있다고 언급해서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쾨펜의 기후구분이라는 거시적 틀보다 좁은 스케일의 '미기후'가 더 중요했다. 라인강의 지류인 독일의 모젤강 계곡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미기후와 관련하여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구글 지도를 찾아보았다. 지중해성 기후가 아님에도 멋진 포도 재배 경관이 나왔고, 남사면의 사면 중앙에서 포도가 더 좋은 품질의 와인 생산이 된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또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란사로테 섬에 있는 특이한 포도 재배 경관은 세계지리 교과서에도 언급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에서도 언급되어서 반가웠다. 서안해양성 기후는 보다 서늘하고, 비가 자주 오고 여름 가뭄이 더 적다. 그렇긴 해도 너무 추워서 와인을 생산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극지 방향이 아니거나 너무 습해서 와인 포도를 생산할 수 없을 만큼 비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다. 서안해양성 기후들은 다양한 종류의 식생을 지원할지라도 지중해성 기후와는 상이하다. 이들 지역의 와인 제조업자들은 포도의 변종들이 추운 날씨에 더 잘 적응하고 비가 많은 날씨에 더 잘 적응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오리건(Oregon)과 캘리포니아를, 알자스(Alsace), 부르고뉴와 프로방스를, 또는 독일과 이탈리아를 비교할 때, 우리는 본질적으로 서안해양성 기후와 지중해성 기후를 비교하는 것이다.(p.52) 이는 우리가 서늘한 기후에서 태양과 접하는 경사면에 식재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또한 경사의 중간 부분에 식재하기를 원한다. 그 방법에서 가열의 이익을 얻고, 바람과 냉기 침강에 덜 노출된다. 우리는 포도나무의 차이를 보게 될 것이고 와인의 차이를 맛볼 것이다. (p.67) ![]() 독일 모젤강 계곡의 와인 생산지 Roman wine press Brauneberg / Mosel 좌표 49.915733, 7.000987 일조량이 많은 남사면(사진에서 강 아래)에 포도 농장이 펼쳐져 있는 모습이다. 강 건너 북사면은 포도 농장이 잘 안보인다. 출처 : 구글 스트릿 뷰 대부분의 작물들은 란사로테에서 자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화산재는 예외적으로 수분을 보유하는 것이 빈약하다. 그러나 포도는 토양이 수분을 더 잘 보유할 수 있는 곳까지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다. 그 결과 수천 개의 구덩이에 포도가 심어져 있는 기묘하게 보이는 검은 화산재의 경관이 형성된다. 그 구덩이들은 매우 제한된 양의 강수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된다. 기업가 정신이 왕성한 포도 재배자들은 증발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바람으로부터 포도를 보호하기 위하여 작은 벽을 세웠다. 그 결과 낮게 놓여 있고, 반원형의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벽과 내부에 각각 구덩이와 포도를 갖춘 경관이다. 그 주위는 매우 공상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 (p.67) ![]()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란사로테 섬의 포도 재배 경관 좌표 28.976671, -13.703515 위성사진에 보이는 동글동글한 점, 환공포를 유발하는 경관이 바로 반원형의 화산암 벽이다. 출처 : 구글 지도 와인의 인문지리학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와인용 포도를 농사짓는 생산 방법의 지역 특성, 포도 생산지와 와이너리의 지리적 근접성 및 교통지리,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제국주의 시대까지 와인생산과 문화의 전파와 식민주의, 와인 생산에 GIS 기술이 활용되는 과정까지... 어떻게 와인이 생산되는지의 이면에는 수많은 지리적인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어떻게 와인을 위한 포도가 재배되고, 관리되고, 수확되는지의 이면에는 수많은 지리적인 내용이 존재한다. 포도밭에 대하여 매우 지식이 풍부한 사람에게 포도밭의 이미지는 그 입지에 대한 충분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왜냐하면 식재 패턴, 포도의 재배 및 가지치기 방식, 사용하는 재료와 기계가 장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몇몇 포도 재배의 경험에 의하면 포도 재배는 생산되는 와인만큼이나 강하게 장소와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버팀목 혹은 나무 사이에 일렬로 높이 재배되는 포도의 그림은 포르투갈 포도밭으로 그 입지를 확인하기에 충분하다.(p.128) 캘리포니아에서 조건은 단순히 포도만을 재배하지 않는다. 조건들은 또한 사람도 육성한다. 포도 재배와 포도주 양조학이 학문적으로 양성되는 곳이 존재한다면 바로 캘리포니아이다. 가령,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소노마 주립대학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프레즈노 캠퍼스와 같은 대학에서 과학자들은 학생들이 와인의 '실제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혁신을 만들어낸다. 이 대학들이 포도 재배와 양조학 프로그램을 포함한다는 사실은 캘리포니아 와인지역에 인접한 것에 바탕을 든다. (p.141) 식민주의의 결과,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대단한 지리적 실험이었다. 와인 생산국가 출신의 식민주의자들은 그들이 가는 어느 곳에서나 와인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동시에 비(非)와인 생산국가 출신의 기업가들은 와인무역에서 크게 한몫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기 위하여 식민지를 두루 돌아다녔다. (p.183) 샤블리는 센강의 지류에 있어 파리의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보졸레는 론의 지류에 있어 리옹의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하천을 통해 주요 도시 시장으로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면, 코트도르는 육상 선적 비용 때문에 이웃 지역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할 수 없었다. 단순히 이 지역의 와인을 시장에 옮기는 데도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코트도르는 대량의 와인과 저비용에 투자하기보다는 차라리 소량의 고품질인 고가 와인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품질은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인다. 이것은 오늘날까지 수반되는 고품질(그리고 고가격)에 대한 부르고뉴의 명성의 발전으로 이어진다.(p.199) ![]() 프랑스 와인지도 샤블리는 파리, 보졸레는 리옹, 코트도르는 가항하천으로 갈수있는 곳이 없어 고급화 전략 도시, 교통로와 와인의 특성의 상관관계가 흥미로웠다. http://www.harpers.co.uk/news/fullstory.php/aid/15110/Burgundy_way_out_in_front_as_France_picks_up_28_IWC_2014_trophies.html 에서 수정 그리고 책에서는 마치 와인 생산지에 여행을 다녀오는 것처럼, 실제 전 세계에 분포하는 수많은 와인 생산지의 자연환경, 다른 곳과의 차별성, 와인 생산의 역사와 경제 지리 등에 대해서 보여주는 점이 좋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나파 밸리(Napa Valley), 소노마(Sonoma) 말고도 오리건 주의 내륙 지역에서 와인생산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p.151). 그리고 프랑스 하면 와인인데, 보르도 부근의 생테밀리옹(St. Emillion)과 같은 생산지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되어있다고 하고, 파리 근교의 상세르(Sancerre), 코트도르(Cote dor), 샤블리(Chablis), 샹파뉴(Champagne) 같은 곳이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고 해서 지도에서 찾아보았다. 독일의 모젤(Mosel) 강 계곡은 앞서 언급한 흥미로운 장소였고, 스페인 리오하(Rioja), 란사로테(Lanzarote), 남아공 케이프타운,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등 세계의 수많은 포도 재배 및 와인 생산 지명이 나온다. 구글 지도와 스트릿뷰, 검색창을 수시로 확인하면서 책을 읽었더니 진도는 잘 안나갔지만 마치 간접적으로 '와인 투어'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와인 이야기만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지리학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지리학에서 다루고 연구하는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지리학에 대한 이해를 먼저 할수 있도록 하고, 이 중 와인과 관련이 있는 부분을 연관하면서 글을 전개한다. 와인과 지리학의 균형이 적절히 갖추어져서 좋은 책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와인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이 아니어서 책을 읽으면서 대부분 새롭게 접하는 내용이었다. 와인에 대해서 관심과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면, 와인과 지리가 만나면 더욱 이야기가 풍성해진다는 점을 느끼게 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지리전공자 입장에서도, 지리라는 학문이 와인과 같은 일상적 음료도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책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