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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나 J. R. R. 톨킨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지는 조지 맥도널드에 대해 한 번쯤을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렇다고 찾아 읽을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남편과 함께 하는 취침 전 독서로 조지 맥도널드의 『북풍의 등에서』를 읽으면서, 이 작가에 매료되어 이 작가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참고로 이 선집은 그를 영적 스승으로 생각하는 C. S. 루이스가 직접 엮었기 때문에 조지 맥도널드의 팬들 뿐 아니라 C. S. 루이스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아티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C. S. 루이스는 소설가나 창작가로서의 조지 맥도널드에 대해서는 매우 혹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목사이자 설교자로서의 조지 맥도널드이고 ('그는 서툰 소설가일지 몰라도 설교자로서 탁월하다'고 C. S. 루이스는 평가한다), 따라서 이 책에는 문학작품보다는 설교문들이 더 많이 실렸다. (C. S. 루이스는 이 책의 출간 의도에 대해 "나는 맥도널드의 문학적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종교적 가르침을 퍼뜨리기 위해 이 선집을 기획했다."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따라서 비기독교인들에겐 이 점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으니 구입 전 참고하기 바란다.)
그러나 나는 설교문의 아름다움이나 영성, 성경 해석의 인사이트와 관련해서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글들 역시 설교보다는 문학 작품 위주로 읽었다. (그러나 무엇을 더 좋아하고 선호할지는 독자에 따라 달리질 것이다.)
참고로 조지 맥도널드는 목사였는데, 그의 아버지도 역시 목사였다. 그러나 대개의 부자 관계가 좋지 않고 (프로이트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특히나 목사 아버지와 아들 사이엔 의례적으로 (심각한) 갈등이 있는 것에 비해, 조지 맥도널드는 '부성이 우주의 핵심이라는 사실을아버지를 통해 처음 배웠다.'고 말할 만큼 아버지와의 사이가 각별했다. 그러니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칼뱅주의자였지만, 종종 자신의 신앙적 토양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1850년 조지 맥도널드는 애런덜의 비국교도 교회으 목사가 되는데, 1852년 그 교회의 집사들 몇몇이 그가 이단적 주장을 했다고 해서 문제가 된다. 조지 맥도널드가 이교도들도 미래에 연단[을 거쳐 구원받게] 된다는 믿음을 피력했는데, 집사들이 보기에 그것은 독일 신학에 물든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지 맥도널드는 교회에서 쫓겨난다. 그후 그는 잡다한 일을 전전하다가 1905년에 죽었다. 조지 맥도널드는 살아 생전 폐병을 앓았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문자적이 아니라 실제로 굶어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랑하고 유쾌한 사람이었고, 평생 타인들에게 환대를 베풀었다.
C. S. 루이스는 조지 맥도널드는 작가나 문필가로서는 1급은 커녕 2급도 되지 못한다고 신랄하게 평가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목사직을 사임한 조지 맥도널드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는데, 정말 좋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고 C. S. 루이스는 단호히 말한다. 그러나 소설 쓰기의 전형에서 벗어난 작품일수록 좋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조지 맥도널드가 판타지 문학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에서도 드러난다. C. S. 루이스 역시 조지 맥도널드가 가장 잘 쓰는 장르는 판타지라는 점을 인정한다. ('내가 볼 때 그는 판타지를 누구보다 잘 쓴다.'고 C. S. 루이스가 직접 말했다.) 특히 신화 만들기 기술이 탁월했다고 평가하면서, C. S. 루이스는 『판타스테스』, 『공주와 고블린』, 『공주와 커디』, 『황금 열쇠』, 『현명한 여인』, 『릴리스』 등에서 그의 최고의 능력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이 작품들을 위대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선집에선 짧은 글들만 실렸기 때문에 이런 최고의 글들을 경험할 수는 없다. 대신 C. S. 루이스가 거론한 책들을 찾아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평소에 판타지 문학을 좋아한다면, C. S. 루이스나 J. R. R. 톨킨, 루이스 캐럴, G. K. 체스터튼에게 큰 영향을 미친 조지 맥도널드의 작품들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판타지 문학의 연원을 거슬러올라가는 경험이 생각보다 훨씬 근사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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