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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잘못 산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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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을 보고, 나 같이 기성세대로 진입한 사람들이 나 기성세대들이 잘못 살지 않았다고 돌아보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년들을 위한 글이며, 그들 또한 잘못 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속에 우리들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에 대한 잘 정리한 글이었다. 지금 이 세대에 대한 많은 비난이 있지만, 이런 비난에서 우리 기성세대가 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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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을 보고, 나 같이 기성세대로 진입한 사람들이 나 기성세대들이 잘못 살지 않았다고 돌아보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년들을 위한 글이며, 그들 또한 잘못 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속에 우리들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에 대한 잘 정리한 글이었다. 지금 이 세대에 대한 많은 비난이 있지만, 이런 비난에서 우리 기성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분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들과 소통을 통해 하나하나 극복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것 같다. 삶이란 어쩌면 비루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 속에서의 의미는 다 개인 몫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사회는 이미 개인을 돌보기에는 너무 거대해져 버린 것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회는 개인들이 모여 만든 것임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회전반적 분위기가 자기계발이니 위로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은 이러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에 동조해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책들을 많이 읽고 따라 한다고 하니, 좀 걱정스러운 일이 아닌가! 성공이란 잣대를 어디에 대는지가 중요하다. 대부분 이런 책을 쓴 사람들은 성공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자신처럼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그 사람의 일부분의 성공, 흔히 말하는 부와 명예 등 특정부분에서 비교적 나은 결과를 얻은 것에 지나지 않다. 각 개인들이 생각하는 성공은 동일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인생은 개인적인 만족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신념이나 자기의 확고부동한 생각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사회는 점점 어려워 질것이다. 시스템을 계속 그런 쪽으로 몰아가고 있고, 우리는 말없이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세계가 함께 움직이고 있기에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사고와 행동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계속 발전하고 나아지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할 때이다. 계속되는 발전과 나아지는 삶은 유토피아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물론, 더 좋아지기 위한 노력과 더 나빠지는 것을 함께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거와 비교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또 다른 나쁜 면이다. 자신의 삶은 이러이러했으니 그렇게 따르라는 말은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기에,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물론 지금 세대도 지금만이 현실이라고 말하면 안되리 곧 그들의 현실이 과거의 현실로 변하기에. 흔히 희망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란 존재, 하지만, 사회는 희망을 기대로 바꾸어 버렸기에,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이 더 크게 부각되는 것 같다. 단절되는 사회, 이런 사회는 점점 무서운 고립에 빠지는 것 아닐까. 우리에게는 삶을 나누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이 동료이며 친구이다. 삶에서 남에게 들리지 않는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동료가 사라졌다. 공감은 삶을 견뎌나가는 가장 큰 힘으로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생활하는 장소’다. 공감과 동감,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나눔으로써 가능하다. 자신들의 언어가 공감의 방식이다.

 

 

우리는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교육은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아니라 추방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개짱이의 삶은 고만고만한 삶이며 가늘고 긴 삶이다. 과거의 산업역군(불멸의 존재)의 시대는 가고, 소비사회의 출현으로 소비자가 왕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모든 것이 소비와 직결되는 사회, 많이 쓰고, 그러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끝없는 소비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사회, 계속 소비하라, 그리고 계속 찍어내라. 그러면 너희는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고, 우리는 점점 배가 불러터질 것이다.

 

자아실현, 노동은 자아를 실현하고 야망을 성취하는 도전이다. 그리고 하면 된다? ‘무엇이든지 하면 무엇이든지 된다.’와 ‘되는 것만 하라!’ 와 되지 않는 것은 하지 말라, 그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내일은 더 나아지리 그렇게 믿지 않으면 살아갈 힘을 잃을 것 같다. 그러기에 희망과 분노가 함께 하는 것 같다. 동시대성과 동시대인으로써의 공감. 모욕과 경쟁 그리고 자존감, 문명화 된 사회와 품위 있는 사회, 사회적 가치, 사회의 계층화에 대해 우리는 좀 더 깊은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세상이 우리 편이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 체험과 경험이 사라지고 있다. 점점 경험의 빈곤과 경험이 아무리 많아도 경험만으로 우리가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는 없다는 점, 체험과 경험이 함께 필요하다. 어른은 후손에게 무엇을 전수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애새끼와 꼰대로 양분화된 우리 사회는 이런 경험의 전수에 벽을 쌓아버린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른이 되고 체험을 통해 우리는 계속 아이로 남게 된다. 우리는 우리 삶에서 위험을 제거한 만큼 경험을 잃었고, 경험을 잃은 만큼 삶에 대한 용기를 잃어버렸다. 흔히들 지금은 많은 체험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공연은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가 대신 공연을 즐긴다. 이런 것은 경험이 아니다. 경험의 죽음은 곧 교육의 죽음이다. 우리사회는 점점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 아닐까?

 

법이 사람 잡는 세상, 법은 정의의 문제다. 정의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떤 행위를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하는 문제다. 정의의 문제는 한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직결된다. 법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법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삶을 예측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준법은 피통치자가 법의 질서에 복종하는 것이고, 법치는 통치자가 법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 법치가 아니라 법에 의한 통치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법을 통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법과 싸워야 하는 것이 문제이다. 법의 공정성은 사회의 공공성과 함께 한다. 우리들은 법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사회도 공정하지 못하다고 믿는다. 법이 항상 우리들 밖에 있는 이유는 법을 만드는 주체가 민중이 아니다. 지배층과 지식층, 그들의 사고로 만들기 때문에 항상 대중과 유리된 것이 아닐까 

 

삶은 계속된다.

삶 속의 증언자들, ‘최철원 사건’에 대한 분노는 돈이면 뭐든 다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분노이다. 증언은 사회를 폭로하고 사람을 옹호한다. 진실에 대한 용기란 자신의 비겁함으로 보이는 것을 사회에 대한 폭로로 돌리는 것이다. 증언은 증언자가 자신을 시대와 사회를 향해 드러내 놓는 행위다. 삶에서 수고로움은 회피할 수 없다는 사실과 남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에로티시즘과 배려)이 필요하다.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때문에 의미가 생긴다. 관계를 만드는 것은 의미가 아니라 의례다. 우정, 평등하게 우정을 나누는 관계이다. 희망은 기다림이며 삶을 이끌어가는 에너지이자 목표다. 기대와 조급함, 희망이란 불가능한 것을 상상함으로써 현재의 비루한 삶을 견디는 힘이다. 대안의 개인화 대안이 자기 손에 구체적으로 주어질 경우에만 자신의 움직이겠다는 뜻이다. 이게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똑같이 가진 문제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고 위로하는 자기개발서 무언가 문제인 것 같다. 같은 문제를 가졌기에 괜찮고, 그 문제가 다가오기만 기다라는 사람들. 과연 그 문제에 맞설 수 있을까?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내 것과 공동의 것 그리고 삶,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 자체가 바로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삶 자체에 대한 질문의 문을 열어야 하는 시간이다. 상상이란 바로 내 존재 자체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이다. 우리에게 상상이 있기에 다른 삶은 가능하다. 용기를 내는 데는 바로 나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가장 필요하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수많은 '나'들이 함께 한다. 저자는 ‘두더지가 되자.’라고 주장한다. 조직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끼리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활동이 중심이 되고, 신나게 행동하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료와 아지트다. 소중한 친구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삶이란 하루하루 모욕을 감내하는 것이고, 살아가는 것은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 위대하다. 이 힘든 삶을 함께하는 동시대인, 친구들, 동료들, 우리들의 가족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희망을 잃지 않고 힘차게 살 용기를 가지게 된다.

 

*긍정적인 글, 하지만, 무언가 가르침이 부족하다.



YES마니아 : 골드 p*******t 2012.01.19. 신고 공감 10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동료애로 소통하며 희망을 이야기하다.
"동료애로 소통하며 희망을 이야기하다." 내용보기
꿈을 품고 새로운 희망을 다짐하며 행동하며 살아갈 학생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하자 교육계에서는 살벌한 경쟁 구도의 현장을 돌아보며 대안을 마련해 보려하지만 근원적인 대안 마련은 힘들어 보인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라는 오명답게 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육 공동체 회원으로 교육 담론을 말하고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애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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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품고 새로운 희망을 다짐하며 행동하며 살아갈 학생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하자 교육계에서는 살벌한 경쟁 구도의 현장을 돌아보며 대안을 마련해 보려하지만 근원적인 대안 마련은 힘들어 보인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라는 오명답게 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육 공동체 회원으로 교육 담론을 말하고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애썼던 신참 교사가 목숨을 끊었고, 가난의 굴레를 끊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던 사내의 자살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저자는 무엇이 이들을 극단적인 선택인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인지 의구심을 품고 먼저 세상을 뜬 이들의 죽음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희망 없는 삶이 초래한 죽음을 직시하며 대학에서 학생들과 강론하며 토론한 내용을 글로 묶었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는 그들이 못다 한 희망과 용기, 공감을 담아 낸 진혼곡처럼 여겨진다.

 

 

  개미와 베짱이를 소재로 한 우화는 일은 하지 않고 노래만 부르는 베짱이에게 부지런한 개미를 본받아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전한다. 결말 처리를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있지만 오늘보다 나아질 미래를 위해 현재 즐기며 살아갈 생각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며 지내야 함을 넌지시 알려 준다. 현재 소비적인 삶은 유예한 채 개미처럼 일하던 이가 숨 가쁘게 살아가는 일상이 비참한 결과로 직결될 때 회의를 품고 좌절할 때가 있다. 젊음을 바쳐 향유하며 살고 싶은 마음까지 결박하고 살았던 지나온 삶이 무위의 현실로 비춰질 때 인생을 헛살았다는 판단에 분노하는 세훈 아버지를 보면서 공감할 수 있었다. 뿌리 깊은 학연의 심연에서도 자식에 대한 기대를 희망으로 전환하며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연구하고 학문적 성과를 거두며 하면 된다는 신념이 절대적인 규범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수록 냉소적인 시선은 더해진다. 현재만을 중심으로 자기만을 위하는 베짱이의 삶에 개미의 성실함이 가미된 개짱이의 삶은 어찌 보면 그럭저럭 무탈하게 즐기며 사는 우리들이 꿈꾸는 삶이라는 말이 무겁기만 하다.

 

 

  자신의 상처조차 숨기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비참하다고 하소연하던 일류대 법학과 학생의 넋두리가 떠오른다. 침묵으로 일관할 때 조직에서 살아갈 권리를 얻는다는 말에 최고 두뇌들이 모인 집단의 고립성과 몰인정함에 놀랐던 적이 있다. 동시대인으로서만 존재할 뿐 그 어떤 의미와 가치도 함께 하는 동료가 아니라는 현실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우리가 지금껏 알아왔던 삶은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강타하고 간 흔적이 도처에 남아 삶의 공동화만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기성세대로 미답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수하는 시간이면 시행착오 속에 잉태된 체득적인 삶의 방편을 알려줄 때가 있다. 규격화된 틀을 깨고 낯선 길에서 맞닥뜨린 우연한 만남이 축적한 시간은 주체적인 인간으로 비판적인 성찰을 담보하는 능동적인 행위로 이어진다.

 

 

  스펙과 체험을 쌓느라 고군분투하며 힘겨운 일상을 견뎌내는 청춘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마음에 공명하며 진정성이 깃든 위로와 응원을 보내는 일은 신산한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이다.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공감되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받을 때 삶은 그래도 살아갈 만한 세상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공감은 일상 너머 불가능한 꿈을 꾸며 오늘은 살아가는 희망의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 존재하는 정글의 법칙처럼 우리가 사는 사회는 동료애보다는 타인 위에 군림할 때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오로지 1등을 표방하며 상대를 짓밟고 일어서는 일만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경쟁구도가 지성인들의 집합체라는 대학가까지 뻗어 있다는 점은 이지러진 사회의 단면을 비춰준다. 법의 이름으로 평화를 깨뜨리고 권력을 지켜내는 수단으로 법을 악용하는 기득권들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폭로하는 한진중공업 노동자인 김진숙 위원의 용기 있는 모습에 대중들이 공감하며 동료로 여기는 대목을 말할 때 희망은 우리 곁에 한 발짝 다사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베짱이처럼 인생을 향유하며 살아온 것도 아닌데 열심히 살았다 여기는데도 나아질 게 없는 삶으로 점철될 때 그 원인을 자신의 무능함으로 돌리기에는 억울할 때가 있다. 열심히 살아 온 자신을 냉소하고 우울함에 빠져 고단한 삶에 회의를 품는지 질문하고 답변하며 저자는 우리들이 잘못 산 게 아니라고 폭로하고 있다. 평등한 위치에서 우정을 나누며 외로움과 괴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를 바라며 이들과 연대하는 가운데 우리 사회는 바람직한 모습으로 변모해 갈 것이라 믿는다. 희망을 꿈꾸는 침울한 기사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지만 사회 구조적인 병폐를 파헤치고 기존의 삶의 태도에 변화를 시도하라고 권한다.



n*****9 2012.01.24. 신고 공감 7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내용보기
잡지 "페이퍼"에 실린 저자의 트윗글들 때문에 저자의 이름을 처음 접했었다. 알고보니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쓰셨고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분이시다. 사회적 갈등을 세대의 틀로만 보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어쩔 수 없이 '얼마나 젊은 교수님'이기에 이렇게 자유롭고 진보적인 강의를 하셨는지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1971년 생이시란다.   이 책 리뷰를 쓰고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힘이 되는 생각들" 내용보기

잡지 "페이퍼"에 실린 저자의 트윗글들 때문에 저자의 이름을 처음 접했었다. 알고보니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쓰셨고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분이시다. 사회적 갈등을 세대의 틀로만 보지 말라고 말씀하시지만 어쩔 수 없이 '얼마나 젊은 교수님'이기에 이렇게 자유롭고 진보적인 강의를 하셨는지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1971년 생이시란다.

 

이 책 리뷰를 쓰고 싶다고 신청하면서 기대했던 바는 예전에 고미숙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처럼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서적이 주는 달달한 위로가 아니라 좀 더 참신하고 정직한 시각으로 자신과 세계를 보는 눈을 이 책이 열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 책은 88만원세대 청춘들에게 여전히 어떤 위로를 하고 있다는 면에서 위의 기대와는 어긋나나 싶기도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보니 역시 그런 '달달한 위로'와는 차원이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받는 위로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들이 네가 가진 상처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개인적인 상처를 치유하도록 노력하자고 이야기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상처를 사회적인 것으로 보고 그 사회 속 인간이 삶에서 만나는 파국까지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잘못되고 어그러진 부분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방향을 바로 잡자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인 위로가 집단적인 참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전히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자기계발서나 '위로'서들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이게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똑같이 가진 문제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메시지를 보낸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이것은 네 문제이니 네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이다. 그래서 위로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의 절망과 불안을 집단적인 참여가 아니라 개인적인 위로를 소비하는 형태로 해결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미래가 너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불안뿐이다. 가난과 탈락의 불안이 영혼을 지배한다. 필사적으로 노력하더라도 허무하기 짝이 없는 스펙이나 쌓으면서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누군가 격려하고 위로해주면서 잘 가고 있다고 말해줘야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그 길이 아니다"가 아니라 "조급해하지 말라"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너뿐만 아니라 나도 그랬다"는 말이 이 불안을 잠시나마 안정시킬 수 있는 진정제다."(244쪽)

 

저자는 특정한 개념들을 재정의하면서 그 단어들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바꾸고자 시도한다. 금방 해결되지 않으면 화내고 실망하는 '기대'가 아니라 좀 더 멀리 내다보고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희망'을 갖자.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힘'이 아니라 나의 나약함을 부끄러워하며 숨는 것이 아니라 악의에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실어줄 수 있는 '용기'를 갖자. 다양한 행위들을 수박 겉핥기처럼 소비해버리는 '체험'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깊이 있게 '경험'하자.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꼭지가 도는 '격노'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합당한 일에 '분노'하자. 얕은 감정이입으로 '공감'하는 정도가 아니라 타인과 내가 같은 운명에 있다는 것을 알고 깊이 있게 '동감'하자. 

 

안 그래도 요즘 책들을 읽어치우고, 꾸준히 무엇인가를 열심히 '감상'하고, 어딘가를 과시하듯 다니는 일에 대해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경험'이 아닌 '체험'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뜨끔했다. 끊임없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그것들이 깊이 있게 내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표현대로 소비하듯이 흘러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모든 일이 내 계획과 통제 안에 들어와 있어야 덜 불안해지는 성향의 소유자라, 우연이나 새로운 경험을 싫어한다. 무엇을 하더라도 시간과 동선을 철저하게 계산하고 그것이 틀어지면 초조해하는 성격은 내가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의 반경을 협소하게 만든다.

 

저자 자신도 교육을 하고 있고, 교육공동체 '벗'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해서인지 책에는 요즘 우리 교육에 대한 비판이 자주 등장한다. 위의 내용은 교사라서 그런지 너무 공감이 되었던 부분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죽음으로까지 내몰곤 하는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서열화 추구는 교육 주체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비인간적인 방향으로 질주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 모두는 '나라도 살아 남아야지'라고 생각하는 비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불어 '꼰대'가 아니라 진정한 '어른' 같은 선생님이 되는 일에 내 생애 동안 접근할 수는 있을까 궁금해졌다. 지금으로선 결코 낯설지 않은 아래와 같은 상황을 곱씹어보면서 아직도 아이 같은 나는 다시금 어떤 선생님이 되어야 할지 생각한다.  

 

 

저자가 삶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제시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그 내용은 쉽게 읽어치울 수 없는 무거운 것들이다. 군데군데 굉장히 공감되는 문장들도 많았다. 이 책 내용이 더욱 진솔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책이 대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들, 글들, 생각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 책을 읽는 대학생들이 고립되고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나 희망을 가지고 동료를 찾고 참여,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는 이들에게 위로와 대안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강의를 할 때마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겠다고 못 박곤 한다고 말했지만, 두더지가 되자는 그의 주장 자체가 굉장히 참신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다가왔다. 트위터, 팟캐스트를 통해 의외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두더지들처럼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던 사건 중 하나가 나꼼수 무료공연 때였다고 생각한다. 파국을 맞은 같은 운명공동체로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동료로서 힘을 합쳐,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급격히 전환된 국면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시도를 나는 거기서 보았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2.01.24.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단숨에 읽어 내려가야만 했던 아픔들 그리고 다시.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단숨에 읽어 내려가야만 했던 아픔들 그리고 다시.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내용보기

이 책을 열었던 그날의 나는 몸과 마음이 매우 지쳐 홀로 굴로 기어들어가고만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결코 끝이라고는 없을 것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었고, ‘직장맘’으로 살아가는 의미에 대한 회의와 ‘수퍼맘’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몸서리처지는 부담감에 그저 큰 소리로 ‘그만!!!!’을 외치고 싶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날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아끼고 아껴오던 월차를 내고 아이는 여느때처럼 어린이집에 보낸채 책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책 안의 삶은 더욱 괴롭게 울부짖고 있었다. 어째서 그들의 삶은 그랬어야 했는지 누군가에게라도 소리치고 싶었고 분노는 더욱 치밀어 올랐다. 나는 다시 도망가고 싶었으나 어쩐 이유에서인지 책을 놓지 못한 채 그저 함께 엉엉 울고 있었다. 아마도 어서 빨리 결론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잘 못 산게 아니라면 대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희망이란 있는 것인지 빨리 저자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한번 더 큰 소리로 엉엉 울어야만 했다. 내가 원하는 종류의 멋진 ‘해답’ 따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내 알아버렸기 때문에. 이 책이 아니라 그 어디에도 내가 원하는 ‘해답’ 따위는 있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저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인문학 교수이자, 이 시대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특히 젊은이의 삶에 대해 애정을 갖고 여러 사례를 접하며 나름의 답 혹은 대안을 찾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었다. 우선은 모든 것을 제쳐두고, ‘삶’을 그렇게 따뜻하고 아련하게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으며 책을 시작했던 듯하다. 그리고 내가 그의 필체에서 느꼈던 그 ‘공감’이 그가 말하는 ‘대안’이기도 했다.

 

대학 중의 대학인 카이스트에서 끊이지 않았던 학생들의 자살,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자살에서 또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자살과 수많은 반인륜적인 살인사건 혹은 폭력사건 등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가?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아래와 같은 말을 통해 나의 둔한 머리를 세게 찼다.

 

한 사회의 경계는 극단적인 사건에서 나타난다. 그동안 한 사회나 한 시대가 감추려 하고, 구성원들이 잘 감지하지 못했던 사회의 심연은 ‘극단적인 사건’, ‘지극히 개별적인 사건’으로써 치부를 드러낸다. 한 철학자의 말을 빌린다면 이런 사소하고 극단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은 사회 전체를 드러내주는 조명탄과 같다. 한 사회의 인문학적 성숙도는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것을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로 환원해버리는지, 아니면 사회를 성찰하는 실마리로 이어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P.11


이 자세로 저자는 우리네 삶의 모습과 우리가 서로의 그러한 삶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사고하는지를 다양한 예시를 들어 속속들히 정리했다. 아니, 까발렸다. 결국은 개개인의 의지나 운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많은 한계와 문제들이 우리를 궁지로 몰아 넣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논지이다.


어떤 학점 이상을 받지 못하면 징벌적 장학금을 물리는 사회(학교), 수많은 아이들이 왕따가 되어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회. 우리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해 주기 위해 있어야 할 법이 어느새 우리가 넘어야 할 장벽이 되어버린 사회, 돈도 지식도 능력도 없다면 깡으로 긴 세월을 버텨내야만 겨우 그 놈의 법적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사회,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밥상앞에 앉아 진보와 보수에 대한 감정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 개미도 배짱이도 배짱이처럼 보이는 개미(개짱이)도 모두 밥벌이가 막막해져버린 사회, 퇴근 후 간단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만을 꿈꾸었으나 먹고살기 위해 칼퇴는 꿈꿀 수도 없는 회사원이 대부분인 사회. 통치자가 법의 원칙에 따라 자신의 권력을 제한해야하는 ‘법치’를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로 혼동하며 방망이를 휘두르는 사회. 이런 사회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여기다.


그래서 이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철저히 개인적인 동시에 철저히 공동체적이고 공동체적 운명 하에 굴러가고 있다. 결코 개인의 잘못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과 수많은 언론은 이를 모르거나 침묵한다. 아직 자신의 '현실'에 들이닥치지는 않은 (그러나 조만간 들이닥칠수 있는) 수많은 비극들을 우리는 쉽게 여기거나 애써 모른척 한다. 그리고 가까이 그 어느 누구의 '공감'도 받을 수 없었던 우리 중 하나는 또 한 번 가장 처절한 의사표현으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지하며 절망을 표현한다.


저자는 우리가 할 수 있고 꼭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공동체적 격려와 공감이라고 말한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동료와 “너도 나도 깊이 상처받았다”라는 공감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함께 갈 수 있는 공동체-아지트와 공감이 있을 때, 삶에 대한 허무함을 이겨내고 견뎌 낼 수 있다.


또 우리 시대에는 ‘멘토’가 아닌 ‘증언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많은 ‘멘토’들은 이 사회가 어떠한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처럼 하면 그들처럼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 쏟아지는 감정은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멘토’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은 김진숙 의원과 같은 ‘증언자’라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준 것은 ‘기대’가 아니고 우리 사회에 공정한 게임이나 성장하는 삶 따위는 없다는 폭로이다. 우리가 현실을 외면하지 않도록 온 몸으로 폭로해 주는 증언자가 필요하다.


저자의 논지를 잘 따라가면서도 나는 내가 쥐고 있는 오른편 남은 페이지들이 줄어듦에 따라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사례 분석만 하고 마음만 후벼파다가 책이 끝나려나 하며 왠지 김이 빠지고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희망’과 ‘대안’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겠는지를 ‘시스템’적으로 제대로 설명해 주기를 바랐다. 저자는 후반부와 맺는 말을 통해 한 번 더 여지없이 나의 ‘기대’를 철저히 배반했다.

 

강의가 끝나고 (….) 한 분이 일어나서 나에게 ‘대안’에 대해 질문을 했다. (…)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대안도 필요하지만 그래도 가장 본질적인 것은 ‘시스템’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다. 그런 것이라야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 천천히 청중들을 바라보다 나는 다소 뜬금없는 말로 대답을 시작했다. “단호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우리의 대안은 두더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엥? 두더지라니?’ 하는 표정으로 청중들이 나를 보았다. P.263

 

 땅 위에 살지 못하지만 땅 속에서 굴을 내며 막히면 또 다른 길을, 또 다시 다른 길을 끊임없이 파는 두더지는 가끔씩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땅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가 황급히 다시 들어가곤 하는 조심스러운 동물이다. 그런 두더지들이 어느 순간 주변에 자신과 같이 얼굴을 빼꼼 내민 두더지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모두 용기를 내 바깥으로 나올 수 있고, 순식간에 사막은 두더지 잔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두더지가 지하에서 파고 노는 굴처럼 우리들 둘 셋이 모여 삶에 대해 논하고 고민하는 아지트만 있다면,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아랍의 민주화 운동과도 같은 폭발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두더지 아지트에서 ‘신나게’ 우리의 절망적 삶에 대해 이야기판을 벌여보자고 한다.

 

찌릿했다. 나는 이 책을 열면서 어떤 말을 기대했던 것일까? 무엇을 얻고 싶었을까? 아마도 거시적인 대안과 전략적이며 공격적인 동시에 구체적이기까지한 대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안을 제시하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까지 실천하며 살 수 있겠어” 하며 면죄부를 가지고 당당하게 달아나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두더지가 되라니. 그저 둘 셋 모여 삶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증언자’ 혹은 소수의 ‘영웅’들에게 의리와 격려를 보내며 삶을 살아내라니. 이건 뭐 도망갈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왜 그런지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굴 속에서 신나게 궁시렁거리다가 때가 맞으면 다 같이 땅 밖에 나와 놀자고 하는데 어찌나 후련하던지 모른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시종일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책은 아니었다. 실제로 책의 80% 가량은 우리의 삶을 보느라 너무 치열하고 처절했다. 하지만 그 괴로움 속에서 어떻게 이 사회를 바라보아야 하고 어떻게 동시대인으로 내 삶을 유지하면서도 비겁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지 조금은 가닥을 잡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동료의식 갖기, 격려하고 공감하기, 멋스럽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두더지 되기. 이 정도는 실천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가까운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하며 나아가는 삶. 함께 견디어 내는 삶. ‘우리가 잘못 살고 있는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삶.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b*********g 2012.01.27.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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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대한 냉소보다 동료애가 필요한 시간
"현실에 대한 냉소보다 동료애가 필요한 시간" 내용보기
이 책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었어]라는 제목은 끊임없이 너의 노력이 부족해서 더 잘 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잘못 된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우리를 질책하는 것 같은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너는 잘 살고 있어 힘든 것은 너의 탓이 아니다'라는 위로를 주는 듯 했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냉소보다 동료애가 필요한 시간" 내용보기

 이 책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우리가 잘못 산게 아니었어]라는 제목은 끊임없이 너의 노력이 부족해서 더 잘 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잘못 된 판단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우리를 질책하는 것 같은 지금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너는 잘 살고 있어 힘든 것은 너의 탓이 아니다'라는 위로를 주는 듯 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아비판과 자기 부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유일한 내 편을 만난 것 같은 제목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들고 보니 저자가 조금 낯익다. 작년에 읽었던 [@좌절+열공]에서 열공 부분의 강연을 당담했던 엄기호씨가 쓴 책이었다. 강신주씨가 이 시대의 젊은 철학자라면 엄기호씨는 이 시대의 고민하고 행동하는 인문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이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엄기호씨도 이 세상에서 말하는 기준에 빗대어 보면 패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SKY출신이지만 요즘 세상에 국내파 박사에 마흔이 넘은 나이에 조교수도 아닌 시간 강사로 몇몇 대학을 전전하며 강의를 하는 보따리 장사이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 그는 좌절이 아닌 현실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택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그것을 제시한다.

 

 '하면 된다' 군대도 아닌데 우리는 하면 안 되는 것이 없고 안 되면 되게 하는 것이 노력이라는 믿음을 주입당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다. 사회에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니까 노력하면 당연히 할 수 있다라는 주위의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세상에서는 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우리가 극복하고 싶어도 세상이 정해놓고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유리 천장이 있다. 우리는 약자고 세상은 약자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그럼 약자를 불쌍하게 여겨주냐고? 아니, 약자에게 잠깐의 동정심은 베풀지 몰라도 그들은 내가 아니니 공감할 수 없는 존재이다. 내가 은혜를 베풀 수는 있을 지 몰라도 그건 그들의 삶이다. 냉정하고 잔인한 현실같은가?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사는 삶이다. 엄기호씨는 이런 냉정한 현실을 에둘러 포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조금 힘들고 지치는 일이 된다.

 

 우리는 알고 싶지 않은 현실의 진실 속에서 현실에 눈 감는다. 미몽 속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다. 그러기에 현실을 눈치채기 시작하면서 외면하고 현재가 아닌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가진다. 미래는 지금보다 나을 거라고, 지금은 힘들지만 나의 미래는 지금보다 괜찮아져 있을 거라고. 하지만 판타지는 환상일 뿐이다. 미래가 나을 거라고? 누가 그것을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많은 성인들이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고 학생들이 유아기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과거가 현재보다 좋았기 때문이 아닌가. 누가 자신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냉정하기만한 시장 경제 속에서.

 

 암울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헛된 희망을 가지며 현재의 자신을 자위해서는 안 된다. 그럼 다 어쩔 수 없으니 그냥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냉소만 날리며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냉소는 자신을 버리는 현실 도피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답답한 현실에 숨이 막혀오기도 한다.

 

 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깨닫고 싶진 않았다. 그것을 그는 눈앞에 들이밀어 버린다. 눈 앞에 펼쳐진 진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럼 희망이 없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택할 것은 무엇인가. 그는 자신에게 대안을 찾지 말라고 말한다. 대안을 찾는 것은 본인들의 일이지 남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고. 자신은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지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분명 대안을 제시했다. 어떤 대안이냐고? 힘들어도 동료가 있으면 덜 힘들다고. 동료가 있으면 조금 더 버틸 수 있다고. 타인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고 차이를 두기 전에 상대의 현재를 인정하고 그의 위치가 아닌 그 자체를 봐 주라고. 그것만으로도 동료가 되어 줄 수 있다고 말이다. 인간은 철저하게 사회적 동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라. 인간은 혼자이고 싶지만 동시에 사회 구성원이고 싶어한다는 점을. 은둔형 외톨이조차도 인터넷으로 사회 속에 일부 발을 담그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이다.

 

 냉정하고 차가운 현실 속에서 나는 과연 타인에게 동료였는가? 타인에 대한 차가운 심판자가 아니었는가. 앞으로 끊임없이 생각해 봐야할 화두를 만난 책이었다.

 



YES마니아 : 골드 w******6 2012.01.22. 신고 공감 2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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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말~ 달리자. 말 하자 말!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말~ 달리자. 말 하자 말!" 내용보기
그래서 뭘 어쩌라고.   학생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내가 하는 수업을 들으며 가장 답답한 부분은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하는 마음이 들 때란다. 현실에 대한 진단도 맞고 자신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도 맞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하자는 것인지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는 수업을 듣고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한다. '공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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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뭘 어쩌라고.

 

학생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내가 하는 수업을 들으며 가장 답답한 부분은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하는 마음이 들 때란다. 현실에 대한 진단도 맞고 자신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도 맞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뭘 하자는 것인지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는 수업을 듣고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고 한다. '공감'이다. 수업 시간에 사례로 드는 이야기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고, 그 이야기에 끌어오는 개념들이 바로 자신들의 삶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23p.)

 

중간까지 읽으며 나도 똑같이 말했다.

 

"아 그래 무슨 말인지 다 알아요. 알아듣는다구요. 근데요.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데요. 누군 뭐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삽니까? 지금 작가님이 자상하게 조근조근 밝혀낸대로 다 그럴만한 이유가 다 있었든거 아니오. 아 그러니 설명은 그만 하고, 우리가 아니 내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 지긋지긋한 시궁창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지 그걸 말해달란 말이오. 예?"

 

질문엔 답이 없고 책은 아직 반이나 남았다. 하아..

 

한국사회에 대해서든 교육에 대해서든 강의나 토론을 마치고 나면 "희망이 뭔가요?"와 마찬가지로 꼭 듣는 질문이 있다. 대안에 대한 질문이다. 대안은 희망의 쌍둥이다. "선생님꼐서 하시는 이야기는 다 알겠는데요. 근데 대안이 뭡니까?" 단 한 번도 이 질문을 받아보지 않은 강의나 토론은 없었다. 하도 이런 질문을 듣는지라 강의 시작 초에 이 강의는 대안을 제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같이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니 대안에 대해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미리 부탁을 해도 소용이 없다. 끝끝내 내가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역시 이 강의에서도 결론은 없군요"라면 고개를 젓고 돌아선다. (239p.)

 

그래 내 말이 바로 그 말 아닌게벼. 역시 이 책도 대안은 없는거여. 기냥 유식헌 사람이 배운값을 허니라고 젊은 혈기에 입바른 소리나 하고 마는갑네~ 쯧. 이러고 돌아서는데,

 

"두더지!"

 

두더지 두더지 두더지!

두더지가 되잔다. 두더지가 대안이란다. 두더지가 되면 희망이 있단다.

돌아섰던 발걸음 다시 돌려세운다.

듣는다.

 

음~ 두더지이~ 그거 참, 말 되는구먼 그랴~ 껄껄.

아 젊은이가 참 잘났네 그랴~

아 젊은이, 내가 오늘 기분이 참 좋구먼!

젊은이 같은 선상이 있는 핵교라믄 내 을매든지 내 자식덜 보내주겠구만 그랴~

껄껄.

 

힘 내소, 젊은냥반!

내 오늘 젊은 냥반 만나서 기분이 참 좋구먼 좋아

참 좋아.

 

고맙소, 젊은냥반!

내 빈말 아니고 참말이여.

참말로 고맙소.

 

지발 부디 으짜는둥 세운 뜻을 잘 지켜주오.

더 많은 젊은이 더 많은 우리 자식들에게 전해주오.

내가 정말 꼭 꼭 부탁허겄소.

 

아 그라고 나도 내 힘껏 응원헐틴께~

나도 두더지맹키로 힘껏 헤집고 댕겨볼랑게~

으허허

 

 

 



n*******0 2012.01.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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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your 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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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가며 뒤통수를 후려 쳐줄 ‘선배’와 ‘스승’이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적어도 대학시절때까지는 그런 ‘선배’와 ‘스승’이 있었다. 책에서도 있었고 과에서도 동아리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있었다. 그런데 삼십 줄을 넘어선 지금 그런 ‘선배’와 ‘스승’이 없다. 마냥 내가 읽고 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쓰고, 또 이것을 무한반복하며 꾸역꾸역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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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가며 뒤통수를 후려 쳐줄 ‘선배’와 ‘스승’이 없다는 것이 서글프다. 적어도 대학시절때까지는 그런 ‘선배’와 ‘스승’이 있었다. 책에서도 있었고 과에서도 동아리에서도 심지어 교회에서도 있었다.

그런데 삼십 줄을 넘어선 지금 그런 ‘선배’와 ‘스승’이 없다. 마냥 내가 읽고 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쓰고, 또 이것을 무한반복하며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문익환 목사, 리영희 교수, 노무현 대통령

이 세 분은 내가 인생의 멘토요, 스승으로 삼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다.

문익환 목사님이야 내가 철들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리영희 교수님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두 분의 부재에서 오는 슬픔보다 그 부재 이후 내가 겪을 혼란함과 외로움에서 오는 슬픔이 더욱 컸다.

 

더 이상 ‘내 인생에서 더 이상 선생은 없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밤을 새우던 그 새벽녘이 얼마나 서글프고 절망스러웠는지 모른다.

 

아니면 내가 이제는 ‘애새끼’에서 ‘꼰대’로의 진입이 기정사실화 되었다는 반증인 줄도 모르겠다.

 

“꼰대는 애새끼들이 계속 애새끼로 남아 있어야 꼰대로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애새끼들도 마찬가지다. 꼰대가 계속 꼰대로 남아 있어야 자신이 성장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가르치는 데 관심이 없고 배우는 데 냉소적인 사회에 경험 따위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경험은 죽었다.” (p.106)

 

더 이상 배우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아니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안 되는 뜬 구름 잡는 이야기이고 오늘 하루 밥벌이에 기를 쓰고 어쩌든지 밥벌이에 꼭 붙어있으려는 현실적 구차함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더 이상 보호해야 할 사회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던, 적어도 나를 보호해주리라고 여겼던 사회는 오히려 나를 배제하고 추방하겠다고 위협한다. 법은 사회의 규범이나 기준이 아니라 가진 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원이 되어버렸다.” (p.19)

 

책을 읽고 투표를 하고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결국은 단 하나도 바꿀 수 없는 견고한 여리고성 같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더욱 힘들다.

그래서 인생의 ‘선배’와 ‘스승’조차 없고, 누구하나 손 내밀어주는 사람 없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회나 국가조차도 내 편이 아니라면 나는 도대체 누구와 편을 먹어야 하나.

 

이 책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는 제목만으로 코끝이 찌릿하다. 대학시절 내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해 준 그 형의 말처럼. 혼돈의 20대를 열정으로 채워준 문 목사님, 리 교수님, 노 대통령의 말과 글처럼 가슴에 와 닿는다. 정말이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다’라는 하나의 문장이 그대로 가슴에 새겨진다.

“어떻게 해라”, “이렇게 해라”, “너의 무엇무엇이 잘못되었으니 고쳐라”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니가 잘못 산 게 아니야’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무시무시한 죄책감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윌 헌팅(맷 데이먼)에게 상담가이자 스승인 숀 맥과이어(로빈 윌리엄스)가 얘기한다.

 

It's not your fault

It's not your fault

 

열 번을 반복하며 제자의 곪아버린 상처를 만진다. 그리고 그 상처를 함께 치유한다.

 

맞다. 우리가 잘못 한 게 아니다. 잘못 산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공감은 삶을 견뎌나가는 가장 큰 힘이다. 사회가 개인의 삶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더 이상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허무함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너도 나도 같이 상처받았다’라는 공감이다.” (p.125)

 

더 이상 ‘선배’와 ‘스승’이 없을 것이라는 비관을 거둬버려야겠다. 내가 누군가의 ‘선배·스승’은 아니라도 ‘친구’는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말미에 소개하는 ‘두더지가 되자’라는 격려와 독려에 힘을 보태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료와 아지트다. 언제든 내 삶을 응원해주는 동료와 함께 모여 신나게 욕이건 공부건 세상 이야기건 할 수 있는 아지트만 있다면 우리는 이게 사는 건가 하는 질문을 품게 만드는 시대를 견디며 언젠가 도래할 ‘사막이 두더지 세상이 될 날’을 기다릴 수 있다.” (p.274)

 

최소한 내게는 아지트에 모여 신나게 욕하고 떠들며 웃어젖힐 수 있는 친구가 두 명이나 있다. 이미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모르고 있었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철옹성 같았던 아랍문화권의 나라들의 혁명과 세계의 대장노릇을 하던 월스트리트에 대한 시위들도 결국 ‘두서너 마리의 두더지’에서 시작되었다고 책은 소개한다.

 

맞다. 그놈들로 충분하다. 이미.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절실한 ‘선배’와 ‘스승’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기도만 하고 있지 않고 준비하고 연습하고 훈련하며 때를 기다린다.

 

언젠가 그 혹은 그녀에게 해 줄

It's not your fault가

내 인생을 고스란히 담아낸 한 마디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아지트를 공고히 하고 동료를 늘려야겠다.



l****h 2012.01.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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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응원이 다시 희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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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고백해야겠다. 적당한 삶이란, 저자의 말마따나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그렇게 살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리고 파스칼의 말처럼 ‘이해하기도 전에 동의하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음에도, 짐짓 이해하는 척, 건방지고 무책임하게 동의해버렸다.   이 세상을, 우리네 삶을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지 말라는 말들에 어느 새 주저앉아버렸고, 문득
"삶의 응원이 다시 희망이 된다" 내용보기

부끄럽지만, 고백해야겠다. 적당한 삶이란, 저자의 말마따나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그렇게 살기 위해 버둥거렸다. 그리고 파스칼의 말처럼 ‘이해하기도 전에 동의하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은 없’음에도, 짐짓 이해하는 척, 건방지고 무책임하게 동의해버렸다.

 

이 세상을, 우리네 삶을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지 말라는 말들에 어느 새 주저앉아버렸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구석에서 나 몰라라 오타쿠 행세나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2015년 끄트머리에서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말들을 꼽아보라면 불행히도 그것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장’을 선택하기 두려울 정도로 많은 참혹함이 이 세상을 뒤덮고 있다. 난 문득 이 말을 떠올린다. “일하기 싫으면 그만 둬,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

 

이 말은 이제 우리가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일하는 것이 그토록 영광일까?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내가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이는 나에게 무한한 영광을 베푼 것일까? 이게 이치에 맞는 모습일까 

 

뜬금없이, 왜 미생스러운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어줍지 않게 마흔이란 나이에 들어 불어 닥친 “난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진정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따위의 고민은 물론 아니다. 그런 고민은 지금껏 매일매일 하면서 살아왔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스스로 별 것 아닌 존재들로 만들어가고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을 스스로 과소평가하고, 급기야 부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저자는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 그리고 삶의 공동화를 이해하기 위해 어떠한 ‘언어’들의 미미한 차이점을 찾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그것은 체험과 경험, 기대와 희망, 힘과 용기, 공감과 동감, 장소와 공간의 차이였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들은 그러나,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에 대한 커다란 간극을 보여준다.

 

그냥 이대로, 어쩐지 우리가 이러한 대접을 받고,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온전히 나에게 있다고 자책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그것이 아니라 정작 원인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또 눈물 나는 노력을 통해 그것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인지, 말 그대로 내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강의하고 있는 여러 대학의 학생들과 나눈 대화를 소개한다. 입학과 동시에 취업 등 성공의 문이 열려 있는 이들이 아닌, 언제 어디에서 삶의 파국을 만날지 알 수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의 아이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상실과 불능을 확인하고, 회복과 가능성을 찾아 나선다. 물론 해답은 책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파국과 단절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가능성의 밑절미가 될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용기는 어떻게 누구로부터 얻을 수 있을까.

 

우린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다. 내 삶에 대한 누군가로부터의 응원이다. 그 응원이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되고, 나를 억누르는 힘들에 맞설 수 있는 또 다른 힘이 되어 준다. 내가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누군가의 응원.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믿음. 그것이 힘과 용기를 만들어낸다.

 

책은 온통 회색빛이다. 일그러진 우리 사회, 우리네 삶은 도무지 파국 외에는 길이 없어 보인다. 경쟁과 경쟁, 그리고 또 다른 경쟁과 경쟁으로 점철된 시스템은 낙오와 배제를 합리화시키고, 불의와 불평등을 합법화 시킨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이 높은 곳으로 ‘떠나간 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선 소수 취급을 받는다. 그들은 오직 선거가 치러질 때만 ‘구성원’이나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 정도로 망가진 사회에선 그 어떤 현인이 출현한다 해도 회복이 어렵다. 한 명의 영웅이 세상을 구한다는 판타지는 그저 우리 삶을 위안하는 슬픈 동화일 뿐이다. 오히려 한 사람이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사회를 이상적인 세상으로 묘사하는 변태들을 양산할 뿐이다.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오직 응원과 연대뿐이다. 뒤틀린 삶에 맞설 수 있는 용기는 절대 혼자서 낼 수 없다. 용기는 동료로부터 응원을 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저자가 인용하는 만화 <원피스>에서 주인공 루피는 말한다. “그래, 난 검술도 할 줄 모르고, 항해술도 없고, 요리도 못하고, 거짓말도 못해. 난 도움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어!” 때문에 루피는 말한다. “너는 나의 동료다!”

 

책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개인을 철저한 ‘개인’으로 몰아가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매일매일 증명해야만 생존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어버린 사회를 고발한다. 더 이상 나를 지켜주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내가 사회를 위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작동하고 복무해야만 할 뿐이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무기력하게 책을 맺지 않는다. 삶의 이후엔 당연히 또 다른 삶이 존재함을, 때문에 우리의 삶이 아무리 하루하루 모욕을 감내하는 것이라 해도, 이를 인정하고 옹호하는 것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임을 말한다. 삶은 끈질기기에 위대한 것임을.

 

여기에 필요한 것은 물론 동료이다. 내 삶이 삭제되지 않고, 휴지통에 처박히지 않고 끝내 버틸 수 있는 것은 바로 동료가 있기 때문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때문에 두렵지만 앞으로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망해가는 세상,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 앞에 그저 부정만 하고 있어서는, 아무런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니, 무엇을 바꾸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저 이 끈질긴 삶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누군가, 지켜주고 싶은 누군가를 응원하고, 또 응원을 받으며 신나게 이야기하면 족하다. 망해가는 세상을, ‘망해간다’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위안을 받고 미미하지만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바쁘게 살지 않아도 좋다. 그렇게 마음 졸이며,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상처받지 않아도 좋다. 삶이 어쩔 수 없다면, 그것 역시 좋다. 이 세상에 그 많은 참혹함을 다 껴안을 수는 없다. 먼저 내 자신을, 내 동료를 껴안으면 족하다. 그럼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이 자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아주 먼 훗날이라도 웃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분노와 격노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분노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이다. 분노에는 원인을 찾고 따지며 생각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격노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이다. 원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풀어버리면 그만이다.

 

이 더러운 세상에 살면서, 그야말로 초인과 같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우리는 분노하되 격노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야겠다. 올해는 그렇게 살고 싶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 생각하나?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아니!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버섯스프를 마셨을 때? 아니야! 사람들에게서 잊힐 때다!”

YES마니아 : 로얄 w*******7 2016.01.0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엄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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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우연히 같은 저자의 책을 접한 이후로 생각해볼 꺼리를 던져주기도 하고 글도 잘 읽혀서 틈나는대로 그간 출간한 책을 챙겨보고 있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단속사회에 이어 세번째. (바로 직전에 본 감시사회에도 한꼭지 이분의 강연내용을 담은 글이 올라와있었고.) 몇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 분이라 그런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처럼 학생들의 글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엄기호" 내용보기

작년말 우연히 같은 저자의 책을 접한 이후로 생각해볼 꺼리를 던져주기도 하고 글도 잘 읽혀서 틈나는대로 그간 출간한 책을 챙겨보고 있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단속사회에 이어 세번째. (바로 직전에 본 감시사회에도 한꼭지 이분의 강연내용을 담은 글이 올라와있었고.) 몇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계신 분이라 그런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처럼 학생들의 글을 중간중간 소개하며 그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완성하는 식으로 글이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느낀점도 그때랑 비슷. 문과출신이 아니었다는 어처구니 없는 핑계를 대고 싶을 정도로 20대 초반들의 생각들을 담은 글들은 깊이있게 느껴졌고 저자의 사회에 대한 통찰력은 너무나도 대단해보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달콤한 조언이라기보다는 세상을 제대로 보는 시각을 일깨워주는 이 책은 적절한 사회과학이론과 더불어 쓰디쓴 약처럼 읽혀졌다. 세상이 우리편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 하지만 그것을 즐겨야 한다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찾아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은 이들보다 조금 더 먼저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나에게도 충분히 의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학생들의 이야기, 저자 스스로 혹은 지인들이 겪은 이야기들과 더불어. 한 학생의 에피소드를 통해 기대가 무너진 시대를, 병맛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만화가 재밌어서 찾아봤다. 찾아보고 정말 피식했다는.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103759&no=94&weekday=wed


이번엔 조금 뜨끔했었던 부분. 얼마전 친구한명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었던, 아니 내가 이야기했던게 책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생각났다. 오래된 친구들일 수록 만나서 잡담 몇마디, 영양가없는 이야기 나누다가 술취하면 집에가곤 했던 것이 갑자기 신경쓰였던 건지 엉뚱한 소리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 이런 이야기는 지양하고 다음에 만나면 뭔가 의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같은 책을 한권 읽고난 후에 보던지 각자 보고온 책이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해주는건 어떠냐며 '술맛깨는' 이야기를 하고만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흐지부지 되고 말긴 했지만 집에 오는길에 괜한 소리를 했다 싶으면서도 조금은 정말 그래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최근 강연이 흥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까. 갑자기 나의 혹은 전국민의 학습열기가 충만해져서는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이러한 강연들이 전달해주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채울수 없는 결핍 때문이었을지도. 강의를 많이 들을 수록 욕구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자리에 앉아있다는, 보고있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니면 지적 결핍때문일지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를 통해 얻는 용기다. 동료가 있을때 우리 삶은 삶이 된다 말하고 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가져왔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 생각하나?... 사람들에게서 잊힐 때다!' 꼭 연예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책에 더이상 선생님의 막춤이 환영받지 못하는 학예회를 이야기하며 서바이벌 경연장이 되어버린 현실을 비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도 잊혀지지 않기위한 나름의 대응으로 해석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차별화를 권하는 삶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삶과는 다른 것이겠지.


b******o 2015.02.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