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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방을 무시하다 며칠 전 알록달록한 색상의 시집들 몇 권과 함께 가방 하나가 내게 배달되었다. 이름하여 『서봉氏의 가방』. 내게는 낯선 브랜드인 그 이름이 자아내는 코믹한 느낌—산간벽지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나지막한 산봉우리의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는 그 이름에서 나는 혀 짧은 늙은 장모가 그를 부를 때 겪을 곤경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천서방’이라고 부른다는 것이 자꾸 사위의 이름 석자가 고대로 발음되어 나오곤 해서 장모는 사위에게 민망할 때가 많을 것이다—에도 불구하고 검은색 장정을 두르고 있어서 좀 뜻밖이었다. 가방을 열고 처음 마주친 ‘시인의 말’에서도 어두운 분위기는 이어졌다. 세월이란 것이 겨우 몇 개의 목차로 요약된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아마도 이 책의 대부분은 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탕진의 그 방대한 여백만이 시의 몸이 되었으니 지금 더듬을 수 없는 것만이 다시 희망이 될 것이다. 시를 써오는 동안, 내가 바란 것이 있다면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아름다운 날을 살아보는 것이었다. (5쪽, ‘시인의 말’) 시를 쓰는 것만이 삶을 견디는 유일한 방식이었을 정도로 그에게 있어 지난 세월은 아름답지 않았고(혹은 고통스러웠고), 그나마 그런 세월도 지금 와서 돌아보니 겨우 몇 개의 목차, 즉 세상살이의 흔한 목록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이니, 과연 검은 상복을 입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겠다 싶었다. 그의 나이가 첫 시집을 내는 시인의 나이치고는 제법 많은 마흔(그는 1971년생이고 이 시집은 2011년에 발간되었다)이라는 사실도 그런 내 수긍을 한몫 거들었다. 그렇다면 이 검은 가방에 들어 있는 시편들이란 그의 젊은 날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는 청춘의 조사(弔辭)란 말인가? 젊은 날 그가 겪은 고통에 시 쓰기라는 방식으로 자가처방한 온갖 약들의 목록이란 말인가? 섣부른 예측을 접어두고, 프롤로그로 서두에 적어놓은 그의 친절한 처방전—1. 식후 30분 후에 복용할 것. 2. 한 번에 두 편 이상 복용하지 말 것. 3. 하루 다섯 편 이상 복용하지 말 것.—도 무시하고, 나는 60여 편에 달하는 시들을 허기진 내 입 속으로 한꺼번에 털어놓았다. 두어 시간 만에 끝낸 일독은, 뭔가 끌리면서도 선뜻 다가서기 어렵다는 느낌. 시들이 대체로 익숙한 서정들을 다루고 있고, 난해한 관념들이나 현란한 이미지들이 거의 없는데도 왠지 쉽게 읽혀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시에 대한 소화력이 남다르다고 자부하는 내가 소화불량을 느낄 정도이니, 그가 서두에 붙인 처방전이 공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로써 알 수 있었다. 다음날 꼼꼼하게 다시 읽은 재독을 통해서 비로소 그의 시가 품고 있는 의미와 풍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그 전날 시집 말미에서 읽었던 꼼꼼하면서도 수려한 해설 평문에 빚진 바가 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시간을 두고 다시 읽은 삼독에서는 마침내 그의 시가 담고 있는 깊은 맛까지도 느끼면서 즐길 수 있었다. 시인의 처방전은 무시했으나 내가 오래 전부터 적용해온 내 나름대로의 ‘새로운 시집 읽기 단계별 처방전’—1. 아무리 쉬운 시집도 최소한 두 번은 읽는다. 2. 두 번을 읽었는데도 좀 미진하다면 며칠 휴지기를 가졌다가 다시 읽는다. 3.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책장을 덮고 잊어버려라. 아직은 때가 아니거나 읽을 만한 시집이 아닌 것이다—을 따른 것이었는데, 다행히 2단계에서 끝을 보게 된 것이다. 이어지는 글은, 내가 이 시집을 재독, 삼독하면서 느꼈던 독특한 맛, 즉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낯설고 가벼운 듯하면서도 뭔가 원숙함이 느껴지는 그 맛의 내력과 내용과 형식을, 몇 편의 인상적인 시들을 동원해 내 나름대로 살펴본 기록이다. 2. 가방을 열다 서봉氏의 가방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을 넣어야 한다, 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거리는 더 커다란 가방을 사주거나 사물을 차곡차곡 접어넣는 인내를 가르쳤으나 바람이 불 때마다 기억은 집을 놓치고 어느 날, 가방을 뒤집어보면 낡은 공허가 쏟아져, 서봉氏는 잔돌처럼 쓸쓸해졌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가령 흐르는 물이나 한 떼의 구름 따위, 망상에 가득 찬 머리통을 담을 수 있는, 그러니까 서봉氏와 서봉氏의 바깥으로 규정된 실체를 통째로 넣고 다닐 만한 가방을 사러 다녔지만 노을 밑에 진열된 햇살은 너무 구체적이고 한정된 연민을 담아 팔고 있었다. 넣을 수 없는 것을 휴대하려는 관념과 이미 오래전 분실된 시간 거기, 서봉氏의 쓸쓸한 가죽 가방이 있다. 오래 노출된 서봉氏는 풍화되거나 낡아가기 쉬워서 바람이나 빗속에선 늘 비린 살내가 풍겼다. 무겁고 질긴 관념을 담고 다니느라 서봉氏의 몸은 자주 아프고 반쯤 벌어진 입은 늘 소문을 향해 슬프게 열려 있다. (50~51쪽) 시인 천서봉이 세상에 펴내는 자신의 첫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이 시는, 이를테면 그가 젊은 시절부터 들고 다닌 (시라고 하는) 가방의 내력 같은 것이어서, 이 낡고 오래된 가방, 즉 그의 시편들을 모은 이 시집의 성격을 고스란히 요약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젊은 시절 그는 ‘무겁고 질긴 관념’을 (시라고 하는) 가방에 담고 다녔는데, 위 시를 쓰고 있는 지금(아마도 등단을 전후한 시기인 삼십대 중반쯤일 것으로 여겨진다) 돌이켜보니, 그게 사실은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이었고, 그런데도 무리해서 넣으려 했음은 자신의 강박관념이었음을 이젠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깨달음은 뒤늦은 것이기는 해도, 그가 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할 건널목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증식의 경향이 농후한 관념이란 것은 외연의 확대나 정교한 범주화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광대한 것이다. 또한 관념이란 구체적인 삶이나 사물과의 연계가 느슨하기에 쉽사리 공허함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헛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에서 관념의 전면화란 무모하면서도 위험한 시도인데, 그걸 그는 이제 깨달았다는 말이다. 뒤늦은 이 깨달음 앞에서 그는, 그의 가방은, 그의 시는 ‘잔돌처럼 쓸쓸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가 눈 돌려 바라보는, 세상살이에 노출되어 있는 구체적인 삶의 세목들과 사물들이란 또 얼마나 눈물겹고 사소한 것인가! 이렇게 ‘너무 구체적이고/ 한정된 연민’ 앞에서 그의 마음은 흔들리며 망설이게 되는데, 그럼에도 그가, 그의 가방이, 그의 시가 담아내야 하는 것들은 관념보다는 바로 그러한 구체적인 것들이 우선이 되어야 함은 명약관화하다. 삼십대를 통과하면서 ‘풍화되거나 낡아가기 쉬’운 그 자신의 육체의 취약성에 민감해진 시인은, 비록 ‘늘 비린 살내가 풍’기고 있을지라도 사소하고 비루한 삶과 세상살이의 세목들이 더 소중함을 이젠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이런 깨달음 끝에 자신의 가방을 뒤집어 무겁고 질긴 관념으로 얼룩진 젊은 날의 시들을 다 쏟아내버린 시인은 이후 새로운 시편들로 가방을 다시 채우기 시작한다. 낡고 오래된 ‘서봉氏의 가방’은 그렇게 해서 독특한 맛과 멋을 지닌 매력적인 시집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 변신이 물론 쉬운 건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사랑했던 ‘거짓말하던 서정들’을 버려야 했고(「너무 오래 사랑하다」), ‘발을 헛디딘 몇 개의 별들을/ 스케치와 함께 노트 속에 묻어’주어야 했으며(「독일공작연맹」), 또한 이제 자신에겐 ‘더 이상 피울 꽃이 없’다는 사실도 수락해야만 했다(「채마밭 약사」). ‘낭만’이나 ‘자유’, ‘혁명’이나 ‘변혁’, 그리고 ‘희망’이나 ‘이상(理想)’ 같은 관념어로 바로 치환이 될 수 있는 이러한 ‘서정’과 ‘별’과 ‘꽃’과의 결별이란 바로 자신의 이십대를 뜨겁게 몰아갔던 무모한 청춘의 열정과의 결별인 것이어서, 그로서는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것이었으리라. 「처서(處暑)라는 말의 내부」는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수작이다. 여름의 더위가 꺾이고 이제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되는 절기(節氣)인 처서와 그 무렵에 수확하는 알밤을 깎아내는 행위에 빗대어, 연륜이 담긴 시선으로 자신의 삶을 고요히 수락하는 성숙한 시인의 마음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 솜씨가 가히 일품이다. 처서(處暑)라는 말의 내부 골 진 알밤, 무딘 칼날 세워 보늬 긁는다. 겨의 주름 깊이 길이 나 있다. 더위가 물러가는 길, 길을 따라 또 길이 돌아오는 길. 죽은 할미도 달의 오래된 우물도 모두 내 안구 속으로 돌아와 박힌다. 깊어가는 수심의 습지에서 남보다 더 오래 우는 개구리의 턱이 깊다. 지나간 애인들의 뒤통수가 전봇대마다 건들건들 매달려 있다. 울음소리를 참아온 나무들이 투명한 손바닥을 여름의 뒷등에 비빈다. 앵앵거리는 추억은 다만 비틀어져갈 뿐, 하나도 안 아프다. 그런 모기의 주둥이처럼 저녁이 오고, 한두 겹의 내력을 더 견디며 나는, 고요의 중심으로 천천히 내려가리라. 더위가 물러가는 길, 파르라니 깎은 몇 개의 알밤을 바가지에 담그면 달의 손바닥들이 내 오래된 뇌(腦)를 쓰다듬는다. 서늘한 나의 카르마. (56쪽)
3. 나방을 만나다 처서를 지나고 있는 자신의 삶의 내부를 들여다봄으로써 마침내 도달한 이 고요한 성숙의 이면에는, 나비를 꿈꾸었으나 나비는 되지 못하고 고작 나방이 되어버린 자의 깊은 상심이 감춰져 있다. 그것도 그냥 나방도 아니고 공장에서 찍어낸 값싼 플라스틱 나방이라고 그는 자조(自嘲)하고 있으니, 그의 좌절과 환멸에 나는 몹시 가슴이 아팠다. 그것은 한때 내가 느꼈던 좌절과 환멸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 말이다. 플라스틱 나방 오후와 저녁이 몸 바꾸면 허물 같은 빈자리로 사람들, 이마 위에 기름진 불을 켜고 모여든다. 솥뚜껑 위에선 지글지글 삼겹살이 익어가고 얼굴들을 불판 가까이로 끌어당기며 나는, 오래된 전신주를 이야기한다. 야윈 나무젓가락 같던, 그 위로 어둠이 짙게 우러난 국물 속에 둥둥 떠 있던 알등이 어김없이 밤이면 수없는 잔명을 불러모으던 그 힘에 관하여. 이렇게 선술집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서 무엇이 우리를 파전처럼 한데 부쳐놓았나? 노을빛 아름다운 분노 위의 당신과 내가 넉넉한 현생의 상추 잎 한 장에 덮여 사라져도 되나? 몸 부딪는 주광성의 술잔들, 사이 불씨처럼 오르는 물음은 닿을 수 없는 공중에서 희부윰한 눈꽃이 되고 있었다. 식어가는 둥근 불판에 이마 부딪치며 새벽까지 파닥거리는 슬픈 날개들의 힘을 지켜본 적 있다. 그러니까 가장자리로 몰려가는 눈발은 뜨겁고, 나는 오래전 녹아내린 어떤 전신주에 관해 이야기한 것뿐이다. (47쪽) 『서봉氏의 가방』에서 날아오르고 있는 이 슬픈 나방이란 무엇인가? 시인은 비록 오래된 어떤 전신주의 알등 주위로 모여들어 파닥거렸던 주광성 나방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 단순한 진술 너머에 더 많은 뜻이 숨겨져 있음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터이다. 우선은 그 전신주가 녹아 내렸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전신주가 녹아내린 것은 다만 알등의 뜨거움 때문이었을까? 혹시 그 알등에 모여들어 몸을 던진 무수한 나방들로 인해 화재가 발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이 과거의 좌절과 의혹에 현재의 모습이 겹쳐진다. 눈 내리는 겨울 저녁인 지금, 선술집 둥근 탁자 위 달아오른 삼겹살 불판 주위로 둘러앉은 우리의 모습이란, 사실은 젊은 시절의 열정은 다 빠져나가고 허물만 남은(그래서 ‘플라스틱’ 나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리라) 나방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직도 우리를 이렇게 파전처럼 한데 부쳐서 모아놓고 있는 것인가? 노을빛 아름다운 분노를 넉넉한 현생의 상추 잎 한 장으로 덮어 목구멍 속으로 꿀꺽 삼키게 하는 이 힘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이 시집에 실린 다른 시편들에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꿈과 희망 없이도 계속해나가야 하는 생활이기도 하고(「입면도를 위한 에스키스」, 「불심검문」, 「종합사회복지관」, 「납골당 신축 감리일지」), 더 기대할 것이 없지만 그렇다고 외면하기는 어려운 가족들이기도 하고(「뿌리내리는 아버지」, 「플라시보 당신」, 「폭설」, 「이중섭」, 「그믐」, 「채마밭 약사」), 삶의 갈피마다 어쩔 수 없이 맺게 되는 타인들과의 관계이기도 하다(「봄밤을 위한 에스키스 2」, 「사랑에 관한 짧은 몸살」, 「한아름」, 「행성 관측」연작). 그의 이십대 젊은 시절을 요약했던 것이 ‘관념’이었다고 한다면, 삼십대 이후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이러한 삶의 세목들을 우리는 ‘일상’이라고 요약해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이러한 일상을 물들이고 있는 감정들이란 환멸, 불안, 고독, 좌절, 연민, 의혹, 근심, 체념 따위 어두운 서정들이다. 화려함이 아니라 칙칙함이고 밝음이 아니라 어두움인데, 말하자면 나비가 아니라 나방인 것이다. 위 시에서 시인이 고백하고 있듯이, 일상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해버린 삼십대의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관념을 실어 나르는 나비를 꿈꾸었던 이십대 젊은 시절부터 그는(그리고 우리는) 이미 나방이었던 것이다. 『서봉氏의 가방』에서 꺼낸 시편들은 대부분 그렇게 그가 한 마리 나방으로서 일상의 표면 위를 날아다니면서 본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상의 풍경들은 낯익은 것인데도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 그가 일상의 풍경들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서정들 역시 익숙한 것인데도 단번에 우리 가슴으로 파고들지는 않는다. 쉬운 소통을 가로막는 돌연한 이미지나 예상치 못한 뜻밖의 정서를 그가 의도적으로 시의 곳곳에 개입시켜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그의 등단작인 아래의 시 역시 마찬가지다.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로 인해 마치 시가전이 벌어진 전장(戰場)처럼 부산해진 거리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첫사랑의 개입은 느닷없다. 그런데 그 느닷없는 첫사랑의 개입이 오히려 이 시에 미묘한 긴장을 부여하고 자칫 단순한 소묘로 그칠 수도 있었을 이 시를 결정적으로 구해내고 있다. 시인의 눈(감각)이 보고 있는 것은 소나기 퍼붓는 거리이지만 시인의 머릿속을 지금 지나가고 있는 생각(사유)은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에 그려진 첫사랑의 추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소나기는 문득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운 습격’이 되는 것이다. 그리운 습격 파편처럼 흩어지네, 사람들 한여름 처마 밑에 고드름으로 박히네. 뚝뚝, 머리카락 끝에서 별이 떨어지네. 흰 비둘기 신호탄처럼 날아오르면 지상엔 금세 팬 웅덩이 몇 개 징검다리를 만드네. 철모도 없이, 사내 하나 용감하게 뛰어가네. 대책 없는 시가전 속엔 총알도 원두막도, 그리운 적(敵)도 없네. 마음 골라 디딜 부드러운 폐허뿐이네. 빵 냄새를 길어올리던 저녁이 불빛 아래 무장해제되네. 사람들, 거기 일렬의 문장처럼 서서 처형되네. 교과서 깊이 접어둔 계집애 하나 반듯하게 피었다 지면 사랑아, 모든 첫사랑은 아름다운 패배였을까. 나는 홀로 건너가는 잔병(殘兵)처럼 남아, 빵집 앞 사거리 침묵이 침묵을 호명하는 낮은 소리 듣네. 어둠이 빵을 굽고 그리움 외등처럼 부푸네. 소나기의 습격을, 누구도 피할 수 없네. (35쪽) 4. 시방을 고치다 처음에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낯선 시’로 보이지만, 거듭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날 선 시’가 되어 읽는 이의 가슴을 찌르고야 마는 이러한 시들은 감각과 사유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감각과 사유를 결합해서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돌연한 정서를 자아내는 매력적인 시들을 이 시집에서 다수 선보이고 있는 천서봉 시인의 남다른 솜씨에 대해 이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사유와 감각이 배를 맞댄 저 날 선 이미지들은 시선의 노동과 편력의 발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그가 언급하고 있는 ‘시선의 노동과 편력의 발품’은, 대학에서 문학이 아니라 건축학을 공부해서 현재 건축사로 일하고 있다는, 시인으로서는 좀 남다른 천서봉 시인의 특이한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항상 건축도면과 디자인을 다양한 측면과 각도에서 꼼꼼하게 챙겨보아야 하고 또한 늘 전국의 공사현장을 드나들면서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 그의 직업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서봉氏의 가방』에는 그의 직업적 관심사와 경험이 반영된 시들도 제법 많이 들어 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시 한 편을 읽어보자. 납골당 신축 감리일지 흉흉히 날 저문다. 혼(魂)의 입주일이 가까워오면서 이마엔 손수건 붙인 사람들 출입 잦다. 언덕배기로부터 내닫는 바람은 당신의 할머니, 나의 삼촌이 통성명하는 것이므로, 풍하중에 대한 보강을 요구하다. 함바[飯場], 아주머니의 고단한 손금이 허기를 불러모으고, 작업중 음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다. 보아라, 베어진 둔덕을 쥐고 휘청거리는 억새의 관절을, 관절을 꺾으며 죽은 자의 아파트가 자라고, 골골골 흘러내리는 위태로운 저녁의 벼랑들. 인부들이 모두 돌아간 뒤 드럼통에 남겨진 잔불을 끄다. 시공(時空)의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하다. 비를 가진 구름이 북촌에서 몰려오는데 내 거친 영혼은 재설계가 가능할까. 흉측하게 드러난 계단탑 콘크리트가 산 자의 오만처럼 단단하다고 공문을 띄우다. 어둠이 시끄럽다. 나무들이 자주 공사장까지 내려온다. 미리 집을 보러 오는 혼의 처연함. 입주를 위해 꼬박꼬박 부어온 햇살의 계좌는 숲처럼 두텁게라는 시방을 지우고 내 귀가 종이짝처럼 얇아졌다고 쓰다. 계통수를 묻어둔 자리에 말뚝을 박다. 지하 깊숙이 흐르는 물길에 대하여, 별들과 협의하다. (76~77쪽) 다른 시들과는 달리 비교적 쉽게 이해되는 시인데, 이 시에서도 여느 시인들의 시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예민한 감각과 유연한 사유가 인상적이다. 납골당 주위에 부는 바람으로부터 죽은 할머니와 삼촌의 음성을 듣거나 납골당의 어둠 속에서 미리 집을 보러 온 영혼들로 북적대는 모습을 보는 일이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게 아닐 터이니 말이다. 그건 오래도록 죽음과 영혼에 대해 사유함으로써 저절로 몸에 익히게 된 감각임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그것은 젊은 날의 ‘관념 훈련’의 결실일 것이다. 젊은 날 그의 가방에 집어넣고 다녔던 무겁고 질긴 관념들이, 그로 인해 자주 아팠던 그의 몸이 아주 쓸데없는 헛수고는 아니었던 것이다. ‘내 거친 영혼은 재설계가 가능할까’라는 질문과 마치 그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한다는 듯이 ‘별들과 협의하다’라고 시를 끝맺고 있는 마지막 구절은, 그래서 예사롭지 않는 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곧 이어서,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내 시는 어떠한가, 라는 물음을 피해갈 수 없었다. 나는, 내 시는 너무 오랫동안 ‘관념’으로만 기울어진 것은 아닌가? 그래서 ‘감각’이 갈수록 무뎌지고 그러다 보니 무딘 감각을 벌충하느라 더욱 ‘관념’에 경사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시의 시방(示方)은 그 동안 감각을 너무 도외시해온 것은 아닌가? 자신이 나비가 아니라 나방임을 인정함으로써 일상으로부터 아주 떠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일상의 중력 너머로 날아오를 수 있는 힘을 획득할 수 있었던 천서봉 시인처럼 나도 이제는 한 마리 나방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닐까? 너무 뒤늦은 일이 되기 전에 말이다. 콘크리트같이 두터운 관념의 벽을 지우고 그 자리에 종이짝처럼 얇게 갈은 예리한 감각의 날을 세워서 쓴 매력적인 시편들로 가득한 『서봉氏의 가방』을 열어 보고서, 그리고 그 가방에서 나온 나방 한 마리가 들려준 변신의 내력을 들어 보고서, 나는 관념 편향인 내 시의 시방도 이젠 고쳐야 한다는 것을 아프게 깨달았다. 시인은 이 시집에 실린 자신의 시를 두고 ‘끝끝내 당신으로부터 버려질 것’이라고 겸손한 희망을 피력하고 있지만, 『서봉氏의 가방』은 아주 오랫동안 나와 동행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당신이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또한 시를 즐겨 읽는 독자라면, ‘지금 더듬을 수 없는 것만이 다시 희망이 될’ 때까지 당신도 함께 가자. 저기, 『서봉氏의 가방』에서 나온 나방 한 마리가 우리의 앞길을 먼저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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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어보기 전에 목차를 쭈욱 내려서 읽어본다. 이 시집은 5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4부까지는 시가, 5부는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1부 풀리지 않는 당신은 영원히 따뜻하다 2부 너무 많은 하늘이 스쳐 지나갔다 3부 바람은 순결하지 못했네 4부 당신이 올라갈 때 나는 내려가요 시집 각 부의 제목이 너무나 맘에 든다. 씨줄과 날줄로 엮은 스웨터를 입고 있다. 풀리지 않는 당신은 영원히 따뜻하다. - 오해 셀 수 없는 구름들을 나는 지나왔으니, 서해 어디쯤이거나 차가운 사막의 귀퉁이쯤이 태생이었을 구름의 먼 행보는 모르는 것으로 한다. 석 달 열흘 동안 먹장구름이 눈물로 떠나지 않았다거나 나와 어느 달콤한 오월의 구름 사이에 보름달 같은 아이가 자란다는, 뜬소문들이 연기처럼 자라나 헐한 저녁을 짓곤 했다. - 구름편력 책마다 영혼이 들어 있었다. 몸은 작고 내부는 두터워서 늘 숨어 있기에 좋았으므로, 애인이 책갈피에서 떨어져 꽃을 피우기도 했다. 영혼이라는 말에선 언제나 구름 냄새가 났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지상에 디뎌야 할 발들이 보이지 않았다. 깨어나면 키가 한 뻠씩 자라 있었다. 슬픔 아니면 기쁨이었다. 우리의 아름다운 주인공은 죄가 너무 많아, 다만 모든 게 억울했고 바람이 엮어준 플라타너스 그늘은 꼭 셋이나 일곱 명을 무리 지어주었다. 백마 아니면 흑마였고 시험에 나오거나 혹은 나오지 않는 계절이었다. - 문고판 하이틴 로맨스 그래도 살자, 그래도 살자. 국밥 그릇 속엔 늘 같은 종류의 내재율이 흐르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건 여전히 사람이지만 나는 더이상 사람을 믿지 않는다. - 행성 관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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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검문을 당하다 -체념과 쓸쓸한 어조 속에서 받은 따뜻함
불심검문 [Questioning of a Suspicious Person by a Patrolman, 不審檢問]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정의] 경찰관이 거동이 수상한 자를 발견한 때에 이를 정지시켜 실시하는 질문 그렇다면 ‘수상한 자를 발견한 때에 이를 정지시켜 질문하는’ 서봉씨 또한 경찰관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서봉氏의 가방>을 읽고 느낀 천서봉 시인은 연민의 눈으로 세상을 집요하게 쫓고 질문하는 사람이었다.
시집은 나에게 참으로 난감한 존재였다. 어려서부터 곧잘 시를 끼적였으니(내보이기 부끄러운 잡문이지만) 시를 어려워 한 것은 아니었으나, 시를 읽는 일은 드물었다. 시를 무의식적으로 멀리하게 된 원인을 찾아본다면 청소년 시절 받았던 국어교육 탓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마치 장인의 요리를 먹으며 식재료 하나하나를 골라내고 뒤적거리며 맛의 비법을 찾고자 하듯이, 시를 맘대로 분해하여 시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하나의 정답으로 주입시키고,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기 없는 한 문장으로 일축해 버리는 교육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시를 멀리하게 된 것 같다. 대체 시를 지은 사람도 온전히 정의내리기 힘든 감정을 타인이 어떻게 확신을 가지고 주입시킬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비로소, 제도권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의 의지로 시집을 집어 들어 시를 읽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불심검문]을 읽으며 나는‘아주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밤’을 겪었다. 이른바 시인과 내가 내통하는 밤.
정류장마다 절망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버스에서 내릴 수 없었다. 절망을 만나러 가던 길 아니었으므로. 그런 날, 돌아오는 길은 끝을 확인할 수 없는 전전이었고 막다른 긍긍이었다. -p.26 불심검문 中
마중 나온 절망 앞에 내리기를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그 언젠가 그 곳에 서 있던 어린 내가 보였다. 그 시절 어디에도 내뱉지 못한 말들을 종이에 뱉어내듯 써갔던 시도 생각났다.
태양도, 아이도 모두 돌아간 푸르스름한 어둠 속 고요한 듯 쓸쓸한 듯 허연 날개를 펄럭이며 하얀 나비만이 우두커니 홀로 서있다. 갈 곳을 잃은 듯, 아니 처음부터 갈 곳이란 없었던 듯 나비의 처연한 날갯짓은 허공을 맴돈다. -자작시中
집에서 나와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정류장 서있던 시간이 있었다. 그저 모든 걸 잊고 최대한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 하지만 결국 번번이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떠나고 싶었던 곳에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절망들.
언젠가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가 집안 어딘가와 내 발에 각각 자석을 심어 놓은 것이 아닐까. 혹은 아빠가. 그것이 때로는 N극과 N극이 되어 나를 밀치지만, 결국은 서로 다른 극이 되어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닐까. 마치 가족처럼.
복부 어느 언저리 누르면 까르르 터져버릴 듯 어머니, 누워만 계셨다... 담쟁이의 끈끈함으로 어둠은 아랫목, 목, 목, 세상 모든 목을 조르고 있네요. 그런데 어머니, 오늘도 알약 같은 보름달이 뜨려나봐요. -p.19 플라시보 당신 中
법 없이도 발효(醱酵)되는, 발효(發效)되는 당신, 정답은 없고 당신도 없는데, 겨우내 옹관처럼 거기 묻혀 조금씩 조금씩 나를 꺼내 먹는 당신. -p.58 김장하는 법 中
<서봉氏의 가방> 속에 드러난 가족은 밀치고 싶지만 영영 밀칠 수도 없는, 마음 놓고 미워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나를 갉아 먹지만 또 나를 만든 사람들이다. 가족을 그리는 시인의 그런 진솔함이 나를 시 속으로 더욱 끌어당겼다.
시를 써오는 동안, 내가 바란 것이 있다면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아름다운 날을 살아보는 것이었다. -p.5 시인의 말 中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날들을 보낸 시인이 쓴 시는 나를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도 데려갔다.
<서봉氏의 가방>을 읽으며 그렇게 문득 문득, 때론 갑작스럽게, 흘러간 시간들과 다가올 시간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왜 시를 찾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당신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할 때. 당신의 상처에서 나의 상처를 발견할 때. 나는 시인이 되고 시는 내가 된다.
모쪼록 나는 앞으로 종종 시집을 꺼내들 것 같다. 요 한달 동안, 서봉氏의 시집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나는 조금 따뜻해졌으니까.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시를 난감한 것이 아닌, 따듯한 것으로 만들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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